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호

한국의 CSI, 3대 과학수사기관 밀착취재

“딸 독살한 아버지의 음료수 캔을 보고 뇌파가 흔들리는데…”

  • 이 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입력2006-06-05 16: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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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 연쇄살인사건. DNA 분석기법이 도입됐지만 증거물 채취량이 적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서울 서남부 지역 연쇄살인사건. 체포된 용의자 정모씨가 자백한 사건은 19건에 달하지만, 증거가 확보된 것은 단 세 건뿐. 불충분한 증거는 未濟사건을 남긴다. 엄정하게 죗값을 묻는 작업을 방해하기도 한다. 한국의 모든 수사관이 마주치는 억울하고 난감한 상황. 그 칼자루를 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대검찰청 과학수사과의 최신 수사기법을 살펴봤다.
    한국의 CSI, 3대 과학수사기관 밀착취재
    ▼ 장면1대전에서 경남의 어느 시골마을로 놀러간 청년 A. 동네 다방에서 성폭행을 저지른 후 바로 대전으로 ‘날랐다’. 아는 이 하나 없는 타지, 남긴 증거물도 없으니 잡힐 리 없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어느 날 경찰이 집으로 들이닥쳤다. ‘어떻게 내가 범인인 걸 알았을까?’

    ▼ 장면 2 비자금 관련 의혹에 휩싸인 중견기업 B사. 불시에 검찰 수사요원들이 들이닥쳤다. 그러나 걱정 없다. 사전에 정보를 입수해 이미 관련문서를 깨끗이 이중삭제했다. ‘얼마든지 찾아라, 어디든지 뒤져봐라.’ B사의 회계담당자는 피식 웃음까지 지으며 호기를 부렸다. 컴퓨터를 압수당한 지 몇 달 후, 삭제문서에 담긴 내용을 검찰이 낱낱이 꿰고 있는 것을 알고 경악했다.

    ▼ 장면 3 C의 범행을 입증할 유일한 증거물은 카세트테이프였다. 그러나 지직거리는 잡음 때문에 녹음 내용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용의자는 범행시점보다 한참 전에 녹음한 것이라고 발뺌했다. 그러나 녹음내용은 곧 만천하에 밝혀졌고, 시점에 대한 의문도 맥없이 풀렸다.

    ▼ 장면 4 모 기업의 대표 사무실에 폭발물이 배달됐다. ‘실록 박정희와 한일회담’이라는 책 가운데를 파낸 공간에 얌전히, 그러나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숨기고 들어앉은 폭탄. 지문은 발견되지 않았다. 누가 책을 놓고 갔는지 본 사람도 없다. “거 참 희한한 놈일세.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유일한 단서는 책 옆면에서 발견된 낙서자국. 그곳에 적어둔 이름을 사인펜으로 짙게 덧칠해 지운 흔적이었다. 얼마 뒤 경찰은 범인 D의 정체를 파악해 검거했다.

    ▼ 장면5 은밀하게 수표를 위조한 E. 130장을 만들어 사설 도박장에서 흥청망청 써버렸다. 물론 이서(裏書)는 하지 않았다. 위조수표를 확인한 은행은 경찰에 신고했지만, 이미 수많은 경로를 거친 수표라 지문감정은 불가능했다.



    도박장에서 범인의 윤곽을 잡는 일은 장안에서 왕서방 찾는 격. 그러나 경찰은 금세 수표의 출처를 찾아냈다. 단서는 위조수표 속에 있었다.

    수사기관이 이러한 사건들의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분야 과학수사팀의 활약 덕분이었다.

    내 몸 안에 CCTV가 있다

    A가 꼬리를 밟힌 것은 1ng(나노그램·10억분의 1g) 남짓한 침 때문. 수사관은 휴지통에 버려진 종이컵 몇 개를 수거해, 그 위에 말라붙어 있던 침의 DNA를 모두 분석했다. 피해여성의 몸에서 나온 증거물과 일치하는 DNA를 찾아내 범인의 신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B사를 조사하던 검찰수사관은 파일 수만개의 배열방식과 저장시기를 조사한 결과, 파일을 삭제한 흔적이 있음을 직감했다. 복구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덮어쓰기’에 의한 삭제. 그러나 파일을 기계어로 읽어내어 이를 유니코드로 변환하는 전문기술로 완벽하게 복구해냈다. 그렇게 복구된 파일 내용을 토대로 수사는 급진전됐다.

    C의 카세트테이프는 잡음덩어리에 불과한 듯했다. 그러나 검찰 음성분석팀은 특수 음성분석기를 이용해 쓸모없는 음파들을 제거했다. 그런 뒤 자동화자(自動話者) 시스템으로 카세트테이프 속의 음성이 C의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카세트테이프 안에 암호로 저장된 고유번호를 이용, 녹음시점을 밝혀냄으로써 용의자의 거짓말도 들춰냈다.

    폭발물을 설치한 D는 헌책방에서 구한 책 옆면에 쓴 이름이 단서가 될까봐 사인펜으로 덧칠했다. 그러나 종류가 다른 성분으로 적힌 글자들은 적외선 문서감정 기계를 통과하면 바로 분해할 수 있다. 문제는 기계가 책 두께를 소화할 수 없다는 것. 얇은 종이 한 장만 들어가는 기계에 두께 2cm가 넘는 책의 세로면을 넣을 수는 없었다. 해결책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감정과 양후열 실장의 기지에서 나왔다. 세로면을 적외선에 반응하는 적외선 필름으로 촬영한 것. 낙서자국이 찍힌 사진은 기계를 통과하면서 선명한 이름 석자를 드러냈다. 이름을 단서로 범인을 역추적할 수 있었다.

    E가 쓰고 다닌 수표는 컬러복사기로 위조됐다. 지문도, 이서도 없지만 단서는 복사기 속에 있었다. 입수한 수표의 뒷면에는 암호화된 점들이 찍혀 있었다. 이는 컬러복사기에 설치된 문서식별 기능 때문. 경찰은 수표 뒷면에 적힌 점을 복사암호 분석 프로그램으로 조사해 일련번호와 제품번호를 알아냈다. 그 복사기가 팔린 곳을 추적, 수표를 복사한 장소를 찾아낸 것이다.

    날로 지능화하는 수법, 빈틈없는 뒤처리. 꼬리를 밟히고도 절대 아니라고 발뺌하는 뻔뻔함. 시간과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범죄가 날로 늘고 있다. 이 때문에 과학지식과 기술을 활용하는 수사영역은 점점 확대되는 추세. 기술적으로 수사를 지원·보완하는 것이 바로 과학수사의 몫이다. 과학수사 분야는 크게 유전자감식, 마약감식, 심리생리, 문서감정, 영상·음성분석 등으로 나뉜다. 사건의 특성과 수사단계에 따라 적합한 부서에서 담당한다.

    과학수사의 활약상이 눈부시지만, 한국의 과학수사 수준은 선진국에 견주면 한참 뒤처지는 편이다. 과학수사의 선진국이라는 영국이 보유한 전문인력은 2300명. 한국은 국과수와 대검찰청 과학수사과, 경찰 과학수사요원을 합쳐봐야 800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나마 최근 들어 과학수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대검은 2006년까지 263억원을 투자해 ‘과학수사지원센터’를 건립할 예정이다. 경찰도 2000년에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에 범죄분석팀을 신설했고, 지난해 처음으로 범죄분석을 전공한 프로파일러(범행 현장을 토대로 범인의 심리를 분석하는 요원)를 채용했다.

    저 과자는…, 저 음료수는…

    새로운 과학수사 기법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최근 선보인 기법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뇌파분석이다. 사람의 뇌파는 눈으로 보든 귀로 듣든 냄새를 맡든 접하는 사물마다 다르게 반응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대개의 경우 범행에 사용한 도구를 보면 범인의 뇌에서는 ‘P300’이라는 뇌파가 나온다. 대검 과학수사과는 2005년 12월 뇌파분석을 이용한 증거자료를 처음으로 법원 심리과정에 제출했다. 경남에 사는 F는 딸의 이름으로 보험에 가입한 지 하루 만에 독극물을 섞은 음료수를 딸에게 먹여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 심증은 있지만 결정적 증거가 없던 차에 검찰은 뇌파분석자료를 제시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F에게 범행에 사용됐을 것으로 짐작되는 음료수와 과자를 보여줬더니 뇌파가 급격한 양성반응을 나타냈던 것이다.

    현재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기법으로는 심리행동분석이 있다. 심리행동분석은 진술분석과 행동분석으로 나뉜다. 대검 과학수사과 임호성 사무관은 “아직 인력을 구축하지 못했지만 지난해부터 시연(試演)을 시작했고 곧 성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심리행동분석은 미국 연방수사국(FBI)에서 이미 상용화했지만 대검이 우리나라의 언어·환경에 맞게 개편을 준비 중이다.

    진술분석은 피의자나 참고인의 진술서로 범죄 유무를 가늠하는 방법이다. 진술서에 숨어 있는 심리를 파악하는 게 핵심. 한 사건에 대해 G와 H가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하자. G는 사건과정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자세히 늘어놓았다. 반면 H는 사건발생 전과 후의 상황을 중심으로 진술했다. 이 경우 H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경우 범죄상황과 내용에 대해 진술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진술서에 ‘우리집’이나 ‘남편’ 같은 일상용어가 아니라 ‘사망자’ 같은 딱딱한 용어를 사용했다면 진술자의 어색한 심리를 포착할 수 있다. 이러한 진술분석 매뉴얼은 수십 가지에 달한다.

    행동분석은 조사과정에서 범행 관련자의 행동과 대화를 분석해 일반인과 다른 특성을 포착하는 것이다. 대검 과학수사과 이창세 기획관은 “간단한 예로 사람이 긴장하면 눈을 껌벅거리는 것 같은 특징”이라며, “다양한 심리행동 매뉴얼이 있지만 자세한 내용이 알려지면 수사에 어려움이 있지 않겠느냐”며 더 이상의 언급은 피했다.

    한국의 CSI, 3대 과학수사기관 밀착취재

    대검 과학수사과 직원이 뇌파측정기를 시연하고 있다.

    과학수사기법은 어느 날 획기적인 실험에 의해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천재가 영감을 받아 결과물을 내놓는 것도 아니다. 오랫동안 현장에서 일해온 수사관들의 경험과 고민, 노하우가 축적된 것에 가깝다. 과학수사의 기본인 감청기법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발달했다. 이창세 기획관의 설명에 따르면, 처음에는 소파 밑이나 책장 속에 묵직한 감청기구를 숨기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요즘은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도 감청이 가능하다고 한다. 원리는 같지만 기술적으로 진화했다는 얘기다.

    용의자 검거와 범죄예방에 결정적인 몫을 해내는 몽타주도 마찬가지다. 수년 전 인터넷에서 한 몽타주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사람의 형상이라기보다는 개구리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몽타주의 효용에 대한 누리꾼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그러나 경찰청 과학수사계 손호림 계장이 보여준 범인의 몽타주와 인물사진은 너무도 흡사해 놀라울 정도였다. 유행하는 뻗친 헤어스타일, 최신 디자인의 뿔테안경, 점의 위치. 몽타주는 사진 속 인물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세밀하고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흡사 극사실주의 화가의 솜씨 같았다. 손 계장은 “미국에서 만든 몽타주 프로그램을 쓰며 한계를 느끼다가 수년 전에야 한국인에 맞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며 “이전보다 인물 표현이 용이해졌다”고 말했다. 수사관들은 유행에 맞는 데이터를 꾸준히 보완하고 있다.

    지능범죄 수사에서도 노하우가 중요하기는 마찬가지. 한 대기업의 비자금 비리사건이 터졌을 때 검찰이 압수한 컴퓨터 용량은 9TB. 미국 의회도서관 데이터베이스와 맞먹는다. 관련문서를 찾기가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수사관들은 경험을 통해 익힌 직감을 바탕으로 문서를 걸러낸다. 이창세 기획관은 “파일명을 비자금이라고 하는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며 “간단한 예로 알파벳 ‘B’로 시작하는 이름의 파일부터 검색하는 것이 첫 단계”라고 했다. ‘B-fund’ 같은 국적불명의 조합어로 파일명을 붙인 경우를 찾는 것이다. 또 중요문건은 컬러로 인쇄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문서파일 중에 컬러로 복사된 것부터 추려낸다고 한다.

    분첩을 든 경찰

    수사관들은 이러한 최신 기법을 따라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유전자감식, 범죄심리 등 각 분야 관련자들은 학회를 통해 의견을 교류하거나 미제(未濟)사건에 대한 회의를 열기도 한다. 국과수 양후열 실장은 “직접 수사하면서 겪는 불편함을 해소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과수 문서분석실 나기현 연구원은 지난 3월 레이저프린트복합기로 출력한 문서에 담긴 암호를 밝혀내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약 8개월간 연구에 매진한 끝에 얻은 결과였다. 아날로그 컬러복사기에서 출력된 문서에는 보이지 않는 암호가 찍힌다. 암호는 문서를 출력한 기계의 제조사와 제품번호 등을 담고 있다. 아날로그 컬러복사기로 출력한 문서의 출처를 밝혀내는 소프트웨어는 일본이 개발해 각 나라에 배포했다. 나기현 연구원은, 복합기로도 컬러인쇄가 가능한데 비슷한 기능의 프로그램이 있으면 수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연구를 시작했다.

    모든 회사의 복합기가 문서에 흔적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나 연구원은 일단 연구할 제조사의 제품을 추려 샘플을 확보한 뒤, 해당회사에 일일이 협조를 요청했다. 문서를 모아 밤낮으로 뒷면에 찍힌 점들의 간격과 배열을 살폈다. 그는 “일본에서 비슷한 원리의 프로그램이 있어서 참고가 됐다”고 했다. 지난 4월 처음으로 나 연구원이 개발한 프로그램을 이용해 수표 위조범을 검거하는 쾌거를 이뤘다. 사건을 맡은 동대문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강일수 경위는 “컴퓨터 화면에서 숫자가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이내 일련번호가 떠올라 신기했다”며 “이 프로그램 덕분에 용의자의 범위를 크게 좁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개발된 간단한 지문감식 방법은 경찰청 과학수사과 신경택 경장의 작품이다. 그가 건넨 두 장의 사진. 한 장은 갈퀴처럼 흐릿한 손 모양을 중심으로 자국이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지만, 다른 한 장은 손자국이 선명했다. 그는 “기존 지문감식기법으로 채취한 지문과 새로운 기법으로 채취한 지문을 찍은 사진”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CSI, 3대 과학수사기관 밀착취재

    화성 연쇄살인사건 용의자의 몽타주.

    흔히 TV나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붓질 몇 번이면 어렵지 않게 지문을 채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수사관들이 붓질하는 곳마다 지문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붓질을 하려면 먼저 연필심 가루 비슷한 혼합가루를 지문이 있을 만한 장소에 균일하게 뿌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일단 가루를 바닥에 쏟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방으로 날리는 가루 때문에 호흡기가 간질거리고 현장이 더럽혀지기도 한다. 이 미세한 탄소성분 가루가 과연 인체에 무해한 것인지조차 검증된 바가 없다고.

    신경택 경장은 지난 6개월 동안 여성용 콤팩트파우더에 매달렸다. 그가 난데없이 화장품 회사를 전전한 것은 콤팩트파우더 용기를 지문감식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기 때문. 갖은 고생 끝에 그는 인체에 무해하고 고체로 굳혀도 강도가 강한 지문감식 신재료를 개발했다. 앙증맞은 콤팩트 용기에 담아 휴대도 간편하고, 바닥에 가루를 쏟는 수고도 덜게 됐다.

    수사관은 때로 범행수법에서 힌트를 얻기도 한다. 범죄자 역시 강력범죄 사건을 스크랩하거나 수사관련 서적을 탐독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쫓고 쫓기는 관계에서 형성된 일종의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고 하면 억지일까. 국과수 양후열 실장은 그 가운데서도 주민등록증 위조수법이 하루가 다르게 정교해진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사람들은 홀로그램만 찍혀 있으면 진짜인 줄 안다”며 “거의 흡사한 홀로그램이 찍힌 가짜 주민등록증이 발견됐다”고 했다.

    사기도박에서 주로 사용하는, 자외선을 비춰야만 보이는 표시를 해둔 화투도 양 실장을 놀라게 한 케이스다. 이전에는 도박장 옆방에서 자외선카메라로 촬영해 무선으로 알려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테이블에 앉은 사기꾼이 직접 자외선 렌즈를 착용하는 식으로 발전했다는 것. 이렇듯 새로운 기법이 확인되면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범행을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교차확인은 필수

    한국의 대표 과학수사기관으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대검 과학수사과,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 등이 있다. 이들 기관은 기능이 일치하는 부분이 적지 않지만 성격에 따라 주력분야가 다르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는 지문채취와 몽타주 작성이 주요업무다. 초동수사를 담당하기 때문에 현장 증거물을 관리한다. 국과수는 부검(剖檢)기능을 가진 국내 최대의 과학수사기관이다. 모든 부서가 발달했지만 특히 이화학계열이 탁월하다는 것이 중론. 대검 과학수사과는 마약감식과 컴퓨터 포렌식(컴퓨터 범죄와 관련된 컴퓨터 시스템의 수사) 분야에 탁월하고,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는 총기관련 사건 수사에 뛰어나다는 평가다.

    이들 각 기관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특화’와 ‘공조수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과수 한면수 과장은 “경찰은 초동수사에 필수적인 유전자분석과 증거보존분야에, 검찰은 심리·음성분석처럼 심증을 확보하는 분야에 주력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검 이창세 기획관도 “검찰은 경제사건 등 지능범죄를 주로 다루기 때문에 디지털 증거분석 분야에 치중하려 한다”고 말했다.

    모든 기관이 저마다의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기관간의 교차확인(cross check)은 필수다. 수사 당시의 상황과 수사관의 컨디션에 따라 그 결과에 미세한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 교차확인의 중요성을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뼈저리게 절감했다는 후문이다. 국과수 1차 감정에서 발견하지 못한 해머 틈새의 혈흔을 대검이 해머를 분리해서 찾아냈던 것. 국과수 한면수 과장은 “밀려드는 일더미 속에서 집중도가 한결같을 수 없다”며 “증거를 놓치는 일은 특수한 경우”라고 말했다.

    서울대조사위원회가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사건을 조사할 때도 대검 유전자 감식실에서 한번 더 감정했다. 서울대조사위원회에 국과수 인력이 파견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 기관이 1차 감정과 재검증을 모두 담당할 수 없기 때문에 대검에서 확인을 맡은 경우다. 이렇듯 수사과정에서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같은 실험이 항상 같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이른바 ‘실험의 창조성’ 문제와도 관련이 있는 문제일 것이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모으고 있는 할리우드 TV드라마 ‘CSI(Crime Scene Investigator, 과학수사대)’를 보면, 길 그리섬 반장의 수사팀은 의학과 곤충학 등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수사요원들은 진술보다 증거물에 입각해 사건을 해결한다. 그리섬 반장은 “나는 (수사관보다는) 과학자에 가깝다”고 말한다. 이들이 지문·손톱·혈흔 등으로 뜻밖의 범인을 밝혀내는 놀라운 활약상을 지켜보노라면, 현실에는 왜 그리 많은 미제사건이 존재하는지 의아할 정도다.

    이에 대해 한 수사관은 “과학수사라고 해서 100% 맹신해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예외인 경우도 있지만, 심리분석이나 거짓말탐지기 결과만으로는 법정에서 인정하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감정이 틀릴 1%의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둬야 하므로, 과학수사로 확보한 증거 또한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일 뿐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CSI 효과’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CSI’가 인기를 끈 후 배심원들이 과도하게 법의학 증거를 기대하지만, 범죄자들이 철저하게 범죄 증거를 없애는 현상을 가리킨다. ‘CSI’ 열풍 속에서 한 수사관의 “과학수사는 수사를 돕는 도구일 뿐”이란 이야기를 곱씹을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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