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호

윤상림 ‘형님·동생’들이 증언하는 ‘윤상림 사건’ 막전막후

“의원회관 여권 실세 10여 명 방 들락날락…‘회장님 오셨습니까’ 극진한 대접”

  • 한상진 일요신문 기자 hsj1102@hanmail.net

    입력2006-03-03 15:0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판·검사에 봉투 돌리고 접대하는 현장 30차례 동석”
    • “윤씨와 절친한 경찰 고위직, 너무 많아 셀 수도 없다”
    • 2002년 대선 때는 이회창 캠프 지원설
    • 부장검사급 이상, 단독판사 위주로 챙겨
    • 검찰, “조사하기가 무서울 정도”
    윤상림 ‘형님·동생’들이 증언하는 ‘윤상림 사건’ 막전막후

    최광식 전 경찰청 차장이 지난 1월23일 경찰청에서 윤상림씨와의 돈거래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피고인(윤상림씨) 같은 사람에 의해 법조인이 지켜온 가치가 무너진 것을 보면서 화가 치밀어 오르고 분노마저 일었습니다.

    피고인은 사업가들을 상대로 약점을 잡아 거액을 뜯어내는 등 오랜 기간에 걸쳐 수많은 범행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범행의 상당 부분을 모른다고 하거나 부인하고 있습니다.

    공소사실이 피고인의 자백이 아닌 수표계좌 추적 등 객관적인 방법으로 밝혀진 만큼 향후 재판에서 하나하나 입증하겠습니다.”

    지난 1월24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문종렬 검사는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에서 열린 법조 브로커 윤상림씨에 대한 첫 재판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있는 윤씨의 자세는 꼿꼿하고 당당했다. 그는 직업을 묻는 판사의 질문에 “사업가”라고 밝혔다.

    윤상림 비리의혹 사건이 세간에 회자된 지도 넉 달째다. 윤씨는 지난해 11월20일 김포공항에서 골프채를 든 채 체포됐다. 윤씨는 구속됐을 당시만 해도 단순 공갈범 정도로 여겨졌다. 비록 현대건설에서 9억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 있었지만, ‘그저 그런’ 브로커로 보였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의혹으로 분위기는 반전됐다. 급기야 ‘단군 이래 최대 브로커’니 ‘거물 법조 브로커’니 하는 수식어가 그의 이름 앞에 붙기 시작했다.

    “끝이 어딘지 모른다”

    지난 석 달간 검찰은 60명이 넘는 수사인력을 동원했다. 검찰은 28건의 범죄혐의로 윤씨를 기소해놓은 상태다(2월11일 현재). 그러나 검찰은 “윤씨에 대한 수사의 끝이 어디인지 우리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동안 밝혀진 것만도 윤씨의 활약상(?)은 대단했다. 청와대와 총리실이 들썩거렸다. 경찰에선 총책임자(최광식 당시 경찰청 차장)가 물러났고 그의 수행비서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현직 판사 한 명도 옷을 벗었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군대 심지어 검찰 등 권부(權府)의 어느 하나도 윤씨로부터 자유로운 곳이 없을 정도다.

    이 때문에 윤상림 비리의혹은 단순 형사사건의 성격을 넘어 고도의 정치적 사건으로 변했다. 한나라당은 이 사건을, 여권을 압박할 커다란 호재로 활용할 계획이다. 감사원의 지방자치단체 비리 감사결과 발표는 5월3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에 부담이 되고 있다. 맞불놓기 차원에서라도 한나라당은 윤상림 사건 파헤치기에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의 경우 윤상림씨가 김대중 정부 시절의 민주당 인사들과 교분을 쌓은 점이 부담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고 있는 윤상림씨의 비리의혹은 대부분 현 정부 인사들과 관련되어 있다고 판단, 한나라당과 공조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한화갑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윤씨로부터 자유로운 것으로 안다”고 했다. 다음은 그의 설명이다.

    “호남 출신 윤상림씨는 DJ정부 때도 동향 권력자들과 친분을 쌓으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주로 청와대, 검찰, 경찰, 군 등 사정기관 관련 인사들이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DJ정부 때의 호남 실세 인사 대부분이 공직에서 물러나거나 힘이 급격히 빠졌다.”

    사안에 따라 열린우리당, 한나라당과 전략적 공조를 취해온 민노당도 윤상림 사건에 대해선 진보세력 내의 도덕적 선명성을 부각할 기회로 보고 한나라당과 손을 잡았다. 그러나 민주당, 민노당은 그다지 적극적인 편은 아니다.

    열린우리당은 윤씨 사건과 한나라당의 관련성을 따져 맞대응하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윤씨 사건이 정치권으로 번지는 것을 적극 차단하는 눈치다. ‘의혹’과 ‘설’만 무성할 뿐 ‘확인된 사실’로는 사안이 심각하지 않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특검 대신 국정조사 택한 까닭

    쟁점은 결국 한나라당이 윤상림 사건을 어떻게 요리할 것이냐의 문제다. 국정조사를 하는 방법, 특검제를 하는 방법, 국정조사와 특검제를 함께 하는 방법이 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첫째 방법을 택했다.

    2월9일 한나라당을 포함한 야4당은 윤씨 사건을 ‘참여정부의 최대 권력비리 게이트’로 규정, 국정조사를 하기로 합의했다.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는 “윤상림 게이트가 이용호 게이트보다 집권층 관련자가 훨씬 많다고 한다. 노 정권 도덕성의 끝이 어딘지 윤상림 게이트를 통해 드러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선택한 ‘메뉴’는 과연 적절했을까. 한나라당 한 의원은 “특검제가 더 나았다”고 말했다. “드러나지 않은 핵심 자료는 검찰, 경찰, 행정부에 모두 있다. 이들 기관이 국회 국정조사에 적극 협조해 민감한 자료를 어느 정도까지 내놓을지 의문이다. 반면 특별검사는 이러한 자료를 모두 입수해 수사를 벌여 나갈 수 있다. 윤상림 사건의 진상을 정말 제대로 파헤치려면 반드시 특검제를 실시해야 한다.”

    한나라당 지도부의 한 관계자도 이런 견해엔 동의했다. 그러나 그는 현실적 문제를 들고 나왔다.

    “권력형 비리인 윤씨 의혹을 대다수 국민은 아직 잘 모른다. 우선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그런데 특검제는 수사결과가 나오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여론에 실상을 알리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다고 보고 우선 국정조사를 택한 것이다.”

    조사단장을 맡은 검사 출신 주성영 의원은 “뭔가 보여주겠다”며 칼을 갈고 있다. 주 의원은 최근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한나라당은 청와대 관련설에 대해서도 상당부분 증거를 확보한 상태”라고 말했다. “현 정부 최고위층 인사와의 관련 여부도 반드시 밝혀낼 것”이라고 했다.

    아직까지는 윤씨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2003년 12월 한 차례 찾아갔다는 사실 외에는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분명 뭔가 더 있다”는 의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한나라당이 오랜만에 현 정부를 상대로 칼을 빼든 시도는 일단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오 원내대표 취임 이후 사학법 파문으로 공전된 국회가 자연스럽게 정상화됐다. 그 직후 법조 브로커 윤상림 사건 공세 및 장관 인사청문회 검증으로 국회를 ‘야당판’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 원내대표 본인도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그는 최근 “당 지지율도 올랐다”며 “박근혜 대표를 위하는 게 당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한 달 동안 구원투수로서 소임을 다했다”고 말했다.

    “기호 1번 이회창입니다”

    그러나 2002년 대선 당시 윤씨의 행적이 자칫 한나라당에 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전국구 브로커’인 윤씨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선거캠프였던 일명 ‘부국팀’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당시 윤씨가 이회창 후보측 인사들과 가까웠다는 사실은 윤씨 주변 인사들을 통해 확인된다. 윤씨의 한 측근인사는 “지난 대선 때 윤씨에게 전화를 걸면 ‘안녕하세요. 기호1번 이회창입니다’라는 통화연결음이 나왔다. 내가 이상해서 ‘왜 그 쪽 일을 하냐’고 물었더니 윤씨가 ‘아무래도 이회창 후보가 당선될 것 같아 미리 보험을 들어놨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는 또 “당시 윤씨가 이 후보의 부국팀 핵심 멤버들과 같이 다니면서 여러 일을 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는 모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윤상림 사건은 현 여권의 핵심에 타격을 줄 수도 있는 소재가 더 많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윤씨와 여권과의 관련 의혹은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윤씨가 현 권부의 누구와 어느 정도 자주 접촉하면서 어떤 일을 하고자 했는지의 문제, 전병헌 대변인과의 금전거래 등 열린우리당 인사들과의 관련 의혹, 각종 이권사업에 개입한 행위와, 정치권 연관성 및 정치자금 문제, 경찰·검찰·군 등 사정기관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 전·현직 검찰 관계자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의 문제, 내연관계에 있던 ‘장군 잡는 여경’ 강순덕 경위 등 경찰과의 유착 의혹….

    윤씨의 주변인사 중 한 사람인 종교인 오모씨는 “2001~02년쯤 윤씨를 따라서 국회 의원회관에 자주 갔다. 윤씨는 그때마다 많게는 10여 개 방을 찾아 의원, 보좌관들과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곤 했다. 주로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곳은 L·K·J·Y·H의원의 방이다. 이중엔 현 여권 실세도 많다. 갈 때마다 의원실에 있던 사람들이 ‘회장님 오셨습니까’라며 극진히 맞아주는 걸 보면서 ‘이 사람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윤상림 사건을 진화하기 위해 방화벽을 치고 있는 열린우리당에서 최근 자중지란이 벌어졌다. 2월8일 열린우리당 문석호 의원은 정상명 검찰총장과 윤상림씨와의 연루 의혹을 보도자료로 배포했다. 검찰은 1월26일 당비(黨費) 대납 의혹과 관련 문석호 의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지난 수개월간 윤상림씨 주변인사 수십 명과 인터뷰했다. 이들이 전하는 윤씨의 행적은 한 편의 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윤씨가 관리해온 실세 인맥은 상상 이상이었다. 오랫동안 그와 동업했던 한 인사는 윤씨에 대해 “도박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인사는 윤씨의 돈세탁을 도와주고 사례금을 받았다고 했다. 이들 중에는 군 장성 출신, 검사장 출신 변호사, 전직 국회의원도 있다.

    그런데 이들은 윤씨에 대해 하나같이 혀를 차며 악담을 쏟아냈다. 이들 대부분은 윤씨 구속 직전까지 윤씨와 ‘가까운 지인’ 혹은 ‘형님·동생’으로 만나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묘한’ 관계를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윤상림은 가까이해서도, 멀리해서도 안 되는 사람이다.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이 이런 생각으로 그를 만난 것으로 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업가 김모씨는 1980년대 중반 윤씨를 운전기사로 고용했고 최근까지 윤씨와 교류해왔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 윤씨는 말과 행동이 몹시 거칠었다”고 했다. 1970년대 말부터 거의 20년 가까이 그와 형·동생으로 지낸 전직 경찰 고위간부는 “윤상림은 요괴다”라고 단언했다.

    “세운상가서 경찰 고위급 인맥 쌓아”

    전남 보성이 고향인 윤상림씨는 1978년 서울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석유·얼음장사를 했다. 그를 세운상가로 데려온 사람은 당시 이곳에서 청소년 선도사업을 하며 체육관(세운헬스클럽)을 운영하던 서재필씨(현재 목사)다. 서씨는 “1978년 평소 잘 아는 남대문경찰서 양모 보안과장이 ‘성실한 사람이 하나 있으니 도와주라’며 윤씨를 소개했다. 그래서 선도사업의 일환으로 20대의 윤상림을 처음 만났다”고 회고했다.

    윤씨는 세운상가에서 ‘윤사또’라는 별명을 얻었다. 누군가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김없이 찾아와 해결해줬다는 것이다. 윤씨는 이곳에서 나이트클럽 ‘아마존’을 운영하던 홍모씨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윤씨는 당시 군 위문공연을 다니며 군내에 상당한 인맥을 갖고 있던 홍씨를 따라다니며 군 고위급과 접촉하게 됐다. 윤씨가 처음으로 권력자들과 인연을 맺는 순간이었다.

    홍씨는 “당시 윤씨는 나를 따라다니며 제5공화국의 핵심 멤버들, 특히 하나회 멤버들과 만나 본격적으로 인맥을 쌓기 시작했다. 군 행사가 있을 때면 나와 함께 소도 잡고 돼지도 잡아 이들의 환심을 샀다. 윤씨는 이후 이들과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윤씨는 1992년 13대 총선 당시 5공 실세인 군 출신 허삼수씨의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 한 달 넘게 부산에 머문 것으로 전해진다.

    1980년대 초 30대 초반이던 윤씨는 세운상가에서 도박과 게임기 사업, 석유장사로 큰돈을 벌어 사업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그가 만난 군 출신 인사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백모 전 장군, C 전 의원, K 전 국방장관, 김모 전 공기업 사장, 윤모 전 공기업 회장이 당시 만나던 사람들이다.

    홍씨는 “C 전 의원과는 그가 춘천에서 2군단장을 할 때부터 아주 친했다. 우리나라 별(장성)들 중에 윤상림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의 경찰 인맥도 세운상가 시절부터 시작됐다. 최근 윤씨와 수천만원이 넘는 금전거래를 한 사실이 밝혀진 최광식 경찰청 전 차장도 “8∼9년 전 선배 경찰간부로부터 윤씨를 소개받고 친분을 이어왔다”고 했다.

    당시 세운상가가 있는 중구와 종로구는 서울의 중심이었다. 그러다 보니 능력있는 경찰간부들은 대부분 이곳을 거쳐 갔다. “1980년대 초 을지로 파출소장은 어지간한 서울 변두리 경찰서장보다도 힘이 셌다”는 전직 경찰 고위간부의 말은 이를 뒷받침한다.

    국가정보원 2차장을 지낸 바 있는 L씨, C·L 전 경찰청장, L 전 경찰청 차장이 이 때부터 윤씨와 가까웠던 사람들로 알려졌다.

    이들보다는 알게 된 시점이 다소 늦지만 경찰 출신의 현 여권 고위 인사도 윤씨와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1990년대 초 윤씨와 사업관계로 친분을 맺었던 양모씨는 “1995~96년에 윤씨를 만났는데, 당시 그와 가장 가까운 경찰 인사는 현 여권 실세인 K씨였다”고 전했다. 또 윤씨와 먼 친척이면서 최근까지 가까운 사이였던 정모씨는 “전 경찰청 차장 L씨를 윤씨로부터 소개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윤상림 ‘형님·동생’들이 증언하는 ‘윤상림 사건’ 막전막후

    윤상림씨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지방의 한 호텔.

    “관리한 판·검사 100여 명”

    지방경찰청장을 지낸 한 인사도 윤씨와 가까웠다고 윤씨측 인사들은 말한다. 서재필 목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세운상가에서 사업을 하다 보니 경찰 간부들과 어울릴 일이 많아 서로 돕곤 했다. 이후 그들이 높은 자리로 가면서 윤씨가 함께 성장했다고 보면 된다. 당시 우리와 친했던 사람 중에서 경찰청장도 여럿 나왔고, 웬만한 고위직은 셀 수도 없을 정도”라고 전했다.

    취재과정에서 전해들은 윤씨의 검찰·법원 인맥도 두터웠다. 주변인사들의 증언을 정리해보니 그가 100~200명의 판·검사를 ‘관리’해온 셈이었다. 그 중 그와 특히 친하게 지낸 인사로는 고검장을 지낸 L 변호사, 차관을 지낸 K 변호사, 검사장 출신 Y 변호사, 최모 현직 판사, 이모 판사, 홍모 판사 등이 있다. 그밖에 윤씨로부터 주기적으로 장학금을 받은 법조인도 많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도 “조사하기가 무서울 정도”라고 했다.

    윤씨는 30대 후반~40대 초반의 단독판사들에게 노력을 많이 기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와 2001년부터 친분을 이어온 종교인 오모씨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2001년부터 최근까지 윤씨와 관련된 지방 모 호텔에 족히 30여 번을 갔는데 갈 때마다 판·검사들이 나와 있었다. 많을 때는 4∼5명, 적을 때는 2∼3명이었다. 대부분 가족들과 같이 온 걸로 봐서 휴가를 받아 온 것 같았다. 밤마다 술을 먹었는데 판사들은 주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단독판사들이었다. 검사들은 보통 부장검사급 이상을 불러서 만나는 것 같았다. 술자리에서는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한 얘기도 많이 했고 무슨 부탁을 하는 것도 여러 번 봤다. 서울에서도 술자리를 많이 열었는데 판사들과 술을 먹는 자리에서 돈봉투 돌리는 것을 본 적도 여러 번이다.”

    검찰은 윤씨의 카지노 동행자로 알려진 강모씨 관련 사건, 보물선 인양으로 한때 언론의 관심을 모았던 한 중견그룹의 비자금 사건, 모 건설사와 휴양시설 간의 법적 갈등이 윤씨와 연관이 있는지를 파악 중이다.

    재계 인맥도 화려했다. 최근 그와 금전거래한 사실이 드러나 검찰의 조사도 받은 바 있는 임승남 전 롯데건설 사장(현 반도그룹 대표이사)은 그와 막역한 사이를 유지해온 대표적인 인물. 또한 모 대기업 대표 강모 회장에게는 평소 “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랐다고 전해진다. 강 회장의 차남은 현재 윤씨와 돈거래한 사실이 확인돼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그외 로또 사업자인 KLS의 남기태 사장, 송재빈 전 타이거풀스 인터내셔널 대표도 그에게 돈을 빼앗긴 사실이 드러나 윤씨에 대한 기소 항목이 추가되기도 했다.

    대기업 회장에게 “아버지”

    윤씨가 검찰에 덜미를 잡힌 곳은 정선 카지노였다. 그를 은밀히 내사하던 검찰은 지난해 9월 강원도 정선 카지노를 압수수색하면서 그가 사용한 수표뭉치 수백장을 찾아냈다. 액면금액만 83억원이 넘는 거액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그가 카지노에서 거액을 사용한다는 첩보를 받고 갔는데 막상 100억원에 가까운 수표가 나오자 우리도 당황했다”고 말했다.

    윤씨가 카지노에 드나든 것은 2003년 초부터. 카지노에 드나든 데에는 그의 지인이기도 한 유명 프로골퍼의 부친이 큰 구실을 했다.

    윤씨는 카지노에서 ‘바카라’만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VIP룸에서 한 판에 크게는 1000만원씩 베팅하는 큰손이었다고 한다. 검찰은 윤씨가 지난 수년간 카지노에서 사용한 돈에 대해 현재 수표와 계좌추적을 벌이고 있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은 지난달 초 “윤씨가 그 동안 카지노에서 돈세탁한 금액이 1000억원이 넘는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윤씨는 정선 카지노측으로부터 두 번에 걸쳐 출입정지를 받을 만큼 행적이 기이했다. 그는 2003년 6월부터 2005년 11월17일까지 2년5개월 동안 총 337회나 카지노에 출입했다. 2003년 12월8일 첫 영구출입제한을 받은 데 이어 2005년 1월12일 두 번째 출입제한을 받았다. 그러나 첫 출입제한 당시 그는 각서 한 장만 쓴 채 12월25일 출입제한이 풀려 의혹을 받고 있다.

    최근 검찰은 출입국 기록조회를 통해 윤씨가 2004년 10월 이후 마카오로 빈번히 출국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 시기는 강원랜드가 도박중독을 예방하기 위해 카지노 출입일수를 한 달에 15일 이하로 제한하던 때다. 윤씨는 검찰조사에서 “마카오로 출국한 사실은 있지만 도박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그가 두 번째로 카지노 출입정지를 받았을 때 열린우리당 전병헌 대변인의 보좌관이 출입정지를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어 관심을 모은다. 더욱이 전 의원은 이 일이 있고 한두 달 후 윤씨의 주선으로 자신 소유의 아파트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 전 의원은 “인테리어 비용 5000만원을 모두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사책임자인 박한철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최근 브리핑에서 “수사과정에서 (전 의원이) 돈을 갚았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자세한 것은 전 의원 본인에게 물어보라”고 기자들에게 주문했다.

    “하남에서 큰 돈 벌었다”

    몇 년 전 윤씨와 카지노에서 만나 친분을 쌓았던 유모씨에 따르면 윤씨는 보통 저녁시간에 카지노에 와서 밤새 도박을 한 뒤 새벽에 돌아갔다고 한다. 항상 거액의 수표를 갖고 왔으며, 돈을 찾아갈 때는 전액 현금과 소액 수표로 바꿔 갔다는 것. 그는 “윤씨는 도박을 하다가 갑자기 괴성을 지르거나 주문을 외는 등 기이한 행동을 자주 했다. VIP룸에서만 도박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알아봤다”고 했다.

    이상한 점은 로비스트인 윤씨가 로비 대상자가 될 만한 인사들로부터 오히려 돈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검찰은 28건에 걸쳐 그를 기소했는데 대부분의 혐의는 고위층 인사가 윤씨에게 돈을 준 사건이다. 윤씨와 돈 거래를 한 것이 드러난 이들 인사는 검찰에서 “단순한 채권 채무 관계다. 아직 돈을 못 받았을 뿐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윤씨와 돈거래를 한 사람들은 주로 본인 명의가 아닌 차명계좌를 사용했다. 그나마 친인척도 아닌 여비서나 운전기사 등의 계좌를 사용했다. 윤씨가 그들로부터 돈을 건네받은 것도 차명계좌였다.

    윤씨는 돈을 받을 때는 현금, 수표, 계좌이체를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은 “그가 누군가에게 돈을 줄 때는 주로 현금으로 줬다”고 했다. 윤씨는 자신이 쓴 돈의 사용처와 관련해선 전혀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최근 검찰 관계자는 “윤씨는 재기할 때를 대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수사팀장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김경수 부장검사는 “검사 생활 18년 동안 이런 희한한 브로커는 처음 보겠다”고 혀를 내둘렀다.

    윤씨에 대한 의혹 중 가장 관심을 모으는 부분은 경기도 하남시 풍산지구 개발 건이다. 윤씨가 지금까지 드러난 사건 중 가장 많은 돈을 챙겼다는 얘기가 나오는 사안이다.

    그의 돈세탁을 도와준 이유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홍모씨는 “윤 회장이 ‘하남에서 큰돈을 벌었다’는 말을 자주 했다. 나한테도 일이 마무리되면 외제차도 한 대 사주고 몇 억 챙겨주겠다고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로선 윤씨가 하남 풍산지구 시공사로 선정된 삼부토건에서 4억원을 불법 수수한 것 외에 검찰이 추가로 밝혀낸 것은 없다.

    하남 개발에 개입했을 당시 그는 이 사업을 주관하던 한국토지공사 서울본부 건물에 사무실을 얻어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2003년 6월 사무실을 종로에서 이곳으로 옮겨 2004년 2월까지 사용했는데 사무실 규모는 113평이었다. 보증금 2억원에 월세는 860만원이었다고 한다. 2004년 5월 하남시 풍산지구에서 사업권을 딴 우리종합건설의 사무실도 이 건물에 함께 입주해 있었다.

    사무실의 간판은 ‘우리종합건설’이었고 당시 윤씨는 ‘우리종합건설 회장’이라고 적힌 명함을 가지고 다녔다. 이와 관련, 토지공사측은 “사업자는 추첨으로 선정했다. 선정과정에 문제가 없다. 윤씨의 사무실은 정상적으로 임대된 것”이라고 말했다.

    “윤씨, 토공 관계자와 회의”

    이 사무실에서 몇 달간 일했던 이모씨는 “사무실에는 윤 회장과 우리종합건설 최모 사장, 홍모씨, DJ 정부 당시 청와대에 있던 사람이 같이 있었다. 사무실 개소 땐 화환이 400개가 넘게 들어왔다”고 털어놨다. 그에 따르면 이 사무실은 토지공사 관계자, 윤 회장, 최 사장이 회의를 하는 장소로도 쓰였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토지공사 사장 K씨는 검찰에서 “1990년대 초반 군 골프장에서 다른 사람의 소개로 윤씨를 처음 만났고, 이후 접촉이 없다가 합참의장으로 있을 때인 1998년 다른 인사의 집무실에서 만난 적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상림씨의 한 지인은 “윤씨 사건은 야당의 정치적 의도에 의해 실제보다 부풀려져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윤씨는 현재 거론되는 의혹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