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호

초강대국 꿈꾸는 인도의 두 얼굴

막강 IT파워·전문인력 양극화·대량실업 시름

  •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입력2006-06-08 14: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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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는 세계 제2의 인구 대국. 세계 최강의 실력을 자랑하는 공과대학 등 우수한 대졸 인력이 넘쳐난다. 인도는 이런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IT 강국으로서 21세기 최첨단 통신시대를 이끌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제자리를 잡지 못하는 전문인력과 대량 실업사태는 이 나라의 또 다른 면이다. 과연 인도는 막강한 맨파워를 활용해 초강대국으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인가.
    초강대국 꿈꾸는 인도의 두 얼굴
    최근 세계적인 투자회사 골드만삭스는 2030년경 인도가 미국, 중국과 함께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3강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시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하기 직전인 지난 2월, 마치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미국 싱크탱크의 하나인 브루킹스 연구소는 “21세기는 인도·중국의 시대가 될 것”이라며 미국 행정부를 향해 인도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건의했다.

    인도는 1991년, 독립 이후 40여 년간 견지해오던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청산하고 개방체제를 채택했다. 그후 세계화 전략을 추진했고 1990년대 말 Y2K를 계기로 정보기술(IT)산업이 급성장함에 따라 세계는 지금 ‘인도로 가자!’고 외치고 있다. 2003년에 8.3%, 이듬해엔 6.4%, 그리고 지난해에는 7%대의 성장률을 보여 1991년 바닥을 헤매던 외환보유고가 2004년엔 1000억달러에 달하는 성과를 거뒀다.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기업은 인적 자원이 가장 풍부하고 인건비가 가장 싼 곳으로 가게 돼 있다면 인도가 이룩한 최근의 고도성장은 결코 기적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인도는 IT산업의 성장 덕분에 산업시대를 건너뛴 채 최첨단 통신시대로 직행하고 있다. 제1의 IT도시 방갈로르, 제2의 IT도시 하이데라바드는 전통 경제 중심지 뭄바이(옛 봄베이)와 ‘인도의 디트로이트’라고 하는 첸나이(옛 마드라스) 등과 함께 인도 경제를 이끌고 있다.

    방대한 대졸 노동력

    전문가들은 인도 경제가 성장하게 된 이유로 영어 구사능력을 갖추고도 저임금을 마다않는 우수한 노동력을 가장 먼저 꼽는다. 여기에 정부의 적극적인 IT산업 지원정책과 시대적 요구가 맞아떨어져 지금과 같은 결과를 낳았다는 것. 노동력이 우수하려면 인구의 저변이 넓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인도의 인구는 과연 얼마나 될까.



    인도에 사람이 많다는 것은 인도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실감하게 된다. 거리에 내려서면 가장 먼저 보이고 가장 많이 보이는 게 사람이니까. 뭄바이 시내에서 30km 정도 떨어진 공항까지 가는 도로 양쪽에는 한치의 틈도 없이 집들이 들어서 있고, 그 집들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거리는 시장통처럼 사람들로 들끓었다. 이런 광경은 콜카타와 첸나이, 방갈로르 등 필자가 이용한 공항에선 판에 박힌 듯 되풀이됐다.

    큰길은 차도와 인도가 엄연히 구분돼 있는데도 차와 사람이 범벅으로 뒤섞여 있기 일쑤. 거기에 릭셔(삼륜차)와 자전거, 오토바이가 가세했다. 신호등을 아예 무시한 채 각자 눈치껏 알아서 길을 가로질러 다녔다.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교통경찰은 이런 상태를 방치하는 듯했다.

    흔한 게 사람이다 보니 인도 경제는 전통적으로 근력(筋力)에 의존해왔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인건비가 가장 싸니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서라도 그 길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게 실업의 고통을 더는 지름길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은 지금도 도시 곳곳에서 목격된다. 한 사람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여러 사람에게 맡겨 민원인을 짜증나게 만드는 일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시간외 근무수당 같은 것이 지급되지 않는다고 했다. 시간외 근무수당은 일괄생산 공정에 투입된 공장노동자에게만 준다는 것.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기계가 많이 동원될수록 그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은 비싸진다는 점이다. 기계가 사람보다 귀하다는 얘기다.

    2005년 말 기준으로 인도 인구는 11억 6000만명이라는 통계가 나와 있다. 곧 12억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2050년경이 되면 16억이 되어 14억의 중국(지금은 12억)을 따돌리고 세계 최다 인구 보유국이 된다는 것이다. 그 무렵 유럽연합(EU) 25개국 전체 인구가 4억6000만 정도에 그치고, 미국은 이보다 조금 적은 4억2000만이 될 것이며, 이슬람권에서도 인구가 급증하겠지만 인도를 앞서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인도의 인구 구성을 보면 25세 이하가 전체의 54%를 차지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평균 연령은 24.7세로 알려져 있다. ‘인도의 장래가 밝다’는 이야기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배가 부른 젊은 여성들과 젖을 먹이는 엄마들을 세계 어느 도시에서보다 자주 볼 수 있다.

    IIT(인도 공대)가 MIT 능가?

    젊은이가 많다 보니 해마다 대학에서 배출되는 졸업자도 무려 360만명에 달한다. 세계 최대 규모다. 이 대목에서는 인구가 더 많은 중국도 인도에 손을 들 수밖에 없고, 미국도 그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이공계 출신만도 45만명이고, 회계학을 전공한 자만 7만명에 달하며, 경영대학원에서만 8만9000명의 MBA를 배출하고 있다. 이렇게 방대한 노동력이 제대로 취업해 일한다면 향후 인도 경제는 또 어떻게 변할 것인가.

    인도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학문은 과학, 공학, 의학, 경영, 회계학 분야. 학교에서도 수학과 과학, 회계학에 역점을 둔다. 이는 실용성을 중시한다는 증표다. 공학과 의학, 회계, 경영 등은 글로벌 스탠더드가 통용되는 학문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그 가치를 발하는 학문이란 뜻.

    이를 두고 혹자는 영국 식민지로 있으면서 배운 합리성이 낳은 결과라고도 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예부터 ‘문제 지향적’이던 인도인 특유의 민족성에 연유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들은 현실을 살면서 불가피하게 맞닥뜨리게 되는 이런저런 문제에 미봉책으로 대처하지 않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으려는 태도를 견지해왔다. 늘 ‘지금 여기’에 주목했던 것이다. 그래서 인도에는 연대기 식으로 정리된 역사서나 철학서가 없다고 한다. 문제 지향적인 연구서가 있을 뿐이다.

    국내의 자원과 힘으로는 나라를 꾸려가기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아는 인도로서는 국경의 벽을 의식해야 하는 일반 사회·문학 과목보다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고 어디서도 가치를 발하는 공학, 과학, 경영학, 회계학, 의학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래야만 세계 어디로도 진출할 수 있고, 아웃소싱을 받아낼 수도 있지 않은가. 인천에서 뭄바이로 가는 기내에서 만난 인도인 선박 디자이너 크리슈난씨는 “기술은 인도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과학과 공학이 강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인도 사람들은 예로부터 수학적 능력이 뛰어났다. 영(零)의 개념을 최초로 고안한 민족 또한 인도인이 아니던가. 그들은 지금도 구구단을 24단까지 외운다. 이런 그들이 과학과 공학에 소질이 없을 리 있겠는가.

    인도에서 이공계 교육이라면 인도 공과대학(IIT)을 으뜸으로 꼽는다. 카라그푸르, 뉴델리, 뭄바이, 첸나이, 루르키, 칸푸르, 구와하티에 있는 7개 캠퍼스로 이뤄진 IIT는 미국의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와도 비교될 정도로 경쟁력 있는 공과대학이란 평가를 받는다. MIT 교수가 한 인도 학생에게 “자네 나라에는 IIT가 있는데 왜 MIT에 왔냐”고 물었더니 “IIT에 응시했으나 떨어져 MIT에 왔다”고 대답했다는 일화도 있다.

    IIT의 역사는 195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대 수상 네루가 인도의 장래를 짊어지고 나갈 젊은 인재들을 길러내기 위해 캘커타 북쪽의 카라그푸르에 IIT를 설립한 게 그 시초. 초기부터 입시경쟁은 치열했다. 매년 1000만명이 넘는 고교 졸업생 가운데 겨우 수백명만이 IIT 교정을 밟을 수 있었다. IIT 입학을 위한 보습학원도 등장했다. 1974년 카라그푸르 공대를 졸업한 후 외국 조선회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는 크리슈난씨는 그 같은 치열한 경쟁이 IIT를 세계적인 대학으로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따라서 학생들의 질은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IIT 뭄바이 캠퍼스에서 졸업을 앞둔 재학생들을 만났는데, 그들도 이구동성으로 “입학하기가 너무 어려웠다”고 말했다. 뭄바이 북부에 위치한 IIT 뭄바이 캠퍼스는 인도에서는 보기 드물게 물이 맑고 주위 풍광이 아름다운 포와이 호수를 끼고 있는 곳이다. 일요일인데도 취업 면담을 위해 학교에 나왔다는 우주항공공학 전공의 메클란 마니와드카르군은 “수업은 토론과 세미나, 프레젠테이션, 리포트 제출 등으로 이뤄지는데, 학생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하다”고 전했다. 특히 9명이 한 조가 되어 교수와 토론하는 수업은 ‘피를 말리는 작업’이라 밤을 새워 준비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다고 한다. 경쟁이 경쟁력을 낳는 셈이다.

    뜨거운 교육열

    초강대국 꿈꾸는 인도의 두 얼굴

    졸업을 앞두고 취업 면담을 받기 위해 줄 서 있는 IIT 뭄바이 캠퍼스의 학생들.

    교육열 하면 한국을 따라갈 나라가 없을 것 같지만 인도의 교육열도 우리 못지 않다.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에서 에로틱한 남녀교합상 탑으로 유명한 카주라호로 가는 완행버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새벽 5시에 아그라를 떠났는데도 제법 큰 마을을 지나면서 버스에는 꽤 많은 학생이 올라탔다. 여학생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만원버스 속에서도 책을 펴들고 그날 공부할 내용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어른들은 그 광경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인도의 학제는 1∼5학년까지가 초등과정에 해당하며, 6∼10학년은 중등과정, 이를 이수하면 이과와 문과 가운데서 자기의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11∼12학년을 마치면 자신의 선택에 따라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인도에 교육열이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한 것은 독립 이후다. 네루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헌법의 기초를 만들고 초대 법무장관으로 나라의 기틀을 세운 암베드카르 박사가 교육의 힘이 어떤 것인가를 몸소 보여줬다. 그는 누구도 함께 있기를 싫어하는, 심지어 저수지의 물도 나눠 마시기를 꺼리는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카스트제도 밖의 천민)’ 출신이다. 그러나 인도에서 대학을 나오고 미국에 이어 영국으로 건너가 박사학위를 받아와 그런 큰일을 해냈으니 모든 이의 선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 인도에서 교육은 부모가 못다 한 꿈과 한을 자식들에 의해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됐다. 지난날 우리네 부모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렇다고 빈곤층만 교육에 열을 올리는 것은 아니다. 중산층도 그에 못지않다. 자녀를 되도록 적게 낳고, 그렇게 해서 생긴 경제적 여력을 소수의 자식에게 집중 투자하고 있다. 투자처는 물론 과학기술 분야. 그들은 그것만이 현재의 위치를 뛰어넘어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인도에서도 교육방식에 대한 논란은 끝이 없다. 실용성을 강조한다고 하면서도 현행 학교 교육이 암기식 위주라고 비난하는 지식인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이런 교육방식으로는 창의성을 기를 수 없고, 문제해결 능력도 키울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점에선 ‘인도도 우리와 크게 다를 게 없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이는 이내 오해였음이 드러났다. 인도에는 토론과 발표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는, 이른바 서구식 교육이 아주 없는 게 아니었다. 앞서 말한 IIT나 전국 여러 곳에 설치돼 있는 인터내셔널 스쿨,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학교 등 실용성을 강조한 학교가 한둘이 아니었다.

    대졸 초임 연봉 400만원

    IIT 뭄바이 캠퍼스에서 만난 학생들에게 대졸 취업자의 임금 수준을 물어봤다. 그들은 방갈로르에 있는 금속산업체 알테이르 엔지니어링에서 나온 직원들과 취업 면담을 하고 있었는데, 대졸 초임 연봉이 4000달러밖에 안 된다고 해서 놀랐다. 우리 돈으로 400만원이니 한 달에 40만원도 채 안 되는 급료를 받는다는 얘기 아닌가. 그런데도 그들은 매우 자랑스럽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더 큰 회사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방갈로르에 있는 소프트웨어 회사인 인포시스(Infosys)나 위프로(WIPRO) 같은 회사에선 어느 정도 받느냐고 묻자 그곳 또한 4000 내지 5000달러라고 했다(이는 며칠 뒤 위프로 본사를 찾았을 때 확인됐다). 인도에서 급료 수준이 가장 높은 회사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인데 그나마 연봉이 9000달러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역시 외국계 회사의 임금 수준이 제일 높았지만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액수였다.

    의문을 풀기 위해 델리 북쪽에 위치한 노이다(Noida) 신흥 전자산업단지를 찾았다. 이곳에는 한국의 LG전자가 진출해 있었는데, 이 회사 김인호 부장은 “인도 종업원의 생산성은 한국과 큰 차이가 없으나 대졸 초임은 월 500∼600달러 수준”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이 정도 급여는 인도에서는 상위권이라는 것.

    인도의 임금 수준은 분명히 낮다. 하지만 인도의 물가는 우리의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더 낮다. 우리의 5분의 1수준으로 보면 된다. 인도를 여행하는 한국의 젊은 배낭족들이 먹고 자고 이동하고(장·단거리 포함), 인도인에게 받는 것보다 10배 내지 20배 비싼 유적지 입장권을 사고서도 한 달에 500달러 정도면 충분하다고 한다. 인도인들 대부분은 하루 20∼30루피(우리 돈 5000원 정도)로 산다. 루피(인도의 화폐)의 실질 구매력을 고려하면 그들에게 500달러는 우리 돈 250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인도인들이 대접받는 데에는 뛰어난 손재주도 한몫 한다. 우리처럼 정교한 ‘젓가락 기술’을 갖진 못했으나, 손가락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데다 기계가 하는 일을 손으로 해야 하는 삶의 조건이 그들의 손재주를 발달시켰다. 정교하고 꼼꼼한 손길이 요구되는 반도체 산업에 인도인의 손재주가 힘을 발휘한다는 이야기도 곳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한동안 저렴한 인건비에 매력을 느껴 외국 기업들이 너도나도 인도에 직접 투자를 하거나 일거리를 맡기기도 했는데, 최근 들어 인도의 임금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하이데라바드에서 발행되는 ‘선데이 타임스 오브 인디아’ 1월16일자 ‘인도의 인적 자원은 과연 창의적인가’ 제하의 특집기사에 따르면, 특히 잘나간다는 IT, 금융, 유통업, 반도체 분야에서의 임금상승률은 세계 최고 수준(20% 내외)이라고 한다.

    우리에겐 ‘임금상승’이라고 하면 부정적 이미지가 느껴지지만 인도에선 반드시 그렇게 볼 것만도 아니다. 임금이 크게 오르면 우수한 인력이 그곳으로 몰릴 것이고, 이는 또 생산성 향상을 가져오게 되어 많은 이에게 일자리를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 정부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둔 듯, 임금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정책을 쓰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고도성장의 그림자

    인도 경제가 잘나간다고 하지만 거기에도 어두운 면은 있게 마련이다. 높은 실업률이 그 하나다. 해마다 대학을 졸업하는 360만명 가운데 취업자는 겨우 0.9%에 지나지 않아 인도의 실업자 수가 4000만명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인도과학리포트’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실업자 중 이공계가 63%를 차지한다.

    노동력의 신규 수요가 적지 않은데도 현실적으로 실업자가 많은 이유는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는 인력의 ‘미스매치’현상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기업은 숙련노동력을 필요로 하는데 대학이 그런 인재를 배출하지 못하기 때문. 예를 들어 IT와 금융분야에서는 실제 문제해결 능력이 있는 인재를, 날로 항공망을 늘려가고 있는 항공업계에선 경험 많은 조종사를 원하는데 대학에서 이런 요구를 모두 충족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인도 최대의 리쿠르트 회사이자 인력 전문 컨설팅 회사인 마 포이(Ma Foi)의 판디아 라잔 전무는 “대학생들이 회사가 원하는 만큼 분석적이지도 못하고, 문제 해결 능력도 부족하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 같은 실업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인도의 장래가 밝다고만 할 수 없다. 그러나 인도 정부의 정책을 살펴보면, 현재 잘나가는 기업이나 산업을 계속 키워서 그들로 하여금 더 많은 인력, 더 우수한 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듯하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칙에 더 맞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도 정부는 이렇게 계속 가다간 양극화 문제로 사회 갈등이 빚어질 수 있음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양극화라면 인도보다 더한 나라가 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인도에는 길에 신문지를 깔고 거기서 평생 살아갈 것 같은 홈리스들이 길에 널려 있다. 이들에게는 밤낮이 따로 없다. 이런 부류를 포함한 극빈층이 2억∼3억명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그런가 하면 연소득이 2만달러를 넘는 중산층이 3억명에 달하고, 대궐 같은 저택에 왕처럼 수백명의 하인을 거느리며 숲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원을 가진 대지주 계급도 허다하다. 그런데도 이들에겐 양극화가 아직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지 않은 듯했다.

    외국 유학시절 하층계급 출신의 인도 학생과 가까이 지내던 사람이라면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오를 수 있는 자리가 한정돼 있다”며 신세 한탄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으리라. 이런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잣대로 인도인을 흔히 ‘가난의 대물림을 운명(카르마)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자 피동적인 민족’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필자는 여행기간이 짧아서였는지, 아니면 인도인과 그리 가깝게 지내지 못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놓는 이를 만나지 못해서였는지 그런 이야기는 한번도 듣지 못했다.

    자신의 불우한 신세를 한탄하며 가난과 낮은 신분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기보다는 “다른 사람도 하는데 내가 못할 게 뭐 있냐”며 자신을 채찍질하는 게 필자의 눈에 비친 요즘 인도 젊은이들이다. 우리가 한때 ‘하면 된다’고 부르짖었던 것처럼 말이다. 따지고 보면 이런 인도인의 자세는 과거에도 존재했다. 이들은 적(敵)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어려움이 아니라 자기 내부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생각이라고 믿어왔다. 그들이 ‘일체유심조(一體唯心造)’라는 구절을 되뇌이며 마음을 다스리는 데 열중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인도인들이 이런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지금의 실업 문제는 조만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도인의 강점 중 하나는 능숙한 영어 구사력이다. 필자가 1990년대 초 사용자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몇 차례 참석한 바 있는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도 인도 대표의 발언은 그 어느 나라 대표들보다 길었다. 그만큼 영어에 자신이 있는 듯했다. 초대 유엔 주재 인도대사가 유엔 총회에서 장장 9시간이나 쉬지 않고 연설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인도의 힘’, 능숙한 영어

    초강대국 꿈꾸는 인도의 두 얼굴

    인도인의 평균 연령은 24.7세. 어디를 가든 소년 소녀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영어는 인도에서 특별한 존재다. 영어를 사용한 것은 영국의 강요에 의해서였으나, 이제 와선 영어가 인도를 하나로 묶는 역할도 하고, 한 사람을 성공으로 이끄는 열쇠 구실도 한다. 영어에 능통하지 못하면 자신의 출신성분과 부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영어는 힌디어와 함께 인도의 실질적인 공용어다. 힌디어는 남부 일부와 콜카타가 있는 동부의 웨스트 벵갈주 정도를 제외하고는 전 인도에서 두루 통용된다. 그런데도 공식적으로는 영어가 힌디어에 앞선다. 그러니 하나같이 영어 공부에 매달리는 것이다. 공학을 전공한 한 인도인은 대학 시절 영어를 배운 경험을 들려줬다.

    “다섯 명이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다. 주제는 영어가 아니었지만 영어 공부도 할 겸 그룹 내에서 영어가 아닌 인도어로 말하면 벌금을 물게 했다. 작은 금액이었지만 주머니가 가벼운 우리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영어능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학원은커녕 학교를 다니기도 힘들던 시절이라 그런 실전 아닌 실전을 통해 영어를 익힌 것이다. 그게 우리 영어 실력의 현주소라 할 수 있다.”

    초등학교만 나와도 영어로 간단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하니 그 이상의 학력 소지자라면 물어볼 것도 없다. 열차 여행 중에 만난 30대 젊은이나 50대 후반의 중장년에 이르기까지 자기 생각을 영어로 표현하는 데 그리 힘들어하지 않았다. 영어에 관한 한 자신감이 넘쳐났다. 남이 알아듣건 못하건 구애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그들의 영어에는 힌디어 특유의 억양이 있어 필자로서는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몇몇 단어는 발음도 정통 영어와 달랐다. 마 포이사(社)의 판디아 라잔 전무는 이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들의 영어 구사 능력에 문제가 있다”면서.

    정직하고 ‘폴라이트’한 인도인

    이렇듯 인도의 경제, 인도의 풍부한 인적 자원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한다. 이런 양면성에도 불구하고 인도 경제를 낙관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근거는 많다.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거리 곳곳에 책가게가 포진해 있고, 폭이 좁은 대신 세로로 길면서 편집이 뛰어난 영국 스타일의 영자지(1부에 2~2.5루피)가 날이 갈수록 발행부수를 늘리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자신감에 찬 젊은이가 많다. 인도중앙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나렌드라 자다브 박사는 “요즘 젊은이들은 부족한 게 없이 자랐다. 에너지도 충만해 있는데, 기회마저 넘친다”며 인도의 미래가 밝음을 은근히 자랑했다.

    방갈로르의 오베로이 호텔 뷔페 식당에서 만난 미국 모건스탠리사의 뮤추얼펀드 담당자인 미국인 트와이트씨는 “일에 대한 욕심이 많고 조직에 충성스럽다”며 인도 근로자들을 칭찬하는 데 열을 올렸다. 그는 “인도인들은 남을 속이려 들지 않는다며 한마디로 폴라이트(polite)하고 정직하다”고 했다. 자신이 가진 것이 없어 남에게서 일거리를 수주해(아웃소싱) 살아가는 처지라 남을 속여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보다도 자신의 미래에 거는 기대가 큰 그들은 더 많은 것을 배우려고 하고 긍정적으로 사고하려 든다.

    인도가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은 민주주의 사회라는 점이다. 인도는 지방분권제가 확립돼 있고 다당제 정부체제가 정착돼 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충분히 주어져 있기에 언제든 혁신이 가능하다. 거기에다 이질적인 것들을 용해해내는 비상한 재주까지 지녔다. 이 모두 그들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보게 하는 이유가 된다. 따라서 인도는 머지않아 아이디어, 발명품, 새로운 공정을 쏟아낼 것으로 전망된다.

    12억에 가까운 사람들이 삶을 꾸려가는 드넓은 인도 대륙이 어느 날 갑자기 성숙한 사회로 바뀔 것이라는 기대는 성급하다. 다만 지금 그런 방향으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으니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지 하고 생각하는 게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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