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호

부드러운 힘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

“100년 숙대, ‘섬김 리더십’으로 세상을 바꿉니다”

  •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입력2006-03-27 16: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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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드러운 힘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
    3월초순 여자대학 캠퍼스는 아직 겨울옷을 벗지 않았지만 여학생들의 웃음소리에선 봄 기운이 묻어났다. 교문 앞 게시판엔 신입생 환영회와 개강 총회, 동아리 회원 모집을 알리는 벽보들이 어지럽게 나붙어 있었다. 연극반 학생들은 노점상처럼 소리를 지르며 공연티켓을 팔았다. ‘우리가 놓쳐버린 흐르지 않는 정체성을 위하여.’ 제목이 너무 길고 어려워서인지 티켓이 잘 팔리지 않는 것 같았다.

    숙명여대는 5월이면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학교 건물마다 ‘백년의 숙명여대, 천년의 빛’ ‘부드러운 힘이 세상을 바꾼다’는 구호를 적은 플래카드가 드리워져 있었다. 필자가 젊은 시절에 와본 청파골엔 우중충한 건물이 들어차 있었는데 지금은 유럽풍으로 지어진 석조 건물이 캠퍼스를 꾸미고 있었다. 1994년 이경숙(李慶淑·63) 총장이 취임한 이후 19개의 건물을 새로 지었다. 현재 공사 중인 건물은 20번째인 대학원관(館).

    제16대 총장 취임식 다음날 숙대 캠퍼스를 찾았다. 이 총장은 4년 임기의 총장을 세 번 지내고 이번에 네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교수들의 직접선거로 뽑힌 총장으로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이 총장은 청색 스리피스 정장을 입고 있었다. 사진기자가 이 총장을 캠퍼스로 끌어내 풋풋한 신입생들과 사진을 찍게 했다. 그녀는 “신입생은 바로 눈에 띄죠. 옷 입은 게 세련되지 못하고, 얼떨떨한 표정이거든요”라고 말했다.

    -어제 취임식에 외부 손님도 많이 왔습니까.



    “아니에요. 이번에는 교내 행사로 축소했어요. 외부 초청인사는 어윤대 고려대 총장님이 유일합니다. 네 번째 취임인데다가 100주년 기념식이 5월에 있잖아요. 100주년 때 국내외에서 많은 손님을 초대합니다.

    숙명여대와 고려대학은 뿌리가 같고 태동이 비슷합니다. 일제가 침략의 마수를 뻗쳐오니까 조선왕조는 인재를 길러야겠다고 생각했겠죠. 고종황제가 이용익 대감을 불러 고대를 세우게 했고, 청파골에는 엄귀비 이름으로 숙명여대를 세웠습니다. 100년사(史)를 쓰면서 기록을 살펴보니 김성수, 송진우 등 다수 인사가 양쪽 대학에 기부금을 냈더군요.”

    숙명은 황실학교로 시작했다. 고종황제는 명성황후가 살해당한 뒤 엄귀비를 순원황비로 책봉했다. 순원황비가 내놓은 황실땅과 거액의 기부금으로 학교를 지었다.

    숙명을 경축하는 이름, 慶淑

    -고대가 100주년(2005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교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하더군요. 숙대는 어떻습니까. 1000억원 발전기금 모금은 잘 돼가고 있습니까.

    “1994년 제가 처음 취임해 100주년을 향한 비전을 선포했죠. 2006년까지 1000억원을 모으고 리더십 특성화 대학을 만들어 세계의 명문 여대로 거듭나겠다고 했어요. 1000억원을 모으겠다고 했을 때 냉소적인 분위기였죠. 1000억원은 그만두고 10억원만 모아보라는 말까지 나왔어요. 지금까지 928억원을 모았어요. 올 안에 1000억원을 채울 수 있도록 기사를 잘 써주세요.”

    이 총장은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慶淑. 그러니까 숙명(淑明)여대를 경축(慶祝)하는 이름이다.

    “아버님이 지어주셨죠. 두 번째 총장 취임할 때 윤형섭 전 교육부 장관님이 축사를 하면서 숙대를 경사스럽게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기관장이 1차 임기를 채우고 연임하려는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조직 내부의 ‘민란’이 일어난다. 임기 2, 3년 동안 쌓인 구성원들의 불만이 ‘연임’이라는 말에 그만 폭발해 조직적 반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비리가 드러나 구속되는 공기업 사장들도 대개 연임을 거부하는 내부의 투서로 ‘횡액(橫厄)’을 당한다. 고위 공무원 출신으로 모 대학 총장을 지낸 이는 “권리의식은 강하고 의무에 소홀한 교수 집단을 끌고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고 토로한 바 있다. 까다로운 교수사회에서 4년 임기의 총장을 네 번씩 하는 것은 한 교수의 표현대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4번 연임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사회 통념상 참 힘든 일이죠. 우리 교수님들이 더 대단한 분들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제가 세운 비전에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공감했다고 봅니다. 비전을 세우고 공감대를 형성해 구성원들과 함께 실천하기 위해 같이 뛰었죠. 구성원들이 고생을 같이 했고 보람도 같이 느꼈으니까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이야기는 당자(當者)보다는 제3자를 통해 듣는 것이 진실에 더 가까울 수 있다. 언론정보학부 강미은 교수의 코멘트.

    “자기 욕심이 들어가지 않은 리더십입니다. 사심이 섞이면 구성원들이 금방 알아차리고 거부하게 되지요. 그분은 자신이 총장직에 머무는 이유를 사사로운 이익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름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구성원들이 밀어드리는 거죠.”

    총장감 여고생

    숙대는 황실에서 내려준 토지 관리를 잘못해 캠퍼스 부지가 모두 국유지로 등재돼 있었다. 광복이 되고 전쟁의 혼란통에 법적인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었다. 법적으로 토지를 소유한 7개 정부기관에 임대료를 내야 했고 안 내면 연체료가 나왔다. 학교 건물도 국유지에 지은 불법 건물로 돼 있었다.

    여기에 숙명의 꿈을 펼칠 제2창학(創學) 캠퍼스는 공원용지였다. 공원용지를 해제하기 위해 용산구의회 서울시의회와 국가기관을 수없이 드나들어야 했다. 구의원, 시의원, 공무원 수백명의 명단을 작성해 아침 7시 조찬부터 만찬까지 뛰고 나면 밤 10시였다. 상대방이 밥을 먹는 동안 그녀는 먹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제2창학 캠퍼스에는 지금 100주년 기념관, 약대, 음대, 미대, 연주홀, 박물관 등이 위용을 갖추고 서 있다.

    -장기 집권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없습니까. ‘이경숙 공화국’이라든가, ‘독재가 심하다’든가….

    “대학 사회에서 비판이 있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거죠. 사람 사는 곳에서 나올 수 있는 얘기는 다 나옵니다. 그런데 저는 감사하고 있어요. 대다수 숙대 교수님이 개인보다는 학교를 먼저 생각합니다. 학교가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야 자신들의 프리미엄이 올라가잖아요. 그렇지 않다면 비판적이고 불편한 이야기가 더 풍미(風靡)했겠죠.”

    교수 정년은 65세지만 총장은 대학에 따라 다르다. 총장의 정년이 없는 대학들도 있다. 이 총장은 숙대 정관에 따라 2008년 8월31일 65세 정년을 맞는다.

    -정년 때문에 5선은 안 되겠군요.

    “해서는 안 되죠. 한 사람이 그렇게….”

    -옛날에 비해 학교의 외관이 번듯해졌어요. 고급 호텔 같다고 할까요.

    “사실 새로 지은 건물들은 전부 돌집입니다. 건설비가 더 들었지만 백년대계를 이루려면 건실하고 아름답게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여자대학이고 21세기의 코드가 ‘문화’잖아요. 교육 현장에서 문화적인 정서를 제대로 체질화한 후 사회에 나가야 대한민국뿐 아니라 세계 지도자로서 기본소양을 자연스럽게 갖출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환경이 중요해요. 아름답고 부드럽고 편안한 곳에서 대학 4년을 다니면 인성(人性)과 사고방식도 그렇게 다듬어지는 거죠.”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숙명여대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당시 숙대 가정대학장 표경조 교수님이 경기여고 총동문회장을 했어요. 숙대에서 특별장학생을 모집했죠. 고등학교의 추천을 받아 학력경시를 거쳐 선발했습니다. 4년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고 용돈까지 주는 파격적인 조건이었죠.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해오면 교수로 채용한다는 조건도 들어 있는 인재양성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저는 S대학 진학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물어 ‘교수’라고 대답했더니 교수 자리가 보장되는 곳이 있으니까 거기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농담으로 ‘표 교수님이 총장감을 보내달라는데, 정말 열심히 해 총장까지 되라’고 하셨지요. 어린 시절에 비전을 심어주신 겁니다.”

    꿈을 팔아 기부금 모은다

    -대학에 기부금을 내달라고 어떻게 설득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냥 돈 달라고 하면 누가 주나요. 저는 ‘꿈을 판다’고 말합니다. 대학은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죠. 인재를 양성해서 대학이 쓰는 거 아니잖아요. 사회에 공헌하고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거지요. 기업인, 동문, 학부형, 학생들에게 먼저 설명을 하고 거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에게 지원을 요청합니다.

    부드러운 힘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

    신입생과 이야기하는 이경숙 총장. 이 총장은 겉모습만 보고도 신입생을 한번에 구별한다.

    돈은 죽을 때 가지고 가는 게 아니니까 보람 있는 곳에 쓰고 싶어하는 분이 의외로 많아요. 보람 있는 일을 알리고 동참하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학교에 100만원을 내면 연주홀 의자에 이름을 붙여줘요. 어제 취임식에 온 동문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줬더니 그 자리에서 돈 내고 간 동문도 있습니다.”

    -여학교 선생님을 30년 해도 제자 한 명이 없다는 말을 흔히 듣습니다. 성차별적인 발언 같아서 조심스럽지만 상대적으로 여학생이 사회에 진출하는 비율이 남학생보다 낮고 동창 의식이 남학생보다 옅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학생이 많은 서울 어느 명문대학은 여초(女超)현상이 빚어져 학교 발전에 장애가 생기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분위기가 있더군요. 그런데 숙대에선 ‘등록금 한 번 더 내기 운동’을 성공적으로 벌였다면서요? 비결이 궁금합니다.

    “졸업생의 80% 이상이 주부입니다. 캠페인을 시작하던 1994년 인문사회계열 등록금이 150만원이었거든요. 주부들이 한꺼번에 다 낼 수 없으니까, 한 달에 5만원씩 30개월 약정하는 방식으로 했습니다. 개미군단이었죠. 1만명 넘게 참여했습니다. 거기에 큰 장점이 있어요. 자기가 투자한 것에는 애착을 갖게 돼요. 돈과 함께 마음이 와요.

    청소하는 아주머니들까지 자발적으로 돈을 냈습니다. 자신이 투자한 직장이니까 더 깨끗하게 하고 싶겠죠. ‘여자 제자 소용없다’는 말들을 하는데, 저는 교수 하기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제가 아는 어느 교수님은 제자들이 해마다 생신 때 찾아오고 임종할 때도 여자 제자들이 왔다고 사모님이 전해주더라고요. 학생들에게 얼마나 정성을 쏟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겁니다.

    군림하고 대접받던 시절에는 술 사주고 밥 사주는 남자 제자들밖에 없었겠지만 지금은 교수도 학생을 섬기는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잘 되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칭찬해서 고맙게 느끼면 여자들이 의리가 더 강할 수도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지금도 졸업생들이 직접 담근 깍두기와 김치를 가져와요. 뭉클한 사랑은 여자들한테서만 느낄 수 있죠. 대학시절에 사랑과 정성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와 반대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조직에서 여성 부하 직원을 여럿 거느리던 분이 친상(親喪)을 당했는데 여직원들이 거의 오지 않았더래요. 자기 딴에는 여성 부하직원들에게 잘해줬다고 생각했는데 서운했답니다. 아까 여학교 교사 30년에 제자 한 명도 없다는 말과도 통하는 이야기죠. 여성들이 사회적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데 소홀한 것은 아무래도 사회 문화의 영향 때문 아닐까요.

    “그렇죠. 우리 문화가 여성의 사회화를 제약했거든요. 사교와 정보 공유가 대개 술집에서 이뤄졌잖습니까. 여성들은 술을 못하거나 시간이 없어 그런 곳에 가기가 어렵습니다. 요즘은 바뀌는 거 같아요. 꼭 술을 마셔야 대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기독교인이라 술을 못해요. 술 마셔야 모금이 된다면 저는 한푼도 못 모았겠죠. 꿈을 팔아야 하는데 술을 마시면 꿈이 술에 취해 이상해집니다.”

    직선제가 만든 앙금

    개정 교육공무원법에 따라 중앙선관위가 국립대 총장선거를 위탁 관리하게 되면서 최근 서울대 평의회가 총장 직선제를 간선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공론화하고 나섰다. 서울대는 1991년 총장 직선제를 도입했으나 총장선거를 둘러싼 교수간 파벌 형성 같은 폐단이 나타났다.

    -총장 직선제가 과연 대학 사회에서 바람직하다고 봅니까.

    “저는 교수 선거를 통해 네 번이나 선출됐지만 정말 대학의 발전을 생각한다면 직선으로 총장을 뽑는 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총장은 끊임없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면서 개혁해 나가야 하거든요. 학교를 발전시키자면 총장이 늘 좋은 얘기만 할 수가 없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에는 총대를 메는 리더가 있어야 하거든요. 그러나 소신껏 개혁의 총대를 메는 사람은 다음 선거에서 당선되기 힘듭니다. 교수를 비롯한 구성원들의 의사가 수렴될 수 있는 다른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선거를 통해 총장을 뽑는 제도는 부작용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술 사고 밥 사는 풍토는 여전합니까.

    “그런 폐단도 있고…. 파벌이 생겨 후유증을 겪습니다. 사람이 감정의 동물인지라 지지와 반대로 갈라지면 찜찜하잖아요. 일반 선거에서는 서로 모르니까 괜찮습니다. 대학 사회는 뻔하잖아요. 누가 누구를 찍은지 다 아니까 어색하고 민망할 수밖에 없죠. 대학 사회에선 그런 앙금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학교 발전을 위해 서로 화합, 단결해서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겠지요.”

    사법·행정·외무고시에서 여성 합격자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행정고시 합격자 중 여성의 비율이 44%로 급증했다. 사법고시 합격자 중 여성 비율도 32.3%로 높아졌다. 이 추세로 가면 시험으로 뽑는 분야에서는 여성이 남성을 앞지를 날이 멀지 않다.

    남학생 학부모들이 남녀공학 고등학교를 기피하는 경향도 있다. 내신 상위권을 여학생이 싹 쓸어가기 때문이다. 필자의 둘째아들이 중학교에 다닐 때 반에서 2등짜리 성적표를 받아왔길래 농담으로 “1등을 해야지, 이게 뭐냐”며 ‘쫑코’를 준 적이 있다. 그러자 아들녀석 하는 말이 “그래도 제가 전교 10등 안에 들어간 유일한 남학생입니다”였다.

    남성의 뇌구조는 근본적으로 책상에 두세 시간씩 묶여 책을 들여다보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는 이론도 있다. 남녀평등을 위해 시험 과목을 개편해 남학생이 잘하는 컴퓨터 게임이나 스포츠, 자동차운전 같은 것도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여성단체들은 아직도 여성이 사회 진출하는 데 걸림돌이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한국도 여성이 실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출세할 수 있는 세상이 됐지 않습니까.

    “과거에는 세력 판도가 남성 본위로 짜여졌잖아요. 그러다 여자의 수가 많아지기 시작하니까 남성 쪽에서 피해의식을 느끼고 불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50대 50은 아니거든요. 핀란드는 여성이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을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성인 핀란드 대사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 분이 제게 ‘한국은 남성이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을 다 하고 있는데 여성인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되물었습니다. 북유럽 사람들은 남녀를 구분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정도입니다. 핀란드는 여성 국회의원이 45%입니다. 그분이 남성 상관을 모신 적이 있는데 심부름만 시키고 반말로 누르려고 해서 몹시 불편했다고 해요. 그런데 보스가 여자일 때는 ‘뭐 불편한 거 없냐. 도와줄까’라고 말해 누나 같고 참 좋더라는 겁니다.

    우리는 수치만 조금 올라갔지 의식은 사실상 바뀌지 않았습니다. 공무원 1급 이상이나 기업 임원들 중에서는 여성의 비율이 2~3%도 안 되지요.”

    마음을 움직이는 ‘섬김 리더십’

    -리더십 특성화 대학인 숙대에서 장차 이 나라의 지도자가 다수 나오겠군요.

    “나와야죠. 우리 대학의 모토는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입니다. 2004년 숙대가 리더십 특성화 대학으로 선정되면서 국고(國庫)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신입생은 무조건 리더십 교양학부 과정을 모두 이수해야 해요. 읽기, 쓰기, 발표, 특강, 세미나, 워크숍 등 리더십 과목을 14학점 따야 전공과목을 택하게 돼 있습니다.”

    -숙대에서는 ‘섬김 리더십’이라는 용어를 쓰던데. 카리스마 리더십하고 어떻게 다른가요.

    “전통적 리더십은 지위에 의해 결정됩니다. 수직적으로 명령하고 지시하고 군림하는 리더십이죠. 그런 리더십은 실패합니다. 산업화시대에는 맞았는지 모르지만 지식정보화사회에서는 마음을 움직여야 사람을 이끌 수가 있어요. 마음을 움직이려면 배려하고 존중하고 동기를 부여하고 잠재력을 키워주는 쪽으로 마음을 전달해야 합니다. 강권적으로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요.

    섬김 리더십이 뒷바라지나 하는 리더십은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마음을 움직여 영향력을 발휘하게 하는 리더십이죠. 그 바탕은 사랑, 희생, 봉사, 헌신입니다. 힘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감동하진 않거든요. 섬김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 늘어날수록 나라가 행복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의 리더십은 섬세하게 남을 포용하고 돕는 모성애적 리더십이기 때문에 21세기형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대접만 받으려고 하지, 남을 대접하려는 리더십이 없어요. 뭐가 잘못되면 남의 탓이라고 하고, 내 탓으로 생각하지 않죠. 자기는 개혁하지 않으면서 남한테만 개혁하라고 하니 되겠습니까. 그런데 여성의 리더십은 솔선수범해 자기가 일을 한 다음에 남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잘못되면 자기가 책임을 지고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이해하는 리더십이지요.”

    -리더십(leadership, 지도력)의 반대가 서번트십(servantship, 섬기는 정신)인가요.

    “섬김의 리더십은 ‘servant leadership’입니다. 반대의 뜻을 지닌 두 단어를 절묘하게 합친 거죠. 서번트 리더의 대표적인 인물이 링컨 대통령입니다. 남을 배려하고 포용하잖아요. 자기를 공격한 정적(政敵)을 국방부 장관에 기용했어요. 남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이 없으면 그런 마음이 우러날 수 없습니다.”

    -고려대와 연세대가 어깨를 겨루듯이, 숙명여대는 이화여대하고 비교됩니다. 최근 이화여대와 학술교류 협정을 맺었더군요.

    “신인령 총장과 친하게 지냅니다. 그분은 담백해서 좋아요. 선의로 경쟁해서 서로 잘되는 건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여자대학이 이대고, 두 번째로 큰 여대가 숙대예요. 미국의 ‘Seven Sisters’(동부의 명문 사립여대 7개교)에는 하버드 대학 수준의 좋은 대학도 있는데, 학생 수가 2000~4000명입니다. 규모 면에서 1, 2등을 하는 두 대학이 합치면 우리가 양과 질로써 세계를 제패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한국 내에서 우리끼리 라이벌 의식을 갖기보다는 둘이 서로 장점을 배우면서 극대화하는 쪽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숙명여대는 학부가 1만명에 약간 못 미치고 대학원생이 3000명가량 된다.

    부드러운 힘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

    학교를 발전시키자면총장이 늘 좋은 얘기만 할 수가 없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에는 항상 총대를 메는 리더가 있어야 하거든요. 그러나 소신껏 개혁의 총대를 메는 사람은 다음 선거에서 당선되기 힘듭니다. 교수를 비롯한 구성원들의 의사를 수렴할 수 있는 다른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숙대에도 언론정보학부가 있죠. 그런데 메이저 언론사 기자 중에 이대 출신은 꽤 있는 숙대출신은 드문 것 같아요.

    “동아일보에 곽민영(경제부) 기자가 있지 않습니까. 언론정보학부는 제가 총장 되고 나서 개설한 학부입니다. 전부 일천(日淺)해요. 언덕이 되어줄 만한 선배가 없는 거지요. 그전에는 숙대가 홍보를 안 했어요. 돈도 없고 사람도 없었으니까. 법과대학도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제야 고시 합격자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숙대는 좋게 얘기하면 정숙하고 조용한 학교였잖아요. 여성적인 학교였죠. 리더십을 키우고 사회과학적인 쪽에 적극성을 띠는 학과들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이제부터 잘 해야죠.”

    행복의 반밖에 모르는 남편들

    이 총장은 1남1녀를 뒀다. 큰딸은 미국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아들은 군에 입대해 육사 교관으로 복무 중이다.

    -여성이 결혼해 자녀를 갖게 되면 사회활동에 제약을 받는 건 사실이잖아요. 그래서 하나만 낳거나 아예 안 낳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활동하면서 자녀를 양육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사회활동하는 여자들에게는 자녀 양육이 난제 중의 난제죠. 누군가 도와줘야 돼요. 무엇보다도 남편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시댁 식구들도 같이 도와주면 좋죠. 보육시설도 늘려야 합니다. 여자들이 점점 자기실현 욕구를 충족시키는 쪽으로 가잖아요. 그러면 자연히 출산율이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남편들이 아기를 같이 키운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자들은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하지요.”

    -한국 남자들은 어려서부터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어서….

    “그래서 한국 남편들은 행복의 반밖에 모르고 삽니다. 아이들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감을 모르잖아요. 얼마나 행복한 건데. 사람 사는 재미가 그거예요. 사회활동하면서 술 마시는 재미도 있다지만 아기가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고 거기서 얻는 기쁨이 아주 크거든요.”

    -자연 속에서 관찰해보더라도 수컷은 내질러만 놓고 돌보지 않더군요. 남성의 DNA와 관련된 문제가 아닐까요.

    “여성은 모성애가 있죠. 새끼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잖아요. 본능이거든요. 여성은 자식을 키워봤기 때문에 섬김의 리더십, 케어 리더십(care leadership)이 있습니다. 자식처럼 보살펴주겠다는데 싫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현모양처를 구시대 유물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저는 참 좋은 풍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가정을 바탕으로 사회에 진출할 때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거든요. 학교의 건학이념과도 연결됩니다. 고종황제는 여자를 구국애족(救國愛族)의 대열에 참여시키기 위해서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구국애족의 기본은 가정이니까 가정학과부터 만들었다고 합니다. 가정이 편안해 정서적으로 안정돼야 사회활동에 지장이 없습니다. 현모양처는 기본이고 실력과 품성을 더 갖춰야지요.”

    이 총장은 소망교회 권사다. 오전 4시30분에일어나 새벽예배를 드리러 간다. 예배를 다녀와서 7시30분경 부군 밥상을 차린다. 남편은 최영상(崔永翔·67) 전 고려대 부총장. 1965년 KBS가 주최한 대학 수석졸업자 좌담회에서 처음 만났다. 남편은 고려대 수석졸업자였다.

    “아침밥상을 꼭 차려드리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애들이 자라 함께 살지 않으니까 부부가 만나 얘기하고 정을 나누며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아침식사 때뿐이지요.”

    -한국식으로 먹습니까.

    “남편은 국을 좋아하니까 한국식으로 잡숫고 저는 양식으로 때우기도 해요. 상차림이 간단합니다. 남편이 단순한 분이라서 복잡하고 거창하게 차리는 걸 싫어해요.”

    학생이 수치심 느끼면 성추행

    -여성에게 결혼은 필수과목인가요. 요즘 직장에 다니는 여성 중에는 미혼으로 30대 중반이 돼도 태연해요.

    “선택하기 나름이지만 저는 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살아보니까 그래도 평생 동반자가 있으면 덜 외롭습니다. 어려울 때 의지도 되고. 자녀에게서 느끼는 기쁨이 참 큽니다. 애들 키우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잖아요.

    저는 제자들이 상담하러 오면 결혼하라고 권해요. 직업과 결혼생활 둘 다 하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사회활동을 지원해줄 수 있는 남편감을 찾으라고 하지요. 여자한테 뒷바라지나 하라는 고루한 남자와 결혼하면 안 되지요. 뒷바라지하려고 결혼하나요. 서로 존중하고 인격의 만남으로 들어가야지요. 서로 대화를 나눠보고 맞는 사람과 결혼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시댁에서 못하게 할 수도 있으니까 시댁도 그런 이해심을 가진 집안이어야지요.

    인간에게는 자기실현 욕구가 있습니다. 애들 키워놓고 나중에 할 수도 있지만 그러다 보면 그 능력이 사장(死藏)되기 쉽거든요. 국가적으로도 낭비잖아요. 보조금 지급만으로는 출산율을 높이기 어려워요. 남성들의 마음가짐과 사회 문화 풍토가 바뀌어야지요. 제 자식을 같이 키우자는데 남성들이 도와줘야죠.”

    남자들이 성차별, 성희롱, 성추행을 조심해야 되는 세상이다. 술 한잔 마시고 해롱거리다 자칫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숙대의 한 남성 교수에게서 ‘여자대학 남자교수의 행동수칙’을 흥미롭게 들은 적이 있다. 첫째, 여학생이 연구실로 찾아오면 문을 열어놓고 만난다. 둘째, 수업 중 한 여학생을 10초 이상 바라보면 안 된다. 셋째…. 그 다음은 잊어버렸다.

    -숙대에서도 남자 교수와 여학생 사이에 신경 쓸 일이 많겠지요.

    “신경 쓰이죠. 진짜 성추행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몸에 밴 습관이 있잖아요. 그 면에서 제가 염려하고 조심스럽게 쳐다보는 게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예방 교육을 많이 합니다.”

    -교육 내용을 소개해줄 수 있나요.

    “성추행에 대한 법적 정의와 사례를 가르칩니다. 전에는 나이 든 교수들이 예쁘다고 하면서 여학생을 쓰다듬어도 문제될 것이 없었죠. 지금은 ‘그냥 예뻐서, 사랑스러워서’ 쓰다듬어도, 여학생이 수치심을 느꼈다고 하면 성추행이 됩니다. 학생이 기분이 좋을지, 나쁠지 어떻게 알아요. 그러니까 안하는 게 제일 속 편한 거지요. 그런 사례들을 다 교육하다 보면 교수들의 행동이 위축됩니다.”

    -강의에서 말도 신경 써야 한다면서요.

    “성차별적인 언어, 성 인지적인 문제가 있는 표현은 주의해야죠. 지금 황 위원 연배도 그런 교육 받아본 적 없잖아요. 사실 제가 남자 선생님들을 보호하려는 생각에서 교육을 합니다. 저희 나이에서는 관행이나 관습으로 생각하는 행동을 학생들은 이해 못하는 거죠. 문화가 다르니까.”

    -최연희 의원이 성추행을 해 사회적 물의를 빚었습니다.

    “그이는 공인이죠. 일반인도 해선 안 되는 것이지만 공인이기 때문에 더 조심했어야죠. 무책임한 행동을 했어요. 제정신이면 그렇게까지 안 했을 거 아녜요. 식당 주인을 갖다댄 변명이 더 나빴어요. 술 문화도 바뀌어야 될 거 같아요. 이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이 총장은 1980년 신군부가 국회를 강제로 해산하고 입법부를 대신하는 입법회의를 만들었을 때 입법의원을 하다가 1981년에는 민주정의당 전국구 의원이 됐다.

    100달러 들고 떠난 유학길

    -학교에 돌아올 때나 총장선거 과정에서 5공(共) 참여 경력 때문에 비판받지는 않았습니까.

    “구색을 갖추기 위해 숙대와 이대에서 한 명씩 정치학박사를 데려간 거죠. 이대에선 김행자 교수였어요. 두 학교 동문회에 추천해달라고 요청이 왔는데 여자 정치학박사가 뻔하니까 추천된 거죠.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잠깐 이야기나 하자고 해서 갔더니 임명장 주는 날이더라고요. 아무튼 에피소드가 참 많아요. 11대 의원이 될 때는 이재형 국회의장과 상담했어요. 한창 공부에 불이 붙었는데 별안간 국회의원 하라니까 너무 싫었어요. 미국에서 그 고생을 하며 박사를 따 학자로서 꿈을 키웠거든요. 당시 30대 후반이었으니 국회의원을 하기에는 너무 젊잖아요. 대접받을 때가 아니었죠.”

    이 총장은 여성정치학 박사 3호다. 1호 이범준, 2호 김옥렬, 4호 김행자, 그리고 5호는 이 총장의 동생인 이숙자 교수.

    “그때는 국가비상 시기였고 끝까지 사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죠. 소속 위원회가 외교통일위원회였습니다. 전공 분야였기 때문에 의원활동을 하며 배운 게 참 많았어요. 유엔, 유네스코, IPU 같은 국제회의에 자주 나갔죠. 책에서 읽은 다른 사람들의 이론을 소개하고 가르쳤는데 제가 4년 동안 국제회의에 직접 참여하고, 외교통일 정책을 다루면서 전공분야의 실무를 배우는 소중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1994년 총장에 출마할 때 상대 후보가 연설에서 저의 5공 참여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국회의원 한 덕으로 만났던 정계, 재계, 관계 인맥이 학교의 해묵은 난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됐죠. 누구를 만나서 어떻게 풀어야 되는지 자문도 하고 사람을 연결해주기도 했죠. 국회의원 경험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부드러운 힘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

    명령하고 지시하고군림하는 리더십은 실패합니다. 산업화시대에는 맞았는지 모르지만 지식정보화사회에서는 마음을 움직여야 사람을 이끌 수가 있어요. 마음을 움직이려면 배려하고 존중하고 잠재력을 키워주는 쪽으로 마음을 전달해야 합니다.

    그 시대에 정치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여성은 드물었다. 이 총장은 고교시절부터 국사와 일반 사회과목을 좋아했다고 한다.

    “제 꿈은 학자였죠. 제 이름이 붙은 ‘시어리(theory)’를 하나 만들고 싶었어요. 남북통일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북한과 중국을 전공했어요. 문화대혁명 기간에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우리에게 중국은 상당히 이상하고 무서운 나라였어요. 그래도 중국이 북한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으니까 공부를 했습니다. 당시 주위에 중국을 전공한 학생이 몇 명 없었어요.”

    이 총장의 여고시절 역할 모델은 박은혜 교장. 설산(雪山) 장덕수의 부인으로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이 총장은 여고시절에 교장실에 자주 드나들며 박 교장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했다.

    이 총장이 숙대를 수석 졸업한 뒤 달랑 100달러를 들고 유학 갈 때 전 교직원이 김포공항으로 나와 배웅했다.

    “전임총장, 현직총장이 지프 타고 공항에 나오셨어요. 어느 시골 분이 동남아를 가는데 갓 쓴 할아버지들까지 나와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더군요. 그런 시절에 제가 유학을 떠났어요.”

    이 총장은 “숙대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공부를 해 오늘날의 내가 됐으니 숙대에 진 빚을 죽을 때까지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서울에서 2남4녀 중 셋째딸로 태어났다. 성신여대 이숙자 총장이 바로 아래 동생. 한국 최초의 총장 자매다. 다섯 살 아래 이숙자 총장도 언니처럼 숙명여대를 졸업했고 국제정치학을 전공했다. 이숙자 총장은 5년 뒤에 언니가 걸은 길을 그대로 따라 걸었다. 둘 다 숙명여대에 수석으로 입학해 총학생회장을 하고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경숙 총장은 동생의 역할 모델(role model) 이었다.

    현장 반영 못한 사립학교법

    -두 분이 외모도 닮았습니까.

    “외모는 조금 다르다고 해요. 우리 동생이 저보다 예쁘죠.”

    -정치학자로서 전두환 정권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저는 공과(功過)가 있다고 생각해요. 민주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비판받을 행동을 한 것은 사실이죠. 그러나 인플레를 잡고 국제수지를 흑자기조로 올려놓으며 경제를 안정궤도로 돌려놓은 것은 평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총장은 무릎 조금 아래까지 내려오는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5공 시절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목소리가 가라앉으며 두 손으로 스커트 자락을 여몄다.

    숙명여대 재단이사장은 이용태 삼보컴퓨터 명예회장이다. 학교를 세운 황실(皇室)이 사라졌으니 오너는 없다. 모두 개방형 이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사장도 숙대에 두루넷 원격대학 설립기금으로 30억원을 기부했다.

    숙대는 모교 출신 교수 비율이 20% 정도로 모범적이다. 한국 대학들은 학맥(學脈) 편중이 심하다. 모교 출신 교수비율이 평균 60%. 미국 하버드 대학은 12%다.

    “대학들이 다양성을 추구하는 쪽으로 가야 될 겁니다. 지금은 과도기예요. 어떤 대학의 어떤 학과는 특정대학 출신으로만 채워지는 사례도 있어요. 선배가 터를 잡고 후배들만 끌어들이기 때문에. 능력위주로 다양하게 섞는 게 좋아요.”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대학 총장들을 만나 2008학년도 입시부터 내신 비중을 높여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교육부가 대학입시를 미주알고주알 간섭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요.

    “대학은 자율성을 확보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자율성에는 항상 책임이 따르죠. 201개 4년제 대학 가운데 문제 있는 대학이 20여 개예요. 한 10% 정도죠. 그런 대학들에 대해선 형사고발도 하고 관선이사도 파견할 수 있죠. 나머지 건전하고 열심히 하는 대학들은 자율성을 키워주고 잘 하도록 격려해야죠.

    내신에 대한 불신이 높은데 내신 비중을 지나치게 높이면 곤란하죠. 특목고 내신을 어떻게 해야 할 건지도 고민해야 할 거예요.”

    -이 정부는 뒤처지는 학생들을 배려하는 데는 신경을 쓰는데 우수 학생들의 영재성을 키워주는 교육에는 소홀한 것 같아요.

    “양쪽 다 해야죠.”

    필자가 “정부 비판에는 조심스러워하는군요”라고 말하고 사립학교법에 관한 질문을 던지자 답변이 길어졌다.

    체면을 딱 덮고 보니….

    “학교 현장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법안을 만들었다는 감(感)을 갖게 돼요. 건전하게 잘 하고 있는 학교 중심으로 법을 만들어야 되는데, 잘못하고 문제가 있는 학교를 중심으로 만든 법이죠. 현행법상 잘못한 학교는 감사를 통해 적발하고 경영권까지 빼앗을 수 있거든요. 개정 사립학교법은 잘 하고 있는 학교까지 분란을 일으키고 어렵게 만들 여지가 있어요. 지금까지는 이사회가 학교 돈을 쓸 수 없었어요. 그런데 학교에 파견된 임시이사는 학교 돈을 운영비로 쓸 수 있게 해놨어요. 학생 등록금으로 임시이사회를 운영하고 임시이사회 직원 봉급을 주게 한 거는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신학년 첫호 ‘숙대신보(淑大新報)’ 1면 톱기사가 등록금 동결 요구에 관한 것이었다.

    “대학에서 연례행사예요. 숙대는 5.5% 인상했어요, 다른 대학의 절반 수준이에요. 등록금은 장학금과 학생복지에 다 씁니다. 등록금 가지고 학교 발전 계획을 수행하는 데 들어가는 건 아니거든요. 물가는 계속 오르고 교직원 봉급도 인상해야 하는데 등록금을 항상 동결하면 대학은 무슨 돈으로 학교 운영을 하고 그 적자를 어떻게 메우겠어요. 숙대에서는 학생의 40% 이상이 장학금을 받아요. 그러니까 학생들이 노력하면 등록금 인상분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져갈 수 있어요. 해외 연수 프로그램도 많아요. 각종 교육 프로그램도 있고요. 그런 쪽으로 노력하는 것이 동결 투쟁보다 더 유익합니다. 우리는 등록금 문제 때문에 총장실을 점거당한 적은 한번도 없어요.”

    -세종대와 상명대가 남녀공학으로 전환했죠. 숙대는 혹시 그런 계획이 없습니까.

    “특수대학원은 이미 남녀공학이 됐죠. 야간에 강의하는 대학원이 12개 있어요. 티솔대학원, 음악치료대학원, 전통문화예술대학원, 임상약학대학원은 숙대에만 있죠. 숙대에서 안 받아주면 남자들이 갈 데가 없잖아요. 그래서 개방했죠.

    학부는 여자대학으로서 특성을 더 키우려고 그래요. 좀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여성의 섬세성과 유연성,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온 거 같습니다. 한류(韓流)를 보더라도 그렇지요. 우리 대학의 취업률이 80%로 높습니다. 남녀공학 대학을 나온 여대생 취업률은 50%선이거든요. 여자대학이기 때문에 유리한 게 많아요. 여성의 특수성을 키울 수 있는 취업경력 개발 프로그램 덕이죠. 여성 리더십을 키워주고 능력을 개발해주고 프로그램을 그쪽으로 맞춥니다. 여자대학이 잘만 하면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어요.”

    -축제 때 빨간 가발 쓰고 춤도 추고 ‘난타’ 공연할 때 드럼도 치고 해서 화제가 됐더군요.

    “대학생들은 대개 2학년에 스무 살 성년이 됩니다. 성년 예식을 치르고 부모들을 초청해 ‘은혜제’를 하지요. 잘 키워 숙대에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는 뜻을 표시하는 행사지요.

    대학원장, 학장, 처장, 부속기관장들도 참여하면 좋겠는데 노래만 하면 밋밋해서 공감대가 잘 형성되지 않으니 댄스를 해보자는 제안이 나왔어요. 공연 한 달 전부터 연습을 하는데, 어색했어요. 교수가 이런 거까지 해야 되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 딱 체면 덮고 보니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열심히 연습했는데도 음악에 잘 못 맞춰 우리는 당황하는데 학생과 학부형들은 그게 재미있나 봐요. 반응이 좋아요. 학생들이 환호하거든요. 그래서 해마다 하게 됐어요. 교수들이 학생 눈높이에서 노니까 한결 친근감을 갖게 된다고 학생들이 말합니다.”

    숙대는 기독교 학교가 아닌데도 교문마다 성경구절을 새겨놓았다. 세운 지 60년이나 돼 ‘교도소 문’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을 정도로 빨간 벽돌 교문 여기저기에 금이 가 있었다. 여론 조사 결과 교문을 새로 짓자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교문 하나에 1억원씩 모두 3억원이 들어야 했다. 한 기독교 실업인이 3억원을 내는 대신에 교문에 성경구절을 새겨달라는 조건을 달았다. 교무위원회에 안건으로 회부돼 찬반 토론이 벌어졌다.

    “비(非)기독교인들이 찬성하는 글을 신문에 써주고 지지하는 발언도 했어요. 시간이 흐르니까 분위기가 그쪽으로 흐르더라고요. 제가 혼자서 불쑥 한 것이 아니라 전체 토론 과정을 거쳤죠.”

    -독재한 건 아니군요.

    “기독교 학교가 아니니까요.”

    나를 세워준 책, ‘적극적 사고방식’

    부드러운 힘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

    캠퍼스를 거닐며 인터뷰하는 이 총장.

    이 총장은 이 인터뷰에서는 중립적으로 말했지만 다른 기독교 잡지와의 인터뷰를 보면 기독교 실업인의 기부를 유치하고 교문 모두에 성경구절을 새겨넣는 데 꽤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인터넷에 ‘3억원이 큰돈이기는 하지만 비기독교인의 불쾌감과 행복권 침해를 가져온 처사’라는 비판의 글이 떠 있는 것을 보았다. 종교의 다양성을 위해 불교 실업인의 기부도 받아 교문에 불경 구절을 함께 새겨 넣는다면 좋을 것 같다.

    -성경구절을 인용하며 말을 할 때가 많다더군요. 좋아하는 성경구절은 어떤 겁니까.

    “여호수아 1장 9절이 참 좋죠. 히브리서 11장 1∼2절도 좋아해요.”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여호수아 1장 9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브리서 11장 1∼2절)

    모두 교문에 새겨진 성구(聖句)다.

    “학교가 희망이 안 보일 때 용기와 소망과 비전을 준 말씀이죠. 우리가 믿고 바라면 그게 이뤄진다는 말씀이니 얼마나 꿈을 갖게 해요. 세계적인 명문여대, 세계 최고의 리더십 대학을 만들어 2020년에는 10%의 지도자를 숙대에서 배출하려고 해요. 그래서 교문에 새겨진 말씀들이 참 좋아요.”

    -숙대 총장을 14년 반 동안 하시게 된 것을 하나님의 부름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하루하루를 새롭게 출발할 수가 있죠.”

    이 총장은 미국 유학시절 호스트 패밀리(host family)로 아이오와 주에서 제닉씨 부부를 만나 방학이나 휴가 때 함께 지냈다. 타자가 서툴러 학교에 제출할 리포트를 제대로 치지 못하자 부부가 밤새워 대신 쳐줄 정도로 정이 들었다. 그 부부를 따라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진짜로 천국이 존재한다고 믿습니까.

    “그럼요, 당연하죠. 천국 진짜 있어요. 하나님 살아계시고요. 저는 지난 10년 동안의 생활이 하루하루가 기적의 연속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제가 총장을 오래 했으면서도 하루하루가 새날처럼 느껴지는 것이지.”

    독실한 크리스천에게 불경스러운 질문을 한 것 같아 “저는 신앙이 없지만 종교인들은 신앙이 삶을 영위하는 데 대단한 힘이 되는 거 같더군요”라고 거들었다.

    -일생에 가장 영향을 준 책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빼고요.

    “노먼 빈센트 필(목사)이 쓴 ‘적극적 사고방식’입니다. 미국 대학에 처음 가서 힘들고 자신이 없을 때 그 책이 저를 세워줬습니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인생이 그렇게 풀리고, 부정적 비관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간다는 거지요. 기독교인은 고난이 닥쳐도 유익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여유를 찾습니다.”

    그녀는 시간이 나는 대로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또 찬송가와 모차르트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식품은 과일. 밥하고 과일이 함께 나오면 과일에 손이 먼저 간다.

    4선 총장은 매일 한 건씩 3월 한 달 내내 언론 인터뷰 일정이 잡혀 있었다. 인물 선정이 늦어져 갑자기 치고 들어간 인터뷰를 취임식 바로 다음날로 잡아준 이 총장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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