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호

중국, 지린성-북한-동해 잇는 운하 건설 계획

동북3성+북한, ‘경제 동북공정’ 가시화?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6-05-16 13:1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중국 자본이 북한의 주요 지하자원 개발권을 독차지하고 있다. 항만, 철도, 도로 등 북한 내 주요 인프라도 대부분 중국이 사용권을 갖고 있다. 평양은 중국 상품의 소비시장이 됐다. 함경북도 나진항은 중국측에 50년간 조차됐다. 북한은 중국이 대주는 석유에 ‘생존’을 기대고 있다. ‘경제 동북공정’ 즉, “북한이 경제적으로 야금야금 잠식되면서 결국 중국의 동북 제4성(省)으로 편입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동북 지린성과 북한, 동해를 잇는 ‘운하’ 계획도 수립했다.
    중국, 지린성-북한-동해 잇는 운하 건설 계획

    두만강 하구. 왼쪽 강 건너편이 북한이다.

    중국 지린성(吉林省) ‘두만강변 도로’는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다. 북한 함경북도와 마주하는 지린성 훈춘(琿春) 시내에서 두만강 하구인 팡촨(防川)까지 이어지는 이 길을 자동차로 달리면, 차창 밖으로 두만강이 흐르고 강 건너 북한의 초원과 나지막한 봉우리가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며 스쳐 지나간다. 중국 정부도 이곳의 경치가 빼어나다고 하여 ‘국가급 풍경명승지’로 지정했다.

    길은 팡촨의 ‘망해각’이라는 전망대에서 끝난다. 한국의 임진각과 비슷하다. 전망대에 서면 중국, 러시아, 북한 3국이 국경을 마주한 광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한의 철길과 러시아 연해주의 철길을 잇는 ‘조-러 철교’가 놓여 있고, 그 너머로 동해로 흘러 들어가는 두만강도 보인다. 모두 손에 잡힐 듯한 거리다.

    기자를 이곳까지 안내한 훈춘시의 한 관리는 “중국은 동해를 불과 수km 앞에 두고 북한, 러시아에 의해 내륙으로 둘러싸이게 됐다. 중국이 지금도 아쉬워하는 뼈아픈 역사가 있다”고 했다. 19세기 말 제2차 아편전쟁(영국·프랑스 연합군 대 청나라군의 전쟁)에서 청이 패한 뒤 러시아는 ‘패전 처리’인 베이징 조약을 중재한 대가로 연해주를 청으로부터 넘겨 받았다. 이로써 중국의 동북3성 지역(지린성, 헤이룽장성, 랴오닝성)은 동해로 진출하는 항구를 모두 잃게 됐다.

    이 관리는 “내륙에 갇히게 된 것은 동북지역이 그로부터 100여 년 후인 지금까지 낙후지역으로 남게 된 결정적 원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지린성의 관문인 훈춘시는 연해주 자루비노 항구를 통해 바다와 연결된다. 그러나 러시아측의 견제로 지린성의 해상무역은 제한적으로만 이뤄져왔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1992년 훈춘 지역(두만강 황금삼각지대)에 대규모 외국자본 투자 계획을 세웠다. 1998년 640개 외국 기업이 10억달러 규모의 투자심사비준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해외 투자는 활성화되지 못했다. 물자와 상품의 수·출입에 절대 필요한 항만 확보가 불충분했던 까닭이다.

    다음은 중국이 동해 진출을 얼마나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지를 보여주는 논문(‘중국 물류네트워크의 정책 및 실태에 관한 연구’, 조규진 광운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등) 내용이다.



    “중국은 유엔의 두만강 황금삼각지대 개발계획과 관련하여, 중국 북부와 일본의 해상로를 연결하기 위해 두만강 하구 팡촨을 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중국 북부와 일본 간 해상로가 연결된다면…동북아 물류네트워크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이 된다.

    팡촨 문제에서는 ‘두만강 하구 4km를 양쪽에서 각각 소유한 러시아와 북한이 중국의 팡촨을 일본에 대해 완전개방하도록 얼마나 협력해줄 수 있느냐’하는 것이 관건이다.”

    장쩌민 전 중국 주석은 1990년대부터 중국 훈춘-북한 나진항-러시아 연해주 항구를 연결하는 두만강 개발계획을 추진해왔다. 장 전 주석은 두만강 하구를 찾아 “이곳을 지배하는 자가 동북아를 지배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과 러시아는 중국에 물길을 내주는 일에 비협조적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러시아에 의해 막혀 있던 동해 바닷길이 북한 쪽으로 뚫릴 조짐이 보인다.

    지난해 북한 함북 나선시 인민위원회와 중국 훈춘시 둥린무역공사-훈춘국경경제협력지구보세공사는 50대 50으로 출자해 나선국제물류합영공사를 설립키로 했다. 나선국제물류합영공사는 나진항 3부두와 4부두를 50년간 사용하게 됐다. 중국이 나진항을 50년간 조차한 것이다. 이어 중국측은 북측과 합의를 이끌어내 훈춘과 나진항을 잇는 고속도로(약 70km) 건설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 동북지역은 북한의 고속도로와 나진항을 통해 동해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 중국의 ‘100년 숙원’이 실현된 셈이다.

    운하, 北-中 경계 허문다

    중국, 지린성-북한-동해 잇는 운하 건설 계획

    중국은 두만강 하구를 중심으로 북한 일체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또 다른 두만강 프로젝트를 기획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중국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한 정부 인사는 “중국측은 동북 지린성에서 동해로 직접 나갈 수 있는 운하를 북한 영토에 건설해 상시 운영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고 밝혔다. 두만강변 중국 팡촨과 북한 나진 부근 동해안을 잇는 ‘북한 관통 운하’ 건설을 구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이 인사가 설명하는 북-중 동향이다.

    “이런 운하는 북한엔 이용가치가 없다. 이 때문에 북측은 중국측의 운하건설 제안을 거부해왔다. 그러나 최근 북한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심화되면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북측이 중국측 요구를 수용할 수도 있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중국측이 ‘나진항 50년 조차’ 외에 운하도 필요하다고 결심하면 이 또한 그대로 관철될 수 있는 상황이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도 “중국 지린성 정부가 ‘중-북 접경 두만강변에서 북한 동해안 사이 북한 영토에 운하를 건설해 이용하겠다’는 계획을 10년 전부터 수립해 추진해왔다. 지린성 차원에서 구체적인 안까지 만들어놓았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운하 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중국측 민간 브로커들도 상당 부분 개입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최근 중국측이 나진항을 50년 조차한 것이 운하 계획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북측이 운하 건설을 수용하는 쪽으로 전환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일부 북한 전문가는 “중국측으로선 중-북 운하가 타당성이 큰 사업”이라고 본다. 따라서 “북한측 동의만 있다면 운하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고려대 남성욱 교수(북한학)는 “최근 중국 정부의 회의 자료엔 ‘두만강 물류를 원활히 활용하도록 한다’는 표현이 있다. 직접적으로 ‘운하’를 언급하지는 않고 있지만, 중국측이 두만강 운하를 추진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음은 남 교수의 말.

    “운하는 중국엔 효용가치가 있다. 팡촨에서 북한 동해안까지 운하를 내는 것은 어려운 토목사업이 아니다. 거리가 수 km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중국으로선 배가 운하를 거쳐 중국의 도시에 바로 접안하게 되면 물류 비용과 시간이 훨씬 절약된다. 중국은 팡촨-훈춘 사이 두만강 바닥도 준설할 것이다. 이렇게 할 경우 중소형 선박이 동해에서 팡촨을 지나 훈춘까지 곧장 들어올 수도 있다. 큰 배는 북한 나진항을 이용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항만을 갖추게 되면 중국 동북지역의 국제경쟁력은 비약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대규모 외국자본 유치도 가능하다. 북한 관통 운하는 중국에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익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장 막 찍어주면 곤란”

    정부 내에선 “북한-중국간 운하가 건설되는 것은 동아시아 공동번영에 기여하는 일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 많다. 중국의 나진항 50년 조차에 대해서도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시각도 있다. 항구 조차에 이어 운하까지 추진된다면 이는 ‘노스코리아 바겐세일’의 신호탄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운하 추진 계획을 전한 정부 인사는 “북측은 자국 땅에 외국이 마음대로 드나드는 전용 뱃길을 만들어주는 일엔 신중해야 한다. 이는 ‘영토 주권’과 관련된 사안”이라고 했다. 북한-중국의 국경선은 현재 압록-두만강으로 뚜렷이 구분되어 있는데, 운하는 양국의 이런 경계를 허무는 심리적 효과가 크다는 것.

    이 인사는 “중국 주도로 북측 땅에 운하까지 건설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남측은 이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한반도 영토 문제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선 남측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북측이 독도 영유권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 물류 전문가는 “나진항 50년 조차나 운하가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면, 러시아는 중국에 왜 항구를 조차해주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경제난에 쪼들린 북측이 한반도 북동부의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헐값’에 중국에 팔아치우고 있다는 시각이다.

    중국, 지린성-북한-동해 잇는 운하 건설 계획

    동아시아 최대 철광 생산지인 북한 무산. 중국은 무산 철광 독점 채굴권을 획득했다.

    고려대 남성욱 교수는 “운하 운영은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이 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북측이 경제가 어렵다고 도장을 막 찍어주면 곤란하다. 북측이 대외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중국 자본만 북한에서 각종 이권을 차지하면서 왕성하게 활동하게 되면 북한 북동부가 북한 땅인지 중국 땅인지 구분이 안될 것이다.”

    중국측은 최근 북한의 사회간접자본에 집중 투자해 북한을 중국 동북지역과 더 긴밀히 연결하고 있을 뿐 아니라 광물 등 북한 전역의 주요 국가자원도 독차지하고 있다. 최근엔 총 매장량이 30억t에 달하는 동아시아 최대 철광인 함북 무산 철광도 중국 3개 회사가 단독으로 50년 채굴권을 획득했다.

    동북 3성과 북한을 ‘같은 권역’으로 묶는 이 같은 전략은 중국 중앙정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실행되고 있다. 최근 “북한의 지역 일체화 건설 촉진. 대외 원조시 동북 변경 도시(북한) 기초시설 건설 우선 배려” 정책을 담은 중국 정부 문건(국무원 판공실 36호 문건)이 공개되기도 했다. ‘동북3성+북한 일체화’ 집중개발은 실행단계에 접어든 셈이다. 중국 지방정부의 ‘북한 관통 운하’ 구상은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과 같은 시기에 나온 것이다.

    “북-중 관계 면밀히 관찰해야”

    그러나 북한 관통 운하는 현실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동서대 주장환 교수(국제관계학)는 “중국측이 북한 나진항을 이미 확보한 이상 운하까지 만들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미래를 대비한다면 모르겠으나 나진항 정도면 현재의 중국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의 물류량을 소화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중국이 북한을 동북4성으로 흡수하려 한다’는 견해에 대해서도 “과장된 음모론”이라며 반박했다. 그는 북중 관계가 아직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고 보는 근거를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 동북3성과 북한 간 경제교류에서 ‘국가적 M&A’가 의심되는 특이점은 없다. 중국은 사양산업 해외이전, 자원 확보를 위해 북한을 활용하는 것인데 이는 통상적 국제교류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중국은 최근 러시아 연해주 항구와도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이 러시아 연해주를 수복하려 한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은가.”

    그는 “중국의 북한 진출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북중 관계는 실증적으로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