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이 사람의 삶

삼원론 철학자 박재우

“새천년은 ‘뉴트로’의 시대, ‘근원 미소’ 가득한 ‘제로 세계’가 온다”

  •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삼원론 철학자 박재우

2/7
그랬는데 정말 거기 모였던 1200명가량의 의사들이 그가 묵는 호텔까지 찾아왔다. 객실 복도에 죽 앉혀놓고 강의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하도 많아 호텔의 집기가 부서지기도 했다.

“그들의 열광을 잊을 수 없었어요. 그날의 인상이 하도 강해 그후 한국보다 소련에서 활동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수족침의 원리는 간단하다. 엄지손가락을 손목 쪽으로 돌려놓기만 하면 손은 사람의 신체 형태와 똑같아진다. 지금 손모양은 다만 물건을 잡고 집어올리는 데 편리하도록 엄지손 방향을 옆으로 약간 돌려놨을 뿐이라는 거다. 상응 부위를 문지르거나 비틀어주는 것만으로 통증은 해소되고 경혈이 뚫려 기(氣)의 순환이 순조로워진다고 한다.

소련으로 간 그는 모스크바에 ‘수족 아카데미’를 설립해 제자를 길러낸다. 각국에서 강연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1994년 가을이었다. 모스크바였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보이는 모든 것이 모조리 똑같은 모양을 가진 것으로 느껴졌다. 천장과 전등, 책상과 의자가 다 똑같았다. 놀라 화장실로 달려갔다. 수건과 비누와 치약과 칫솔과 변기와 욕조가 다 똑같았다. 바깥을 내다봤다. 건물과 가로수, 사람과 도로와 자동차가 똑같았다. 심지어 하늘을 나는 새와 구름까지 똑같았다.

나는 그런 이야기가 유난히 흥미롭다. 자꾸 캐물을 수밖에 없었다.



“똑같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모양이 같다는 겁니까. 구별이 안 된다는 뜻입니까.”

“분자와 원자 전자까지 내려가면 결국 만물은 다 똑같을 수밖에 없잖습니까. 그러나 현미경을 통해 보지 않아도 똑같은 요소로 이뤄졌다는 것이 훤히 보였던 거지요. ‘다르지 않고 똑같구나’ 하는 느낌뿐이었는지도 모르죠. 아무튼 모든 게 똑같았고 하루 종일 그런 느낌 속에서 익사이팅하게 보냈어요. 왜 그런가 자문하는 중 절로 답이 왔어요. ‘세상에는 모든 존재를 똑같게 하는 힘이 작용하는구나! 이건 존재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인 힘이구나!’ 하는 깨우침이었죠.”

호모, 헤테로, 뉴트로

그는 대번에 그 현상을 이름지었다. 호모(Homo)라고! 이튿날은 어제처럼 똑같은 것을 연상하며 눈을 떴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모든 게 다 달랐다. 어제와 똑같은 순서로 달려가 봤다. 화장실의 수건과 비누는 달랐다. 바깥의 건물과 가로수도 다 달랐다. 같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왜 이렇게 모든 게 다를까 의문을 던지는 순간 즉시 응답이 왔다. 간단했다. 이 세상에는 서로 다르게 하는 근본적이 힘이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이 다르게 하는 힘을 어제의 호모에 대응시켜 헤테로(Hetero)라고 이름짓는다.

“세상에 똑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같은 아톰(원자)이라도 공간적 위치가 다르면 압력, 열, 크기가 다 달라져요. 그게 바로 헤테로 때문에 그렇거든요. 빅뱅 이후 우주가 탄생했다고 하잖아요. 원래 있던 제로 세계는 아무 움직임도 없었는데 어느 날 가만히 있는 걸 참지 못하는 헤테로가 탈출해 바깥으로 나오죠. 같아지려고 하는 호모는 달라지는 걸 참을 수 없으니까 헤테로를 붙잡으러 할 수 없이 바깥세상으로 따라나와요.

헤테로는 먼저 나왔으니 1번이고 호모는 나중 나왔으니 2번이에요. 1은 불안하고 활동적이고 2는 안정적인데 보수적이죠. 그렇지만 헤테로를 잡아야 하니 호모도 한시도 편할 날이 없어요. 다투고 도망가고 뿌리치고…. 그 둘의 알력과 투쟁이 바로 음양의 원리죠.”

손발의 인체상응이라는 치료 체계에 몰두해 세계를 다니며 그 원리를 가르치던 그에게 현상의 본질을 깨닫게 한 신비체험은 세상 전반에 걸친 이해의 폭을 한층 넓혀줬다. 그러나 미진했다. 호모, 헤테로 두 힘만으로 해결 못하는 현상이 있음을 실감했다.

그러다 1998년쯤 호모 헤테로 외에 또 하나의 근본적인 제3의 힘이 존재한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인도 여행길에서 그 개념은 뚜렷해졌다. 화평하고 고요한 어떤 순간, 그건 호모도 아니었고 헤테로도 아니었다. 그 둘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순간이 세상에는 분명 넘쳐나고 있었다. 호모나 헤테로가 아닌 그 균형과 조화가 세상의 주연임이 분명해보였다. 그걸 그는 다시 뉴트로(Neutro)라고 이름짓는다.

뉴트로는 호모와 헤테로를 조정하는 힘이고 질서를 세우는 힘이고 연결하고 지속하고 중화하는 힘이었다. 뉴트로는 개선하는 힘이고 융화하는 힘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힘이고 조화로운 리듬을 만드는 힘이었다. 호모가 음성이면 헤테로는 양성이고 뉴트로는 중성이었다. 뉴트로는 호모와도 헤테로와도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뉴트로는 호모와도 친근하고 헤테로와도 친근하다. 뉴트로는 호모나 헤테로처럼 두드러진 특성을 가지지도 않고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작용한다. 분명히 존재하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뉴트로는 맨 처음의 제로 세계와도 맞닿아 있어 거기서 태어난 호모와 헤테로의 합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현실세계의 근본원리이기도 하다. 호모, 헤테로, 뉴트로! 이것이 바로 박재우 선생이 세상의 근본원리라고 말하는 3원 원리다.

2/7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연재

이사람의 삶

더보기
목록 닫기

삼원론 철학자 박재우

댓글 창 닫기

2019/08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