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호

‘이순신의 난중일기 완역본’

철저한 고증으로 ‘인간 이순신’ 진면목 생생하게 복원

  • 입력2006-01-13 17: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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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의 난중일기 완역본’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로 시작해 TV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 이어 영화 ‘천군’까지.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이처럼 뜨거웠던 적이 또 있을까. 관심은 호기심을 낳고 호기심은 확인되지 않은 무수한 설을 만들어내게 마련이다. 초서(草書) 연구가 노승석씨가 ‘난중일기’ 필사본 9책(국보 제76호)을 완역한 ‘이순신의 난중일기 완역본’(동아일보사 刊)은 항간에 떠도는 충무공에 관한 갖가지 의혹을 말끔하게 씻어 없앤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는 충무공이 노량해전에서 갑옷을 벗은 채 병사들을 독려하자, 이를 지켜보던 장수들이 “저건 자살행위”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러한 설정은 ‘이순신방전면주(李舜臣方戰免胄)’라는 기록에서 비롯됐는데, 저자는 ‘투구를 벗다’로 풀이된 ‘면주(免胄)’가 실제로 투구를 벗었다는 뜻이 아니라 “병사가 결사적으로 싸우는 모습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그간 공개되지 않은 ‘난중일기’ 8책 서간첩에 실린 충무공의 큰아들 이회(李會)의 편지를 번역함으로써 충무공이 전사하지 않고 잠적했다는 설을 잠재운다. 이 편지는 노량해전 직후 이회가 관리 현건(玄健)에게 보낸 것으로 “지난번 직접 곡하시고 글을 지어 제문과 제물을 보내오셨다”고 감사를 표한 뒤 “사람들의 돌봐주심에 힘입어 상여를 무사히 빠르게 옮겨왔다”고 씌어 있다.

    ‘난중일기’는 충무공이 전라좌수사로 임명된 임진년(1592) 1월1일부터 전사하기 전날인 무술년(1598) 11월17일까지 진중(陣中)에서 보고 겪은 바를 정리한 것으로 그날의 몸 상태와 바다 날씨, 베어 죽인 부하들과 자고 간 여자의 이름까지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전시임을 반영하듯 급하게 휘갈겨 쓴 데다 일부 글자는 마멸돼 기존의 번역서들로는 인간 이순신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번 완역본은 치밀한 고증 끝에 지금까지 해독되지 않은 8500자를 새롭게 번역하고, 150여 자의 오류를 수정하는 쾌거를 이뤘다. 저자는 ‘난중일기’ 7책에 충무공과 아들 이회가 주변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서간첩과 조정에 보내는 장계의 초안인 ‘임진장초’까지 총 9책의 초서 13만자를 해독했다.

    성균관 한림원 선병한 교수는 “월탄 박종화, 노산 이은산 등이 최초로 번역한 내용에 빠진 부분이나 오역이 있어 아쉬웠는데, 노승석씨가 ‘난중일기’를 철저히 고증해 완역한 것을 보고 감동했다”고 밝혔다. 선 교수는 “특히 기존에 잘못 알려진 세산월(歲山月)을 조선 선조 때의 의기(義妓)인 내산월(萊山月)이라고 처음 밝혀낸 것은 의미가 크다. 그는 은괴(銀塊)를 나귀에 싣고 이순신이 머문 전라좌수영에 내려가 거북선 제조와 군량 조달에 공헌한 여인이다”라며 이 책을 높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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