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호

건축가 김석철 교수의 ‘21세기 서울’ 8대 프로젝트 제안

역사, 자연, 대학이 물결치는 ‘강북 르네상스’ 삼분지계 (三分之計)

  • 김석철 명지대 건축대학장, ARCHIBAN 건축도시연구원장

    입력2006-06-07 13: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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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북 동·서 지역의 대학군(群) 활용한 ‘지식산업 뉴시티’ 건설
    • 세종로 중앙보행로 만들어 시청·남대문 광장과 묶은 네트워크化
    • 남산 문화공간과 동대문 패션마켓 연결하는 ‘디자인 스트리트’
    • 다섯 교두보를 배다리로 연결하는 한강의 새로운 인도교
    • 남북·동서 관통 녹지축을 하천 수변축과 접속해 64개 녹지권 조성
    건축가 김석철 교수의 ‘21세기 서울’ 8대 프로젝트 제안

    서울을 동서로 관통하는 한강축, 북한산에서 용산공원을 거쳐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남북축, 여기에 안양천, 불광천, 중랑천, 탄천 등의 수변축을 접속하면 서울의 그린네트워크를 조성할 수 있다.

    여의도 도시설계와 한강마스터플랜을 입안한 이래 30여 년 동안 필자는 몇 차례에 걸쳐 서울에 대한 도시 제안 작업을 계속해왔다. 정도(定都) 600년 되던 1994년에는 ‘서울계획 100년’과 ‘꿈꾸는 한강’을 발표했고, 200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사대문안 구조개혁’과 ‘서울비전플랜 2020’을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 30년 동안의 도시설계 제안을 정리해 ‘여의도에서 새만금으로’란 제목으로 책을 발간했다. 그간의 제안과 연구에 대한 논의는 해외에서는 활발했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듯하다. ‘사대문안 구조개혁’안 가운데 서울 상징가로와 청계천 복원 등이 부분적으로 원용되고 ‘꿈꾸는 한강’과 ‘서울비전플랜’ 아류의 대안과 표절이 있었을 뿐이다.

    5월31일 서울시장선거로 인해 모처럼 서울의 도시구조 문제가 공론의 장에 올랐음은 반가운 일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아마추어적인 제안만 보인다는 것이다. 위대한 시민이 위대한 도시를 만든다. 서울을 사랑하고 서울을 아는 사람들이 서울의 미래를 위해 나서야 한다. 시민이 나서지 않으면 도시의 미래는 없다.

    강북 르네상스를 위한 도시 제안은 필자가 지난 5년 동안 계속해온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의 다음 단계인 ‘서울 세계화 계획’ 중 강북서울에 관한 도시 제안이다. 부디 이 글이 서울에 대한 한 단계 성숙한 논의가 이뤄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건축가 김석철 교수의 ‘21세기 서울’ 8대 프로젝트 제안

    강북의 낙후는 도시 인프라, 경제 인프라, 문화 인프라의 부조화가 그 원인이다. 천혜의 자연과 600년 역사 유적, 곳곳의 대학군을 연결해 ‘창조적 신산업의 목걸이’로 만들어야 한다.

    1. 강북의 잠재력과 가능성

    사실 따지고 보면 강북만한 자연과 600년 역사의 숨결이 남아 있는 대도시는 많지 않다. 또 강북만큼 우수한 대학 인구를 가진 도시도 세계적으로 드물다. 창덕궁, 종묘 등 세계문화유산과 엄청난 스케일의 대자연인 북한산, 도봉산과 한강이 있으며, 최고의 대학이 이곳 강북에 모여 있다(212쪽 그래픽 참조). 그런데도 강북서울은 불과 30년밖에 안 된 신도시 강남서울에 뒤진 도시가 되었다.



    21세기의 산업은 지식사업이고 지식사업의 기반은 도시와 대학이다. 대학군(群) 도시인 강북서울의 잠재력과 가능성은 대학 인구와 역사와 자연에 있다. 이렇게 보면 강북에 대한 도시구조 개혁은 대학과 산업과 문화 인프라를 집합시키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사방이 연결된 강남과 달리, 강북은 한강과 북한산으로 남북이 닫힌 채 동서로 길게 늘어선 선형(線形)도시다. 강북서울을 남북으로 감싸는 한강과 북한산을 도시 한가운데로 끌어와야 한다. 그리고 강북의 동쪽과 서쪽 두 곳에 경제 인프라와 문화 인프라를 갖춘 여의도만한 새로운 도시중심을 만들어 사대문안 서울과 대응시키는 역사(役事)를 시작해야 한다. 이때 강북서울의 동서 두 신도시는 한강의 흐름이 닿고 북한산의 흐름이 이어지며 사대문안 서울과 함께 창조적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1970년대 중반까지 길만 있고 하수도조차 없던 강남이 600년 역사도시 강북을 제치고 서울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람과 기업과 문화 인프라 덕분이었다. 명문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하고 기업과 젊은 사람들, 중산층이 강남으로 이동했다. 강남으로 간 사람들은 강북에 남은 사람보다 부자가 되었다. 입법부와 사법부, 행정부도 강북을 떠났다. 시청과 외국공관, 주요 언론기관과 재벌기업 본사 정도가 남았으나 ‘사대문안 서울’에 남은 것이지 강남북 불균형 문제에서 말하는 강북에 남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 강북에는 천혜의 자연과 600년 역사와 세계 최대의 대학군이 있다. 강북이 낙후된 원인은 도시 인프라와 경제 인프라와 문화 인프라의 부조화에 있다. 세 인프라의 부조화를 극복할 혁명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강북에는 강남에 없는 경의선, 경원선 철도가 있다. 경의선과 경원선을 한강을 중심으로 재조직하면 강북서울 르네상스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본다. 서울 서북지역과 동북지역의 도시흐름을 강북서울의 한가운데로 모으는 것이다.

    강북서울의 르네상스는 보석과 구슬을 더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것을 꿰어 목걸이를 만드는 일이 돼야 한다. 청계천 사업과 뉴타운 계획을 대학과 창조적 신산업의 목걸이로 만드는 일은, 어렵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잘 시작한 일을 잘 이어가는 일이 더 장한 일이다. 고통스러운 개혁은 뒤로 미루고 표 나는 일만 하겠다는 강북 개발이어서는 안 된다.

    건축가 김석철 교수의 ‘21세기 서울’ 8대 프로젝트 제안

    난지도·상암동~여의도·용산의 동북지역과 중랑천~경원선의 서북지역에 있는 대학군을 활용해 세계적인 신산업 도시단지를 만든다. 여기에 사대문안 지역을 더해 강북서울을 삼분하여 재구성하는 것이다.

    2.강북 특별도시구역

    한 도시를 세계적인 도시로 만드는 것은 도시 전체가 아니다. 뉴욕을 세계적인 도시로 만드는 곳은 맨해튼이며, 런던이 세계도시 노릇을 하게 만드는 도시구역은 더시티와 웨스트엔드다.

    서울에는 아직 세계적인 도시구역이 없다. 사대문안 옛 서울지역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으나 아직은 아니다. 그리고 역사도시구역만큼 중요한 곳이 현대화한 세계화 도시구역이다. 강북에서 세계화 도시구역이 될 만한 곳은 사대문안 서울과 용산·여의도 난지도를 잇는 한강도시구역과 중랑천·경원선 사이의 동북서울 정도다(214쪽 그래픽 참조).

    여의도는 1970년대에 신도시 중심으로 개발된 곳이다. 여의도는 섬이지만 수상도시가 아니다. 여의도와 용산 신도시 중심을 연결하면 한강의 도시중심으로 만들 수 있다. 여기에 난지도 앞 둔치를 강변도로와 분리시켜 강상(江上)도시를 만든 후 여의도와 물길로 이으면 난지도·상암동과 여의도·용산이 한강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도시구역이 될 수 있다.

    아직 서울에는 다국적기업의 동아시아 본부가 들어서지 않았다. 여의도·용산과 난지도·상암동은 하늘과 바다로부터 바로 이어지는 서울의 관문지역이므로 세계화 도시구역으로 유력하다. 바로 이곳 가까이에 연세대, 이화여대, 홍익대, 서강대, 명지대, 경기대, 숙명여대가 있다. 여의도·용산, 난지도·상암동의 한강변 도시구역과 이들 대학군이 모이면 세계화 도시구역이 될 수 있다.

    강북서울의 또 다른 특별도시구역이 될 만한 곳은 중랑천과 경원선 사이의 동북서울이다. 청계천과 중랑천을 도시공간화하고 경원선을 복선·전철화해 역세권과 뉴타운을 중랑천과 연계하면 이곳에 신산업 도시단지를 만들 수 있다. 이 지역에는 한양대, 세종대, 건국대, 서울시립대, 경희대, 한국외국어대, 광운대, 서울산업대, 서울여대가 포도송이처럼 얽혀 있고 사대문 안쪽으로 고려대, 가톨릭대, 성신여대, 방송통신대가 연속해 있다. 이만하면 세계 최고의 대학도시군이 모인 지역이다. 이 정도 규모의 대학군이면 실리콘밸리나 루트125보다 더 많은 인력이 모인 신사업의 요람이 될 만하다. 부동산산업의 ‘뉴타운’이 아니라 지식산업의 ‘뉴시티’를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강북 서축과 동축의 두 특별도시구역을 세계 기업과 대학이 어울린 창조적 신산업의 땅으로 만들고, 청계천으로 시작된 사대문안 세계도시구역을 가운데 두고 경의선, 경원선 철도와 한강을 중심으로 새롭게 조직하면 강북서울의 3분지계(三分之計)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건축가 김석철 교수의 ‘21세기 서울’ 8대 프로젝트 제안

    청계천을 역사적 도시하천으로 복원하려면 청계천 개발이 도시 상부구조화 작업으로 이어져 풍수지리적으로 ‘내청룡’의 구실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3. 청계천 사업 이후

    청계천이 복원됐다. 많은 도시사업이 있었으나 이처럼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박수를 보낸 사업은 처음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서울의 역사와 지리를 회복하고 낙후된 강북서울을 일신하겠다는 뜻이 제대로 이뤄진 것 같지는 않다. 사대문안 옛 도시구역에 대한 마스터플랜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고, 사대문밖 청계천 일대에 대한 계획도 확정되지 않은 채 조경 차원의 도시건설만 이뤄진 상태라고 본다.

    보행 중심의 환경친화적 도시는 가능하게 되었는지, 청계천 사업이 사대문안 서울과 강북개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인지, 인구 1000만의 도시 서울의 미래에서 청계천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청계천 사업은 분명 잘한 일이지만, 앞으로 더 많은 것을 해야 한다.

    우선 청계천 사업의 취지가 역사적 도시하천인 청계천을 복원하자는 것이었는지, 청계천의 지리를 복원하자는 것이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역사적 도시하천으로서의 청계천은 광교에서 오간수다리 사이 사대문안 개천을 말하고, 지리적 하천으로서의 청계천은 열네 지천에서 물이 모여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던 10.92km의 청계천을 말한다. 역사적 도시하천으로서의 청계천을 복원하는 일은 사대문안 옛 서울의 원형을 살리는 것이 되어야 할 터인데, 청계천 사업은 역사도시 서울의 원형을 되찾는 일이기보다는 도시 재개발사업에 가깝다.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보면 청계천은 도성 안의 기(氣)를 내부에 진작케 하는 내청룡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 영조 때 내청룡 기능을 살리려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청계천은 조선시대 내내 단순한 도시 하부구조에 불과했던 것이다. 청계천 복원이 큰 뜻을 가지려면 청계천의 도시 상부구조화 작업, 즉 청계천이 내청룡의 기능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대문안 청계천 복원의 목적이 역사도시 서울의 원형을 찾고 새로운 도시질서를 만들어 가는 일이라면, 사대문밖 청계천 복원의 목적은 지리와 수리(水理) 체계를 회복하고 수변(水邊)공간을 창출하여 도시 외곽에 새로운 도시중심을 만드는 일이 돼야 한다(216쪽 그래픽 참조). 여기서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청계천 복원이 ‘하천 살리기’가 아닌 ‘도시 살리기’ 사업이라는 점이다.

    사대문안 서울과 동대문밖 서울에 대한 청사진이 함께 제시되지 않은 청계천 복원사업은 포퓰리즘 도시사업으로 끝날 수 있다.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청계천 사업을 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청계천 복원사업은 1000만 도시 서울의 역사와 지리와 인간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사업이 돼야 한다. 도시건설은 우리 모두 함께 나서 미래의 하드웨어를 구축하는 일이다.

    건축가 김석철 교수의 ‘21세기 서울’ 8대 프로젝트 제안

    경복궁 앞 광화문과 월대를 복원한 뒤 광장을 조성하고, 세종로의 중앙분리대를 보행가로로 만든다. 이를 시청·남대문광장과 하나로 묶으면 ‘도시광장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다.

    4. 서울 상징가로

    서울은 한반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서울에는 한국문명의 역사와 정체성을 대표하는 상징가로가 없다.

    서울의 중심은 사대문안이며, 사대문안의 중심은 경복궁의 문인 광화문과 서울도성의 성문인 남대문을 잇는 세종로와 태평로 일대이며, 서울의 관문은 서울역이다.

    서울의 1번 가로인 광화문·남대문 구간은 보행 중심의 도시구역이 되어야 한다. 자동차들이 점거한 이곳에서 자동차를 배제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며 도시의 흐름을 바꾸는 일은 예기치 못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세종로 일대의 이면도로를 이용해 이중격자망(格子網)을 구축하면 교통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원래 자리에서 14.5m 뒤로 밀려나고 경복궁의 남북축에서 3.5。 비껴선 광화문과 월대를 제자리에 복원한 뒤, 경복궁 남측을 개방해 광화문광장을 만들고 동측 2개 차선을 미국대사관과 문화관광부 건물 뒤로 우회시키자. 여기에 있는 중앙분리대를 보행가로로 만들어 광화문에서 세종문화회관까지 보행공간이 이어지게 하고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과 연결하면, 서울 어디서나 지하철을 통해 광화문광장에 닿을 수 있다.

    시청광장은 일부 시민의 이벤트 광장이 아니라 시청 일대를 하나로 묶은 도시광장 네트워크로 확대되어야 한다. 시청광장을 지하와 연계하고 덕수궁과 서소문일대, 원구단과 소공동, 세종로의 흐름과 하나가 되게 해야 비로소 광화문광장과 시청광장은 런던의 트라팔가 스퀘어 못지않은 도시광장이 될 수 있다.

    서울의 관문인 남대문과 서울역은 보행로로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자동차의 행렬에 의해 시민과 격리되어 있다. 남대문과 서울역에 광화문광장과 시청광장 못지않은 도시 광장을 만들고 이를 보행공간으로 연결해야 한다(218쪽 그래픽 참조).

    그렇다고 단순히 광화문·시청광장과 남대문·서울역광장을 만드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광화문에서 시작되는 흐름이 세종로와 태평로를 지나 시청광장과 덕수궁앞 거리를 지나 남대문광장에 닿고 다시 서울역으로 이어져야 비로소 서울의 상징가로가 완성되는 것이다. 서울역과 사대문안 역사도시구역을 잇는 상징가로는 많은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창조적 발상과 디자인으로 청계천 복원보다 더 강북서울의 면모를 일신하는 사업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파리 샹젤리제나 베이징 천안문광장에 견줄 만한 서울의 상징가로와 도시광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5. 동대문·남산 문화 인프라

    건축가 김석철 교수의 ‘21세기 서울’ 8대 프로젝트 제안

    장충체육관을 다목적홀로 전환하는 등 남산 주변의 문화공간을 연결하고 세계적 디자이너의 쇼륨이 이어지는 ‘디자인 스트리트’를 조성해 동대문 패션마켓과 연결하면 강북의 문화 인프라를 새롭게 조직할 수 있다.

    동대문시장의 패션마켓은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열기 가득한 시장이다. 심야의 동대문시장은 전국 각지는 물론 중국, 일본, 러시아에서 온 사람들로 매일 성대한 축제의 도시가 된다. 동대문의 열기는 이탈리아의 패션도시 밀라노를 압도한다. 패션산업은 꿈을 주는 산업이다.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패션은 성공한다. 모방은 끊임없는 모방을 낳을 뿐이다. 한국인의 DNA에는 이탈리아인 못지않은 미적 감각이 있다.

    이러한 동대문시장의 에너지를 디자인의 창조적 에너지로 바꾸자. 밀라노가 세계를 지배하는 디자인 시티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밀라노도 1960년대까지는 파리의 모방도시에 불과했다. 그러나 디자인저널, 디자인스쿨이 젊은이들의 잠자던 창조력을 일깨웠다. 그들은 세계에 도전했고 세계를 제패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페라가모 등이 바로 그때의 젊은이들이다. 모방도시의 열기가 젊은 창조적 에너지와 만나 세계 최고의 디자인시티를 만든 것이다. 창조적 에너지를 지닌 젊은이들이 전면에 나서 동대문 패션마켓을 이끌어가야 할 때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먼저 젊은이들이 모일 만한 문화 인프라가 있어야 한다. 동대문과 남산 일대에는 문화공간이 많이 있다. 장충단공원, 장충체육관, 자유센터, 국립극장, 국립박물관, 리움 등이 있으나 서로 아무 상관없이 서 있다. 한때 국가행사가 열리는 무대였던 장충체육관을 로열 앨버트홀 같은 다목적 홀로 전환한 뒤 국립극장과 연결하면 메가 스케일의 문화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현대미술관을 자유센터로 옮겨 국립박물관과 연결하면 한국 미술의 메카가 될 것이다(219쪽 그래픽 참조).

    옛 서울 성곽 자리에 있는 두 동대문운동장은 얼떨결에 남은 보물과 같은 땅이다. 두 동대문운동장은 사대문안으로 들어오는 외곽의 흐름과 주요 간선도로가 닿는 지점이다. 사대문안 서울을 대중교통과 보행 위주 도시로 전환할 때 이 두 운동장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청계천 복원의 뜻을 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남산 문화공간군(群)과 동대문 패션마켓이 단일한 도시구역이 되기에는 거리가 다소 멀다. 대신 이 두 곳을 연결해야 한다. 그러자면 세계적인 디자인스쿨과 저널, 디자인공방과 대표적 디자이너들의 쇼룸을 유치해 남산 문화공간군과 동대문 패션마켓을 하나의 도시구역으로 잇는 디자인 스트리트(design street)를 만들어야 한다. 동대문시장과 동대문운동장, 국립극장과 국립박물관이 특별 대중교통으로 바로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동대문 시장단지와 남산 문화단지를 조직화하고 두 도시단지를 어번 인프라(urban infra)로 이으면 강북 문화 인프라의 새로운 세계를 열 수 있다. 문화공간과 산업공간이 도시공간과 하나가 되는 것이 문화 인프라로 가는 길이다. 동대문과 남산 사이에 길이 있다.

    건축가 김석철 교수의 ‘21세기 서울’ 8대 프로젝트 제안

    선조들은 한강에 배를 띄워 풍광을 즐겼다. 서울의 장대한 스케일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한강 위에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다리가 없다는 것은 서울이 가진 가장 큰 자산을 방치하는 것과 같다.

    6. 한강의 걷는 다리

    한강은 세계 어느 도시의 어느 강과도 다르다. 우선 한강은 그 폭이 넓다. 센 강과 템스 강의 다리가 100m 전후인 데 비해 한강의 다리는 1000m가 넘는다. 또한 어느 강보다도 수심의 차이가 크다. 한강의 다리는 높은 교각과 넓은 강폭으로 말미암아 도시와 차단돼 있다. 높은 교각, 넓은 강폭, 강변의 고속화도로로 인해 한강은 도시의 심장이기보다는 넘어야 할 장애가 되었다. 한강엔 사람이 걷는 인도교가 있으나 이제 그것도 자동차 도로가 되었다.

    과거에는 한강에 다리가 없었다. 한강과 같이 하폭(河幅)이 넓은 강에는 다리를 설치하지 않고 나루터를 두고 나룻배로 강을 건넜다. 배를 이어서 만든 배다리가 있을 뿐이었다. 배다리는 고려 때 임진강에 가설되었고, 조선시대 연산군 때 800여 척의 배를 모아 부교를 만들었으며, 정조 때는 배다리를 전담하는 관청인 주교사(舟橋司)를 설치했다. 옛 한강에는 광나루부터 임진각 나루터까지 열여덟 군데 나루터가 있었다.

    한강은 그 길이가 장장 500㎞에 이르는, 뱀같이 흐르는 사행천이어서 급류가 없고 특정시기에 집중돼 수심이 변한다. 이러한 한강에 걷는 다리를 만들려면 대략 다음과 같은 구조가 이상적일 것이다. 우선 강변에 나루터 같은 계류장을 만들고, 한강의 둔치를 강안토지로 이용하여 여기서부터 걸어서 강 한가운데의 다섯 군데 수상 교두보에 닿게 해야 한다. 이 다섯 교두보 사이를 배다리와 같이 이으면 인간적인 스케일의 걷는 다리를 만들 수 있다. 이는 조상들이 고안한 도강방식을 현대적으로 종합한 것으로, 정조가 만든 옛 배다리를 현대화해 새로운 한강의 인도교로 만들어보자는 것이다(220~221쪽 그래픽 참조).

    다리 위에 누각이 있는, 다리와 집이 하나인 도시건축 형식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다. 다리와 누각과 정자의 역할을 함께 하는 다리로는 송광사 삼청교, 수원성 화홍문 등이 있다. 백제 무왕 때 조성된 익산 미륵사지의 다리도 이와 같은 형식이다. 이들 다리는 건너는 다리가 아니고 머무는 다리다. 한강다리에 서면 서울의 장려한 스케일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서울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한강 위에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다리가 없다는 것은 서울시민이 가진 가장 큰 자산을 방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배를 띄워 아름다운 다리를 만든 우리 선조의 상상력으로 걷는 한강 다리를 만들 수 있다. 한강의 인도교를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면 한강은 서울의 심장 한가운데를 흘러 세계로 나아가는 서울의 1번 가로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심장부를 굽이도는 702개의 하천과 그 유역면적은 전 국토의 27%에 달한다. 한강의 다리를 인간의 다리가 되게 하는 일은 한반도의 물줄기를 다시 탄생케 하는 일이고, 강북서울과 강남서울을 하나의 도시로 만드는 일이다.

    건축가 김석철 교수의 ‘21세기 서울’ 8대 프로젝트 제안

    고려와 조선 1100년간 개성과 한강은 한반도의 도읍이었다. 세계 최대의 메갈로폴리스가 될 중국 동부해안과 마주 보는 ‘강북서울-개성’ 연결축은 통일한국의 수도가 될 것이다.

    7. 서울 그린네트워크

    베이징과 서울은 유학(儒學)의 동서원리와 풍수지리 이론으로 만들어진 동양의 대표적 도시다. 다른 점은, 베이징이 대칭의 격자형 도시인 데 비해 서울은 비대칭 비정형의 도시라는 것이다. 서울은 자연의 흐름에 도시구조를 일치시킨 형태이고 성곽이나 성문 모두 비정형 유기적 질서를 따른 도시다. 서울에서는 베이징과 같은 격자형 가로망 대신 강과 개천의 흐름을 따른 유기적 가로망이 우선시되었다.

    옛 서울의 경우 도성의 에너지를 가두고 키우는 일은 안산인 남산과 좌청룡·우백호로 일컬어지는 낙산과 인왕산이 담당했다. 도성의 에너지를 도성 안에 가득하게 하는 일은 물의 청룡인 청계천이 담당했다. 이러한 풍수형국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질서가 하나 되게 만드는 유기적인 도시였다. 그러나 500년 계속되어온 서울이 20세기 100년 동안 자연의 기를 모으고 가두는 친(親)환경도시에서 자연을 등진 도시로 바뀌었다. 유학의 도시이고 자연의 도시이던 서울은, 경제규모와 인구에서는 세계적인 도시가 되었지만 반(反)환경적이고 비(非)인간적인 도시가 되었다.

    혁신적인 변화가 없으면 서울은 역사와 자연과 인간을 잃은 도시가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순간의 경제성장도 무너질 수 있다. 서울의 지속가능한 경제 발전을 위해서도 서울의 자연을 되살리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그린네트워크와 녹지권 창출이 절실하다. 사람의 흐름이 자연의 흐름에 닿게 하는 구체적인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북한산, 인왕산, 남산, 남산과 청계천사이의 소(小) 풍수형국에 머물렀던 옛 서울이 이제는 북한산, 관악산과 한강으로 확대된 초대형 도시 서울의 대(大) 풍수형국으로 바뀌었다. 서울의 대 풍수형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그린네트워크와 녹지권을 구축해야 한다. 서울을 동서로 관통하는 한강축, 북한산에서 용산공원과 한강의 그린브리지를 통해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남북축, 이 두 가로세로 축으로 서울을 네 녹지권으로 나눠보자. 이를 다시 안양천, 불광천, 중랑천, 탄천의 수변축으로 분화하면 네 녹지권은 열여섯 녹지권이 된다. 이때 각 수변축은 녹지축과 만나게 된다. 다시 이 도시권 하나하나를 녹지축과 수변축이 만나는 녹지·수변축의 교차점에서 4분하면 서울을 64개의 녹지권으로 재조직할 수 있다. 그린벨트를 남북 녹지축과 동서 수변축으로 4분하고 네 지천의 수변축을 더하면 서울의 모든 지역이 북한산과 관악산의 녹지축이나 한강 수변축에 닿게 되는 것이다(210~211쪽 그래픽 참조).

    64개의 녹지권이 이루는 서울의 그린네트워크를 주역(周易)의 도시원리와 풍수지리 이론으로 재구축하면 600년 전 정도전이 구상한 윤리의 도시, 자연의 도시 서울을 인간과 자연과 문명이 공존하는 현대의 서울로 살릴 수 있을 것이다.

    8. 서울·개성 통일수도

    필자가 보기에 600년 역사도시 서울을 떠나 수도를 옮기겠다고 한 일은 잘못이다. 수도이전 논의는 분단체제의 해체와 황해공동체의 등장 같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대변혁을 전제로 해야 할 역사적 과제이지 남한만의 균형발전 차원에서 생각할 일이 아니다.

    한반도의 수도는 서울·개성일 수밖에 없다. 한반도가 만주 일대를 포함하고 있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를 신라가 통일했다 하나, 영토로만 보면 결과적으로 백제를 병합한 정도고 수도는 변방인 경주에 머물러 있었다. 10세기 초 고구려의 일부 영토를 되찾아 한반도를 재통일한 고려의 수도 개성이 한반도 최초의 수도다. 이후 고려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고 불교문명의 금자탑인 팔만대장경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유교를 새로운 지도이념으로 내세운 신진 사대부들과 무인(武人)세력이 종교혁명과 정치혁명을 일으켜 고려를 멸하고 유교국가 조선을 건국한 후 개성에서 불과 60㎞ 떨어진 곳에 만든 새 수도가 바로 서울이다. 서울과 개성은 1100년 동안 한반도의 수도였다. 1100년 된 수도를 옮긴 일은 일찍이 인류 역사에 없었다.

    독일의 수도가 브란덴부르크에서 베를린으로 옮겨간 후, 베를린이 동서독으로 분단된 뒤에도 두 도시는 포츠담을 통해 도시회랑을 유지했고 이 회랑을 통해 통일독일의 수도 베를린이 확장·발전하고 있다. 브란덴부르크와 베를린은 하나인데 개성과 서울은 슬프게도 남과 북의 다른 도시가 되었다.

    건축가 김석철 교수의 ‘21세기 서울’ 8대 프로젝트 제안
    金錫澈
    ● 1943년 함경남도 안변 출생
    ● 서울대 건축과 졸업, 김중업·김수근 사사
    ● 現 명지대 건축대학장, 베네치아대·컬럼비아대·베이징칭화대 객좌교수, ARCHIBAN 건축도시연구원장
    ● 주요 작품 : ‘여의도 마스터플랜’ ‘서울대 마스터플랜’ 예술의 전당 베이징 경제개발특구 주거단지 등
    ● 수상 : 한국건축문화 대상, 한국건축전 대상, 보관문화훈장, ANTRON DESIGN AWARD 대상, 베네치아 건축비엔날레 특별상 등


    한반도의 중심이 1100년 동안 서울과 개성 사이에 있었던 역사적, 지리적, 인문적 필연으로 보아 개성·서울은 한반도의 통일수도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큰 땅이다. 개성·서울은 세계 최대의 메갈로폴리스가 될 중국 동부해안과 마주한, 남북한 모든 지역의 중심이 되는 한반도 희망의 땅이다. 1100년 동안 한반도의 수도였던 서울·개성을 하나의 도시권역으로 만들 때 남북한이 하나가 되는 수도가 탄생한다(223쪽 그래픽 참조). 개성·서울이라는 통일수도를 만들 때의 서울은 강북서울을 말한다. 분단극복과 한반도의 세계화를 전제하지 않은 서울 발전은 미래에 더 큰 국가 불균형을 초래할 수도 있다.

    강북 르네상스 플랜이 단순히 강남북의 균형발전만이 아니라 한반도의 통합수도를 위한 기반을 다지는 일이며 남북한 균형발전의 초석이기도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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