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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함께 떠나는 중국여행 ⑦

‘송가황조(宋家黃朝)’

  •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송가황조(宋家黃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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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모든 사람의 것’

‘송가황조(宋家黃朝)’

영화 ‘송가황조’ 포스터.

다른 곳과 달리 난징 여행은 죽은 자들을 기리거나 죽은 자들이 묻혀 있는 곳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한족의 나라인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朱元璋)의 무덤 효릉(孝陵)과 아시아 최초의 공화제 정부 중화민국을 세운 쑨원이 잠들어 있는 중산릉(中山陵)을 둘러보고, 난징대학살 기념관을 관람하는 것이 그렇다. 난징을 방문하는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그러한데, 난징의 역사가 거기에 있어서다.

효릉과 중산릉은 난징을 상징하는 명산 쯔진(紫金)산에 있다. 효릉은 명나라 개국 황제의 무덤이니 규모가 클 수밖에 없을 터인데도, 중화민국이라는 근대 민주공화국의 초대 총통인 쑨원의 중산릉이 더 웅장해 보인다. 중산릉은 ‘국부(國父)’이자 ‘현대 중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쑨원의 자취를 찾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 2005년 4월에 타이완 국민당 총재인 롄잔(連戰)이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간 뒤 국민당 총재로서는 처음으로 대륙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찾은 곳이 난징 중산릉이다. 롄잔은 방명록에 날짜를 적으면서 ‘중화민국 94년, 서기 2005년 4월27일’이라고 적었다. 타이완에서 사용하는 연호를 쓴 것이다. 중화민국이 건재하다는 것을 쑨원에게 보고하려는 뜻이었을까. 롄잔이 방문하고 난 뒤 중산릉을 찾는 중국인이 더욱 늘었다.

중산릉 입구에 서면 그 규모에 압도당한다. ‘博愛(박애)’라는 금박 글씨가 적힌 큰 패방(牌坊)이 있는 광장에서 쑨원의 유체가 안치된 묘지까지 아스라하게 놓인 오르막 계단이 무려 392개다. 난징은 우한(武漢), 충칭(重慶)과 함께 중국에서 가장 더운 ‘3대 화로’로 불린다. 난징의 불 같은 여름 볕 아래 392개 계단을 오르는 일은 여간 곤욕이 아니다.

‘쑨원의 후계자는 나’



숨을 헐떡이며 계단을 올라 ‘天下爲公(세상은 모든 사람의 것이다)’이라고 적혀 있는 능문과 비정(碑亭)을 지나 ‘민족, 민생, 민권’이라는 쑨원의 삼민주의가 적힌 제당에 들어서면 백옥으로 만든 쑨원의 좌상이 있다. 그 좌상을 돌아 들어가면 쑨원의 유해가 안치된 묘실이다. 묘실은 원형이다. 묘실 천장에는 푸른 하늘에 빛나는 태양을 상징하는 중화민국 국기 ‘청천백일기’가 새겨져 있다. 종 모양의 둥근 원으로 된 화강암 묘실의 한가운데 놓인 대리석 관에 쑨원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대리석 관이 깊이 5m 아래에 있어서, ‘불경스럽게도’ 내려다보아야 한다.

쑨원은 1925년 3월12일 59세의 나이(1866년생)로 베이징에서 숨을 거두고, 베이징 시산(西山)에 묻혔다. 쑨원은 난징에 묻히기를 원했다. 자신이 평생 염원하던 중화민국이 세워지고, 자신이 (임시)총통을 지낸 곳이 바로 난징이다. 그래서 쑨원은 자신이 난징에 묻히면 혁명의 정신이 이어질 것이라 믿었다.

그의 바람대로 1929년 6월1일 쑨원은 난징에 묻힌다. 1926년 봄부터 1929년 6월1일 지금 자리에 안치되기까지, 이장 작업을 총괄하면서 쑨원의 묘소를 황제의 능처럼 웅장하게 만든 이는 다름 아닌 장제스(蔣介石)다. 장제스는 쑨원의 묘를 왜 이렇게 거대하게 꾸민 것일까. 중화민국 정부에 대한 애정과 쑨원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인가. 쑨원의 후계자로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선전인가.

쑨원의 묘가 이장되던 날, 쑨원의 부인(사실은 두 번째 부인) 쑹칭링(宋慶齡)도 이장식에 참석했다. 당시 소련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장식에 참석하러 일부러 온 것이다. 하지만 남편의 이장식에 참석한 쑹칭링의 표정은 내내 무겁고 어두웠다. 쑹칭링은 이장식이 진행되는 내내 장제스는 물론이고 국민당 간부들, 그리고 장제스의 부인이자 자신의 여동생인 쑹메이링(宋美齡)과도 멀리 떨어져 다른 추모 행렬에 섞여 있었다. 그럼으로써 장제스가 주도하는 이장식에 참석은 하지만, 그것이 장제스를 쑨원의 후계자로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 공공연히 알렸다. 쑹칭링은 쑨원의 정신을 장제스가 아니라 자신이 계승하고 있다고 믿었다. 이날 이장식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쑨원의 부인인 쑹칭링과, 쑨원에 이어 중화민국의 총통이 된 장제스의 부인으로써 중화민국의 퍼스트레이디가 된 쑹메이링 자매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돈, 나라, 권력을 사랑한 세 자매

영화 ‘송가황조(宋家黃朝)’는 그렇게 중화민국의 퍼스트레이디를 둘이나 배출한 송씨 집안 이야기로 쑹칭링과 쑹메이링 두 자매가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과정을 공산당과 국민당의 분열, 중국 분열의 상징으로 그리고 있다. ‘가을날의 동화’ ‘유리의 성’ 등을 감독한 장완팅(張婉停) 감독의 1997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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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현대문학 gomexico@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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