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호

충격! 한국의 AI 불감증을 고발한다

“AI 감염 조류 살처분에 노숙자, 신용불량자 대거 동원… 경로추적 불가능”

  • 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6-03-29 17: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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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군 보건소, AI 감염 닭, 오리 살처분 참여한 일용잡부 연락 두절
    • AI 방역 담당자, “공무원 누구도 살처분에 선뜻 나서지 않았다”
    • 충북 음성군 관계자, “AI 감염자 혈액, 살처분 전에 뽑았다”
    • 누구는 뽑고, 누구는 안 뽑고…살처분자 혈액 채취 기준 없어
    • AI 바이러스 못 구해 AI 검진 2년 늦어져
    • 과학논리 배제된 타미플루 확보전
    충격! 한국의 AI 불감증을 고발한다
    지난 2월24일 질병관리본부는 “AI(조류인플루엔자, Avian influenza) 유행 초기에 살처분에 참가한 사람 중 4명이 ‘무증상 감염자’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국내 첫 인체 감염 사례라 충격이 컸다.

    국내에서 AI가 최초로 발생한 시점은 2003년 12월10일. 충북 음성군 삼성면의 한 농가에서 발생한 AI는 충남 천안시, 경북 경주시, 전남 나주시, 충북 진천군, 울산시 울주군, 경기도 이천시로 삽시간에 전파됐다. 이천시까지 번지는 데 채 2주가 걸리지 않았다. AI는 2004년에도 계속 번져 1월에는 경남 양산시, 2월에는 충남 아산시, 3월에는 경기도 양주시에서 발생했다. 불과 4개월 사이에 전국 7개 시·도, 10개 시·군의 농장 19곳에서 AI가 발생해 발생 농가를 기점으로 반경 3∼10km 이내에 있던 270만마리(추정치)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됐다. 이후로는 AI 발생이 보고되지 않았고, 농림부는 2004년 10월 국제수역사무국(OIE)에 국내 AI가 종식됐음을 정식으로 알렸다.

    이번에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무증상 감염자들은 2003년 말 각 시·군에서 AI에 감염된 닭, 오리의 살처분에 참가한 사람(이하 살처분자)들로, 살처분 작업에 앞서 AI 치료제로 알려진 ‘타미플루’와 일반 독감 백신을 맞고 방역에 필요한 개인보호장구를 갖췄지만 AI에 감염됐다. 질병관리본부는 “AI가 인간 사이에 전염될 위험이 없다”면서도 AI가 법정 전염병임을 들어 이들의 신분 노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취재결과 이들 4명 중 2명은 각각 충북 음성군과 진천군의 공무원이며, 1명은 충남 천안시의 자원봉사자, 1명은 전남 나주시에서 동원한 군인(현재 일본 유학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질병관리본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무증상 감염이란 AI 바이러스(H5N1)에 노출은 됐지만 동일 균주(H5N1)에 면역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며, 따라서 무증상 감염자는 환자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현재까지는 AI가 사람 사이에 감염된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전파의 위험도 없다”고 덧붙였다. 홍역을 앓은 아이는 면역이 생겨 성인이 되어서도 홍역에 잘 걸리지 않는 것처럼, 이들에겐 AI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면역)가 생겨 설사 앞으로 이 바이러스에 노출되더라도 AI에 걸릴 위험이 없다는 설명이다.

    감염내과 전문의들의 의견도 다르지 않다. AI 무증상 감염자는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처럼 바이러스 항원을 보유하고 있다가 상태가 악화되면 간염이나 간경화 같은 질병을 일으키는 전염병이 아니라, 한번 앓고 나면 면역 항체가 생겨 오히려 일반인보다 AI 바이러스(H5N1)에 강하다는 것.



    하지만 AI 바이러스, 즉 H5N1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여전히 치명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국립수의과학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국내에서 2003∼2004년에 AI를 일으킨 H5N1 바이러스는 조류에는 분명히 고병원성이다. 인간에게는 병원성이 낮은 것으로 추정될 뿐이지 사람에게 피해가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했다. 질병관리본부측도 AI 바이러스에 노출된 살처분자들이 무증상인 것이 AI 치료제로 알려진 타미플루를 사전에 먹은 덕분이라고 추정할 뿐, 정확한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AI 감염자, 추적 불가능

    문제는 이들 무증상 감염자 외에 앞으로 감염자가 얼마나 더 생길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살처분자 중에는 검체로 쓸 혈액 채취를 거부하거나 연락이 두절된 일용잡부도 많다. 이들의 경우 AI에 무증상 감염이 됐는지, 환자가 됐는지, 또는 이로 인해 사망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들이 노숙자이거나 자신을 밖으로 드러낼 수 없는 처지라면 그들의 죽음은 경찰 조사보고서에 ‘변사’로 기록될 뿐이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당시는 국가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을 때”라며 “살처분자 중에는 연락이 두절된 사람도 일부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처럼 AI 감염 여부의 추적이 불가능한 살처분자가 일부 있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방역에 동원됐거나 동원을 담당한 관계자의 이야기는 무척 다르다. 당시 상황에 대한 그들의 증언은 한마디로 충격, 그 자체다.

    “당시 200명 정도의 공무원과 민간인이 도살처분에 참가했는데 이중 130명 정도는 인력시장에서 1인당 7만원을 주고 구해 쓴 일용잡부였다. 이들 대부분이 신용불량자나 노숙자, 주거부정 노인 등으로 신분 추적이 불가능했다. 공무원들은 AI가 발생한 농가 외곽지역의 경계를 서는 데만도 인원이 부족했다. 살처분을 마친 뒤 검사를 위해 혈액을 뽑아준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혈액을 제공한 사람은 농장주와 가족, 농장인부, 그외에 자기가 원해서 혈액을 뽑은 사람뿐이었다. 보건소는 타미플루와 백신을 주는 일 외에는 한 것이 없다. 일용잡부 살처분자들과 사후에 연락을 취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경기도 양주시청 방역담당 및 보건소 관계자)

    살처분 인력 동원기준 전무

    경기도 양주시에 AI가 발생한 시점은 AI가 수그러들던 2004년 3월. 하지만 사후 추적이 불가능한 살처분자 동원은 이전에도 빈번했다. 2004년 1월에 AI가 발생해 182만마리의 닭을 살처분한 경남 양산시의 경우 살처분에 동원된 1만여 명(연인원) 중 인력시장에서 구해 쓴 인부가 3389명이나 됐다. 양산시 가축방역담당 관계자는 “연인원이라 실제 몇 명이 참가했는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지만, 총 인원의 30%는 인력시장에서 7만∼15만원을 주고 구해 쓴 일용잡부였다. 그중에는 연락처가 파악되지 않는 신용불량자, 노숙자도 많았으며 혈액은 얼마나 뽑았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그외에 2003년 12월 말에 AI가 발생한 충남 천안시는 40여 명의 일용직 잡부를 살처분에 투입했다. 천안시 보건소 담당자는 “공무원 221명만 채혈을 했는데 인력시장의 일용잡부들은 타미플루를 받으면서 연락처를 적으라고 하니 남의 휴대전화 번호나 용역회사 전화번호만 적어놓았다. 연락처를 알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 담당자는 “감염자에 대한 확인이 중요하지만 모든 게 ‘첫 경험’이어서 그렇다”며 이해를 구했다.

    충남 아산시는 2003년 12월 신원불명의 일용잡부 10명을 고용해 9개 농가에서 닭 9만5000마리를 살처분했으나, 다음해 4월 이들 농가의 닭과 오리에서 발생한 질환은 AI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살처분에 투입된 일용잡부들은 사후 추적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방역 수칙에 대한 사전교육을 받지 않아 살처분 당시 AI 바이러스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더욱 높다. 국내에 AI가 발생하기 시작한 2003년 12월은 이미 베트남과 태국에서 조류와 접촉한 사람들이 한창 죽어가던 즈음이었다. 2003년 말에 만들어진 질병관리본부 AI 방역지침에 따르면 각 보건당국은 농가 종사자나 그 가족들과 함께 AI 고위험군에 드는 살처분자의 경우 살처분이 끝나면 바로 그들의 혈액을 받아 보관하고, 5일 후 전화나 직접 접촉을 통해 AI와 관련된 임상 증상이 있는지를 확인토록 하고 있다.

    AI 환자는 보통 5∼10일 안에 38℃ 이상의 고열과 기침, 인후통 등 일반 독감과 비슷한 임상증상이 나타나는 까닭에 살처분 직후 임상 증상을 확인하는 것은 감염자를 파악하기 위한 필수사항이다. 혈액을 채취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살처분 후 혈액에 대한 항체검사에서 무증상 감염자가 나올 수도 있고, 만약 살처분자가 이후 사망했다면 살처분 당시 뽑아놓은 혈액이 사망의 원인을 밝히는 데 결정적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WHO(세계보건기구)가 AI 환자 확진 기준을 ‘임상증상이 있으면서 혈액(혈청)에 대한 중앙항체검사에서 양성이 나온 사람’이라고 규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적 상황과 규정이 이런데도 시·군의 방역 담당자들이 신원을 알 수 없는 일용잡부들을 살처분에 대거 투입한 것은 왜일까. 각 시·군의 보건소 담당자들은 살처분자 동원에 대해 묻자 한결같이 “가축방역과나 축산과에 물어보라”고 답했다. 현장에서 살처분자 동원을 담당하는 주체는 농림부의 지휘를 받는 각 시·군 축산행정 담당 직원들. 그들은 “AI가 인근 농장으로 퍼지지 않도록 하는 데만 신경을 썼을 뿐 살처분자의 감염 가능성에 대해선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고 했다. 오히려 농림부 가축방역과의 한 관계자는 “어떤 사람이 살처분을 해야 한다는 기준은 따로 만들어진 게 없다”며 “가뜩이나 동원할 인력이 없어 발을 구르는 마당에 그런 기준을 만드는 게 무슨 도움이 되냐”고 짜증을 냈다.

    “누가 죽은 닭 만지겠나”

    각 시·군의 AI 살처분자 동원 담당자들은 “공무원뿐 아니라 군대나 경찰도 지원을 하지 않아 인력 동원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들은 설사 살처분에 참가했더라도 직접 농장에 들어가 닭과 오리를 만지려 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AI가 발생한 농장에 직원들을 동원했으나 누구도 선뜻 살처분 현장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부군수가 손수 농장에 들어가 죽은 닭을 쥐고 흔들며 ‘너희들은 왜 안 들어와’ 하고 윽박지르자 할 수 없이 한두 명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동남아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는 데 누가 죽은 닭을 만지려 하겠는가.”(충북 음성군 살처분 참가자)

    충격! 한국의 AI 불감증을 고발한다

    살처분자에 대한 AI감염 여부를 검사하는 질병관리 본부.

    살처분에 지원하는 공무원은 없고, 당장 AI의 확산은 막아야 했던 시·군의 살처분 담당직원들은 보다 손쉬운 인력동원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질병관리본부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신용불량자나 노숙자 등 주거불안자라 하더라도 몸에 이상이 있으면 병원과 보건소를 찾았을 것이고, 만약 AI의 증상이 있었다면 의료기관에서 모두 걸러졌을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일용잡부 외에 살처분에 참가한 공무원, 군인, 경찰, 자원봉사자 중에서도 무증상 감염자를 모두 찾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현재 무증상 감염자를 찾아내려면 당시 살처분에 참가한 사람들의 혈액이 모두 확보돼 있어야 하는데, 질병관리본부가 현재 보관 중인 혈액은 이번에 검사를 마친 318명 외에 1600명분 등 1900여 명분에 불과하다. 10개 시·군에 대한 취합 결과 전국적으로 4000여 명에 달하는 인력이 살처분에 참가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인원의 혈액만 확보하고 있는 것.

    이는 질병관리본부가, 2003년 말 AI가 발생한 음성, 천안, 경주, 나주, 진천 등지에서는 혈액채취를 거부하지 않는 모든 살처분자에게서 혈액을 채취했지만 나머지 지역에선 농장주나 종사자, 그 가족과 혈액채취를 희망하는 사람한테서만 혈액을 채취함으로써 빚어진 일이다. 무증상 감염자가 음성, 진천, 천안, 나주에서만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AI는 감염 초기에 임상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서 혈액을 채취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에 따라 방역지침을 바꿨다”고 해명한다. 더욱이 살처분자는 현재 전염병에 걸린 사람이 아니므로 당사자가 혈액채취를 거부하면 보건당국으로선 더는 강제할 방법이 없다. 충북 진천군 보건소 관계자는 “진천군의 경우 일용직 없이 공무원만 230명이 살처분에 참가했는데, 채혈을 거부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검체 동의서를 써주지 않으면 혈액을 채취할 방법이 없다”고 전했다.

    살처분하다 감염된 게 아니다!

    질병관리본부는 살처분자에 대한 더 이상의 추적이나 검사는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당시 살처분자 중 AI 감염증세(임상증상)를 보이는 사람이 없었고, 따라서 설사 감염이 됐더라도 면역이 형성된 무증상 감염자일 것이라는 얘기다. 질병관리본부는 4명의 무증상 감염자 발표 며칠 후 ‘살처분 당시 혈액을 추출하지 않은 참가자를 파악해 혈액을 올려보내면 추가로 AI 감염 여부를 검사해준다’는 취지의 공문을 각 시·군에 내려보냈다. 질병관리본부 담당자는 “살처분자의 개인적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희망자에 대해서만 검사를 해주기로 했다”며 추적조사 차원이 아님을 몇 번씩 강조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는 이런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고려대 의대 김우주 교수(감염내과)는 “감염자의 감염경로 파악과 방역 참가자에 대한 교육효과 확인, AI 전파경로를 확인하기 위해 살처분 참가자에 대한 전수 추적 조사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이들 무증상 감염자는 어떤 경로로 감염된 것일까. 질병관리본부 방역지침에는 살처자는 살처분에 참가하기 전 타미플루를 복용하고 일반 독감 백신주사를 맞은 뒤 바이러스 침투를 막는 고글, 장화, 마스크, 방역복, 장갑을 착용하도록 돼 있다. 개인보호장구를 착용한 뒤에는 살처분이 끝날 때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벗지 못하며, 바이러스가 몸에 묻지 않도록 벗는 방법까지 따로 정해놓았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런 규정이 지켜지지 않았다.

    “이미 죽어 널브러진 닭과 오리도 있었지만, 대개는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심하게 저항했다. 그것들을 쫓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사이에 고글과 마스크는 어디서 떨어졌는지 간 데 없고, 장갑도 벗겨져 맨손으로 닭과 오리를 잡는 사람도 있었다. 일부 인부들은 마스크를 벗고 장갑을 낀 채 담배를 피웠다. 무슨 규정 같은 것은 지킬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중에는 이산화탄소와 같은 가스를 사용해 닭, 오리를 죽였지만 초창기에는 목을 비틀어 죽이거나 때려잡았다. 그때야 아무것도 몰랐으니 했지, 이제 우리 군청에서 감염자까지 나온 마당에 또 살처분을 하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충남 천안시 살처분 참가자)

    그런데 무증상 감염자가 발생한 충북 음성군에서는 ‘AI 감염이 살처분 과정에서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주장은 당시 방역 업무를 총괄하던 담당자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라 더욱 충격적이다.

    “그때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당시 살처분에 참가한 사람들은 살처분에 참가하기 전에 혈액을 채취했다. 당시 음성군은 AI 발생 지역이 워낙 넓었기 때문에 살처분자들은 작업을 마치고 나면 뿔뿔히 흩어져 목욕하러 가기 바빴다. 우리 군청 공무원 중에서 감염자가 나왔다고 하던데, 어떻게 살처분에 참가하기도 전에 뽑은 혈액에서 AI 바이러스가 나올 수 있는 건지….”(충북 음성군 가축방역 담당자)

    충격! 한국의 AI 불감증을 고발한다

    AI 범유행에 대비해 가상훈련을 하고 있는 보건당국 관계자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음성군에서 무증상 감염이 된 공무원은 살처분이 아닌 경로를 통해 AI 바이러스에 노출됐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측은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해당 공무원은 살처분 당시 AI 바이러스에 노출된 게 틀림없다”고 못박았다.

    한국은 미국의 AI 식민지?

    질병관리본부의 AI 무증상 감염자 발표에서 또 하나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은 감염자 확진 결과가 AI 발생 시점(2003년 말)으로부터 2년여가 훨씬 지난 2006년 2월에 나왔다는 것. 이에 대해 오대규 질병관리본부장은 2월24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AI의 전국적 유행이 완료된 2004년 3월 고위험자와 임상증상이 있는 사람 88명의 혈청 샘플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보냈으나 이들은 별 이상이 없었다. 보관 중이던 살처분자의 혈청 1900개를 모두 보내려 했으나 베트남, 태국 등 사망자가 발생한 나라의 검사가 밀려 있어 검사결과를 일찍 받지 못할 형편이었다. 그래서 질병관리본부 시험책임자를 직접 미국에 보내 중앙항체검사를 할 수 있는 기술을 배워왔다. 2005년 4월 기술력과 관련 시설을 모두 갖추고 일단 318명에 대한 자체 검사에 들어가 2005년 11월 11명의 감염 의심자를 발견했다. 이들의 혈청 샘플을 CDC에 다시 보내 지난 2월23일에야 4명이 무증상 감염자라는 확진 통보를 받았다.”

    무증상자의 AI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중앙항체검사 기술을 배우는 데 1년이나 걸렸고, 기술을 배워온 후 318명을 검사하는 데만도 7개월이 소요됐다는 것이다. 더욱이 2004년에는 이미 질병관리본부에 AI 바이러스 검사를 할 수 있는 ‘고도의 음압시설(내부 공기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외부 공기만 들어오게 하는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감염자에 대한 검사가 늦어진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살처분자의 혈액에서 빼낸 혈청과 반응시킬 AI 인체 바이러스(H5N1) 시료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기술은 일찍 배워왔지만 바이러스 시료가 없어 일반 독감 바이러스로 연습을 하다 지난해 중반 CDC로부터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한 H5N1 바이러스를 받아 실험을 하느라 자체 검사가 많이 늦어졌다. 우주복처럼 생긴 특수 방역복을 구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이런 해명에 대해 질병관리본부 AI 자문위원으로 있는 한 감염내과 전문의는 “H5N1 인체 바이러스는 이미 1997년 홍콩에서 발생한 이후 중국과 동남아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이 바이러스를 구하지 못해 검사를 못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는 외교통상부나 국가정보원이 나서면 금방 해결될 것을, 질병관리본부 혼자 뛰어다니며 하려다 빚어진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도 그랬지만 AI문제도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질병관리본부는 CDC로부터 배워온 기술을 바탕으로 318명에 대한 AI 중앙항체검사를 실시해 살처분자 11명의 혈청에서 AI 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밝혔다. 그런데 CDC의 확진 결과 그중 4명만이 실제 양성 반응자, 즉 무증상 감염자로 확진판정이 내려졌다. 질병관리본부의 검사결과 중 절반 이상이 잘못됐다는 얘기다.

    이런 처지에서도 질병관리본부는 1600명의 살처분자 보관혈청에 대한 AI 중앙항체검사를 3개월 안에, 그것도 ‘자체적’으로 끝마칠 수 있다며 자신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우리 기술만으로 3개월 안에 1600명의 확진 판단을 내릴 수 있겠냐”는 질문에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우리 실험자들이 확진자라고 판단하면 CDC에 보내지 않는 것이고, 애매할 경우에는 CDC에 또 보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그의 답변이 더 ‘애매’하게 들렸다.

    경제논리에 희생되는 방역대책

    3월1일 WHO는 전세계에서 174명의 AI 감염자가 발생해 이중 94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제 세계인의 관심은 AI가 인간을 감염시키는 단계가 아니라 인간에 감염된 AI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인간 대 인간 감염을 일으키는 ‘대륙간 전염병(범유행, 펜데믹)’의 발생 가능성으로 옮겨가고 있다. WHO는 범유행에 대해 이미 지난해 ‘규모와 파괴력의 문제이지 조만간 도래한다’고 발표한 바 있고, 국내 감염 전문가들도 “시기를 예측할 수 없을 뿐 AI의 범유행은 피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미국은 1918년 전세계에서 5000만명을 희생시킨 스페인 독감의 원인 바이러스(H1N1)가 현재 유행하고 있는 AI 바이러스(H5N1)와 매우 유사한 성질을 지녔음을 밝혀냈다. 돼지와 같은 중간 감염체 없이 조류를 죽이는 점과 인간에게도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그것. 때문에 미국은 AI가 스페인 독감처럼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무차별적 전염병을 일으킬 것이라고 보고 미국 인구의 절반이 넘는 사람이 복용할 수 있는 양의 타미플루 확보에 나섰고, AI 예방백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처상황은 어떤가. 질병관리본부는 지난해 고려대 의대와 함께 실시한 AI 범유행 시뮬레이션에서 ‘방역조치를 전혀 하지 않을 경우 1375만명 감염, 441만명 사망’이라는 충격적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국내 타미플루 보유량은 70만명분에 불과하고(상자기사 참조), WHO나 미국이 예방백신을 개발해 그 제조방법을 알려준다 해도 해당 백신을 제조할 시설을 갖춘 제약사가 단 한 곳도 없는 형편이다. AI 환자 발생시 꼭 필요한 격리병상과 격리병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타미플루와 마찬가지로 질병관리본부가 AI와 관련한 예산을 올리면 정부와 국회는 ‘과학논리’가 아니라 ‘경제논리’로 이를 삭감해왔다.

    질병관리본부의 AI 무증상 감염자 발표 후 산지의 달걀 가격은 개당 90원에서 40원으로 떨어졌고, 생닭 가격도 절반 이하로 곤두박칠쳤다. AI 바이러스는 75℃ 의 열에서 5분 이상만 가열하면 곧바로 죽는다. 160℃의 기름에서 20분 이상 튀긴 ‘프라이드 치킨’이나 100℃가 넘는 뚝배기에서 1시간 익힌 삼계탕에서 AI 바이러스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AI를 두려워하는가. 정부의 AI 방역대책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도대체 언제까지 “손만 열심히 씻으면 된다”는 말만 되풀이할 것인가.

    한국의 ‘위기 대비’ 상황은?

    타미플루 구입 예산, ‘환수당하고, 다른 데 쓰고…’
    충격! 한국의 AI 불감증을 고발한다

    2005년 10월 25일 타미플루(오른쪽) 특허권의 강제수용을 주장하는 보건의료단체연합의 기자회견.


    AI의 인간 대 인간 감염, 즉 대륙간 전염병이 예견되면서 선진국 사이에선 AI의 유일한 치료제로 알려진 타미플루 확보전이 치열하다.

    미국은 미국 인구의 절반이 넘는 1억5000만명분의 타미플루를 확보하기 위해 100억달러의 예산안을 의회에 올렸다. 최근 일부 언론에 의회가 이 예산을 삭감하라고 한 것으로 보도됐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의회는 예산 항목을 따로 마련하지 말고 다른 예산을 전용해서 쓰라고 했을 뿐이다. 또한 영국은 1460만명분, 프랑스·캐나다 등은 전 국민의 20%분에 해당하는 타미플루를 확보했거나 할 예정이다.

    일본은 물질특허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현재 타미플루에 대한 물질특허권을 가진 다국적 제약사 로슈가 이 약의 독점적 판매권을 갖고 있는데, 일본은 국가가 직접 나서 “복제약을 제조하되 판매는 하지 않고 비축만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부터 타미플루의 복제약품 비축에 들어간 일본측의 주장은 “당장은 비축만 하고 판매를 하지 않는 데다 만일 문제가 생기면 국민에게 무상으로 공급할 것이니 이는 특허약품에 대한 영리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질병관리본부는 AI 유행이 끝난 후인 2004년 타미플루 150만명분을 구입할 계획을 세우고, 1차로 100만명분에 해당하는 125억원의 예산을 예비비로 확보했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는 무슨 영문인지 로슈사에 50만명분만 주문했다. 그러자 기획예산처는 “예비비는 긴급한 상황에 쓰라고 주는 것”이라며 50만명분을 사고 남은 예비비 65억원을 바로 환수했다. 이 과정에서 질병관리본부는 타미플루를 사야 할 예산으로 방송사 프로그램 제작을 지원하거나 현판을 제작하는 등 수천만원의 예산을 전용하기도 했다. 지난해 20만명분을 겨우 추가 확보한 질병관리본부는 올해 다시 30만명분을 확보해 100만명분을 맞춘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타미플루 150만명 분을 확보하더라도 이는 AI의 범유행을 막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양이라고 주장한다. 고려대 김우주 교수는 “적어도 인구의 20% 이상 분량은 확보해야 한다. 엄청난 예산이 들겠지만 이는 국민을 죽음으로부터 구해낼 ‘보험’이다”라고 강조했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해 벌인 AI 범유행 시뮬레이션 결과 최상의 방역조치가 이뤄진 경우에도 400만명 이상이 AI에 감염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로슈사가 지난해 10월 한국이 원하면 제조기술과 원료를 공급하겠다며 타미플루 제조를 허용했다. 국내에는 이를 만들 수 있는 기술과 시설을 갖춘 제약사가 4군데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로슈사는 이에 대해 확인을 거부했다.

    한편 질병관리본부는 최근 다국적 제약사 GSK(글락소 스미스클라인)의 독감치료제 ‘리렌자’를 AI 예방·치료약으로 인정했다. 리렌자는 타미플루에 내성을 보이는 베트남 환자에서 치료 효과를 보여 타미플루 내성 AI 치료제로 공인됐다. 독일 등 선진국들은 타미플루와 함께 리렌자의 비축에 돌입했지만 타미플루의 추가 구매 여력도 없는 한국은 리렌자에 대해선 비축할 엄두도 못 내는 형편이다.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타미플루를 대량구매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옳지만, 여기에는 워낙 많은 예산이 소요되므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타미플루의 유효기간이 5년인데 그 안에 AI 범유행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질병관리본부 방역 담당자의 답변에서 AI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인식 수준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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