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호

蘭에 미친 사람들

“난뿌리 하나 잘 캐면 로또가 부럽지 않다”

  •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입력2006-04-27 18: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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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야흐로 억대 난의 시대다. 지난 3월 전주 세계난산업박람회 대상작인 ‘홍화소심’(3촉)의 호가는 3억원. 촉당 1억5000만원을 호가하는 국내 최고가 난 엽예품 ‘벽담’은 최첨단 보안장치 속에 24시간 경호원이 지키고 있다. 난을 취미가 아닌 투기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난 도난사건도 늘고 있다. 애호가와 투기꾼이 얽히고설킨 고가 난의 세계.
    蘭에 미친 사람들

    국내 최고가 난으로 알려진 엽예품 ‘벽담’의 신비로운 자태.

    서울 강남 아파트 30평형 한 채 값이 10억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러나 강남 집값 못지않게 비싼 것이 또 있다. 난(蘭)이다. 지난 3월24~26일 전북 전주대 희망홀에서 열린 ‘전주 세계난산업박람회’ 출품작 600여 점 중 대상작인 ‘홍화소심’(3촉)의 호가는 3억원. 촉당 1억원인 셈이다.

    문외한에게는 보잘것없는 ‘풀 한포기’에 지나지 않지만 난 애호가들은 “저런 난을 한번만이라도 키워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할 만큼 귀한 난이다. 홍화소심 소장자인 배상호씨는 “3억원을 줘도 팔 생각이 없다”면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희귀한 난”이라고 자평했다.

    난은 크게 동양란과 서양란으로 나뉜다. 동양란은 한국, 일본, 대만과 같은 온대성 기후의 나라에서 자생하는 난을 말한다. 서양란은 ‘서양의 난’이란 뜻이 아니라 서양에서 들여와 길러졌거나 개량된 난을 말한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서양란이 자생하고 있다.

    동양란은 크게 춘란, 한란, 풍란으로 나뉜다. 춘란은 봄에 꽃을 피우는 난을 일컫는다. 지역적으로는 한국 춘란, 중국 춘란, 일본 춘란, 대만 춘란, 중국 오지 춘란으로 구분하며, 꽃대 하나에 한 개의 꽃을 피우는 ‘일경일화(一莖一花)’와 꽃대 하나에 여러 개의 꽃이 피는 ‘일경구화(一莖九花, 중국에서 ‘九’는 ‘多’의 의미)’로 분류한다. 식당이나 사무실 등을 개업하거나 승진을 축하할 때 선물로 보내는 동양란은 대부분 일경구화인 혜란(蕙蘭)이다.

    난 중에서도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춘란은 보통 3~4월에 개화한다. 춘란은 크게 잎의 무늬를 중시하는 엽예품과 꽃이 아름다운 화예품으로 나뉜다. 난의 값을 좌우하는 것은 품종의 희소성이다. 엽예품은 잎의 무늬가 아름다울수록 명품에 속한다. 중투(中透, 잎의 가운뎃부분 전체가 흰색 또는 노란색 무늬의 난), 호(縞, 잎의 중심부에 흰색 또는 노란색 줄무늬가 있는 난), 복륜(復輪, 잎의 양쪽 가장자리에 흰색 또는 노란색 줄무늬가 있는 난) 등 잎의 색과 무늬에 따라 촉당 가격이 수천원에서 수천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3억원 줘도 안 판다”

    화예품은 꽃의 색깔에 따라 백화(흰색), 황화(짙은 개나리빛), 홍화(붉은빛), 주금화(황화와 홍화의 중간색)로 구분한다. 꽃은 노랑 자주 주황 빨강 순으로 가치가 높고, 빨강 중에서도 꽃잎이 둥글며 크기가 다소 큰 게 비싸다. 앞서 언급한 홍화소심이 촉당 억대를 호가하는 것도 돌연변이에 의해 꽃잎이 황금빛깔을 띤 데다 꽃대와 꽃대를 둘러싼 포에 백색 이외의 색이 섞이지 않은 ‘소심’이기 때문이다. 한국 자생란 중 돌연변이를 일으킨 희귀종은 집 한 채와 맞먹는 어마어마한 몸값을 자랑한다.

    “난 하나 잘 캐면 ‘로또’가 부럽지 않다?” 수년 전부터 난이 고가에 거래된다고 알려지면서 한국 춘란의 대표적 자생지인 전남·북 지방의 산에 난 애호가를 비롯한 일반인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특히 난이 꽃피는 3월과 4월에는 난을 채취하려는 사람들이 몰린다.

    지난 3월23일. 김모씨는 전남 함평 인근의 산에서 홍화를 산채(산에서 난을 직접 채취한 것)했다. 붉은빛이 유난히 선명한데다 꽃의 형태까지 아름다운 이 홍화는 촉당 7000만~8000만원을 호가한다. 김씨가 산채한 홍화는 3촉. 취미생활로 난을 기른다는 김씨는 “등산을 겸해 산에 갔다가 우연히 좋은 난을 발견했다”며, 난 전문가가 자신의 홍화를 본 후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홍화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색감을 지녔다고 평했다”고 전했다.

    蘭에 미친 사람들

    지난 3월 전주에서 열린 ‘세계난산업박람회’ 대상작 ‘홍화소심’(3촉)의 호가는 3억원이다.

    김씨는 노후를 걱정하지 않는다. 돈이 필요할 때 소장하고 있는 난을 팔아 노후자금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김씨처럼 고가의 난을 산채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어느 산에서 캤는지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심마니가 산삼을 캔 장소를 외부에 드러내지 않듯 ‘금맥’을 남에게 함부로 알려줄 수 없다는 것이다.

    5년 전 전남 나주군 다시면에 사는 50대의 이모씨는 동네 인근 산에서 잎의 가운뎃부분 전체에 황금빛이 맴도는 엽예품 중투 2촉을 산채했다. 평소 난에 관심이 많던 이씨는 광주광역시에 있는 난 상인을 불렀다. 상인이 제시한 매입가는 700만원. 이씨는 또 다른 상인을 불러 값을 흥정했고 1400만원을 손에 쥐었다. 소문은 삽시간에 온 동네에 퍼졌다. 이씨는 자랑삼아 난을 채취한 산의 이름과 위치를 동네사람들에게 가르쳐줬고 그날로 산은 쑥대밭이 됐다.

    이씨가 사는 동네 인근에도 난을 산채해 횡재한 농부 김모씨가 있다. 1990년대 말, 김씨는 좋은 난이 많다고 소문난 산을 찾아 이파리에 무늬가 있는 난 10촉을 채취했다. 그는 난 값으로 모두 6000만원을 받았다.

    산채로 거금을 손에 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난 애호가들 사이에 흔하디흔하다. 난으로 ‘횡재’한 사람들의 얘기가 많아지는 것에 비례해 난 애호가도 늘어가고 있다.

    “돈 캐러 가는 심정”

    전남 화순군에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10여 년 전, 한 노인이 소일삼아 산에 난을 캐러 다녔다. 노인이 캔 난 중에서 쓸 만한 난을 동네 청년이 3만원씩에 사들였다. 어느 날 노인이 난을 들고 청년을 찾았다. 청년이 다른 때와는 달리 “5만원을 쳐주겠다”고 하자 노인은 ‘좋은 난이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노인은 청년에게 “이 난은 내가 기르겠다”고 하고는 읍내로 향했다. 읍내의 난원(蘭園)에서 “10만원에 난을 사겠다”고 하자 대도시에 가면 더 비싸게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광주광역시로 발길을 돌렸다.

    광주의 난원 주인이 “얼마에 팔겠냐”고 묻자 노인은 “석 장이면 팔겠다”고 대답했다. 주인은 그 자리에서 할아버지에게 100만원짜리 수표 석 장을 손에 쥐어줬다. 할아버지는 30만원을 염두에 두고 ‘석 장’을 제시했는데, 주인이 300만원을 내밀자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표를 거머쥔 노인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집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행여 마음이 변한 주인이 난을 안 사겠다고 무를까 싶어서였다.

    최근 주5일제가 정착되면서 직장인들 사이에 난 채취 열풍이 불고 있다. 취미를 살리는 것은 물론, 운이 따르면 짭짤한 부수입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성남의 K사 직원으로 구성된 난 동호회 회원들은 해마다 11월 말부터 난꽃이 개화하는 3~4월에 자주 산을 찾는다. 이 동호회에서 활동했던 이모씨의 이야기다.

    “동료가 산에서 직접 캔 난을 촉당 수십만∼수백만원씩에 파는 것을 곁에서 보고 나서야 난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후 날마다 주말이 오기만 기다렸다. 난을 캐러 가기 위해서였다. 아니, 돈을 캐러 가는 심정이었다. 솔직히 말해 난을 난 자체로 본 것이 아니라 돈이라고 생각했다. 난 동호회 회원들 중 난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난 애호가도 있지만 대부분은 고가의 난을 캐는 데 눈독을 들인 사람들이었다. 난에 한창 미쳤을 때는 명품 난이 많이 자생한다는 함평, 영광, 고창 등 남도의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녔다. 난꽃이 피는 3, 4월에는 화예품을 찾아 헤맸고, 여름과 가을에는 엽예품을 채취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

    이씨는 지금은 난에서 손을 뗐다고 한다. 3년여 동안 난을 산채하기 위해 여러 산을 훑고 다녔지만 고가의 난을 한번도 손에 쥐지 못한데다 난을 관리하는 데 적잖이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산채한 ‘평범한’ 난 100여 분이 관리 부실로 모두 죽었다”고 털어놓았다.

    10만원에 사서 수천만원에 팔아

    전북 남원시 환경사업소 김광호 소장은 주말마다 동료 공무원들과 함께 산에 오른다. 등산이 취미인 김 소장은 앞서 언급한 이씨와는 달리 “난 자체의 매력에 빠져 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욕심 없이 산에 오르내리던 김 소장은 지난해 가을 지리산 자락에서 엽예품 중투를 채취했다. 김 소장은 이 난을 경상도의 난 상인에게 400만원에 넘겼다. 뜻밖에 횡재를 한 김 소장은 난을 집에서 기르지 않고 사무실에서 키운다. 직원들이 함께 보고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蘭에 미친 사람들

    전주 ‘세계난산업박람회’에서 열린 난 경매장.

    “난 상인이 나한테 산 난을 1200여만원에 되팔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난 상인들은 산채한 난을 헐값에 사들여 몇 배의 이익을 남긴다. 심지어 10만원에 산 난을 수천만원에 판 상인도 있다.”

    오래 전에는 산지에서 직접 난을 채취한 사람들이 고가의 난인 줄 모르고 싼 값에 파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를 두고 난 상인들은 ‘횡재했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산채인들이 고가의 난에 대한 정보를 숙지하고 있어 예전처럼 난 상인들에게 앉아서 당하는 경우는 드물다. 국내 난 애호가는 1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 종사자에 따르면 난 애호가 중 촉당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대의 난을 구입하는 수요자도 3만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한국 춘란의 우수성이 널리 알려지면서 난 재배는 유망한 수출산업으로 떠올랐다. 국제적으로도 우리나라의 춘란이 가장 우수하고 가격도 비싼 편에 속한다. 춘란은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에서 각광받고 있다. 특히 난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이 우리나라의 고가 난을 수입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난이 돈이 된다’고 판단한 전남 함평군은 올해 82억원을 확보해 ‘난 공원’ 조성사업에 착수했다. 지난해 처음으로 세계난산업박람회를 개최한 전북 전주시도 난의 고부가가치 창출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전주대에서는 내년에 국내 최초로 난 학과를 개설할 예정이다.

    난은 옛 선조의 선비정신을 배울 수 있고 각박한 현대인의 정서순화에 도움이 되면서 훌륭한 ‘투자상품’이기도 하다. 촉당 5000만원짜리 난을 사 1년에 걸쳐 2촉을 배양하면 1억원이 남는다. 난도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고가의 난 품종당 200~340분(분당 3촉 기준)까지는 제값을 받는다. 품종당 1000촉이 넘으면서부터는 가격이 떨어진다. 1촉의 난이 1000촉으로 배양되기까지는 20여 년이 걸린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난은 촉당 1억5000만원(상품 기준)을 호가하는 엽예품 ‘벽담’이다. 벽담은 잎 가운뎃부분이 아예 노랗게 변해 희귀종 중에서도 희귀종에 속한다. 이 난은 일본에 3촉, 국내에 7촉밖에 없다. 국내에서 벽담을 소장한 사람은 한국난문화협회 류중광 이사장이 유일하다.

    기다림 즐길 줄 알아야

    류 이사장은 난 애호가들 사이에는 유명인사다. 1980년대 말, 국내의 희귀종 난이 헐값에 일본으로 유출되고 나서 수년 뒤 국내로 고가에 역수출된 사실을 알게 된 류 이사장은 국내산 난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데 앞장서고 있다.

    “희귀종 난이 한 촉이라도 해외에 유출되면 손해다. 일본이나 중국에 수출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일본, 중국 사람들은 한국 춘란을 굉장히 좋아한다. 내가 소장한 벽담은 일본과 중국 난 애호가들이 서로 사가겠다고 거액을 제시하지만 팔지 않는다. 당장은 큰돈이지만 멀리 보면 손해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배양해 수출하는 것이 국가 경제는 물론 나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

    고가의 난을 가장 많이 소장한 것으로 알려진 류 이사장이 난에 입문한 것은 25년 전, 조부모의 산소 주변에 자생하는 난을 보고 그 빼어난 자태에 마음을 빼앗기고부터다.

    “고매한 잎 모양, 향이 진하지 않지만 은근한 멋이 묻어나는 꽃…. 난과의 만남은 커다란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난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평온해지고 근심과 걱정이 덜어진다.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난에 취해 있는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를 것이다. 난은 기다림, 즉 인내심 없이는 기르기 힘들다. 어떤 난은 꽃을 보기 위해 3~5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을 즐길 줄 알아야 진정한 난 애호가라 할 수 있다.”

    蘭에 미친 사람들

    한국난문화협회 류중광 이사장의 난실에는 한 촉에 1억5000만원을 호가하는 국내 최고가 난 엽예품 ‘벽담’이 자라고 있다.

    집에 오면 가장 먼저 난실부터 찾는다는 류 이사장은 난을 팔아 연 10억여원의 소득을 올린다. 어느 전문직 종사자 못지 않은 고소득이다. 그의 소득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필자도 믿기지 않아 “사실이냐”고 되물었다. 류 이사장은 “해마다 8억~10억원어치의 난을 판 후 이를 세무서에 신고한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러나 류 이사장은 예외적인 경우이고, 난을 사고팔면서 세금을 내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난이 음성적으로 거래되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 있는 류 이사장의 난실은 금융기관의 비밀금고 못지않게 보안시설이 잘 돼 있다. 류 이사장이 소장한 난 3000여 분은 시가 200여억원에 이른다. 유리로 만들어진 난실은 쇠창살로 둘러싸여 있고, CCTV와 보안업체 무인경비 시스템의 보호를 받으며, 경비원이 24시간 상주한다. 난실에 들어가려면 최첨단 잠금장치가 설치된 문을 두 개나 통과해야 한다.

    지난 3월, 경기도 안성의 난 애호가 집을 복면강도 3명이 덮쳤다. 난에 물을 주고 있던 주인을 위협한 강도들은 벌건 대낮에 수억원대의 난을 털어 사라졌다. 같은 달 부산의 난 애호가 집도 털렸다. 밤에 경비견과 함께 난실을 지키고 있던 경비원을 각목으로 두들겨 팬 후 난실에 있는 난을 통째로 들고 사라졌다.

    음성 거래 많아 추적 어려워

    고가의 난을 소장한 난 애호가는 무엇보다 보안에 신경을 쓴다. 글머리에 언급한 홍화소심의 소장자 배씨는 아무에게나 난실을 개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언젠가 공무원이라는 사람이 난을 보고 싶다고 하기에 공무원 신분증을 확인한 후 난실을 개방한 적이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 유통되지 않는 희귀란 ‘복색소심’을 소장한 이모씨는 난실을 필자에게 개방하기에 앞서 ‘신분, 사는 곳, 난실의 위치 등을 공개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2500여 분을 소장하고 있는 이씨는 “복색소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도둑들의 표적이 된다”며 “고가의 난을 소장한 사람들 대부분은 훼손과 도난을 우려해 소장 사실을 숨긴다”고 말했다. 복색소심 최상품은 1억3000여만원을 호가한다.

    고가의 난은 곧 현금이다. 난마다 소장자의 이름이 새겨진 것도 아니고, ‘내 것이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도 약하다. 도난당한 난은 음성적으로 거래되기에 경찰에 신고해도 대개 찾지 못한다.

    2004년 3월4일. 광주 남부경찰서는 난 전문 절도단으로부터 압수한 난으로 가득했다. 이날 경찰이 공개한 163분의 난 중에는 1촉에 3000만원을 호가하는 등 일본을 비롯한 중국에서도 고가에 거래되는 희귀 난이 많았다. 인천 계양구에서 화원을 운영하는 황모씨 등 3명의 난 전문 절도단으로부터 압수한 것들인데, 시중가 200만~300만원부터 1억원대까지 거래되는 고가의 난이 주종을 이뤘다.

    특히 이들이 훔친 중투와 중압호는 난 애호가들 사이에서 1촉에 2000만~3000만원에서 1억원에 거래되는 희귀종이었고 단엽 품종은 1000만원에 거래 될 만큼 최상품인 것으로 평가됐다. 난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날 공개된 난의 대부분은 100만개 중 1개꼴로 발견되는 희귀 품종이기 때문에 사실상 ‘부르는 게 값’이라는 것.

    이들 난이 범죄의 표적이 된 것은 난 전문지에 난원이 소개된 탓이었다. 피해자는 “도난당한 난 가운데 일부를 찾았지만, 대부분 제대로 돌보지 않은 바람에 상처를 입어 상품가치가 크게 떨어졌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군자의 기품이 묻어나는 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주로 전문직 종사자다. 교수와 교사, 의사, 금융인, 판·검사, 변호사, 언론인, 사업가 등이 난에 심취한다는 것. 정치인의 경우 난 애호가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취미생활이든 재테크 차원이든 고가의 난을 기른다는 소문이 날 경우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전주 세계난산업박람회에서 만난 난 애호가는 “난을 좀 아는 정치인에게 ‘뇌물 대신 고가의 난을 선물했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한 비밀이며, 국회의원 출마자가 공천을 받기 위해 모 야당 실력자에게 억대의 난을 선사한 일도 애호가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얘기”라고 귀띔했다.

    “또 사면 이혼이야!”

    서울 인사동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황모씨는 난에 심취했던 지난 10여 년을 떠올릴 때마다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재력가인 황씨는 우연히 난의 빼어난 자태에 빠져든 후 3억원어치의 난을 구입했다. 그러나 정성들여 키운 난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몇 달 못 가서 죽고 말았다. 3억원을 한순간에 날리자 황씨의 아내는 “다시 난을 사기만 하면 이혼할 줄 알라”고 엄포를 놨다. 하지만 황씨는 눈앞에 어른거리는 난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또다시 억대의 난을 구입해 친구에게 키워줄 것을 부탁했다. 어느 날 황씨는 친구에게서 “난이 죽어가고 있으니 빨리 조치를 취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아내가 친구와 통화하는 내용을 듣고 기겁을 했다. 그날로 짐을 싸서 나갔다. 다시는 난을 키우지 않겠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빈 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난 때문에 하마터면 이혼당할 뻔했다.”

    황씨처럼 난에 대해 잘 모르면서 고가의 난을 구입했다가 낭패를 본 사례가 적지 않다. 난으로 떼돈을 벌기 위해 거액을 투자해 고가의 난을 구입했다가 배양에 실패해 원금까지 날리는 것이다.

    올 새해 첫날. 노무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들과 여야 정당 대표들에게 난과 연하장을 보내 신년인사를 전했다. 현직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의 생일 때 관례대로 난을 선물로 보낸다. 난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청와대에서 선물로 보내는 난은 10만~20만원짜리 난”이라면서 “당 대표가 바뀌거나 대변인 등 새로운 당직을 맡을 때 선물하는 난은 10만원대 미만”이라고 설명했다.

    단아하게 뻗은 동양란은 한 폭의 수묵화와도 같다. 우리 선조들은 난이 꽃피면 멀리 있는 친구를 불러 차 한잔을 마시며 함께 난을 감상했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이다. 난의 진정한 아름다움보다 ‘돈에 눈먼’ 사람들이 한번쯤 곱씹어볼 만한 금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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