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호

북한 다큐멘터리 ‘동물의 번식’으로 본 北 주민의 性의식

“너무 비싸게 굴지 말고 어서 벌거벗으라”

  • 이승재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sjda@donga.com

    입력2006-06-07 17: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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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다큐멘터리 ‘동물의 번식’으로 본  北 주민의 性의식
    때는 2001년. 국내에 ‘동물의 번식’이라는 제목의 북한 다큐멘터리 한 편이 수입됐습니다. 북한 조선과학영화제작소에서 제작한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의 나래필름을 통해 5만달러에 수입되어 국내 개봉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무려 6년이라는 긴 시간 북한의 산야와 동물원에서 찍은 각종 동물의 종족번식 장면을 담은 이 4시간50분짜리 다큐멘터리는 ‘동물의 쌍붙기’라는 재미난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TV를 통해 일부 내용이 소개된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렇게 야한 영화가 북한에서?

    내용으로 보건대, 이 영화는 당초 가축 및 동물을 사육하는 북한 주민의 생산증대를 위한 교재로 사용됐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북한영화의 역사적 이해’를 최근 펴낸 부산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민병욱 교수는 “영화관이 아니라 협동농장과 같은 생산현장에서 이동영사 시설을 이용해 제한적으로 상영됐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농촌 주민이나 농장의 사육사들을 위한 교육 재료로 제작된 것 같다”고 추정했습니다. 즉, 동물별 번식 시기나 성교 방법, 성교 성향 등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주민들이 해당 동물을 사육하고 새끼를 얻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죠.

    이 영화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입니다. 동물들의 번식은 물론, 오럴섹스와 가학-피학(SM)행위, 자위행위, 그리고 성적 흥분을 이겨내지 못해 벌이는 목숨을 건 위험한 성행위까지 적나라하게 담고 있습니다. 마치 ‘종족보존을 위한 생식욕구’의 차원이 아니라, ‘동물들도 색(色)을 밝히고 즐긴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합니다. 게다가 북한 인민 성우가 들려주는 내레이션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동물의 번식 장면을 걸쭉한 입담으로 ‘실황중계’하고 있어 보는 이의 배꼽을 잡게 만듭니다. 한마디로 ‘동물을 소재로 한 포르노그래피’였던 겁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결국 국내에서 소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002년 등급심의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음으로써 ‘제한상영가’ 결정을 받은 첫 번째 영화로 기록됐습니다. ‘제한상영가’란 ‘제한상영이 가능한 영화관에서만 상영할 수 있다’는 결정이니까, 제한상영관이 전무하던 당시 현실을 감안하면 사실상 ‘상영불가’ 조치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동물들의 성기와 삽입 장면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까닭에 이 영화는 비디오 등급 분류에서도 다섯 차례나 ‘등급 보류’ 판정을 받아 사실상 출시가 금지됐죠.

    북한 다큐멘터리 ‘동물의 번식’으로 본  北 주민의 性의식
    종국에는 곤충이나 새가 등장하는 부분을 걷어내고 들짐승의 성행위 중심으로 재편집해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지만, 다시 긴 상영시간 때문에 극장 개봉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68분 분량으로 지난해 8월 극장에서 ‘잠깐’ 개봉했던 이 영화는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조용히’ 비디오테이프로 출시됐죠.

    ‘동물의 번식’은 지난달 세상을 떠난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 머무는 동안 제작한 영화 ‘불가사리’가 2000년 7월 국내 개봉한 이래 두 번째로 국내 개봉한 북한 영화로 기록됐습니다. ‘불가사리’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도 국내 관객의 차가운 외면을 받고 소리 소문 없이 잊혀졌지만요.

    음란비디오, 北 사회문제로 대두

    오늘 이 북한 다큐멘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우리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과감한 표현과 노골적인 해설이 영화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북한에서는 야한 장면을 ‘자본주의의 퇴폐성’으로 여기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공식’ 매체에서는 절대로 노출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북한 다큐멘터리 ‘동물의 번식’으로 본  北 주민의 性의식

    다양한 동물의 교미 장면을 촬영한 ‘동물의 번식’은 북한에서 흔히 사용하는 속담과 비유법을 총동원해 동물들의 애정행각을 익살맞게 묘사한다.

    1986년 북한영화 ‘봄날의 눈석이’에서 처음으로 키스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 표현은 프렌치 키스처럼 수위가 높은 게 아니라 그냥 가벼운 입맞춤에 불과했습니다. 키스 장면이 일반화한 것은 1991년 제6기 19차 전원회의에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김정일이 추대된 이후부터입니다. 특히 경희극 영화에서 키스 장면이 종종 등장했는데, 그 표현수위는 “그는 아연해 있는 보옥을 다짜고짜 끌어안았다. 보옥은 부끄러웠다. 부끄러우면서도 온몸과 얼굴로 그 품속에 깊이 파고들었다”(‘거대한 날개’ 중)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도 음란 비디오가 점차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에선 음란 비디오를 둘러싼 성폭행이 주로 당 간부의 자녀와 러시아 벌목공(이른바 ‘외화벌이 일꾼들’)으로 러시아를 다녀온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실제로 1992년 평양의 한 식당에서는 몰래 들여온 포르노 비디오테이프를 당 간부의 자녀들이 집단으로 관람한 뒤 여종업원을 겁탈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 영화는 비록 동물들의 번식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섹스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시각과 태도를 힐끗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화들짝 놀랄 정도로 직설적이고, 또 어떤 때는 유머감각과 풍자정신이 넘쳐나며, 또 어떤 때는 섹스를 대하는 더없이 넉넉한 시선을 보여줍니다.

    수컷 유혹하는 암컷의 ‘뒷웃음’

    ‘토끼’ 편을 보겠습니다. ‘쌍붙기’의 특징과 최적기 등의 기초정보를 인민성우의 내레이션을 통해 세세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괄호 속 단어는 제가 우리말로 알기 쉽게 풀이해놓은 것입니다.

    토끼는 암수놈이 같이 있기만 하면 쌍붙는 재미에 하루 종일 떨어질 줄 모릅니다. 수토끼들은 넉 달 이상 자란 암컷이면 애송이건 새끼 밴 것이건 가리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수놈들의 기분이 절정에 오를 때 떨기(피스톤 운동) 속도는 참으로 볼 만합니다. 떨기 속도에서는 개가 제일이라고 하지만 토끼에는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재봉기(재봉틀) 바늘처럼 고속으로 떨다가 명중하면 눈을 딱 감고 뒤로 발딱 자빠집니다. 이렇게 되어야 한 회전이 완전히 끝난 것입니다.

    그러나 수토끼는 이러한 재미를 맛보기 시작하면 시간당 10번, 최고 15번까지 문제없이 제낄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재미가 얼마나 큰지, 몇 회전을 거치는 동안에 그 잡은 것(수컷의 성기)이 이렇게 맥없이 축 처져도 암컷을 놓아주지 않고 끝내 힘을 모아 흥분에 극치를 맛보고야 맙니다. 이런 특성으로 해서 토끼는 생산성이 높은 가축으로 그 가치가 크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대단합니다. 토끼의 번식 특징을 설명하는 비유의 묘미가 보통이 아닙니다. ‘말’ 편에서는 그 번식 장면만큼이나 호쾌하고 절묘한 비유법이 꽃을 피웁니다.

    오랜 옛날부터 항간에는 물동이를 이고 가던 여인들이 쌍붙는 말을 보고 물동이를 잡아당겨 밑독이 빠졌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연 키가 크고 정력이 좋은 말들이 홍두깨 같이 큰 것을 휘두르며 쌍붙기하는 모습은 힘있고 시원하면서도 자극적인 것이 특징인 것 같습니다. 말은 수컷이 막상 올라타려고 하면 암컷이 뒷발로 된(강한) 타격을 줍니다. 이것은 숫놈을 흥분시키기 위한 동물들의 본능적인 동작이기도 합니다. 첫 타격에서 수컷의 뽑아든 것(발기된 성기)이 사그러지지 않으면 암컷은 더 이상 요동치지 않고 방긋방긋 웃는 것(암컷의 성기)을 돌려댑니다. 수컷을 유혹하는 암컷의 묘한 뒷웃음. 흥분된 수컷은 삿갓처럼 퍼진 것을 뽑아들고 힘있게 찌르다가도 문지르며 용을 씁니다.

    기가 막힌 비유입니다. 만개(滿開)한 암말의 성기를 ‘방긋방긋 웃는 것’이라고 표현했다가 결국엔 ‘뒷웃음’ 단 한 단어로 촌철살인을 하는군요.

    “너도 안타깝게 굴지 않았느냐”

    그래도 이 영화 중 최고 수준의 비유를 보여주는 내레이션은 ‘여우’ 편일 겁니다.

    북한 다큐멘터리 ‘동물의 번식’으로 본  北 주민의 性의식
    발정기에 이른 수놈들은 암놈을 차지하기 위해 안타깝게 모대깁니다(‘안타깝고 괴롭다’는 뜻의 북한말). 암놈은 싫은 듯 발광하지만 실지 더 안달이 난 것은 암놈입니다. 그래서 암놈이 어서 올라타라고 엉치(엉덩이의 끝)를 갖다댈 때면 오히려 깜찍한 수놈은 “너도 안타깝게 굴지 않았느냐” 하는 듯이 살짝 올라타기만 하고 성급하게 몰지 않습니다. 어쩌면 신통히도 개와 (성기의) 생김새도 비슷하고 (성기의) 놀음도 같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떨기 속도만은 개도 따라가지 못할 거 같습니다. 영하 28도를 오르내리는 추위 속에서도 서로 당기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한편의 치정극을 보듯 여우에 빗대어 사람들의 사랑 놀음을 제대로 묘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암컷이 수컷을 안타깝게 만들자 수컷 또한 살짝 내숭을 떨면서 암컷을 목마르게 한다는 대목은 특히나 재기가 넘치는 의인화(擬人化)입니다. ‘함스터(햄스터)’ 편에서 이 영화는 “모든 암컷들이란 본래 이렇게 앙큼한 것들이어서 암컷이란 말이 생겨난 것 같기도 합니다”라는 기상천외한 단어풀이까지 동원합니다.

    공들인 관찰과 톡톡 튀는 묘사는 ‘앵무새’ 편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앵무새’ 편에선 이 북한 다큐멘터리가 얼마나 생생하고 치밀하면서도 감성적인 묘사를 하고 있는지 듣는 이의 무릎을 탁 치게 만듭니다.

    아마 번식기에 앵무들처럼 정이 찰찰 넘치게 입맞춤하면서 서로 깃을 쓰다듬어 주는 새들은 더는 없을 것입니다. 숨 막힐 듯한 애무에 못 이겨 암컷이 방긋 웃는 것(‘생식기’의 비유)을 펼치기 시작하면 일은 다 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흔히 새들은 올라타고 쌍을 얻지만 이 새는 타지 않고도 아주 재치 있게 쌍붙기를 합니다. 수놈은 곡예사처럼 한쪽 발에 몸을 싣고 꼬리 깃만 살짝 돌리며 (성기를) 꽂으려 합니다. 참으로 그 자태 아름다운 것처럼 교미 동작도 재치 있게 합니다. 붉은 뺨 노란 앵무들도 홍문(항문) 속에 퇴화된 생식기가 숨어 있어 펌프질을 할 줄 모릅니다. 그 대신 홍문 밖으로 약간 내민 발그레한 것을 마주 대고 극성스럽게 비벼대는데 아마도 동물적 흥분을 만족시키는 데는 다를 바 없는 모양입니다.

    “암컷은 어떻게든 성사시켜 보려고…”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틀어 최고의 유머감각을 보여주는 건 바로 ‘약대(낙타)’ 편입니다. 북한에서 내려오는 각종 속담과 비유법, 의인화를 총 동원해 묘사의 맛을 살릴 뿐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번식을 해보려 안간힘을 쓰는 낙타의 애달픈 모습을 조롱조로 바라보면서 배꼽 잡을 농담 보따리를 풀어냅니다.

    잔등에 혹을 지고 다니는 곱사등의 약대(낙타)는 과연 어떤 방법으로 쌍을 얹을 수 있겠습니까(쌍을 얹다=교미하다). 1월부터 암내가 오기 시작하면 암컷은 입에 거품을 물고 수놈은 느닷없이 하늘을 쳐다보며 웃습니다. 하지만 멍석을 펴면 하던 지랄도 안 부린다고, 정작 쌍을 모아주면 암컷은 수놈을 매우 두려워하며 피해 다닙니다.

    ‘병신 바른 데 없다’(‘병든 몸은 마음도 바르지 못하다’는 뜻의 북한 속담)고 정말 못생긴 곱사등이 수놈은 발정이 오면 암컷의 그 부위(생식기)를 사정없이 물어주는 매우 괴상한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암컷은 쫓겨 다니다가도 막다른 골목에 서면 수컷이 물기 전에 얼른 주저앉고 맙니다.

    곱사등이 약대는 무게가 한 톤 이상 나가지만 쟁기(‘수컷 생식기’의 비유)만은 큰 지렁이 도막(토막)친 것만이나 합니다. 그나마 삼갓끈 속에 숨어 있다가 요긴한 순간에 꼬부랑거리며 나옵니다. 이것은 사막 지대에서 (성기에) 모래가 들어가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쌍붙기 자세도 불편한 감은 없지 않으나 역시 약대 생리적 구조에 맞는 자세입니다. 그 큰 덩치에 비해 쟁기가 엄청나게 작아서 그런지 암컷은 너무도 안타까워 소리치며 몸부림하고 어떻게 하나 성사시켜 보려고 모진 애를 씁니다.

    이렇게 약대들은 불편한 몸에 불편한 자세로 용을 쓰며 어떻게 하면 (성교를) 성사시키느라고 물팍(‘무릎’의 속된 말인 ‘무르팍’을 줄인 말)이 다 벗겨지는 줄도 모릅니다. 약대는 확실히 생식기도 특이한 생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늘고 꼬불꼬불한 것일수록 용수철처럼 탄력이 있어야 하는데 약대의 것은 그렇지 못해서 계속 헛방아만 찢(찧)습니다.

    사실 낙타의 세계에서 수컷 성기의 크고 작음을 암컷들이 따지겠습니까마는, 이 영화의 내레이션은 인간 세계의 현상을 고스란히 가져와 낙타의 그것에 절묘하게 포개어놓고 있습니다. 마치 인간이 그러하듯 낙타 또한 수컷의 성기가 작으면 암컷이 안타까워할 것이라면서 말입니다. 오직 ‘크기’에만 집착하는 인간의 부질없는 모습이라니…. 낙타와 달리 커다란 성기를 가진 당나귀에 대한 묘사는 이렇게 다릅니다.

    북한 다큐멘터리 ‘동물의 번식’으로 본  北 주민의 性의식

    ‘동물의 번식’은 동물들의 성기와 삽입 장면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까닭에 비디오 등급 분류에서도 다섯 차례나 ‘등급 보류’ 판정을 받았다.

    몸집은 비록 작아도 그것(성기)만은 수말의 것보다 훨씬 큰 당나귀는 보란 듯이 (성기를) 빼들었습니다. 몸집은 작아도 그것만은 크니 어떤가 보라는 듯합니다. 암컷의 그것이 무어길래(무엇이기에) 저렇게 (수컷이) 아득바득하는지, 그러다가 당나귀의 자랑스러운 재산인 그것(성기)을 꺾지 않겠는지 걱정스럽습니다.

    “암범은 일단 시작하면 매일 열 번 스무 번…”

    이 북한 다큐멘터리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품을 수 있는 동물의 성(性)에 대한 일차원적인 상상을 고스란히 확대 재생산합니다. 낙타처럼 유순하고 겁 많은 동물은 당연히 성기도 작고 성교도 힘이 없을 것이며, 호랑이처럼 용맹한 동물은 당연히 성생활과 성 능력도 활기찰 것이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호랑이’ 편을 볼까요.

    역시 범은 쌍붙기 기상도 맹호다운 데가 있습니다. 아마 범처럼 쌍붙기가 강렬하고 열정적인 짐승은 보기 드물 것입니다. 요란한 고함소리, 입으로 물면서 힘 있는 포옹. 그야말로 범은 범입니다. 예로부터 수범의 잡은 것(성기)에는 사나운 가시가 있어 암범은 한번 혼이 나면 두 번 다시 쌍붙기를 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그것은 허황한 소리입니다. 수범의 잡은 것은 작지만, 뽀족뽀족한 가시로 콕콕 찌르면서 긁어주는 그 순간의 짜릿한 자극은 그야말로 독특한 것이어서 암범은 일단 시작하면 매일 열 번 스무 번 성적 극치를 맛보고야 맙니다.

    또한 돼지가 구박받는 건 남과 북이 다를 바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돼지를 조롱과 멸시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돼지가 삽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순간을 선입관에 가득 찬 해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왼쪽으로 틀면서 나오는 것은 돼지의 특이한 쟁기(‘성기’의 비유)입니다. 참 별난 형태도 다 있습니다. 언제 봐도 미련하고 우둔한 돼지는 허둥대며 헛물만 켜면서 쓸데없이 낭비만 하고 있습니다. 역시 돼지이다 보니 헛수고가 많습니다. 그대로 놔두면 언제가야 성사되겠는지 매우 의문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능률적인 쌍붙기를 할 수 있습니다. 역시 돼지는 돼지입니다. 과녁이 완전히 헷갈린 줄도 모르고 허우적거립니다.

    ‘벙어리도 제 속내가 따로 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북한 속담의 묘미가 살아 숨쉽니다. 어떤 속담은 우리가 쓰는 속담과 똑같거나 흡사하고, 어떤 속담은 금시초문이지만 능히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으며, 또 어떤 속담은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속뜻을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절한 속담이 하나같이 절묘한 순간에 등장해 내레이션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색에 미치면 삿갓도 젖은 줄 모른다’고, 당나귀 집안 망신 이 수탕나귀가 시키는 것 같습니다.(‘당나귀’ 편)

    ‘두부 장사, 당나귀의 쌍붙는 놀음을 보면서 두부를 주물러 비지를 만들었다’는 말도 우연한 것 같지 않습니다.(‘당나귀’ 편)

    암컷은 더는 참을 수 없이 근질거려서 보채지만 수놈은 그 꼴이 하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하늘만 쳐다보며 웃습니다. ‘얌전한 강아지 부뚜막에 먼저 올라앉는다’더니 글쎄 암컷이 수컷을 올라타면서 어째 보려고 합니다. 참 망측하다고 해야 할지 색에 미쳤다고 해야 할지…. 아무리 급해도 이렇게야 어떻게 통(通)하겠습니까(통하다=성교하다).(‘물소’ 편)

    ‘키 크고 싱겁지 않은 놈 없다’고, 키다리 신사 기린은 아무리 보아야 그 거동과 생김새가 싱거운 놈입니다. 하지만 ‘벙어리도 제 속내가 따로 있다’고, 소리 없는 기린은 긴 목을 비비면서 서로의 정을 주고받습니다. 수놈들은 하루 종일 산보만 하다가도 각도만 맞으면 엉덩이를 약간 추면서 선 자세 그대로 단번에 득점(삽입)합니다. 아무리 소리 없는 짐승이지만, 이런 순간만은 흐느끼는 소리를 냅니다.(‘기린’ 편)

    그 가시가 말썽입니다. 약이 오른 수컷은 모진 아픔도 참으며 짜릿한 그 순간을 위해 악을 쓰며 기승을 부립니다. ‘모달구판에 주먹질’이라더니, 저렇게 예리한 가시 숲에 무턱대고 찌르기만 하다가는 수컷의 그것이 무사하겠는지 의문됩니다.(‘가시도치’ 편)

    ‘소문난 잔치 먹을 거 없다’고 고양이 쌍붙는 놀음은 정말 싱겁기 짝이 없습니다.(‘고양이’ 편)

    “같은 값이면 벗고 주랬다”

    북한 다큐멘터리 ‘동물의 번식’으로 본  北 주민의 性의식

    적나라한 영상과 걸쭉한 내레이션은 북한 주민들에게 동물 사육에 유용한 정보 제공 이상의 구실을 했을 듯하다.

    속담뿐만이 아닙니다. 북한 남녀 인민성우의 ‘찐득한’ 목소리로 펼쳐지는 내레이션을 듣다 보면, 무슨 멜로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연애소설 뺨치는 끈끈하고 애틋한 묘사가 기가 막힌 효과음악과 함께 흘러나오죠. 진한 애정 묘사를 할 수 없는 북한의 매체 현실을 감안할 때, 이는 분명 동물에 대한 묘사를 ‘빙자’해 평소 누적돼온 표현의 욕구불만을 해소하려고 작정한 듯 보이기까지 합니다. 먼저 ‘게골뱅이’ 편입니다. 흘러나오는 해설은 차라리 한 편의 에로영화에 가깝습니다.

    게골뱅이들은 한 쌍이 마주앉아 눈과 촉수로 속삭이며 추파를 던지기 시작하면 별의별 수작질을 다합니다. ‘에라 모르겠다’ 수놈이 먼저 그 거추장스러운 갑(소라 껍데기)을 훌렁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기어나옵니다. 수컷을 홀려낸 암컷이 나체로 드러난 (수컷의) 그 망측한 꼴을 보기 딱해서 그런지, 아니면 그 부끄러운 것(자신의 알몸)을 드러내놓기가 별로여서 그런지 슬금슬금 피해가더니 갑 속에 온몸을 숨깁니다.

    일은 참 딱하게도 됐습니다. 급해 난(성급해진) 수컷은 억지다짐으로 암컷의 옷을 벗기려고 집게발로 끌어당기며 강짜를 부립니다. 하지만 힘내기로는 성사될 일이 아닌 듯싶습니다. 수놈은 할 수 없이 알몸을 드러내고 더듬뿔로 추파를 던지며 암컷을 구슬립니다. “너무 비싸게 굴지 말고 어서 벌거벗으라”고 애걸하는 것 같습니다.

    역시 이런 놀음에서는 강짜보다 애무가 통하는 것 같습니다. ‘같은 값이면 벗고 주랬다’고 수컷의 애무에 못 이겨 암컷도 마침내 벌거벗고 나옵니다. 게골뱅이들은 짐승들과 달리 볼 만한 잡은 것(성기)도 없습니다. 그래서 자극적인 펌프질은 할 수 없지만, 그 대신 알몸으로 안고 있어도 흥분됩니다.

    ‘투어’ 편에서는 불현듯 찐득한 색소폰 소리가 흘러나와 남성 인민성우의 목소리를 감쌉니다. 그러면서 다큐멘터리는 카바레를 방불케 하는 축축한 분위기로 돌변하죠. 투어에 대한 감정이입이 일어난 것입니다. 물고기에 대한 묘사라기보다는 한참 달아오른 청춘남녀의 애정행각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수컷들은 몸을 슬쩍 옆으로 꼬면서 암컷을 껴안는 시늉을 자주 합니다. 암컷더러 “어서 품안에 들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암컷은 암컷대로 “어서 품어달라”는 듯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습니다. 한번 힘 있게 안아나 볼까, 아니면 한번만이라도 안겨나 볼까, 투어들은 그야말로 속이 알근할(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애무하며 쌍붙기 전의 정을 아주 뜨겁게 주고받습니다.

    이 영화 중간 중간에는 여성 인민성우의 내레이션도 삽입됩니다. ‘타조’ 편에서는 여자 성우의 목소리가 배경음악에 실려 전해지지만, 표현과 풍자의 강도는 남자 성우의 해설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타조들이 둥실둥실 춤을 추며 돌아갑니다. 이럴 때면 날짐승이라고 하지만 성기가 발달된 타조에게 있어서 성적 흥분이 왔다는 것을 의심할 수가 있습니다. 암컷이 먼저 준비 태세를 갖추고 엎드려 기다리고 있습니다. 암컷이 내맡기고 있는데, 저리도 (수타조가) 조심스레 다가가는 것을 보면 수타조처럼 답답한 머저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암컷이 말을 안 들어도 수컷이 달려들어 굴복시키는 것이 교미세계의 일반적인 룰이라고 하는데, 이건 도대체 무슨 놀음인지 모를 일입니다.

    북한에서 성인용 포르노그래피를 보는 행위는 철저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북한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러시아 영화를 통해 키스 장면이나 여배우의 속옷 차림이 가뭄에 콩 나듯이 나오기도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섹스가 이념과 사상의 국경을 넘지 못하겠습니까. 어쩌면 동물들의 교미를 적나라하게 다룬 이 북한 다큐멘터리는 인민의 성욕 해방구 구실을 일부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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