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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전의 ‘자산어보’ 진본 미스터리

‘흑산도 유배자’ 혼 담긴 탐구일지, 200년 만에 빛 보나

  • 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정약전의 ‘자산어보’ 진본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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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옹은 정 박사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가 제각기 자신이 소장한 자산어보에 대해 정약전의 자필본일 가능성을 제기하기 전부터 이미 이 책이 진본임을 짐작할 만한 몇 가지 단서를 들고 있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 진본 미스터리

자신이 소장한 ‘자산어보’가 진본이라고 주장하는 石山 진기홍 옹. 오른쪽은 자산어보와 함께 발견된 다산 정약용의 ‘이담속찬’(판각본).지호영

“자산어보는 파지(破紙)로 공중분해되기 직전, 정말 우연한 기회에 내 손에 들어왔지요. 그건 운명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때 내 손에 같이 들어온 책이 대부분 정약전의 동생인 다산의 책 진본이었지요. ‘동언잡식(東言雜識)’ ‘이담속찬(耳談續纂)’(옆쪽 사진)…. 형제의 책이 같이 발견된 점으로 미뤄 정약전 선생의 자필서임을 확신했습니다. 더욱이 원 소장자가 ‘조선한문학사’와 ‘조선가요집성’을 쓰고 실학에도 관심이 깊었던 국문학자 김태준(金台俊·1905∼49) 선생이라 심증을 굳혔죠.”

그가 말하는 ‘우연한 기회’란 무엇이고 국문학자 김태준과의 인연은 어떤 것일까. 진옹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가 자산어보의 원소장자였던 김태준의 죽음으로부터 자산어보를 구한 후 정약전의 친필을 찾아 헤매는 과정을 재구성해봤다.

광복 후 좌우익의 대립이 극에 달한 1949년 11월 어느 날, 서울 수색(水色) 형장에서 일제치하의 국문학자이자 좌익 선동가였던 김태준이 공개 총살형을 당했다. 죄목은 이적행위 및 간첩죄. 이희승, 조윤제와 함께 조선어문학회를 구성하고, 경성제국대학 조선문학 담당 강사를 지낸 그는 ‘조선한문학사’와 ‘조선소설사’(1931년 동아일보 연재) 등을 쓴 국문학계의 거두였다.

그는 일찍이 박헌영과 함께 좌파 독립운동을 벌이다 해방이 되자 조선공산당에 가입해 활동했다. 6·25전쟁이 발발하기 1년 전부터 남로당 문화부장 겸 특수정보 책임자로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전개했던 김태준은 그해 9월 빨치산 국군토벌대에 붙잡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일제 강점기 좌파 지식인 대부분이 그러했듯 그도 다산 정약용 등 실학파에 많은 애정을 보였으며, 그런 정황은 그가 쓴 각종 문헌에 잘 나타나 있다.



김태준이 죽고 1년2개월 후인 1951년 1월 말. 1·4 후퇴 이후 중공군에 밀려 서울까지 내려온 육군 모 사단 소속 김모 중위는 상급자로부터 ‘서울 마포나루 인근에 있는 공산당 협력자의 집을 수색해 불온서적을 압수하고 부산으로 철수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서류상 가장 먼저 대상에 오른 곳은 김태준의 거처. 마포 김태준의 집에 도착한 그는 집안에 있던 서류와 책들을 꺼내 일부는 태우고 남은 책은 찢거나 묶은 채로 트럭의 짐칸에 올려놓았다.

그로부터 보름여가 흐른 1951년 2월10일 전주저금관리국(현재의 우체국) 마당. 250명의 직원을 거느린 관리국 국장은 36세의 청년 진기홍이었다. 진 국장이 평소보다 30분 정도 일찍 출근해 마당에 들어서자 군용 트럭 한 대가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서울에서 김태준의 집을 수색한 김 중위가 몰고 온 트럭이었다. 화물칸에는 파지(破紙)들이 뒤엉켜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진 국장은 파지를 뒤져 깊숙이 박혀 있는 두 묶음의 책을 발견하고 냉큼 집어들었다.

당시 진 국장은 그것이 김태준이 소장하던 책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책은 아주 오래된 고서들이었지만 상태가 양호했다. 진 국장이 다른 책이 더 있는지 살펴보려 할 때 김 중위가 관리국에서 뛰쳐나와 “당신 뭐야! 뭐 하는 거야”하고 호통을 쳤다. 진 국장이 “못쓰는 파지 중에 쓸 만한 책이 있나 해서 본 건데 뭐가 문제요”라고 따지자 김 중위는 아무 말 없이 차를 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민족 최초의 어류박물지와 속담 모음집이 먼지로 사라지기 일보 직전에 목숨을 구하는 순간이었다.

며칠 후 진 국장은 평소 알고 지내던 가람(嘉藍) 이병기(李秉岐·1891∼1968) 선생을 만나 사연을 전하고 그때 구한 책들을 보여주니 가람 선생은 깜짝 놀라 “그 차가 어디로 갔는지 아느냐”며 “빨리 그 차를 뒤쫓아야 한다”고 말했다. 행여 귀한 책이 더 있을지 모르니 불타 없어지기 전에 빨리 구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2월10일(1951년) 숙직을 한 저금관리국 수위에게 수소문한 결과 군인들이 전주 상계면 지소로 갔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뒤늦게 쫓아갔지만, 문제의 차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행방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진옹은 이후 트럭에서 나온 고문서 속으로, 또 정약전·약용 형제의 삶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가 이후 평생 고문서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된 것도, 우정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 사건 때문이었다. 가람 선생에게서 대충 이야기를 들었지만 트럭에서 나온 고문서는 대부분 정약전·약용 형제의 자필본이거나 판각본이었다.

진본 심증 굳히다

당시에 구한 동언잡식은 다산이 중국의 방대한 문헌 중 조선 사람에게 꼭 필요한 책들을 내용별로 정리한 일종의 ‘중국 문헌 백과사전’으로, 현재는 다산 연구자에게 넘어가 ‘여유당전서’에 포함돼 있으며, 이담속찬은 다산이 16세 때에 시작해 49세에 완성한 책으로 중국 속담과 자신이 직접 듣고 채집한 한국 속담들을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다산이 생전에 본을 떠 출간한 유일한 책(판각본)인 이담속찬은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1부가 있지만 상태가 좋지 않아 내용을 알아보기 어렵다.

진옹은 “다른 책들은 연구가들과 공유했지만 이담속찬만은 내주지 않을 것”이라며 “다산의 해학과 경륜, 장난기가 그대로 묻어 있는 너무 좋은 책이자 나의 최고 애장본”이라고 했다. 그는 “백과사전에 이담속찬의 표지가 중국 책 야언(쿓言)을 따다 붙인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완전히 잘못 알려진 것으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산은 이담속찬에서 자신을 ‘철마산초(鐵馬山樵)’라고 밝히며 이 책을 출판한 출판사가 ‘호고당(好古堂)’이라는 둥, 책 곳곳에서 갖은 익살을 부리고 있다.

자산어보에 대한 애정은 전쟁 중에도 그를 흑산도로 데려갔다. 진옹은 출장을 핑계 삼아 흑산도를 찾아 정약전의 발자취를 추적했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을 수 없었다. 그후 10년의 세월이 훌쩍 흐른 1960년의 어느 여름날, 그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자신이 소장한 자산어보와 똑같은 필사본을 만나게 된다. 틀린 부분도 똑같고 빠진 부분도 정확히 일치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분명 다른 사람이 쓴 필사본인데 거기에는 이 책의 원본 소장자가 ‘천태산인(天台山人) 김태준’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확인해본 즉, 자산어보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김태준은 일제시대에 이미 자신이 소장했던 자산어보를 베껴서 국립중앙도서관과 서울대 규장각에 기증한 것이었다. 현존하는 자산어보 8개 필사본 중 2개가 김태준이 소장한 자산어보를 베낀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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