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호

국내 첫 성노동자 법외노조 ‘민성노련’ 이희영 위원장 인터뷰

“손님이 주는 스트레스보다 국가가 주는 스트레스가 더 커요”

  • 최호열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06-03-27 14: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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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복시위, 단식농성은 집창촌 여성들의 자발적 행동
    • 집창촌 여성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 포주→성산업인, 윤락녀→성노동자, 성매매→성거래로 바꿔야
    • 집창촌 없애면 전국이 사창가化
    • 생계 위한 자발적 성거래 인정해야
    국내 첫 성노동자 법외노조 ‘민성노련’ 이희영 위원장 인터뷰
    성매매특별법(이하 성특법) 시행으로 모든 성매매가 법으로 금지된 가운데 집창촌(성매매집결지) 여성들이 자신들도 노동자라며 노동조합을 만들고 성매매업소 주인들과 단체협약을 맺은 곳이 있다. 경기도 평택역 근처에 있는 집창촌(속칭 ‘쌈리’) 성매매 여성들이 만든 ‘민주성노동자연대(약칭 민성노련)’가 그것.

    민성노련은 현재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법외노조지만 노조 회비를 걷고, 노조 규약과 사무실을 갖추고 있는 등 외형상 여느 노조와 다를 바 없다. 우리나라 첫 성노동자 법외노조인 셈인데,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홈페이지(cafe.daum.net/gksdudus)도 운영 중이다.

    민성노련 위원장 이희영(25)씨를 만나기 위해 집창촌 한가운데 있는 노조 사무실을 찾은 시각은 저녁 7시경. 성매매 여성들은 물론 업소 주인들도 스스럼없이 노조 사무실을 드나들었다. 그러는 사이 어둠이 짙어지며 업소에 하나 둘 불이 켜지고 업소 유리문 앞엔 흰색 탱크톱과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들이 손님맞이 채비로 부산했다.

    평범한 옷차림과 생김새의 이씨에게 나이를 물으니 “81년생”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그가 홈페이지에 올린 글들은 꽤 전문적이고 논리적인데, 뜻밖에도 중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라고 했다. 자신이 노동자란 사실을 깨달은 후 책을 보며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강령 준수, 회비 납부



    -성매매 여성들의 노조라는 게 아직은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민성노련은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2004년 성특법 시행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처음엔 단속이 심해도 시간이 지나면 예전처럼 흐지부지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직업 특성상 이동이 잦아 흔히 집창촌이라고 하는 성매매집결지마다 친한 친구들이 있어요. 그 친구들과 통화를 하면서 ‘우리가 나서서 시위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오갔어요. 그 과정에서 한터여성종사자연맹(한여연)이라는 전국 집창촌 여성들의 모임이 만들어졌어요. ‘한터’는 집창촌을 일컫는 말이에요. 아이러니하게도 성특법이 우리를 뭉치게 하고, 우리도 노동자라는 걸 일깨워준 셈이죠.”

    -당시 성특법 반대 시위도 여러 차례 했죠?

    “2004년 12월6일 정부청사 앞에서 소복(素服)시위를 할 때는 진짜 눈물이 났어요. 한겨울에 비까지 내리는데, 안에 아무것도 안 입은 채 소복차림으로 몇 시간을 앉아 있었으니 얼마나 추웠겠어요. 그래도 뜨거운 커피를 타다주며 ‘힘내라’고 격려해주는 분들이 있어 힘을 얻었어요. 국회 앞에서 73일 동안 단식투쟁을 한 것도 기억에 남아요.”

    -당시 집창촌 여성들의 시위가 자발적인 게 아니라 포주들의 강압으로 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는데요.

    “모자며 마스크도 맞춰 쓰고 시위도 체계적으로 하니까 업주들이 조종한 게 아니냐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자발적으로 참여한 거예요.”

    -한여연과 민성노련은 어떤 관계입니까.

    “한여연이 발전해 지난해 6월29일 전국성노동자연대 한여연(전성노련)이 정식 발족했어요. 이날을 ‘성(性)노동자의 날’로 정했고요. 우리도 당연히 가입하고 활동을 했어요.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까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와 같지만 활동방향과 생각이 조금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탈퇴하고 민성노련을 만든 거죠.”

    -어떤 점이 달랐습니까.

    “같은 집창촌이라 해도 지역마다 처한 여건과 특성이 달라요. 그래서 성명을 하나 낼 때마다 전국의 의견을 취합하는 데 시간이 걸려 발빠르게 대응하기가 힘들더라고요. 또한 우리가 시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안에 대해 성명만 내자고 하는 곳도 있고요.”

    -민성노련은 현재 어느 정도 규모인가요.

    “이곳에서 일하는 여성이 220명 정도인데 모두 가입했어요. 여기서 일한다고 무조건 가입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우리 노조의 12대 강령을 준수하는 사람에 한해 가입을 허락해요. 또한 매달 1만원씩 노조 회비를 걷고요.”

    ‘성산업인연대’와 단체협약

    -노동조합은 상급 노조단체에 가입할 수 있는데,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에는 가입했습니까.

    “가입에 앞서 우리 성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는지 대한 공개질의서를 두 노총에 다 보냈는데, 아직 공식적인 답변을 받지 못했어요. 민주노총과는 계속 만나서 논의하고 있습니다.”

    -성매매 여성을 노동자라고 한다면 성매매가 노동인 셈인데, 그게 사회적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요.

    “노동의 기준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흔히 노동은 생산물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노동을 그렇게 한정하면 가사노동도 노동이 아닌 게 돼요. 또한 서비스업은 그 자체가 직접 생산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는 단지 성이라는 특수한 것을 거래한다는 게 다를 뿐이지, 분명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예요.

    근로기준법 제14조에 분명히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 그리고 ‘임금을 목적으로 타인(사용자)의 지휘·명령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는 제공하는 노동이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모두 근로자라 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어요. 우리는 법적으로 노동자예요.”

    -정해진 월급을 받는 게 아니라 일한 만큼 가져가는 방식이니까 일종의 변형된 자영업이 아닌가요?

    “일반적인 노동자의 기준으로만 보지 말고 우리의 특수성을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계약관계에 의해 성산업인(업소 주인)들로부터 주거와 숙식, 기타 편의사항을 무료로 제공받고 일을 해요. 업소를 찾은 고객들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성산업인으로부터 그 수익의 일정 부분을 임금으로 받아 생활하는 노동자예요.”

    -업소 주인이 고용주라는 건데, 장소 및 편의를 제공하는 임대인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곳 성산업인들은 우리를 강압적으로 착취하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단순한 임대인 이상의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우리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 성산업인들의 모임인 민주성산업인연대와 대등한 관계에서 노사 단체협약을 맺고 있어요.”

    -노조 전임자는 사용자측으로부터 임금을 제공받도록 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사용자측인 민주성산업인연대로부터 임금을 받고 있습니까.

    “노조 전임자는 위원장인 저와 감사, 이렇게 두 명인데 전에 벌던 돈의 100%를 받지는 못해도 생활할 수 있을 정도는 받고 있어요.”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하루 10시간 근무, 월 5일 휴무, 각종 특별휴가 보장 등 대부분의 협약 내용은 이곳에서 예전부터 관습적으로 지켜졌던 것들이라 어려움이 없었어요. 그걸 문서로 공식화한 거죠.”

    ‘성노동자의 인간선언’

    -‘포주’ 대신 ‘성산업인’, ‘윤락녀’ 대신 ‘성노동자’란 말을 쓰고, ‘성매매’란 용어 사용에도 반대하는데, 이렇게 단어를 바꾸는 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국내 첫 성노동자 법외노조 ‘민성노련’ 이희영 위원장 인터뷰

    성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이희영씨. 이들은 모두 자신이 주체적으로 성을 거래하는 노동자라고 주장했다.

    “‘포주’는 사전에도 없는 말일 뿐 아니라 우리 성노동자들에게 오명(汚名)의 낙인을 찍는 단어예요. 포주 밑에 있는 우리는 수치스러운 창녀이고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일 뿐이죠. 하지만 ‘성노동자’ ‘성산업인’에는 스스로 주체가 되어 당당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매매’도 올바른 표현이 아니에요. 국제사회에서는 ‘성거래노동(sex trade working)’이란 용어를 써요. ‘성매매’는 인신매매와 동일시하기 위해 여성계가 의도적으로 만든 용어예요. 인신매매는 영어로 ‘trafficking’인데, 여기엔 강제적 성매매가 포함되죠. 우리는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주체가 되어 고객과 합의하에 성을 거래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거래’라고 말하고 싶어요.”

    -민성노련에서 제정한 ‘12대 강령 선언문’에 ‘성노동자의 인간선언’이라는 말이 나오더군요.

    “우리도 인간이고 이 나라의 국민입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없어져야 할 존재, 악의 소굴에 사는 사람들로 치부되고 있어요. 또한 우리를 주체성이 없는 인간, 피해 받는 여성으로만 규정하려 해요. 그래서 우리는 절대 그렇지 않고 주체성을 가진 인간임을 선언한 겁니다.”

    -그렇게 성거래하는 것이 당당하다면 일에 자긍심을 가져야 하는데, 실제로는 집창촌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여성이 여건만 되면 이곳을 떠나고 싶어하는 게 사실 아닌가요?

    “일에 대한 자긍심이나 직업의식이 없는 것은 사실이에요. 단기간에 돈을 많이 벌어 이곳을 떠나 다른 일을 하고 싶어하죠. 하지만 100% 만족을 주는 직업은 없잖아요.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빈민 출신이에요. 사회적으로 빈곤층 문제가 해결된다면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질 거예요. 이곳 사람들 대부분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합니다. 월 200만∼300만원은 벌어야 생활할 수 있는데, 가난이 대물림된 상태에서 어떻게 그만한 벌이가 가능한 직업을 가질 수 있겠어요. 없는 사람들이 더 잘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대개는 생존권 때문이라고 하지만, 과소비를 하기 위해 성을 거래하는 여성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여성의 90%가 가장이에요.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이 일을 안 해도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해요.”

    -백번 양보해 이곳엔 강압에 의해 성거래하는 여성이 없다 하더라도 다른 곳엔 그런 피해여성이 있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지금도 성매매집결지 여성들이 선불금에 의해 노예처럼 묶여 있고 팔려가기도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선불금을 미끼로 착취하는 성산업인은 없다고 봐도 돼요. 선불금에 대한 이자가 없어진 지 오래예요.”

    -성특법이 만들어진 계기가 2001년 군산 윤락가 화재 참사사건인데, 당시 그곳 여성들은 감옥 같은 곳에서 수용 생활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군산 윤락가는 집창촌이 아니에요. 그런 곳이 지금도 전국에 몇 곳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솔직히 거기에 억압이 없다고는 말을 못하겠어요. 전 오히려 그런 곳을 집창촌으로 만들어 양지로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나쁜 남자’나 ‘창(娼)’ 같은 영화를 통해 부정적인 이미지만 갖고 있을 뿐 실제 집창촌이 어떤지 잘 몰라요. 어떻게 보면 지금이 집창촌을 제대로 알릴 기회라고 생각해요.”

    집창촌 양성화해야…공창제는 반대

    -정부와 여성단체에서는 집창촌 자체를 없애려고 하는데, 오히려 합법화하자는 주장이군요.

    “우린 집창촌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없어질 거라고 생각지도 않고요. 이곳을 없애면 음성적인 성거래만 늘어나 전국이 사창가로 변할 뿐이에요. 오히려 집창촌을 양성화해서 음성적인 성거래를 막아야 합니다. 다만 새로운 사람들이 대거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 집창촌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여기 오는 분들 연령대가 군 입대를 앞둔 혈기왕성한 20대 초반부터 60대 후반까지 다양해요. 대부분 룸살롱 같은 데 갈 돈이 없는 서민이에요. 혼자 사는 장애인도 심심치 않게 있고요. 이곳이 없어지면 이런 사람들은 성욕구를 어떻게 해소하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여성단체 사람들은 ‘교육을 시키면 된다’고 하는데, 그건 남성의 성생리를 너무 몰라서 하는 말 아닌가요? 또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100% 삽입섹스만을 위해 오는 것은 아니에요. 이곳에 와서 아내와의 성적인 문제나 고민을 털어놓고 해결방법을 묻는 중년 남성도 있어요.”

    -집창촌이 없어지면 또 어떤 문제가 생길 거라고 봅니까.

    “국민 건강이 위험해지죠. 여기에선 정기적으로 보건검진을 실시하고 있어요. 몸이 재산이니까 우리가 적극 나서서 검사를 받아요. 그런데 음성적으로 성거래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보건검진을 안 받아요. 그러면 자기가 성거래를 한다는 게 알려지니까요. 성병과 에이즈 확산을 막을 방법이 없는 거죠. 게다가 요즘은 해외에 나가 성거래 활동을 하는 동료도 많아요. 정부에선 그 숫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들이 언젠간 다시 돌아와 활동을 할 텐데, 그들에 대한 보건검진은 불가능하죠. 끔찍한 일이에요.”

    -결국 공창제(公娼制)가 대안일 수 있겠네요.

    “그건 아니에요. 공창은 국가에서 성거래 여성을 관리하는 것인데, 우리가 공무원도 아닌데 왜 국가에서 우리를 관리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웃음). 우리는 우리가 주체성을 가지고 일하겠다는 거예요. 국가에서 우리를 보호는 해야 하지만 관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성특법은 여성단체 일자리 창출법”

    -성매매에 반대하는 여성단체와는 사이가 좋지 않겠군요.

    “특별법을 만든 것은 정부이지만 그걸 만들게끔 주도한 것이 여성단체들이라 반감이 커요.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안 주면서 방해만 하니까요. 그들은 말로는 우리를 위한 법을 만든다고 하면서 한번도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어요. 우리를 도와주는 진보 여성단체들이 있긴 하지만 아직은 힘이 없는 모양이에요.”

    -여성단체들이 왜 성매매를 반대한다고 봅니까.

    “기독교 윤리주의, 순결 이데올로기에 너무 얽매여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들은 ‘가부장제 아래에서 여성들은 항상 억압돼왔다’며 ‘성매매도 여성 억압의 상징’이라고 말해요. 따라서 성매매가 없어져야 남녀가 동등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남자들이 성을 사는 입장이기 때문에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사실 아닐까요? 그런 면에선 성매매 여성 자체가 피해자라고 말할 수 있는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피해자가 아니라 자발적인 성거래자예요. 1993년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여성에 대한 폭력의 근절을 위한 선언’ 제2조는 ‘강요된 성매매만을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유엔 가입 국가니까 당연히 이 선언을 준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남자만 성구매자라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에요. ‘호빠(호스트바)’ 같은 곳에선 여자가 성구매자이잖아요.”

    -남성이든 여성이든 성은 거래하는 게 아니라는 게 보통 사람들 생각 아닐까요?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사회인데 돈으로 거래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거래하는 게 자본주의 아닌가요.”

    -마약, 무기처럼 거래해서는 안 되는 것도 있잖아요.

    “마약이나 무기는 그게 거래됨으로써 피해자가 생겨요. 하지만 자발적 성거래에선 피해자가 없잖아요.”

    -정부와 여성단체가 성거래 여성들이 자활을 통해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아요. 지난해 성거래 여성들을 위한 자활지원 예산이 220억원이었어요. 그런데 성매매 피해여성 1인당 매달 지급되는 자활보조금이 37만여 원에 불과해요. 더구나 그 돈이 성매매 피해를 받지 않은 여성들에게도 지급되고 있어요. 상담 성과가 없으면 상담소에 지원이 안 되니까 찾아오면 무조건 주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면서 여성단체에서는 상담을 한다며 상담료 명목으로 돈을 챙겨요. 전 솔직히 성매매특별법이 성거래 여성을 위한 법이라기보다는 여성단체 사람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어요.

    국내 첫 성노동자 법외노조 ‘민성노련’ 이희영 위원장 인터뷰

    2004년 12월 정부 종합청사 앞에서 성매매특별법 반대 소복시위를 벌이는 성노동자들.

    그리고 하루 1시간씩 6개월 동안 자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창업지원을 하는데, 자활 프로그램이란 게 십자수, 애견미용, 꽃꽂이 등으로 한정돼 있어요. 집창촌 성거래 여성만 3000명이 넘고, 음성적 성거래 여성까지 합치면 수십만명인데 그들이 모두 같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얘깁니까?”

    -정부에서 전국 10개 집창촌을 시범 지역으로 선정, ‘성매매집결지 폐쇄와 정비’ 작업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2007년까지 폐쇄하겠다는 법안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좀더 들여다보면 집창촌을 폐쇄한 후 재개발 사업을 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어요. 여기 평택만 해도 그래요. 솔직히 성매매 피해여성을 없애겠다는 명분 뒤에 재개발 이익을 얻겠다는 숨은 목적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화제를 바꿔보죠. 이 위원장은 어떻게 해서 이곳에서 일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미성년자인 중3 때부터 단란주점, 룸살롱 같은 곳에서 일했어요. 엄마는 없고, 아버지는 아프고, 동생은 학교에 다녀야 했고…. 제가 일하지 않으면 식구들이 다 굶어죽을 상황이었거든요.”

    -다른 건전한 곳에서 일할 수는 없었습니까.

    “어린아이가 당연히 그런 곳에서 일할 생각을 하지, 처음부터 이 바닥으로 들어올 생각을 하지는 않죠. 저 하나만 먹고 산다면 시간당 2000원 남짓 받는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 주유소 등에서 일했을 거예요. 하지만 당장 집에 쌀이 떨어지고, 동생 등록금을 내야 하는 처지에 그런 곳에서 일해서는 생계가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중학교만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이쪽 일에 뛰어들었죠.”

    집창촌 덕에 ‘가족해체’ 막아

    -집창촌엔 언제 들어왔습니까.

    “열아홉 살 때 아버지가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돌아가시게 됐어요. 수술비 2000만원이 필요했는데 마련할 방법이 없었죠. 누가 뭘 믿고 저한테 돈을 빌려주겠어요. 그때 친구 소개로 집창촌을 알게 됐는데, 업주가 ‘아직은 미성년자라 이곳에서 일할 수 없으니까 1년 후에 오라’며 선불금 2000만원을 줬어요. 그렇게 해서 이곳 생활을 시작한 거예요. 그때 그 돈을 받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돌아가셨을 거고 동생은 학업을 중단했을 겁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갈등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없었어요. 나 하나만 고생하면 가족이 먹고 살 수 있고 아버지가 수술을 받고 살 수 있는데, 이걸 안 해서 식구들이 다 죽을 수는 없잖아요.”

    그의 눈시울이 잠시 붉어졌다.

    “사람들이 흔히 이곳에서 생활하면 인생의 낙오자, 패배자라는 의식에 빠져 자포자기의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여성은 많지 않아요. 다만 ‘왜 우리집은 가난해서 내가 이런 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죠. 저도 그랬어요.”

    -집에선 여기서 일하는 걸 모르나요?

    “지금은 알아요. 처음 이야기를 했을 때 가족들이 충격을 받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나라에서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부모로서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계시죠.”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은데요.

    “여느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정도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손님이 주는 스트레스보다 나라에서 주는 스트레스가 더 커요. 나라에서 이 일을 불법으로 규정해놓았으니까요. 전에는 일하다 경찰차가 보이면 숨어야 했고, 경찰이 ‘야, 타!’ 그러면 무조건 경찰차에 탔어요. 그저 당연한 일로 여겼죠. 하지만 요즘 이곳 아가씨들은 성노동자란 의식이 있어서 경찰이 와서 차에 타라고 하면 ‘왜 타느냐’고 따져요. 처음엔 우리를 비웃던 경찰들도 이젠 우리에게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경찰서에 가서 진술서 쓸 때 옛날엔 직업란에 뭐라고 써야 할지 몰라서 아무것도 안 썼어요. 하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성노동자’라고 써요.”

    여성계 잣대로만 판단하지 말라

    -성노동자라는 자각은 어떻게 하게 됐습니까.

    “2004년에 국회 앞에서 단식을 하면서 여러 단체 사람들을 만났어요. 거기서 이성숙 교수, 고갑희 교수, 인터넷신문 한국인권뉴스 최덕효 대표를 알게 됐어요. 그분들과 이야기하면서 우리도 노동자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그후 그분들에게 배우고 있는데, 책을 놓은 지 오래되어 너무 어려워요(웃음).”

    -노조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맞게 된 계기는?

    “지난해 오빠가 교도소에 들어가고, 동생은 군에 입대해 큰돈 들어갈 일이 없어졌어요. 몸도 많이 안 좋았고요. 그래서 일을 그만두고 잠깐 쉬던 중에 민성노련 이야기가 나왔어요. 현역에서 일하는 여성이 맡기에는 부담스러우니까 제가 이 일을 떠안은 거죠.”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이곳 환경도 달라졌어요. 인신매매 당해 팔려오고, 억압받고 학대받는 곳이 아니에요. 여성단체도 그들의 잣대로만 우리를 판단하지 말고 우리가 주체적으로 성거래를 한다는 걸 인정하면 좋겠어요. 정부도 무조건 우리가 나쁘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왜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생각하고 거기서부터 문제 해결 방법을 제시해주면 좋겠어요.”

    인터뷰가 끝난 밤 11시경 사진을 찍기 위해 집창촌을 둘러보았다. 작은 공간에 150개가 넘는 업소가 밀집해 있는데, 환하게 불을 밝힌 업소 사이사이 이가 빠진 것처럼 불 꺼진 곳이 여럿 보였다. 아가씨가 없어 문을 닫은 곳이다. 불은 켜져 있지만 아가씨가 보이지 않는 곳도 있었다. 한창때는 400명이 넘는 여성이 일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220명 정도라니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많이 쇠락한 모양이다.

    밤 11시가 넘었는데도 이곳을 찾는 남성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이씨에 따르면 아직 이른 시간으로 12시가 넘어야 손님들 발길이 이어지는데, 그래도 예전 같지는 않다고 한다.

    민성노련 노동조합 12대 강령

    1. 성노동자들의 생존권 보호를 위해 투쟁한다

    2. 성노동자들의 노동권 쟁취를 위해 투쟁한다

    3. 성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각종 인권유린을 저지하기 위해 투쟁한다

    4. 성노동자들이 질병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도록 건강권 쟁취를 위해 투쟁한다

    5. 고객인 남성을 성매매특별법에 의거 범죄자로 규정하는 것에 절대 반대한다

    6. 성노동자와 정직한 성산업인 간의 ‘합리적이며 민주적인 관계’를 추구한다

    7. 인신매매, 감금, 폭행 등이 개입된 범죄적인 성매매 행위에 절대 반대한다

    8. 성노동과 탈 성노동에 관한 것은 성노동자 자신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9. 성노동자를 억압하는 반인권 악법 ‘성매매특별법’ 폐지를 위해 투쟁한다

    10. 민주적인 성노동자들의 전국적 조직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다

    11. 성노동운동의 대의와 취지에 공감하는 제(諸)민주세력과의 연대를 도모한다

    12. 한국사회의 급진적 여성주의를 개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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