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호

재야 경제학자 최용식의 홍콩 경제 유람기

아파트 한 채에 1000억원! 고향 떠난 부자들이 돌아온다!

  •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 소장ecnms21@hanmail.net

    입력2006-06-09 17: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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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으로의 반환 직후 하강곡선을 그리던 홍콩 경제가 최근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해엔 7.3%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홍콩은 인구 700만의 조그만 도시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2만5000달러에 달하는 부자동네. 그곳을 한 경제학자가 다녀왔다. 8박9일 발품을 팔며 도시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그가 새롭게 발견한 홍콩의 활력, 성장의 비결, 그에 비춰 본 한국 경제의 현실.
    재야 경제학자 최용식의 홍콩 경제 유람기
    떠나고 싶었다. 잠시라도 쉬고 싶었다. 반복되는 일상을 한번쯤은 깨고 싶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딱히 그래야 할 이유도 없는데, 새벽 3∼4시에 일어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낮에는 숫자로 가득한 각종 통계를 들여다보고, 멍한 눈으로 새로운 글감을 찾아 하루 종일 헤매는 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다. 오랜 습관이 내 처지를 자꾸 비웃는 것 같은 고약한 느낌도 내던져버리고 싶었다. 존재감을 잃었다는 것, 그리고 목표가 사라졌다는 것이 새로운 출발을 강요했다.

    “내가 할일은 끝났다”

    어릴 적부터 간직해온 소중한 꿈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계 경제학도가 경제학을 배우러 대한민국에 오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경제가 일본 경제를 뛰어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꿈을 담은 책을 최근에 발간했는데, ‘대한민국 생존의 경제학’과 ‘일본 경제 뛰어넘기 프로젝트, 꿈은 이뤄진다’가 그것이다. 책을 탈고한 뒤의 해방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하늘이 나를 이 땅에 보낸 책무를 이제는 다했다”며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다.

    내가 나서서 꿈을 실현시킬 수 있다면 좋으련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기회를 주는 것도 하늘이 할일이 아니던가. 솔직히 고백하면 노무현 정부의 탄생에 병적으로 몰입했던 데는 그 기회를 잡아보자는 의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큰소리로 외쳐도 듣지 않는 정부에 기대할 것이 없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제경쟁력과 가장 높은 성장잠재력, 그리고 과거 어느 때보다 유리한 경제여건을 물려받은 노무현 정부가 역대 정권 중 최악의 경제성적을 기록하는 것도 어쩌면 하늘의 섭리가 아닐는지.



    그래 떠나자. 잠시라도 떠나 있어보자. 내가 미처 해내지 못한 일은 제자들과 후학들이 해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홍콩으로 가보자. 젊을 적에 흔히 들었던 ‘홍콩 간다’는 속어대로 한번쯤 정신을 풀어놓고 여행의 즐거움에 취해보자. 마침 선배 한 분이 그것을 권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 뒤에 새로운 진로를 개척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간단한 수속을 마치고 세 시간 여정의 비행기에 올랐다. 창밖을 내다보고 있으려니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눈을 감고 잠시 회상에 잠겼더니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을 둔 아내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아침잠이 유난히 많은 아내가 눈을 비비고 일어나 잘 다녀오라고 환송인사를 해주던 모습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렸다. 얼굴에 주름이 깊이 패가는 것이 내 잘못인 것만 같다. 꿈 많던 소녀는 어느 사이엔가 반백의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굉음소리가 회상의 나래를 잠시 접게 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텅 빈 하늘이 다시 추억에 젖게 했고, 결국은 내 평생의 업보인 양 경제학의 문제로 돌아갔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무너뜨려?

    나는 40년 가까운 세월 경제학과 질긴 인연을 맺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과학적으로 해체하고야 말겠다는 젊은 시절의 치기가 이런 악연을 만들었다. 사실, 자본주의는 그 과학적인 기초가 신고전파 경제학이고, 사회주의는 마르크스 경제학이다. 이것만 과학적으로 해체하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설 자리를 잃을 것이고, 그러면 민족분단 문제의 해결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젊은이의 눈에는 그것이 너무 쉬워 보였다. 자본주의 경제학은 소비와 교환의 시각으로, 사회주의 경제학은 생산과 분배의 시각으로 경제를 바라본다는 것부터가 중대한 오류로 보였다. 경제란 생산과 소비와 교환과 분배가 함께 일어나는 존재인데, 그중 일부만을 대상으로 하여 이론이 구축됐다면 이것은 결정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소경 코끼리 만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소비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교환은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을 주므로 경제는 마냥 베푸는 존재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자유방임주의는 이렇게 탄생했다.

    반면, 생산하려면 노동의 고통을 먼저 지급해야 하고, 분배 과정에선 생산참여자들 사이에 나눔의 다툼이 벌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경제는 바꾸고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비쳐지는 것이 당연했다. 계급혁명 사상과 국가관리 공산체제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러나 자유방임 사상은 1930년대 대공황과 함께 그리고 공산혁명 사상은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와 함께 사라졌다. 남은 문제는 과학적으로 그것을 해체하는 일뿐이었다.

    ‘이건 쉬운 일이다. 기둥을 무너뜨리면 건물이 모두 무너지듯이, 과학적인 기초를 무너뜨리면 이것은 모두 무너진다.’ 사회주의를 형성한 마르크스 경제학의 기초인 노동가치론을, 자본주의를 형성한 신고전파 경제학의 기초인 균형가격론을 과학적으로 해체하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너무 오랜 세월을 요구했고, 그 바람에 여러 가지 어려움에 시달렸다.

    결론은 아주 쉽다. ‘그림으로 그린 파리채로는 날아가는 파리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서, 노동가치나 균형가격은 모두 ‘시간이 없는 2차원’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시간이 흐르는 3차원’의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경제현상을 절대로 포착할 수 없다. 사실 ‘서로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것은 조우할 수 없다’는 발상은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도출하는 데에 결정적인 구실을 하지 않았는가.

    좌절의 연속, 그러나 희망이…

    이 열쇠를 나는 20여 년이 지난 뒤에야 찾아냈고, 1991년 ‘사상과 경제학의 위기’라는 책을 내놓았다. 어리석게도 나는 이 책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줄 알았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과학적으로 해체했다는데 어느 누가 관심을 갖지 않겠는가.

    그러나 세상은 그게 아니었다. 메아리조차 없었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의무를 해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아니, 경제적으로 가족을 돌보는 일이 너무 다급했다. 이제는 덤으로 사는 인생, 즐겁게 살자고 다짐까지 했다. 그러자면 경제학과는 인연을 끊어야 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것은 몰입을 요구했고, 그 몰입은 당면한 경제난을 외면하게 했던 것이다.

    작심하고 또 작심했건만 그 뒤로도 경제학은 내 발목을 놓아주지 않았다. 생활인으로 돌아가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던 중, 뜬금없이 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천동설이나 다름없는 현 경제학을 지동설로 전환할 만한 새로운 이론 틀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게 무슨 악연이란 말인가.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던 일을 또 해야 하다니. ‘그래 이 일을 빨리 끝내고 인생을 즐기는 일로 다시 돌아가는 거다. 그때는 가족을 거느린 가장으로서 돈 버는 일에도 게을리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금방 끝낼 수 있을 것 같던 이 일도 만만치 않았다. 좌절의 연속이었고 시간은 자꾸만 흘러갔다. 거의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 상태에 이르렀을 때, 나를 분발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내 글을 읽은 어느 독지가가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줬고, 여기에 실린 글을 읽은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후원회를 조직해 연구소까지 개설해줬다. 이제는 꼼짝없이 경제학 연구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고, 제자들까지 생겨났다. 앞에서 언급한 두 책은 이렇게 탄생했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회상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 참기 어려운 통증이 귀에서 느껴졌다. 비행기는 벌써 홍콩공항에 내리기 위해 강하 중이었다. 극심한 통증이 약이 된 것일까.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유람을 즐기겠다는 마음이 더 굳어졌다. 이제는 머릿속을 깨끗이 비워서 백지를 만들고 싶었다. 그 백지 위에 남은 인생을 설계하고 싶었다. 그러나 똥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더니 내가 그 꼴이었다. 홍콩을 유람하면서도 그곳 경제현상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외면하려고 해도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너무 부러워 더욱 그랬을 것이다.

    홍콩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5000달러로 우리나라보다 크게 높지는 않다(한국은 2005년 말 현재 1만7000달러). 국민소득이 5만달러를 훨씬 넘는 노르웨이나 룩셈부르크, 4만달러를 넘는 미국 등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나라는 먼 이웃으로 느껴지는 반면 홍콩은 가까운 이웃이 아닌가.

    홍콩에 부는 부동산 투기 바람

    홍콩 여행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연말에도 한 번 둘러본 적이 있다. 그때 여행은 목적의식이 뚜렷했다. 경제지표로만 들여다보는 중국 경제가 아니라 그 현장의 일부라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중국의 최근 경제번영을 일으키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 외국 자본의 유치, 이것을 이끌어낸 홍콩의 금융 중심가를 먼저 둘러봤다. 또 그 혜택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입은 중국 본토의 선전(深玔)도 둘러봤다. 그 여행에서 중국 경제가 얼마나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실감했고, 우리도 경각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재야 경제학자 최용식의 홍콩 경제 유람기

    완푸아에서 홍콩 섬으로 향하는 페리. 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교통 수단이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관점에서는 중국 경제가 우리에게 대단히 위협적인 존재이지만,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관점에서는 대단히 좋은 기회라는 사실도 함께 재인식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 우리 곁에 있다면 도전하는 처지에서 얼마나 큰 행운이겠는가!

    실제 중국과 경제관계에서 최소한 현재까지는 우리나라가 큰 혜택을 입고 있으며, 그 혜택의 크기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對)중국 무역수지 흑자규모는 2001년까지 50억달러를 오르내렸으나, 2002년부터 급증해 지난해엔 233억달러에 이르렀다. 이것은 우리나라 전체 무역수지 흑자 232억달러보다 많다. 간단하게 말해서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무역으로 먹고 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때와는 다른 시각으로 홍콩 경제를 살펴보고 싶었다. 홍콩 경제의 강점이 무엇이고,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느긋하게 유람이나 즐기자던 당초의 생각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지고 없었다. 물론 사이쿵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 골프장에도 들르는 등 즐기는 여행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일이 발품을 팔아서 여기저기 둘러봤다. 홍콩 섬의 금융 중심지, 주룽(九龍·광둥어로는 카오룽으로 발음)반도의 상업중심지 뒷골목, 이런 곳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서민이 사는 동네를 혼자 걸어서 둘러봤다. 홍콩 섬 동쪽의 리버스베이 등 부자가 산다는 동네는 지난번 여행에서 이미 둘러봐 이번에는 가지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주요 도로의 모퉁이마다 새롭게 들어선 부동산 중개업소 간판들이다. 홍콩에도 부동산 투기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은 홍콩 경제가 과거의 침체에서 벗어나 다시 도약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홍콩 경제는 2001년부터 심각한 경기부진을 겪었다. 하지만 2003년부터 차츰 살아나기 시작하더니 2004년부터는 본격적인 호조를 보이는 중이다. 성장률은 2001년 0.5%에서 2003년에는 3.2%로 뛰었고, 2004년에 8.6%를 기록한 뒤 2005년에도 7.3%라는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래서 홍콩이 영국령(領)에서 중국으로 반환될 때에 떠났던 부자들이 돌아오고 있으며, 중국 본토의 부자들도 홍콩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보다 더한 것

    깜짝 놀란 것은, 새로 지은 주상복합빌딩 꼭대기층에 들어선 아파트를 경매했는데 우리 돈으로 무려 1000억원에 팔렸다는 얘기였다. 값이 비싸서 놀란 것은 아니다. 이 아파트는 복층 형식이고, 내부에 수영장까지 갖춘 초호화판이라고 하니 결코 비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천문학적인 가격이 그저 놀랍기만 했다. 어떻게 그런 가격의 아파트를 지어서 팔 생각을 했을까. 그게 팔릴 거라고 생각한 것이 놀랍지 않은가. 만약 우리나라에서 어느 기업이 이런 아파트를 지어서 팔겠다고 나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언론은 어떤 방향으로 보도할 것이며 국민여론은 어떻게 나타날까. 이런 엄청난 가격의 아파트를 매입한 사람은 과연 어떤 꼴을 당할까. 그러나 홍콩인들은 그런 기업과 그런 사람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본다고 한다.

    나는 가끔 이런 농담을 하곤 한다. 세계 7대 불가사의보다 더한 불가사의가 두 가지 있는데, 중국이 공산주의를 했다는 사실과 대한민국이 자본주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중국인은 돈만 보면 눈이 뒤집힌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지갑 속의 돈을 보여주면 목숨을 부지하기가 어려울 정도라고도 한다. 그런 중국인이 공산주의를 했다는 사실이 불가사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반면 한국 사람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처럼 부자에 대한 질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심지어 국가경제의 번영을 이끌어야 할 기업에 대해서도 극단적인 반감을 드러내기 일쑤다. 이런 우리나라가 자본주의를 하고 있으니 이것도 불가사의가 아니겠는가.

    이는 국가경제의 장래를 위해 심각하게 생각해볼 문제다. 과연 부자와 기업에 대한 우리의 정서적 반감이 국가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지금처럼 반감이 드센 상태에서 부자와 기업은 어떤 생각을 할까. 혹시 존경받는 곳으로 탈출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기업과 부자들은 그런 곳으로 탈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자는 세금을 많이 내서 국가재정에 기여하고, 기업은 일자리를 만들어서 국민을 부양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반감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면 장차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까.

    우려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홍콩에는 한국의 이건희 삼성 회장 수준의 부자가 수천명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렇게 홍콩이 부자들의 천국이 된 것도 부자와 기업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미미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홍콩이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있고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가 된 것은 아닐까.

    택시비 1만원, 뱃삯은 200원

    재야 경제학자 최용식의 홍콩 경제 유람기

    주룽반도 중심가, 나단 거리. 100년 전 조성된 길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넓다.

    그렇다고 홍콩이 부자만의 천국은 아니다. 서민을 위한 배려도 사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서민이 언감생심 1000억원짜리 집에서 살 생각을 할 수는 없겠지만, 집 장만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주택은 금융기관이 소유하고 있는데, 임대료가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물론 임대료가 비싼 집도 있지만 싼 집도 많아서, 자신의 소득수준에 맞추면 그만이다(중산층이 사는 시내 중심의 15평형 아파트 월 임대료가 90만원).

    부동산 투기가 지금같이 거세게 일어나도 서민에게는 ‘강 건너 불’로 여겨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살아가는 데에 불편함이 거의 없는데, 부동산 투기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부동산 투기에 편승해 돈을 벌고 싶다면 각종 부동산신탁 상품에 투자하면 그만이다. 개인이 부동산에 직접 투자할 경우 발생할 위험부담까지 피할 수 있어서 이 금융상품은 대중적인 투자수단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교통수단도 서민이 살아가는 데에 불편함이 없다. 예를 들어 주룽반도에서 홍콩 섬으로 갈 때 택시를 타면 요금이 우리 돈으로 약 1만원이 든다. 그런데 배편을 이용하면 단돈 200원이면 된다. 배를 기다리는 불편만 감수하면 그만이다. 오히려 내 경험으로는 해저터널을 통해 건너가는 택시보다 배가 훨씬 더 나아 보였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면 주변의 풍광을 구경할 수 있고, 신선한 공기도 마실 수 있다. 시간이 훨씬 더 걸리는 것도 아니다. 물론 배에서 내려서 걷거나 버스 또는 전동차로 갈아타야 하지만 말이다. 이것이 싫다면 1000원이 조금 넘는 지하철을 타면 된다. 어떻든 이런 교통정책을 펴는 홍콩 정부가 내 눈에는 그저 부럽기만 했다.

    음식 값이 천차만별인 것도 이곳을 서민이 부자와 공생할 수 있는 터전으로 만드는 한 요인이다. 일류 호텔의 한 끼 식사 값은 수만원에서 수십만원을 호가하지만, 그 호텔 지하에는 3000~4000원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점이 줄지어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서민에 대한 배려가 깃들여 있는 것 같아 매우 인상적이었다.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부자들도 사회적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호텔의 저층에는 세계적인 명품을 파는 상가가 있기에 이곳을 찾아오는 고객을 위한 배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실정에 젖은 내 눈에는 서민을 위한 배려로만 보였다. 우리나라 일류 호텔이나 백화점에서는 이처럼 싼 값의 음식을 파는 곳을 찾기 어려우니 말이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홍콩에 홀딱 반한 데에는 중국 음식도 한몫 했다. 지난번 여행에서는 싸구려 음식점만 드나들었는데, 독특한 향료냄새 때문에 입맛에 맞지 않아 고생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제법 고급스러운 음식점을 찾아다녔더니 그 맛이 세상 어느 요리에 못지않았다.

    가짜는 OK, 거짓말은 NO!

    그렇다고 음식 값이 그리 비싼 것도 아니었다. 한번은 외곽의 어느 고급 음식점에서 세 가지 요리를 시키고 제법 유명한 중국산 술까지 곁들였는데, 3만5000원이 나왔다. 세 사람이 함께 식사를 했으니, 한 사람당 1만2000원도 안 되는 셈이다. 그 요리 중 한 가지를 서울의 중국음식점에서 먹으려면 30만원은 지급해야 하지 않을까. 그 뒤로는 이런 음식점만 찾아다니면서 음식을 충분히 즐겼다. 중국 요리가 세계 최고라더니, 역시 그런 평판을 들을 만했다. 육류나 조류나 해산물 음식이 모두 그랬다.

    홍콩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쇼핑천국’이라고 말하고 싶다. 길거리는 온통 관광객들이 점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이들은 쇼핑을 위해 홍콩을 찾은 것처럼 보였다. 길거리마다 널린 것이 세계적인 명품을 파는 상점인데, 관광객들로 문전성시였다. 나도 그들 틈에 끼어서 이른바 아이쇼핑이라는 것을 해봤는데, 우선 물건 값이 아주 싼 것에 놀랐다. 우리나라에서 200만∼300만원에 팔리는 유명 골프채가 홍콩에서는 100만원에 팔린다. 수입관세와 특소세는 물론이고 부가세까지 없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것은 절대로 고객을 속이는 일이 없다는 사실이다. 길거리를 가다보면 호객꾼들이 “가짜 롤렉스 있어요” “가짜 루이비통 있어요” 하고 외친다. 만약 가짜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물건을 팔면 그 처벌 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가짜를 파는 것은 눈감아줄 터이니 고객을 속이는 짓만 하지 말라는 것이 고도의 홍콩 상술이었다.

    재야 경제학자 최용식의 홍콩 경제 유람기

    (맨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배우 전지현의 대형 사진이 붙은 버스, 금융 중심지의 상징인 IFC(국제금융공사) 건물, 홍콩 중심가를 향하는 곤돌라.

    이런 상술을 술집에서도 실감했다. 어느 술집에 들어갔더니 커다란 메뉴판이 눈에 잘 띄는 곳에 걸려 있었다. 중앙 테이블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면 한 병 값이 우리 돈 2000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옆 안락의자로 옮기면 2만원을 내야 하고, 칸막이가 있는 곳으로 옮기면 10만원을 내야 한다고 적혀 있다. 바가지를 씌우더라도 사전에 충분히 알리고 나서 그렇게 하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상술이 홍콩을 쇼핑천국으로 만들었을 것이며, 쇼핑천국이 관광천국을 만들었을 터다.

    홍콩 여행이 끝나갈 무렵 주룽 반도 바닷가에 있는 한 호텔 라운지에서 홍콩 섬을 바라보며 늦은 저녁시간에 술잔을 기울였다. 대형 유리창으로 보이는 홍콩만의 밤바다도 멋스러웠지만, 저 멀리 홍콩의 밤을 밝히는 대형건물의 조명과 무수한 네온 광고판이 부러웠다. 홍콩관광의 명물이라고 하는데, 내 눈에는 홍콩 경제가 얼마나 번영하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중에는 삼성이나 LG 광고판이 세련되게 빛나 여행객의 가슴을 흐뭇하게 했다. 이제 우리 기업도 세계적인 기업과 경쟁하고 있다는 상징 같아 무척 자랑스러웠다.

    하늘 높이 솟은 마천루들이 온갖 광채를 발하면서 홍콩이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라는 사실을 밤늦도록 알려주는 것이 인상적이다. 노무현 정부가 우리나라를 동북아 금융허브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던 터라 더 특별한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소로스 같은 인물 나올 수 있나

    그때 불현듯 내 가슴속에서는 ‘우리나라에서도 홍콩처럼 금융 산업이 번성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술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이 의문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으며, 결국은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나라는 금융규제 지옥이다. 무엇보다 금융기관 설립조건이 까다롭고 부담스럽다. 예를 들어 자산운용사를 설립하려면 100억원의 자본금이 필요하고, 이것은 투자자금으로 활용할 수 없다. 사정이 이런데 어느 누가 감히 자산운용사를 설립할 수 있겠는가.

    모든 금융상품은 금융감독원의 허가를 받아야 판매할 수 있다. 세상은 급변하고 새로운 금융상품이 속속 등장하는데, 우리 금융회사들이 어떻게 국제경쟁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금융상품이자 금융기관인 헤지펀드는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이 땅에서는 소로스와 같은 세계적인 금융인은 태어날 수 없으며, 아마존 펀드 같은 세계적인 펀드도 생겨날 수가 없다. 론스타와 같은 금융기관은 더욱 태어날 수가 없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어떻게 동북아 금융허브를 만들겠다는 것일까. 홍콩의 번영하는 금융산업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내 가슴은 점점 더 무거워지기만 했다.

    또 하나 신기한 점은 홍콩에는 돈을 찍어내는 발권은행이 우리나라처럼 한 곳(한국은행)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홍콩상하이뱅크, 스탠더드차터드뱅크, 뱅크오브차이나 등 세 곳이나 된다. 이들은 민간은행이자 상업은행이다. 그럼에도 화폐량이 적정 수준을 넘어가 물가가 폭등하는 일은 거의 없다. 금융 불안도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금융기관 설립과 금융상품의 개발이 극단적으로 제한받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 후진국이라고 단정해도 지나치지 않다. 홍콩에선 국가권력의 강제력이 작용하지 않아도, 그리고 세 개의 상업은행이 화폐를 발행하고 있어도 그 가치가 지켜진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아마도 이것은 신용을 생명으로 여기는 금융기관의 전통이 오랜 세월을 거쳐 굳어진 덕분일 것이다.

    홍콩의 환율은 달러화에 대해 고정돼 있는데(미국 1달러=7.788 홍콩달러), 이것도 홍콩의 화폐가치를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로 인한 부작용도 없지 않아 보였다. 국제수지 흑자 기조가 지속됨에 따라 외환보유고가 지나치게 쌓여 통화증발 압박을 받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최근에 부동산 투기바람이 일어난 것도 이런 데에 근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장차 홍콩달러화의 가치가 한꺼번에 폭등하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 심각한 문제로 보였다.

    거미줄 같은 도로망, 북적이는 항만

    홍콩은 좁은 지역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살고 있지만(홍콩 주민 인구는 약 700만이지만 유동인구까지 합할 경우 1000만이 넘는다고 한다), 교통난이 심각하지 않다는 것도 특별한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밀집도가 높은 장점을 최대한 살린 점이 눈에 띄었다. 특히 홍콩 섬의 대형 건물들은 한건물처럼 통로가 연결돼 있어 비 오는 날에도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다닐 수 있다. 이는 세계적인 명품을 파는 가게들을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게 해주는 이점이 된다.

    주차비용 때문인지 자가용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도로망과 교통체계가 매우 합리적으로 설계되어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지하철을 옮겨 탈 때도 우리나라처럼 한참 걸어갈 필요 없다. 내린 자리가 바로 옮겨 타는 자리다.

    홍콩은 산악지대여서 사람들 사는 곳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거미줄 같은 고가도로망이 이런 곳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수십km 떨어진 곳도 불과 몇십분이면 갈 수 있다. 한 시간 이상 걸리는 곳은 거의 없다. 이런 점은 우리나라 수도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에(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자동차 전용도로나 간선도로마저 교통지옥을 방불케 하지 않는가) 더욱 부러웠다. 또한 시내의 도로망은 간선도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방통행이고 신호등 체계도 합리적이어서 출퇴근 시간에도 신호등을 한 번 넘게 기다린 적이 없다.

    또 하나 부러운 것은 잘 발달된 항구다. 홍콩만이라는 천혜의 지형이 자연적인 방파제 기능을 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곳곳에 항구가 들어섰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항구들은 도로망과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다. 항구마다 큰 배들이 정박해 있는 것이나 부두에 컨테이너가 즐비한 것 등은 홍콩 경제의 번영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홍콩은 제조업 기반이 거의 없지만 수출규모가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크고 무역규모는 홍콩 국내총생산의 1.6배를 넘는다. 잘 발달된 항구들이 무역화물의 중계기지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홍콩 길거리에서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미인을 볼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보통 미모의 여성이 와도 모든 이의 눈이 휘둥그레질 것만 같다. 골프장에 갔을 때에야 미인이 한두 명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홍콩 사람들이 남방계라서 그런가 싶었지만, 혼혈인이나 외국계도 마찬가지였다.

    거리에 미인이 없는 이유

    뭔가 이상해서 홍콩을 잘 아는 분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미인은 길거리를 돌아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굳이 돌아다닐 일이 있으면 자가용을 이용한단다. 홍콩인, 특히 중국계 홍콩인은 돈 앞에서도 그렇지만 미인 앞에서도 사족을 못 쓴다. 그래서 아무리 집안이 미천하고 배운 것이 부족해도 얼굴만 예쁘면 그만이다. 이 때문에 남자의 돈과 미인이 결혼하는 일이 흔하다.

    재야 경제학자 최용식의 홍콩 경제 유람기
    崔用植
    ● 1952년 광주 출생
    ●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 민주당 정책위원,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 경제2분과 행정관, 한전산업개발 감사 역임
    ● 21세기경제학연구소 소장
    ● 저서 : ‘사상과 경제학의 위기’ ‘경제역적들아 들어라’ ‘대한민국 생존의 경제학’‘2017 한국경제 후지산 정상에 태극기 휘날리며’


    이번 여행은 내게 많은 것을 배울 기회를 주었다. 무겁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는 모든 미련을 털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래저래 이번 여행은 아주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줄 것 같다. 아까운 시간과 비용을 베풀어준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이 글에 소개한 것이 우리 경제에 작은 도움이나마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홍콩을 벤치마킹하겠다는 지방자치단체들에도 참고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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