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호

주수도 제이유그룹 회장의 검찰 제출 의견서

“국정원 첩보 문건에 여론조작 음모 있다”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6-06-05 14: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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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원 15만여 명(추산), 매출 2조원, 계열사 21개를 거느린 네트워크 마케팅 그룹 제이유의 정·관계 로비의혹이 제기됐다. “제이유가 검찰 조사 무마 등의 목적으로 여권에 금품 로비를 했다”는 국가정보원 첩보 문건이 발단이다. 제이유그룹 주수도 회장은 국정원 문건에 대한 의견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주수도 제이유그룹 회장의 검찰 제출 의견서

    주수도 제이유그룹 회장(사각형내)이 검찰에 제출한 의견서.

    국가정보원 첩보 문건은 비자금 조성 방식(협력업체 물품대금 지급 지연, 외주업체 납품시 임원 차명계좌에 일정 금액 입금 등), 비자금 규모(2000억원), 로비 목적(조사 무마, 보험용, 비호세력 구축), 로비 대상(검찰, 경찰, 공정거래위원회, 여당 당직자, 지방지사 관계기관 등), 로비 브로커(여당 의원, 지검장, 변호사), 로비 결과(기업인수 자금출처 내사 중단)를 담고 있다.

    문건은 구체적 수치, 실명, 정황을 담고 있어 사실인 듯한 느낌을 주며 국정원은 이 문건을 검찰에 제공해 수사를 의뢰했다. 서울 동부지검은 정·관계 로비의혹을 포함한 제이유 관련 의혹(서해유전개발 투자 등)에 대해 제이유그룹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여론의 관심은 제이유 관련 의혹 중 정·관계 로비의혹에 집중되고 있는데, 제이유 그룹 주수도(朱水道·50)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은 채 검찰 조사를 준비 중이다. 주 회장은 ‘신동아’의 인터뷰 요청을 받고 ‘국정원 첩보 문건에 대해 검찰에 제출한 의견서(피내사자 주수도 변호인 명의)가 내 의견과 동일하니 인터뷰를 이 의견서로 대신해달라’는 의사를 측근을 통해 전해왔다.

    국내 최대 네트워크 기업과 여권과의 금품 로비 의혹이 국가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에 의해 제기된 이례적 사건에 대해 핵심 당사자인 주 회장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보고 이를 수용했다.

    주 회장의 의견서는 검찰 조사를 앞둔 피내사자가 본인 변론 차원에서 검찰에 제출한 것이므로 그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주 회장은 검찰 조사 등 추후의 검증과정에서 의견서 내용과 다른 사실이 드러날 경우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음을 인지한 상태에서 의견서를 언론에 제공했다. 의견서를 공개한 시점도 검찰 조사를 앞둔 민감한 시기다. 의견서의 내용에 책임을 지겠다는 성격이 그만큼 짙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신동아’가 다른 경로로 입수한 국정원 첩보 문건과 주 회장의 의견서를 비교한 결과, 의견서에서 밝힌 첩보 문건은 국정원이 실제 작성한 문건과 동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원 첩보가 공공연히 누출되어…”

    주 회장은 의견서에서 “국정원의 첩보 문건에 여론조작의 음모가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국정원이 법률이 정한 직무범위를 일탈한 것은 아닌지 논란이 있다”고도 했다. 다음은 의견서 내용이다. 먼저 의견서 제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소위 ‘국정원 첩보’에 대하여. 최근 피내사자(주수도)에 대한 귀청(서울 동부지검)의 내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소위 ‘국정원 첩보’라는 형식의 문서가 나돌고 있습니다. ‘첩보’는 작성 주체인 국정원이 가지는 권위와 그 내용의 정교함, 특정 인물들의 실명을 그대로 거론하는 점, 핵심적인 내용마다 일정한 수치를 제시하는 치밀함 등으로 인하여 피내사자가 운영하는 제이유 그룹의 실상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명백히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피내사자는 그야말로 내사 대상으로서의 불리한 ‘첩보’가 어떤 경로로든 귀청에 제공되었고 그것이 내사 주체들에 의하여 회람되어 일정한 선입견을 형성할 수도 있다는 우려로 인하여 본 의견서를 통하여 해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어 의견서는 첩보 문건의 작성 주체인 국정원에 적극적으로 역공을 취했다. 국정원 첩보 문건이 내용을 입증할 증거를 대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의견서는 이를 근거로 첩보 문건의 작성 배경에 음모가 있다는 주장을 폈다.

    “피내사자에 대해서는 ○○○○기업의 음해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왔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막강한 자금과 정보 등을 활용하여 정부 관리들에 대한 로비를 진행하였다는 설은 피내사자가 아니라 ○○○○기업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번 첩보 파문의 중심에는 ○○○○기업의 음해와 왜곡된 정보의 제공 및 여론조작 음모가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첩보’의 경우 제이유의 내부 불만자가 ‘첩보’의 작성주체기관 직원과의 친분관계를 활용하여 그러한 음해성 사실왜곡을 ‘첩보’에 전적으로 반영되도록 사주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어 왔습니다.

    더구나 국가기밀이라고 할 국정원 ‘첩보’가 공공연히 누출되어 언론에까지 보도되어 사회적 파문을 증폭시키고 있는 현실에서…국정원 첩보는 세간에 떠도는 소문을 수집한 것에 불과한 것이며, 그 어떤 객관적인 자료도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국정원은 직접 내사기관이 아니며 개정된 국정원법에 따르면 직무범위가 ‘국외 첩보 및 국내 안보정보(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 작성, 배포’로 한정되어 있는 바, 위 ‘첩보’가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일탈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는 상황입니다.”

    누가 왜 흘렸나

    국정원의 일부 관계자는 “국정원이 문건을 외부에 유출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정부가 국회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국정원은 공식적으로는 제이유 관련 조사 내용들을 청와대에 여러 차례 제공했으며, 청와대는 이중 일부를 검찰에 내려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국정원이 아니라면 다른 정부기관에서 문건이 유출된 셈이다. 밖에서 보기엔 국정원이나 다른 정부기관이나 사정정보 업무를 취급한다는 점에서 별 차이는 없다.

    비리가 있으면 공식 조사를 통해 밝혀내면 되는데, 문건 외부유출 방식을 통해 이슈화하자 ‘권력 내부 암투설’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야권 일부에선 ‘첩보에 실명이 거명된 여권 인사들이 공교롭게도 특정 정치계보와 연관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실수나 우연 등 비의도적 원인으로 국정원 첩보 문건이 외부에 유출됐을 가능성도 꽤 있다.

    한편 국정원이 정경유착 로비의혹을 내사한 것이 의견서의 표현대로 국정원의 직무범위 일탈 논란을 부를 사안인지에 대해선 반대 논리가 많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법 조항을 엄격하게 해석하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정원의 비리감시 활동은 용인되는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로비스트 H씨’ 인터뷰 요청 거절

    국정원 첩보 문건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100억원대 로비자금이 로비스트 H씨를 통해 실제로 정·관계 인사들에게 뿌려져 제이유의 기업인수 자금 출처에 대한 검찰 내사(2004년 5월)가 중단됐다”는 부분이다.

    로비스트 H씨가 결국 내용의 진실 여부를 가려줄 핵심 인물이다. H씨는 제이유와 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인사로, 주수도 회장측도 “현재 H씨는 국내에 있다”며 소재를 확인해줬다. ‘신동아’는 주 회장측에 H씨와의 인터뷰를 주선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주 회장측은 “H씨도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어 인터뷰는 어렵다”고 답했다.

    주 회장은 의견서에서 “100억원대 로비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다만, ‘검찰이 제이유의 기업인수 자금 출처에 대해 내사를 벌였다’는 점, ‘2004년 5월 H씨를 만났다’는 점에 대해선 사실로 인정하는 듯한 표현을 쓰고 있다.

    “‘첩보’와 같은 100억원 로비 사실은 전혀 없으며, 변호인들이 동부지검에 변호인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혐의점이 없다는 점을 설명하는 등 정상적인 변론에 임하였던 것이지, 어떤 외부적 압력에 의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H는 피내사자와는 2004년 5월 말경에 만나 인사를 나눈 사이로서 당시에는 피내사자가 100억원을 로비자금으로 줄 정도의 친밀한 관계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H는 (피내사자에게) 6개월 정도 자문을 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피내사자의 해외진출사업에 일조를 하고자 하였던 것에 불과합니다.

    ‘첩보’는 H가 해외 밀반출을 위하여 B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중국 등지로 송금한 후 제3국으로 외화를 유출시키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상업등기부에 조회하여 보아도 B라는 회사는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나옵니다.”

    ‘첩보’ 내용 중 ‘납품가 조작 등에 의한 2000억원대 비자금 조성’과 관련해 의견서는 “납품과 관련 퇴직 임원들의 개인비리 소문은 무성하게 돌고 있다. 그러나 피내사자(주수도)가 납품가를 조작해 비자금을 조성해 차명계좌를 관리한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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