2005년 12월호

‘미소 뒤에 숨긴 주먹’ 콘돌리자 라이스의 ‘변형외교’

  •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입력2005-11-30 14:1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대외정책은 일방주의에서 벗어난 다자주의 노선인가, 미국만의 이익을 추구하진 않겠다는 ‘자비로운 패권국’의 자기반성인가. 세계를 외교로 변형시키겠다는 라이스의 야망은 실현가능할까. 그 강성 노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요즘 미국과 한국의 신문에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잘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심심치 않게 실린다. 라이스를 비롯한 미국의 대외정책 담당자들이 마치 대화에 바탕을 둔 유연한 외교를 펴는 양 기사를 쓰고 있다. 기사 제목도 ‘외교가 작동하고 있다’든가 ‘라이스는 외교를 즐긴다’는 투다.

    틀린 말은 아니다. 라이스는 ▲국무장관 취임 첫 나들이로 유럽을 방문, 우방국들과의 관계개선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고 ▲지난 3월엔 유럽 국가들의 이란 핵 협상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다자주의적 외교의 물꼬를 텄고 ▲지난 4월엔 고수하던 국제형사재판소(ICC) 거부 태도를 접고 수단 다르푸르 사태에 대한 ICC의 사법권을 승인하는 유엔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으며(기권) ▲지난 9월 열린 유엔총회에서는 유엔 개혁을 부르짖던 목소리를 예전보다 훨씬 누그러뜨렸다.

    미 언론들이 라이스를 긍정적으로 본 결정적 대목은 6자회담이다. 라이스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보다 이란 핵 문제를 더 큰 위협으로 본다”면서 북핵 문제를 대화로 풀 수 있다는 자세를 보였다. 그 결과는 지난 9월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를 통해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면 에너지 지원과 안전보장 등을 약속하겠다”는 메시지로 나타났다. 이런 대북협상 자세는 “북한에겐 어떠한 양보도 있을 수 없고, 주고받는 협상을 하지 않겠다”며 평양 당국의 백기 투항을 기다리는 듯했던 1기 부시 행정부(2001∼04)와는 크게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러하듯, 본질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라이스의 외교방식에 대해 이미 몇 가지 새로운 용어가 만들어졌다. 그중 하나가 ‘변형외교’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외교다. 슈퍼 파워 미국만이 내보일 수 있는 자신감이 스며 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막을 내린 뒤 유일 초강국으로 떠오른 미국이 옛 제국주의 국가들과 달리 ‘자비로운 패권(benevolent hegemony)’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이념을 퍼뜨리겠다며 사명을 천명하는 듯하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조지 슐츠는 국무장관의 역할을 정원사에 비유했다. 날마다 (전세계를 상대로 미국의 국가이익에 걸림돌이 되는) 잡초를 뽑고 누군가가 과일을 훔쳐가지 못하게 하는. 그러나 라이스는 단순한 정원사가 아니라 정원설계사로 자리매김하길 바라는 모습이다. 다시 말해 현상유지가 아니라 이를 뛰어넘는 ‘변형외교’를 추구하고 있다는 게 라이스 측근 인사들이 미 언론에 흘리는 말이다.



    “변형외교로 세계를 바꾼다”

    미 언론은 그런 라이스의 힘이 부시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에서 비롯한다고 분석한다. 라이스는 부시의 최측근이다. 대통령과 국무장관의 밀착관계는 1970년대 닉슨 대통령-키신저 국무장관 이래 처음이라고들 한다.

    라이스는 1기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지낼 때도 부시의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미 언론으로부터는 후한 점수를 받지 못했다.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정책조정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에 대한 평가였다. 백악관 안보보좌관으로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이끌며 21세기의 첫 전쟁이라 할 아프간 침공, 이라크 침공 등 주요 현안들을 다뤘지만, 행정부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카리스마와 파워에 밀렸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객원연구원 데이비드 로스코프가 미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에 쓴 ‘세계를 움직이는 위원회(미 국가안보회의)의 내부’라는 글을 보면, 체니 부통령은 ‘다른 어느 NSC 위원보다 힘이 센 800파운드짜리 고릴라’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NSC 참석자들의 말에 신경 쓰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일을 밀어붙이는 막무가내형 인물’로 묘사된다. 부시 행정부의 강경노선을 대표하는 체니-럼스펠드 라인은 상대적으로 온건 노선을 걷는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 라인과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며 라이스 안보보좌관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1기 부시 행정부의 강온파 힘겨루기에서 라이스 보좌관은 중립 지대에 있었다고 평가된다. 뒤집어 말하면, 스스로 목소리를 내 적극적인 역할을 맡기보다는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모시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라이스는 파월과 달리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도 아니다. 결국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가. 2기 부시 행정부에서 라이스는 조정자가 아닌 외교정책 결정 당사자로 거듭난 것 같다. 한편으로 라이스는 2008년의 차기 미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의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한다. 대통령후보 또는 부통령후보로서 말이다. 그의 맞수로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꼽힌다. 지난 10월엔 선거전략가 딕 모리스가 쓴 ‘콘디 대(對) 힐러리 : 다음 대선 경주’라는 책도 출간됐다(‘콘디’는 라이스의 애칭). 그러나 라이스 본인은 인터뷰에서 대선후보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럴 일은 없을 거라며 손을 내젓는다.

    꼭 1년 전인 2004년 11월16일 라이스는 국무장관으로 지명됐다. 라이스가 앉았던 국가안보보좌관 자리는 그의 직속 부하이던 스테판 헤이들리가 맡았다.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차관 후임엔 미 무역대표부 출신으로 중국통인 로버트 죌리크 국무차관이 임명됐다. 그러나 2005년 1월 라이스 국무장관의 의회 인준은 매끄럽지 못했다. 미 상원 외교위에서 찬성 16, 반대 2(민주당 대통령후보이던 존 케리, 그리고 바버라 박서)로 통과했으나, 바로 뒤이은 상원 인준에서는 반대가 13표나 나왔다(찬성 85표).

    이는 1825년 이래 미 국무장관 인준투표에서 가장 많은 반대표였다. 바버라 박서 의원(민주당)은 “이라크와의 테러전쟁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반대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라이스에겐 백악관 안보보좌관 시절, 사담 후세인이 테러단체인 알카에다와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부시를 보좌했다는 책임이 따른다.

    그 청문회에서 라이스는 몸속에 흐르는 강경 보수의 색깔을 드러냈다. ‘폭정의 전초기지(Outposts of Tyranny)’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이 표현은 9·11 테러 뒤인 2002년 초 국정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이 이란, 이라크, 북한을 가리켜 ‘악의 축(axis of evil)’이라 규정한 발언의 후속편이다.

    라이스가 “미국이 자유를 신장시켜야 할 의무를 지닌” 폭정의 전초기지로 꼽은 나라는 이란, 쿠바, 짐바브웨, 벨로루시, 버마 그리고 북한이다. 부시 대통령은 뒤이어 있었던 2기 취임식 연설에서 “미국은 전세계적으로 폭정에 맞서 싸우겠다”고 큰소리쳤다. 당시 제4차 6자회담 재개시점을 놓고 저울질하던 북한의 비난과 반발이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북한은 6자회담 무기한 불참과 더불어 핵무기 보유 발언으로 맞섰다.

    라이스는 국무장관에 취임한 뒤 지난 10개월 동안 외교적으로 다자주의적인 제스처를 보여왔다. 라이스는 스스로를 ‘실용적 이상주의자’로 여긴다. 실제로 라이스는 복합적 이미지를 지녔다. 북한과도 협상하는 현실주의자의 모습이지만, 미국적 가치(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를 지켜나가고 세계로 확산시키기 위해선 반미세력을 공격적 외교로 봉쇄해야 한다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주장에 동조해온 게 사실이다.

    겉은 다자주의, 속은 강성

    대선을 앞둔 조지 W. 부시 후보의 외교정책 보좌관으로 막 합류했던 1999년 말 라이스(당시 스탠퍼드대 교수)가 미 외교협회가 발행하는 유력 격월간지 ‘포린 어페어즈’ 2000년 1∼2월호에 발표한 글에도 그의 강경 성향이 드러난다. ‘캠페인 2000 : 국가이익을 증진하기 위해’라는 제목의 글은 부시 후보의 대외정책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이 글에서 라이스는 반미(反美)노선을 걷는 이라크, 이란, 북한 3개국을 이른바 불량체제(rogue regime)로 규정하면서 체제변화를 언급했다.

    ▲북한의 경우, 라이스는 클린턴 행정부가 이라크에서 그랬듯이 때론 무력을 쓸 것처럼 위협하고 때론 뒤로 물러서는 등 대북정책에서 실패했다고 단정하면서 “그런 실패를 거울삼아 미국은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라이스는 “만일 북한이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했다고 해도 그것을 쓰려는 어떠한 시도도 (미국의 공격으로 말미암아) 나라 자체가 말살(obliteration)될 것이므로 쓸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강경한 견해를 밝혔다.

    ▲이라크의 경우, 라이스는 “사담 후세인은 WMD를 개발하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단정하면서 “후세인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므로 미국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그를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란의 경우, 라이스는 “이란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국제체제를 이슬람 근본주의로 대체하려 한다”고 비난하면서 “이란은 미국과 유럽 국가들을 겨냥한 테러를 돕고, 미국의 우방인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과의 국방협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라이스의 친(親)이스라엘 편향은 아랍인들의 분노를 샀다. 지난 1월 의회 국무장관 인준을 위한 상원 외교위 청문회에서 행한 라이스의 발언은 그의 대(對)중동 인식이 지닌 편향성을 드러낸다. “중동의 넓은 지역이 독재와 절망, 분노로 남아 있는 한 미국인과 우리의 친구들(유대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극단주의자들과 집단적 움직임은 계속 생겨날 것이다” “팔레스타인에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것은 성지(聖地)에서의 유혈투쟁을 끝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민주주의 국가인데,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 정치권은 민주화가 되지 않아 유혈투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담겨 있다.

    냉정한 시선으로 본다면, 라이스 외교의 본질은 매파의 노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여러 대외정책을 봐도 강경 일색이다.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무장해제를 강력히 요구하면서, 무장해제 없이는 2006년 1월로 예정된 팔레스타인 총선에 참여할 수 없다는 강경방침을 거듭 밝혔고(이 방침은 10월 들어 극적으로 철회됐다) ▲시리아를 압박하면서 무력에 의한 정권교체 가능성을 은근히 흘리고 있고 ▲이란이 핵의 평화적 이용을 거듭 천명했는데도 유엔 안보리 경제제재를 위협하고 있고 ▲결정적으로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본질과 문제점을 솔직히 밝히기는커녕 이슬람권 민주화론을 내세우는 점이 라이스 외교의 본질과 한계를 말해준다.

    볼턴 유엔대사 방출은 잘한 일?

    라이스가 국무장관으로서 잘한 일로 평가받는 대목이 국무부의 강경파 존 볼턴(전 국무부 차관, 현 유엔대사)의 방출이다. 볼턴이 국무부에 남아 있었다면, 6자회담이 미국의 강경 기조로 말미암아 삐걱거렸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부시 행정부에 비판적 논조를 펴온 ‘뉴욕타임스’는 매파인 볼턴 국무부 차관을 유엔대사로 내보냄으로써 대북정책 같은 위험한 분야에서 볼턴을 제거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유엔으로서는 볼턴이 전혀 반갑지 않은 인물이다.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일방주의적 오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살아 있는 증거가 존 볼턴 유엔대사다. 그는 1기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차관으로 초강경파를 대표하던 인물이다. 2003년 여름 1차 6자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한국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포악한 독재자’, 북한을 ‘지옥’에 비유하는 비외교적인 연설을 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기본적으로 6자회담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를 좌초시키고 싶어 했다. 북한을 봉쇄함으로써 북한의 항복을 받아낸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볼턴은 2003년초 이라크 침공을 둘러싼 유엔 안보리 결의안이 논란의 핵심으로 떠올랐을 때 프랑스-러시아-중국의 반대로 결의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없어지자 “유엔은 돈만 낭비하는 기구”라며 유엔 무용론을 주장한 인물이다. 그의 유엔 관련 어록에 “유엔본부 건물 몇 층을 없애도 아쉬울 게 없다” “유엔 같은 건 없다”는 등 극단적 발언이 많다.

    미국의 대외 강공책을 앞장서 부르짖는 네오콘 가운데서도 극단으로 치우쳐 있는 인물이 볼턴이다. 그런 그를 부시 대통령은 지난 3월 유엔대사로 지명했으나, 인준권을 지닌 미 의회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미 의회의 여름 휴회를 틈타 대통령 직권으로 그를 전격 임명, 많은 이에게 놀라움을 안겼다(미국 대통령은 의회가 휴회 중일 때 상원 인준을 거치지 않고 공직자를 임명할 수 있는 헌법적 권한이 있다). 1948년 유엔이 창설된 이래 미 대통령이 상원의 인준절차 없이 직권으로 유엔대사를 임명한 것은 최초다.

    부시 대통령이 무리수를 써가며 볼턴을 유엔대사로 임명한 배경은 무엇일까. 워싱턴 정가 관측통은 네오콘 강경파가 부시 대통령을 움직여 초강경파인 볼턴으로 하여금 ‘유엔 개혁’이란 명분 아래 유엔을 무력화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볼턴은 국무부 국제기구 차관보로 있으면서 팔레스타인이 유엔의 한 기구에 가입하는 것을 저지했다. 그뒤 국무부 군비통제 차관 때는 국제형사재판소가 미국인을 전쟁범죄자로 기소할 수 없다고 강변했다. 미 네오콘의 나팔수 격인 주간지 ‘위클리 스탠더드’의 칼럼니스트들을 비롯해 볼턴을 지지하는 네오콘들은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게 뭐가 문제냐”며 볼턴을 싸고돈다.

    대안 마뜩찮은 대북정책

    국무부는 라이스의 다자주의 성공사례로 미국이 6자회담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과연 그럴까. 1기 부시 행정부의 분위기는 북한과의 대화가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미국이 북한과 대화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지구상에서 가장 억압적인 김정일 체제를 지속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길 정도였다.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의 6자회담에 나선 배경은 대화와 외교를 중시해서라기보다 북한을 이라크처럼 무력으로 제압하기 어렵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는 워싱턴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센터(CSIS) 선임 연구원 제임스 맨이 2004년 출간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불카누스의 성장 : 부시 전쟁내각의 역사(Rise of the Vulcanus : The History of Bush’s War Cabinet)’에서도 드러난다. ‘불(火)과 대장장이의 신’을 뜻하는 ‘불카누스’는 강공책으로 미국의 대외적 이익을 지키려는 부시 행정부의 강공파 세력을 일컫는다. 관련 내용을 일부 옮겨본다.

    …2002년 후반 북한은 원자로를 재가동하고, 연료봉에서 봉인을 떼어내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요원들을 추방했다. 그리고 핵무기확산방지조약(NTP) 탈퇴를 선언했다. 문제는 불카누스의 새로운 독트린(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적대세력을 선제공격한다는 부시 독트린)이 이라크에는 먹혀들 수 있지만, 북한에는 먹혀들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이라크가 주변국들과 복잡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혼돈스러운 이슬람권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면, 북한은 경제적으로 번성하는 주변국가들로부터 고립돼 있다. 불카누스의 눈에 비친 북한은 이라크처럼 군사적 해결수단을 쓰기엔 마땅치 않다. 만약 전쟁이 터진다면, 북한은 남한을 공격할 것이고 서울에 큰 해를 입힐 수 있다. 클린턴 행정부 때도 영변 핵시설물을 겨냥한 족집게식 제한공습을 검토했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침공한 명분 가운데 하나는 후세인 정권이 WMD로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가능성이었다. 문제는 WMD 개발에 관한 한 북한이 이라크보다 훨씬 더 노골적이라는 점이다. 이라크 침공 전인 2002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는 북한 당국자에게서 “북한이 곧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것이다”는 말을 들었다. 켈리의 방북 뒤 북한은 원자로를 재가동하고, 연료봉에서 봉인을 떼어내고, 국제원자력기구 사찰요원들을 추방했다. 그리고 핵무기확산방지조약의 탈퇴도 선언했다. 이 같은 조치들은 부시 행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북한 공습에 나서기도 어려웠다.

    이라크 침공 뒤인 2003년 8월부터 미국이 6자회담에 참여한 것은 그런 딜레마를 겪으면서 대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뒤였다. 그렇지만 북한과 어떤 협정을 맺으려고 서두르지는 않았다. 미국은 북한 경제사정이 아주 어려워져 김정일이 미국에 손을 벌리면서 핵개발을 포기하길 기다렸다. 앞서 살펴본 북한 관련 발언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오늘의 라이스 국무장관도 북한이 백기를 들길 은근히 바랄 것이다.

    지난 1월 국무장관 인준을 위한 미 상원 외교위 청문회에서 라이스는 다자주의적 국제관계를 증진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이제는 외교의 시간이 다가왔다”는 말을 남겼다. 듣기에 따라서는 그와 같은 라이스의 발언이 1기 부시 행정부 때 나타난 오만한 일방주의를 청산하고, 아울러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협력에 미국이 적극 나서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듯했다. “사실상 이라크의 수렁에 빠졌다”는 소리를 듣는 미국이다. 그런 미국은 말 그대로 ‘외교’를 필요로 한다. 올해 2월 라이스가 첫 해외 나들이로 유럽을 택한 것은 이라크 침공과정에서 틀어진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복원하려는 노력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북한 핵을 둘러싼 6자회담에 미 국무부가 적극 뛰어든 것은 군사적 수단을 포함한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고, 1기 부시 행정부 4년 동안 으르렁대면서 북한과의 대화 기회를 놓친 뒤 빗발치는 비판을 받고 난 뒤의 일이다. 라이스의 외교는 부시 대통령 집권 1기의 밀어붙이기 강공 외교정책의 한계에서 비롯된 대안적 성격이 강하다.

    미국은 이라크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정치적·경제적 부담으로 말미암아 다른 국가들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출구전략(exit strategy)을 마련하기 어려운 처지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정책 변화도 그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