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호

‘송도국제도시’ 개발 주도하는 조용경 사장의 한숨

“국회 ‘젊은 대원군’들 때문에 사업하기 힘들다”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 사진·김성남 기자

    입력2006-03-13 14: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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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약속 깬 여당 의원들 때문에 1500억원 추가 투자할 판
    • 경제자유구역 지정은 평등·균형 발전과 배치되는 전략
    • 주택공급법 예외 적용 못 받으면 ‘외국인 없는 자유구역’ 된다
    • 싱가포르나 상하이와 세제 지원 비교하면 송도 매력은 낮아
    ‘송도국제도시’ 개발 주도하는 조용경 사장의 한숨
    조용경(趙庸耿·55) 게일 인터내셔널 코리아 사장(포스코건설 부사장 겸직)을 만난 것은 1월6일, 새해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때였다. 새해 벽두부터 조 사장의 사무실을 찾은 것은 국내 최초의 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가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막 기지개를 켜고 있어서다. 올해부터 이 도시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을 아시아 트레이드 타워는 물론 공원, 호텔, 국제학교, 국제병원, 오피스텔, 국제박물관, 백화점 및 할인점, 생태관 등 대부분의 시설 공사가 시작된다.

    불평등 성장 전략의 거점

    이 거대한 도시 개발은 1990년대 후반, 인천시가 바닷물을 막아 370만평의 부지를 확보하면서 시작됐다. 김대중 정부 말기이던 2002년 12월 경제자유구역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노무현 정부 초기에 송도는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됐다. 게일 인터내셔널 코리아는 송도국제도시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부동산 개발회사다. 포스코건설과 미국 부동산 개발업체 게일이 30대 70의 지분 비율로 합작했다. 조용경 사장은 지난해 9월 게일 인터내셔널 코리아 CEO로 영입됐다.

    바다를 메워 세운 한국의 관문으로, 개발이 완료되는 2014년엔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도시로 발돋움할 송도의 밑그림이 완성되는 요즘 조 사장의 얼굴은 예상했던 것만큼 밝지 않았다. 인터뷰를 끝내놓고도 기사가 나가는 시점을 연기해달라는 요청도 했다. 인터뷰하는 내내 송도국제도시 건설의 문제점에 대해 조심스러우면서도 거침없이 토로한 그답지 않았다. 아무래도 정부와 국회에 대놓고 쓴소리를 했다는 게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인터뷰하면서 그가 던진 문제들은 묵직한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민주주의와 국가의 이익이 엇갈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초 ‘불평등 성장전략’의 일환으로 태어난 경제자유구역 프로젝트에 평등과 균형을 강조하는 것은 타당한가, 한국의 교육주권은 경제자유구역에서도 지켜져야 하는가, 경제자유구역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돼야 하는가. 우린 정말 외국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대답하기 곤혹스러운 질문 대신 그가 그리는 도시의 미래상을 이야기해달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8년 뒤 완공될 새로운 도시의 한켠에서 그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첨단시설의 쾌적함을 만끽하면서 노후를 근사하게 보내는 것쯤으로 예상했지만, 그의 대답은 뜻밖에 소박했다.

    “그때면 내 나이가 63세인데요. 골프는 안 치니까 골프장엔 없을 것이고, 경기도나 강원도 어디쯤에 전원주택을 지어 꽃을 가꾸고 살 것 같은데요. 아니면 야생화 사진 찍으러 어느 산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죠.”

    조 사장은 야생화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다. 아니, 취미 정도가 아니라 전문 사진작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실력이 뛰어나다. 6년 전 디지털 카메라를 손에 쥔 이후 야생화 촬영에 푹 빠졌고, 그가 운영하는 홈페이지(www.ilovehansong.co.kr)에 그간 찍어놓은 사진을 빼곡히 올려놨다.

    -국제도시 개발은 2002년부터 시작됐지만, 올해가 개발 원년이라고 해도 될 만큼 개발 일정이 빡빡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공사가 올해부터 시작됩니다. 1500억원을 들여 짓는 국제학교, 미국 코넬대 의대 교수진이 진료하는 국제병원, 12만평의 중앙공원 시설 공사가 올해 착공됩니다. 명품 백화점과 할인점, 아시아 트레이드 타워, 국제박물관, 호텔도 함께 건설되죠.

    완공되면 깜짝 놀랄 정도로 규모가 크고 다양한 생물을 구경할 수 있는 생태관도 올해 말 설계가 끝납니다. 생태관 건립을 위해 미국 IDEA사와 1억2000만달러 양해각서를 체결했어요.”

    자고, 일하고, 즐기고…

    -1200억원이나 드는 생태관을 꼭 지어야 합니까.

    “그럼요. 서울의 도시 생활을 한번 그려보세요. 대부분의 사무실은 강남이나 강북 특정지역에 모여 있습니다. 일과가 끝나면 분당이나 일산 혹은 안양까지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갑니다. 주말엔 골프를 치거나, 등산 또는 유원지에 가서 휴식을 취하고 싶은데 교외로 나가려면 교통체증 때문에 망설여집니다. 오가는 데만 몇 시간씩 도로에서 허비한다면 쉬는 게 아니죠. 일과 휴식을 한곳에서 할 수 없으니 이처럼 낭비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거죠. 좋은 도시라면 낮에 일하고 저녁 때는 걸어갈 만한 곳에 즐길 수 있는 것이 많아야 합니다. 식구들과 극장도 가고, 골프도 치고, 생태관에서 다양한 생물도 구경하고… 이런 게 가능해야 좋은 도시예요.

    7500만t 규모의 수조가 들어설 지상 6층짜리 생태관을 지어놓으면 꽤 볼 만할 겁니다. 건물 안에다 산을 만들어 갖가지 생물을 키우는 거예요. 관람객은 산꼭대기부터 물줄기를 따라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물이 하늘에서 비로 떨어져 나무를 타고 내려와 모이면 시내가 되고 강이 되어 바다로 가잖아요. 우리가 사는 생태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거죠.”

    -국제박물관 건립도 그런 ‘좋은 도시’를 만드는 계획의 일환이겠군요.

    “박물관 건립은 게일사의 스탠 게일 회장과 부인의 아이디어입니다. 뉴욕에서 프로 스포츠 구단을 운영하는 게일 회장은 문화산업에도 관심이 많아요. 그는 국제도시가 되려면 수준 높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있어야 한다고 했죠. 2009년에 완공되면 외국의 유명 미술관, 박물관과 제휴해 세계적인 전시 프로젝트를 진행할 겁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경제자유구역이란 실험을 하다 보니 송도를 두고 이런저런 논란이 많습니다. 아직 개발 초기 단계지만 직접 사업을 추진하면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습니까.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김대중 정부 말기에 경제자유구역이 설정됐어요. 경제자유구역 설정은 평등이나 균형발전과는 배치되는 전략입니다. 그보다는 ‘선택과 집중’이라고 할까요. 특정지역을 정하고 국내외 기업에 차별된 혜택을 부여해서 중장기적으로 경제적 수익을 보자는 것이죠.

    그런데 이 정부 들어 철학이 달라진 것 같아요. 혜택을 주는 것이 백안시되고, 평등과 균형이 강조되다 보니 사업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네요. 물론 평등과 균형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에서만큼은) 원래 세워둔 원칙은 고수해야죠. 외국인에게 이처럼 변화된 상황을 납득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애로점이 많습니다.”

    비영리법인만 학교 운영 가능

    -선택과 집중이라는 당초 전략에서 벗어났다고 할 만한 사례라면.

    “우선 게일이 꼽은 송도 사업의 성공조건 세 가지를 말씀드릴게요. 첫째는 인천공항과 송도를 연결하는 인천대교가 있어야 한다, 둘째는 외국기업과 외국인을 유치하도록 정주(定住)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고, 그러자면 외국인이 가장 중시하는 수준 높은 국제학교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셋째는 영어가 자유롭게 통하는 세계적인 병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덧붙인다면 첨단 정보기술(IT) 환경이 있어야 하고요. 이에 대해 정부는 2001년, 2002년에 모두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어요.

    다리는 우여곡절 끝에 예정보다 1년 늦어졌지만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국제학교 유치 문제는 당초 계획과 달라졌어요. 원래는 외국인 투자 형태로 학교를 유치하겠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몇 군데 외국법인이 투자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또 어느 단계까지는 국제학교의 정원 중 40%까지 한국 학생들로 채울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정부가 구두로 약속했습니다. 교육인적자원부도 동의했고요.

    그런데 이 법안(외국교육기관 설립·운영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로 가자 여당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교육주권의 포기’라며 반대했습니다. 결국 지난해 5월 법안은 손질이 돼서 통과됐지만 몇 가지 문제점이 있어요. 외국에서 학교를 운영하는 비영리법인이 들어와야 하고 과실(果實)송금은 안 된다는 것이 첫째 문제입니다. 둘째는 한국인 학생을 정원의 30%까지 받을 수 있지만, 초기 몇 년 동안만 이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게 되니 투자하려던 외국의 교육법인들이 발을 뺐어요. 번 돈을 가져갈 수 없는데 누가 들어오겠습니까. 학교 유치 못하면 이 사업은 올 스톱됩니다.”

    “눈물 머금고 끝까지 가보자”

    ‘송도국제도시’ 개발 주도하는 조용경 사장의 한숨

    조용경 사장 뒤로 송도국제도시의 모형이 보인다. 계획대로라면 2014년쯤 우리는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도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조 사장께서 얼마 전 사석에서 ‘국회의 젊은 대원군들 때문에 사업하기 힘들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놓고 정부는 법이 만들어졌으니 학교 유치하라고 하죠, 투자하겠다는 외국학교는 없죠, 한동안 고민이 많았습니다. 겨우 미국의 학교법인 인터내셔널 스쿨 서비스(ISS)와 연결됐어요. 전세계에 100개의 국제학교를 설립, 운영하는 법인입니다. 자매학교로는 밀튼 아카데미(미 동부 명문 사립고)가 선정됐고, 양해각서를 체결했습니다. 이들과 함께 교육 프로그램을 공동개발하고 학생과 교직원을 교류하게 됩니다.”

    -과실 송금을 할 수 없고, 비영리법인이 들어와야 한다면 학교 시설 투자는 누가 하게 됩니까.

    “송도신도시개발유한회사(게일사와 포스코건설의 합작회사, 대표·존 하인스)가 1500억원을 투자해 지어야 합니다. 우리로선 예상하지 않은 추가 부담이죠. 게일사는 부동산 개발업체입니다. 개발업체는 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마스터플랜을 만들고, 도시에 필요한 시설에 투자할 회사를 찾아내는 게 일입니다. 개발업체가 직접 투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법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투자하게 된 거죠. 눈물을 머금고 끝까지 가보자는 심정이에요. 어쨌든 2월 중에는 학교 기공식을 열 겁니다. 완공되면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국 정부가 인정하는, 미국 학교를 마친 것과 똑같은 자격을 주는 학교가 됩니다.”

    -비영리법인으로 못박았기 때문에 1500억원을 투자해도 건질 수 있는 수익은 없겠네요.

    “그렇습니다. 결국 다른 부분에서 손실을 메워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손해를 봐야 하고요. 이뿐이 아닙니다. 1800억원이 투입되는 중앙공원은 인천시에 1달러에 기부하도록 돼 있고, 1억달러가 소요되는 문화센터도 지어서 반납해야 합니다. 여기에 국제학교까지 무수익 투자로 분류되다 보니 손해가 큽니다. 결국 주택과 상가분양 등에서 이익을 내야 하는데, 상가는 돈이 많이 남지 않아요. 그렇다고 주택분양에서 손실을 메우려 하니 여론은 왜 송도의 집값을 높여 받느냐고 비난합니다. 우리가 수익도 나지 않는 투자를 통해 좋은 도시를 만들고, 그 때문에 주택가격이 올라간다는 것을 인정해줘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당 의원들의 주장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교육주권을 지키겠다는 것인데요(‘국내 공교육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 바 있다). 저도 한국 사람이니 국제학교 유치를 두고 무작정 목소리를 높일 수도 없어요. 반대하는 사람의 논거에도 충분한 이유가 있죠. 그러나 게일사가 애초 정부의 공개적인 약속을 믿고 들어왔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것이 지켜지지 않고 개선되지 않으니까 저로서도 답답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의원들이 좀더 이해해주기를 바랄 뿐이죠. 국제사회에서 국가와 정부의 신뢰가 달린 문제 아닙니까.”

    -국제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한국 학생의 조건은 뭡니까.

    “만들고 있는 단계예요. 지난해 11월 시행령이 공표됐고, 세칙은 협의해서 만드는 중입니다. (여당 의원들의 주장처럼) 교육주권의 문제가 있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어린 학생들의 조기유학이란 현상도 있고, 기러기 아빠처럼 영어교육 때문에 가족이 떨어져 사는 사회문제도 있지 않습니까. 이런 부분도 정치권이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어요. 그런 점에서 시각을 좀 달리해도 좋겠다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가 봐요.”

    -국제병원 유치는 잘돼갑니까.

    “비교적 잘 풀렸어요.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초기에 재정경제부와 협의해서 풀어줬죠. 의료 서비스의 평등이라는 문제가 있었는데, 정부가 4조원을 투자해서 의료시장을 부분적으로 개방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죠. 사실 병원은 크게 돈이 남는 장사는 아니에요. 이 때문에 병원 유치에 애를 먹었습니다.

    지난해 10월 재경부가 뉴욕장로병원(NYP)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했습니다. 이 병원이 2월말까지 자금 조달과 운영계획을 낼 것이고, 심사에 합격하면 공사에 들어갑니다. 그쪽 사람들이 열의를 갖고 있어서 잘될 것 같아요.”

    송도, 베드타운으로 전락?

    -송도 국제병원에도 한국 건강보험 시스템이 적용됩니까.

    “의료보험이 되는 부분이 있지만, 벗어나는 부분도 광범위하게 인정됩니다. 이 병원은 장기이식센터나 암센터 등으로 특수 분야를 몇 개 집중해서 운영할 생각입니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 등 아시아 환자를 끌어모으려는 계획이죠. 이 때문에 뉴욕장로병원이 투자하겠다는 것 같아요.”

    -일각에선 송도에 주거시설만 늘리고 업무시설은 줄이고 있다며, 업무도시가 아니라 베드타운이 되는 게 아니냐고 우려합니다.

    “당초 2280가구를 짓기로 했던 주상복합주택을 7500가구로 늘렸고, 국제 업무 용지를 29만5000평에서 22만7000평으로 줄인 것은 사실이에요. 그런데 2만1620가구의 공동주택을 1만4960가구로 줄였으니 전체 가구수는 줄었습니다. 베드타운 가능성이 오히려 감소한 것이죠.

    공동주택을 줄이고, 주상복합을 늘린 것은 고층건물이 밀집된 곳에서 주거와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섭니다. 사업 초기 업무용 빌딩은 공실률이 높고, 입주회사를 위해서는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죠. 이를 주거시설 분양 수익금으로 거둬 도시 개발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또 중앙공원이나 컨벤션센터 건설 등 인천시가 부담하기로 했던 공공투자비용을 송도신도시개발유한회사가 부담하기로 했어요. 이런 이유로 주상복합주택 수를 늘린 겁니다.”

    -경제자유구역의 주상복합단지엔 당연히 외국인이 많이 살게 되겠죠?

    “사실 그 부분도 고민스러워요. 지난해 1650가구를 분양했는데, 그중 80가구(5%)만 외국인을 위해 확보했어요. 법상으로 보면 10%를 (외국인에게) 특별 공급하도록 돼 있습니다. 문제는 외국인은 여기 와서 집을 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임대차 형식으로 빌리죠. 그러면 외국인을 위해 임대차 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펀드나 사업자들이 집을 사도록 해야 하는데, 주택공급에 관한 법률에서는 그게 허용되지 않아요. 재경부와 건교부의 견해가 달라서 아직까지 결론이 없습니다.”

    -왜 안 됩니까.

    “특혜라는 것이죠. 임대 사업자가 사놓은 주택 가격이 올라가면 특정인에게 혜택이 집중된다는 논란이 불거질 것이고, 정부는 이를 부담스러워하겠죠. 하지만 이런 이유로 외국인 거주용 주택을 마련하지 못하면 그거야말로 경제자유구역의 고유 목적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그건 또 무슨 뜻입니까.

    “주상복합단지의 5%를 제외한 90% 이상은 인천에 사는 사람들이 갖고 있어요. 원래는 외국인, 그리고 외국 기업과 함께 일하는 국내 기업 직원이 살아야 합니다. 송도국제도시의 주택이 단순히 프리미엄을 얻기 위해 존재한다면 경제자유구역의 의미가 없어지는 거죠.”

    ‘민주화’와 ‘정책조정 기능’

    -지난해 ‘신동아’에서 한덕수 경제부총리를 인터뷰할 때 들어보니 재경부가 송도국제도시 건설에 열정이 있는 것 같던데, 재경부가 나서도 정부 부처간 이견을 좁히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군요.

    “예전에 재경부가 예산권을 갖고 있을 때는 권한이 셌는데, 지금은 그저 ‘경제부처 중 하나’가 됐어요.”

    -그렇다면 누구를 설득해야 경제자유구역의 본래 의미를 지킬 수 있을까요.

    “과거엔 정부가 일단 방향을 정하면 각 부처 간에 정책을 조정했는데, 지금은 그런 기능이 쇠퇴한 것 같아요. 각 부처가 이런저런 이유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좋게 말하면 민주화가 한층 진전된 것이죠. 다른 측면에서 보면 국가적 목표를 향한 종합기능이 좀 약화된 것 같아요.”

    -민주화가 효율적인 정부와 배치된다는 뜻인가요.

    “제 경험을 하나 얘기할까요? 지금은 일본 요미우리신문의 회장 겸 주필이 된 와타나베 쓰네오씨를 1991년에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맡고 있던 박태준 민자당 최고위원을 보좌하고 있었는데, 당시 한일 문제에 관심을 가진 대학생 단체 대표들과 일본에 갔죠. 대학생들과 일본 주요 산업시설을 둘러보고, 요미우리신문을 방문해 와타나베 당시 부사장을 만났습니다. 한 대학생이 ‘우리도 올해부터(1991년) 지방자치 시대를 맞는다. 진정한 민주화가 실현되는 것인데, 일본은 일찍이 지방자치를 실시하지 않았는가. 소감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질문을 받은 와타나베씨는 한동안 생각하는 것 같더니 ‘한국이 지방자치를 한다, 글쎄…개인적으로는 애도의 뜻을 표해야 하나?’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깜짝 놀랐어요. 그는 ‘한국이 서둘러서 지방자치를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한국엔 동서(영남과 호남)의 대립이 심각하다고 들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자칫 지방자치제가 사회 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다.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경제·사회적으로 더 발전해야 하는데, 지자체 실시가 얼마나 도움이 될까’하면서 우려하더군요.

    질문한 대학생이 이 답변을 듣고 발끈했습니다. ‘일본이 했는데 우리가 못할 줄 아느냐’고 쏘아붙였죠. 그랬더니 그는 ‘오해하지 마라. 일본은 오래 전부터 ‘다이묘(大名)’라고 하는 통치체의 연합으로 지방자치제를 실시했고, 잠깐 중앙집권제로 갔다가 다시 돌아갔다. 일본은 여건이 성숙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일본이 지자체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어요. 그 뒤에 한국에서 벌어진 여러 양상을 보면서 그의 말이 생각나곤 했어요. 어떤 측면에선 그의 말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경제자유구역에 ‘자유’가 없다?

    -지자체 초기에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일 것 같습니다. 게일사는 정부의 태도 변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송도국제도시 개발은 게일사에 의미가 큽니다. 사업영역을 세계로 확대하는 첫 사업이거든요. 이 사업에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고 꼭 성공시켜서 미래의 디딤돌로 삼으려는 의지가 강합니다. 그래서 당초 기대한 이익규모가 줄더라도 어떻게든 타협하면서 끌고 갈 겁니다.”

    -외국기업 유치를 위해 해외 투자자들을 많이 만날 것 같은데, 그들은 어떤 조건을 요구합니까.

    “세제(稅制) 지원에 대해 자주 묻습니다. 조세 감면 등 인센티브가 뭐냐는 거죠. 싱가포르나 홍콩 혹은 상하이 푸둥지구 같은 경제특구와 비교하면 개선돼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법인세만 보더라도 싱가포르는 20%, 홍콩 17.5%, 푸둥지구는 15%인데, 한국은 25%입니다. 최고소득세율 또한 한국이 제일 높아요(36%). 이런 조건을 들고 외국 기업을 유치하려고 하니 가끔 허탈해져요. 외국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 만한 시원한 답변을 하지 못해서죠. 그렇다고 외국 기업에만 세제혜택을 주자니 그것도 안 됩니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기 때문에 외국 기업에만 혜택을 주면 국내 기업을 차별하게 된다는 겁니다. 둘 다 혜택을 주든지 말든지 해야 하죠. 이래저래 힘들어요.”

    -대안이 있습니까.

    “고려 중이에요. 재경부 자유구역기획단과 고민하고 논의하고 있어요. 케이스 별로 풀어보자는 쪽으로 이견을 좁히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희망도 보이고, 다른 한편으론 걸림돌도 많네요. 성공할까요?

    “영국 상공회의소 부회장이 어느 포럼에서 ‘한국의 경제자유구역은 안 된다’고 단언해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그가 말한 요지는 ‘어느 외국 기업도 외국 기업 전용 게토를 만들면 들어가지 않는다. 현지 기업이 같이 들어가야 들어간다. 한국의 경제자유구역은 프리 이코노믹 존(Free Economic Zone)이 아니라, 포린 이코노믹 존(Foreign Economic Zone)으로 가고 있다. 자유가 없고, 페이퍼상에만 존재한다’는 것이었어요.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포스코건설이 최근 본사를 송도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런 차원에서 진행된 거예요. 우리가 실천하지 않으면 누가 오겠느냐는 거죠.”

    -오늘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힘들다”고 했는데, 괜히 대표를 맡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나요.

    “엊그제 임원회의 하면서 ‘우주선 타고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사장이 입에 올려선 안 될 말이지만, 어떤 때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이 돼야 하고, 어떤 때는 애국자가 돼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대부분 부동산 전문가들이고, 부동산으로 돈 벌었다는 소문 들으면 배 아파합니다. 포스코건설이나 게일사가 이런 지탄을 받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서도 적정한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게 쉽지 않네요. 처음엔 사장 되면 좋을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부사장이 훨씬 나은 것 같아요(웃음).”

    ‘선각자 같은 도시’

    -10년 뒤에 사람들은 송도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세계엔 마치 선각자와 같은 도시가 있어요. 미국의 보스턴이나 시애틀, 마이애미 옆 웨스트 팜비치,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처럼 말이죠. 한국에서는 송도가 그런 대접을 받기 바랍니다. 이 도시를 건설할 때 경제 여건이 어려웠지만, 도시 건설로 경제를 살리고 경기 활성화에 불을 붙인 도시라고 기억해준다면 우리가 할일은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때론 왜 인천에 이런 국제적인 수준의 도시를 만들어야 하는지 반문하는 사람도 있어요. 왜 아까운 땅에 골프장 만드느냐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골프장 수지를 맞추려면 땅 매입비용이 평당 40만원을 넘어서면 안 된다고 합니다. 우리도 차라리 그 땅에 아파트 짓고 녹지 조성하면 돈 더 법니다.

    그러나 평당 180만원에 사서 40만원짜리 골프장으로 씁니다. 이런 발상은 한국 기업이라면 못 해요. 멋진 국제도시가 돼야 하기 때문에 그런 시설이 필요한 겁니다. 이는 가치 판단의 문제예요. 우리 사회가 아직 이해하기 힘들죠.”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요새 기업 하는 사람들이 고민하고 걱정하는 부분인데요. 기업인에 대한 시각이 너무 부정적이라는 점이죠. 맥이 풀릴 때가 많아요. 물론 과거에 기업이 크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정경유착 같은 어두운 면이 있었죠. 지금 빠른 속도로 투명한 사회로 나아가고 기업의 과오가 드러나고 있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기업은 우리의 밭이라는 점입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 중요성을 인정하고 용기를 북돋워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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