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호

‘사라진 책의 역사’

인간의 욕망과 책의 운명

  • 강주헌 번역가·펍헙 에이전시 대표 www.allaboutbook.com

    입력2006-05-17 16: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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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책의 역사’

    ‘사라진 책의 역사’ 뤼시앵 폴라스트롱 지음/이세진 옮김/동아일보사/448쪽/2만5000원

    대학원 시절, 한 교수가 첫 수업에서 참고문헌 목록을 나눠주며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이번 학기를 끝내고 가정방문을 할 예정이다. 목록에 있는 책을 모두 준비한 학생에게는 무조건 A+를 주겠다!”

    당연히 그 이유가 뭐냐는 질문이 있었다.

    “너희는 어차피 학문을 위해 대학원에 입학했다. 이 목록에 있는 자료는 너희가 어떤 분야를 공부하든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이다. 이번 학기에 꼭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 책들을 준비해두면 언젠가는 읽을 것이 아닌가!”

    그 교수의 말은 내 뇌리에 새겨졌고, 이후로 나는 책을 수집하는 데 열심이다. 마치 내가 수집한 지식의 규모라도 가늠해보려는 듯이.

    그런데 한정된 공간에 책이 점점 쌓여간다. 책 속에 책이 파묻힌다. 책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책을 분류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때부터 책이 어디론가 숨어버린다. 책이 물리적으로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저 어딘가에서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급기야 책이 거추장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옛날에는 지나가는 엿장수에게 팔아 엿으로라도 바꿔 먹었지만 요즘에는 그렇지 못하다. 책을 버린다. 그리고 책이 파괴된다.



    뤼시앵 폴라스트롱(Lucien X. Polastron)의 ‘사라진 책의 역사’는 책의 수난사를 다룬 책이다. 요즘 유행하는 책에 대한 책인 셈이다. 최근에 출간된 ‘젠틀 매드니스’(뜨인돌)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질병에 걸린 사람들’, 즉 도서 수집가들의 역사를 추적한 데 반해 ‘사라진 책의 역사’는 책의 파괴사를 추적하고 있다.

    인간의 의도적 파괴

    책은 벌레, 곰팡이, 홍수, 화재 등으로 파괴됐다. 전쟁의 화마도 피해갈 수 없었다. 전쟁에 의한 책의 수난은 옛날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최근에, 더 정확히 말하면 언론에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2003년 7월에 바그다드 도서관이 파괴됐다! 전쟁에 의한 파괴는 홍수에 의한 파괴처럼 우연일 수 있다. 그러나 책의 파괴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한 부분은 인간의 의도적 파괴였다.

    이 책은 지역과 시대를 기준으로 책의 수난사를 다루고 있지만 인간의 의도적 파괴에 초점을 맞춰 읽어갈 수도 있다. 크게 다섯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첫째는 민중의 우민화를 위한 분서(焚書)였다.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대표적인 예다. 진시황을 보좌한 법가 사상가들은 “백성이 무지해야 국가를 제대로 통치할 수 있다”는 철학에 따라 “법과 명령이 분명하게 서기 위해서는 책을 불태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가 사상가들과 쌍벽을 이루던 도가 사상가들도 지나친 독서는 도를 깨닫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여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여하튼 이렇게 해서 ‘시경’ ‘서경’ ‘춘추’ ‘예기’ 등이 모두 불태워졌다. 민중의 우민화를 위한 분서는 20세기에도 있었다. 1933년 1월30일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총리로 임명됐다. 그리고 5월10일, 히틀러는 “우리는 야만인이고 야만인이기를 원한다”고 외쳤고, 그날 밤 10시 베를린 오페라광장에서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등이 쓴 ‘인간의 정신을 좀먹는 책’들을 불태웠다. 책의 파괴는 ‘재능의 말살’이다. 이 때문에 프랑스의 잡지 ‘륄뤼스타라시옹’은 히틀러 치하에서 자행된 분서 집회를 평가하며 “이제 독일에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책을 파괴한 둘째 이유는 정복자가 피정복국가의 역사와 신앙을 바꾸기 위한 목적에 있었다. 스페인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정복했을 때 정복자들의 생각은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정복자들은 “그 세계가 어린아이처럼 더없이 새롭기 때문에 아주 기초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잉카제국과 아스텍 제국의 문서보관서에 소장된 성스러운 책들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아예 그들의 역사를 지워버렸다. 스페인 정복자들의 만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원주민의 책 중에는 미신이나 악마의 거짓된 소행이 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며 그들의 책을 모두 불살라버렸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이렇게 책을 파괴함으로써 원주민의 종교와 신앙마저 말살했다.

    “문명이 스러지는구나!”

    셋째는 지식이 곧 권력이라는 지배자들의 생각 때문이었다. 책은 지식을 얻는 최고의 수단이다. 따라서 정복자는 피정복자를 야만의 상태로 몰아가기 위해 책의 파괴를 단행했다. 이런 생각에서 쿠빌라이 칸은 중국에서 도교에 관한 모든 저작을 파괴했고, 바그다드에서도 책 파괴를 주도했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지식의 보고인 책을 적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서, 요컨대 지식이 담긴 책을 적에게 넘겨줘 적을 더욱 강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소중한 책을 스스로 불태운 지배자도 있었다. 예컨대 중국 양나라의 원제는 위나라의 공격에 국운이 위태롭게 되자 고이 보관해온 14만권의 책을 불사르며 “문명이 스러지는구나!”라고 안타까워했다.

    넷째는 종교적 원인에 따른 분서다. 인간에 의한 의도적인 책 파괴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기독교인들은 바울의 가르침을 구실로, “지식은 하느님께 다가가는 것을 방해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지식의 근원인 책은 불태워야 마땅했다. 이단으로 의심받은 철학자들, 특히 아리우스파와 마니교도가 남긴 책들을 불태웠다. 네스토리우스파도 불화살을 피할 수 없었다. 신(新)플라톤학파의 저서들, 마법으로 낙인찍힌 예언서들, 그리고 그런 책들을 소장한 사람들의 서재까지 모두 잿더미가 됐다. 심지어 370년 안티오크에서는 그런 책들을 소장한 사람들이 박해와 위협을 견디지 못하고 기독교인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눈물을 머금고 그 책들을 직접 불살라버리기도 했다.

    이슬람교에서도 종교의 권력화를 위해서 분서를 필연적으로 거쳐야 했다. 무하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하디스에는 “이슬람은 자기보다 앞에 있었던 것을 파괴한다”는 글이 있다. 따라서 적어도 초기에는 그들이 정복한 지역에서 글과 책을 모조리 파괴해서 그 지역민을 문맹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코란을 불태우던 시기도 있었다. 무하마드가 세상을 떠난 후 코란은 여러 판본이 존재했다.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한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코란의 단일화 작업이 필요했다. 3대 칼리프 우스만은 무하마드의 네 번째 아내인 하프사가 소장한 코란을 공식 판본으로 인정하며 나머지 코란을 모두 수거해 불살라버렸다.

    불교도가 다른 종교의 책을 파괴했다는 기록은 소개되지 않는다. 불교의 장서들은 일방적으로 타종교에 의해 파괴되었다. 인도에서도 그랬지만 일본에서 최대의 도서관을 꾸리고 있던 불교 사원은 오다 노부나가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무려 3000여 채의 절과 도서관과 승려학교를 불태워버렸다. 그 때문에 “불길에 휩싸인 거대한 사원에서 수없이 많은 젊은이와 늙은이의 비명 소리가 하늘 끝, 땅 끝까지 울리고 또 울려 퍼졌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책이 사라질까?

    끝으로 분서의 다섯째 원인은 이데올로기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권태를 피하기 위한 심심파적까지 더해졌다. 중국 문화대혁명기에 마오쩌둥을 비롯한 권력자들은 “아는 것이 많은 착취자보다 무식한 노동자가 더 낫다”는 신념하에 “지식을 얻는 자는 부르주아가 된다!”면서 홍위병을 앞세워 책의 파괴를 자행했다. 쿠바의 카스트로는 “혁명 안에서는 무엇이든 주겠다. 하지만 혁명을 벗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안 된다!”고 선언했다. 쿠바에서 책은 체 게바라의 저서와 그와 관련된 담론만 허용되었다. 이 때문에 놀랍게도 쿠바의 국립도서관에는 조지 오웰의 책이 단 세 권뿐이다.

    이렇게 다섯 가지 원인으로 책은 파괴되어왔다. 요즘에는 다른 식으로 책의 운명, 적어도 종이로 만든 책의 운명에 어둔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이른바 책의 디지털화다. 전세계의 도서관들이 책을 웹에 올리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언어를 통해 미래에 대처하는 능력이 남다른 프랑스에서는 도서관이 ‘비블리오테크’(책을 보관하는 곳)에서 ‘미디어테크’로 이름이 바뀌고 있는 실정이다. 저자는 이런 추세를 강자의 논리라고 비판하지만 책의 운명에서 비관적인 결론을 내린다. 종이책은 머지않아 생산이 중단될 것이라고! 심지어 영상 때문에 글의 운명까지 위협받을 것이라 추측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책이 사라질까. 인간이 강자의 논리에 그대로 순종하며 따라갈까. 종이의 따뜻한 질감을 포기할 수 있을까. 내가 아직 낭만적 생각을 버리지 못한 탓인지 저자의 마지막 결론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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