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호

아르헨티나-디폴트 5년 만에 거뜬히 회복, 고급주택지역 겨냥하라

  • 입력2006-05-17 18: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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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헨티나-디폴트 5년 만에 거뜬히 회복, 고급주택지역 겨냥하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거리는 활기가 넘친다.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꼬박 24시간을 가야 도달할 수 있는 남미. 낮과 밤이 바뀌고, 계절조차 거꾸로 가는 광활한 대륙 남미는 ‘신의 축복을 받은 땅’으로 불리며 세계 에너지와 식량 자원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불안한 정치 상황과 퍼주기식 복지 정책으로 수십년째 세계경제의 문제아로 낙인찍힌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최근 유례없이 고속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신흥 경제대국 브릭스(BRICs)의 한 축으로 각광받고 있는 브라질조차 지난해 3%대의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아르헨티나는 3년째 연평균 9% 안팎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이런 고속 성장과 더불어 현지 부동산시장도 주목받고 있다. 2002년 초 아르헨티나 정부가 달러화 대 페소 가치를 3분의 1로 떨어뜨린 뒤부터 부동산 가치가 저평가됐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이를 구입하는 외국인도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타워팰리스’

    지난 3월7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푸에르토마데로 지역. 저녁 8시가 되자 인근 고급 레스토랑들과 쇼핑몰은 순식간에 현지인으로 가득 찼다. 스테이크 전문 고급 레스토랑 안은 테이블마다 아르헨티나의 전통음식 아사도(소갈비)와 말벡 와인을 주문하고 담소를 나누느라 시끌벅적했다.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전춘우 부에노스아이레스 무역관장은 “이 식당 스테이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최고급”이라며 “서민이 즐기기에 비싼 가격이지만 최근에는 평일 저녁에도 자리잡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시작되는 라플라타 강을 끼고 있는 이곳은 최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신흥 부촌으로 급부상 중이다. 강 건너편 마리너(요트 세워두는 부두)엔 호화 요트가 빼곡히 들어서 있고, 그 너머에는 여기저기 고층의 아파트 단지 건설이 한창이다. 서울로 치면 강남과 같은 곳. 이 지역에 짓고 있는 아파트는 현지 교민들 사이에서 ‘아르헨티나의 타워팰리스’로 불린다.



    아파트 분양가는 이미 2001년 말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태) 이전의 가격을 넘어, 평당 1000만원을 돌파한 지 오래다. 전 관장은 “2001년 말 아르헨티나가 디폴트를 선언한 이후 미국 달러에 대한 아르헨티나 페소화의 가치가 3분의 1로 하락했다”며 “이 점을 감안하면 이 지역 땅값이 4년 만에 3배 이상 오른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수 경기가 계속 회복세에 있어 부동산 가격도 꾸준히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1년 크리스마스 전날, 아르헨티나는 외국에서 빌린 돈을 못 갚겠다며 디폴트를 선언했다. 이듬해 11월에는 세계은행으로부터 받은 차관을 갚지 못해 2차 디폴트 상태에 빠졌다. 그로부터 3년 반이 지난 지금. 아르헨티나의 경제가 꿈틀거리고 있다. 2002년 마이너스 10%대이던 경제성장률이 2003년부터 매년 9%를 넘나들며 급성장세로 반전했다.

    아르헨티나의 내수 경기 회복세는 한인 교민의 숫자에도 나타난다. 아르헨티나를 떠났던 한인 교민이 돌아오고 있기 때문. 전 관장은 “1990년대 말 부에노스아이레스에만 교민이 3만명을 넘었지만 불황으로 사람들이 떠나면서 1만5000명으로 줄었다”며 “그러나 최근 경기가 회복되면서 다시 늘기 시작해 지금은 2만5000명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팬택 휴대전화를 아르헨티나로 수입하고 있는 엑시마르(EXIMAR)사의 고정권 사장은 “최근 경기가 좋아져서인지 품질과 디자인이 괜찮은 휴대전화는 금방 동이 날 정도다”고 밝혔다. 현지 경제 전문가들도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낙관하고 있다. 현 정부의 아시아·태평양 교역 담당 경제보좌관인 안토니오 로페스 크레스포 박사는 “아르헨티나 역사상 지금처럼 수년 연속으로 고성장한 적이 없다”며 “일례로 지난 30년을 통틀어 아르헨티나 경제는 단 1%도 성장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헐값 땅 매입 소로스, 최근 되팔아 ‘대박’

    부동산의 경우 외국인뿐 아니라 아르헨티나 현지인의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페소화 가치 하락으로 아르헨티나의 수출이 늘고 있어, 민간 부문의 수입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 1980년대부터 수천%대의 인플레이션과 수차례 국가 금융 위기를 겪은 아르헨티나 국민은 예금보다는 부동산을 선호한다. 더구나 아르헨티나 대부분의 지역은 아직 2001년 당시의 실질 가치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의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도 널리 퍼져 있다. 현지인의 주택 구매가 늘면 늘수록, 주택 가격은 큰 폭으로 뛸 것이다.

    아르헨티나-디폴트 5년 만에 거뜬히 회복, 고급주택지역 겨냥하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옛 항구에서 탱고를 추는 시민들.

    공급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르헨티나는 현재 고급 아파트 단지 재개발에 한창이다. ‘좋은 공기’라는 뜻을 지닌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파리를 본떠 만든 도시로 단독 주택보다는 고급 아파트 단지가 많은 것이 특징. 과거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 이민 온 부유한 가문들이 시내 곳곳에 고급 주택 단지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차 경제위기가 시작된 1980년대 이후로는 도심에 신규 아파트 단지가 거의 들어서지 않았다. 기존 고급 아파트들은 대부분 30년이 훌쩍 넘은 노후 단지다.

    최근 경기가 좋아지면서 고소득층을 겨냥해 강변 지역을 중심으로 고급 아파트 단지 개발이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푸에르토마데로 지역도 예전에는 공장과 창고들이 밀집해 있던 곳이다. 하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심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뛰어난 조망까지 확보하고 있어 부동산 개발자들이 몰려들었고, 순식간에 고급 주택 지역으로 탈바꿈했다.

    현재 타워팰리스처럼 고층으로 지어진 아파트에 올라가면 앞으로는 라플라타 강줄기를, 뒤로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199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 외환위기 당시 미국의 소로스 펀드가 이곳의 토지를 싼 값에 사들였다가 최근 개발업자에게 되팔아 막대한 이익을 남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급 주택 개발 열풍은 푸에르토마데로에서 라플라타 강변을 따라 북쪽으로 위치한 벨그라노 지역과 시 외곽에 위치한 필라시로 확산되고 있다. 필라시는 대형 고급 쇼핑센터가 들어서면서 개발이 더욱 활발해졌다. 강변 지역과는 달리 단독 주택을 선호하는 부유층을 겨냥해 개발되고 있는 것이 특징. 필라시는 특히 외국 기업인을 중심으로 하는 신흥 고급 주택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이 일대 단독 주택은 평당 500만원에 거래되고 있지만 개발이 가속화될수록 가격도 그에 발맞춰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포퓰리즘으로 경제 희생

    푸에르토마데로에서 차를 타고 10여 분 가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도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7월9일 대로(Avenida 9 de Julio)’가 나온다. 땅 위로는 세계에서 가장 넓다는 140m 폭의 18차선 도로가 나 있고, 땅 밑으로는 1913년 남미 최초로 지어진 지하철이 다닌다. 도로 한복판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시 건립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36년 세워진 오벨리스크가 있고, 도로 양 옆으로는 ‘남미의 파리’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고풍스러운 건축양식의 건물이 즐비하다.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중반만 해도 넘쳐나는 자원으로 세계 5대 강국의 자리에 오르며 ‘남미의 진주’라고 불렸다.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가 젊은 시절 보트 수리공으로 이민 와 엄청난 부를 축적했던 기회의 나라였다. 남북 4000km, 동서 1000km로 면적으로 따지면 세계에서 여덟 번째, 한반도의 14배에 달한다. 왼쪽에는 안데스 산맥과 오른쪽에는 대서양을 끼고 있고, 중앙에는 넓고 비옥한 곡창지대인 팜파스 평원이 펼쳐져 있다. 전 관장은 “아르헨티나는 밀·대두·옥수수 등의 생산량이 세계 10위권에 들 정도로 농산물 대국”이라며 “세계에서 가장 양질의 쇠고기를 생산할 정도로 목축업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는 이런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50년 동안 불황에 허덕였다. 우리가 50년 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11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반면, 아르헨티나는 1420억달러라는 사상 초유의 외채로 국가위험도 세계 1위, 물가 상승률 40%를 넘나들며 ‘국제사회의 문제아’로 추락했다. 경제전문가들은 아르헨티나가 이렇게 지난 반세기 동안 ‘죽을 쑨’ 이유로 50여년 전 페론 대통령과 그의 부인 에비타가 펼친 복지 정책과, 지나친 개방주의 정책을 든다.

    ‘아르헨티나여, 이젠 울지 말아요’를 외치며 아르헨티노들의 심금을 울린 에비타는 페론의 집권으로 한순간에 퍼스트레이디로 변신했다. 문제는 에비타가 아르헨티나를 노동자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남편인 페론을 쥐고 흔들며 부통령 자리까지 꿰찬 그는 일부 부유층의 재산을 빈민노동자들에게 무상 분배했다. 국가재정을 무작정 끌어다 무주택 빈민에게 아파트와 병원을 지어주며 서민을 감동시켰지만 이로 인해 정부 공공지출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그는 결국 33세의 나이에 암으로 요절했다. 그러나 오늘날 페로니즘이라고도 하는 그의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은 아르헨티나를 외채에 허덕이는 불량 국가로 전락시켰다.

    한국인에게 기회의 땅?

    올초 아르헨티나는 국제통화기금(IMF)에 95억달러의 차관을 전액 상환하고 사실상 IMF 관리체제 조기 졸업을 선언했다. ‘IMF 모범생’이던 아르헨티나가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와 결별을 선언한 셈이다. 이렇듯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반미 감정은 상상을 초월한다. 현지에서 만난 아르헨티나 사람 대부분은 미국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욕부터 시작하고, 나라가 디폴트를 선언하게 된 것도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인지 최근 아르헨티나에서는 아시아를 ‘기회의 파트너’로 보고 있다.

    아르헨티나-디폴트 5년 만에 거뜬히 회복, 고급주택지역 겨냥하라

    고급주택 개발 열풍이 불고 있는 푸에르토마데로.

    일례로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중국에 콩을 수출해 20억달러를 벌어들였다. 이에 반해 한국과의 교역량은 아직도 미미한 편이다. 아르헨티나의 대(對)한국 교역량은 전체 교역량의 1.1%를 차지할 뿐이다. 크레스포 박사는 “현 정부와 과거 정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미국 의존도를 줄이고 아시아 대상 교역을 늘려가고 있다는 것”이라며 “한국과의 교역량도 점점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시내 한 호텔 커피숍. 아르헨티나 한인경제인협회의 권혁태 회장은 만나자마자 갖가지 여행 관련 책자를 꺼내놓았다. 대부분 자신 소유의 호텔을 소개하는 책이었다. 권 회장은 농업이민 1세대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건너와 의류 유통으로 돈을 모은 후, 현재 아르헨티나 남부 지역에서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비행기와 헬기를 번갈아 타고 아르헨티나 남부의 빙하 지역으로 날아가 농어낚시를 즐기는 백발의 멋쟁이기도 하다.

    현재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거주하는 한인 수는 2만명이 넘는다. 아르헨티나의 한인들은 봉제업과 의류업을 통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아베야네다와 온세 지역에 유태인들을 몰아내고 의류 신발 상가를 구축했다. 아르헨티나 최대 규모의 의류상가가 들어선 아베야네다 지역의 경우 1100여 개 의류점포 가운데 한인 상가의 비율은 60%에 달한다.

    아르헨티나 이민의 시초는 1962년 정부가 ‘해외 이주법’을 공포하면서부터. 하지만 이민 브로커들이 문제를 일으키면서 1975년부터 정부 주도의 농업이민이 시작됐다. 당시 정부는 아르헨티나에 땅을 구입, 이민자를 모았고 이민자는 전 재산을 투자금으로 예치해 이민을 떠났다.

    그러나 이는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충분한 사전 정보가 없어 한국식 소농(小農)을 시도했고, 정부의 지원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 나섰다가 낯선 땅에서 홀로서기를 하면서 갖가지 난관과 맞닥뜨려야 했다. 당시 대부분의 이민자는 농촌을 떠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건너갔다. 이들은 한국에서 가져온 옷을 팔러 다니는 행상부터 시작해, 가내수공업을 통해 만든 의류를 팔면서 점점 경제력을 키웠다.

    권혁태 회장은 “사람보다 소가 더 많은 나라로 무한한 땅과 자원이 있어 어떤 분야에서든 기회의 땅이 될 것”이라며 “부에노스아이레스 외에도 와인의 도시 멘도사나 남부 지방의 관광 도시의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디폴트 반성 없는 정부, 재연 가능성?

    아르헨티나는 외국인 부동산 투자자들에게 매우 우호적이다. 외국인은 누구든지 자유롭게 부동산을 취득하거나 개발할 수 있고, 차별 받지 않는다. 부동산을 취득하려는 외국인은 아르헨티나 국세청에 신고하고, 세금 납부 번호를 부여받아야 한다. 법인의 경우 아르헨티나 현지인에게 위임장을 주면 된다. 세금만 제대로 납부하면 모든 투자 소득의 송금이 가능하지만 원금 회수가 가장 빠른 방법은 아르헨티나 법인에 자금을 빌려주고, 그 법인이 부동산을 취득한 후 나중에 수익을 회수하는 것이다. 부동산 거래에 필요한 비용은 매입시 공증 비용이 거래가의 1.25%이고, 보유시에는 임대 소득에 대한 3%의 지방세와 취득가액의 0.75%에 해당하는 재산세를 납부해야 한다. 처분 시에는 양도 차익의 35% 및 1.25%의 공증 비용이 소요된다.

    아르헨티나 부동산 투자에서 주의할 점은 현 정부가 선택한 약(弱) 페소화 정책이 경제성장과 수출을 늘렸지만 물가가 급등하고 있다는 점. 외환위기 직후 2002년 페소화 폭락으로 41%에 달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03년에는 3.7%로 하락했으나 2004년에 6%를 넘었고, 지난해 다시 12.3%로 상승했다. 물가가 치솟는 상황에서 정부는 ‘땜질식’ 물가통제 방식을 동원하고 있다.

    예컨대 정부 각료들이 슈퍼마켓 체인점 대표들을 만나 제품 가격을 15% 인하하도록 압력을 넣고, 경제장관은 쇠고기 생산업자에게 수출보다는 내수공급을 확대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전 관장은 “현 정권이 가장 고려하는 것이 가격 안정화 정책이다. 부동산 분야에도 어떤 제재를 할지 모르는 상태”라고 밝혔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권기수 박사는 “아르헨티나는 올해 역시 남미에서 유례없는 6%대의 성장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선뜻 투자를 권하기는 조심스럽다”며 “경제위기를 일으킨 근본 문제가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이었음에도 이를 미국 탓으로 돌리는 등 경제 펀더멘털에 메스를 전혀 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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