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호

대기업 하청업체 경리직원의 ‘양심 일기장’

“나는 이렇게 탈세를 도왔다”

  • 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6-04-28 14: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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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사 돈 마음대로 꺼내 땅 사고, 기업 매입
    • 가짜 지입기사, 청소용역업체 기장해 경비 뻥튀기
    • 허위 부채 만들어 대표가 ‘인 마이 포켓’
    • 운송대금 어음 할인율 속여 공금 착복
    • “007가방에 현금 넣어 여당 모의원에게 줬다”
    • 세무조사 관련, 전직 세무서장에 현금 1000만여 원 든 쇼핑백 건네
    • X회계법인, 탈세·횡령 알고도 묵인, 방조
    대기업 하청업체 경리직원의 ‘양심 일기장’
    검찰이 현대자동차그룹에 대한 비자금 수사를 본격화하던 지난 3월말, ‘신동아’ 편집실로 한 묶음의 소포가 배달됐다. 소포에는 국내 유수의 물류기업 Q사(社)의 탈세와 회사 대표의 횡령 사실을 정리한 일기장이 들어 있었다. 일기장의 작성자는 이 회사의 경리팀 차장을 지낸 이모(여·43)씨.

    이씨는 동봉한 편지에서 “회사의 탈세와 대표의 횡령에 협조 또는 방임함으로써 사회에 큰 짐을 졌다”며 “이들의 횡령·탈세 행태를 고발하고, 이를 감시해야 할 회계법인의 도덕불감증을 폭로함으로써 경종을 울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Q사는 현대차그룹의 물류계열회사인 글로비스로부터 화물을 배당받아 운송료를 받는 도급회사 성격을 띠고 있다. 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40%)과 아들 정의선 사장(60%)이 100% 출자해 만든 회사로 대검 중수부 수사에서 현대차 비자금 조성의 핵심으로 떠오른 업체다.

    탈세제보 포상금만 1억원

    이씨는 이미 지난해 3월11일 국세청에 Q사와 회사 대표의 탈세, 횡령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세청은 이를 근거로 1년간의 조사 끝에 올 3월17일 이 회사와 대표에 대해 21억여 원의 추징금을 확정 고지했다. 국세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회사 대표 L씨는 2001년부터 2004년까지 회사 돈 25억여 원을 무단으로 빼내 토지를 사고 자회사를 만드는 등 개인적인 용도에 쓰거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드러나 11억원의 소득세가 부과됐고, 같은 기간 회사법인은 경비 허위계상 등의 방법으로 총 20억5000만원을 탈세, 약 10억4000만원의 법인세(가산금 포함)가 추징됐다. 회사대표의 횡령금은 세법상 개인소득으로 잡혀 소득세가 부과된다. 회사대표 L씨는 회사에서 무단으로 빼내 쓴 돈 중 일부를 회사 경비로 쓴 것처럼 위장 계상함으로써 소득세와 법인세를 이중으로 탈루했다.



    이씨는 국세청 고발에 그치지 않고 지난 4월6일 검찰에 이 회사 대표 L씨를 횡령과 조세포탈 혐의로 고발했다. 그는 “국세청이 횡령과 조세포탈 등 형사적인 부분에 대해 검찰에 고발조치를 하지 않아 내가 직접 수사를 의뢰했다”며 “비록 대표의 지시로 이뤄진 것이 대부분이지만 나도 탈세에 가담한 게 사실이므로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지겠다”고 밝혔다. 이씨는 회사측이 국세심판청구 등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경우, 국세청 포상규정과 각 시군의 포상규정에 따라 약 1억원의 탈세제보 포상금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경리직원답게 이씨의 일기장은 마치 회계장부처럼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매월 한두 차례씩 작성된 일기장에는 차변, 대변이 그려진 경리 일람표와 함께 자신이 어떻게 탈세를 하고, 대표가 어떻게 돈을 무단으로 빼냈는지 꼼꼼하게 정리돼 있다. 심지어 탈세에 이용된 전표 번호까지 빠짐없이 기록했다. 그는 일기를 쓴 이유에 대해 “꼭 일기라기보다는 그때 그때의 재무상황과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둔 것이며, 연말 결산이나 세무조사 대비용 문건이기도 하다. 특히 경리와 재무에 대해 무지한 대표의 딸이 자금 책임자로 앉아 있었기 때문에 일기를 써놓지 않으면 연초에 실시하는 결산이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탈세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작성한 일기장이 결국 국세청으로 하여금 이 회사의 탈세와 횡령 사실을 밝히는 결정적 증거가 된 것이다.

    이전에 회계사·세무사 사무실에서 잔뼈가 굵은 경리통답게 그는 이 회사 재무구조가 악화된 원인을 금세 알아챘다. 그가 쓴 일기 중에는 글로비스에 대한 비판도 눈에 띈다. 다음은 그중 일부.

    악의 축 ‘글로비스’

    “이 회사의 가장 큰 문제는 글로비스라는 업체 때문에 벌어진다. 이 업체는 기아자동차가 각 물류 운송업체(Q사 등 6개업체)에 지급해야 할 화물(부품에서 완성차까지) 운송료의 일부를 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간다. 그러니 물류회사의 이윤은 크게 줄어든다.

    반면 글로비스는 가만히 앉아서 수백억을 챙겨간다. 이 업체가 가져가는 ‘헛돈’을 화물차주(지입기사)들에게 준다면 그들은 행복에 겨워 데모를 할 까닭이 없어질 것이다.”(2003년 7월)

    Q사와 대표의 탈세·횡령 구조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알아야 한다. 이 회사가 돈을 벌어들이는 부문은 크게 4가지. 운송업, 포장업, 유류업, 건물임대업이 그것이다. 그중 물류에 해당하는 운송업이 전체 매출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주로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도요타자동차 등 자동차 관련 대기업으로부터 물량을 받아 이를 포장하고 운송하는 것에서 대부분의 매출이 발생한다.

    가령 현대·기아차가 소모 부품이나 완성품 자동차를 보내면 이 회사는 용역업체에서 인부를 불러 이를 포장하고(연간매출 약 40억원), 회사 소유의 트럭과 지입차주 소유의 트럭을 이용해 자동차 생산 관련 공장과 자동차 판매 대리점, 항만까지 운송한다(연간매출 150억). 이때 Q사는 글로비스로부터 부품과 완성차를 인수하는 게 아니라 현대·기아차 공장까지 직접 가서 화물을 받아 목적지까지 운송한다. 글로비스는 운송업체만 선정하고 수수료를 받는 셈이다.

    이 회사는 또 사업장에 있는 임대 건물에서 연간 1억60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회사 내에 주유소를 만들어 수백명의 지입차주들에게 이곳에서 기름을 넣게 함으로써 연간 20억여 원의 돈을 벌어들인다. 제보자 이씨는 “Q사의 연간 매출은 220억∼250억원이고 순이익률은 8~9%에 이르지만, 법인세 신고 때는 2~3%로 신고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의 법인세율이 당기순이익의 27%선임을 고려할 때 탈세 범위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홍길동’과 ‘김정호’

    이 회사에는 관리직 직원 90여 명, 직영기사와 지입차주(지입기사) 200여 명이 있다. 자사 직원인 직영기사보다 자신의 차를 가져와 영업행위를 하는 지입기사(지입차주)가 더 많다. 지입기사들은 자신이 직접 화물차를 구입해놓고도 형식적으로는 물류운송업체의 이름으로 화물차를 구입한 뒤 업체로부터 되사는 형식을 취한다. 물류업체에 등록되어 있지 않으면 화물 물량을 얻기 힘들 뿐 아니라 운송료도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 회사의 유류 매출을 올려주는 주요 거래처이기도 하다.

    글로비스가 Q사에 화물운송을 알선하고 수수료를 받는 것처럼 Q사는 지입차주들에게 화물을 알선하고 운송료에서 일정액의 수수료를 챙겼다. 운송료와는 별도로 차량 관리비도 받았다. 글로비스를 중심으로 원청-하청의 먹이사슬이 자기복제를 거듭하면서 물류비용만 늘어나는 구조인 셈이다.

    이 때문에 이 회사는 2004년 6월, 다단계 주선 및 운송행위 등 법령 위반행위로 건설교통부에 적발돼 행정처분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무슨 영문인지 최근 한국물류대상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 상은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물류혁신 노력을 통해 국가경제의 비전과 발전에 기여한 기업과 개인에게 주는 상’이다.

    이 회사의 탈세와 횡령은 주로 지입기사에게 주어지는 외주 운송비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법인세 탈루사례를 보자.

    Q사는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지입기사 ‘홍길동’을 만들어내 외주 운송비 명목으로 300만원을 지급하고 그에 따른 허위 전표를 발행했다. 법인세는 총매출에서 회사 경비를 제외한 당기순이익에 업체마다 다른 세율을 곱해서 나온 금액이다. 세법상 외주 운송비는 경비로 인정되므로 이 회사의 당기순이익은 가상의 지입기사 홍길동에게 지급된 외주 운송비만큼 줄어들고, 당기순이익의 27%인 법인세도 그만큼 경감된다. 이 회사는 2001년에서 2003년까지 이런 방식으로 15억2000만원의 허위 경비를 계상해 당기순이익을 축소하고 법인세를 탈루했다.

    이 회사 대표는 2001년 회사공금 2억2000만원을 빼내 자회사 2개를 개인명의로 사들였는데, 이때 쓰인 자회사 구입금액(출자금)을 모두 외주 운송비로 허위 계상해 횡령 사실을 감추는 한편, 법인세도 탈루했다. 대표는 이 중 1개 회사를 되팔아 다시 이익을 취했다. 국세청 조사 결과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이 회사가 법인세 탈루를 위해 허위 계상한 경비는 모두 20억5000만원. 그렇다면 나머지는 어떤 방식으로 탈루가 이뤄졌을까. 이씨의 일기장으로 되돌아가자.

    대기업 하청업체 경리직원의 ‘양심 일기장’

    국세청 탈세 제보자 이씨의 탈세·횡령 일기장. 이씨의 일기장은 ‘일기’라기보다 장부에 가깝다.

    “최근 회사대표가 모조합의 이사장으로 출마했는데 회사 공금으로 현금과 상품권 1000만여 원어치를 구입한 후 투표권이 있는 물류회사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나눠줬다. 이 금액은 회사 내 직원의 복리후생비로 허위 계상했다.”

    이씨는 인터뷰에서 “내가 크게 실망한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라며 “허위 계상할 게 따로 있지, 이사장 선거에서 뇌물로 뿌린 돈을 회사 공금에서 인출하고, 그것도 모자라 주지도 않은 복리후생비로 허위 계상할 수가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회사대표는 공금을 빼내고 그 돈을 허위로 경비 처리함으로써 공금 횡령 사실 자체를 장부상에서 감출 수 있었다.

    2004년에는 ‘김정호’라는 가상의 이름으로 2800만원의 청소 외주 용역을 준 것처럼 허위전표를 만들어 법인세를 탈루했는가 하면, 세법상 경비처리가 되지 않는 벌금과 과징금을 3300만원씩이나 허위로 경비 처리했다가 국세청에 적발됐다.

    지입기사들로부터 편취한 비자금

    이씨의 공금 횡령, 즉 소득세 탈루에도 여러 방식이 이용됐다. 회사에서 무단으로 인출해 쓴 돈은 형법상으론 횡령금액이 되지만 세법상으론 대표 개인의 소득과 기타소득으로 잡혀 소득세 부과 대상이 된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대표가 빼내 쓴 회사 돈은 약 25억6000만원. 이 중 약 6억8000만원은 아무런 근거없이 빼 쓴 후 위에서 본 방법으로 허위 경비 처리한 경우이고, 15억4000원은 장부상에 인출 근거를 남긴 경우다. 하지만 제보자 이씨는 “장부에 근거를 남기고 인출한 금액도 합법적으로 위장했을 뿐 속내를 보면 무단 인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법인세를 적게 내려면 당기순이익을 줄여야 했고, 따라서 쓰지도 않은 경비를 쓴 것처럼 거짓, 과대 계상해야 했다. 문제는 허위 경비로 지출한 돈의 출처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회사가 대표에게 현금을 빌린 것처럼 장부에 부채계정을 만들었다. 쓰지도 않은 돈을 썼다고 했으니 그 돈은 금고에 그대로 남았고, 장부상 그 돈은 대표가 회사에 빌려준 돈이므로 대표의 돈이 된 셈이다. 대표는 그 돈을 자기 돈인 것처럼 연일 인출해 썼다.”

    또한 대표가 회사에서 빼내 쓴 25억6000만원 중 나머지 2억원은 지입기사들에게 운송대금 명목으로 지급된 어음에 높은 할인이자율을 적용해 대금 일부를 편취한 것이다.

    “대표는 지입기사들에게 지급할 운송대금 대부분을 자금이 달린다며 4개월짜리 어음으로 발행했다. 그러고는 대금 할인을 원하는 기사들의 편의를 돕겠다는 취지로 신용금고에서 일괄 할인을 대행해주겠다는 공문을 기사들에게 보냈다. 이렇게 위장한 후 대표는 회사 내 자금담당 팀장인 자신의 딸에게 그 업무를 일임했다. 하지만 신용금고에서 할인해준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이후 대표는 운송대금에서 연 15%의 어음할인이자를 뗀 금액을 지입기사들에게 지급했고, 떼낸 15%의 이자는 대표 딸 명의의 B통장(비자금 통장)으로 입금됐다. 당시 신용금고의 어음할인율은 연 7∼8%였다.”

    이씨는 “이렇게 횡령한 회사 공금을 누가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며 “현재까지 밝혀진 부분은 2003년과 2004년 토지(경기도 김포 소재, 4억원) 를 구입하고 개인 소유의 자회사를 사들이는 데 썼다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회사대표는 이렇게 빼낸 나머지 공금을 어디에 쓴 것일까. 이씨가 지난 4월6일 검찰에 제출한 고발장에는 조세포탈과 횡령 혐의 외에도 뇌물공여혐의가 추가돼 있다. 이씨의 일기장에는 정확한 날짜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자신이 직접 본 것과 회사대표에게 들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정치권과 세무사에게 건넨 뇌물에 대해 자세히 기록돼 있다.

    비자금, 뇌물로 빠져나갔다?

    비록 확인된 내용은 아니지만 어차피 검찰의 수사가 진행될 것이므로 그 일부를 공개하기로 한다.

    “내가 입사하기 전인 1999년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했고, 그 무렵 현대차가 이 업체를 인수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2001년 12월과 2월 사이 서울지방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고 조사원들과 회식을 하는 자리에서 회사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007가방에 현금을 가득 채워 지역 유지인 동서의 소개로 오래 전에 알게 된 정치인을 찾아가 통사정을 했다. 이후 현대는 이 업체에 대한 인수계획을 철회했다. 그는 당시 정부기관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후 동서라는 사람의 고향과 당시 이 정치인이 근무한 기관을 대조해보니 열린우리당 모 의원이 확실했다. 이런 사실은 당시 회식을 같이 한 세무조사반 곽모 반장과 김모, 장모 직원 등에게 물어보면 안다.”

    “회사대표는 입만 열면 모 의원을 12년 이상 알고 지냈다고 자랑하고 다녔으며, 실제 그 의원의 해외 순방에 동행하기도 했다. 회사 기부금계정(단기차입금)에는 모 의원 후원회에 기부한 금액이 있다. 2002년에 100만원, 2004년 4월에 300만원이다. 2004년부터는 정치자금법이 개정되면서 회사 돈으로 하는 기부행위가 금지됐다. 대표는 또 ‘모 의원의 추천으로 정부투자기관 감사 자리에 이력서를 냈으나 나이가 많아 떨어졌다. 모 의원의 소개로 모 전 의원을 잘 안다’고 몇 번씩 말했다. 모 전 의원은 술자리나 회식자리에 대표를 곧잘 불러냈다.”

    이후 모 전 의원은 이 회사 대표가 이력서를 낸 공기관의 장이 됐다. 취재 결과 이 업체가 모 의원에게 준 기부금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그 불법성 여부에 대해 조사에 나섰으나 무혐의로 일단락됐다. 이씨는 “중앙선관위가 그 기부금이 회삿돈인지 아닌지를 가리기 위한 회계실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조사를 서둘러 마쳤다. 이제 국세청의 조사가 끝난 만큼 검찰이 이 부분도 제대로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의 내용은 이씨가 대표에게 듣거나 장부상에 드러난 내용이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이 직접 목도한 대목도 있다.

    “2001년 12월부터 2002년 2월까지 서울지방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있었는데 이 때 대표에게 ‘윗선에 줄을 대서 편하게 조사받게 해주겠다’고 말한 지인(세무서장 출신)이 있었다. 이후, 세무조사가 잘 마무리되고 2002년 4월(추정), 이 지인이 대표에게 연락해 ‘지방국세청 윗선에 인사를 해야 한다’고 해서 쇼핑백에 현금 1000만여 원을 담아 가져다줬다. 대표가 쇼핑백을 들고 지인의 사무실로 걸어가는 것을 대표의 딸과 함께 지켜봤다. 실제로 도와준 게 없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팠다. 회사대표는 모 조합 이사장에 입후보했는데 당시에도 봉투에 돈과 상품권을 넣어 돌렸으며, 이는 경비로 허위 계상됐다.”

    회계법인의 탈세 묵인, 방조

    세법은 이런 탈세행위를 바로잡기 위해 기업들이 외부 회계법인으로부터 매년 회계감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회계법인은 회계감사가 끝나면 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기업의 탈세를 막는다. 회계감사 결과, ‘부적정 의견’이나 ‘의견거절’이 나오면 이 회사는 대외신용도가 크게 떨어져 금융기관이나 원청업체로부터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이런 회계감사제도가 있는데도 Q사는 어떻게 회계법인의 눈을 피할 수 있었을까. 이씨는 “Q사와 대표의 탈세, 횡령은 이 회사의 회계감사를 맡고 있는 X회계법인의 묵인과 방조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한다. 2005년 3월11일 이씨가 국세청에 Q사를 고발한 직후의 일기장을 보자.

    “오늘 국세청에 탈세제보를 하고 X회계법인에 그 자료를 복사해 관계자와 대표에게 e메일로 통보했다. 2004년도 결산 기말감사가 3월14일부터 16일까지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의 조사가 있기 전에 회계감사업체가 잘못된 부분을 시정하라는 의미였다.

    그동안 Q사에 대한 X법인의 감사는 한마디로 총체적 부실감사다. 허위 전표에 대한 샘플링 조사만 제대로 했더라도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영업행위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했다면 샘플링 조사 없이도 이처럼 수십억원을 탈세하는 일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씨가 탈세와 횡령 관련 자료를 모두 보냈지만 X회계법인은 Q업체에 대한 2004년도 감사보고서에서 ‘한정의견’을 달았다. 한정의견이란 일부에 문제가 있으니 그것만 고치면 된다는 뜻. 같은 자료를 가지고 국세청은 대부분을 그대로 인정한 반면, X회계법인은 극히 일부 사항만 지적했다. 회계법인이 이처럼 잘못된 감사결과를 내놓자 Q사는 이 틈을 타 한쪽에선 일부 지적받은 사항을 수정 신고하는 한편, 다른 한쪽에선 허위 외주용역비를 경비로 계상하는 등 또 다른 탈세방법을 동원했다.

    심지어 X회계법인은 회사대표가 2004년 회사공금 4억원을 빼내 구입한 경기 김포 소재의 땅을 대표 개인의 횡령금액(소득세 탈루금액)으로 보지 않고 법인 자산으로 인정했다. 회사대표는 이씨의 탈세 고발이 있자 회사 업무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 토지를 Q사가 자신으로부터 매입하는 형식으로 회사 자산화했다. 이렇게 하면 과정이야 어떻든 현재 상황에선 회사 돈으로 회사 땅을 산 셈이 된다. 하지만 국세청은 회사대표가 공금을 빼 내 산 것으로 보고 소득세를 부과했다.

    이밖에도 이씨가 주장하는, Q사에 대한 X회계법인의 묵인·방조 혐의는 많다.

    “이 회사가 세입자에게서 받은 임대보증금에 대한 부가세 신고납부가 1991년부터 누락된 것을 알고도 묵인했고, 대표의 공금 횡령 내용을 통보받았음에도 횡령 기간만큼의 이자 계산을 하지 않고 대부분 누락했으며, 경비허위 계상과 대표의 공금 횡령을 위해 만든 5억7300만원의 부채계정(주임임종 계정)을 묵인했다.”

    회계법인에 두 번이나 기회 줬는데…

    대기업 하청업체 경리직원의 ‘양심 일기장’

    자신의 일기장을 보낸 후, 신동아 편집실을 찾아와 인터뷰하고 있는 탈세 제보자 이씨.

    이씨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Q사에 대한 국세청의 확정고지(2006년 3월17일)가 있기 보름 전인 2월28일, 지난번 탈세제보에서 빠진 Q사의 나머지 탈세자료를 X회계법인에 통보했다. X회계법인이 자체적으로 Q사의 탈세구조를 바로잡을 기회를 다시 한 번 준 것이다.

    이씨가 X회계법인에 보낸 메일에 따르면 Q사는 2000년도 결산을 하면서 회사 소유의 유가증권을 매도한 것으로 위장해 매각대금을 경비로 허위 계상했다. 이씨는 “팔지도 않은 주식을 팔았다고 장부에 표시한 다음, 수입금으로 잡힌 매각대금을 허위로 경비 처리함으로써 법인세를 탈세했다”며 “대표는 이 유가증권을 소지하고 있다 2002년 5월에야 팔았고, 그 대금 또한 착복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Q사의 자회사도 5억원의 경비를 허위 계상해 1억5000만원의 세금을 탈루했다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이씨는 “지난해 국세청 고발 당시 이 중 일부 내용은 포함돼 있었으나 한번에 조사할 내용이 너무 많다는 조사팀의 의견에 따라 이번 조사에선 제외됐다”며 “만약 X회계법인이 2005년 결산에서도 이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국세청에 추가 탈세 제보를 할 것”이라고 했다.

    “대표의 횡령금이 어디에 쓰여졌는지 검찰 수사에서 꼭 밝혀지기 바란다. 또한 대표개인의 명의로 된 자산과 자회사는 모두 제자리로 환수돼야 하며 그에 따른 처벌을 받기를 바란다. 나도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지겠다. 일련의 사태로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임직원에게 걱정을 끼치게 한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

    공익제보자모임에도 가입한 이씨는 국세청에 탈세 고발을 한 후 바깥출입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1월에는 이사까지 했다.

    Q사가 국세청의 조치를 수용하지 않고 국세심판청구를 한다면 탈세와 횡령에 대한 추징금이 어느 정도 줄어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업체와 대표가 횡령과 탈세를 통해 개인적으로 부를 축적했고, 유수의 회계법인이 부실 감사를 했다는 사실에는 흔들림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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