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호

전시작전통제권을 다시 생각한다

‘자주’ 명분 집착하다 ‘교각살우’ 저지를 수도

  • 이상훈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장

    입력2005-12-14 18: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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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없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떠받치는 것은 한미연합방위전력이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반드시 우리의 자주권 회복 행위로만 볼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시작전통제권을 다시 생각한다
    최근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와 관련, 일부 언론과 학자가 ‘전시작전통제권’과 ‘전시작전지휘권’을 동일시하며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전시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는 것을 마치 주권을 침해당한 것처럼 주장해 국민의 판단을 흐려놓고 있다. 필자는 이에 우려를 금치 못하며 과거 2년간의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근무 경험을 토대로 전시작전통제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고자 한다.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제37차 한미연례안보회의(SCM)에서 한미 국방장관은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를 논의하고 지휘관계에 대해서는 한미상호 방위전략 차원에서 계속 협의키로 합의했다.

    필자는 지휘권 문제를 장기적 협의과제로 남긴 한미 양국 국방장관의 공동 인식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전쟁 발발시 우리 군을 우리나라 지휘관이 직접 지휘하는 것은 주권(主權) 차원에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당장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져온다 하더라도 독자적으로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춰졌거나 북한의 군사위협이 사라졌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이다.

    전시작전지휘권이란 용어는 6·25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전에 참전한 유엔군 사령관(맥아더 장군)에게 모든 군 지휘권을 위임한 데서 비롯됐다. 이후 휴전이 성립되고 1954년 11월7일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해 ‘작전지휘권’은 작전권만 위임된 ‘작전통제권’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1978년 한미연합군사령부(CFC)가 창설되면서 전시작전통제권은 유엔군 사령관에서 한미연합군사령부로 이양돼 오늘에 이르렀다.

    작전지휘권은 군사작전뿐만 아니라 군수·행정지원 같은 부대 운영 전반에 걸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지만, 작전통제권은 부대 전투력을 통합하고 작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대(對)북한 군사작전에 한정하고 있으며 인사, 군수, 행정 같은 부대 운영 권한은 한미 양국군이 독자적으로 행사하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근거로 한 한미연합사령부는 한미 양국 대통령을 통수권자로 하며, 양국 합참의장을 대표로 하는 한미군사위원회의 전략지침에 따라 전시작전통제권을 공동 지휘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비록 미군 장성이 연합사 사령관을 맡고 있지만 그의 권한 행사는 한국군 연합사 부사령관(대장)과의 협의하에 이뤄진다.

    연합사는 한미 공히 50대 50으로 편성돼 있으며, 연합사 예하 7개 구성군사령부(지상·해상·공중·해병대·연합특전·연합심리·연합항공) 중 4개 구성군 사령관(지상·연합특전·연합심리·연합항공)은 한국군 장성이 지휘권을 맡아 지휘하고 있다.

    작통권 환수 서두를 이유 없어

    한국군이 현시점에서 왜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이 없어져 힘의 공백을 초래한다. 한미연합사령관은 유엔군 사령관과 주한미군 사령관을 겸하고 있고, 전시 작전계획인 ‘작계 5027’을 작성, 발전시키는 것이 주 임무다. 만약 작전통제권을 한국군으로 이양한다면 한미연합군사령부는 할 일이 없어지고 해체가 불가피하다.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이 없어지게 될 뿐만 아니라 결국 주한미군의 철수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한반도에 힘의 공백을 초래해 심각한 안보위협이 될 것이다.

    둘째, 전시 증원군의 전력은 한국군의 작전 지휘 능력을 초과한다. 전쟁 재발에 대비해 한미 양국이 마련한 작계 5027에 따르면 미군은 전쟁이 재발하는 순간 본토로부터 시차별 부대전개목록(TPEDD)에 따라 미 해군 전력의 40% 이상, 공군의 50% 이상, 해병대의 70% 이상의 증원전력을 전개하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미국과 일본 기지로부터 항공기 2000여 대, 함정 160여 척, 해병상륙군, 지상군 등 유사시 한반도로 이동해 오는 미군은 69만명에 이른다. 평시 한국군의 총병력이 68만명인데 이보다 더 많은 미군의 증원 병력과 장비를 과연 한국군 지휘관이 지휘할 수 있는가가 문제다. 나아가 유엔의 결의에 따라 유엔군이 지원될 경우 현재의 한미연합사령관은 유엔군 사령관을 겸하고 있어 문제가 없지만, 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 환수된다면 이는 지휘한계를 벗어나는 요소가 된다.

    셋째, 미국만이 개발해 보유·운용하는 첨단무기의 운영능력이다. 한국군은 현재 전략정보의 100%, 전술정보의 70% 이상을 주한미군으로부터 제공받고 있으며 북한 신호정보의 99%, 영상정보의 98%를 미군 장비와 기술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장(戰場)에서 정보 없는 전투는 ‘눈뜬 장님’과 같다. 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 환수됐을 경우 막대한 경비가 소요되는 중요한 정보를 과연 미군이 공짜로 한국군에 계속 제공하겠는가.

    넷째, 한국군의 전쟁 지속 능력엔 한계가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1개월이 걸릴지 혹은 3∼5년이 걸릴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현재 한국군이 보유한 탄약, 유류, 수리부속품 등은 평균 6개월 정도의 전쟁 지속 능력을 갖고 있다. 특히 전투기, 미사일, 신형 무기는 미군의 지원 없이는 지속적인 조달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전쟁 지속을 위한 군수조달계획 또한 한미연합사령관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한국군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앞서 우리군의 작전 기획 능력을 높일 수 있는 C4I(전술지휘통제시스템) 확립과 위기조치 및 첨단 감시 능력을 확보하고 연합작전 수행 능력을 구비하는 등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배타적 단독 국방, 협력적 자주 국방

    주한미군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한반도 유사시에 미국이 한국을 돕겠다는 대(對)한반도 안보공약의 상징적 의미라는 점에서 더욱 필요한 존재다. 한미동맹의 관계 변화에 따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를 거론할 수도 있겠지만, 이 같은 논의는 한국군의 국방능력이 증대되고 미군이 한국의 국방력 신장에 저해된다는 판단이 설 때 제기해도 늦지 않다.

    ‘협력적 자주 국방’과 ‘배타적 단독 국방’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우리가 정말 힘있는 국가로서 당당하게 자주 국방을 이루기 위해서는 ‘나홀로 국방’이 아니라, 남의 힘을 이용하는 것 또한 올바른 지혜가 아닐까.

    글로벌 시대에 독자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나라는 없다. 걸프전,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에서 보았듯이 여러 국가의 군대가 모인 다국적군이 유엔의 깃발 아래 연합작전을 펼쳤다.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들도 유사시에는 다국적군을 구성해 미군이 맡고 있는 나토 사령관에게 작전통제권을 위임한다. 작전통제권 위임이 곧 자주권 상실이 아님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북한은 중국,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중국과는 1961년 7월 ‘조중(朝中)우호협력 및 상호 원조 조약’을 맺고 러시아와는 2000년 10월 ‘조러 우호 설립 및 협력에 관한 조약’을 체결해 북한이 전쟁상태에 처하면 언제든지 군사적으로 원조하고 전쟁에 개입할 길을 열어놓았다. 따라서 한미 양국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우리의 국방 능력이 갖춰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자주’라는 명분 때문에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을 수는 없지 않은가.

    역사가 토인비는 “힘없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고 했다. 지금 우리가 한반도에서 전쟁 없이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는 원천은 햇볕정책이 아니라, 한미연합 방위전력이라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한미동맹 강화에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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