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호

북한 위폐 관련 美 재무부 관리·고위 탈북자 증언 보고서

“1달러 지폐 표백해 종이 공급, 평성 62호 인쇄소에서 美 조폐국 인쇄기로 제조”

  • 정리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6-03-03 1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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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양 101호 연락소, 평양상표인쇄소도 ‘위폐 공장’
    • 700명 종사… ‘샘소나이트’ 가방에 담아 출시
    • 위폐공장 감독관, 소장 특진·‘공화국 영웅’ 칭호
    • 美 정부, 北 위폐공장 촬영한 비디오테이프 확보
    • 김정일 장남 김정남, 마카오 카지노서 위폐 사용
    • 북한 관리들, 동남아 여행 때 진짜 달러와 위폐 반반씩 보유
    북한 위폐 관련 美 재무부 관리·고위 탈북자 증언 보고서
    [북한이 위조 달러의 제조 및 국제적 유통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한반도 문제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도 위폐 문제로 2월 현재까지 재개 시점이 불투명하다. 또한 북한에 대한 미국의 금융제재는 커다란 파급효과를 낳고 있다. 최근 미국 재무부 금융범죄단속반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 북한의 위폐 제조와 유통이 사실임을 한국 정부에 밝혔다.이런 상황에서 2월 들어 북한이 위폐 제조 방지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신중한 입장이던 한국 정부도 태도를 바꿔 최근 이태식 주미대사가 북한의 위폐 제조 행위를 “용납할 수 없는 불법행위”로 규정했다. 이처럼 위폐 문제와 관련, 한국-미국-북한 사이에선 심상치 않은 정보 교환과 중대한 전략 정책이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북한 위폐 관련 정보를 거의 접하지 못하고 있다. 알려지는 내용도 매우 단편적인 정보들뿐이다. 북한이 위폐를 제조한다는 미 정부의 주장을 믿어야 할지도 의문이다.그런데 최근 정부는 북한 위폐 제조 의혹을 심층적으로 조사, 분석한 미국 스탠퍼드대 CISAC(국제안보협력센터·Center for International Security and Cooperation)의 북한 위폐 관련 보고서(THE “SOPRANOS STATE”?)를 국회에 제공했다. 정부는 “북한의 위폐 제조 및 국제 유통에 대해 미국측이 한국측에 제공한 정보의 수위는 이 보고서의 내용과 비슷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이 보고서는 북한 위폐 소관부서인 미 재무부 관리들과 고위급 탈북자들의 증언을 상세하게 담고 있다. 보고서는 이들의 증언을 근거로 북한의 대략적인 위폐 제조 규모, 제조 장소, 구체적인 유통방법, 북한 당국이 위폐 제조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정황, 북한의 위폐 제조가 달러 유통에 미치는 영향 등을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 위폐 문제를 이처럼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분석한 내용이 언론에 소개된 적은 없다.정부는 이 보고서와 함께 북한 위폐를 매입했다 되판 혐의로 체포되어 미국에서 재판을 받고 보석으로 풀려난 북아일랜드 노동당수 션 갈랜드에 대한 미 검찰 공소장을 국회에 보고했다. 이 공소장의 주요 내용도 게재한다.]

    전통적으로 위조지폐 제조는 전략전(戰略戰)의 도구로 이용됐다. 독립전쟁 당시 영국의 위폐 공작에 시달린 미국은 1865년 재무부 산하에 비밀검찰국(The Secret Service)을 창설해 조직적인 위폐 범죄에 대응해왔다. 제1,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는 동안에도 미국의 적대국들은 달러화(貨) 위조를 전쟁수단으로 삼았고, 이런 까닭에 지금도 국가에 의한 위폐 제조는 전쟁행위로 간주된다.

    그러나 오늘날의 위폐 제조에는 국가보다는 범죄조직이 개입하는 경우가 더 많다. 재무부 비밀검찰국에 따르면 위폐 제조에는 다양한 방법이 활용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컴퓨터로 위폐를 제작해 잉크젯 프린터로 출력한 ‘P노트’라는 형태다. 그러나 P노트는 식별하기가 비교적 쉬우며 대부분 육안으로도 구분할 수 있다. 범죄조직들이 오프셋 인쇄기를 이용해 위폐를 찍어내는 경우에는 구별이 좀더 어렵기 때문에 은행에서 쉽게 적발되지 않고 추적하기도 어렵다. 당국에서는 이들 각각의 위조지폐를 종류별로 진짜와 구분되는 ‘약점’의 유형에 따라 일련번호를 붙여 분류한다.

    지금도 여러 나라에서 고품질의 위조 달러가 생산되고 있다. 예전에는 이란, 시리아, 러시아 등이 위폐 제작국으로 주로 거론됐는데, 최근에는 나이지리아, 콜롬비아, 동유럽 국가, 북한 등이 핵심 조사대상이다. 각 생산지역마다 위폐의 품질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연간 대략 1000만달러 상당의 위조 달러화가 미국으로 침투한다는 분석이 있지만, 달러화 위폐의 대부분은 해외에서 사용된다. 2004년 전세계에서 압수된 6300만달러의 위조지폐 가운데 미국 내에서 압수된 금액은 1070만달러에 불과하다. 해외에서 제조된 위조 달러는 전통적인 오프셋 인쇄방식을 사용하는 데 비해, 미국 내에서 제조되는 달러화는 주로 디지털 프린트 방식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북한산 위폐, 세계 최고 품질

    하지만 지난 수년간 기존 양상과는 사뭇 다른, 면밀한 검토를 필요로 하는 위폐 유통 현상이 이어졌다. 바로 ‘고품질 위조 달러화’의 출현이다. 재무부에 따르면 대단히 정교한 100달러짜리 위조지폐, 흔히 ‘슈퍼노트(Supernotes)’로 알려진 C-14342 위조지폐군(群)을 제조해왔다는 혐의를 받는 대상은 북한이다. 재무부 산하 비밀검찰국 부차장인 브루스 타운젠드는 2004년 9월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금융범죄수사협회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한 바 있다.

    “비밀검찰국에서는 인타글리오(Intaglio) 정밀요판인쇄기와 활판 등을 이용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인쇄방법으로 만든 위조지폐군을 수년 동안 조사해왔다. 이들 위조지폐는 북한에서 나오고 있다. 이 위조지폐 생산에 사용된 정교한 기법을 분석해보면 그 배후에 매우 과학적이고 공학적인 지식과 함께 풍부한 자금을 갖춘 조직이 지속적으로 활동을 벌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품질이 떨어지는 다량의 위조 달러화를 만들어내는 콜롬비아와 달리 북한이 만드는 위조지폐는 품질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 북한산 위폐의 품질은 세계 최고다. 2005년 3월 비밀검찰국의 한 요원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유통되는 모든 위폐 가운데 “슈퍼노트가 진짜 지폐에 가장 가깝다”고 말했다.

    슈퍼노트는 동아시아와 북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주로 유통되는 것으로 보이며, 다른 위조지폐와 차별되는 물리적 특성을 갖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일본 적군파 테러리스트 출신 요시미 다나카는 캄보디아와 태국에서 위조 달러화를 소지하고 있다가 체포된 적이 있다. 당시 그가 지닌 위조지폐를 살펴본 일본인 화폐 전문가 요시히데 마쓰무라는 “이 슈퍼노트는 이란과 러시아에서 제작된 위폐와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이 위폐를 가리켜 ‘슈퍼K’라고 부른다. 보안상의 이유로 슈퍼달러와 진짜 달러를 구분하는 방법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너무 정교해 규모추정 불가능”

    위폐 제작을 통해 얻는 수입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추정기관과 연도에 따라 차이가 난다. 한 정보통은 위조 달러사업의 수익규모를 연간 1500만달러로 추정했다. 일반적으로 미국이 규모를 다소 작게 보는 반면 다른 나라에서는 크게 잡는 편이다. 앞장의 표는 그간 알려진 북한 관련 위조 달러화 압수 목록이다. 위조지폐는 대부분 은행 통화체계에 흘러든 이후에야 발견되기 때문에 마약처럼 선박이나 차량에 실린 채 대규모로 압수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정부 당국의 한 분석가는 유통 중인 슈퍼달러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최근 추정치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들이 위조지폐를 얼마나 만들어내는지 알 수 없다. 그들의 제조기술이 너무나 뛰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미국 당국자들이 통화에 대한 우려를 최소화하기 위해 위폐 제작의 범위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북한의 위폐 제조가 미국 경제를 위협하는 수준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적발과정의 특성상 마약이 한층 더 자극적인 언론보도 주제이기 때문에 위폐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비밀검찰국과 언론보도에 따르면 슈퍼노트가 처음 발견된 것은 1989년으로 필리핀의 한 은행원이 식별해냈다. 그러나 초기 일부 정보 당국과 언론은 슈퍼노트의 진원지를 잘못 추정한 듯하다. 1996년 미 연방감사국(GAO)이 작성한 ‘해외에서의 미국통화 위조’ 제하의 보고서에 따르면, 공화당 하원 조사위원회 산하 ‘테러 및 비정규전 특별전담반’은 1992년과 1994년 발간한 두 차례의 보고서를 통해 “외국 정부가 테러행위를 지원하기 위해 슈퍼달러로 불리는 고품질 위조지폐를 제조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무렵만 해도 이 특별전담반은 슈퍼달러를 중동 국가의 작품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1994년 ‘선데이타임스’는 미 정보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1970년대 이란 국왕이 미국산 인쇄기를 입수했고 동독 비밀경찰이 제판 기술자를 지원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이란은 10억~100억달러가량의 위폐를 만들었는데, 북한이 이 위폐 가운데 일부를 무기거래 대금으로 받았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후 비밀검찰국은 이 특별전담반의 주장에 실체적인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한 비밀검찰국 요원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중동에서 체포된 용의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추측일 뿐, 지금까지 그 지역에서 위폐공장이 발견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북한 위폐 관련 美 재무부 관리·고위 탈북자 증언 보고서
    러시아, 덴마크, 북한

    일반적으로 미국 정부는 슈퍼노트가 북한에서 수년 전부터 제작되기 시작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2003년 미국 상원의회의 청문회 자료 등을 살펴보면 이러한 판단은 정확해 보인다. 북한이 어떤 방식으로 달러화를 고품질로 위조할 수 있는 인쇄기를 입수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관련 언론보도는 북한이 냉전시기에 인쇄기를 입수했을 것이라는 견해에 무게를 실었다. 2000년대 초반 영국 언론은 고품질 슈퍼달러를 수송하고 돈세탁을 하던 한 인물을 체포했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는데, 이때 나온 보도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1980년대 초반 더블린에서 소규모 위폐제조 공작을 수행하던 IRA(아일랜드 공화군) 조직원이 공산주의자 요원의 협조를 받아 러시아 등 동유럽으로 도주했다. 냉전 분위기가 수그러들면서 미국 정부와 러시아 정부 사이의 협력이 점차 증대되자 러시아에 있던 위폐 제조 기지는 덴마크로 옮겨졌다가 결국에는 북한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후 100달러짜리 지폐가 전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범죄조직에 몸담게 된 전직 KGB(국가보안위원회) 요원들이 공작 책임을 맡아 유럽과 해외에 있는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위조지폐를 유포한다.’

    이 시기 언론보도에 따르면 공산국가로 남아 있는 북한과 그 우방들은 외교행낭 등을 이용해 위폐 제조기술과 기술자들이 러시아에서 해외로 빠져나갈 수 있는 안전한 탈출로를 제공했다. 비밀검찰국측은 필자에게 “이 무렵 IRA, 북아일랜드 노동당 등의 네트워크를 통해 관련물품이 러시아 안팎으로 쉽게 드나들 수 있었다”고 전했지만, 이른바 ‘IRA 커넥션’과 관련된 세부사항은 여전히 추측으로 남아 있다.

    북한의 위폐기술 확보 루트와 관련해 비밀검찰국이 의심하는 또다른 경로는 미 의회조사국(CRS) 라파엘 펄 연구원이 내놓은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KGB가 미국 조폐국에서 인쇄기 한 대를 훔쳐 북한에 건넸다는 것이다. 펄 연구원은 2005년 3월 의회에 제출된 보고서에서 “몇몇 언론기사는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가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 북한에 위조지폐 인쇄를 중단하라고 요청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때 거론된 인쇄시설 가운데 일부는 KGB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조폐국에서 훔쳤다가 구소련에 의해 1980년대 후반 북한으로 인도된 물건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과정을 묻자 비밀검찰국측은 “KGB가 미 조폐국의 인쇄설비를 훔치는 데 관여했다는 이야기의 실체적 근거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답했다.

    스위스제 ‘인타글리오 컬러8’ 인쇄기

    현재로서는 북한이 세계 도처에 출시되어 있는 인쇄기를 합법적으로 구입했다는 것이 가장 개연성 높은 설명으로 받아들여진다. 펄 연구원도 자신의 보고서에서 이러한 설명을 전하며 일부 위조지폐는 ‘1990년대 들어 북한이 유럽에서 구매한 장비로 인쇄한 것으로 보인다’고 기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자신들이 생산하는 위폐의 품질을 확인하기 위해 유럽에서 ‘위폐를 확인할 수 있도록 설계한 최첨단장비’를 구입했다고 한다.

    실제로 로버트 루버 전 조폐국장은 “북한 당국은 과거 20년 동안 미국이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인쇄기 모델인 스위스제 ‘인타글리오 컬러8(Intaglio color 8)’을 보유하고 있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북한도 이 장비의 사용법에 대해 교육받을 기술자를 스위스 로잔으로 보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루버 전 국장은 북한의 위폐 생산자들에겐 달러를 정확하게 위조하는 데 필요한 고품질의 종이가 부족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해왔다(이 종이는 면과 리넨이 75대 25 비율로 혼합된 것으로, 빨간색과 파란색 섬유질이 함유되어 있다). 1996년 그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북한은 1달러짜리 지폐를 표백해 재인쇄하는 방식을 채택해야 했을 것이다.

    “권종(券種)은 중요하지 않았다”

    몇몇 탈북자는 실제로 이러한 종류의 작업을 수행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1996년 북한의 전직 고위 정보 당국자이자 아프리카 주재 북한 외교관 출신인 김정민은 미국 통화를 찍기 위해 필요한 종이를 찾으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대신 그는 “1달러짜리 지폐를 다량 입수해 잉크를 지우고 표백했다…지폐의 크기가 중요했지 권종(券種)은 중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후 북한의 인쇄기법은 ‘역공학(reverse engineering)’으로 인해 더욱 정교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어떤 방식으로 낮은 권종을 표백해 100달러짜리 지폐로 다시 인쇄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확인되지 않았다.

    위폐 제작에 관한 정보가 일반 북한 주민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알려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탈북자들의 증언에서도 기존의 보고를 뒷받침하는 내용을 찾을 수 있다. 다만 인쇄가 이뤄지는 장소나 방식에 대해서는 몇 가지 증언이 엇갈린다.

    예를 들어 강성산 전 북한 총리의 사위라고 주장하는 탈북자 강명도는 평양 중심가에 있는 ‘101호 연락소’에서 연간 800만~1000만달러 규모의 위조 달러가 인쇄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쇄공장에서 100달러짜리를 약 1000장씩 샘소나이트 가방에 담아 내보내는데, 이 가방은 북한 외교관들에게 인도되고 이들이 해외에서 유통시키도록 한다…외교관이 외국 통화를 얼마나 손에 넣을 수 있는가는 당에 대한 충성도를 시험하는 척도로 활용된다”고 증언했다.

    반면 다른 탈북자들은 위조지폐를 만들어내는 장소가 평산 시내에 있는 ‘62호 인쇄’공장이라고 말한다. 위폐 제조가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됐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 북한 사회안전부에서 일했다는 탈북자 이모씨는 이 기관에서 1981년에 평안남도 평성에 ‘평양상표인쇄소(혹은 62호 공장)’라는 국립조폐소를 건설했다고 말한다. 이씨는 1996년 러시아에 있는 북한 무역회사 지사에서 일하다 망명했는데, 그는 “사회안전부 관리의 감시 아래 약 700명의 노동자가 위조 달러화를 제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노동당 재정회계부서가 명령”

    또 다른 탈북자 김학은 자신과 30명의 과학자가 이미 1984년에 조선노동당 재정회계부의 명령을 받고 평성에 있는 조폐소에서 위조지폐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탈북자들은 평성에서의 생산활동은 이보다 훨씬 뒤의 일이라고 말한다. 북한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여겨지는 위조지폐가 처음 발견된 시점이 1989년이라는 비밀검찰국의 설명을 전하자, 한 탈북자는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62호 공장에 사회안전부 대좌가 책임자로 부임한 것이 1990년이고, 1989년은 이 건물에 장비를 설치하던 때였다는 것이다.

    북한 위폐 관련 美 재무부 관리·고위 탈북자 증언 보고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26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달러 위조 문제에 대해 “타협은 없다”고 밝혔다.

    북한산 위폐의 정확한 유통경로와 수량 또한 분명하게 확인되지는 않았다. 2005년 5월 필자가 인터뷰한 한 탈북자는 북한이 1995~96년 무렵부터 러시아에서 이 지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05년 3월 미 CRS 보고서에 따르면 또 다른 탈북자는 북한이 중동에서 무기제조 기술을 수입하면서 지급한 대금에 위조된 지폐를 일부 포함시켰을 수 있다고 시사했다.

    2005년 4월 필자가 만난 한 탈북여성은 “1992년에 무기판매를 담당하는 당중앙위원회 99호실에서 일하던 한 친구가 자신들이 여행을 다닐 때마다 위조지폐를 소지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전했다. 이러한 전언은 2004년 6월 한 탈북자가 “정부관리나 외교관들이 동남아시아를 여행할 때 진짜 지폐와 위조지폐를 50대 50의 비율로 섞어서 가지고 다니며 유통시킨다”고 증언한 내용과 일치한다.

    필자가 인터뷰한 또 다른 탈북자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이전에 러시아에서 위폐소지 혐의로 체포된 바 있는 한 요원이 1996년에 몽골에서 다시 체포되자 위조지폐 디자인의 결점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이에 따라 결점을 보완하는 작업이 이뤄졌다고 한다. 당시 작업을 지휘한 위폐공장 감독관은 성공적으로 일을 수행한 보상으로 1998년 소장으로 진급했고,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는 등 이례적으로 승진했다는 것.

    비밀검찰국에 따르면 오늘날 슈퍼노트는 ‘상당한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이러한 변화는 매우 미세해서 육안으로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한다. 북한이 엔화와 유로화도 위조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한 탈북자는 “김정일이 엔화를 위조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나 이후 실행됐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필자에게 북한과 관련된 위조 엔화를 압수한 기록은 없다고 말했다.

    마카오 카지노가 北 위폐 유통거점

    북한 위조지폐 조사 담당자들은 “위폐의 제조와 유통에 관한 탈북자들의 증언을 입증할 만한 구체적인 자료도 있다”고 말한다. 1990년대 중반 위조지폐와 관련해 체포된 북한 관리의 숫자를 통계적으로 분석해보면 탈북자들의 증언과 일치하는 일련의 정황증거를 확인할 수 있다. 존재 자체는 알려졌으나 아직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증거 가운데 1998년 미 ERRI(위기대응조사연구소)의 일일정보보고서가 언급한 ‘인쇄공장의 비디오테이프로 알려진 자료’가 있다. 또한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이 마카오 소재 카지노에서 위조 달러화를 사용하는 현장을 촬영한 비디오테이프를 봤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의 무역상사 직원이 위조달러화를 소지하고 있다가 체포된 사건이 거듭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카오의 카지노는 위조지폐 유통의 중요한 연결고리였을(혹은 현재도) 개연성이 있다. 북한 조광무역 사장인 박자병은 마카오에서 위조지폐 관련 혐의로 기소된 적이 있고, 부사장인 한명철은 노동당 39호실과 연결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북한 고위관리들이 무역회사의 운영을 감독하기 위해 자주 마카오를 오가게 되면서 카지노에서 이뤄지는 고액의 현금이동을 위폐유통 창구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마카오는 북한의 다양한 비자금 조성루트가 집중된 곳이다. 조광무역 사장 박자병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김대중 대통령측으로부터 자금을 전달받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미 CRS의 2005년 2월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현대그룹 계열사들은 외환은행과 국가정보원의 도움을 받아 노동당 39호실의 현장조직인 대성무역이 관리하는 마카오, 싱가포르, 오스트리아의 계좌로 송금했으며, 미 정부 당국자들은 2003년 김대중 전 대통령측이 총 5억달러 규모라고 인정한 이 비자금이 39호실 관리계좌로 들어갔다고 믿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대금이 북한 외화수입의 30%를 차지한다고 추정하며,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대성무역이 무기구매를 담당했다는 정보보고는 이 자금이 무기구입에 쓰인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경제엔 영향 미미”

    199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정부는 북한이 달러화를 위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1990년대 중반 비밀검찰국 요원인 데니스 린치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북한에 고품질 위조 달러화를 만들어내는 공장이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슈퍼노트에 대한 조사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됨에 따라 당국 사이에 점차 동의가 이뤄지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정부 관계자들 가운데 북한이 슈퍼노트의 생산지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설령 북한이 미국 경제를 약화시키거나 위협하려는 의도로 위폐를 생산해왔다고 해도 실제로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미국 정부관리는 드물다는 점이다.

    2005년 3월 필자가 접촉한 비밀검찰국 관계자는 고품질의 위조 달러화가 다른 나라의 투자자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총 유통규모와 비교하면 미미한 금액인 10만달러 규모의 위폐를 압수한다 해도 경제규모가 작은 국가에서는 자국이 갖고 있는 달러화 보유고 중 많은 부분이 위폐로 판명될까 염려해 보유고를 재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위폐제조가 “미국의 경제에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북한이 달러화의 안정성을 위협할 만한 위폐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질이 너무 좋아 찾아내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일 뿐이지, 양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브루스 타운젠드 비밀검찰국 부국장은 2004년 4월 미 하원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한 바 있다.

    “(북한이) 한국 정부가 추정하는 최고 속도로 위폐를 찍어왔다고 가정해도, 이를 모두 합쳐봐야 현재 유통되는 위조달러화의 1% 미만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는 위조 미국통화 공급총량 6700억달러와 비교해보면 극히 미미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 위폐 유통 혐의자에 대한 미국 검찰 공소장

    “다량의 슈퍼노트가 북한 정부 비호 아래 제작, 유통”
    북아일랜드 노동당수 션 갈랜드의 체포는 북한이 유럽에서 100달러 위폐(슈퍼노트)를 진짜 달러로 교환하고 있다는 의혹을 증폭시킨 사건이다. 미국과 영국 당국은 2005년 5월 션 갈랜드가 러시아 모스크바 주재 북한대사관과 위폐 거래를 했음을 입증하는 팩스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션 갈랜드는 체포된 뒤 보석으로 풀려나 아일랜드로 도주했다. 아래에 요약해 소개하는 미국 검찰 공소장에도 션 갈랜드와 북한 당국과의 커넥션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지는 않다.(편집자)

    피고인 션 갈랜드는 아일랜드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아일랜드 더블린 인근에 거주하고 있으며, 더블린에 위치한 GCG 커뮤니케이션 인터내셔널이라고 하는 국제 비즈니스 컨설팅 회사의 이사였다.1989년경부터 시작, 이 사건 공소기간 전체에 걸쳐서 고품질의 100달러짜리 위조지폐가 전세계적으로 유통되고 있음이 발견됐다. 고품질로 말미암아 훈련받지 않은 사람은 위조지폐를 발견해내기가 어렵다. 미국 비밀검찰국은 이 위조지폐를 ‘C-14342’로 명명하였으며 ‘슈퍼노트’ 혹은 ‘슈퍼달러’로 알려지게 됐다. 슈퍼노트와 같은 위조지폐가 이것이 위조지폐임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판매되는 경우, 그 판매가는 통화 액면가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다량의 슈퍼노트가 북한 정부의 비호 아래 북한에서 제작됐다. 외면상 정부 관리로 행세하는 북한 주민을 포함한 개인들이 다량의 슈퍼노트 수송, 전달, 판매에 개입했다.

    피고인 션 갈랜드는 아일랜드 노동당(WP) 당수다. WP의 공식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션 갈랜드는 구소련이나 그 후신인 러시아 등을 포함해서 수많은 나라를 빈번하게 여행하게 됐고, 이런 국가와 북한을 포함한 기타 국가의 관리들과 만났을 것이다.

    ‘구 IRA’라고도 하는 공식 아일랜드공화국군(OIRA)은 아일랜드공화국군이 분열된 이후인 1969년에 설립됐으며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에 있는 금지된 조직이다. 피고인 션 갈랜드는 OIRA의 최고책임자였다. WP는 OIRA와 관련이 있는 정당이다.

    1990년대 초반, 슈퍼노트가 아일랜드에 나돌기 시작했다. 이후 아일랜드에 있는 은행과 환전소에서는 100달러짜리 지폐의 환전을 거부했다.

    1996년 미국은 새롭게 디자인한 100달러 지폐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새 지폐의 특징은 지폐 중앙의 벤저민 프랭클린 초상의 크기가 더 커졌다는 것이다. 그후에 구권(舊券)은 보통 ‘Small head(작은 머리)’로 불리게 되었고 신권은 ‘Big head(큰 머리)’로 불리게 되었다.

    피고인 크리스토퍼 존 코코란, 페렌스 실코크, 마크 어들리 등은 피고인 데이비드 레빈을 다량의 슈퍼노트를 구입하고 수송을 계획할 수 있는 인물로 파악해 끌어들였으며, 슈퍼노트 거래를 주선할 목적으로 그와 그의 공범자와 접촉했다. 슈퍼노트를 구입하고 수송하기 위해 피고인 데이비드 레빈은 라트비아에 있는 공범자인 ‘H.J’를 통해 자금과 전달책을 확보했다.

    피고인 션 갈랜드는 신권인 ‘큰 머리’ 슈퍼노트를 포함한 슈퍼노트 거래를 알선하기 위해 북한 주민과 만났다. 1999년 6월25일경에 피고인 션 갈랜드는 러시아 모스크바로 건너가 그곳에서 북한 주민을 만났다.

    2000년 6월8일경 영국에서 피고인 페렌스 실코크는 아일랜드에 있는 피고인 크리스토퍼 존 코코란을 통해 피고인 션 갈랜드에게 전달하기 위해 전달책에게 9만8000달러를 줬다. 2000년 6월9일경 영국에서 피고인 데이비드 레빈은 자신이 취급하고 있는 돈이 위조지폐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경찰 당국에 거짓 진술했다. 2000년 7월7일경 영국에서 피고인 데이비드 레빈은 자신이 션 갈랜드 슈퍼노트 조직으로부터 입수한 7만달러가량의 슈퍼노트의 행방을 모스크바에서 확인했다고 했으며, 이후에 이 슈퍼노트는 사법당국에 의해 발견됐다.

    -컬럼비아 특별구 연방지방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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