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호

장동익 신임 대한의사협회장

“정부, 의약분업 강행 위해 항생제 권장치 왜곡했다”

  • 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 사진·김형우 기자

    입력2006-05-18 09: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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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생제 처방률 단순비교는 초등학생 수준 발상”
    • 복지부, “WHO의 항생제 처방 권장치 근거 없다” 시인
    • “약국의 문진(問診) 관행은 난센스 넘어 코미디”
    • “‘한약은 임신부에 안전하다?’, 사람 잡을 말”
    • “의사 주머니 털어 파탄 난 건강재정 채웠다”
    • 박 대통령 죽음 최초로 확인한 의사
    장동익 신임 대한의사협회장
    지난 3월18일 치러진 34대 대한의사협회 회장선거에서 장동익(張東翼·58) 대한개원내과의사회장이 7명의 후보를 따돌리고 당선됐다. 장 회장은 개원내과의사회장 재임 4년 동안 의료법과 약사법 위반혐의로 수백명의 약사와 한의사를 고발하며 ‘초강성’ 이미지를 쌓아왔다. 장 회장 자신은 “불의를 외면하지 못하는 로맨티스트일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그의 당선에 정부와 각 의료단체는 벌써부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니나다를까 그는 당선되자마자 ‘폭탄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임기 3년간 회장 월급을 단 한푼도 받지 않고, 대신 이 돈으로 회원들에 대한 법률지원기금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이는 정부의 의료비 부당청구 실사에 법적으로 맞서겠다는 의지의 천명이다. 또한 ‘항생제 과다처방 병원을 공개하라’며 행정소송을 낸 시민단체에 대해 형사·민사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혀 거듭 주변을 놀라게 했다.

    4월4일 대한의사협회 사무실 인근의 레스토랑에서 장 회장을 인터뷰했다. 그는 “회장 임기가 5월1일부터 시작되는데, 협회 안에서 인터뷰를 하면 현 회장과 직원들이 불편할 것”이라고 했다.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그는 깔끔한 검은색 정장차림이었는데, 모양새가 독특했다. 상의는 국내에선 보기 드문 디자인의 더블재킷이었다.

    -양복이 특이합니다.

    “같은 옷을 입어도 뭔가 특이한 게 좋지 않습니까. 주위에서 패셔너블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공청회 같은 데 가면 여의사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이번 선거에서도 여의사들이 표를 많이 줬죠, 허허. 기성복보다는 맞춤옷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리 비싸진 않습니다. 뭔가 변화한다는 것은 좋은 것 아닙니까. 의사협회도 앞으로 많이 변할 겁니다.”



    항생제 처방은 의사의 판단영역

    -강성 이미지를 풍기는데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법을 어긴 약국과 한의원을 고발하면서 그런 이미지가 생긴 것 같은데, 저를 깊게 사귄 분들은 제가 얼마나 ‘로맨티스트’인지 잘 압니다. 약사나 한의사가 자기 직역(職域)에서 본연의 역할만 한다면 제가 강성으로 보일 리 없지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의 로맨티스트라고 봐주면 안 될까요? 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한 일인데 왜 강성으로 비쳐져야 하는지….”

    -최근 정부가 항생제 과다처방 병·의원을 공개해 논란을 빚었습니다.

    “참여연대가 정부를 상대로 항생제 사용정보를 공개하라고 행정소송을 냈는데,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한마디로 초등학생 수준의 발상이지요. 어느 병·의원이 항생제를 많이 썼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얼마나 적정하게 썼느냐, 즉 정말 필요한 환자에게 썼느냐가 중요하지요. 항생제 투여의 적정성은 환자의 상태나 개인별 특수성에 따라 다르고 이는 전문가인 의사가 결정할 일입니다. 정부는 이번 발표를 하면서 감염학회나 의학회 등 전문가 집단에 자문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면 2차 감염성 환자가 많아 항생제를 쓸 수밖에 없는 병·의원은 무조건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바이러스성 감기엔 항생제 처방이 실제로 효과가 없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교과서에 분명 그렇게 적혀 있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은 독특합니다. 보통 감기를 비롯한 바이러스성 상기도 감염(급성) 증세로 병의원을 찾는 환자의 80∼90%는 이미 약국에서 이러저러한 약을 먹은 후 병세가 심해져서 찾아옵니다. 합병증을 달고 오는 거죠. 누런 가래가 나오거나 기관지염 증세를 동반하는 환자에게 항생제를 처방하지 않으면 폐렴이 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방치하면 죽을 수도 있죠. 그런데 어떻게 항생제를 안 씁니까. 기관지염이나 폐렴은 방사선 촬영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이런 2차 감염 증세의 직전 단계는 담당의사만이 판단할 수 있어요. 항생제 처방 빈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의사를 비난하면 소신 진료는 불가능합니다.”

    1972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내과전문의를 취득한 장 회장은 서울 강동구 영림내과 원장을 하면서 지금껏 160만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의사의 판단이 그 어떤 진단장비보다 우선한다는 진리를 실감했다고 한다. 2000년 의약분업 분쟁상황에서 의권쟁취투쟁위원회(이하 의쟁투) 중앙위원을 맡았고, 2002년부터 현재까지 대한개원내과의사회 회장을 연임하며 개원의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항생제 통계조작 음모

    -그래도 선진국과 비교하면 우리 병·의원의 항생제 처방률이 높은 편 아닙니까.

    “의료 선진국 환자들은 감기에 걸리면 약국에 가지 않고 바로 병·의원을 찾습니다. 그러니 합병증이 올 리가 없죠. 순수 감기환자는 열이 나면 해열제, 기침을 하면 진해거담제, 콧물이 나오면 항히스타민제를 처방하면 바로 좋아집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약국에서 병을 키워서 오다 보니 항생제를 써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약국 조제의 타성에 젖어 있는 나라와 의료문화, 정서, 시스템이 전혀 다른 선진국을 직접 비교할 수는 없죠.”

    -그렇더라도 한국의 항생제 처방률(58.8%)은 WHO(세계보건기구) 항생제 처방률 권장치인 22.7%보다 두 배 이상으로 높다고 하는데요.

    “그 말 잘 꺼냈습니다. 몰라서 못 쓰는 지, 알아도 안 쓰는지 어느 언론도 제대로 다룬 적이 없습니다. 의약분업 때도 그랬듯이 보건복지부는 2월10일 항생제 과다처방 병·의원을 발표하면서 WHO의 항생제 처방률 권장치를 거론하며 또 한번 의사들을 나무랐는데, 이게 순 엉터리였어요. WHO의 항생제 처방 권장치는 2001년 정부가 강행한 의약분업의 이론적 동기를 제공했습니다. 국내 항생제 오남용의 심각성을 알리는 잣대가 됐지요. 그런데 알고 보니 WHO엔 항생제 처방 권장치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어처구니가 없어요. 의약분업 이전인 2000년 초에 복지부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이모 박사-약사라고 합디다-에게 ‘의약품 사용평가’란 연구개발사업을 맡겼는데, 그 결과물로 나온 연구보고서에서 ‘WHO 항생제 권장치’가 처음으로 언급됐습니다. 그런데 이 연구보고서를 보면 그 어디에도 WHO의 권장치에 대한 분석 내용이 없어요. 그래서 찾아보니 WHO가 예멘이라는 나라의 이론적 항생제 필요량이 22.7%라고 밝힌 것을 무슨 영문인지 이모 박사가 이 보고서의 최종 요약본에 ‘WHO 권장치’라고 바꿔 써넣은 거죠. 이후 이 통계는 복지부의 각종 발표에 계속 인용됐습니다. 언론도 따라 썼고. 이런 상황에서 항생제 과다처방 병·의원 발표가 나가자 해당 병원에는 ‘우리에게 독약을 줬느냐’며 환자들이 몰려가 생떼를 쓰고 있습니다. 엉터리 통계자료로 인해 의사들만 나쁜 사람이 됐고, 결과적으로 국가 의료정책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것이죠. 거듭 말씀드리지만 반드시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정부가 통계치를 조작했다는 이야기인가요.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죠. 의약분업을 시작할 당시 김대중 정부는 의료계의 반대에 맞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를 강행할 구실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이게 나온 거죠. 의약분업의 취지가 의약품, 그중에서도 항생제의 오남용을 막는다는 것 아니었습니까. 정부가 국민을 설득하는 데 가장 중요한 통계치를 발표하면서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는 게 말이 안 되죠. 결국 김대중 정권은 83번째 공약사항인 의약분업을 관철하기 위해 통계를 조작하고 국민을 기만한 것입니다. 의약분업 이후 건강보험료 올랐지, 약국 가느라 시간 낭비하지, 국민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습니까.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확인 결과 WHO 항생제 권장치에 대한 장 회장의 주장은 사실이었다. 2월20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보건복지부 노연홍 보건의료정책본부장은 한나라당 고경화 의원의 질문에 대해 “WHO 항생제 처방 권장치에 대한 통계발표는 근거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후 복지부는 이에 대한 해명자료를 내지 않았다. 복지부 출입기자들조차 이런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장 회장은 우리 국민의 항생제 내성(耐性) 피해는 오히려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의약분업 예외지역의 약국들과 양식업, 축산업 등이 그것. 그는 “양어장, 양계장, 목장에서 쓰이는 가축 사료는 항생제 덩어리”라며 “정부는 왜 큰 것은 일부러 보지 않으려 하고 미시적인 부분을 과장하는 데만 열을 올리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의협 안에 ‘불법약국 대책위원회’를 상설한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의약분업 국가인데도 약국에 가면 약사가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라고 묻습니다. 이것은 의사들이 문진(問診)할 때 쓰는 말입니다. 약사가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의사 일을 하겠다는 것이지요. 의약분업을 하고 있는 전세계 어느 나라 약국에서도 이런 일은 없어요. 난센스 차원을 넘어 완전 코미디입니다. ‘어떤 약이 필요해서 오셨어요?’라고 물어야죠. 실사를 해보면 문진 차원이 아니라 의사 처방 없이 약을 조제해 팔고, 전문의약품, 항생제까지 그냥 파는 약국이 부지기수입니다. 이런 마당에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장동익 신임 대한의사협회장

    2002년 1월27일 의약분업 즉각철폐를 주장하며 서울 장충체육관에 모인 의사들.

    -실제로 그런 약국을 적발한 적이 있습니까.

    “2002년 서울에 있는 약국 5400곳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1800곳을 조사했더니 500여 곳이 의료법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의약분업 직후라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저녁에 단속을 나갔습니다. 2003년 가을에는 단속이 있음을 예고하고 낮에 나갔는데 더 많은 곳이 걸렸습니다. 그로부터 3년이 흘렀으니 지금은 어떻겠습니까.”

    -적발한 약국을 모두 고발했나요.

    “1차로 단속된 약국 몇 곳을 고발하다 그만뒀습니다. 약사회에서 병·의원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 병·의원 창문이나 외벽에 붙은 불법 광고물을 고발하기 시작했거든요. 맞불을 놓은 거죠. 그러자 약사회의 단속에 걸린 의사들이 빗발치듯 항의전화를 해왔습니다.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느냐’는 것이죠. 약사는 국민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불법을 저질렀고, 의사는 단순히 광고규정을 위반한 것인데도 처벌 수준은 후자가 더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약사회와 고발 대상 명단을 맞교환하고 끝냈습니다.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흥정을 한 것입니다. 결국 약사회의 의도대로 됐죠.”

    -복지부에도 합동 사이비 의료 단속반이 있는데요.

    “법과 제도에 대한 ‘사후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할뿐더러 단속의지도 없습니다. 단속실적도 미미하고요. 특히 저녁에는 행정력이 제대로 미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대책위원회를 만들어서 낮이고 밤이고, 전국 5대 도시를 감시할 수 있는 자체 단속반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오죽하면 의사가 나섰겠나

    -지난해 한의사를 대거 고발한 배경은 무엇입니까.

    “지난해 1월 대한한의사협회에서 포스터를 제작했는데, 제목 아래에 ‘한약은 임신부에게도 안전하다’는 문구가 씌어 있었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중국 명나라 때 펴낸 ‘본초강목’에도 80가지 한약은 임신부에게 절대 쓰지 못하도록 하고 있고, 일본에도 148개 의료보험 등재 약재 중 140개 약재가 기형아를 유발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산모에게 한약을 먹이는 게 일반화돼 있어요. 이런 의료후진국이 없지요. 의료현장에서 한약에 의한 피해를 너무 많이 보아온 터라 도저히 이래선 안 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죠. 그래서 범(汎)의료한방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제가 위원장을 맡아 한의사의 불법 행각을 고발하기 시작한 겁니다.

    전국 한의원 9000곳 중 1600곳 이상을 적발해 검찰에 38건, 복지부에 1585건을 고발했습니다. 자궁 안에 있는 혹(근종)을 한약으로 녹인다는 한의원이 없나, 말기암 환자의 치료에 신기원을 이룩했다는 한의원이 없나. 만약 그런 치료가 정말로 효과가 있다면 노벨의학상감이죠. 한의학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한약의 부작용으로 사망한 사례가 해마다 400건 이상 신고되고, 일본도 1년에 30∼40건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단 한 건도 보고된 게 없어요. 사체 부검이 일반화되지 않아 증거가 없어서 그렇지, 한약의 폐해는 심각합니다. 수은, 살충제, 농약, 심지어 쥐약과 마약성분까지 나온 적이 있습니다.”

    -한의사협회가 가만있지 않았을 텐데요.

    “정말 한의사가 걸었는지는 모르지만, 저와 가족을 죽이겠다는 협박전화가 계속 걸려왔습니다. 경찰이 준 녹음기로 녹취해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그랬더니 이걸 자작극이래요. 그러고선 약사회가 쓴 방법대로 병·의원 1000곳 이상을 불법 광고혐의로 고발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약사를 고발했을 때와는 달리 의사 회원들로부터 항의전화가 오지 않았어요. 그만큼 의사들이 한약의 폐해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올초 의사들의 광고에 대한 단속 규정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젠 맞고발 방법을 써먹을 수 없게 된 거죠. 앞으로 전방위적으로 자체단속을 펼쳐 나갈 생각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정부는 어떤 태도를 보였나요.

    “오죽하면 불법의료행위 단속에 의사들이 직접 나섰겠습니까. 낮은 의료수가와 의사 인력 과잉으로 가뜩이나 병원 운영이 어려운 형편인데요. 언론은 내막을 잘 들여다보지도 않고 그저 ‘밥그릇싸움’이라고 몰아붙였죠. 약사나 한의사를 고발한 것은 국민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순수한 결단이었습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한 것이지요. 그런데도 정부는 격려나 지원을 하기는커녕 달갑지 않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니 편파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죠. 의료가 제대로 된 길을 가려면 정부가 원칙을 바로 세워 불법의료행위를 엄단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죠.”

    장동익 신임 대한의사협회장

    대한의사협회 정문에서 포즈를 취한 장동익회장.

    -한방에서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불법인가요.

    “한의사가 초음파기기나 X-레이, CT, MRI, 내시경 등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현행법상 엄연한 불법행위입니다. 지난해 2월 고발사항에도 그 내용이 포함돼 있죠. 의사들은 의대와 인턴, 레지던트 등 일정한 수련기간을 통해 의료기기 사용법과 판독력을 기릅니다. 이후에도 임상경험을 쌓고 훈련을 거치죠. 반면 한의사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는 명백한 무면허 의료행위입니다.”

    의약분업의 폐해

    -의약분업 분쟁 당시 고생을 많이 했다더군요.

    “그때 제가 의쟁투 중앙위원이었는데, 저뿐 아니라 의협 회원 모두 하나가 되어 잘못된 정책에 항거했습니다.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이 당시 의쟁투 위원장을 맡았는데, 밤을 꼬박 새우며 뛰던 기억이 새롭군요. 가슴 아픈 것은 전임 김재정 회장과 한광수 전 서울시의사회장이 당시 의사파업과 관련해 실형을 선고받아 의사 면허를 상실할 위기에 놓였다는 것입니다. 사리사욕이 아닌 올바른 보건의료정책과 국민건강을 위해 불가피하게 투쟁에 나섰다는 점을 참작해 정부가 합리적인 해법을 내놓길 기대합니다.”

    -결국 의약분업은 시작됐는데, 지금까지의 과정을 평가한다면.

    “의약분업으로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 난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거덜난 건보재정을 메우기 위해 정부는 의사들을 쥐어짰죠. 진료비 심사강화, 진찰료·처방료 통합, 진찰료 차등수가제, 야간가산율 적용시간대 조정, 주사제 처방료·조제료 삭제, 의료수가 삭감 등 정부가 내놓은 건보재정 안정화 종합대책은 한마디로 의사들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의료기관이 줄도산했고, 경영난을 감당하지 못한 몇몇 의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의약분업으로 항생제, 주사제 사용이 줄었다는 정부의 주장은 사실과 달라요. 줄었다면 정부의 무리한 심사조정과 고가약 억제책, 약제 적정성 평가의 결과이지 의약분업과는 무관합니다. 제약회사의 항생물질 생산실적이 의약분업 시행 이전보다 품목수와 금액에서 각각 20%와 17% 증가한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복지부 자료를 보면 2002년, 2003년 의약분업을 위반한 사례가 53.6%나 폭증했습니다. 굳이 의약분업을 유지하겠다면 이런 폐단부터 뿌리뽑아야 합니다.”

    -약사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라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약사의 임의조제행위는 엄연한 무면허 의료행위인데도 단지 약사법 위반, 즉 ‘처방전 없이 조제한 경우’로 보고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데 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료법은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해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벌하도록 되어 있죠. 약사의 불법행위를 근본적으로 막으려면 현행 약사법상 처벌규정은 턱없이 미약합니다. 의료법과 형평을 맞출 수 있도록 약사법 개정을 서둘러야 합니다.”

    식탁에서 ‘白色’ 추방

    -정부의 의료비 부당청구 실사에 대해 법률적 대응책을 마련했다면서요.

    “부당청구에는 실제로 착오청구, 과다청구, 허위청구가 섞여 있습니다. 언론에 허위·부당청구로 적발됐다는 병·의원의 대다수는 실수에 의한 착오청구입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의사들을 협박해 허위청구를 한 것처럼 자인서를 쓰게 하죠.

    그러고는 행정처벌, 형사처벌 등 4중 처벌을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복지부가 실사 나올 때 변호사를 입회시키려 합니다. 변호사 비용은 의협에서 절반 이상 부담할 것입니다. 법의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이러한 무리한 법 적용을 합리적으로 개선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가 너무 달아오르는 것 같아 가벼운 주제로 방향을 틀었다.

    -의협회장의 건강은 일반인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겁니다. 건강비결이 있다면.

    “건강에 대한 상식이 가장 많은 의사가 내과의사죠. 제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운동과 음식입니다. 특히 음식, 식습관에 중점을 두죠. 저는 집안에서 ‘백색(白色)’을 추방했습니다. 즉 하얀색 조미료와 설탕, 밀가루, 흰 쌀밥을 식탁에서 몰아냈죠. 설탕은 당뇨병의 원인이 되고, 화학조미료는 뇌의 손상을, 소금은 고혈압 및 뇌졸중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밀가루에는 방부제가 많이 들어 있어 인체 면역력을 떨어뜨리죠. 집안에서 백색 위주의 음식과 조미료를 몰아내면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육식은 가능하면 하지 않고 소식하면서 과일과 충분한 양의 물, 나물과 시래기, 콩요리 등을 즐겨 먹습니다. 안전성을 인정받은 건강보조식품 섭취도 권할 만합니다.”

    장동익 신임 대한의사협회장

    그가 올초 펴낸 책 ‘의사할만하세요?’.

    인터뷰 도중 저녁식사 시간이 되자 장 회장은 샐러드를 주문했다. 그러면서 웨이터에게 “햄, 소시지 빼고, 채소만 싱겁게 해줘요”라고 했다. 이런 식습관 때문에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걸까.

    -영림내과가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더군요.

    “레지던트를 마친 후 저는 대학교수로 남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학연과 연고주의 때문에 교수 임명에서 탈락했죠. 실망이 컸지만 전화위복이랄까요. 방향을 선회해 개업의로서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키우게 됐습니다. 그간 풍파도 많았지만 천호동 영림내과를 운영하면서 전국 2만여 곳의 개업의 중에서 매출액, 환자수 모두 1위에 올랐고 그 기록이 15년간 이어졌습니다. 단 한 번의 의료사고도 없었고요.”

    -나름의 비결이 있습니까.

    “의사로서의 실력과 능력은 기본이고요. 그 외에 4가지 요소를 잘 지켜야 합니다. 첫 번째는 ‘Talkative’, 즉 말을 많이 하는 의사가 되라는 것이죠. 의사가 환자에게 상세하게 설명해주면 환자는 새로운 희망을 갖고 치료에 더욱 매진합니다. 두 번째는 ‘Movable’, 많이 움직이라는 것입니다. 직접 몸을 움직여 환자를 안내하고, 진찰대에 눕히는 등 환자를 배려하라는 이야기이지요. 세 번째는 ‘Diligently’, 시간에 관한 한 최대한 부지런해져서 환자들이 원할 때 의사가 반드시 그 시간에 병원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Kindly’, 친절해야 합니다. 자신의 가족을 대하듯 환자를 대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환자들이 감동하고 입소문이 나게 됩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습니다.”

    가수 꿈꾸던 의대생

    -노래 실력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던데요.

    “어릴 때부터 노래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성당에 다니면서 크리스마스 미사의 솔리스트로도 활약했죠. 대학 때는 친구들과 그룹을 만들어 데뷔할 계획도 세웠습니다. 그 친구들 중 하나가 트윈폴리오의 윤형주이고 또 하나는 가수 이장희입니다. 그들처럼 가수의 길을 택하진 않았지만 노래는 지금까지 평생의 애인과 같은 존재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묘한 인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전공의 시절 박 대통령의 장모이신 이경령 여사를 진료한 일이 인연이 되어 박 대통령이 제게 각별한 관심을 보이셨고 교분도 쌓았습니다. 우연인지 그후 박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그의 죽음을 최초로 확인한 의사가 바로 저였습니다. 당시 국군서울지구병원에 근무하고 있었거든요.”

    -진정한 의사의 길이 무엇이라고 봅니까.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시대가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의사의 윤리적 지침이며 나침반입니다. 의사라면 누구나 이 선서를 늘 마음에 두고 환자진료에 열과 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의사에게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마음의 등불입니다.”

    장 회장에게 대뜸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다 외울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씩 웃으며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읊기 시작했다.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관계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그는 “한국의 모든 의사가 이 선서대로 소신과 양심을 가지고 진료에 임할 수 있도록 잘못된 의료환경과 제도를 끊임없이 고쳐 나가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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