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호

중·러 경제밀월 속 소외된 한국, 제3의 기관 만들어 동북아 진출 홀로 뚫자

  • 김종일 현대사연구소 자문위원 kkmoscow@yahoo.co.kr

    입력2006-05-16 1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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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과 러시아가 에너지를 매개로 한 밀월시대를 열었다. 2004년 양국 정상이 만난 데 이어 지난 3월21일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900명의 대규모 수행원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다. 푸틴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대미, 대일 외교뿐 아니라 중앙아시아에 대한 패권을 놓고서도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한국은 동북아시의 외교적 소외국가로 전락했다. 중·러의 형제국 시대 개막은 무엇을 의미하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중·러 경제밀월 속 소외된 한국, 제3의 기관 만들어 동북아 진출 홀로 뚫자
    중국 당나라 때 왕유와 함께 산수파의 거장으로 불린 맹호연(孟浩然·689∼740)은 “春眠不覺曉(봄이라 깊은 잠, 날 새는 줄 몰랐네), 處處聞啼鳥(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夜來風雨聲(간밤에 비바람 소리 드세었으니), 花落知多少(꽃들은 얼마나 떨어졌을지…)”라는 불후의 시 한 수를 읊었다. 13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시는 식자층을 중심으로 널리 애송된다. 그가 읊조린 시의 제목은 ‘봄의 새벽’으로 번역되는 ‘춘효(春曉)’다. 붓끝 놀리는 것 외에는 마땅히 가진 재주가 없었던 그에게 당시 사람들은 넓은 아량으로 용기와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맹호연이 간 지 1300여 년이 지난 2006년, 중국의 봄은 더 이상 서정적이거나 낭만적이지 않다. 세계경제 제패를 내다보며 숨가쁘게 달려가는 중국인들에게 서정이나 낭만은 사치처럼 보인다. 나라 안으로는 동에서 서, 남에서 북으로 거침없는 경제개발 행보를 내딛고 있다. 밖으로는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 아프리카, 남미 할 것 없이 대중국(大中國) 건설을 위해, 필요하다면 납작 엎드리기까지 한다.

    거대한 중국을 이끄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내치(內治)는 휘하 인사들에게 맡겨놓고 프랑스, 미국, 러시아 등지로 외교사절을 이끌고 다닌다. 어디엘 가든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당당하게 발언하고 자신감 있게 교섭한다. 그의 이같은 외교적 행보는 중국경제 발전에 결정적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에너지 확보에 집중되고 있다.

    후진타오는 2004년 11월 브라질을 필두로 2005년 1월 베네수엘라, 같은 해 4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를 국빈방문한 데 이어, 12월에는 카자흐스탄을, 2006년 1월에는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를 다녀왔다. 최근에는 지난 3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이는 데 성공해 일본으로 향하던 송유관의 방향을 중국으로 돌려놓았다. 후진타오 주석은 유독 러시아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산주의를 표방, 경제실패를 맛본 두 나라의 공통점이 ‘과부 심정 홀아비가 알아주는 격’으로 친밀감을 자아내고 있는 걸까. 하지만 후진타오의 이런 외교적 자신감은 이웃 러시아의 외교정책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토대로 한다. 그는 이미 러시아의 수(手)를 다 읽고 있다.

    러시아 꿰뚫는 후진타오의 식견



    푸틴 정부 출범 이후 러시아는 대(對)서방 관계뿐 아니라 동북아 국가들과의 경제협력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푸틴은 구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답게 전세계의 정보를 수집, 분석, 가공하는 능력이 탁월한 인물로 평가된다. 산 위에서 동네를 내려다보는 격이다.

    1999년 푸틴 대통령이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을 당시 우리 언론은 “KGB 출신이라서 철권정치를 할 것” “경제 문외한”이라며 그를 평가절하하기에 바빴다. 러시아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에 미국 언론의 발표를 여과없이 내보낸 것. 당시 국내 언론은 “푸틴은 국제정치와 경제 문제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러시아 유학파 국내학자들의 분석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는 결국 중대한 실수로 밝혀졌다. 푸틴은 크렘린궁의 주인이 된 직후인 2000년 ‘지나치게 유럽에 편향된 대외경제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내부 분석을 기초로, 서부 러시아 중심의 경제전략의 축을 상대적으로 낙후된 극동 및 시베리아 지역으로 옮겼다. 하지만 이 전략에는 큰 난관이 있었다. 극동, 시베리아 지역의 경제발전을 위해선 중국에서 생필품과 노동력을 수입해야 했던 것이다. 러시아 학자들은 이곳에 기초생필품공장을 새로 건설하는 데 10∼15년은 걸릴 것으로 예측했다.

    노련한 후진타오가 이 대목을 놓칠 리 없었다. 그는 틈만 나면 ‘동쪽으로!’를 외치던 마오쩌둥(毛澤東)의 후계자였다. 2003년 후진타오 체제가 들어선 이후 중국 정부는 주요 전략과제의 하나로 동북3성(랴오닝, 지린, 헤이룽장) 진흥책을 마련했다. 장쩌민(江澤民) 총서기가 서부대개발을 추진하면서,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던 동북3성 지역에 대해 지역균형발전전략 차원에서 집중 육성책을 내놓은 것. 그는 곧 1·2차 산업 비중이 60%가 넘는 동북3성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100대 대규모 개발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하나의 대전제가 있었다. 이에 필요한 모든 자원은 러시아에서 전량 들여온다는 계획이 바로 그것. 이미 중국은 목재의 경우 국가 전체 필요량의 50%를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이밖에도 칼리비료, 구리, 니켈, 등 전통적인 러시아 원자재들을 구입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한마디로 양국 경제재건에 필요한 것들을 맞바꿔도 전략적으로 손해 볼 일이 없는 상황이니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중러 양국은 투자확대를 골자로 하는 ‘2006∼2010년 무역 경제관계 발전 프로그램’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정과 견제의 양날

    양국간의 이러한 경제교류 확대에 힘입어 2006년 4월 러시아 극동지역의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토크는 중국인지 러시아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중국인들이 차고 넘친다. TSR(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시작되는 하바로프스크도 상황은 마찬가지. 중국계 불법체류자들이 버젓이 거리를 활보해도 러시아 이민국과 경찰국은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는다.

    극동 러시아가 중국 경제권으로 편입된 것은 이미 10여 년 전의 일이다. 만일 중국인들이 극동에서 사라지면 러시아의 기초생활은 하루아침에 붕괴되고 말 것이라는 게 러시아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2005년 말 현재 극동지역에만 60여만명의 중국인이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즉 중국의 동북3성 지역과 러시아의 극동지역은 이제 단일 생활권이 됐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러시아가 중국의 대(對)러시아 극동정책에 대해 마냥 즐거워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의 견제도 만만치 않다. 만에 하나 극동 지역에 머무르고 있는 중국인들이 정치세력화할 경우 러시아는 에너지의 보고(寶庫)인 극동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이 지역에 내놓을 새로운 정치·외교 카드를 모색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러시아 사회과학원 유럽연구소 카라가노프 부소장은 “일반적으로 이민은 국가에 커다란 이득이다. 아시아 국가에서 오는 이주자들을 흑사병처럼 두려워할 게 아니라 이들 외국인 노동력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2002년 현재 러시아는 인구 1000명당 외국인 노동자가 32.15명으로 캐나다(259명), 호주(178.5명), 미국(65.9명)에 비하면 훨씬 적은 편이다(러시아는 매년 업종별 혹은 관심분야를 중심으로 인구통계조사를 실시해 노동자 통계 공식자료 수집에 한계가 있다). 모스크바대 인구노동문제연구소 추산보고서에 따르면 극동지역의 필요노동력은 최소 500만명에 달한다.

    이와 관련해 미국, 일본의 정보기관들은 극동지역 내 중국인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언제 중국 본토 출신의 중국계 지방의원이 나올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정보기관들은 이르면 오는 2010년 최초의 중국계 지방의원 혹은 지방자치단체장이 나올 것으로 관측한다.

    에너지 덫에 갇힌 일본과 중국

    러시아 정부는 중국을 견제하는 한 방법으로 일본을 선택했다. 시베리아 대륙에서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된 일본은 러시아의 입김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 결국 러시아는 에너지라는 먹이를 놓고 중국과 일본을 한우리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

    일본과 벌인 전쟁에서 패해 혹독한 고통을 겪은 중국과 러시아는 일본에 대한 정서가 결코 호의적이지 못하다. 러시아는 1904년부터 1905년까지 일본과 전쟁을 치러 패배의 아픔을 겪었다. 중국 또한 지역적으로 일제 강점기를 겪었다.

    러시아인들은 과거 몽골에 패한 이후 러일전쟁에서 ‘검정머리 종자(황인종)’인 일본에 또다시 패하자, 황인종을 두려워하는 한편 경계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실제로 1996년 전 블라디보스토크 시장인 K. B. 톨스토쉐인은 일본 미국 싱가포르 등에서 출판한 ‘위험한 황인종’이라는 책을 통해 황인종, 특히 중국인의 극동 진출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그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밀리온카’라는 중국인촌(村)을 소개하며 중국인에 대해 “중국 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고 장사치 기운이 매우 강하며 끈질기다”고 평가했다.

    중·러 경제밀월 속 소외된 한국, 제3의 기관 만들어 동북아 진출 홀로 뚫자

    2006년 3월22일 중국 베이징 인민문화대회장에서 열린 중·러정상회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900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다.

    일본을 이용한 러시아의 중국 견제책은 중국 정부를 애달프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세계의 굴뚝’이라는 중국이 경제성장을 계속하려면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 하지만 러시아는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후진타오는 자신보다 10년 연하인 푸틴을 찾아가 ‘동양적 예(禮)’를 갖췄다. 말이 예의지, 외교적으로는 ‘납작 엎드렸다’는 표현이 옳다. 2004년 10월 백설(白雪)의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후진타오에게선 ‘뻣뻣한 모습’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고, 그의 입에선 “러시아의 문화와 역사를 존경한다”는 말이 시종일관 흘러나왔다. 당시 TV를 통해 이를 목도한 모스크비치(모스크바 사람)들은 후진타오의 격조 있으면서도 동양적 아름다움을 갖춘 외교자세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반면 지난해 12월 프랑스를 찾은 후진타오는 분명 자신이 ‘을(乙)’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갑(甲)’의 위상을 보이며 꼿꼿하게 외교에 임해 “되로 주고 말로 선물을 받아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이 이처럼 러시아에 대해 적극적이면서도 저자세를 취하는 것은 지정학, 경제, 군사 등 모든 측면에서 분석해도 러시아를 등지고는 생존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으로 부상한 러시아는 중국에 더없이 귀중한 이웃이다.

    생명의 젖줄, 러시아

    물론 러시아로서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러시아는 중국에 에너지를 대량으로 판매하는 대신,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생필품과 기초 생산품을 수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장기적이고도 물류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수입구조를 가진 나라는 중국밖에 없다. 하지만 러시아는 원유의 판로가 안정되는 반면, 판로의 다양화를 이루지 못함으로써 중국경제의 흥망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군사적 측면에서도 중국은 러시아에 계속 기대야 할 상황이다. 중국은 군수물자 체계를 도입할 때 이미 러시아 시스템을 받아들여 이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는 처지다. 걸핏하면 실랑이를 벌이는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사들일 수는 없는 까닭이다. 중국은 러시아와 선린관계를 유지하는 게 실보다 득이 많긴 하나 국제적 역학관계 때문에 끌려가는 면이 있어 속앓이를 하는 형편이다.

    중국 경제의 급속한 발전으로 말미암은 육류 중심의 식단 변화는 또 하나의 고민을 낳았다. 인민에게 엄청난 양의 육류를 제공하려면 가축의 먹이가 될 막대한 초지(草地)가 필요하지만, 최근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땅값 때문에 중국 내에선 대형 초지를 조성하기가 어렵다. 결국 또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처지다. 달갑지는 않지만 러시아는 중국에 있어 생명의 젖줄과도 같은 존재인 셈이다.

    푸틴-후진타오의 반미 동맹

    후진타오 주석은 국가 발전을 내세워 푸틴 대통령에게 한껏 주문을 늘어놓았다. 중앙아시아 진출을 위해 러시아가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해달라는 게 그중 하나. 그렇게 해주면 전략적 요충지인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실질적 지배를 인정하겠다는 계산이다. 후 주석은 러시아측에 중앙아시아 국가 중 우선 카자흐스탄과 관계개선을 추진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일명 스탄공화국으로 불리는 중앙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경제 발전이 가장 빠른 나라가 카자흐스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자흐스탄의 경우 다른 스탄 공화국들과는 달리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정거장(바이코누루)을 보유한 까닭에 군사적 가치도 높다는 게 중국측 분석. 이런 카자흐스탄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 에너지 및 군사연구집단을 얻는 등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판단이다.

    러시아 또한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한편으론 경계하면서도 꼭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다. 지난해 미군이 대(對)테러전쟁을 내걸고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 공군기지를 세우자 중국,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4개국 등 6개국이 상하이협력기구(SOC)를 내세워 몰아낸 바 있다.

    이 같은 여세를 몰아 러시아는 CIS(독립국가연합) 내에 CSTO(집단안보조약기구) 주도의 PKO(평화유지군)를 창설하기에 이른다. 러시아가 주도적인 역할을 할 PKO에는 러시아 외에도 벨로루시, 아르메니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이 회원국으로 들어갔다. PKO는 오는 6월 벨로루시에서 창설 조인식을 갖고 8월에는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 공수부대 및 회원국 최정예부대가 참가하는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할 예정. 이 합동군사훈련에는 중국군 고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어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중·러 경제밀월 속 소외된 한국, 제3의 기관 만들어 동북아 진출 홀로 뚫자

    2005년 11월20일 중국을 방문한 부시 대통령 부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에 대한 경계의 눈빛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와 공조론을 내놓은 데는 경제적 이유 이외에도 카프카스(코커서스)와 카스피해 지역에서 서방자본을 축출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본다. 이들은 러시아 혹은 중국 단독의 힘으로 내몰기에는 버거운 상대이다. 실제로 CSTO 주도의 PKO 회원국에 포함되지 않은 아제르바이잔과 그루지야 등은 친서방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국제정세에서 중국은 민주화와 통상 문제에 대해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오는 미국보다 장단기적으로나 경제적, 군사적으로 분석할 때 러시아의 손을 들어주는 게 실보다 득이 많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은 러시아가 카자흐스탄의 석유 및 가스 개발 지휘감독권을 막후에서 조종한다고 보고 있다. 중국은 ‘친구를 굳이 멀리서 구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격언처럼, 가까운 곳에서 친구를 구한 셈이다.

    중국의 중앙아 진출

    카자흐스탄은 2006년 3월 현재, 유전 및 광산개발 프로젝트 부문에 향후 5년간 약 80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발주처는 BP, 쉐브론, 아지프, Total 등 광구개발권을 가진 메이저사들. 메이저사와 관련된 엔지니어링 업체가 대부분의 프로젝트를 독식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나 중국 기업들의 수주는 전무하다.

    상업생산이 시작된 텡기즈 유전의 생산량이 증대되고 카샤간 유전(지난 30년간 전세계에서 발견된 유전 중 최대 규모)의 상업생산이 시작되면 오는 2008년경 원유 생산 및 파이프라인 확충을 위한 대규모 설비투자가 불가피하다. 유전개발권을 가진 카자흐스탄 정부는 우선 이에 필요한 회사를 설립하고 회사 지분 일부를 메이저사들에게 매각해 합작회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3월21일 후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통해 카자흐스탄 이외의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친교에 대해서도 양해를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바탕으로 후 주석은 4월3일 베이징에서 연간 300억㎡의 천연가스를 투르크메니스탄으로부터 공급받는 약정서에 서명했다. 같은 날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중앙아시아 국가는 아니지만 호주에서 2010년까지 연간 2만t의 우라늄을 수입키로 했다. 총인구가 486만명에 불과한 투르크메니스탄과 천연가스 수입계약을 체결한 것은 에너지 확보 차원을 넘어 중앙아시아에 대한 경제·외교 면에서도 괄목한 만한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주석이나 총리 가릴 것 없이 불철주야 뛰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국, 21세기 운용 전략 있나?

    중국과 러시아가 이처럼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국제적 잇속을 챙기고 있을 때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에너지와 외교적 역량이 부족하면 그 국가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수많은 기업이 고향산천을 등지고 제3국으로 나갈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기업은 경제논리와 이윤만 좇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기업을 해봐야 이윤이 남지 않을뿐더러 기업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지금 동북아 국가들 가운데 한국처럼 내우외환에 빠진 나라도 없다. 마음을 보여주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친구의 나라’도 없다. 일본과는 하루가 멀다하고 다툼을 벌이고 있고, 정치지도자들은 미국에 삿대질을 하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서는 ‘아직 멀었다’며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진보, 보수로 그럴싸하게 겉포장을 하고는 사회를 지나치게 감각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 결과 말초적이며 집단주의적이고 우익적인 나라로 변해가고 있다. 과거사를 정리해야 한다느니,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느니 하면서 국민적 관심을 작은 일에다 소모하고 있다. 역사학자에게 맡기면 될 일인데, 비전문가집단인 정치꾼들이 단죄를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과연 우리에게 이럴 여유가 있는가. 후진타오가 뭐가 아쉬워 러시아에 머리를 조아리고 약소국가에 선물보따리를 풀겠는가. 모든 것이 21세기를 준비하려 함이다.

    러시아가 각종 에너지집단을 국유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진 것이라곤 군사력과 천연자원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우리가 러시아처럼 지하자원이 많기를 한가, 핵무기를 갖고 있기를 한가. 가진 것이라고는 ‘흥부네’ 식구들만큼이나 많은 식객뿐이다.

    일본이 왜 극동, 사할린, 캄차카 반도 의 오지에 전문가들을 파견하겠는가. 사실 값싼 원자재가 일본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한 나라는 한국이다. 일본은 뭔가 필요한 구석이 있기에 전문가들을 내보내는 것이다. 당장 블라디보스토크의 현대호텔에 가보라. 한국인은 변경 무역상(보따리상)밖에 없는 반면, 일본은 NHK방송국 기자들까지 합세해 갖가지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직시해야 동북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동네 싸움닭처럼 여기저기 끼어들 게 아니라 전략적이어야 한다. 가령 때마침 중일관계가 소원한 때를 이용해 이를 역으로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또한 러시아와 일본이 쿠릴열도를 놓고 티격태격하는 틈을 이용할 필요도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 경제교류를 확대하고 있는 마당에 이들 국가보다 기술 면에서 한 수 위인 우리는 두 나라의 문제점을 파악해 중앙아시아에 공동으로 진출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경제정보원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 내에는 이렇다할 전략가가 없다”며 “설령 있다 하더라도 숨죽이고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리에겐 후진타오처럼 실용적이면서도 전략적이고 국제감각이 탁월한 지도자가 아직 없다.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국내용이 아닌 국제적인 지략가가 나와야 한다. 이를 이해서는 중국, 러시아, 아프리카 등지에 대해 집중 연구해 현장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을 외교 무대에 전면 재배치해야 한다.

    또한 국내 에너지 수급관련 기구들을 통폐합하고 인원을 현재의 30% 정도로 대폭 줄여 자금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중국이 러시아로부터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원을 얻은 반면, 우리는 에너지 위기 상황에 처했다. 석유공사가 갖고 있던 베네수엘라 오나도 광구의 지분이 국유화 조치로 지난 3월31일 14.1%에서 5.6%로 갑자기 줄어드는 바람에 산유국의 꿈에 찬물을 끼얹은 데서 보듯, 거세지는 각국의 에너지 국유화 바람은 우리 정부로 하여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고 있다.

    지도자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치(內治) 중심형 지도자의 경우 영어 혹은 강대국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기에 통역을 배제한 밀실회담에 약하므로 결정적인 친분관계를 갖는 데 한계가 있다. 또한 국제감각이 크게 떨어져 밑에서 올라오는 각종 보고서에 대한 변별능력이 떨어진다. 설사 정책적 오류를 범한 보고서가 올라와도 쉽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극소수 전문가에게 의지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렇게 되면 여론에 휩쓸리게 되고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정책을 펼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한국과 같이 집단주의 성향이 강하고 경제적 논리보다 감정적 논리가 우선하는 특이한 국가체제에서는 대통령과 국회가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제3의 기관과 인물을 찾아야 한다. 또한 현재 산업자원부 중심으로 돼 있는 에너지 수급정책을 바꿀 필요성이 있다.

    중·러 경제밀월 속 소외된 한국, 제3의 기관 만들어 동북아 진출 홀로 뚫자
    金鍾一
    ● 1962년 충남 서천 출생
    ● 러시아 모스크바대 석·박사(경제학)
    ●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원, 파이낸셜뉴스 차장
    ● 現 현대사연구소 자문위원
    ● 저서 : ‘한러 군사용어사전’, ‘북한 사회의 이해’ 등


    예컨대 국가정보원을 외교정보원과 경제정보원으로 나눠 경제정보원을 확대 개편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경제정보원에 외교통상부의 통상기능과 기획예산처의 일부 기능 및 한국석유공사, 에너지관리공단, 가스공사, 석탄공사 등을 통폐합해 복속시키면 적어도 지금과 같은 지리멸렬한 상황은 막아낼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작은 나라의 무기는 속도성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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