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호

‘밀항자’에서 일본 골프 재벌로, 이호진 이안골프그룹 회장

“골프장 사업 시작한 뒤 한국 이름 석 자 당당히 씁니다”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입력2006-03-13 15: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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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골프장은 한국과 사정이 많이 다르다. 골프장이 2000개가 넘으니 주중엔 골퍼를 찾아볼 수 없는 골프장도 많다. 해마다 수십개의 골프장이 도산한다. 그런데 한 재일교포가 공격적으로 골프장을 매입하고 나섰다. 한국 골퍼들에게도 회원권을 팔고 있다. 15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각종 유흥업과 부동산 개발업으로 큰돈을 번 이호진씨. 그가 뒤늦게 ‘레드오션’인 일본 골프장에 ‘올인’하게 된 이유를 들어봤다.
    ‘밀항자’에서 일본 골프 재벌로, 이호진 이안골프그룹 회장
    일본은 골프장이 포화상태다. ‘리조트법’에 따라 골프장 건설 붐이 일면서 1984년부터 1994년까지 700여 개 골프장이 새로 건설되는 등 한때 일본 내 골프장 수는 3000개에 육박했다. 이처럼 골프장이 과잉 공급된 상황에서 1990년대 초반 버블 경제가 무너진 뒤로 골프장 이용객 수가 급격히 줄어 해마다 수십개 골프장이 도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에서 골프장 운영은 힘든 사업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뒤늦게 골프장 사업에 뛰어들어 공격적으로 골프장을 매입하고 있는 재일교포가 있다. 이안골프그룹 이호진(李好珍·57) 회장. 2001년 우연한 기회에 골프장 사업을 시작한 그는 현재 홋카이도와 나고야 등지에 6개의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으며, 규슈 가고시마에 있는 시사이드 골프장 인수 작업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그는 규슈 지방에 있는 골프장을 추가로 매입해 보유 골프장을 10개로 늘릴 계획이고, 한국과 중국 진출도 고려하고 있다.

    빚 대신 넘겨받은 골프장

    2월2일과 10일 두 차례에 걸쳐 고국을 방문한 이 회장을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내 이안골프그룹 한국지사에서 만났다.

    -골프장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10여 년 전 홋카이도에서 토니원 골프장을 운영하는 고교 선배에게 돈을 빌려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배가 1999년에 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대신 유족들로부터 골프장을 넘겨받았습니다. 골프장에 얽힌 각종 채무 및 계약 관계를 정리하는 데 2년이 소요돼 제가 직접 골프장을 소유하고 운영하기 시작한 건 2001년부터입니다.”

    -그전에도 골프장 사업에 관심이 있었나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골프 치는 것만 좋아했지, 골프장 경영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 없었어요. 하지만 제가 경쟁에서 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특히 일본 사람한테는 지고 싶지가 않아요. 그래서 악착같이 했죠. 토니원을 인수했을 당시 연간 이용객 수가 1만2000∼1만3000명이었는데, 1년 반 만에 2만명으로 끌어올렸어요. 그러고 나니 홋카이도의 다른 골프장 몇 군데에서 운영을 맡아달라, 싸게 넘기겠다며 연락해오더라고요. 그래서 홋카이도 내 이안 골프장과 오샤만베 골프장을 추가로 매입했습니다.”

    -골프장 이용객 수를 어떻게 끌어올렸습니까.

    “골프장 잔디를 정비하고 길을 만드는 작업반 사무실에 방을 하나 만들어 그곳에서 1년을 살았습니다. 골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게 잔디인데, 경비를 절감하면서 잔디를 최상의 상태로 만들려면 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오너를 직접 대면하는 일도 드물 텐데, 아예 함께 생활하겠다고 짐 싸들고 들어왔으니 그린키퍼(잔디관리사)가 반겼을 리 없죠. 더군다나 제가 한국인이라는 점을 못마땅해하는 눈치였어요. 그런데 자꾸 부딪치고, 술잔도 주고받으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다 보니 조금씩 거리감이 좁혀졌어요. 잔디 상태가 좋아진 것은 물론이고요. 처음엔 옥신각신했던 직원들이 모두 ‘심복’이 돼서 제가 지금까지 골프 사업을 키우는 데 밑거름이 되어줬습니다.”

    -일본엔 골프장이 2000개가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경기도 아직은 제대로 회복된 게 아니고요. 그런데 단지 잔디를 좋게 만들었다고 망해가던 골프장을 살려냈다니….

    “시설 좋은 골프장을 그냥 놀릴 수 없어 토니원 골프장이 있는 홋카이도 유바리군 구리야마쇼 지역주민들에게 주중에 골프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어요. 주민들이 처음엔 ‘설마 공짜겠어?’ 하고 믿지 않았는데, 정말 공짜라는 걸 확인하고 나서는 하나 둘, 오랫동안 치지 않던 골프를 다시 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보니 주말 유료 이용객 수도 늘어나고, 몇 개월 후엔 주민들이 먼저 (주중에) 공짜로 치기 미안하니까 멤버십(연회비를 내고, 이용 요금을 할인받는 제도)을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지금껏 연 이용객 수 2만여 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싸다고 다 사는 건 아니죠”

    단시간 내에 홋카이도에서 골프장 사업으로 명성을 높인 그는 도쿄 인근의 나수노조 골프장과 나고야 인근의 나가센도 골프장, 히요시 골프장을 추가로 매입했다. 그는 “싸다고 다 사는 게 아니라 기존 회원 수가 어느 정도 되고, 지역적으로 새로운 회원 유입 가능성이 커 노력하면 3년 안에 흑자로 전환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서는 골프장만 매입한다”고 말했다.

    일본 내 골프장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헐값’에 내놓은 골프장 매물이 수두룩하다지만, 골프장 6개를 소유하고, 추가로 매입할 계획이라면 상당한 자본이 필요할 터.

    -재산이 얼마나 됩니까.

    “골프장을 3개쯤 더 매입할 만한 재산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수십만평인데 땅값만 계산해도….

    “요즘 일본 골프장이 아주 쌉니다. 18홀이면 보통 40만평은 되는데, 일본에서 처음 골프장을 만들었을 때는 한국 돈으로 600억원에서 1400억원쯤 들었죠. 지금은 그 10분의 1 정도면 삽니다. 은행에서 채권을 빨리 현금화하려 하기 때문에 아주 싼 값에 팔죠. 제가 파친코 업소를 6개 갖고 있었는데, 그것 하나 정리하면 골프장 하나 살 수 있습니다. 지금은 파친코 업소를 다 정리했죠. 일본에선 골프장을 담보로 은행 융자를 받을 수 없거든요. 그래서 골프장을 살 때마다 부동산을 팔아 자금을 마련합니다.”

    이호진 회장은 1949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15세 때 어머니, 누나와 함께 밀항선을 타고 일본에 건너갔다. 이후 각종 유흥업과 부동산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일본과 제주도를 오가며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오사카에 이미 자리를 잡은 터라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내진 않았지만 그의 청년기는 누구보다 치열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혼자가 됐어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시 제주도로 돌아가시고, 누나는 같은 밀항선을 탔던 청년과 결혼해 출가했거든요. 그때가 열아홉 살이에요. 일본을 떠나던 날 부두에서 아버지가 제손에 3000엔을 쥐어주시며 이러시더군요. ‘나는 열다섯 살에 혈혈단신 밀항했어도 일본에서 이만큼 자리잡았는데, 넌 고등학교까지 졸업했으니 훨씬 낫지 않겠냐.’ 그날부터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유흥업으로 기반 마련

    혼자 남겨진 그는 오사카에서 ‘밑바닥’ 일치고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할 만큼 온갖 일을 했다. 공사장 막노동, 고구마 장수, 술집 웨이터…. 열심히 살았지만 어느 한 곳에 진득하니 붙어 있지 못하던 그는 스물한 살에 지금의 부인을 만나 일찌감치 가정을 꾸렸다.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밀항자’에서 일본 골프 재벌로, 이호진 이안골프그룹 회장
    “커피숍에서 아내를 처음 봤어요. 아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키가 커서 전 당연히 대학생이나 아가씨일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열다섯 살밖에 안 된 고등학생인 거예요(웃음).”

    이미 빼앗긴 마음 되찾을 길 없어 그는 얼마간 교제를 하다 여학생의 집으로 찾아갔다. 결혼 승낙을 받겠다고.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여학생과 결혼이라니, 어른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호통을 치며 쫓아냈다. 그런데도 둘은 곧 동거를 시작하고 말았다. 그리고 2년 후 첫아들이 태어났다.

    고교 졸업 후 하루에 2, 3개씩 직장을 바꿔가며 일하던 그는 가장이 된 후 아내와 함께 작은 스낵 바를 운영했다. 어린 자식 몸에 끈을 두르고, 그 끈을 가게 기둥에 묶어놓은 채 부부는 밤잠 못 자고 허리가 휘도록 일했다.

    “고생은 했지만 제가 장사 수완이 좋았어요. 스낵 바가 잘되자 인근에 식당을 여러 개 열었어요. 그때만 해도 가라오케가 나오기 훨씬 전인데 ‘쇼펍(Show Pub)’이란 것도 시도했죠. TV에서 가수들이 노래하는 걸 보고 그대로 따라할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해 아내가 만들어준 의상을 차려입고 손님들 앞에서 노래를 한 거예요.”

    밥 먹고 술 마시면서 쇼도 볼 수 있으니 손님이 몰려드는 건 당연했다. 그는 돈이 모이면 가게 숫자를 늘렸다. 식당, 술집, 가라오케…. 오사카에서 ‘먹고 노는 현금 장사’로 기반을 다진 그는 29세 때 도쿄 북부의 사이타마현으로 생활 터전을 옮겼다.

    “아는 분이 사이타마현에 곧 신칸센이 개통될 예정이라 부동산에 투자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정보를 줬어요. 오사카에서 하던 장사를 정리하고 사이타마현 오미야시에 삼양개발주식회사를 만들어 부동산 개발·임대사업을 시작했죠.”

    거품 붕괴가 몰고온 시련

    부동산 개발업을 하기에는 자본이 넉넉지 않았던 그는 탁월한 장사수완을 활용했다. 낡고 허름한 건물을 싼 값에 구입한 다음 그 건물에서 직접 음식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주로 ‘야키니쿠(燒肉)’, 즉 불고깃집이었다. 장사가 잘되면 건물 값어치도 따라서 올라갔다. 값이 오르면 팔아서 상당한 시세차익을 남기고, 또 다른 건물에 투자했다. 부동산 개발업을 하면서 노래방, 나이트클럽, 학원, 파친코 업소도 여러 개 운영해 ‘꽤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러다 1990년대 초반 일본 버블 경제가 무너졌다.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교포 은행도 망해 교포 사회에 타격이 심했어요. 교포 은행이 망하자 한국인을 대하는 일본 은행의 태도도 싹 달라졌죠. 전 당시 사이타마 은행과 거래하고 있었는데, 부동산 사업을 하면서 빌린 돈을 은행에서 조기 회수하겠다고 달려드는 거예요.”

    일본 은행에선 돈을 갚으라고 숨통을 조여 오는데, 교포 은행마저 문을 닫아 돈 구할 데는 없고…. 그는 결국 신속하게 부동산을 정리했다. 은행 담보 비중이 낮고, 장기적으로 투자 가치가 있는 최소한의 건물만 남기고, 나머지는 신속하게 팔아 현금을 확보했다. 그는 “더 많은 것을 얻으려 욕심 내지 않고, 작은 손해를 감수함으로써 더 큰 손실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재산상의 손실은 최소한으로 줄였지만, 상실감이 컸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니 교포들 사이에 반목이 심해졌어요. 전 파친코 업소를 여러 개 계속 운영하고 있었는데 일하는 낙이 없었어요. 정신적으로 가장 피곤할 때 골프장 운영을 맡게 된 거예요. 그 무렵 파친코 업소를 하나 맡아 하던 아들녀석도 그만두고 요리를 배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무래도 하늘이 내게 다른 일을 시키시려나 보다’ 생각하고 사이타마현에 벌여놓은 사업체를 모두 아내와 큰아들에게 맡기고 저 혼자 토니원 골프장이 있는 홋카이도로 떠났죠.”

    부동산을 제외하고, 사이타마현에서 하던 사업은 대부분 정리했다. 큰아들은 현재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둘째아들은 미국 유학 중이다. 사이타마현의 부동산은 모두 부인이 맡아 관리하고 있다.

    “50대에 골프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게 참 행복해요. 물론 지금까지 해본 사업 중 골프장이 가장 돈이 안 되는 사업이에요. 하지만 다른 일을 할 때 느껴보지 못한 자부심이 들어요. 골프장에 오는 고객 대부분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지위를 가진 분들이다 보니 느끼는 점도 많고요. 지금으로선 남은 일생 골프장 사업에만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에요. 큰돈이 안 돼도 직원들에게 월급 제때 주고, 천천히 투자금 회수하고, 고객들에게 큰 만족 주면 그만이죠.”

    7개 골프장 종단 배치

    이 회장은 지난해 말부터 한국 골퍼들에게 이안골프그룹 소유 골프장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회원권을 판매하고 있다. 회원권 값은 입회비와 보증금을 포함해 개인 1500만원, 부부 2000만원, 가족(부부 외 가족 1인) 2500만원, 법인 3000만원. 이 회장은 “회원이 될 경우 인수 예정인 가고시마 골프장을 포함한 7개 골프장을 정회원 자격으로 무제한 이용할 수 있고, 그린피도 면제된다”고 밝혔다.

    한국 골프장 사정을 잘 아는 이안골프그룹 한국지사 송석형 상임고문은 “한국에서 주말을 낀 라운딩은 예약이 극히 어렵고, 1인당 그린피만 20만원에 육박하는 점을 감안하면 30만∼40만원대의 항공료를 포함하더라도 여유 있게 라운딩을 즐기고 싶어하는 골퍼에겐 이안골프그룹 회원권이 매력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인수 작업을 진행 중인 규슈 지방의 골프장은 어떤 곳입니까.

    “시사이드 골프장(Seaside C.C)은 일본에서도 가장 남쪽에 있는 규슈 섬의 최남단인 가고시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겨울철에도 온화해서 혹한기 관광지로 탁월하죠. 바다와 접하고 있어 경관도 뛰어납니다. 시사이드 골프장을 인수하게 되면 홋카이도에서부터 가고시마까지 일본 전역에 7개의 골프장을 종단 배치하는 셈이 됩니다.”

    -한국 골프장 매입에도 관심이 있다죠. 고향인 제주도를 고려하고 있나요.

    “제주도엔 골프장이 너무 많아서 좀 그렇습니다. 제주도 사람들이 골프를 안 친다는 점도 좀 걸리고요. 한국에서 골프장을 매입하면 서울 근교가 될 것 같습니다.”

    -현재 소유한 골프장 이용객 중 한국인 비율은 얼마나 됩니까.

    “아직은 7∼10%밖에 안 됩니다. 앞으로 일본인 대 한국인 비율을 8대 2까지 높일 계획이에요. 중국과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골프 여행을 떠나는 한국인이 많은데, 접근성이나 쾌적성, 서비스 면에서 일본이 훨씬 뛰어나다고 자부합니다.”

    -일본과 한국의 골프 문화가 아무래도 좀 다를 텐데요.

    “한국인 이용객이 늘어나면 일본인 고객 숫자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그건 제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간혹 식당이나 온천 같은 부대시설에서 두 나라의 문화 차이가 드러나는데, 대개 1년쯤 지나면 양쪽 모두 서로의 문화에 익숙해져요. 앞으로는 한국인과 일본인 연합 아마추어 골프 대회를 열어서 한일 두 나라간 친선도 도모할 계획입니다.”

    -한국인 이용객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있나요.

    “한국인을 위한 혜택을 따로 준비한 건 없어요. 일본에선 보통 전반 9홀을 마친 뒤 1시간가량 휴식을 취하고, 후반 9홀을 다시 시작하니까 여유있게 라운딩을 즐기고 싶은 골퍼들에겐 좋은 기회죠. 또 한국인이 운영하는 골프장이니 심적으로 좀더 편안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한국인 직원을 늘려서 의사소통의 불편함을 줄일 계획입니다.”

    현실적으로 따져봐야

    -일본 골프장들이 속속 한국 골퍼를 상대로 한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일부 업자들이 3년 혹은 5년짜리 골프장 운영권을 가지고 한국 골퍼를 상대로 10년, 20년짜리 회원권을 팔고 있어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일본 골프시장 사정이 워낙 좋지 않다보니 일부 골프장에서 한국인을 끌어들일 수 있는 여행사 등에 한시적으로 경영을 맡기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면 경영권을 가진 업자들이 한국 골퍼들에게 회원권을 팔고요. 그런데 그럴 경우 위탁경영 계약기간이 끝난 뒤에도 회원권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가 확실치 않습니다. 더군다나 일본은 한국처럼 회원권협회 같은 게 없어서 회원권에 대한 관리나 보장이 잘 안 됩니다. 그런 점은 한국이 참 잘하는 거예요.”

    -이안골프그룹이 한국인을 상대로 회원권을 팔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이가 적잖습니다.

    “회원권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그런 사정을 더 잘 압니다. 그래서 6개 골프장을 제가 다 소유하고 있는지 등기부등본을 보여달라는 분들도 계세요. 그러면 다 보여드립니다. 이안골프그룹에서 한국인 회원 모집을 하는 건 기존 일본 회원들로 구성된 이사회에서도 동의한 바이고요.

    ‘밀항자’에서 일본 골프 재벌로, 이호진 이안골프그룹 회장
    저야 5∼6년 안에 골프장 가치가 최소 2∼3배 오를 거라고 기대하고 있지만, 일본 골프시장이 앞으로도 어렵지 않겠냐며 걱정하시는 분도 많다는 걸 잘 압니다. 그런데 지금 투자한 자금이 워낙 적기 때문에 현 상태가 계속된다고 하더라도 10년 안에 투자 자금을 모두 회수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요.”

    이 회장은 ‘골프장은 그 지역 주민을 주요 고객으로 삼아 운영돼야 한다’는 게 자신의 골프장 경영 원칙이라고 밝혔다. 한국인을 상대로 고가의 회원권을 파는 데 주력할 게 아니라 다양한 상품 개발, 서비스 개선으로 주중 이용 고객을 늘려가겠다는 것. 토니원 골프장 운영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직접 고객들에게 “4명의 일행이 모두 티샷을 페어웨이에 올리면 4000엔을 드리겠다”는 식의 깜짝 제안을 해 즐거움을 줬다는 이 회장은 “상품개발팀을 운영해 고객이 만족할 만한 프로그램, 이벤트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골프장 회원이 이용할 수 있는 위락 시설을 온천, 스키장 등으로 넓혀 가족단위 이용객을 유치할 생각이라고 한다.

    일본에 있는 골프장 회원권을 구입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국레저연구소 서천범 소장은 “우리나라 골프장 회원권과 비교하면 일본 골프장 회원권이 가격은 훨씬 싸지만 현실적으로 몇 번이나 이용할 수 있을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호진 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뜻밖의 고백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아마노(天野)’라는 일본 이름을 사용해왔다는 것. 그런데 골프장 사업을 시작한 뒤로는 ‘이호진’이라는 한국 이름을 당당히 내세우고 있다고 한다.

    “일본 이름으로 살긴 했지만 제가 제주도에서 태어났고, 한국인이라는 걸 잊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제 두 아들에게도 언제나 ‘내가 누구인가’는 확실히 알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해왔죠. 사람은 모두 평등하니까 지위가 높다고 아부하지 말고, 지위가 낮다고 무시하지 말라고 가르쳤고요. 지금까지 부끄럽게 살아온 것도 아닌데, 골프장 사업을 시작한 뒤로 저 스스로 뭔가 당당해진 것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늘 평상심을 갖고 살려고 노력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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