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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으로 월스트리트 평정한‘얼음미녀’ 이정숙

“즐겁게 해주는데 안 넘어오는 고객 있나요?”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 사진·지재만 기자

맨손으로 월스트리트 평정한‘얼음미녀’ 이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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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독’에서 ‘빅 프로듀서’로

-다른 사람의 얘기를 경청해야 한다는 건 알아도 실천하기란 쉽지 않죠. 왜 그런 걸까요.

“우리가 이기적이잖아요.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서 그래요. 제가 경험한 영업직에선 특히 그래요. 영업직 사원들은 대부분 공격적이에요. 뺑소니(hit and run) 스타일이라고 할까. 팔아야 하니까, 성과를 올려야 하니까 마음이 급해집니다. 저는 의식적으로 이런 것을 경계하려고 노력했어요. 상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 다음엔 솔직하게 제 생각을 밝혔죠.”

-월가에서 생존한 것이 ‘나만의 창의성’을 발휘한 덕분이라고 했던데, 그런 경험담을 듣다 보면 마치 ‘평범함은 죄악’이라고 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어떤 전략을 짜려고 했던 게 아니었어요. 내가 월가의 주류인 미국 백인 남자들과 너무 다르잖아요. 한국인이면서 여자였으니까. 이들과 붙으면 질 수밖에 없는 언더독(underdog·실패할 확률이 가장 높은 후보)이죠. 그러니까 미국 남자들이 하는 식으로 일하면 지는 거예요. 그래서 우선 ‘뒷문’으로 가기로 하고 캐나다 시장을 개척했어요.”



베어링증권에 입사한 이 교수는 경쟁자들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쏟던 캐나다 펀드매니저들을 공략했다. 전화를 걸면 얘기도 듣지 않고 끊어버리는 펀드매니저들을 상대로 끈질기게 ‘작업’을 시도한 결과 입사 3년 만에 ‘빅 프로듀서’ 반열에 올랐다. 빅 프로듀서는 연간 100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세일즈맨을 일컫는 말.

“남과 차별화하는 방법은 결국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요. 그러자면 우선 자신의 위치, 회사의 경쟁력, 경쟁사의 움직임을 파악해야죠. 시장에서 무엇이 팔리고, 회사는 그 시장에서 어떤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취약점은 무엇인지 스스로 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남과 다른 점을 찾아야죠. 큰 그릇과 작은 그릇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람은 누구나 독특해요. 그 점을 빨리 파악해서 내가 뭘 팔 수 있는지, 어떤 틈새시장을 노릴 수 있는지 구상해야 합니다.”

-요즘은 월가에 진출한 한국인도 꽤 있던데, 그들을 겪어보니 어떻던가요.

“언어와 문화가 제일 높은 장벽이에요. 금융 서비스업은 고객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해요. 그런데 한국에서 파견된 직원들은 여기 적응하는 데 힘들어하더군요. 예를 들면 미국 펀드매니저를 사귀는 데 대부분 실패해요. 그들과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으려면 그가 회사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실적이 어떤지, 꿈은 무엇인지, 가족관계는 어떤지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접대만 하려고 해요. 그들은 돈을 워낙 많이 벌기 때문에 술 접대 같은 것은 좋아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평소에 외국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문화의 벽을 넘을 수 있는 자신감도 있어야 하고요.”

슈퍼스타에게도 허니문 필요

-이 교수께선 어떻게 했습니까.

“간단하게 얘기하면 상대방이 나를 찾게끔, 나하고 있는 시간을 즐거워 하게끔 했어요. 그러려면 재미있는 사람이 돼야 하죠. 카리스마가 별건가요. 사람들을 자석처럼 끌어들이는 능력이잖아요.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돈을 벌 수 있는 아이디어를 줘서 실적을 올리도록 도와줬어요. 그리고 매일 통화했죠. 귀찮아해도 계속 전화를 걸었어요. 그래서 친구가 됐죠. 항상 곁에 있어주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당시 국내 증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했던 것으로 아는데, 왜 거절했습니까.

“한국 경영진이 제게 ‘허니문 기간(비즈니스 구축 시간)’을 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어요. 뭐든지 해줄 것처럼 말했지만 진짜 그런지 믿음이 안 가더라고요. 단기간에 승부를 내고 싶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를 슈퍼스타로 대접했지만 저라고 별수 있나요? 무엇을 하든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데,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았어요.”

-월가에서 뛰는 여성도 일과 육아를 다 잘 할 수 있을까요.

“요즘 미국 사회가 그 이슈에 대해 한창 고민하고 있지요. 많은 여성이 ‘이젠 집으로 돌아가자, 아이들 키우고 난 뒤에 커리어 우먼으로 복귀하자’고 합니다. 월가에서 일하는 친구 중에 결혼한 여성은 희생이 커요. 직장인으로, 엄마로, 아내로 살아가기가 만만치 않죠. 결국 건강이 나빠지든지, 아이들과 관계가 소원해지든지 합니다. 뭐든 대가가 따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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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 사진·지재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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