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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회 2000만원 고료 논픽션 공모 우수작

한 독립운동가의 운명

  • 류일엽 / 일러스트·박진영

한 독립운동가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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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한 독립운동가의 운명
2004년10월18일, 중국 지린(吉林)성 수란(舒蘭)시 빈관(賓館)에서였다. 작가 김태복(金太福·60· 수란시 조선족 중학교 퇴직 교원) 선생은 수란에 살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하는 중에 불쑥 박재호(朴在浩)라는 이름을 꺼냈다.

“박재호씨는 원래 우리 학교 선생이었습니다. 광복 전에는 주타이(九臺)현 경찰서에 있으면서 독립운동을 한 분이고요. 광복 후에는 주타이현 한교회 회장도 맡아 하셨지요. 수란에 와서는 조선족 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다가 우파(右派) 때부터 별의별 고생을 다 하신 분이지요.”

김 선생은 자기가 알고 있는 박재호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뒷말은 통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나의 한 가지 관심사는 경찰 신분의 독립운동가였다는, 소설 같은 사실이었다.

“그분이 생전이십니까?”

나의 물음에 김 선생은 “생전이고 말고요. 지금 여든넷인가 됐을 걸요. 그런데…”라며 긍정 뒤에 시답지 않게 토를 달았다.

“그런데라니요?”

나는 다급히 그의 말꼬리를 잡았다.

“치매가 왔어요. 한 이태 되었을 걸요. 얼마 전에 갔더니 사람을 몰라봐요. 때로는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가 봅데다.”

김 선생의 김빠진 소리에 나는 맥을 놓았다. 맹랑한 노릇이었다. 둥베이(東北) 3성(省) 조선족이 사는 곳이라면 메주 밟듯 했다는 소리를 듣는 나에게도 수란은 빈 구석이었다. 지린에서 하얼빈으로 오가면서도 그 중간에 있는 수란은 그냥 지나친 것이 못내 후회됐다. 나의 답사에 대해 세월은 무정한 재판관이었다.

“그래도 혹시 정신이 맑을 때가 있을 것 아닙니까.”

그때 나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그런 심정이었다.

“글쎄요. 그 아들을 불러볼까요?”

김 선생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서 그러십시다.”

나의 불 같은 재촉에 김 선생은 작은 수첩을 꺼내어 한참이나 뒤적이더니만 “예전의 전화인데 지금도 그대로 쓰는지 모르겠구만요”라고 반신반의하더니 전화를 걸었다.

이튿날 박수진(朴守振·53)씨가 호텔로 찾아왔다. 김태복 선생이 말하던 박재호씨의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셨고, 광복 후에도 민족사업을 줄곧 해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공산당 천하에서는 죄가 됩디다. 아버지 때문에 우리 가문은 패가망신을 당한 겁니다.”

박수진씨는 아버지의 과거사에 대해 많은 말을 했다. 그러나 그것을 그대로 믿기엔 몽롱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내가 수란을 떠나기 전날 박수진씨는 아버지와 관련 있는 자료들을 가져왔다. 그중엔 일본 유학 기간의 일기, 만년에 쓴 자술(自敍)과 광복 전후의 주타이 조선족사며, 그외 여러 가지를 증명할 만한 자료가 포함돼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밤새워 읽었다. 읽을수록 가슴이 뭉클해왔다. 한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의 형상이 머리 한가운데 거연히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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