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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군인에게 야전교범과 함께 인문학 서적을

‘배틀, 전쟁의 문화사’

  • 류한수 서울대, 아주대 강사ㆍ서양사 / petrograd@freechal.com

군인에게 야전교범과 함께 인문학 서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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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의 승리를 위하여

예를 들어보자. 18세기에 프랑스 군인은 화려한 군복을 입고 기하학적 대형을 이루어 전투를 치렀는데, 이런 양상은 당대의 미적·사상적 취향이 반영된 것이었다. 횡대로 늘어서서 일제사격을 하는 당시의 전쟁 방식도 계몽주의 사상의 산물이며 평민 병사를 하찮게 여기는 귀족 장교의 가치관이 드러난 것이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면,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숙적인 프랑스와 독일은 1940년에 똑같이 탱크를 보유한 현대군으로써 맞붙었다. 프랑스 육군의 치욕스러운 패배와 독일 육군의 빛나는 승리는 탱크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시각 차에서 결정됐다. 프랑스는 탱크를 보병 부대 지원 용도로 간주하고 탱크 부대를 잘게 쪼개 전선에 분산 배치한 반면, 독일은 탱크를 전략 무기로 보고 탱크를 한데 모아 독자적인 탱크 부대를 조직해 적의 전선을 신속하게 꿰뚫도록 했던 것.

이렇듯 군인의 머리에 든 사고방식과 개념, 그의 몸에 밴 가치체계와 관습이 전쟁의 진행과 결과에 중요하다면, 한국과 미국의 군대는 흡사한 무기 체계와 편제를 지녔지만 전투 방식이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결론은 현대식 무기와 편제를 갖추고도 이스라엘군에 번번이 패한 이집트군이 1967년에 자국의 관습과 군사문화에 맞는 전략과 전술을 구사해서 10월 전쟁에서 처음으로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다는 린의 설명으로 더욱 분명해진다.

린이 맞다면, 대한민국 국군의 승리는 앞선 나라의 군사 교리를 그대로 따르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 군인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면밀한 연구 대상으로 삼을 때 보장될 것이다. 야전 교범만큼이나 인문사회 서적이 우리나라 군인에게 필요할 듯싶다.



풍부한 지식을 동원해서 기술 못지않게 문화가 전쟁의 수행 방식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는 명제를 입증한 ‘배틀, 전쟁의 문화사’는 저자 존 린이 뛰어난 싸움꾼임을 보여준다. 그는 군사사 학계의 거목 빅터 핸슨에게 정면 공격을 가한다. 핸슨은 서구 문화권의 군대가 천하무적이 된 까닭은 속임수나 외교에 기대며 결전을 회피하는 습성을 가진 다른 문화권의 군대와 달리 죽음을 각오하고 정면 대결을 벌이는 전통에 익숙하기 때문인데, 이런 전통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시민군에 있다고 주장한다. 유럽이 오늘날 세계의 패권을 거머쥘 지배자가 될 운명이 수천년 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니!

유럽중심주의와 정면 대결

필자는 이런 주장이 담긴 핸슨의 저서 ‘살육과 문명’을 읽다가 책장마다 배어 있는 지독한 유럽중심주의와 오리엔탈리즘에 시쳇말로 ‘짜증 제대로’ 받았던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그리스에 쳐들어온 페르시아군을 마라톤 벌판에서 섬멸한 아테네의 중무장 밀집보병 부대와 아예 페르시아의 심장부로 들어가 제국을 점령한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도니아 군대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핸슨이 옳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던 기억이 난다. 그 ‘불안감’이 ‘배틀, 전쟁의 문화사’를 읽으면서 사라졌다.

린은 고대의 전쟁 수행 방식을 살펴본 뒤, 같은 아시아에 속하나 중국과 인도의 전투 방식이 꽤 달랐으며 정면 대결로 결전을 추구하는 전통이 중국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비유럽 문화권의 군대는 죄다 속임수와 외교에 치중해 결전을 피했다는 핸슨의 명제를 밑동부터 흔들어버린 셈이다. 매우 호전적인 클라우제비츠보다는 덜 살벌하고 섬세한 언어를 구사하는 손자(孫子)를 더 좋아한다는 린의 고백은 슬쩍 내비친 속내인데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유럽 중심주의와 맞싸우는 린은 근대 인도로 초점을 옮겨 영국에 고용된 인도인 용병 부대인 세포이가 발휘한 놀라운 전투력은 그들이 받은 영국식 훈련과 무기가 아니라 인도 고유의 가치관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며 통념에 도전한다.

하지만 독자는 1945년 8월에 일본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미국의 결정은 황인종을 경멸하는 인종주의적 편견이 아니라 오로지 군사적 고려사항에 입각해 내려졌다는 린의 주장을 미국을 감싸안으려는 애국심의 발로가 아닐까 의심하며 비판적으로 읽을 필요도 있다.

신동아 2006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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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수 서울대, 아주대 강사ㆍ서양사 / petrograd@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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