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호

釜山, 소비와 보수만 남은 도시… 개방성, 역동성 살려낼까?

“우리가 노무현 때문에 못사는 건 아니지만 부뚜막에 얼라 앉혀놓은 것 같아서…”

  • 최호열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06-05-15 15: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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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 군소도시 전락이냐, 국제도시 발돋움이냐 기로(岐路)
    • 출산율 꼴찌, 청년실업률 최고
    • “요즘은 일기예보도 부산이 대구, 인천 다음에 나와요”
    • “TK-호남 지역감정 경쟁에 애꿎은 우리까지 덤터기”
    • “SK는 울산에 공원 만드는데, 롯데는 부산에 뭘 해줬나”
    • 중심가 광복동, 남포동엔 사행산업만 번창
    • “박근혜든 이명박이든 정권만 가져와라”
    釜山, 소비와 보수만 남은 도시… 개방성, 역동성 살려낼까?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다. 1997년 동아시안게임, 2002년 아시안게임, 2005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치러냈고, 2020년에는 올림픽 개최까지 꿈꾸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 제2의 도시를 넘어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지난해 9월 한 경제주간지에서 지역경제 사정을 알려주는 10개 지표를 통해 분석한 ‘지방자치단체 10년 경제 성적표’를 보면 16개 시·도 중에서 꼴찌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윤경숙(32)씨는 “부산은 제2의 도시가 아니라 이미 제3, 제4의 도시로 밀려났다”고 말한다.

    “텔레비전의 일기예보 순서만 봐도 알 수 있습니더. 옛날엔 서울 다음에 부산 날씨를 알려줬는데 지금은 대구, 인천을 먼저 해요. 그러다 보니 어떨 때는 부산 날씨가 나오기도 전에 지역 자체방송으로 넘어갈 때도 있다니까예.”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만 부산 시민들, 그리고 부산 출신들에게 부산은 더 이상 뿌듯한 자긍심의 도시가 아닌 듯했다. 국제도시로 발돋움할 것인가, 한국의 지방 군소도시로 전락하고 말 것인가. 기로에 선 부산의 성패에 대한민국 지방화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부뚜막에 얼라 앉혀놓은 것 같다”

    부산역에 내려서자 제법 거친 바람이 가장 먼저 객을 맞았다.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섞여 있다. 여행가방을 든 30대 중반의 사내가 코끝을 벌렁거리더니 “이 냄새가 어찌나 그립던지…” 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부산 하면 바다 아입니까. 바다는 스케일이 있어요. 부산영화제 때 외국인들이 영화 보고 나서 해운대 백사장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소주를 곁들여 밤새도록 이야기꽃 피우는 걸 평생 못 잊을 추억이라고 한다잖아요. 부산은 놀기도 좋은 곳입니다. 다른 관광지와 달리 대도시의 편의성을 다 갖췄으니까요.”

    그렇다. 부산은 원래 이렇게 낭만적이고 놀기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부산은 그리 여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망했지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아예. 빨리 (정권이) 바뀌기만 바랍니더.”

    역전에서 만난 택시기사 오경윤(62)씨가 내뱉은 첫마디다. 역 앞엔 손님을 기다리는 빈 택시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노 대통령이 부산을 위해 많이 노력하지 않았냐”고 하자 정색을 하며 “해준 게 뭐가 있냐”고 쏘아붙였다. 옆에 있던 젊은 택시기사는 “부산에서 노무현에 대한 평가가 많이 안 좋다”며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지지하는 사람이 20%도 안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지금 부산 경기가 안 좋은 걸 다 대통령 책임으로 돌려요. 지 생각엔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지예. YS(김영삼)보다는 노무현이 부산 생각 더 많이 해줬을 거라예. 노무현으로선 억울한 면도 있을 깁니다.”

    “노 대통령도 부산 출신인데 왜 그렇게 안 밀어주냐”고 묻자 오씨는 “내 자식이면 뭐합니꺼. 못하면 남의 자식 밀어줘야제”라며 고개를 저었다. 또 다른 택시기사가 거들었다.

    “노무현이 부산 사람이가, 김해 사람이지. YS 버리고 DJ(김대중)한테 간 거 아이가.”

    부산에서 노 대통령에겐 여전히 DJ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민주노동당 부산시장 후보 김석준씨는 “김대중 정부에 대한 부산 시민의 피해의식은 근거가 있다기보다 다분히 감정적이다. 한나라당이 자꾸 그걸 부추기고 사람들은 그 감정을 증폭시킨다”고 했다.

    부산 사람들은 “이제 부산에서 DJ에 대한 반감은 많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노 대통령을 싫어하는 것은 그가 “일을 너무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

    “한나라당 사람들은 한마디를 해도 신중하게 하는데 노무현은 말이 너무 가벼워요. 우리끼리 하는 말로 ‘부뚜막에 얼라(아기) 앉혀놓은 것’ 같다니까요.”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도 “노 대통령이 잘했으면 열린우리당에 대한 부산 시민의 시선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임기 내내 정치 갈등과 경제 실정만 거듭하는 등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처신이 가볍다, 자질이 부족하다, 말이 헤프다는 혹평이 쏟아진다”고 전했다.

    ‘우리가 남이가?’ 의식

    부산에서 열린우리당의 입지는 탄탄하지 못하다. 시장은 물론 구청장들도 모두 한나라당이다. 2002년 광역의회 선거에서 비례대표 1명이 당선됐을 뿐이다.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조경태 의원(사하을)이 승리하기는 했지만, 민주계 출신 박종웅 전 의원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한나라당 후보의 표를 잠식하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당선됐다고 봐야 한다.

    ‘시민의 신문’ 양병철 부산지국장은 “가령 정형근 의원 같은 사람이 서울에서 나왔다면 3선을 할 수 있었겠냐”며 “그런데 부산에선 당선된다. 사람들은 그가 과거에 고문을 했든 뭘 했든 ‘나와 상관없다, 그는 부산 경제를 살릴 한나라당 사람이다’고 생각한다”며 부산의 정서를 전했다.

    열린우리당의 한 젊은 구청장 후보는 ‘남구’ ‘북구’처럼 단순한 구 명칭을 바꾸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재미있는 아이디어란 생각이 들어 그 지역 50대 주민에게 “열린우리당 후보가 이런 공약을 내놨는데 어떻게 보냐”고 물었다. 그는 “그게 뭐냐, 나이가 어려 생각이 경박하다”고 했다. 하지만 비슷한 연배의 다른 주민에게 한나라당 후보가 그런 공약을 했다고 하자 “젊고 참신한 생각”이라고 평했다.

    부산경실련 차진구 사무처장은 “부산은 한나라당이다. 이에 대해서는 누구도 ‘왜?’라는 의문을 달지 않는다. 지금 꼭 한나라당만 붙잡고 있을 까닭이 없는데도 ‘민주당, 열린우리당은 아니기 때문에 한나라당이다’ 이런 정서다. 여전히 반(反)호남 정서가 강하다”고 했다.

    서울을 빼고 보면 부산만큼 타 지역 사람이 쉽게 뿌리를 내린 곳도 없다. 광복 이후 귀환의 장소, 전쟁 때는 피난의 장소였던 데다 드나듦이 자연스러운 항구도시인 까닭이다. 어디에서 누가 와도 쉽게 뿌리를 내리고 동화된다. 이북이든 전라도든 제주도든 이곳에선 다 ‘부산사람’이란 공동체로 뭉친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은 혈연공동체보다는 지역공동체 성향이 더 강하다. 친족을 지칭하는 ‘아재’ ‘아지매’가 일상적인 대화에서 다른 지역에서보다 훨씬 더 빈번하게 사용되는 것도 이런 동류의식의 발로다.

    지역감정 이야기가 나오면 부산 사람들은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대구·경북과 호남 간의 경쟁 와중에 자신들까지 덤터기를 쓴다는 것이다. 해운대에서 만난 시민 박한식(45)씨는 “광주는 특정 정당 지지율이 90%가 넘는다. 대구도 70%가 넘는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부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부산 사람들은 지금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대놓고 지지하는 사람도, 그렇다고 대놓고 욕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부산학센터 오재환 연구원은 YS에 대한 부산 시민의 심리를 “호남에서는 지금도 DJ가 추앙의 대상이다. 하지만 부산에서 YS는 우리가 돌봐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분석했다.

    부산의 정치성향을 보여주는 여·야 지지율
    선거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진보정당
    2004년 시장보궐 허남식 62.3% 오거돈 37.7%
    2004년 총선 한나라당 52.52% 열린우리당 38.92% 민노당 2.88%
    2002년 대선 이회창 66.26% 노무현 29.64% 권영길 3.08%
    2002년 시장선거 안상영 63.77% 한이헌 19.4% 김석준 16.83%
    2000년 총선 한나라당 60.32% 민주당 15.2%
    1998년 시장선거 안상영 45.14% 하일민 11.4%
    1997년 대선 이회창 52.59% 김대중 15.07% 권영길 1.2%
    1996년 총선 신한국당 55.8% 국민회의+민주당 25.17%
    1992년 대선 김영삼 72.64% 김대중 12.41% 백기완 1.01%


    부산에서 촬영되는 영화는 많아도 부산에서 제작되는 영화는 한 편도 없는 게 오늘날 부산 영화계가 안고 있는 고민이다. 그러다 보니 부산에서 영화를 배운 학생들이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인력유출이 반복된다. 김 교수는 “부산시가 영화제를 성공적으로 치르는 데에만 몰두했지, 정작 부산 영화 발전을 위해서는 투자를 소홀히 했다”고 아쉬워했다.

    “미국에서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과 선댄스 제작 시스템이 공존하듯이 한국 영화가 발전하려면 충무로 영화와 부산 영화가 공존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부산 영화를 제작하고 유통할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영화제작이 없는 영화제는 사라지거나 계속해서 땅만 빌려주는 노릇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꿈틀대는 부산 경제

    부산 사람들은 무뚝뚝하다. 마음에 있어도 표현을 안 한다. 서울에서 살다 남편 직장 때문에 1년 전 부산으로 내려왔다는 안소희(34)씨는 이런 부산 사람들을 접하면서 처음엔 당황했다고 한다. 싹싹한 서울 사람과 달리 웬만큼 친해져도 ‘어데 가능교?’ ‘왔능교?’ 하는 퉁명스러운 인사가 고작이기 때문이다.

    “서비스 의식은 확실히 떨어져요. 서울에선 패밀리레스토랑 직원들이 테이블 앞에 무릎 꿇고 상냥하게 주문받는 게 당연한데, 여기는 하는 사람도 익숙지 않고 받는 사람도 ‘이게 뭔 지랄이냐’고 할 정도로 거북스러워해요. 그게 어떤 면에서는 순박해 보이기도 해요.”

    대신 집단의식과 패거리 문화는 강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 손님과 상인이 싸움이 붙으면 남의 일처럼 모른 척하는 서울과 달리 상인들이 다 한편이 된다는 것. 다른 지역에 비해 지역신문이 강세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고 한다. 부산의 지역신문은 가판대에서 중앙일간지보다 2배 이상 팔린다. ‘부산일보’나 ‘국제신문’을 보면서 중앙일간지를 보는 경우는 있어도 중앙일간지만 보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안씨에게 “부산이 살 만한 곳이냐”고 묻자 잠시 머뭇거렸다.

    “부산은 산을 등에 업고, 바다를 가슴에 안고 있어요. 게다가 낙동강이 있어 모르는 사람들은 전원도시 같겠다고 하지만, 시가지 녹지율이 7.3%에 불과해요. 도심에 공원다운 근린공원이 없어요.”

    그래서 부산 사람들은 하야리아 미군부대를 공원화하는 데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 부산 최대의 평지공원이 조성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인구 360만이 넘는 대도시에 동물원이 하나도 없고, 백화점다운 백화점이 4개뿐이라고 하면 서울사람들은 깜짝 놀란다는 것.

    “하천만 해도 그래요. 서면 근처를 지나다 보면 종종 악취가 날 때가 있어요. 동천에서 나는 냄새인데 많이 나아진 게 그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옛날엔 ‘똥천’이라고 불렀다니 상상이 가죠.”

    난개발도 심각한 문제라고 한다. 바다가 보이는 곳이면 어디든 우후죽순으로 아파트가 들어선다. 무분별한 개발로 짜증스러울 정도라고 한다.

    그래도 그는 부산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투박하면서도 속정을 주고, 한번 의기투합하면 불같이 일어나는 부산 사람들의 매력을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긴 슬럼프를 마치고 다시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준비하는 부산의 역동성을 실감하고 있다는 것.

    그러고 보면 부산 사람들은 바다를 닮았다. 바다는 파도가 없이 잔잔할 때에도 썩지 않는다. 그리고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거센 파도가 출렁인다. 부산의 경제도, 정치도 바다처럼 다시 출렁거리기를 기대한다.

    [부산시장 후보 릴레이 인터뷰] 김석준 민주노동당 후보

    “부산을 서민의 ‘행복특별시’로 만들겠다”
    釜山, 소비와 보수만 남은 도시… 개방성, 역동성 살려낼까?
    -부산은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나.
    “부산만큼 살기 좋은 곳도 없다. 게다가 세계 5위의 무역항이다. 그런데도 시민 소득은 전국평균에도 못미친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정치권, 기업인들이 지역살림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1960∼70년대에는 서울보다도 살기 좋았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동력이고 관문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부터 침체하기 시작했다. 시대변화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김영삼씨와 한나라당 정치세력이 부산을 배타적으로 독점하면서 기득권 유지에 급급, 지역사회 발전을 등한시했다. 보수적 지배세력의 이해관계로 인해 발전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시민의 삶만 열악해졌다. 이젠 판갈이가 이뤄져야 한다.”

    -민노당에 대한 지지도가 낮다. 사표(死票) 방지 심리도 걸림돌이 될 것 같다.
    “정치 지형의 변화는 짧은 시간에 갑자기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2004년 지방선거 때 민노당은 구청장 후보 하나 없이 나 혼자 출마했다. 처음에 1%의 지지율로 시작해 결국 17%의 득표율을 올렸다. 이번엔 그 이상을 얻을 자신이 있다. 그동안 국회에 민노당이 진출했고, 민노당에 대한 인식이 더 좋아졌다. 또한 부산지구당 역량도 커져 이번 선거엔 70여 명의 후보가 출마한다.사표 심리는, 변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힘센 사람에게 기대보려는 데서 비롯된다. 이번 선거기간에 우리의 활동을 보면서 시민들의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대안임을 확인시키겠다.”

    -이번 선거에서 민노당의 목표는.
    “민노당이 진보적 대안 야당임을 확인시키는 것이다. 시장은 2등이 목표고, 시의회는 독자적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최소 의석수인 5석 이상을 당선시키는 것이다. 기초의회 역시 구·군마다 1명 이상 당선이 목표다. 그래서 진보적 의정활동을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

    -시장이 된다면 부산을 어떻게 바꿀 생각인가.
    “부산 시민의 삶의 질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출산율이 전국 최하위다. 젊은이들이 빠져나가 고령화가 가장 많이 진행된 도시가 됐다. 부산이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가 돼야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다. 보육시설과 교육 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 젊은이가 돌아와야 한다. 또한 중소기업을 살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기술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부산의 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고급인력이 부산 기업에 취업하면 지원금을 주는 제도를 도입해 취업도 돕고 기업도 돕는 정책을 펴겠다.”



    정치 리더의 부재

    YS의 퇴임 이후 부산은 정치 리더의 공백상태에 있다. ‘국제신문’ 신수건 기자는 “몇 년 전부터 지역언론에서조차 ‘정치 리더’라는 단어가 사라졌다”고 했다.

    “다선 의원은 많지만 중앙 정치무대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죠. 모든 게 수도권 위주로 가듯이 정치 역시 서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부산뿐 아니라 대구도 박근혜 대표 이후 한동안 정치 리더가 나오기 힘들 것 같습니다.”

    ‘동아일보’ 조용휘 부산주재기자의 분석은 좀 달랐다.

    “그만큼 부산의 정치가 민주화했다는 방증이 아닐까요. 과거엔 독재와 싸우느라 1인 지도자 중심으로 뭉치면서 우상화했지만, 지금은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희석되어 더는 리더가 필요하지 않은 거죠.”

    부산사람들에게선 당분간 누군가를 키우겠다는 생각이 읽히지 않았다. ‘박근혜든, 이명박이든 차기에 정권을 가져올 사람을 밀어준다’는 의식이 강했다. ‘국제신문’의 여론조사를 보면 지난 1월에는 박근혜, 3월엔 이명박이 1위로 나왔다.

    여당이 야당 ‘부산 독식’ 일등공신

    5·31 부산시장 선거 또한 한나라당 후보가 누가 되느냐가 관건일 뿐 공천만 받으면 당선을 낙관하는 눈치였다. 이따금씩 만나게 되는 열린당 지지자들조차 ‘바꿔야 한다’는 당위성만 피력할 뿐 이긴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은 오거돈 후보 당사자뿐인 듯했다.

    택시기사 김영민(32)씨는 “개인적으로는 열린우리당이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 후보가 당선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오 후보에 대한 시민의 평가는 거의 비슷했다. “후보는 괜찮은데 당이 안 좋다”는 것. 물론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허남식 부산시장만 못하다”고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오 후보를 비판할 때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것이 신항 명칭 문제다. 영문표기는 ‘부산신항(Busan New Port)’인데 진해시 눈치를 보느라 한글표기를 똑부러지게 ‘부산신항’으로 못하고 ‘신항’으로 얼버무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유부단해서야 어떻게 부산을 끌고가겠느냐는 것.

    2004년 부산시장 보궐선거 때는 가족 5명이 모두 오 후보를 찍었다는 회사원 최병태(57)씨는 “다른 식구들은 몰라도 나는 이번에 허 시장에게 투표할 생각”이라고 했다.

    “(허 시장이) APEC도 잘 치렀고, 무난하게 했잖아예. 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돼가꼬 1년6개월밖에 못했으니 기회를 더 줘야죠. 오 시장은 신항 이름 때문에 믿음을 잃었어요. 정부에서 결정한 거라 하지만 그래도 오 장관이 잘못한 거지예.”

    부산시장 후보로 열린우리당은 오거돈 후보가, 민주노동당은 김석준 후보가 확정된 가운데 한나라당은 허남식 현 시장과 권철현 의원이 4월말 당내경선을 치른다. 3월초까지만 해도 인지도 조사에서 40% 넘게 차이가 벌어져 경선 없이 허 시장이 후보가 되리라고 예상됐지만 중앙당은 3월30일 여론조사 등을 종합한 결과 경선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국제신문’ 신수건 기자는 “허 시장이 앞서는 것은 분명하지만 권 후보가 추격해 지지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어 역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전망했다. 권 후보가 시장 프리미엄을 안은 허 후보에 비해 시민 사이에선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한나라당 당원 사이에서는 오히려 앞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부산경실련 차진구 처장은 부산에서 한나라당이 독식하는 것에 대해 단순히 지역감정 때문만은 아니며, 한나라당 후보를 압도할 후보를 내놓지 못하는 열린우리당의 책임도 크다고 했다.

    “이번 선거만 하더라도 오 장관이 허 시장을 확실하게 압도할 정도가 아니에요. 부산 시민이 봤을 때는 오 장관이나 허 시장이나 똑같은 부시장 출신의 행정관료일 뿐이에요. 큰 차이가 없으니까 당을 보게 되는 거죠. 만약 한나라당 후보로 권 의원이 나오면 모르겠어요. 권 후보는 정치인이고 오 장관은 행정관료니까 경쟁이 될 수도 있죠.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게 나오고요.”

    그는 구청장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들을 압도할 열린우리당 후보가 눈에 띄지 않는다며 여당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열린우리당은 부산을 한나라당의 아성으로 만드는 일등공신 같습니다. 청와대에서는 부산을 특별관리할 정도로 신경을 쓴다고 하는데 그러면 뭐해요. 여기 한나라당 의원들은 4년 동안 열심히 텃밭을 가꾸는 데 비해 열린우리당은 선거 넉 달 전에야 후보가 내려와요. 1년 이상 준비한 후보가 없어요. 더 웃기는 건, 청와대 행정관 하다 온 게 무슨 큰 벼슬인 줄 알고 홍보한다는 거죠. 직책으로 치면 부산시청 국장 정도인데, 국장은 여기에도 수두룩해요.”

    釜山, 소비와 보수만 남은 도시… 개방성, 역동성 살려낼까?

    부산의 대표적 재래시장인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의 썰렁한 풍경이 부산의 침체된 서민경제를 한눈에 알 수 있게 한다.

    그는 열린우리당이 기를 못 펴는 것을 지역감정 탓으로만 돌리지 말라고 했다. 부산은 민주노동당 지지율이 어느 지역보다 높을 정도로 변화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는 것.

    하지만 그도 “부산의 정치에 당장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부산의 정서가 전체적으로 큰 변화보다는 안정지향적으로 바뀌었다. 사회 흐름이 보수화하고 있다”고 봤다. 정치인 시장보다 행정관료 시장을 선호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 그는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부산에 변화가 찾아와야 한다. 시민 스스로 변화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권철현 의원도 “누군가 부산을 흔들어 깨워야 한다”고 했다. 부산의 힘을 추동해낼 리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시민단체나 진보적인 인사들은 이번 지자체 선거에서 시장·구청장 선거보다는 의회의 변화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역대 선거 득표율을 보면 한나라당 50% 이상, 열린우리당 30%대, 민노당 10%대의 지지율을 보였다. 한 선거구에서 1명만 뽑는 제도 아래서는 한나라당 외에 다른 정당 후보의 당선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번부터는 선거구를 조정해 2∼4인을 선출한다. 다른 당 후보가 당선될 여지가 그만큼 많아졌다.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은 여기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임기 끝날 때까지 함께 가슴 졸일 것”

    부산에 왔으니 ‘자갈치 아지매’ 이일순(59)씨를 꼭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 지지연설을 하며 유명인사가 된 그는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그의 가게에 도착했을 때 이씨는 한창 아귀를 손질하는 중이었다.

    -요즘도 기자나 외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나요?

    “이젠 안 와요. 이젠 사람들이 노 대통령에게 관심도 없잖아요.”

    -부산 경기가 많이 안 좋다고 하던데요.

    “특별히 더 나쁠 건 없어요. 오히려 이젠 좀 낫지 않을까 싶어요. 어제는 같이 장사하는 사람들이랑 하동 쌍계사로 꽃구경 갔다왔어요. 경기 좋을 때는 해마다 갔는데 지난 몇 년 동안 못 가다가 이번에 모처럼 갔어요.”

    -사람들이 알아보던가요?

    “이젠 잘 몰라요. 처음엔 욕도 많이 먹고, 격려도 받고 그랬어요. 아무래도 경제가 안 좋으니까 민심이 나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솔직히 경기가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외환위기 지나서 2000년엔가, 언론에서 지금보다 5∼6년 후가 더 위험하다고 많이들 이야기했잖아요. 그래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게 지금인데, 생각보다 경기가 나쁘지 않아 다행이에요. 그것도 노 대통령이 고생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해요.”

    -다들 “죽겠다”고 하는데요.

    “자갈치시장은 새벽 장사가 70% 이상이에요. 주로 도매죠. 일반 손님은 얼마 없어 그런지 몰라도 크게 나빠진 건 못 느껴요. 소매점들은 장사가 안 된다고 하는데, 그건 늘어나는 대형 마트에 손님을 빼앗겨 그런 거잖아요. 시대가 그렇게 가는 걸 어쩌겠어요.

    솔직히 김대중 대통령 때는 신용카드를 맘 놓고 사용하게 해서 겉으로는 경제가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게 더 위험한 거라고 하잖아요. 노 대통령은 카드 사용을 규제하니까 피부로 느끼는 경제는 안 좋은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그게 경제 바탕을 튼튼하게 하는 길이잖아요. 그걸 국민이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안타까워요.”

    -시장 사람들도 노 대통령 욕 많이 하죠?

    “여기선 정치 이야기 거의 안 해요. 이젠 부산도 달라져야 해요. 나라와 지역을 위해 일할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걱정이에요. 한나라당만 계속 당선돼서 부산이 낙후됐잖아요. 노 대통령이 처음보단 잘한다는 사람도 있어요. 경제만 살리면 인기가 올라갈 것 같은데….”

    -여전히 노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노 대통령 임기 끝날 때까지 함께 마음 졸이며 살 것 같아요.”

    광복동, 남포동은 성인오락실 천국

    저녁 8시경. 광복동 영화의 거리엔 포장마차가 즐비했다. 동쪽에는 떡볶이 등 간식거리를 파는 포장마차가, 서쪽에는 술을 파는 포장마차가 늘어서 있다. 중간 중간 이빨 빠진 것처럼 문을 열지 않은 포장마차들도 눈에 띈다. 느지막이 문을 여는 가게로 들어섰다.

    20대 후반에 장사를 시작해 15년째 이곳을 지키고 있다는 포장마차 주인 박영희(43)씨는 “갈수록 손님이 준다”고 푸념했다.

    “주5일제 때문에 주말손님이 더 준 데다, 주머니 사정이 더 나빠져서 밖에서 소주 마시기보다는 집에서 마시는 추세라고 합디다. 어디 우리만 어렵겠어예. 새벽 4시쯤 택시기사들이 우동 먹으러 오는데, 그때까지 사납금도 못 채웠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예.”

    그는 특히 광복동과 남포동 경기가 시들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로 치면 명동 정도의 상권인데, 시청이 옮겨가고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확 죽어버렸다”는 것. 대신 시청이 옮겨가고 롯데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서면은 경기가 괜찮은 것 같고, 신흥 유흥가로 떠오른 해운대도 좋은 것 같다고 전했다.

    “부산은 1990년대 초가 제일 좋았습니더. 물가는 그때보다 한참 올랐는데 수입은 그때만도 못하다니까예.”

    그는 부산 경기의 몰락을 노 대통령 탓으로 돌렸다.

    “손님 10명 중 8명은 노무현을 욕합니더. 어떤 젊은 손님은 자기도 노사모였다면서 잘할 거라고 생각해 지지했는데 후회 막심이라고 하대요. 임기 초반에는 부산에서도 기대를 많이 했어예. 돈이 좀 돌지 않겠나 싶었는데, 더 어려워지니 실망할 수밖에요.”

    지난 대선 때 누굴 찍었냐고 묻자 이회창 후보를 찍었다고 한다.

    “물론 한나라당이 된다고 크게 달라질 거라고 생각 안 합니더. 그래도 바꿔야지예.”

    광복동 거리엔 성인오락실들이 유난히 많았다. 박씨에 따르면 광복동은 예전에 패션의 거리였다고 한다. 그러다 음식점이 번창하더니 지금은 80%가 성인오락실로 바뀌었다고 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갑자기 늘었습니더. 남포동은 더해요. 여기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실업자들이라예. 그래서 가정파탄이 늘어예. 자살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고. 돈이 없으니까 마지막으로 일확천금에 기대는 거지예.”

    포장마차로 손님 한 사람이 들어왔다. 유흥업계에 종사한다고 했다.

    “지금 부산에서 장사가 잘되는 곳은 성인오락실뿐일 겁니다. 이 정부 들어서 성인오락실만 늘었어요. 솔직히 부산은 전부터 대기업 임원 등 돈 있는 사람들이 부업처럼 룸살롱을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지금은 대부분 성인오락실을 해요. 그만큼 돈이 된다는 거죠.”

    “공사중인 곳이 없어요”

    서면 지하상가는 광복동에 비해 인파로 붐볐다. 줄지어 선 가게도 주로 젊은층을 겨냥한 패션가게들이었다.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많아도 정작 가게 안에는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았다.

    서면 지하보도와 이어진 롯데백화점에 들어가자 세일 기간이어서인지 사람들이 꽤 북적였다. 업계에선 경기회복 기미는 여성복 매출을, 본격적인 경기회복의 시작은 남성복 매출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남성정장 코너에서 일하는 점원은 지난 3월 매출이 지난해 연말보다 40% 정도 늘었다고 했다. 캐주얼 의류를 판매하는 직원도 매출이 20%쯤 증가했다고 했다. 부산 경제가 이제 기지개를 켜는 것일까. 하지만 서민들이 그것을 느끼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다.

    釜山, 소비와 보수만 남은 도시… 개방성, 역동성 살려낼까?

    지난 1월 개장한 신항은 부산의 희망이자 미래다.

    국제시장은 한때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다. 그러나 사고파는 사람들로 한창 북적댈 오후 시간에도 흥정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문을 닫은 가게도 여럿 눈에 띄었다. 30년째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는 김평남(62)씨는 이달까지만 하고 문을 닫을 생각이라고 했다. 요즘은 ‘마수걸이’도 못하고 돌아가는 날이 많다는 것.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시끌벅적했어요. 돈도 제법 만졌죠. 그러다 1980년대 후반부터 손님이 줄기 시작하더니 1997년 이후로는 확 줄었어요. 지금은 더하고요. 점포 세를 내기도 벅차 밤에 물건을 실어내 도망가는 상인들도 있습니다. 권리금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하지요.”

    국제시장번영회 총무 최진수씨는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국제시장을 찾는 사람이 하루 2만4000명이었는데 지금은 그 절반 수준이라고 했다. 그나마 리모델링을 하는 등 자구노력을 한 끝에 20% 정도 늘어난 것이라고 했다.

    부경대 전철역 앞은 서울의 홍대앞쯤 되는 거리다. 밤늦은 시각인데도 대학생들로 붐볐고, 이들을 태우려는 택시들이 길게 늘어섰다. 부산대 앞도 각종 유흥업소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뤘다. 돈을 제대로 쓰는 세대는 10대와 대학생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하지만 서울 대학가에서와 같은 흥청거림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 대학가 음식점 앞에 붙어 있는 가격표엔 4000원을 넘는 메뉴가 하나도 없었다.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 기사 박찬혁(47)씨는 “부산 경기가 안 좋은 것은 시내를 돌아다녀 보면 확실히 안다”고 말했다.

    “경기가 좋은 도시에서는 여기저기 공사를 많이 해요. 여긴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공사 현장이 거의 눈에 띄지 않습니더.”

    주요 경제지표, 인천에 추월

    부산경실련 차진구 처장은 부산의 실업률이 심각하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울산 2만개, 경남 6만9000개 등 전국적으로 68만개의 일자리가 늘어났지만 부산은 오히려 8만개나 감소했다.

    “부산은 통계에 나온 실업률보다 실질 실업자가 더 많아요. 일용직, 노점상, 구직 포기자 등 비공식 실업자가 많거든요. 부산에 야구 관중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죠. 실업자가 많으니 사행산업이 발달했어요. 경륜장, 경마장, 성인오락실 등 사행산업이 서울 다음으로 많을 겁니다.”

    부산은 제2금융권이 가장 많았던 곳이다. 그런데 1997년 이후 거의 다 사라졌다. 최근에도 한마음상호저축은행이 무너졌다. 건설업체 역시 침체를 거듭했다. 기자가 부산에 머물 때에도 부산지역 최대 건설회사인 국제종합토건이 최종 부도처리됐다.

    1876년 개항 당시 부산은 인구 3300명에 불과한 작은 갯마을이었다. 하지만 개항 이후 일본인들이 집단거주하면서 근대 도시로 탈바꿈했다. 이후 일제 강점기 때에는 식민지 침략의 교두보이자 대륙 진출을 위한 병참기지 역할을 하면서 발전을 거듭했다. 광복 직후인 1945년 28만1000명이던 부산 인구는 6·25전쟁 중인 1952년 88만9000명으로 늘어났고, 1979년에는 300만명을 넘어섰다.

    부산은 1960년대 가발 및 봉제산업, 1970년대 합판, 1980년대 신발산업을 통해 한국경제 성장의 견인차 노릇을 했다. 1972년엔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 중 부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26.2%에 달했다. 하지만 이후 급감하기 시작해 2002년에는 3%대로 뚝 떨어졌다. 인구 역시 1991년 389만명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지금은 365만명대에 머물러 있다. 전국 인구 비중도 1995년 8.5%이던 것이 지금은 7.4%다.

    이젠 제2의 도시에서 제3의 도시로 밀려나고 있다는 한탄도 나온다. 이미 주요 경제지표상으로 인천에 밀리고 있다. 2003년 기준으로 부산의 지역 내 총생산액은 42조6157억원으로 인천의 34조9185억원을 앞지르고 있지만, 제조업체수와 제조업 생산액은 이미 인천에 추월당했다.

    부산발전연구원 금성근 경제산업연구부장은 이렇게 된 원인을 주력 사업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기존 경공업은 비싼 땅값 때문에 인근 도시로 빠져나가고, 새로운 사업인 지식기반사업은 수도권이, 중화학은 울산 등 인근 도시가 선점하는 바람에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는 것.

    부산시의 한 공무원은 부산의 경기침체가 과거 정부의 잘못 때문이라고 했다. 부산이 미래를 대비하지 않은 게 아니라 정부에서 못하도록 막았다는 것이다.

    “1985년경부터 1996년까지 10년여 동안 서울과 부산을 성장억제도시로 묶어놓았기 때문에 공장을 짓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성장산업을 유치할 수 없었죠. 그래놓고 지금 부산이 발전하지 않은 게 미리 대비하지 못해서라고 하니 억울할 수밖에요.”

    시청 홍보실 박현범 계장은 부산의 경기가 침체되어 있다는 얘기를 반은 수긍하지만 반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방분권화 정책이 시작된 2년 전부터 경제회복 단계에 들어섰다고 봅니다. 지금은 부산이 전국 최하위는 아니에요. 생활경제고통지수만 해도 1999년 전국 최하위를 기록하다 매년 높아져 지금은 7대 도시 중에서 가장 좋은 수준입니다. 지역총생산(GDP) 성장률은 도시 중에선 2위, 전국적으로는 5위고요. 일자리도 지난해엔 1만2000개가 늘었어요.”

    물류도시 아닌 ‘창고도시’

    얽히고설킨 문제가 많아서인지 앞으로 어떻게 부산 경제를 발전시켜야 할지에 대한 생각도 다양했다. 특히 신발 등 전통산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서부터 의견이 갈렸다. 부산상공회의소 관계자는 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높여 고부가가치산업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발을 예로 들면 운동화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등산화 등을 만들어 수출하는 쪽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것. 신발산업은 한때 18만명의 종업원이 일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지만 지금은 종사자가 1만5000명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부산경실련 차진구 처장은 “이미 김대중 정부 때 신발을 부산의 특화산업으로 선정해 4000억원을 투자했지만 실패했다. 사양사업에 투자하기보다는 새로운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다른 지역으로 보낼 것은 과감하게 보내고 시대에 맞는, 지역 특성에 맞는 새로운 것을 개발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부산은 세계 5위의 물류항구다. 부산발전연구원 금성근 부장은 “항만도시치고 못사는 곳이 없는데도 부산이 못사는 것은 물류도시보다는 창고도시의 기능밖에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주, 금융 등 물류 시스템의 주요 부분이 모두 서울에 있고 항만과 도시 인프라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물동량만 많을 뿐 부가가치 산업이 없다. 항만물류 인재도 없다. 요즘 들어서야 대학에 항만물류학과가 생기는 수준이다. 미래에 대한 대비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 개장한 신항을 찾았다. 신항은 부산의 희망이자 미래다. 2011년까지 30선석을 갖추고 20피트 컨테이너를 기준으로 연간 804만개의 컨테이너를 처리할 계획이다. 개장은 했지만 아직 완공 상태는 아니다. 전체 30선석 가운데 신항만주식회사가 관리하는 9선석 중 3선석만이 개장했을 뿐이다. 나머지 선석 중에는 아직 사업자가 정해지지 않은 곳도 있다.

    신항은 여느 항만과 비교해 분명 경쟁력이 있어 보였다. 물건을 올리고 내리고 쌓아둘 야드 공간이 충분했다. 신항만주식회사 이승미 대리에 따르면 배후 부지 97만평 중 37만평이 물류부지라고 한다. 나머지에는 물류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시설과 회사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더욱이 인근에 기존 공단들이 밀집해 있고 경제자유구역 및 자유무역지역이 있어 아랍의 두바이 경제자유구역처럼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신항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 개항을 했는데도 지금껏 수주계약한 해운회사가 한 곳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승미 대리는 오해라고 했다.

    “신항은 기존 부산항과 경쟁관계가 아니라 북항을 관광지로 재개발하면서 대체 항구가 되는 겁니다. 부산항과 거래하는 해운회사들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죠.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신규 항만이 정상화하기까지 보통 1년 정도 걸려요. 첫 배가 들어오는 게 중요하지 그 후에는 금세 성장합니다. 더구나 저희가 계약한 MSC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해운회사입니다. 그 회사가 만족하면 다른 회사들도 믿고 계약을 하게 되는 거죠.”

    부산이 국제적 물류도시로 발전하려면 항만과 함께 철도, 공항도 충분히 갖춰야 한다. 김해공항은 이미 포화상태다. 그래서 시장 후보들은 모두 부산국제공항 건설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공항의 부가가치는 항만보다 높다.

    암울한 부산의 경기지표
    사항 지표 비고
    지역 총생산 45조6850억원(2004년) 전국 5위
    1인당 총생산 1262만3000원 16개 지자체 중 14위(대구, 광주 다음)
    지역 성장률 2%(2005년) 16개 지자체 중 14위(대구, 서울 다음), 전국 평균 5.1%
    실업률 4.3(2005년) 전국 평균 3.7%
    청년 실업률 9.88%(2004년) 전국 최고
    경제활동 참가율 58.3%(2005년) 전국 최저
    출산율 0.95명 전국 최저
    교통혼잡비용률 82만원(2005년) 전국 최고. 서울 53만원 인천 62만원
    고령화 비율 7.8% 7대 도시중 최고


    부산시는 물류산업 육성 이외에도 동부산을 해양·레저 관광지역으로, 서부산을 최첨단 고부가가치산업 중심지역으로 개발해 부산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 이를 위해 북항을 레저관광 중심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신항에서 부산으로 돌아오며 항구 인접도로를 따라 부산을 종주했다. 항만 부지엔 컨테이너들이 쌓여 있었다. 택시기사가 “한창 불경기 때는 텅 빈 야적장도 보였는데, 요즘은 컨테이너 숫자가 꽤 된다”고 했다. 쉼 없이 컨테이너를 내리고 쌓고 다시 들어올리는 크레인들이 부산의 부활 조짐을 암시하는 듯했다.

    “우리도 가을에 야구하자”

    용호동 아파트 단지에 있는 한 호프집. 30대 직장인들이 프로야구 이야기로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부산을 연고지로 한 프로스포츠 구단은 많다. 특히 지금은 사라진 프로축구 부산대우로얄즈는 한때 국가대표 베스트 일레븐 중 7∼8명이 포진했을 만큼 호화멤버로 구성돼 ‘대우마드리드’로 불리며 우승을 밥 먹듯 했다. 그래도 롯데자이언츠를 향한 부산 시민의 사랑을 따라잡지는 못했다.

    그동안 롯데의 성적은 저조했다. 1992년 우승 이후 한번도 코리언시리즈 우승 맛을 보지 못했다. 더욱이 지난 5년 동안은 꼴찌를 도맡아 했다. 4년 연속 꼴찌를 하면 팬들이 외면할 만도 한데, 롯데자이언츠가 지난해 시즌 개막 직후 2∼3위를 달리자 부산 시민들은 사직구장을 가득 메웠다.

    “롯데가 조금만 잘하면 도시 전체가 흥분합니더. 지난해 아쉽게 5위에 머물렀지만 잘했어예. 올해는 호세가 돌아왔고 강병철 감독도 돌아왔으니 기대가 큽니더. 부산사람들이 모이면 하는 말이 있어예. ‘가을에 야구하자.’ 포스트시리즈에 진출해보자는 거지예.”

    이들은 부산사람들이 야구를 좋아하는 것은 1970∼80년대 고교야구가 전성기일 때 최동원, 양상문 등 뛰어난 투수를 배출하며 전국을 호령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부산 기질과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축구는 90분 내내 움직이는 데 비해 야구는 순간이잖아요. 쉬는 시간도 있고…. 순간적으로 한꺼번에 에너지를 발산한다 아입니꺼. 억세고, 단순하고, 흥분 잘 하고, 패거리 경향까지 있는 부산 기질이랑 많이 닮았지예.”

    프로야구 이야기를 하다 종국엔 기업 롯데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다. 롯데가 야구단 투자를 안한 것은 물론 부산에 해준 것이 없다는 얘기다.

    “SK만 해도 최근 울산에 큰 공원을 만들어줬어요. 그런데 롯데는 공원은커녕 골프장만 만들려고 하지예. 또한 부산엔 롯데백화점 2개를 비롯해 롯데마트가 여럿 있는데 거기서 나오는 수익이 부산에 남아 있질 않아예. 등기를 안해 지방세도 내지 않고요.”

    등기를 하지 않은 유통업체가 적지 않지만 유독 롯데가 집중적으로 불만을 사는 것은 그만큼 롯데가 부산의 기업이란 인식이 강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시민들은 영도다리 옆에 짓고 있는 부산롯데월드에도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구 시청 자리에 107층짜리 고층건물을 비롯해 백화점과 영화관 등 3개의 테마건물을 짓겠다는 것인데 과연 지을 의지가 있냐는 것이다.

    [부산시장 후보 릴레이 인터뷰] 오거돈 열린우리당 후보

    “부산은 ‘부산 대통령’ 있을 때 발전해야 한다”
    釜山, 소비와 보수만 남은 도시… 개방성, 역동성 살려낼까?
    -2004년 보궐선거에서 낙선했는데.
    “낙선 후 중국, 일본, 미국 등을 다니며 국제적 식견을 넓혔다. 행정관료들에게 부족하기 쉬운 부분을 채우기도 했다. 또한 지난해 1월부터 올해 초까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일하면서 부산을 물류중심도시로 만드는 기초를 닦았다. 2년 전의 오거돈과 지금의 오거돈은 다르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부산은 열린우리당 후보가 당선되기 힘든 분위기라고 한다.
    “지난 선거에서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어디든 공천을 받을 수 있었다. 당선되기는 한나라당이 쉽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을 선택한 건 부산을 발전시키는 시장이 되기 위해서였다. 부산 출신 대통령이 있을 때 힘있는 시장이 나와야 부산이 발전한다. 아직 대통령 임기가 2년 남았으니 그동안 잘해서 부산을 발전시키고 싶다. 그리고 잘못된 지역구도 타파에 일조하고 싶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신항 명칭 때문에 부산 시민들이 많이 실망했다고 들었다.
    “오해다. 신항 명칭 문제는 10년 전에 해결했어야 할 문제였다. 그런데 정치논리로 차일피일 미뤄왔다. ‘부산신항’은 부산이 국제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는 브랜드론이고, ‘진해신항’은 진해 땅이 더 많다는 문패론이다. 나는 해양부 장관으로서 조속히 부산신항으로 결정하려고 했다. 그런데 총리실에서 ‘부산 출신 장관이 결정하면 안 된다’며 결정권을 가져갔다. 그리고 시간을 끌었다. 신항이란 명칭은 부산의 실리와 진해의 명분을 모두 살린 나의 고심작이다.”

    -부산 발전의 청사진을 제시한다면.
    “이미 북항 재개발 사업이 추진중에 있다. 북항을 중심으로 부산역세권, 출입국사무소, 관세청, 부산롯데월드, 자갈치시장, 영도 등 총 100만평 부지를 조화롭게 개발해 이곳을 관광자원으로 만들겠다. 이미 해양부 장관시절부터 구상해 추진해왔다. 이것이 완성되려면 특별법과 특별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힘있는 시장이 있어야 추진할 수 있다.
    부산은 장기적으로 물류중심도시로 가야한다. 세계 30대 항구도시 중에서 부산만 못산다. 유럽 노트르담 항은 부산보다 물동량이 훨씬 적지만 부가가치는 훨씬 높다. 부산이 30억달러도 안 되는데 노트르담은 243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부산 공무원들이 물류산업을 하역작업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역작업뿐 아니라 부산시 전체를 관련 산업기지로 육성해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일자리가 많이 창출돼 젊은이들이 돌아오는 부산이 될 것이다. 또한 부산에도 남부권 신공항을 추진하겠다.”



    “서울 제2롯데월드 건설허가가 나면 거기가 수익성이 더 좋으니까 먼저 지으려고 하지 않겠습니꺼? 그래서 몇 년째 공사하는 시늉만 내지 싶어예. 예정대로라면 내년에 11층 건물 2동이 완공되고, 2012년에 107층 건물이 완공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금도 터닦이 공사만 하고 있대요. 그리고 부산롯데월드 허가 조건이 영도다리를 보완하고, 해안도로를 만드는 것인데 아직 시작도 안하고 있어요.”

    이에 대해 부산시는 시민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2008년 말까지 백화점과 엔터테인먼트 건물이 완공되고, 2013년 말까지 107층짜리 건물이 완공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했다. 사업이 예정대로 순탄하게 진행 중이라는 것.

    부산의 침체와 위기는 교육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부산대의 인기학과 합격점수는 서울대 다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부산대 관계자조차 5∼7위권이라고 말할 정도로 위상이 떨어졌다. 1990년대 이후 학생들의 성적이 조금씩 하락하다 외환위기 직후 반짝 올랐지만 2000년 들어 다시 떨어졌다고 했다. 최근 들어서야 다시 성적이 좀 오르고 있다.

    흔들리는 부산대 위상

    현직교사나 학원장들의 체감지수는 더 심했다. 동천고 김용휘 교사는 “해마다 3월에 희망학교를 써내는데 부산대 희망자는 거의 없다. 대부분 서울 소재 대학 진학을 희망한다. 수능이 끝난 후에 조금 늘어나긴 하지만 선호도가 예전같지 않다”고 했다.

    “몇 년 전 부산대에 합격할 만한 실력의 학생이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서울의 하위권 대학에 가겠다고 해서 어이없어 한 일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게 보편적인 현상이에요.

    서울에 대한 동경 때문이죠. 모든 게 서울 중심이잖아요. 캠퍼스 수준도 다르고, 문화 복지 시설도 모자라고…. 졸업 후 취업 기회도 지방대보다 더 많고요. 지방대는 취업이 정말 제한되어 있거든요. 어떤 대학은 재학생 10명 중 7명이 공무원시험 준비를 할 정도예요. 부산 경제가 안 좋은 지금 상황에서는 부산대도 지방대학의 하나일 뿐입니다.”

    부산대 장덕현 대외협력부처장은 “부산대가 침체한 원인은 학교 자체에도 있겠지만 사회적 요인이 더 크다고 본다. 얼마 전 언론에 보도된 대기업 임원의 출신학교 분포를 보면 서울대와 고대 다음으로 부산대 출신이 많다. 그런데도 요즘은 지방대 졸업자라는 이유로 응시기회도 잘 안 준다. 그러니 학생들은 하위권 대학이라도 취업기회가 많은 서울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부산대는 2003년부터 과거의 명성을 되살리기 위해 땀을 쏟고 있다. 강의실을 현대식으로 바꾸는 등 교육인프라를 구축하고 연구환경을 개선해 교육의 질을 높이고 있다는 것. 장 부처장은 “그래도 부산대가 발전하려면 부산이 살아나야 한다”고 했다.

    [부산시장 후보 릴레이 인터뷰] 허남식 한나라당 예비 후보

    “내가 만든 ‘부산발전 2020 프로젝트’ 기틀 닦고 싶다”
    釜山, 소비와 보수만 남은 도시… 개방성, 역동성 살려낼까?
    -임기 동안 대표적인 업적을 든다면.
    “시장에 취임할 때만 해도 APEC은 유치결정만 됐을 뿐 아무 준비도 없었다. 시민들의 마음을 모으고 함께 준비해 어느 회의보다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또한 공장 지을 용지가 크게 부족했다. 그래서 기업들이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 경기 침체가 더 심해졌다. 지난해 상반기 그린벨트를 해제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를 통해 부산 경제 발전의 숨통을 틔웠다고 생각한다.”

    -현재 부산 경제는 어떤 상황인가.
    “지난 2월 통계자료로 보면 실업률이 7대도시 가운데 가장 낮아졌고, 제조업 생산지수도 200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자유치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지난해 3억달러를 유치해 최우수 시도로 선정되었다. 경기지표는 조금씩 좋아지고 있지만 서민 경제 체감지수는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권철현 후보는 공무원보다는 정치인이 시장을 해야 부산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공무원과 정치인 중에 어느 쪽이 더 좋다를 말하기보다는 어느 사람이 시장을 더 잘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시장에게 행정력은 기본이다. 거기에 정치력이 더해져야 한다. 무엇보다 시민과 지역 정치인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통합의 정치력을 갖춰야 한다.”

    -오거돈 후보 쪽에서는 대통령이 밀어줄 때 부산이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야당 시장이 중앙정부 예산을 따내기가 더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력을 발휘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관용차와 공무원을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구설에 올랐다.
    “지적을 받자마자 고쳤다. 아무 변명도 안하고 사과만 했다. 아무리 관행이었다 하더라도 잘못된 것은 바로 시정해야 한다.
    퇴근 시간 이후에도 공무를 수행할 경우가 많기 때문에 승용차 1대와 비서가 배치된다. 시장의 아내도 시정행사에 참석할 일이 많아 준(準)공무원이나 다름없어 이를 활용한다. 그런데 사실 공적인 업무와 사적인 업무를 무 자르듯 구분해 처신하기가 어렵다. 공적인 일을 보던 길에 잠깐 사적인 일을 볼 때도 있다. 그래도 잘못은 잘못이다.”

    -허 후보가 꼭 시장이 돼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라면.
    “시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시장이어야 부산 발전을 위해 일을 강하게 추진할 수 있다. 내가 힘 있는 시장이다. 또한 부산 발전을 위한 프로젝트 ‘부산 2020’을 직접 계획하고 만들었다. 그 기틀을 앞으로 4년 동안 다지고 싶다.”



    고등학생들의 학력도 서울과 간극이 점점 벌어지고 있다. 물론 지역별 학력수준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는 힘들다. 이를 유추해볼 수 있는 게 서울대 진학률이다. 부산종로학원 학력평가실에 따르면 서울대 합격자 비율이 2002년 8.3%, 2003년 8%, 2004년 7.31%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 동천고는 서울대를 많이 보내는 이른바 ‘명문고’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서울대 합격자 숫자는 예전같지 않다고 한다. 1980년대만 해도 해마다 30명 가까이 서울대에 합격했는데 지금은 10명을 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 입시 관계자는 서울대 합격자 숫자만으로 부산 학생들의 실력이 떨어졌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지금은 대학 명성보다는 인기학과를 더 선호한다는 것. 예를 들어 서울대 하위권 학과를 가느니 다른 대학 의예과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 학원에선 해마다 90명 정도를 서울대에 보냈는데 지금은 40명 정도로 줄었어요. 하지만 그만큼 의예과 등 인기학과 진학자 수가 늘어났어요. 부산교대의 경우 합격점수가 해마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부산영화제가 부산 영화 걸림돌?

    부산 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개방성이다. 새로운 것에 익숙하고 빨리 받아들인다. 요즘도 새로운 게임이 개발되면 부산지역 피시(PC)방이나 부산지역 게임동호회를 통해 테스트하는 경우가 많다. 새로 출시된 가전제품 역시 마찬가지. 부산에서 통하면 전국에서 통하기 때문이다.

    또한 부산 문화는 서민성이 강하다. 대표적인 예가 노래방과 찜질방이다. 둘 다 부산에서 시작돼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그런 점에서 가장 대중적인 장르인 영화가 번성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미 세계 5대영화제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열린 제10회 때는 73개국에서 출품한 307편의 영화가 상영됐고, 관람인원도 20만명을 넘었다. 부산시에서도 ‘영상·IT’를 4대 핵심전략산업의 하나로 꼽는다.

    부산은 영화의 도시답게 영화 촬영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에만도 102편의 국내외 극영화와 65편의 국내외 영상물이 부산에서 촬영됐다. 이는 한국 영화 전체 편수의 40%에 해당한다. 부산시는 이를 통해 6000억여원의 생산유발효과와 5000여 명의 취업효과를 거뒀다고 분석한다.

    부산시는 1999년 부산영상위원회를 설립해 부산에서 촬영되는 영화에 대해 전반적인 지원을 하고 있고, 2008년 완공을 목표로 영상센터를 건설 중이다. 이외에도 영상센터, 후반작업 기지 건설, 종합 촬영소 운영, 제작사 유치 등을 통해 부산을 아시아 영상허브로 구축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부산영화인들 사이에서는 부산영화제에 대해 ‘부산은 땅만 빌려주고 행사는 서울사람들이 다 한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 단적으로 부산영화제의 결과물인 시네마테크도 부산 영화인들이 아닌 서울 영화인들이 운영하고 있다. 부산예술대 김상화 교수는 “부산영화제가 부산문화지형을 바꾼 것은 확실하지만 영화제 성공만을 위해 서울의 프로그래머 스태프들을 영입, 부산 영화인들의 성장 맥이 끊겼다”고 했다.

    “1980년대 말 부산에 프랑스문화원이 생기면서 이곳을 중심으로 영화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졌어요.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기 전부터 ‘영화도시 부산’을 이루고 있었죠. 그런데 부산국제영화제 때문에 부산 영화는 더 어려운 처지에 직면했습니다.”

    [부산시장 후보 릴레이 인터뷰] 권철현 한나라당 예비 후보

    “서울, 경기처럼 정치인 시장이 나와야 부산 발전”
    釜山, 소비와 보수만 남은 도시… 개방성, 역동성 살려낼까?
    -어렵사리 당내 경선을 치르게 될 만큼 지지도가 낮은데.
    “보통 2월부터 선거바람이 불었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다. 그만큼 시민들 먹고살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4월초 TV토론이 열리면서 시민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내 경선 전까지 역전을 자신한다.”

    -허남식 시장이 1년6개월밖에 못 했으니 더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있다.
    “동정론이다. 부산의 현실을 제대로 보고 분노해야 한다. 부산을 위해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부산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시장은 부산시민에게 꿈과 비전을 제시하고 그걸 달성하는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 시장은 그런 게 없었다. 부산이 서서히 무너지는데 그걸 느끼지 못하고 있다. 부산은 지금 지방항구도시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 있다. 그런데도 바꿔보자는 움직임이 없다. 잠든 도시를 흔들어 깨워야 한다.”

    -시장감으로는 행정경험이 있는 관료가 낫다는 평가가 있다.
    “행정관료의 병폐를 없애자고 민선시장을 뽑는 것이다. 서울에선 공무원 시장이 나온 적이 한번도 없다. 경남에서 일을 제일 잘했다는 김혁규 도지사, 대전을 발전시킨 염홍철 시장, 경기도의 손학규 도지사 등 일 잘한 수장들은 모두 정치인이었다. 시장은 국회의 도움도 받아야 하고 정부와 협상도 하고 세계와 영업할 능력을 가져야 한다. 공무원은 그런 경력이 부족하다. 내가 적임자다.”

    -부산이 침체한 근본 원인을 찾는다면?
    “시대변화에 따른 산업구조 개편을 못했다. 사양산업에 발이 묶였다. 선진 해양도시들이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파악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그런데 현 시장은 공장 만들 땅이 없다고만 한다. 시시한 공장보다는 최첨단 산업을 도입하고 산업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오거돈 후보는 ‘부산 대통령이 있을 때 여당 시장이 나와야 부산이 발전한다’고 하는데 지역사람이 대통령이라고 해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부산시장이 먼저 비전을 세우고 실천력을 발휘해야 한다.”

    -부산을 살리기 위한 구상이 있나.
    “경기를 살리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도시를 만들려면 노동집약산업 중심에서 문화관광산업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테마파크를 만들어 부산을 아시아의 놀이터로 만들 생각이다. 100만평 규모의 인공섬 2개(트윈아일랜드)를 만들고 용두동공원을 한류(韓流)메카로 바꿀 생각이다. 또한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10만 양성론을 펴겠다. 부산지역 졸업자를 해외에 취업시키고 공부시켜 경험을 쌓게 한 뒤 부산의 기업으로 불러들여 활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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