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호

국내는 패색, 해외는 승산

  • 입력2006-05-17 17: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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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 주민들이 지난 3월말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앞서 강남에서 부동산 투자자들로 북새통을 이룬 또 다른 모임이 있었다. 해외부동산 중개업체가 개최한 투자설명회였다.

    8·31 부동산 대책에 이어 최근 3·30 대책 발표로 이제 국내에서 부동산으로 돈을 벌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게다가 4월5일부터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크게 줄여 은행돈으로 집을 구입하거나 늘려가는 ‘내 집 마련’ 전략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그동안 불패신화를 이어온 투기꾼도, 한 가닥 희망을 놓지 않았던 집 없는 서민도 갈수록 패색(敗色)이 짙어가는 상황에 한숨짓고 있다.

    8개월 동안 3차례 규제 완화

    국내 부동산 전선이 소강상태에 들어갔다면 이제는 해외로 눈을 돌려보는 것이 차라리 승산(勝算)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부동산 거품을 확실하게 빼겠다는 정부의 정책이 강화된 반면, 해외 부동산 취득에 대한 규제는 급속도로 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내국인의 해외 부동산 취득 규제 완화조치는 지난해 7월부터 올 3월까지 무려 세 차례나 나왔다.

    지난해 7월 발표된 부동산 정책은 해외 부동산 취득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해외 부동산 취득자금 신고액이 기존 30만달러에서 50만달러로 크게 확대되면서 소액 투자의 길이 열렸다.



    올초 정부는 또다시 해외 부동산 투자 규제를 완화했다. 해외거주자의 주거용 해외 부동산 취득 한도를 개인은 50만달러에서 100만달러로, 개인사업자는 300만달러에서 1000만달러로 대폭 확대한 것이다. 이는 지난해 7월의 완화조치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여론을 받아들인 조치로 보인다. 실제 법 개정 후 6개월간 한국은행에 신고된 주거용 해외 부동산 취득 건수는 26건에 불과했다. 송금액도 854만6000달러에 그쳤다. 국가별로도 미국 8건, 캐나다 12건, 호주 1건, 뉴질랜드 5건 등 몇 지역에 편중됐다. 대부분이 자녀 조기 유학에 따른 부동산 취득이었다.

    해외 취업·유학 등 해외 부동산 취득 수요가 증가하는데도 제도상 제약은 개선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그동안 해외 부동산 투자가 불법 및 편법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투자자들은 한국은행에 신고하는 규정을 위반하거나, 분산 외화송금, 증여성 송금, 국내 예금을 담보로 한 현지 대출 등의 편법을 동원해 해외 부동산을 매입했다.

    결국 3월1일 정부는 주거용 해외주택 취득을 위한 송금한도를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외환거래 규제완화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2년 이상 주거 목적으로 해외에서 부동산을 살 때 적용되던 규제가 모두 풀린다는 것. 이에 따라 100만달러까지였던 주택 매입 한도가 없어져 고가 주택도 얼마든지 살 수 있게 됐다. 미국 베벌리힐스의 고급 주택이나 맨해튼의 메가콘도를 이제 거주 목적으로 구입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살다 한국으로 귀국하면 3년 이내에 해외 주택을 팔아야 하는 제한도 없앴다. 부모가 유학생 자녀와 함께 출국할 경우 부모의 비자 종류에 관계없이 2년 이상 체류했다는 사실만 증명하면 현지에서 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 여기에 투자용 부동산 매수도 허용했다. 이처럼 외환거래가 신고제로 바뀐 데 이어 송금한도가 없어지고 취득절차도 간소화되는 등 규제가 완화되면서 해외 부동산 투자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물론 정부의 이런 해외 부동산 투자 규제 완화조치는 국내 부동산시장 과열과는 별 관련이 없다. 남아도는 외환을 조절하려는 취지가 더 크다. 국내에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의 유동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갈 길을 재정경제부가 열어준 셈이다.

    당국의 취지야 어떻든 국내 부동산에 별다른 기대를 걸지 못하는 투자자에게는 지금이 해외 부동산을 취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임차하느니 사는 게 낫다”

    벌써부터 해외 부동산 취득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 재정경제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인이 해외 부동산에 직접 투자한 규모는 2억9773만달러로 전년 대비 23.5% 늘었다. 이 가운데 개인 투자액은 전년보다 145% 늘어난 2460만달러를 기록, 해외부동산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지난 1월9일 해외 부동산 투자에 대한 기준이 완화된 이후 해외 부동산 취득 신고는 2월 초 10건을 기록, 지난해 총 신고건수(26건)의 40%선에 육박했다.

    해외 부동산 취득 절차는 얼마나 수월해졌을까. 올해 재경부가 내놓은 실수요자의 국외 부동산 취득 완화 개정안은 획기적이다. 개인이 해외 주택을 취득할 때 관광 비자나 단기 비자로 해외에 나가더라도 2년 이상 머물 것을 확약하고 사후에 출입국 사실 증명서 등 체류 확인서를 제출하면 현지 부동산을 구입할 수 있다.

    과거엔 주거용 해외 부동산을 취득하려면 한국은행에 신고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국내 어느 외국환 은행에나 신고하면 되고 절차도 간소하다. 주택담보대출(모기지론)을 이용해 해외 부동산을 취득할 때에도 부동산 취득신고서와 대출 관련 서류만 내면 된다.

    관련 서류는 신고인 및 거주 예정자 신분증 사본, 서약서, 부동산 계약서, 부동산 감정평가서, 현지 모기지론 관련 서류와 신용불량 및 조세체납 사실이 없음을 입증하는 서류 등이다. 이는 국내 부동산을 매입할 때 필요한 서류와 별반 다르지 않다.

    매입한 후에도 3개월 안에 해당 외국환 은행에 부동산 취득 관련 사항을 보고하면 된다. 다만 재학증명서, 재직증명서 등 해당 국가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미국 등 해외에서는 부동산 융자 시스템이 국내보다 잘 갖춰져 있고 부동산 물건을 담보로 75%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따라서 외국환 은행과 조율만 잘하면 국내에서 현지로 송금하지 않고도 해외 부동산을 취득할 수 있다.

    그동안 국세청 통보와 처분 규제로 망설이던 투자자들도 적극적으로 해외 부동산 취득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 통보기준이 완화돼 자금 출처 추적 등에 대한 부담도 사라졌다. 국세청 통보기준이 30만달러로 완화되면 모기지론을 이용해 80만∼90만달러(8억∼9억원)짜리 주택을 사도 국세청에 통보되지 않는다. 그동안 세금을 추징당할까 구입을 망설이던 투자자에겐 부담이 사라진 셈이다.

    이뿐만 아니라 귀국 후 3년 안에 처분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까지는 해외에서 2년 동안 살다가 귀국할 때 가격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팔리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심리적 부담이 있었다. 재경부는 그런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귀국 후 3년 안에 처분해야 한다는 조항도 삭제했다. 장기보유가 가능해지면서 거주 후 투자 목적으로 해외 부동산을 계속 보유할 수 있다.

    최근 중년층을 중심으로 한 실버 이민 붐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종엽 트리플 에이 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자연환경이 좋은 곳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은 사람들의 문의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자, 이제 현장에서 확인한 국가별 부동산 투자 노하우를 따라 투자계획을 세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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