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호

美 국무부 북한 붕괴 대비 비공개 프로젝트 ‘The Day After’

민사작전, 과도정부 수립, 한국 주도권 인정 폭 등 논의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6-03-03 13: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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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월 초순 워싱턴 싱크탱크의 저명한 북한 전문가 두 사람이 서울을 방문했다. 이들은 정부 산하 주요 연구소를 방문해 참석자를 엄중히 제한한 비공개 워크숍을 열고, 미 국무부의 제안에 따라 최근 진행하고 있다는 북한 붕괴 대비 프로젝트 공동연구를 제의했다. 미국이 현재 시점에서 북한 붕괴 이후를 검토하는 까닭은 무엇이며, 프로젝트 워크숍에서는 과연 어떠한 논의가 오갔을까.
    워크숍을 주도한 미국측 전문가는 조엘 위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국제안보분야 선임연구원과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선임연구원. 모두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워크숍에서 미 국무부의 제안을 받아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프로젝트를 자세히 소개하고 주요내용을 토의했다. 북한 붕괴 이후 한국과 미국 등 주변국들의 대응방안을 사전에 마련하기 위해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의 제목은 ‘The Day After’였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붕괴과정 자체’가 아니라 ‘붕괴 이후 사태를 관리하고 재건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에 초점을 맞춘 것이어서 의미심장하다. 붕괴 이후 필요한 방안을 군사·정치·경제·인도적 지원 분야로 나누고, 이라크와 구(舊)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 이뤄진 국가 재건과정과 비교해 예상되는 문제점과 사전준비 요소를 점검하는 ‘실무계획’의 성격이 강하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도 유사한 비공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5년 초 시작되어 완성단계에 이른 것으로 전해진 이 프로젝트는 미국의 카네기재단(The Carnegie Endowment)과 중국의 유력 연구기관이 공동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프로젝트에도 미 국무부가 관여하고 있다는 전언을 감안하면, 최근 미 행정부는 워싱턴의 싱크탱크를 통해 동북아 각국의 핵심 연구기관과 공동으로 북한 붕괴에 대비한 세부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는다.

    물론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해 이들 프로젝트에 각국 정부가 공식 참여하고 있지는 않다. 2월 방한한 ‘The Day After’ 프로젝트 관계자들 또한 정부 부처는 방문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이들은 워크숍을 진행한 국책연구기관에 이 프로젝트에 대한 공동연구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프로젝트 자체가 최종 완성된 것은 아니므로 워크숍 또한 예상되는 주요 쟁점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점검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그러나 워싱턴이 ‘북한 붕괴’라는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그로 인해 파생하는 변수를 어떻게 상정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는 것. 향후 프로젝트는 이들 쟁점과 변수를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참석자들의 말을 종합 정리한 ‘The Day After’ 프로젝트 워크숍의 개괄적인 논의 내용이다.



    북한 붕괴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할 수 있다. 폭력사태를 수반하는지 아닌지, 외부의 간섭에 의한 것인지 내부 요인에 의한 것인지 등이 주요 변수가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붕괴 시나리오는 ▲외부 상황변화에 따른 붕괴 ▲식량배급체계 왜곡 등으로 인한 자체 붕괴 ▲군사 쿠데타로 인한 체제전복 ▲미국 등의 군사공격에 따른 붕괴로 요약할 수 있다. 각 시나리오에 따라 이후 전개될 양상은 크게 다르며, 주변국들이 대비해야 할 사항도 편차를 보인다.

    붕괴 이후 발생하는 문제는 군사요소를 포함한 안보 관련 요소, 정치·국제법적 요소, 경제적 요소, 인도적 지원 관련 요소 등 네 가지 차원으로 나눌 수 있다. 앞서의 네 가지 시나리오와 이들 네 가지 요소를 교직하면 검토해야 할 쟁점들을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안보관련 요소에는 붕괴 직후 가장 먼저 떠오를 쟁점이 얽혀 있다. 고도 병영(兵營)국가라는 북한의 특징을 감안할 때, 붕괴 조짐이 보이는 단계에서부터 주변국은 북한의 무기체계를 통제하기 위해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핵무기 등 북한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량살상무기(WMD)가 국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막는 일을 첫째 목표로 삼을 것이다(이러한 사전개입을 둘러싸고 한미 간에 이견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붕괴 이후에는 북한 전역의 군사시설을 접수하고 인민군의 무장을 해제하는 작업이 첫 임무가 된다. 지하요새화한 북한 군사시설의 특성상 사전에 위치정보를 확보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중국 등 비교적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국가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중장기적으로는 WMD를 해체하고 새로운 군대를 조직하거나 한국군에 통합하는 방안 등이 과제로 남는다.

    이라크에서 이뤄진 것처럼 민사작전을 통해 치안을 안정시키는 작업도 필수적이다. 2000만이 넘는 북한 주민에 대해 민사작전을 수행하려면 수십만 규모의 병력이 투입돼야 할 텐데, 현실적으로 이를 조달할 수 있을지 검토해야 한다. 특히 기존 인민군 일부가 게릴라화한다면 투입돼야 할 군사 자산의 양은 크게 증가한다.

    난민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것도 민사작전의 몫이다. 이를 위해 한국과 미국 등은 사전에 특화된 민사부대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 시나리오에 따라서는 추가 소요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기존 북한 정권의 책임자들을 추적하는 작업도 포함될 수 있다. 민사작전이 일정 궤도에 오른 후에는 새로운 경찰조직을 만들어 훈련하는 작업이 이어질 것이다.

    한국의 주도권, 인정할 것인가

    다음으로 살펴볼 요소는 정치적·국제법적 요소다. 이 분야의 첫 쟁점은 한국의 권한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이냐에 관한 것이다. 사태 초기부터 한국은 자국 헌법 조항을 근거로 북한지역에 대한 주도적 통제권을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국이 단독으로 상황을 관리하는 것은 여건상 불가능한 만큼 주변국들의 개입과 조력이 필수적이다. 한국의 권리에 대해 국제법적인 이견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중국의 경우 미국의 맹방인 한국과 국경을 맞대는 상황이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딜레마를 균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핵심 쟁점이다.

    다음으로는 과도정부 구성이 과제로 등장할 공산이 크다. 지방의 행정체계를 조직하고 인원을 확보하는 작업과 중앙의 과도정부를 만드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된다. 이 작업의 국제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가 필수적이다. 과도 행정조직에 이전 북한 정부 관계자들의 참여를 허용할지도 쟁점이 될 수 있다.

    주변국 군대가 북한에 진주하는 것에 대해서도 유엔 안보리의 승인은 필수적이다. 이들 부대의 지휘통제권을 어느 나라가 주도적으로 행사하느냐도 쟁점이 될 수 있다. 한국이 사태의 주도권 확보와 통일정부 구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승인을 위해 얼마만큼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냐가 주요 변수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경제적 요소다. 교통, 통신, 상하수도, 산업시설 등 하드웨어적 요소를 관리하는 작업과 상품 및 화폐 유통, 외환관리, 재정 등 소프트웨어적 요소를 유지·발전시키는 작업을 포괄한다. 북한 경제 시스템의 현재 수준이 높지 않으므로 ‘관리’를 위한 초기 부담은 크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북한을 정상체제로 만드는 데는 많은 자산이 투입돼야 한다.

    거시경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작업이 우선 필요하다. 북한의 기존 제도 가운데 어떤 부분을 활용하고 어떤 부분을 폐기할 것인지 선택하는 작업이 첫 번째다. 북한의 대외부채를 한국이 승계할 것인지도 쟁점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시장을 활성화하고 가격결정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과정도 만만치 않은 과제다.

    난민 막으려면 식량 해결해야

    사회간접자본을 복구하거나 신규로 확충하는 작업에는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한국의 경제규모를 감안할 때 이를 단독으로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이 부분은 붕괴 시나리오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데, 외부의 무력공격이나 군사 내전에 의한 붕괴일 경우 비용은 급격히 증가할 것이다. 북한 경제재건을 위해 국제금융기구가 제공할 수 있는 차관의 종류와 액수 등을 사전에 점검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개발 로드맵을 만들어놔야 한다. 이와는 별도로 북한 붕괴가 한국 경제의 대외 신인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준비가 필요하다.

    끝으로 살펴볼 것은 인도적 지원 부분이다. 북한이 어떤 시나리오로 붕괴하느냐에 따라 국제사회의 반응은 크게 엇갈릴 것이다. 무력을 동반한 급격한 붕괴가 이뤄질 경우 난민 발생은 필연적이고, 이를 관리하는 데는 군사적 자산을 투입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난민의 수를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북한 내부를 떠도는 난민이 50만, 한국으로 넘어오는 난민이 20만, 중국으로 가는 난민이 수천명 규모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주변국은 탈출난민을 얼마나, 어떤 절차를 거쳐 수용할 것인지 미리 결정해야 한다. 중국의 경우 국경지역 불안정을 우려해 통제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북한 지역이 빠른 시일 내에 정치적으로 안정될 경우 난민의 해외탈출은 상당부분 줄어들 것이다.

    북한 내부를 떠도는 난민 문제를 살펴보자. 외국의 사례를 보면 대부분의 난민은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거주지를 이탈한다. 따라서 초기에 전국적인 식량공급 시스템을 만들어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를 위해서는 유엔 PKO(평화유지군)의 활동도 필요하지만, WFP(세계식량계획) 같은 국제기구나 NGO단체의 조력이 필수적이다. 이들 사이의 유기적인 협조와 효율적인 관계설정은 성공적인 지원의 관건이 될 것이다.

    중국 개입에 대한 사전 공감대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 붕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단계별로 한국과 미국이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 특히 WMD에 사활적 이해를 갖는 미국과, 통일정부 수립이 핵심 과제인 한국이 충분한 사전협의를 통해 대응방안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북한 급변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한미동맹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또한 국가간의 불필요한 오해로 상황이 왜곡되는 것을 막으려면 중국이 어느 수준으로 개입하는 것이 적정한지 사전에 공감대를 만들어둘 필요가 있다.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를 가정해도 북한의 붕괴에는 심각한 문제들이 뒤따른다. 주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잠재적 마찰이 불가피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 등이 현재 갖고 있는 대비계획은 주요 쟁점을 과소평가한 측면이 있으므로 시나리오별 시뮬레이션을 통해 검증할 필요가 있다. 다만 대비계획을 수립하는 일 자체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만큼, 정부간 공개토론은 불가능할 것이다. 정부 산하기관과 연구기관 사이의 비공식적 토론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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