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호

동맥경화증의 주범, 대혈관 합병증을 잡아라

  • 박중열 교수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내분비내과

    입력2006-06-16 14: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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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맥경화증의 주범, 대혈관 합병증을 잡아라
    작은 상처로 다리 잃을 수도

    60대 초반의 자영업자 강모씨. 오른쪽 발이 시커멓게 썩어간다며 병원을 방문했다. 한 달 전 공중목욕탕에 갔다가 발뒤꿈치를 살짝 긁힌 것이 화근이었다. 별반 아프지도 않고 큰 상처도 아니어서 약만 바르고 내버려두었다. 잠시 잊고 지내다 어느 날 문득 발을 본 강씨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상처 부위가 점점 넓어지고 색깔이 검어지는 등 살이 썩어가는 증상(괴저)이 나타난 것이다. 급히 병원을 찾았지만 발에 난 상처는 이미 상태가 나빠질 대로 나빠져 있었다.

    강씨가 당뇨병 진단을 받은 시점은 이미 20여 년 전. 10년 전부터는 혈당 조절을 위해 인슐린을 쓰고 있고, 고혈압 치료제까지 함께 복용해왔다. 평소 조금만 걸어도 종아리가 땅기고 아팠지만 병원을 찾지 않았다. ‘혈당조절만 열심히 하면 됐지’ 하고 방심한 탓에 상처가 나기 전부터 그의 다리는 이미 종아리 부위 동맥의 일부가 막혀 있었던 터였다. 시술로 막힌 부위를 회복시켰으나, 이미 썩어 들어간 오른쪽 발목은 절단해야 했다.

    동맥경화란 말 그대로 동맥이 딱딱해진다는 뜻이다. 혈관의 안쪽을 둘러싸고 있는 세포에 지방이 많이 쌓여 혈관 통로가 좁아지거나 막히는 증상, 질병을 말한다. 동맥경화증의 원인은 여러 가지인데 육류를 많이 섭취하는 서구식 식생활에 따른 비만, 고지혈증, 고혈압, 흡연 그리고 당뇨병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이런 요인들은 혈관 세포에 이상 반응을 일으키게 하고 세포내에 많은 지방을 쌓이게 한다. 동맥경화증은 특히 당뇨병 환자에게 잘 나타난다. 따라서 당뇨병을 겪고 있다면 동맥경화증의 합병증에 대해 관심을 갖고 예방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혈관은 우리 몸 구석구석, 모든 장기에 퍼져 있다. 그러나 증상은 크게 세 군데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동맥경화는 나타나는 곳에 따라 3 종류로 나뉜다. 뇌혈관, 심장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해주는 관상동맥이 경화되는 증상과 강씨처럼 다리 혈관이 좁아져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뇌혈관에 동맥경화가 심해지면 뇌졸중으로 갑자기 입이 돌아가거나 한쪽 팔, 다리가 마비되는 증상이 나타난다. 심장의 관상동맥에 문제가 생기면 운동이나 흥분 상태에서 가슴에 통증이 오는 협심증, 심근경색, 심지어 급사로 이어질 수 있다. 다리의 혈관이 좁아지면 파행(claudication, 일정 거리를 걷게 되면 하체 쪽으로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종아리 부위에 통증을 느끼는 증상) 혹은 상처가 잘 아물지 않는 증상이 나타난다.



    당뇨 환자들에게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세 번째 경우다. 당뇨 환자는 다리의 감각이 떨어지기 쉽다. 그래서 상처가 크게 번져도 아픔을 잘 느끼지 못할뿐더러 나이가 많을수록 감각은 더 떨어진다. 가벼운 상처는 아예 모르고 지나가기도 다반사다. 당뇨병이 있으면 혈관 질환이 생길 확률이 더 높아지므로 당뇨 환자들은 필히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

    동맥경화증의 증상이 다양하듯 동맥경화증을 방치해 나타나는 최악의 상황 또한 다양하다. 당뇨병 환자들에게 이런 끔찍한 결과에 대해 설명을 해도 대부분 설마설마 하며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동맥경화증의 합병증으로 입원해 치료를 받는 당뇨환자가 생각보다 많다. 심지어 뇌혈관 동맥경화증으로 몸의 일부가 마비되거나 생명과 직결된 부위가 막혀 생사의 갈림길에 서는 경우도 결코 드물지 않다. 협심증과 급성 심근경색으로 하루에도 수십명이 응급실을 찾고, 막힌 부위를 뚫어주는 수술을 받거나 가슴을 열어 직접 관상동맥에 다른 혈관을 잇는 수술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나마 치료를 받고 회복될 수 있다면 다행이다. 당뇨병 환자들은 관상동맥이 매우 좁아지더라도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아 손도 써보지 못한 채 급사에 이를 수 있다. 다리 혈관의 동맥경화로 다리의 일부를 영영 잃는 안타까운 일을 겪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의 통계에 따르면 외상을 제외한 하지 절단 수술 사례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당뇨병에 의한 말초혈관의 동맥경화증이라는 보고도 있다. 결국 이러한 모든 합병증의 종말은 환자의 삶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오게 되며, 당뇨병 환자의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이 되고 있다.

    동맥경화를 예방하려면 환자 자신이 사소한 증상도 소홀히 하지 않고 꼼꼼히 봐뒀다가 이상이 발견되면 바로 병원을 찾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당뇨병이 있다면 더욱 주의해야 한다. 당뇨병 진단을 받을 때부터 이미 동맥경화증이 상당히 진행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당뇨병과 함께 고혈압, 고지혈증, 비만 등 다른 만성질환을 함께 갖고 있는 경우도 흔하다. 이미 동맥경화증이 상당히 진행됐더라도 특별한 증상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신체 일부분이 마비되거나 심장마비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동맥경화증의 주범, 대혈관 합병증을 잡아라

    스텐트를 삽입해 막힌 관상동맥을 넓히는 모습(왼쪽)과 경동맥을 직접 절개해 혈관에 끼인 지방을 제거하는 모습.

    당뇨병은 이처럼 동맥경화증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높기 때문에 예방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당뇨병의 심혈관 질환, 특히 관상동맥 질환에 대한 위험도는 과거에 심근경색을 경험한 일반 환자의 위험도와 비슷하다. 따라서 자신의 증상에 대해 검진을 받는 적극적인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뇨병을 제외한 동맥경화증의 위험요소인 고혈압, 고지혈증, 비만, 흡연 등에 대한 관리도 빼놓을 수 없다. 고혈압이 있으면 수축기 혈압 130, 이완기 혈압 80 상태를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약을 철저히 복용하고, 짠 음식을 멀리한다. 고지혈증에 대해서는 나쁜 콜레스테롤(LDL, Low density lipoprotein)이 100 미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식이요법과 약물요법을 꾸준히 병행한다. 이미 뇌혈관이나 심장혈관의 질환으로 아스피린과 같은 항혈소판제제를 복용하고 있다면 추가적으로 혈관 합병증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혈당 조절을 잘 하고 있다고 방심해선 안 된다. 혈당 조절의 정도와 동맥경화 예방에 대한 관계는 아직까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혈당 조절은 당뇨병의 또 다른 합병증인 작은(미세) 혈관 합병증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엄격한 혈당 조절은 중요하다.

    최신 치료법 속속 등장

    동맥경화증을 진단하는 방법은 부위와 증상에 따라 모두 제각각이다. 뇌혈관 동맥경화증의 진단은 실제 뇌혈관이 얼마나 좁아져 있는지에 대한 검사로 경동맥 도플러 초음파나 뇌혈관 MRI가 도움이 된다. 심장 관상동맥에 대한 검사는 심전도, 운동부하, 핵의학 검사를 통해 1차 선별을 한다. 이상이 발견되면 ‘관상동맥 조영술’로 해당 부위와 범위를 확인한다. 다리 혈관의 동맥경화증을 진단하려면 다리 쪽의 혈압을 구역별로 측정해 차이가 있는지 알아본다. 혈관 조영술은 마지막 단계에서 시행한다. 최근에는 CT 검사를 통한 혈관 조영술이 동맥경화증의 정도를 판단하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과거와 달리 동맥경화 합병증을 치료하는 좋은 수술법이 개발돼 있다. 우선 뇌혈관, 특히 목에 있는 경동맥이나 심장 근육에 영양을 공급해주는 관상동맥이 좁아진 경우에는, 좁아진 부위에 직접 가느다란 관을 넣은 후 풍선으로 넓혀주거나 스텐트를 삽입해 다시 좁아지는 것을 막아주는 시술이 널리 이용된다. 혈관이 꽉 막혀 들러붙어 있거나(협착) 그 부위가 길게 분포된 경우에는 스텐트 삽입 같은 방법을 쓰기 어렵다. 이때에는 경동맥의 경우 혈관을 직접 절개하여 그 안의 지방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기도 한다.

    심장의 관상동맥 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건강한 혈관을 붙여 통로를 만들어 주는 수술을 시행하게 된다. 하지(다리)의 동맥이 좁아진 경우에도 같은 방법을 이용하거나 인조 혈관 수술을 통해 혈액순환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최근엔 이러한 시술을 받은 환자의 증상 개선 정도가 매우 뛰어나며 뇌졸중, 심근경색의 발생률을 상당히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한 하지 혈관의 동맥경화로 인한 괴저 발생 위험을 낮춤으로써 하지 절단을 막을 수 있다.

    동맥경화증으로 합병증이 생겼더라도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으면 나아질 수 있다. 그러나 위험 인자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한다면 아무리 좋은 치료법이라도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동맥경화증이 계속 진행되기 때문이다.

    朴重烈
    서울대 의대와 대학원(의학박사)을 졸업하고 현재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로 재직 중. 미국 하버드 의대 조슬린(Joslin) 당뇨병센터 교환교수를 역임한 바 있으며, 60여 편의 논문을 국내외에서 발표하는 등 당뇨병 연구에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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