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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성배와 아더왕의 전설 ‘아발론 연대기’

  • 이경덕‘신화 읽어주는 남자’ 저자 papuan@naver.com

성배와 아더왕의 전설 ‘아발론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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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온전히 담을 성배

‘아발론 연대기’는 신화의 여러 얼굴 가운데에서도 영웅 신화의 전형을 지니고 있다. 신화 속에서 영웅은 주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무서운 괴물과 싸워 물리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렇다고 힘이 세고 덩치가 큰 사람만 영웅이 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신화는 거대한 상징체계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에 나와 있는 것만 보아서는 신화를 이해할 수 없다.

신화에 나오는 괴물은 실제로 숲이나 산속에 사는 사나운 짐승이나 괴물을 뜻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사람들 앞에 닥친 어려움이나 고난을 뜻한다. 이렇게 본다면 괴물의 의미에는 폭넓게 굶주림, 질병 등도 포함될 수 있다.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면, 영웅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욕심과 질투, 시기심, 남과 싸우려는 마음이라는 괴물과 싸워 이긴 사람들이다. 개인의 이기적인 욕망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한 삶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노력해서 목표를 이룬 사람도 영웅이라는 말이다.

‘아발론 연대기’에는 이런 영웅들이 즐비하다. 용기와 절제, 인간의 위엄이 무엇인지 행동을 통해 보여주는 기사들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읽다 보면 그들에 대한 경외심이 생기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영웅은 타인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부름을 받게 되는데 이 책에서는 기사가 되는 과정이 그것이다. 그리고 영웅이 자기에게 부여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조력자를 필요로 한다. ‘아발론 연대기’에서는 마법사 멀린과 모르간, 성배의 수호자인 어부왕, 호수의 부인을 비롯한 많은 여인이 그 역할을 맡고 있다.

‘아발론 연대기’에서 궁극의 영웅적인 과업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성배(聖杯)의 획득이다. 성배는 예수의 피를 담은 잔으로 최고의 성물(聖物)이다. 수많은 원탁의 기사가 이 성배를 찾아 모험을 하지만 성배에 접근하는 것은 단 세 사람뿐이다.

책을 보면 원탁의 기사들이 성배를 찾아 출발할 때 뿔뿔이 흩어져 각자 결정한 길을 따라갔다고 나온다. 어떤 모험이든 함께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쉽겠지만 굳이 원탁의 기사들은 홀로 떠난다. 그것은 성배가 각각의 기사에게 저마다 다른 의미를 갖는 또 하나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죽었지만 죽지 않았다

원탁의 기사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가웨인과 란슬롯은 성배를 찾지 못한다. 그들은 이미 성배를 찾았기 때문이다. 가웨인에게 성배는 아더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되는 것이며 란슬롯에게 성배는 귀네비어 왕비인 탓이다.

이렇듯 ‘아발론 연대기’는 읽는 사람에게 원탁의 기사들처럼 자신만의 성배를 찾아갈 것을 주문한다. 자신을 온전하게 담을 수 있는 성배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기사들의 모험을 통해 보여준다. 그래서 원탁의 기사들은 흩어져 각자의 길을 간 것이다.

아발론은 아더왕이 죽은 뒤에 그의 시신이 옮겨진 곳이다. 그리스 신화의 엘리시온이나 북유럽 신화의 발할라와 같은 곳이며 켈트신화에서 보면 투아하 데 다난 신족이 싸움에서 패해 쫓겨 간 티르 나 노그이다.

티르 나 노그에는 흔히 죽은 자의 세계에서 느껴지는 음산한 분위기가 없다. 오히려 한 삶이 끝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세상이다. 토머스 무어의 유토피아나 무릉도원과도 같은 곳이다.

따라서 아더왕은 죽었지만 죽지 않았다. 아더왕은 아발론에서 살며 세상이 다시 그를 필요로 할 때 나타날 것이다. 아발론 또한 성배가 그렇듯이 상징이다. 영웅처럼 용기와 절제, 인간의 위엄을 가진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곳을 상징한다.

‘아발론 연대기’를 보면서 우리 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처럼 방대한 작품을 만날 수 없음을 한탄했다. 마지막 권을 덮은 뒤, 한국 신화에도 판테온(만신전)이 있고 그들의 이야기가 있을 터인데, 그래서 아더왕이며 란슬롯이며 가웨인의 이름을 부르듯이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신동아 200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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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덕‘신화 읽어주는 남자’ 저자 papu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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