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호

요동치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논의

“연합사가 내놓으면 유엔사로 넘어간다?” 양국 반대파 ‘히든 카드’ 될 수도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6-06-07 17: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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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군은 전시작전통제권 행사를 통해 스스로 안보를 책임지는 자주군대로 거듭날 것이다.”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시작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협상. 그러나 최근 주한미군을 중심으로 가시화하는 ‘유엔사령부 강화’ 움직임을 지켜보며 의구심을 표하는 전문가가 늘고 있다. 국제법적으로 한국정부에서 작통권을 넘겨받은 첫 번째 주체가 유엔사이므로, 최악의 경우 유엔사 문제가 작통권 환수를 늦추는 ‘핑계’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다. 과연 ‘대통령의 약속’에는 아무 이상이 없나.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5월초 언론을 뜨겁게 달군 시골마을이다. 주한미군 캠프 험프리즈가 자리잡은 이 지역에는 2008년 말까지 경기도 북부의 미 2사단과 서울 용산의 한미연합사령부, 주한미군사령부, 유엔사령부가 이전해올 예정. 그러나 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단체 회원들과 일부 주민들은 국방부의 토지수용 행정집행에 반발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한명숙 국무총리는 5월12일 대(對)국민호소문을 발표했다. 한 총리는 “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추진하는데 미군기지 이전이 차질을 빚으면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미군기지 평택 이전 문제가 한미관계의 변화와 연계돼 있음을 강조했다.

    국방분야 현안에 대해 논쟁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작전통제권 환수를 논리적 명분으로 제시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국방예산 증액, 국방개혁안 입안, 주요 무기체계 관련 결정 등, 이슈가 있을 때마다 ‘자주국방’과 ‘전시작통권 환수’는 핵심적인 근거로 제시됐다. 이를 위해서는 독자적인 작전기획 및 군 운용능력을 확보해야 하므로 필수적인 조치라는 설명이었다.

    ‘전쟁이 벌어졌을 때 한국군이 수행하는 작전에 대한 통제권한을 되찾아온다.’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공약이던 이 문제는 안보분야 최대 과제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당선자 시절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이 문제를 언급해온 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1일 계룡대 연설에서 “자주국방은 자주독립 국가가 갖춰야 할 너무나도 기본적인 일”이라며 “우리 군은 전시작전통제권 행사를 통해 스스로 한반도 안보를 책임지는 명실상부한 자주군대로 거듭날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처럼 강력한 의지에 따라 한미 양국은 20일 뒤인 10월21일, 국방장관이 참석한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이 문제에 관한 협의를 ‘적절히 가속화(appropriately accelerate)’하기로 합의했고, 이후 안보정책구상회의(SPI)를 통해 논의를 구체화하고 있다. 당초에는 작통권 환수 로드맵을 마련하기 위한 일정과 방법을 4월 중순까지 구체화해 보고서로 만들고 10월까지는 로드맵을 완성해 올해 SCM에 보고한다는 계획이었지만, 보고서는 5월 중순 현재까지 나오지 않았다. 로드맵은 향후 5~10년에 걸쳐 작통권 환수 절차를 준비·실행한다는 틀 안에서 논의되고 있으나 이견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협상과정을 예의 주시하던 전문가들과 일부 당국자들 사이에서 “뭔가 심상치 않다”는 수군거림이 흘러나온 것은 3월7일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한미연합사령관 및 유엔사령관 겸임)이 미 상원 청문회에서 증언한 직후였다.

    “(유명무실한 상태인) 유엔사에 대해 미국 외 15개 참전국의 소임을 늘리고 유엔사가 유사시에 대비한 작전계획을 수립하는 데 참여시킴으로써, 유엔사를 진정한 다국적군 사령부로 만들겠다.”

    이 발언의 진의를 두고 관련부처와 청와대는 말 그대로 ‘발칵’ 뒤집혔다. 벨 사령관의 발언은 한반도 유사시(전시)를 대비한 사령부로 한미연합사 대신 16개국과 한국이 참여하는 유엔사를 활용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엔사 강화 움직임 가시화

    사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가시화됐다. 5월7일자 ‘국민일보’는 “앞으로 한미연합사가 해체되거나 역할이 축소되더라도 한반도 정전협정 체제를 책임지는 유엔사의 역할은 오히려 더욱 커질 것”이라는 주한미군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미 지난해부터 리언 러포트 당시 사령관이 유엔군 소속 일부 국가를 직접 방문해 이 같은 기능강화 방침을 설명하고 현역 장교와 무관을 더 많이 파견할 것을 요청했으며, 9개 국가가 이에 응하기로 했다는 것. 이 기사는 일본 도쿄에 있는 유엔군 후방사령부를 방문해 기능강화 방안을 논의한 버웰 벨 현 사령관의 최근 움직임도 자세히 전했다. 이 역시 ‘주한미군 고위관계자’의 상세한 설명을 인용했다.

    5월 중순에는 이보다 더욱 민감한 사안이 불거졌다. 5월9일부터 사흘간 용산에서 개최된 ‘유엔사-특전사 컨퍼런스’. 유엔사가 13개국 군사 전문가들을 초청해 열린 이 세미나에서는 북한정권 붕괴 및 남북한 무력충돌 등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해 유엔사 주축으로 구성될 특수부대의 운영방안을 의제로 다뤘다.

    이는 향후 유엔사의 역할을 확대해 명실상부한 ‘다국적군’ ‘국제군(international force)’으로 변모시키는 계획을 추진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 것이었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이러한 내용을 주한미군사령부의 고위 관계자가 미국 군사전문지 ‘성조(Stars and stripes)’와의 인터뷰를 통해 매우 상세히 공개했다는 점. 사실상의 공개선언이었다.

    일련의 사건이 관계부처 사이에서 일으킨 파장은 간단치 않았지만, 이는 은밀히 퍼져 나갔다. 버웰 벨 사령관 발언의 경우, 주한미군사령관의 청문회 발언은 사전에 우리측에 통보되는 게 관행이나 이번에는 그런 절차가 없었다는 후문이다. 갑작스러운 발언에 놀란 국방부는 급히 해명자료를 배포했고,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비공식적으로 벨 사령관에게 유감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사령부도 곧 이어 ‘잘못된 보도내용에 대한 주한미군의 입장’라는 보도자료를 냈지만, 이 자료에는 정작 어떤 보도의 어떤 내용이 잘못됐다는 것인지 명확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청와대 안에서도 논란이 일기는 마찬가지였다. 담당부서인 통일외교안보정책실에서 주한미군 및 한미동맹 관련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불똥이 튀었다는 전언이다. 주한미군과의 사전조정 미비로 사령관의 민감한 발언이 청문회 자리에서 공개된 데 대해 책임을 물었다는 것. 당연히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담당자들은 경위서를 작성하는 등의 처분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방부와 청와대가 일련의 사건에 이렇듯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유엔사를 강화해 ‘국제군’의 역할을 수행하고 북한정권 붕괴 같은 유사시 특수부대 파견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이를 접한 당국자들이 “심상치 않다”고 말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전시작통권 환수와 유엔사 사이에는 과연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한국 정부→유엔사→연합사

    이러한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작전통제권에 얽힌 국제법적인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6·25전쟁 초기에 유엔사령관에게 양도된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은 1978년 한미연합사가 창설되면서 다시 연합사령관에게 위임되는 형식절차를 거쳤다. 실질적으로는 주한미군사령관이 연합사령관과 유엔사령관을 겸임하고 있으므로 별반 차이가 없지만, 국제법적으로는 두 단계를 거친 것이다. 이후 1994년 평시의 한국군 작전통제권은 한국정부가 단독으로 행사하고 ‘데프콘Ⅱ’ 이상의 전시에는 한미연합사령관이 행사하는 것으로 조정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것은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통권은 유엔사가 연합사에 재위임한 구조’라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엄격하게 말하면 연합사가 해체될 경우에도 이승만 대통령이 유엔사령관에게 이양한 한국군에 대한 작통권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는 것.

    최근 SPI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연합지휘체계 변경과 작통권 환수 관련 협상은 이 연결고리에 대해 주목하지 않았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주로 연합사의 해체 등 위상 변경과 그에 따른 임무조정, 이후에도 양국군의 작전을 유기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병렬형 지휘체계 구축 등에 포커스를 맞춰왔다는 설명이다. 법률적으로 볼 때 유엔사에 위임된 ‘원래의 작전권’을 어떤 절차를 거쳐 환수할 것인지, 유엔사와는 어떤 지휘관계를 만들 것인지, 유엔사에 위임한 권한을 돌려받는 절차가 필요하기는 한 것인지 등은 정식 논의된 바가 없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미국측에서 거듭해 흘러나오는 ‘유엔사 강화’ 분위기와 관련해 전문가들과 일부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미군이 혹시 독자적인 활동이 가능한 수준까지 유엔사를 강화한 뒤 이를 통해 한국군의 전시작통권을 계속 유지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됐다. 해석하기에 따라 작통권 환수논의의 근본을 흔들 만한 민감한 함의가 유추되는 것. 이쯤 되면 국방부와 청와대가 버웰 벨 사령관 발언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운 이유를 가늠할 수 있다.

    만에 하나 연합사가 해체되고 유엔사가 한국군의 작통권을 행사하게 된다면 이는 사실상 전시에 한해서는 1978년 이전 시스템으로 회귀하는 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미연합사령관은 형식상 양국 대통령의 지시를 받게 돼 있지만 유엔사령관은 그렇지 않으므로, 오히려 한국군의 ‘자주성’은 지금보다 퇴보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펜타곤과 주한미군은 다를 수 있다?

    물론 당국자들은 이러한 우려에 대해 공식적으로 “한낱 기우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유엔사 문제’라는 것은 매우 지엽적인 법률 문제일 따름이라는 설명이다. 작전통제권이 기본적으로 한국 정부의 권한을 ‘위임’받은 것에 불과하므로, 유엔사가 행사하겠다고 한들 우리가 거부하고 환수를 선언하면 그뿐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형식상으로는 유엔사령관과 연합사령관이 별도의 직함이지만 실제로는 주한미군사령관 한 사람인데, 한편에서는 환수논의를 진행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이를 사실상 뒤집는 식으로 무리하게 형식논리를 들이댈 수는 없을 것이라는 예상도 이어진다.

    사실 정전(停戰)체제와 유엔사, 작전통제권 문제를 둘러싸고는 매우 복잡한 국제법적 절차가 얽혀 있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상당히 엇갈린다. 6·25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 처리된 것이다 보니 예외적인 부분이 많고, 유엔사라는 조직 자체가 전무후무한 체계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원칙이 없다는 것이다. 통일부 등 관계 당국자들조차 “누구도 자신 있게 얘기하기 어렵다”고 토로할 만큼 법적으로 명쾌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렇듯 혼란스러운 유엔사 문제가 전시작통권 환수논의를 지연시키는 지렛대로 활용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악의 경우 장시간에 걸쳐 연합지휘체계 변경에 관한 논의가 진행된 후에도, 미국측이 유엔사가 가진 국제법적 권한을 들어 새로운 논의를 요청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경우 한국측이 미국측 의사와 상관없이 단호하게 환수를 ‘선언’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반론이 나오는 것.

    특히 작통권 협상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이제까지 확인된 유엔사 강화 움직임이나 사실상의 ‘공개선언’이 주로 주한미군사령부 차원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용산의 주한미군과 워싱턴 펜타곤의 분위기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지난해 SCM에서 비록 단서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양국 지휘관계 조정은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며 부정적이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고, 이 같은 워싱턴의 뜻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다. 또 다른 관계부처인 국무부 당국자들의 공식견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서울에 있는 주한미군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해보면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한국측이 의욕과 명분에 사로잡혀 지나치게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거나 “워싱턴도 한국이 굳이 원한다면 돌려줄 수 있다는 것이지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식의 속내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온도’ 차이는, 실제로 한반도에서 작전을 수행해야 하고 또 이를 준비해온 주한미군 처지에서는 전시작통권을 유지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군사적·제도적 이점을 선뜻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 같다고 정통한 한국군 관계자들은 분석한다. 예를 들어 현재는 상당부분 주한미군이 관리하고 있는 한국의 공역(空域)만 해도 작통권 환수와 함께 관리권을 돌려줄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오산기지 등 미 공군의 활동은 지금과 달리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연합작전계획의 수립을 맡았던 한미연합사가 양국군 관계에서 누려온 ‘위상’도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다.

    평시 작전통제권만을 돌려받은 1994년의 협상에서도 펜타곤은 비교적 긍정적이었지만 주한미군사령부는 다양한 사안에 걸쳐 여러 차례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작전통제와 관련된 몇몇 핵심적 권한과 책임을 평시에도 연합사령관이 행사하도록 유보한 이른바 ‘연합위임사항(CODA)’도 주한미군의 의사가 강하게 반영된 결과라는 후문. 현장지휘관의 의견이 강하게 반영되는 미군의 특성상 앞으로 전시작통권 협상과 관련해서도 워싱턴이 점차 주한미군의 의견에 ‘딸려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있다.

    ‘작계 5029 논쟁’의 우회로 된다면…

    뒤집어보면 이 같은 구조는 한국측에도 적용된다. 청와대와 국방부는 강도 높게 작통권 환수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합참이나 야전의 지휘관들로부터는 “시기상조”라거나 “실익이 없다”며 사실상 반대하는 의견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3년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이를 두고 청와대와 군 사이에 논쟁이 벌어진 적도 있다. “전쟁이 벌어지면 나는 우리 군을 지휘하지 못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에 군 일각에서 “연합사령관은 한미 양국 대통령의 공동지시를 받는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 이러한 이유로 국방부는 공식적으로 작통권 ‘환수’가 아니라 현재 공동행사하고 있는 작통권을 ‘단독행사’하게 되는 것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양국 군 내부의 분위기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조기 환수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는 양국 실무자들 사이에서 ‘연합사의 작통권은 종결되지만 유엔사가 이를 계속 행사’하는 그림이 ‘적절한 타협책’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전망한다. 형식적으로는 연합지휘체계를 변경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한반도 유사시 상황대응을 계속 미군이 중심이 되어 감당하는 형태라는 설명이다. 쉽게 말해 한국은 명분을, 미국(특히 주한미군)은 실리를 확보하는 모양새가 된다.

    물론 최근의 유엔사 강화 움직임이 곧 미국측이 유엔사를 통해 작통권을 계속 보유하겠다고 결론 내린 증거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국이 몇 가지 측면을 한꺼번에 고려하며 ‘양수겸장(兩手兼將)’을 둔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우선은 한미연합사가 해체돼도 미군이 유엔이라는 국제기구의 틀 아래에 놓이는 것이 명분이나 실리 모두 훨씬 유리하다는 판단이고, 장기적으로는 작통권과 관련해서도 진행 중인 협상과는 다른 차원의 ‘옵션’을 유지하려는 것 같다는 분석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작통권 환수 완료에는 5~10년이 필요하다는 틀 안에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반도 안보환경이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미 간에 이견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특히 주일미군과 일본 자위대의 통합운용성이 급속히 강화되는 현실이고 보면 장차 미국은 동북아에서의 지휘체계를 통합하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 경우 한국군의 전시작통권을 유지한 유엔사는 매우 편리한 ‘히든 카드’가 될 수 있다. 지금은 꼭 그렇지 않다 해도, 장차 상황에 따라 실질적인 작통권 환수를 연기하는 지렛대로 남겨둘 수 있으리라는 이야기다.

    이와는 별도로, 유엔사가 5월초 연 세미나를 통해 북한의 급변사태에 개입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소식에 담긴 또 다른 함의를 주목하는 이들도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고(有故)나 대규모 소요 사태 등으로 대량살상무기가 불안정해졌을 때 미군이 이에 개입하는 것과 관련된 내용이다. 이러한 경우에 대비해 한미연합사와 한국군 합참은 2004년부터 ‘개념계획 5029-99’를 ‘작전계획 5029-05’로 단계를 올리는 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그러다 2005년 1월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청와대가 “전시가 아닌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에 개입하는 것은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작업중단을 요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후 이 문제는 개념계획 수준에서 발전시키는 것으로 합의됐다.

    그러나 유엔사가 강화되면 이러한 ‘주권논쟁’을 피하면서도 미군이 북한 유사시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연합사가 작성하는 작전계획 5029는 주권 침해의 소지가 있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의해 한반도 정전체제를 관리할 책임이 있는 유엔사가 개입을 주도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만만찮은 이견이 있기는 하나, 북한내 이상징후로 인해 정전체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 명백할 경우 유엔사는 이에 개입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유엔사의 실질적인 물리력이 주한미군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미국이 작계 5029를 대신해 북한 급변사태에 개입할 수 있는 ‘우회로’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청와대와 국방부 당국자들은 공식적으로 “(작통권과 유엔사 문제에 있어) 최악의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그 최악의 경우에 대비한 ‘이론 차원의 조사작업’이 진행되고 있음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된다. 전문가들은 물론 일부 당국자들 사이에서도 “정신을 바짝 차릴 필요가 있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연합지휘체계 문제에 정통한 한 관계자의 말이다.

    대통령의 말

    “분명한 것은 노 대통령이 ‘작전통제권을 가진 자주군대’를 강조했을 때는 ‘한미연합사 대신 유엔사의 작전통제를 받는 군대’를 의미하지는 않았으리라는 사실이다. 대통령이 말한 것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도 한국군과 미군은 연계돼 있으되 독자적인 작전이 가능한 별개의 군사력이 되고, 특히 한국군이 중심이 돼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그림이 유엔사 강화라는 최근의 움직임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인지는 분명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작통권 환수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를 떠나, 대통령의 그 같은 말이 지켜질지는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만약 올가을에 보고될 환수 로드맵이나 앞으로의 준비·실행과정에서 ‘적절한 선에서 타협이 이뤄질 여지’를 남겨둔다면, 이는 대통령이 헛된 말로 국민을 속인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의지가 아니라 능력이 부족해 그렇게 된다 해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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