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호

‘프라하의 봄’이 피어난 현장, 체코 프라하

중세 거리 구석구석에 밴 자유화운동의 숨결

  • 사진·글 이형준

    입력2006-03-07 13: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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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하의 봄’이 피어난  현장, 체코 프라하

    영화의 주요 무대이자 도시의 상징인 카를 다리와 프라하 성.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원작으로 1988년에 만들어진 영화 ‘프라하의 봄’은, 백탑의 도시 프라하를 중심으로 보헤미아 온천지방과 목가적인 농촌, 레만 호숫가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도시 제네바 등 꽤 넓은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감독 필립 카우프만은 미로가 연상될 만큼 얽히고설킨 프라하의 복잡다단한 골목들을,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갈망과 욕구가 1968년 체코 자유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엉키며 펼쳐지는 영화내용의 상징으로 정묘하게 활용했다.

    프라하의 거리에서 영화 속 장소들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도입부에서 의사인 토마스로 분한 배우 다니엘 데이루이스와 화가 사비나로 분한 레나 올린이 사랑에 빠진 곳은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구시가지다. 순수한 시골처녀 테레사로 분한 줄리엣 비노시와 토마스가 함께 살던 집은 소지구 골목에 위치한 주택. 1968년 시민들이 개혁을 주장하며 대규모 시위를 펼친 바츨라프 광장과 무스테크 거리는 모두 프라하가 자랑하는 명소들이다.

    ‘프라하의 봄’이 피어난  현장, 체코 프라하
    ‘프라하의 봄’이 피어난  현장, 체코 프라하

    ◀ 구시가 광장 너머로 보이는 틴 성모교회.<br>▲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프라하 소지구 주택들.



    ‘프라하의 봄’이 피어난  현장, 체코 프라하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성 비투스 성당.

    ‘프라하의 봄’이 피어난  현장, 체코 프라하

    종교개혁자 후스의 동상이 서 있는 구시가 광장은 1968년 프라하 시민들이 시위를 벌인 장소다.



    시민의 광장



    유서 깊은 고도(古都) 프라하를 찾는 방문객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구시가 광장으로 달려간다. 토마스와 사비나가 사랑에 빠진 장소이자 탱크를 앞세우고 진격하는 바르샤바조약기구 군대에 대항하여 시민들이 자유를 외치는 장면을 촬영한 이곳은, 영화가 촬영된 1988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물론 사비나의 작업실이자 생활공간이던 이곳 구시가 광장에서 영화 속 내용처럼 긴장감이나 시위를 벌이는 광경은 이젠 볼 수 없다. 대신 동유럽 최고의 관광명소답게 광장 주변은 언제나 방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 가운데 방문객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건물은 구(舊) 시청사. 1338년에 세워진 구시청사는 여러 번에 걸친 확장공사와 복원공사 끝에 지금의 모습이 됐다.

    ‘프라하의 봄’이 피어난  현장, 체코 프라하

    여주인공 테레사가 블타바 강에서 노니는 백조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던 자리.



    ‘프라하의 봄’이 피어난  현장, 체코 프라하

    카를교 위에서 액세서리를 파는 노점상.

    ‘프라하의 봄’이 피어난  현장, 체코 프라하

    프란츠 카프카 관련 서적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 아가씨.



    오리엘 예배당, 탑,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된 구시청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벽에 걸린 천문시계다. 1490년에 만들어진 이 천문시계는 12사도의 조각상을 비롯해 아라비아 숫자를 이용한 일조량 표시와 태양에 맞춘 시계, 달력 등이 새겨진 아주 독특한 기계로 프라하를 찾는 방문객은 누구나 한번쯤 둘러보는 명물이다.

    영화의 또 다른 주요 촬영지인 소지구는 중세의 풍경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이 지역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카를 다리와 블타바 강, 네루도바 골목이 모두 영화에 등장한다. 구시가 광장에서 좁은 골목길로 이어진 카를 거리를 빠져 나오면 블타바 강을 동서로 연결해 놓은 카를 다리가 방문객을 반긴다.

    ‘프라하의 봄’이 피어난  현장, 체코 프라하

    카를교 건너편으로 프라하 소지구가 보인다.

    프란츠 카프카의 작업실

    현존하는 석교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듣는 카를교(橋)는, 영화 속에서 자유화운동 사건 이후 스위스 제네바로 피신해 살던 테레사가 다시 프라하로 돌아와 생각에 잠기는 장면을 촬영한 장소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다리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이곳에서 바라본 프라하 성과 고풍스러운 건물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블타바 강물은 말 그대로 사랑스럽다.

    카를교의 서쪽 게이트에 해당하는 교탑을 지나면 네루도바 거리가 나온다. 돌이 촘촘히 박힌 신작로와 저마다 독특한 모양의 주택과 상점가, 금방이라도 작품 속 주인공을 만날 것 같은 정겨운 골목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영화 속 분위기와 너무나 흡사하다.

    ‘프라하의 봄’이 피어난  현장, 체코 프라하

    1 프라하 소지구의 네루도바 골목에서 프라하 성으로 이어지는 계단. 영화에 자주 등장한 곳이다.<br>2 황금소로에 있는 프란츠 카프카의 옛 작업실.<br>3 무스테크 거리에서 공연을 감상하는 사람들.

    소지구에서 신작로와 계단을 따라 오르면 천년 고도를 응시하고 있는 프라하 성에 이른다. 왕궁만 다섯이 자리잡고 있는 이 어마어마한 성에서 가장 이색적인 공간은 성 비투스 성당 아래쪽의 황금소로다.

    거리 자체는 비록 10여 채의 작은 건물이 모여 있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곳을 찾는 방문객은 제법 많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시인 야로슬라이프 사이페르트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체코를 대표하는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의 자취가 깊이 배어 있는 작업실도 이곳 황금소로에 남아 있다.

    화려하게 변했어도 분위기는 남아

    프라하에서 가장 번화한 동네인 바츨라프 광장과 무스테크 거리도 영화를 촬영하던 시절의 광경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체코가 본격적으로 개방되면서 무스테크 거리는 영화 속에 등장한 것보다 훨씬 세련되고 화려하게 변모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옛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이외에도 프라하 서남쪽에 있는 보헤미아 온천지역과 농촌지역 등, ‘프라하의 봄’의 무대는 촬영 후 십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아, 어느 때 방문해도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삶에 대한 번민의 과정을 따라가볼 수 있다.

    여·행·정·보
    인천공항에서 프라하 공항까지는 매주 3편의 직항이 운행된다(10시간 소요). 공항에서 도심까지는 약 20㎞로 택시(요금 500~600체코크로나)나 셔틀버스(요금 90체코크로나)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20~30분 소요). 프라하 여행은 성수기(4~10월)냐 비수기냐(11~3월)에 따라 숙박요금과 관광요금이 크게 다르다. 체코는 비자 없이 3개월 동안 여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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