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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선생님

일평생 여성 위한 법률활동으로 이어진 사제의 연

“네가 왜 방송국에 있느냐, 상담소에 와야지”

  •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 kbh@lawhome.or.kr

일평생 여성 위한 법률활동으로 이어진 사제의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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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이 되어 학회장을 맡으면서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자주 뵐 수 있었는데, 그러면서 선생님의 철학, 가치관, 사회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선생님은 내가 걸어가야 할 삶의 한 지표가 되어주셨다. 내 인생의 지표로 삼고 있는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 ‘내 운명의 별은 내 가슴에 있다’는 좌우명은 바로 선생님의 그것이었다. 선생님의 좌우명을 그대로 물려받음으로써 선생님의 정신과 가르침이 내 안에 자리하고 있음을 항상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법정대학의 학장실에서 아침기도로 하루를 여시던 일, 강의실과 복도를 활기 넘치는 큰 목소리로 채우시던 일, 제자들에 대한 선생님의 각별했던 사랑이 기억에 가득하다.

가혹한 상사

대학을 졸업하고 1970년 기독교방송국의 사회교양담당 프로듀서로 취직을 했다. 원하던 일이어서 일하는 재미도, 보람도 있었다. 나는 유능한 방송인이 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독교방송에 출연하러 오셨던 선생님께서 나를 보시더니 “네가 왜 여기 있느냐, 상담소에 와야지”하셨다. 그 말을 듣고 고민이 없을 수는 없었지만, 선생님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선생님의 부르심 한마디로 내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더구나 당시 상담소는 그저 작은 민간단체일 뿐이어서 직원들에 대한 처우나 환경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고, 해야 할 일은 언제나 한가득 쌓여 있었다.

그러나 나는 선생님의 부르심을 따랐다. 지금도 선생님의 부르심 한마디에 상담소 행을 택한 것은 자그마한 기적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저 없이 한 선택이었고 힘들고 고단한 적이 더 많았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상담소에서 오래 근무한 직원들과 이태영 선생님이 소장으로 계시던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선생님을 직접 뵙지 못한 젊은 직원들은 웃으며 종종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태영 소장님을 존경하지만, 그 시절에 상담소 직원이 아니어서 다행스러워요.”

웃으며 하는 이야기지만, 솔직히 공감한다. 상담소 소장으로서 선생님은 참으로 가혹한 상사였다.

“너희들은 일요일에 집에서도 항상 상담소 일만 생각해야 돼” 하시고는 월요일 아침마다 일요일에 상담소에 관한 어떠한 좋은 생각을 했는지를 발표하라고 채근하시곤 했다.

또한 이면지 한 장이라도 허투루 쓰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려운 이웃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 상담소를 찾는 불행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해서, 또 상담소를 돕는 은인들의 도움을 생각해서 절대 그리해서는 안 된다”고 호통을 치시곤 했다. 재활용할 수 있는 것은 두 번 세 번 써야 하고, 다 쓴 종이라도 조금의 여백이 있으면 메모지로 만들어 알뜰하게 써야 했다.

경제적으로도 열악하기 짝이 없어 당시 직원들은 교통비 정도만 받고 그 많은 일을 했다. 하루에 몇십 건의 상담을 하고, 그 상담 내용을 정리하고, 무료 대서나 무료 변론이 필요하면 자원봉사자들인 백인 변호사단과 연락해 처리해야 했다. 밀려드는 상담을 처리하기에도 하루가 모자랐지만 가족법 개정운동과 새로운 법안을 마련하고 홍보하는 일, 상담소 운영을 위해 바자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일도 병행해야 했다.

정말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쁜 가운데에서도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거나 비품을 함부로 다루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이렇게 일을 혹독하게 시키면서도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너희들은 나에게 수업료를 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뜻을 그때는 깊이 생각지 못했으나, 이제는 무슨 뜻인지 잘 안다.

상담소 업무와 관련해 한치의 양보도 없고 가혹할 정도로 직원들을 훈련시킨 선생님이셨지만, 필요한 상황에서는 더할 수 없이 자상하고 깊이 배려해주신 분이 또 선생님이셨다.

두 가지 후회 없는 선택

개인적으로 선생님은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하고 후회 없는 선택을 하도록 끌어주신 분이다. 하나는 나를 상담소로 불러주신 것이고, 또 하나는 내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해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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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 kbh@lawhom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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