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호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 강금실

“나는 ‘빛의 전사’, 내겐 아낄 게 없어요”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 사진·박해윤기자

    입력2006-04-27 13: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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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활의 바닥으로 돌아가는 정치
    • 노 대통령, 감성보다 논리가 문제
    • 내가 남자라면 ‘콘텐츠 없다’고 비판할까?
    • ‘샤우트(shout) 정치’에서 ‘라이프(life) 정치’로
    • ‘보험설계사 시장’으로 생활의 질 높이고 도시공간 바꿀 터
    • 소통의 문화로 법무·검찰개혁 성공
    • 대검, 법무장관 인사권에도 저항했으나 참고 또 참아
    • 더 이상 특별히 행복할 것도 불행할 것도 없다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 강금실
    길이 끝이 나기 전에는나의 그림자를 보이지 않으리적진을 돌격하는 전사와 같이나무에서 떨어진 새와 같이적에게나 벗에게나 땅에게나그리고 모든 것에서부터 나를 감추리(김수영, ‘더러운 향로(香爐)’ 중에서)

    이 눈부시게 가슴 서늘한 시를 좋아하는 이는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강금실(康錦實·49) 전 법무부 장관이다. 출마 심정을 대변할 만한 시를 읊어달라는 요청에 대한 응답이었다. 영혼의 폭포처럼, 거대한 시구가 그의 작은 입을 통해 쏟아져 내렸다. 이 시구는 그가 장관 재임 중 검사들에게 보낸 편지(e메일)에도 등장한 바 있다.

    강 전 장관 인터뷰는 4월11일, 12일 두 차례에 걸쳐 4시간 동안 진행됐다. 첫날, 삶의 여정과 다양한 가치관을 확인하는 질문이 많은 데 대해 그가 이의를 제기했다. “선거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개인사를 늘어놓는 건 적절치 않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정치철학이라든가 정책 비전 따위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나눠야 하지 않겠냐고.

    딴은 일리 있는 주장이었다. 기자야 그의 삶 전반과 인간적인 면을 살피고 싶지만, 선거전쟁에 돌입한 그로서는 인터뷰 목적이 대놓고 말하면 ‘홍보’ 아니겠는가. 그래서 썩 내키진 않았지만, 그의 요구를 감안해 애초 구상한 인물탐구형 인터뷰 방식을 지양하고 내용도 그에 맞게 조정하기로 했다.

    두 번째 인터뷰 장소는 미술전시관을 겸한 소호 레스토랑. 햇살이 꾸벅꾸벅 조는 아늑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공적이고 딱딱한 주제의 대화가 오갔다. 이날 그의 얼굴 화장 색조는 첫날보다 엷어 훨씬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표정도 첫날보다 여유롭고 편안하고 안정돼 보였다.



    반면 첫날 그의 표정은 어딘지 딱딱하고 피곤해 보였다. 눈빛만큼은 여전히 반짝였지만. 인터뷰 장소인 그의 선거사무실은 비좁고 영 볼품이 없었다. 다만 햇볕 하나는 좋았다. 그의 차림은 듣던 대로 보랏빛과 흰색의 물결이었다. 보라색 재킷에 하얀 티와 흰색 바지. 흰색 바탕에 보라색 무늬가 출렁거리는 스카프. 가만히 보니 귀고리도 흰색이 어른거리는 보라색이다. 아, 또 있다. 구두!

    “처음 보라색을 선택할 때 좀 망설였어요. 대중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을까 해서. 그런데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의 선거철학을 잘 보여주는 색으로 판단했죠. 잘못된 정치의 기본 틀을 깨고 현실을 담아내는 생활정치로 가자. 권위주의와 이념적인 도식을 버리고 창조적인 정치를 하자. 이런 것을 정치의 패러다임 시프트라 한다면 거기에 가장 어울리는 색이 보라색이라는 거죠. 빨강과 파랑의 분열적인 구분을 넘어서는 색. 최근 경영학에서 퍼플오션(purple ocean) 얘기도 나오고. 선거 디자이너를 자임하는 김정환 시인께서 보라색 아이리스가 잘 어울린다며 상징꽃으로 추천했어요. 써보니 아주 좋아요. 흰색은 클린(clean)이고요.”

    그러고 보니, 세상에! 무심코 받았는데, 그의 명함도 앞은 보라색, 뒤는 흰색이다.

    -사치스럽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지 않나요? 심리학에서는 보라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정서적으로 불안하다고 보는데요.

    “이게 2만원 주고 산 거예요(강 전 장관은 갑자기 구두 한 쪽을 벗어 보였다). 보라색이라고 사치스럽고 고급스러워 보여요? 그런 사고(思考)를 버려야 해요. 경제와 문화를 분리해 생각하는. 가난하면 험하거나 수수하게 입고 귀고리도 하면 안 된다는…. 그런데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여유가 있으면 여유가 있는 대로 문화생활을 즐겨야 해요. 우리보다 못 사는 네팔이나 티베트 여자들 의상이 화려하잖아요. 삶의 질 문제인데, 생활수준을 떠나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을 표현하는 거예요. 문화가 다른 게 아니라고 봐요. 자신의 삶을 최대한 표현하는 문화는 곧 경제적 경쟁력이에요.”

    “거짓말하는 정치, 지겨워요”

    -사적인 세계에서 공적인 세계로, 혹은 자유의 세계에서 책임의 세계로 들어선 것 같은 데요. 결정적인 출마 동기가 무엇인지요.

    “말 그대로인데….(웃음) 자유의 세계에서 책임의 세계로….”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보죠.

    “제가 추구하는 정치와 제가 출마를 고민하는 과정에 만난 많은 사람이 희망하는 정치가 같다는 걸 확인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뭐냐 하면, 거짓말하지 않는 솔직한 정치, 고정관념이나 이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정치예요. 솔직히 굉장히 지겹거든요, 정치적인 언행이란 것이. 제가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기존 정치의 틀을 깨자는 거예요.”

    -그런 정치적인 자각을 언제 했습니까.

    “법무부 장관 때예요. 권력 주변의 사람들이 정치적인 의도를 갖고 행동하는 메커니즘에 적응해나가면서 큰 피해를 보고 고통도 당했어요. 그때 보고 겪고 느낀 문제점을 선거를 통해 바꿔보자. 얼마나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내게 주어진 소임이 깨는 것이라면 기꺼이 한번 깨는 게 낫지 않겠는가, 생각했어요.”

    그는 “변하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에 약간 불안해하는 구석도 내비쳤다.

    “선거상황이라는 게 워낙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정치공세가 시작되면 대응하는 과정에서 (기존 선거 분위기에) 휩쓸릴 우려가 있어요. 본격적으로 선거가 시작되면 제가 다 제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죠. 언론플레이 한다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었지만, 제가 출마를 선언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팀워크 때문이었어요. 나와 뜻이 같은 사람들을 선별하고 그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죠. 어쨌든 그 덕분에 선거가 시작돼도 제가 당할 것 같지는 않은데, 휩쓸리고 다칠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죠.”

    그는 2004년 1월호 ‘신동아’ 인터뷰에서 “50대엔 춤도 추고 연애도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 생각이 변한 것이냐고 묻자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거야 시간이 되면… 그 얘기는 하지 말죠. 지겨워서….(웃음) 그러고 싶다는 얘기니까….”

    -어쨌든 사적인 세계에서 누리던 자유를 상당 기간 유보해야 할지 모르잖아요.

    “사람이 고된 삶 속에서 놀고 싶다는 꿈을 꾸는 건 자연스러운 거죠. 오십이 되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꿈. 그런데 지금은 제가 사회활동을 해야 할 시기예요. 아무것도 안 하고 접을 수는 없죠. 생활도 해야 하고, 빚도 갚아야 하고. (장관을 그만둔 후) 로펌 대표로서 일했고 여성인권대사로서 공적인 활동을 해왔어요. 이런 것을 하루아침에 중단할 수는 없죠.”

    “그렇게 막 일하고 싶으세요?”

    -마음에 늘 품고 있는 희망이다?

    “가능하면 뭐 그렇게 하고 싶다는 거죠. 5년 후든 10년 후든 빨리 벗어나고 싶죠.(웃음)”

    -지금도 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거죠?

    “누구나 그렇지 않나. 그렇게 막 일하고 싶으세요?(웃음)”

    -아니, 예전에 말씀할 때 워낙 강한 의지가 읽혀서요.

    “지금도 있어요, 그 의지는. 사회적 삶에 대한 집착이 없기 때문에 저는 언제라도 결단을 내릴 수 있어요.”

    한편으로는 실존적 자유의 냄새가 풍기고, 다른 한편으로는 허무주의적 고독이 느껴지는 말이다. 어쨌든 그는 개인적 삶을 안온하게 보존하고 싶은 소망과는 별개로 사회적 소임을 다하기 위해 서울시장 선거에 나섰다고 하지 않은가.

    그는 역대 대통령을 평가하면서 한국의 현대사를 크게 IMF 환란위기 이전과 이후로 나누었다.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나 외환위기 사태의 후유증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경제위기를 초래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러면서 그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성적표가 신통치 않은 원인을 김대중 정부에서 찾았다. 양극화 문제만 해도 김대중 정부가 물려준 부정적 유산이지 이 정부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눈앞에 보이는 실적에 연연해 졸속으로 시행한 경제정책이 많아요. 그 후유증을 참여정부가 덮어쓰고 있는 거예요.”

    언제부터인가 피아노곡이 울리고 있었다. 화창한 날씨에 그림으로 둘러싸인 실내에서 이런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나른해지게 마련이다. 다행스럽게도 얘기를 마무리할 때가 됐다.

    “가진 것 기꺼이 다 쓸 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하죠. 강 변호사께서 서울시장 출마로 얻는 행복은 무엇인가요.

    “그냥, 많은 사람에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저 자신의 행복보다는. 나는 이제 특별히 행복할 것도 없고 불행할 것도 없어요.”

    -너무 고상한데요.

    “사실이 그래요. 살 만큼… 이런 말하면 안 되겠지.(웃음)”

    -아니, 그래도 뭔가 있을 것 아닙니까.

    “어떤 일을 한다고 특별히 행복해질 게 없다니까요. 다만 저에게 부여된 사회적 역할이 있으니 가능하면 최선을 다해 많은 분과 행복을 나누고 싶은 거죠.”

    -싫은 일은 죽어도 안 하는 성격 아니에요.

    “싫은 건 잘 안하는데, 그렇다고 하고 싶은 걸 별로 하지도 못해요. 내가 원해서, 내 의지로 결정해 일을 벌인 적은 한번도 없어요. 주변 여건이 형성돼서 내가 결단을 내렸던 거지.”

    -장관도 그랬고요?“장관도.”

    -지평 대표도 그랬나요.“그랬지. 후배들이 요청한 거예요.”

    -변호사는 빚 때문에 그랬고.“그랬고.”

    -판사는?“판사는 최선을 못 찾았기 때문에 한 거고. 다만 주어진 상황에서….”

    -아, 본인 의지로 하신 거 하나 있구나. 춤 배운 것.“응. 유일하게 하나 있네.”

    그는 잠시 끊었다가 말을 이었다.

    “내가 가진 게 있다면 기꺼이 다 쓰자는 거죠, 사회를 위해. 난 아낄 게 없으니.”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느끼는 건가요.“그렇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아낄 게 없다는 생각에서.”

    그는 요즘 자주 걷는다고 했다. 특별히 체력관리를 위한 운동을 할 시간이 없어서란다.

    “오늘도 여의도 국회 앞을 걸었어요. 선거운동 기간에 틈틈이 걸으려 해요. 그게 운동이 되는 것 같아요. 인사도 잘하고. 고개도 많이 숙이고…. 평소 생활과 다름없는 정치, 그런 게 난 좋더라. 자연스러운 것. 그런데 넥타이가 보라색이네요?”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김용택, ‘사람들은 왜 모를까’ 중에서)

    -시장 출마하면서 세상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아까도 말했듯이 기존 정치의 틀을 깨고 다 같이 변하자는 거예요. 서울시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생활하는 공간을 바꾸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거예요. 아주 진솔하게 접근해서. 그런데 그런 일에 정치적인 의도가 섞이면 가시적인 업적에나 매달리게 되죠. 엊그제 청소년수련원과 노인복지시설을 돌아봤는데 예산이 없어서 사업이 중단됐더라고요. 예산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뭣보다도 시장이 자유로워져야죠. 정치로부터. 진짜 시민이 원하는 게 뭔지 알아내 그에 맞춰 예산도 쓰고 새로운 일도 벌여야죠. 한마디로 생활을 되찾아야 한다는 거예요. 청계천도 물론 좋지만, 지금 정말 국민이 원하는, 시민이 원하는 살림을 해나가는 정치인이 있냐는 거죠. 그게 답답해요.

    그럼 내가 할 수 있냐. 그건 모르죠. 다만 전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거예요. 우리 사회가 계속 이렇게 나아가면 안 된다고. 분단 상황에서 우리의 사고 틀이 매우 좁아진 면이 있어요. 큰 시각에서 보면 세계화 추세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어요.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이냐. 남한 땅에서 우리끼리 만날 싸우는 사고방식으로 해결되겠어요? 그런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 지도자가 지금 없죠. 누가 있죠?”

    “없는 것 같다”는 말이 기자와 그의 입에서 동시에 나왔다.

    “그래서 답답해요. 저를 아는 많은 사람이 ‘니가 나가서 요만한 구실이라도 해야 한다’고 해서 나섰어요. 그냥 던져보자고. 자극만이라도 주자고. 아직까지는 잘한 것 같아요.(웃음)”

    -스스로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어떤 것인가요.

    “일단 속이 후련하고요. 정말 사심 없는 상태로 나의 진정성을 위험한 현실상황에서도 지켜낼 수 있을지 도전하는 거예요. 끝까지 한번 가보자는 거죠.”

    -모험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엄청난 모험이죠. 개인 차원에서도 그렇고, 기존에 잘못된 정치행정 풍토에 감히 도전하겠다고 덤벼든 것도 그렇죠.”

    그는 “선거가 정치의 핵심”이라고 규정했다.

    청계천에 담긴 대중의 소망

    “우선 지지세력을 모아 선거에서 이겨야만 정치를 할 것 아니에요. 그리고 선거를 어떻게 치르느냐에 따라 이후의 정치와 행정 스타일이 결정되죠. 굉장히 더럽게 치른 사람은 행정도 더럽게 이끌 수밖에 없어요. 신세를 졌기 때문에. 선거를, 시민이 동참하는 가운데 자신의 정치철학이나 시정철학에 맞게 일관되게 끌고 갈 수 있느냐, 그리고 진실하게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낼 수 있느냐, 이게 관건이죠. 선거사무실, 선거구성원, 선거전략, 홍보전략 이 모든 것에 일관성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쉽지 않아요. (열린)우리당과의 문제도 그래요. 우리당에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제가 당쪽 사람을 많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요. 기존 정당의 스타일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선거를 치르려면 제 색깔이 정착된 다음에 당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서…. 지금은 상호 적응하는 과정이죠.

    상대당의 네거티브 전략에 대응하지 않겠다는 전략에 대해 당에 있는 사람들이 답답해해요. 불안해하기도 하고. 그런 것이 쌓이면 대미지를 입는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이제 한 일주일 지났는데, 우리가 저쪽의 네거티브를 좀 죽였죠. 네거티브하지 않을 것, 자신의 진정한 철학이 담긴 시정(市政)을 시민에게 제시하는 데 집중할 것, 그리고 철저하게 선거법을 지킬 것. 이 세 가지거든요. 선거법 지키기가 매우 힘들게 돼 있더라고요. 자원봉사자만으로 하라는 거니까.”

    -출마선언 다음날 청계천을 찾으셨죠. 이명박 현 서울시장의 업적을 제일 먼저 둘러본다고 뒷말이 있었는데요.

    “왜, 또 말이 많았어요?(웃음)”

    -뭐 이 시장의 공을 가로채려 한다든가….

    “비판하는 쪽이 진보냐, 보수냐가 문제지.”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 강금실

    강금실 전 장관은 “선거사무실, 선거구성원, 선거전략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며 “끝까지 내 방식대로 선거를 치르겠다”고 강조했다.

    -전태일 동상을 찾았는데, 어떤 의미지요? 일반 대중에게는 노동운동의 화신인데.

    “우리 모두에게 긍정적인 힘을 포용하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죠. 우리는 테제와 안티테제의 이분법 구도에 익숙해져 있어요. 민주와 반민주, 우리당 대 한나라당. 좋은 것과 나쁜 것. 그런데 테제와 안티테제를 뒷받침하는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거죠. 생활의 바닥으로.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아닐까 싶어요. 대중이 호흡하고 대중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죠. 대중이 청계천을 좋아해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운동화 신고 손잡고 산책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그런 삶을 원한단 말이에요. 다만 개발주의적이고 전시적 행정이라는 단점은 고쳐나가야겠죠. 어쨌든 청계천이 대중에게 던진 긍정적인 의미를 인정하자는 거죠. 시정의 연속성도 있어야 하고. 시장이 바뀔 때마다 확확 바뀌면 곤란하죠. 전태일 찾은 거요? 그게 어때서요. 가장 어렵고 힘든 대중을 대변해 자기 몸을 희생한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당연히 기억해야죠. 대립 개념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감성과 정서 상실한 정치

    -그런데 열린우리당이 전태일을 완전히 포용할 수 있나요. 전태일로 상징되는 노동인권의 문제라든가 비정규직 문제라든가. 정치적 제스처로 비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 않나요?”

    -하는 걸 보면 영 미덥지 않고 신통치 않잖아요. 전태일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 개념이 아니라 내재화한 소신이라면 그 뜻을 열린우리당에서는 펼치기 힘들 텐데요.

    “머릿속에 이상한 고정관념을 갖고 계신 것 같네요.(웃음)”

    -열린우리당의 한계를 말하는 겁니다.

    “지켜봐야겠지요. 선거과정을 통해 가능하다면 우리당과 참여정부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하고 싶어요. 그 외연을 넓히는 구실을 제가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당 스스로도 깨고 싶어도 못 깨는 부분이 있거든요.”

    -한나라당 오세훈 전 의원은 자기 당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걸 두고 볼 수 없어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애당심에서 출마를 결심했다고 했는데요. 강 변호사께선 좀 다르죠?

    “저야 당원이 아니었으니까. 우리당을 구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밖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결심한 거죠. 당을 구하러 온 게 아니라 시민을 구하러 온 거죠. 물론 지향점이 같고 정당 이념에 동의해 입당한 것은 맞지만.”

    -당에서는 ‘강(康)다르크’라고 하잖아요.

    “사실 대안이 없는 정치상황이 저를 출마하게 한 거죠. 우리당 지지도가 낮은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한다고 서울시가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도 없으니까. 대안이 없어 실망스럽다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사실은 제 개인의 당선 여부보다 우리당이 이 선거를 통해 발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봐요. 정치라는 게 어차피 정당을 통해 구현되고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의 비판을 받는 부분은 고쳐나가고 한층 풍요로운 정책을 펼쳐나가는 게 중요하지 나 개인이 시장이 되고 안 되고는 부차적인 문제죠.”

    보랏빛 이미지로 대변되는 강 전 장관의 ‘감성 행보’는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먼 우리 정치 풍토에서 새롭고도 도전적인 실험임에 분명하다. “감성의 포퓰리즘”이라는 한나라당의 비난에 대한 소감을 묻자 그는 ‘별 시답잖은 얘기를 다 한다’는 표정으로 맞받았다.

    “정치문화에서 감성이 회복되는 건 굉장히 바람직한 거죠. 지금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감성이, 정서가 상실됐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언행이 난무하고 있죠.”

    -‘감성의 포퓰리즘’은 노무현 대통령을 염두에 둔 표현이기도 합니다. 노 대통령이 대선 때 대중의 감성에 호소해 승리했고 집권 이후에도 그런 방식으로 정치를 하고 있다는 거죠. 그 비판의 연장선에서 노 대통령과 비교적 코드가 맞고 참여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그건 맞지 않는 지적인데요. 노 대통령의 당선은 민주당의 햇볕정책 계승과 개혁과 변화를 원한 국민의 선택이지 감성정치와는 상관 없다고 봐요. 감성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고 속이거나 현혹한다는 뜻으로 사용하는데, 표현 자체가 잘못됐어요. 감성이 회복돼야 이성도 회복돼요. 한국 정치에는 감성과 이성, 두 가지가 다 없어요. 그냥 메커니즘만 있다는 느낌이에요. 노 대통령의 경우 정치를 지나치게 논리적으로 한다는 게 문제죠. 이성적이라기보다는 논리적으로.”

    “무슨 콘텐츠가 없다는 거죠?”

    -논리적인 게 왜 문제죠?

    “현실은 꼭 논리적이지만은 않거든요. 국민의 다양한 일상, 다양한 가치관을 논리로만 재단할 수는 없는 거죠. 오히려 국민과의 풍부한 공감이 절실하게 필요하죠. 그런데 그런 것 없이 혁신 시스템만 내세우고 있어요. 저는 참여정부가 감성의 정치를 한다고 보지 않아요. 감성의 정치라면 오히려 박근혜 대표를 꼽을 수 있죠. 대표적인 감성의 정치인인데, 저는 그 감성이 문제라고 보지 않아요.”

    -강금실 변호사와 박근혜 대표는 어떻게 다른가요.

    “저와 비교할 수는 없죠.”

    -비교하고 싶지 않으신가 보죠. 같은 감성의 정치인인데.

    “저는 원래 정치인이 아니고 앞으로 두 달 동안만 정치인인 셈이에요. 정치인이라면 철학이 있어야죠.”

    -철학이 없으세요?

    “아니, 박 대표한테 감성은 느껴지는데 철학은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죠. 내 얘기는 할 필요 없고. 계속 정치를 해왔다면 몰라도, 이제 갓 발을 내디딘 정치 초년생인데….”

    감성정치 혹은 이미지정치라는 비판엔 ‘콘텐츠가 없는 것을 가리기 위한 것’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담겨 있다. 이 얘기를 꺼내자 그의 말투가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설명을 해줘봐요.”

    -말 그대로죠.

    “무슨 콘텐츠가 없다는 건지….”

    -뭐 흔히 얘기하는, 실력이라든가 경력이라든가….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세요. 뭐가 어떻게 문제라는 건지.”

    -그건 제가 답변할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강 변호사께서 반박하면 될 것 같습니다.

    “왜 콘텐츠가 없다는 얘기를 하는지 이유를 알아야 답을 할 것 아니에요. 여성에 대한 굉장한 편견이라고 봐요. 이번 선거를 통해 그런 걸 깨는 것도 필요해요. 어떤 근거를 갖고 지적하는 게 아니라 고정관념으로 하는 얘기에 대해 제가 뭐라 답하겠어요. 예컨대 내가 남자로서 13년간 판사를 했고 로펌을 6년간 경영했고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면 ‘콘텐츠 없다’는 말이 나오겠어요? 네? 나올 것 같아요? 지금 오세훈 변호사한테 그런 얘기를 하나요? 자기네끼리는 할지 모르지만. 도대체 무슨 콘텐츠가 없다는 건지…. 행정경험이 없다? 그럼 출마 후보들 중에 행정경험이 있는 사람이 누구예요? 그나마 저는 1년5개월간 국가행정 경험을 쌓았잖아요. 국무위원으로서. (경기지사 후보로 나선) 진대제 장관한테 콘텐츠 없다고 얘기하나요? 이건 정말 성차별이라고 봐요. 지겨워요, 그런 말 듣는 것.”

    기자는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시를 살림공간으로

    -여론조사를 보면 지지도가 높습니다. 그 원인이 뭘까요. 무엇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을까요.

    “대중은 누구 말마따나 무의식적으로 진실을 아는 것 같아요. 전문가나 정치인보다 더 잘. 법무부 장관을 할 때도 대중이 알더라고요. 진실이 뭔지를.”

    -그다지 논리적인 발언 같지는 않네요.

    “논리적이지는 않죠.”

    -위험하지 않을까요? 대중의 무의식적인 판단을 믿는다는 건.

    “아니요. 대중은 다 아는 것 같아요. 진정성이라는 게 논리적인 설명으로 전달되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 국민의 정치적 의식수준이 높아졌다는 걸 전제로 가능한 얘기가 아닐까요.

    “그런 점도 있죠. 지금 국민의 의식수준을 충족하는 정치가 없는 거예요. 국민의 열망은 강한데. 갈 곳을 못 찾는 거죠. 우리당도 해소해주지 못하고 한나라당도 대안정치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죠. 정치적 무관심층이 많은 데는 그런 이유도 있다고 봐요.”

    그는 자신이 보기보다 성격이 까다로운 편이라고 했다. 그를 조금 아는 편인 기자는 그 말에 동의를 나타냈다. 그는 사람을 가려 사귀는 편이고, 호불호(好不好)가 뚜렷한 편이다. 대신 한번 믿음을 준 사람과는 상당히 끈끈한 우정을 이어간다. 또한 화합을 지향하면서도 소신에 어긋나는 일, 자신이 싫어하는 일은 절대로 안 하는 성격이다. 모르긴 몰라도, 선거기간에 당과 종종 부딪칠 것이다. 어쩌면 그의 선거캠프 내에서도 의견 충돌로 마음에 상처를 입을 사람이 꽤 생길 것이다.

    “선거조직과 선거과정을 제 방식대로 끌고 가려고 애쓰고 있어요. 정책도 마찬가지고요. 이제까지 해온 것처럼 대중의 환심을 살 만한 공약을 아무런 고민 없이 내놓는다거나 ‘아파트 반값’처럼 허무한 공약들을 마구 던지지는 않겠다는 거죠. 저랑 맞지가 않아요. 그런 건 못하겠는 거예요.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끝까지 제 방식대로 가겠다는 거죠.”

    -그게 뭐죠? 어떻게 하겠다는 거죠?

    “시장선거에 나온 사람이라면, 먼저 서울시가 지금 이런 상태인데 앞으로 이렇게 바꿔보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어야죠. 그렇게 큰 그림을 그리고 난 다음에 구체적인 방법으로 들어가야지, 이를테면 아파트 반값 공약만 달랑 얘기하면 앞뒤에 뭐가 있는지 모르잖아요. 그런 공약 하나로 서울시를 어떻게 바꾸겠다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거죠.”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겁니까.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방향을 잡고 있어요. 첫째는 서울시민의 삶을 바꾸는 거예요. 서울시를 살림공간으로 생각해 그 안에서 누리는 삶의 질을 높이는 거죠. 예컨대 어떤 아이가 태어났다 하면, 그가 어릴 때부터 노인이 돼 죽을 때까지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시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를 고민하고 찾는 거죠.

    또 하나는 도시공간을 어떻게 바꾸느냐의 문제예요. 어떻게 하면 서울시민이 쾌적하게 살 수 있겠는지. 우리나라의 도시공간은 1960~70년대의 무분별한 개발로 균형이 무너지고 구조가 왜곡됐어요. 강남·북 문제가 생긴 것도 바로 그런 인위적 개발의 부작용으로 볼 수 있죠. 강북은 남북관계 때문에 개발이 묶여온 반면 강남은 무분별하게 개발됐잖아요. 그처럼 왜곡된 도시공간을 인본주의적인 것으로, 그리고 시민이 생활공간처럼 편안하게 느끼도록 바꾸는 거죠.”

    “실생활 흐름이 정책에 반영돼야”

    -청계천도 그런 뜻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 건가요.

    “그렇죠. 도심의 휴식공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다만 그 발상이 인본주의적이라기보다는 개발이나 전시행정 차원이라는 점이 문제라는 거죠.”

    -만들기는 잘 만들었는데?

    “인공하천이니까. 하긴 인공하천도 없는 것보다는 낫죠.”

    -왜곡된 도시구조를 바로잡는다는 게 만만한 작업이 아닐 텐데요.

    “기본 방향을 설정하고 나면 구체적인 방법도 가능하겠죠. 제가 큰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에 시민이 합의한다면, 그걸 바탕으로 앞으로 4년간 이러이러한 걸 하겠다는 답안이 나올 수 있는 거죠.”

    언뜻 듣기에 뜬구름 잡는 얘기 같다. “그림만 그리지 말고 구체적인 것을 하나만이라도 얘기해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잠시 망설였다. “‘신동아’ 기사가 나오기 전에 발표할지도 모르는데…” 하면서.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 강금실
    “미리 조금만 말씀드리면, 이런 거예요. 세 살부터 아흔 살까지라고 할까. 삶의 각 단계에 맞는 정책을 하나씩 세우는 겁니다. 시민이 성장하고 늙어가는 과정에 꼭 필요한 것들. 예컨대 아기 때는 출산과 보육의 문제가 따르잖아요. 이 문제를 시가 어떻게 풀 것이냐. 다음으로 아이가 되면, 아동보호 문제가 생기죠. 이어 청소년 문제가 따르고. 청소년을 위해 시가 해줄 수 있는 정책이 뭔가. 그 뒤로 청년 일자리 문제, 중장년층의 실업 문제, 노인 복지 문제… 이에 대한 정책들을 개발해 하나의 흐름으로 제시하면 시민이 이해하기 쉽죠. 그렇게 해서 시민이 선거를 통해 자신의 삶과 생활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예요. 이 공간이 바로 우리의 것이라고 인식하면서. 서울을 이러이러한 모양으로 바꾸면 좋겠는데 그중에서 이것부터 하자. 이렇게 가자는 거죠. 그러면서 (공약이) 구체화되는 거죠.”

    그는 “실제 생활의 흐름이 정책에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하나는, 일상생활에 편의를 주는 거예요. 누구나 주중의 삶이 있고 주말의 삶이 있죠. 예컨대 주중엔 일자리나 교통 문제가, 주말엔 레저나 관광, 문화생활이 중요한 관심거리죠. 이런 문제에 대해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방안을 마련하는 거예요. 이렇게 접근하면 도시공간에 대한 시민의 생각이 바뀌고, 자신의 생활에 대한 계획도 바뀔 수 있고, 서울시가 자신의 삶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죠. 그것을 제시하는 게 제 꿈이에요. 짧은 기간에 제가 원하는 만큼 잘 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해내야죠.”

    서울 개조에 대한 그의 설명에는 독특한 사고에 따른 독특한 표현이 줄을 이었다. 상당히 실용적인 행정철학이다. 그는 앞에 놓인 백지에 부지런히 쓰고 그리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보험설계사와 같은 시장이 되려고 해요. 시민의 삶을 설계해주고 지원해주고 생활에 도움을 주는 시장 말이에요. 이른바 생애적 접근법이죠. ‘샤우트(shout) 정치’에서 ‘라이프(life) 정치’로 바꾸자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선 시민의 실생활을 그릴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거죠. 강남과 강북 문제도 경제적으로 대비되는 양극화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더욱 해결하기 어렵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대립구도로만 보면 대화도 안 되고 소통도 안 되죠. 그것을 서로서로 연결되는 원형구조로 바꾸자는 거예요. 각 지역의 특성을 살리고 장점을 연결해 장애와 갈등, 분열을 깨자는 겁니다. 안팎을 경계짓는 대립적 사고의 벽을 깨고 원형으로 순환하는 구조를 만든다는 게 기본 개념이고 그것을 도시공간과 살림에 어떻게 반영할지 현재 고민하고 있죠.”

    공무원과 시민사회의 조화

    서울의 세계화에 대한 꿈도 펼쳐졌다.

    “둘로 나눠진 서울을 하나로 만든 다음에는 다른 나라 도시들과의 경제교류와 문화전파로 세계도시를 지향해야 한다고 봐요. 세계에서 규모가 큰 도시치고 서울처럼 외국인이 오기 힘든 도시도 없잖아요. 뭔가 제대로 돼 있는 게 있어야 찾아오죠. 외국인이 몰려오도록 도심공간을 바꿔야 해요. 그러면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되고. 저도 놀랐는데, LG경제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지자체 중에서 서울의 행복지수가 꼴찌예요. 실업률은 가장 높고. 이러니 서울시민이 행복하지 않죠. 서울시만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겠지만 문제의식이라도 갖고 있어야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겠죠. 일자리와 실업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어요.”

    비록 그만둘 때 모양이 좋지는 않았지만 법무부 장관으로서의 국정 경험은 그의 경쟁력의 으뜸요소라 할 만하다. 다른 어떤 서울시장 출마자도 갖지 못한 그만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는 첫 여성 법무부 장관으로서 막강한 검찰 조직을 상대로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하게 개혁을 추진했다.

    그 성과는 그가 송광수 검찰총장이 이끄는 대검측과 몇 차례 갈등과 충돌을 빚으며 분열상을 비친 데 대한 비판을 상쇄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먼저 자문기구이던 인사위원회를 심의기구로 격상하고 경향(京鄕) 교류 원칙을 정착시켜 인사의 공정성을 강화했다. 또 검찰의 관료화를 부추기던 검사동일체 원칙을 수정해 사실상 그 취지를 없애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준법서약서 제도도 폐지했다. 그밖에 ‘제 식구 감싸기’ 시비에 휘말려온 감찰제도를 강화해 대검 감찰부와 별도로 법무부에 감찰실과 감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일정 주기마다 직무수행능력을 심사하는 검사적격심사제를 도입하는 등 12개 개혁과제를 짧은 기간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그러한 성취의 기반이 된 것은, 그의 표현에 따르면 ‘소통의 문화’였다.

    “우리 사회에서는 직업간 블록이 굉장히 심해요. 같은 법조계라도 변호사, 검사, 판사세계의 문화가 너무 달라 상호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려 들지도 않아요. 편견도 심하고. 정치권과 비정치권 사이는 말할 것도 없고요. 법무부 장관 재임중 가장 중점을 둔 것이 바로 소통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내부 개혁을 하려 들면 공무원들의 반발이 커요. 시민사회측과는 인식도 다르지만 접근방식도 달라요. 그래서 시민사회측과 공무원이 만나 대화하고 토론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분위기를 만들었어요. 예컨대 난민 문제의 경우 민변 변호사들을 불러 출입국관리국 직원들과 함께 회의하도록 했어요. 교정국 직원들에게는 인권운동사랑방 관계자들과 함께 토론하게 했고요.

    이런 식으로 중요 정책을 수립할 때는 꼭 공무원과 시민사회 양쪽의 시각을 조율해 반영했어요. 뜻은 좋지만 실현가능성이 없는 시민사회 쪽의 무리한 제안은 공무원이 걸러주고, 시민이 원하는 바를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공무원의 닫힌 생각은 시민사회 쪽에서 깨우쳐주는 거죠. 양측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자 실현 가능성 높고 탄탄한 정책이 나오더라고요. 검찰 개혁을 맡은 정책기획단에도 변호사들이 참여하도록 했어요. 정책위원회의 전문가 그룹도 보수와 진보 반반씩 섞어 구성했고요. 시각이 다른 두 집단 간의 토론과 합의는 안정적인 정책을 수립하는 데 매우 중요한 구실을 했어요. 반대 덕분에 튼튼한 합의를 얻게 되는 거예요.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조직의 아랫여론이 최상층부로 잘 전달돼야 한다는 점이에요. 공무원사회의 특징이 지휘복종과 상명하복이잖아요. 위에서 지시만 하고 아래를 살펴보지 않으면 조직의 과반을 차지하는 하위직 공무원들의 생각과 의견을 알 수 없어요. 검찰만 해도 상층부와 평검사 생각이 다르거든요.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오는 여론이 잘 반영되는 체계를 만드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직원들과 소통이 이뤄지고 바깥 여론과도 통할 수 있어요.”

    그에 따르면 이번에 선거팀을 구성할 때도 그런 소통의 원칙을 원용해 당측과 시민사회측 인사를 반반 섞었다고 한다. 아울러 시장이 되면 그런 방식으로 시정을 운영해 “시민과 공무원 사이에 대화가 열리고 시민이 진정 원하는 것이 반영되게 하겠다”고 밝혔다.

    “송 총장도, 나도 각자 소임 다했다”

    지금도 많은 검사가 그에 대해 높게 평가하는 부분은 대선자금수사과정에서 철저하게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고 수사의 독립성을 확보해준 점이다. 오죽하면 여권에서 “검찰 개혁하라고 보냈더니 검찰에 동화됐다”는 비판까지 나왔을까.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는 검찰 개혁방향을 놓고 대검 수뇌부와 지속적으로 힘겨루기를 해야 했다. 그가 중점을 둔 개혁은 검찰 조직의 민주화였고 대검측이 원한 개혁은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이었다.

    “검찰 수사의 독립성 확보와 검찰의 민주화라는 이중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어요. 개혁 방안에 대한 생각도 좀 달랐고요, 송광수 검찰총장과 내가. 그러니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었죠. 대검측은 검찰 독립을 앞세우면서 장관의 고유권한인 인사권에 저항하기도 했죠.”

    -충돌이 벌어질 때마다 매번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지휘감독하는 위치에서 싸울 수는 없는 거죠. 사실 부당한 점이 많았어요. 대표적인 게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에 대한 징계 청구였어요. 증거도 없이 그랬으니. 중대한 시국사건인 촛불시위 대표자들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하면서 사전에 보고하지 않고 사후에도 보고하지 않았어요. 규정을 어긴 거예요. 하지만 참았죠.”

    -그걸 두고 ‘조직장악력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죠.

    “대통령 지휘를 받아 검찰총장을 감독하는 사람으로서 갈등이 생겼다고 공개적으로 그 부당함을 지적하고 잘못을 다스리려 한다면 국민 눈에 어떻게 비치겠어요. 권력기관 간의 분란으로 비칠 테니 국민이 불안해할 것 아니에요. 중간에 있는 제가 참을 수밖에 없는 거죠. 검찰은 다른 조직과 달리 정점에 있는 지휘자가 2명이에요. 검찰 수장인 총장이 장관급이므로 법무부 장관과 상하관계가 아니에요. 다만 장관이 총장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갖고 있는 거죠. 장악력이 없다는 건 상당히 부적절한 평가인 것 같아요. 송 총장과 저는 각자의 소임을 다한 거죠.”

    재임 초만 해도 그는 사면초가였다. ‘검사와의 대화’는 불편한 동거의 선언식이었다. 이후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검사들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이 지속됐다. 어느 날 그는 검사들에게 편지(e메일)를 보냈다. 김수영은 자신의 시 ‘더러운 향로’가,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후 법무부 장관과 검사들의 교감 수단으로 활용될 줄 알았을까.

    “‘빛의 전사’가 돼라”

    -당시 김수영의 시를 인용하며 전사로서의 삶을 강조해 화제가 됐는데요. 서울시장도 그런 심정으로 출마한 겁니까.

    “그때 검사들에게 쓴 편지에도 같은 얘기를 했지만, 전사와 투사는 달라요. 투사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싸우는 사람이고 전사는 자신의 존재를 내놓는 순결성이 있는 사람이에요. 처음엔 전사라는 표현을 내가 우연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면 뭔가 있는 것 같아요. 고등법원 판사 시절 몹시 힘들었는데, 그때 김수영 시가 찾아와 머릿속에 박혔어요. 40고비를 막 넘길 때였죠. 그러고는 장관 시절 검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전사가 되자’고 썼잖아요. 그런데 지난해 1월 다보스포럼에 참석해 파울로 코엘료를 만났을 때 또 전사가 다가왔죠. 그 분이 저에게 ‘워리어 오브 라이트(Warrior of Light)’, 즉 ‘빛의 전사’가 되라고 말한 거예요. 제게 ‘연금술사’ 등 자기 작품들 중에서 좋은 문장만 뽑아 만든 책을 선물로 줬는데, 그 책 앞장에 ‘빛의 전사’라고 썼더라고요. 자신은 글로 표현하는 영역에 있는 사람이고 나는 실천하는 사람이라며. 사실 저도 그쪽으로 가고 싶은데, 지금껏 살아온 영역이 이쪽이다 보니…. 그래서 고단해요.”

    -코엘료에 대한 기억은요?

    “워낙 영성(靈性)이 강한 분이에요. 자신의 삶의 체험과 영성을 결합해 글을 쓰니 참 좋겠더라고요.”

    -‘연금술사’ 같던가요?

    “거의 그 수준인 것 같았어요.”

    -자신은 삶의 보물을 찾았답니까.

    “그런 것 같더라고요.(웃음)”

    그가 참석한 지난해 다보스포럼에서는 빈곤, 공평한 세계화, 기후 변화, 교육, 중동(middle east), 지구적 관리체계 6개 주제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그는 “토론내용보다는 한국 특사로서 느낀 문제의식을 말하고 싶다”며 다보스에 대한 기억을 풀어놓았다.

    “다보스포럼은 세계 각국 정치·경제 지도자들의 신년 하례식이나 마찬가지예요. 신년을 맞아 한 자리에 모여 다양한 주제를 놓고 자유분방하게 토론하죠. 다보스포럼을 활용해 국제사회에서 인지도를 높인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과 중국, 인도예요. 그런데 한국은 이를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요. 정부 특사에 대한 의전만 신경 쓰고, 아무런 기획도 준비도 없어요. 장관급이 왔다고 현지 대사관이 나서서 베이스캠프 차리고 접대하기에 급급하더라고요. 미국의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경우 수행원이 딱 한 명이었어요. 다른 나라도 비슷하고요. 그런데 수행원을 우르르 끌고 오는 나라가 딱 두 나라래요. 일본과 한국. 우리가 지금 그런 촌스러운 외교를 하고 있어요. 접대용 외교죠. 정부가 노력해야 해요. 그런 데서 한류(韓流) 같은 걸 소개하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얼마나 좋아지겠어요. 우리를 국제사회에 자꾸 알려야 해요.”

    다보스를 얘기하면서 토마스 만을 빼놓을 수는 없다. 대표작 ‘마의 산’의 무대가 다보스이기 때문이다. 토마스 만은 강 전 장관이 매우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작품의 현장을 직접 보니 너무 좋았다”며 “소설에 나오는 병동이 호텔로 바뀌었다”고 알려줬다.

    바라보는 사랑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는 결핵요양소에서 삶에 대한 치열한 자각의 체험을 갖는다. 소설 마지막 장면은 한스가 온전치 않은 몸으로 전장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서울시장에 출마한 강 전 장관의 마음자세를 그것에 빗댈 수 있을까 싶어 질문했는데, 그는 예기치 못한 답변으로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간단히 바꿔버렸다.

    “그건 잘 기억나지 않고요. 한스가 병원(요양소)에서 러시아 여성 소샤를 좋아했는데, 소샤는 좋아하는 남자가 따로 있었어요. 뚱뚱한 남녘 남자예요. 늘 먹는 것을 즐기고, 열정적으로 삶을 즐기는 남유럽 특유의 낙천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 한스와 같은 북유럽 남자와 매우 대조적이죠.”

    -두 사람이 끝내 안 맺어지죠.

    “여자가 좋아하지를 않아요, 한스를.(웃음) 이상하게도 토마스 만 작품에는 결합보다는 바라보는 사랑이 많아요. ‘베니스에서의 죽음’이 그렇고, ‘토니오 크뢰거’도 그렇고. 바라보는, 가고 싶은데 못 가는….”

    아무래도 토마스 만 전문가이지 싶다. 그렇지 않고선 어찌 저리도 작품 내용을 잘 기억할 수 있단 말인가. 그가 총명하거나 기자가 총명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게다. 게다가 황우석 사태가 한창일 때는 ‘마리오와 마술사’를 떠올렸다니…. 그의 말대로 이 작품의 주인공인 마술사 치폴라에게 관객이 집단최면에 빠져 열광하는 것은 황우석 사태와 닮은 점이 있다.

    여성문제와 빈곤문제는 한 뿌리

    그는 2004년 12월부터 1년간 여성인권대사를 지냈다. 지난해 12월 동남아시아의 대표적 인권후진국인 방글라데시와 네팔, 스리랑카를 차례로 둘러봤는데, 여성 문제와 빈곤 문제가 한 뿌리임을 절실하게 느꼈다고 한다.

    “빈곤의 문제와 여성의 문제는 같이 가요. 가난한 나라일수록 가부장적인 제도가 단단하고 폭력이 여성과 아이에게 달려가요. 여성인권이 향상된다는 것은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 곧 경제가 나아지는 것을 뜻해요. ADB(아시아개발은행)에서 네팔에 아무리 돈을 쏟아 부어도 경제가 좋아지지 않더래요. 원인을 분석해보니 여성이 일을 못하는 사회구조가 문제더라는 거죠. 그래서 빈곤퇴치 프로젝트에 여성을 참여시켰어요. 그랬더니 확 달라지더래요.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예요. 여성 문제는 단순히 인권의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잘살 수 있는지의 관점에서 여성의 일자리를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는 거죠. 남성과 똑같은 노동력으로 간주하고. 서울시의 경우도 여성 등 취약계층에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제공하고 임파워먼트(empowerment) 함으로써 유휴인력을 줄이면 시 경제가 훨씬 좋아질 거예요. 나아가 국가 경제의 질도 향상되고요.”

    그는 학창시절 자신이 뒷날 정치에 나서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저는 학교 다닐 때 미래에 대한 꿈이 없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대학 다닐 때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컸어요. 종교나 신화, 미학 쪽으로. 근본, 근원을 알고 싶은 호기심이 컸죠. 그런 데 빠져드는 성격이었어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가 ‘무무행(無無行)’이라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무무행’은 박제천의 시집 ‘장자시(莊子詩)’에 실린 연작시다. 그가 마법의 주술을 하듯 몇 구절을 읊었다.

    以前에 없었던 길이 보인다 煩惱의 길이다모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지면 나타난다이 덧없는 되풀이는 무엇 때문인가내가 찾는 한 마디의 말과 내가 찾은한 마디의 말이 같지 않고 다만언제나 이것이 그 한 마디의 말이라 믿을 뿐이다.(‘無無行 그 하나’ 전문)

    “대학 1, 2학년 때 ‘장자시’를 너무 많이 읽어 무의식중에 체화된 것 같아요. 왜 그런 게 있잖아요. 잊었다가 또 갑자기 생각나는. 그런데 지나치게 니힐리즘 냄새가 난다고 할까요. 시장 출마하는 사람으로서 좋아하는 시라고 말하기가 좀 그렇네. 김수영의 ‘더러운 향로’보다 시장 출마에 더 어울리는 시는 제 명함 뒷면에 적힌 김용택의 시가 아닐까 싶어요.”

    양희은의 ‘한계령’

    그가 건넨 명함 뒷면을 살펴봤다. 과연 김용택의 시가 적혀 있다.

    “그런데 그 시보다 현 상황에 더 잘 맞는 시가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인 것 같네요.”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1970년대에 대학을 다니셨는데…. 그 시절 얘기 좀 해주세요.

    “김민기 노래 좋아하고 양희은의 ‘한계령’ 좋아하고…. 우리가 그런 세대 아닌가요.”

    -운동현장에는?

    “뛰어다니며 데모하지는 않았죠. 성격이 그쪽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주변에 그런 친구가 많아 영향을 받았죠.”

    -박정희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뭐 부정적이었죠. 독재자였으니. 긴급조치 시절이고. 제가 긴급조치 9호 세대예요. 표현의 자유를 엄청나게 억압했지요. 그러니 좋아할 리가 없었죠.”

    -사회에 나온 이후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조금이라도 바뀌진 않았나요.

    “저의 기본 생각은 우리가 굶을지언정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먹고살기 위해 사람을 죽일 수는 없는 것 아니에요. 사람을 해치는 정치나 정권은 절대 지지할 수 없죠. 차라리 가난하고 말지. 의문사가 얼마나 많았어요. 사람의 생명과 경제를 바꿀 수는 없다고 봐요. 다만 1960년대 초 우리 사회에서 군부가 엘리트 집단이었다는 점, 그 엘리트 집단이 정권을 맡아 경제를 일으켰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로 국민을 숨쉬기 힘들게 만든 것에 대해선 책임을 져야죠. 인혁당 사건 같은 것, 사람들을 그냥 죽인 거잖아요. 경제발전의 공이 인정되는 만큼 그런 과오가 공개되고 심판받아야 하는 거죠. 그렇다고 어느 한쪽으로 몰아붙일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공(功)과 과(過), 양쪽을 다 보는 게 역사지, 무조건 매도하거나 무조건 긍정하는 건 역사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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