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호

2007년 대선 ‘최대 변수’? 민주당 한화갑 대표

“한나라당과 ‘정서의 공존’ 이어지면 ‘연합’ ‘통합’도 가능”

  • 조인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ij1999@donga.com

    입력2006-09-27 1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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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엔 대립적 ‘지역감정’, 요즘은 상대 인정하는 ‘지역정서’
    • “박근혜 요청으로 만난 적 있다…이명박과는 교류 없다”
    • 호남에서 ‘과거에 너희들이 차별한 것 시인 안 하냐’ 할 필요 없어
    • 고건과는 2월에 마지막 접촉…희망연대가 ‘희망’ 못 주고 있다
    • ‘실패한 DJP연대 반복할 수 없다’는 게 국민중심당 생각
    • 열린우리당 중도파도 수시 접촉…연말께 ‘헤쳐모여’식 신당 뜰 수도
    • 노 대통령 최대 업적은 ‘다시는 이런 정권 택하면 안 된다’는 교훈 준 것
    2007년 대선 ‘최대 변수’? 민주당 한화갑 대표
    9월11일 민주당 한화갑(韓和甲·67) 대표가 한나라당 중도 성향 의원모임인 ‘국민생각’ 의원들과 만찬을 함께했다. 요지는 “한·민 공조가 안 된다는 법은 없다”였다. 한 대표는 “한나라당이 좋은 법안과 정책을 제안하면 같은 야당인 민주당이 돕지 못할 것이 없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열린우리당은 이날의 모임을 두고 즉각 “김대중 전 대통령을 폄하하던 한나라당과의 공조는 호남을 배신하는 것”이라는 원색적인 내용의 대변인 명의 논평을 냈다.

    그러자 민주당의 반격이 이어졌다. 유종필 대변인은 “지금 이상한 것은 (정당들이) 공산당 만나는 것은 문제를 안 삼는데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만나면 문제 삼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세상을 거꾸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석 원내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한나라당은 영남을, 민주당은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 영호남의 통합은 역사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빅뱅이 될 것”이라며 “언젠가는 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또 유 대변인은 “열린우리당은 과거에 민주당을 짓밟고 갔으면서 이제 아쉬우니까 우리에게 춘향이 역할을 해달라고 한다”고도 했다.

    민주당이 변하고 있다. 공조든 연합이든, 2007년 대선에서 수권(受權) 정당의 편에 서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파트너는 고건 전 총리가 아니라 한나라당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점차 늘고 있다. 비록 민주당이 ‘범(汎)중도세력’을 표방하고 있으나 지역적 기반이 호남이라는 것만 다를 뿐 보수(保守)를 내세우는 한나라당과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은 한국 정치역사 최초의 ‘영·호남 연대정권’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무르익은 영·호남 공조 분위기

    민주당이 한나라당과의 사이를 더 이상 ‘로미오와 줄리엣’ 가문처럼 보지 않는다고 공언한 것은 최근 내년 대선을 위한 전초 조직 ‘희망연대’를 발족시킨 고건 전 총리에게 견제구를 날리려는 제스처라는 분석도 있다. 열린우리당이 각계의 대선후보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경선 시스템인 이른바 ‘오픈 프라이머리’ 애드벌룬을 띄우면서 고 전 총리측을 향해 진한 러브콜을 보내고, 이에 고 전 총리측이 싫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새삼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이벤트였다는 시각이다. 민주당으로선 어차피 내년 대선에 독자후보를 내기 어려운 상황인 데다 고 전 총리측과 열린우리당의 연대가 이뤄지면 ‘몸값’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다. 한나라당은 무엇보다 5·18이라는, 호남에 대한 직접적인 ‘부채’를 안고 있다. 한나라당에 대한 호남의 적대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전하다. 다른 지역에서는 ‘무능한 대통령보다는 군사독재 시절 대통령이 차라리 낫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호남에서만큼은 ‘노무현이 싫긴 해도 한나라당이 집권한 것보다는 낫다’는 말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절박성을 감안한다면 ‘한·민 공조’, 나아가 느슨한 형태의 ‘한·민 연합’이 태동할 가능성은 높다. 한나라당은 1997년, 2002년 대선 당시 호남에서 각각 3.27%, 4.87%밖에 표를 못 얻었으며 이것이 최대 패인(敗因)이었다.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는 일이다. 한나라당 핵심 관계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념논리와 지역논리가 교직되는 한국의 정치지형상, 한나라당이 자력으로 집권하려면 ‘마의 40% 획득’에 성공해야 한다. 이는 여전히 수월해 보이지 않는다. 호남에서 5%, 아니 2%만 더 얻는다면 그만큼 여당 표를 갉아먹기 때문에 한나라당에는 ‘필승 방정식’이 된다. 그러니 호남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현 상황에서 호남에 대한 한나라당의 교두보이자 파트너는 민주당이다. 결자해지(結者解之)도 구원(舊怨)이 있는 민주당과 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겠나. 마침 노무현 대통령의 실정(失政)에 대한 비판이 지역과 이념을 뛰어넘는 ‘국민 코드’로 자리잡아 한·민 연대의 전망을 좀더 밝게 해준다.”

    민주당에 좀더 화끈하게 멍석을 깔아주자는 얘기도 나온다.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은 아예 “한나라당을 깬 후 신당을 만들어 (보수적) 정체성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헤쳐모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이 대표적인 친(親)박근혜 계열 의원으로 꼽히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말에 박근혜 전 대표의 의중이 투영돼 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내년 대선의 실질적 캐스팅 보트는 군소정당 중에서는 민주당만이 쥘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말할 것도 없이 호남이라는 탄탄한 지역기반 때문이다. 민노당은 5·31 지방선거의 대패(大敗) 보여주듯 진보세력 중에서도 ‘대안 정당’의 이미지를 살려내지 못했고, 국민중심당 역시 이렇다 할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일단락된 ‘행정도시’ 문제도 더 이상 충청권의 핵심 이슈가 되긴 힘들다.

    정계에서는 정기국회가 끝나고 연말이 되면 본격적인 정계개편의 시동이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그동안 민주당은 정계개편의 ‘객체’로 여겨진 경우가 많았지만, 이쯤되면 ‘주체’로 부상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민주당이 ‘간택’되는 게 아니라, 민주당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향후 대선정국 최대 변수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정당도 경제원칙 도입해야”

    지금 이 시점, 한화갑 민주당 대표의 속마음은 어떤 것일까. 한나라당 의원모임 ‘국민생각’과 만찬을 같이한 다음날인 9월12일 오전, 그를 여의도 민주당사 대표실에서 만났다. 그는 한나라당과의 공조 문제뿐 아니라 내년 대선을 앞두고 불거질 정치지형 변화와 민주당의 역할, 국내외 현안에 대한 진단, 고건 전 총리측과의 관계 설정, 개헌 필요성 등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개진했다. 2시간 남짓한 인터뷰 도중, 그에게 인터뷰 요청 전화와 메모지가 쉴 새 없이 날아들었다. 몸값이 한창 치솟고 있는 민주당의 위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한 대표는 “정치에도 경제논리가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국익에 맞고, 지지기반에서 호응한다면 정치인들이 만들어놓은 부질없는 금기나 성역은 없애야 마땅하다’는 게 그의 논리다. 통일·외교 정책을 설명할 때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전제하긴 했지만 미국과의 동맹관계 유지를 최우선시했고, ‘북한이 요즘 가장 잘못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인터뷰 내용만 놓고 보면 ‘범(汎) 보수’로 보기에 무리가 없었다.

    ▼ 한나라당 의원모임에 참석하신 게 화제입니다.

    “국민생각 모임을 이끄는 김성조 의원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제 방(의원회관)으로 온다고 하더라고요. 와서는 저더러 특강을 좀 해달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어떤 사람들이 오냐고 물었더니 강재섭 대표, 김형오 원내대표,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 같은 분들이 온대요. 저는 ‘박희태 의원이 오면 가겠다’고 했죠. 15대 국회 때 박희태 의원과 제가 원내총무여서 여러 번 만났습니다. 박 의원은 그때도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 반드시 대안을 만들고 절충을 시도했죠. 늘 티격태격하다가도 막판이면 대개 그렇게 풀었습니다. 동료의원과의 격의 없는 만남이었으니 기분좋게 폭탄주도 몇 잔 했고요.”

    ▼ 양당 상층부 차원에서 따로 만난 적도 있습니까.

    “지금의 강재섭 대표와는 없습니다. 박근혜 대표는, 지난해 여름에 점심 한 끼 하자고 연락이 와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정치적인 이야기는 별로 없었고요. 다만 ‘민주당이 교섭단체 구성하는 것을 도와주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어요. 제가 ‘박정희 대통령 초기에는 교섭단체 구성요건이 (의석 수) 10명이었는데, 의회를 장악하기 위해 20명으로 늘렸다. 일본은 2명만 돼도 교섭단체 구성요건이 된다고 한다. 지금 국민의 의견이 점차 세분화하고 있는데, 이대로 되겠냐’고 물었죠. 박 대표는 ‘박 대통령의 딸로서 그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명박 의원과는 만난 적이 없고요.”

    ▼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공조는 어느 수준까지 가능하겠습니까.

    “한나라당과 ‘연대하기 위한 연대’, ‘공조하기 위한 공조’는 없습니다. 정책을 통해서 국민에게 보탬이 되고 나라에 보탬이 된다면 같이하는 겁니다. 그런 연대나 공조는 언제든지 할 겁니다.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야당입니다. 공조하는 것이 문제될 게 없지요. 그럼에도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역사적 배경이나 정체성이 다릅니다. 무조건적인 연대, 그런 것이 아니고 양당의 정책과 정서를 감안해서 공조한다는 뜻입니다. 국회에서 표결할 때 한나라당 법안이라도 민주당이 찬성하면 연대이고 공조인 것 아닙니까. 쉽게 봐야지요, 괜히 꼬아서 보지 말고.”

    ▼ 민주당에는 이념과 실리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요.

    “정당도 이제 경제원칙과 기업경영 방식을 도입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습니다. 우선 지지자 관리를 잘해야겠죠. 돈을 적게 들여서 많은 지지를 끌어들일 수 있는 곳이라면 기꺼이 투자하는 겁니다. 과거에는 선거 입후보자 정할 때 당성(黨性)을 보고 공천했습니다. 지금은 당성만으로 고르는 일은 없습니다. ‘누가 당선되겠는가’가 첫 번째 고려사항입니다. 우리가 지지기반인 전라도에 우선적으로 중점을 두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는 어떤 결정을 할 때 지지자 관리 측면에서 이익이 되느냐를 먼저 생각할 겁니다.”

    2007년 대선 ‘최대 변수’? 민주당 한화갑 대표

    한화갑 대표는 “민주당의 최대 지지층인 호남에 이익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정책판단에 있어 최우선 고려 사항”이라고 말했다.

    차별의 기억

    ▼ 차기 대선의 키워드 중 하나가 ‘영·호남 공조’가 될 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지역감정이란 말을 썼는데, 이젠 좀 누그러졌다고나 할까요. 저는 ‘지역정서’라는 단어를 자주 씁니다. ‘지역감정’을 가졌을 때는 대립이나 반목이라는 말도 수반됐죠. 상대방을 무조건 거부하는 느낌의 말입니다. 그럼 지역정서란 뭐냐, 서로 공존을 전제하고, 상대방을 인정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변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17대 총선이 끝나고 탄핵 역풍이 불 때 민주당 지지층의 다수가 열린우리당으로 등을 돌렸죠. 이분들이 그 무렵 경상도에 가면 ‘당신들은 왜 민주당이 아니라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가, 그 이유나 들어보자’는 소리를 들었답니다. 과거 같으면 민주당은 무조건 싫다고 하는 사람 다수와 소수의 지지자라는 이분법적 구도였을 텐데, 이제는 상대방의 처지를 인정하고, 태도 변화에 애정을 갖고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감정의 대립에서 벗어나 정서의 공존상태가 되면 그 다음엔 정서의 연합, 나아가 통합도 가능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촉매제가 필요하죠. 국민과 나라를 위해 좋은 정책이 나오면 됩니다.”

    ▼ 한나라당에서는 민주당이 정서적으로 거부하는 민정당 출신이 이제 거의 없어졌다고 하더군요.

    “숫자는 줄었겠지만 기억은 남아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의 지역차별, 그보다 훨씬 더 심한 전두환 정권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호남에서 아직까지 한·민 공조를 수용하지 않으려는 것은 그 시절의 기억 때문입니다. 특히 5·18 때는 김대중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보안사에 끌려가 얻어맞고 다 공산당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 쓰라린 경험이 있기에 아직껏 1세대들이 마음으로부터 용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물론 5·18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이야 그 정도의 쓰라린 피해의식은 없겠죠.”

    ▼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얼마 전 호남 유권자들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도 ‘그걸로는 부족하니 더하라’고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이 있잖아요. 한나라당이 과거 집권 여당일 때 인사등용이나 지역개발에서 차별한 것은 사실이죠. 아시다시피 주로 차별받은 지역이 전라도입니다. 그럼에도 공식적으로 사과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 어떻게 보면 신선미가 있다고들 평가합니다. 결국 전라도에서도 표를 달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솔직한 거죠. 하나도 부자연스럽지 않은 겁니다.

    전라도에서도 ‘과거에 너희들이 우리 차별한 거 시인했냐’고 떠들 필요 없습니다. 그냥 받아들이면 됩니다. 전에 비해서는 적대적인 감정이 한층 누그러져 있습니다. 세상이 빨리 변하고, 이제 국내 혹은 지역에만 닫혀 있으면 안 된다는 게 많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이처럼 글로벌한 사고방식이 정치권에도 스며들고 있습니다. ‘로컬’에만 국한된, 편향된 시각은 안 됩니다. 수적으로도 새로운 세대가 계속 늘고 있습니다.”

    ▼ 새로운 세대가 늘면 호남 유권자의 성향도 변하겠군요.

    “예컨대 영남에 이주해 사는 전라도 출신들을 보죠. 1세들은 부산에 살면서도 김대중 후보를 찍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자녀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나라당 성향이 강합니다. 1세들은 타향에서 차별받은 쓰라린 경험이 있지만, 2세들에겐 그곳이 자기네 고향이라는 생각이 있고, 때로는 아버지의 정서를 이해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좀 다른 얘기긴 하지만 축구선수 박지성의 아버지 고향은 전남 고흥인데, 박지성은 수원 출신으로 알려지지 않습니까. 야구선수 이승엽의 아버지는 전남 강진에서 저희 당 대의원까지 하셨지만, 이승엽 본인이야 대구가 고향 아닙니까. 뭐 그런 거죠.”

    ▼ 민주당의 이념성향이 한나라당이 내세우는 ‘보수’와 큰 차이가 없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개별 정책에서 차이가 납니다.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만 봐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스탠스가 달라요. 민주당은 전작권을 찾아오자는 데 동의합니다. 다만 충분한 준비를 하고 찾아오자는 겁니다. 지금 정권에서 섣불리 결정하지 말고 다음 정권으로 미루라는 겁니다. 2009년이니 2012년이니 하면서 시한을 정하는 것은 더 안 될 말이고요. 미국의 도움 없이는 북한에 대한 전력우위를 장담할 수 없는 현실 아닙니까. 미국이 지금 맡고 있는 역할을 우리가 담당하려면 장비, 무기 도입에 엄청난 돈이 필요합니다. 미국을 그대로 놔두고 그 많은 돈을 안 쓰거나 다른 데 쓰면 더 좋은 거잖아요.”

    盧 대북정책은 햇볕정책과 달라

    ▼ 현 시점에서 민주당은 햇볕정책의 공과(功過)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김대중 대통령 시절, 초창기엔 한반도 정책을 미국과 한국이 반드시 합의해서 추진했습니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과는, ‘북한 문제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고, 미국이 도와준다’는 것으로 합의를 봤어요. 그런데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후 정책이 좀 달라졌죠. DJ 정부가 미국과 의견일치를 못 본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이른바 미사일방어(MD)정책에 대한시각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보느냐 여부였죠. 우리는 북한을 공존할 상대로 봤기 때문에 시각차이가 생긴 겁니다. 그럼에도 DJ는 한미동맹을 기본으로 해서 대북 교류협력을 추진한다는 원칙 아래 행동했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정책과는 차이가 있는 정책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과의 동맹관계에 손상이 가도 북한과의 관계설정이 우선이다’라고 마음먹은 것 같습니다. 엊그제도 북한이 핵실험 하는 것에 대해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죠. 국방부 장관은 분명 ‘위협’이라고 하는데 말이죠. 미국이 거부하는 한국의 정책이 꼭 나쁘다고 할 순 없지만 결국 부딪치면 실현되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미국에서 인정을 안 해주면 아무리 투자해도 빛을 못 보는 겁니다. 그래서 미국과 협력을 추구해야 하는데, 노 대통령은 ‘자주’나 ‘뼈대있는 결정’만 찾으니 국익차원에서 자꾸 손해가 생기는 거겠죠.”

    ▼ 외교학을 전공(서울대)하셨는데, 뾰족한 해결책은 없을까요.

    “미국은 북한을 고립시켜서 항복을 받아내려는 자세입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핵무기, 재래식 살상무기를 봉쇄하고 있죠. 북한은 미국과 직접 대화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중재자로 내세우기 싫다는 겁니다. 한국은 자신들이 필요로 할 때 지원해주는 파트너 정도로 여깁니다. 그러니 노 대통령이 무슨 중재자 역할을 한다고 말해도 결실이 없다는 비난을 듣는 것이죠.

    북한에는 이런 식으로 하지 말라고 세게 말해야죠. 이러고도 당신들이 강대국 되겠느냐, 핵을 포기하고 미국과 수교하고 경제 건설하고 개혁·개방으로 가서 우리 민족끼리 공생공영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이죠. 북한을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하는 데 반대하지 않지만, 결국 현 시점에서 가장 큰 문제거리는 북한입니다. 개혁·개방으로 나가자니 체제유지가 안 될 것 같아서 지금도 체제유지에만 무게를 싣고 있지 않습니까.”

    ▼ 한동안은 민주당과 고건 전 총리와의 연대가 기정사실화하는 듯했는데요.

    “고건 전 총리와는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지난 2월입니다. 고 전 총리는 ‘희망연대’라는 정치조직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나도는 얘기로는 민주당원이었다가 공천탈락해서 탈당한 사람이나 현역 민주당 간부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데려간다고 합디다. 그래서 제가 그쪽에다 ‘민주당엔 손대지 말고 희망연대는 순수하게 희망연대만으로 틀을 짜라’고 했습니다.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 데려가봐야 희망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고 전 총리는 당에 안 들어오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자기 살림 꾸리고 발전해 나가야겠지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창조적 공존을 하자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민주당이 해체되더라도 정체성과 역사와 전통을 계승할 수 있다면 ‘헤쳐모여’ 식의 신당 창당도 좋다는 겁니다. 지금 민주당적을 가진 의원들이 고 전 총리를 접촉하는 것은 이런 의미를 염두에 둔 것이죠.”

    창조적 파괴 통한 창조적 공존

    ▼ 국민중심당과의 연대 내지 연합은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그쪽에서 창당 전부터 우리하고 공조하자고 몇 번 이야기했고, 우리도 호응했습니다. 근데 지금은 그쪽에서 공조를 주저하고 있어요. ‘DJP 연합’했다가 재미 못 보고 깨졌는데, 또 연합을 하겠냐며 지역에서 안 좋게 본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볼 때는 DJ 정권 때 총리 자리 차지한 자민련이 민주당보다 더 재미를 본 것 같은데, 그쪽에서는 대통령 아니면 만족 못하는 것 같습니다.”

    ▼ 내년 대선에서 충청권 행정수도 변수는 작용하지 않을까요.

    “민주당은 행정수도에 찬성했습니다. 한나라당을 필두로 영남과 수도권쪽은 반대했죠. 그래도 충청지역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많이 당선시켰습니다. 유권자들이 행정수도만 놓고 투표하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또한 현 정권이 세워놓은 행정수도 계획을 다음 정권이 그대로 실천할 것인지도 미지수입니다. 노무현 정권이 국채를 남발해서 올해 예산이 적자이지 않습니까. 앞으로도 큰돈이 계속 들어가면 나라살림을 현상유지하기도 어렵습니다. 새로 수도를 만드는 데 국민이 적극적으로 동참할지 걱정스럽고요. 지금 정권에서 뭐든 저질러놓으면 다음 정부에서도 그냥 가리라고 보는 모양인데, 과연 이 정권 사람들은 국민의 정부 때 계획 세운 것들을 다 실천했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합니다.”

    ▼ 열린우리당의 대표적 ‘통합파’인 염동연 의원을 만난 것으로 압니다. 문희상, 배기선 의원과도 식사를 함께 했고요.

    “염 의원과는 실무적인 이야기를 했죠.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민주당에 오면 받아주겠다는게 기존의 우리 입장이었지만, 우리가 개별적 탈당 의원만 계속 받지는 않겠다고 말해줬습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과는 절대 합당 못 한다는 원칙은 유효하다고 했죠. ‘헤쳐모여’식 신당 창당은 가능하다, 그러니 염 의원이 한번 새 틀을 짜는 연구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제 말에 공감하더군요.”

    “고건▼ 국중당 연대 난항”

    ▼ ‘헤쳐모여’식 신당이 생긴다면 참여할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열리우리당과 민주당으로 외연을 한정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 얘기는 염 의원뿐 아니라 다른 중도성향 열린우리당 의원들하고도 많이 하고 있어요. 시기는 빠를수록 좋지만, 또 우리와 통하는 의원들대부분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런 계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느냐가 중요하겠죠. 여당엔 김대중 대통령 때 정치에 입문한 후배가 많습니다. 협력할 수만 있다면 함께 가고 싶습니다. 다만 아직은 행동하기가 어려운 시기 아닙니까. 정기국회가 시작되면 물밑 움직임이 보일 것이고, 연말 연초에 가면 그 움직임이 밖으로 드러나겠죠.”

    ▼ 민주당도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수용하려면 DJ와의 ‘발전적 결별’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는데요.

    “우리가 ‘5000년 역사’를 말하지만, 전통을 말하라고 하면 다 당대에서 끝납니다. 과거 새정치국민회의 때 다들 DJ 팔아서 국회의원 배지 달지 않았습니까. DJ 사상을 팔아서 정치활동을 한 것이죠. 그런데 대통령의 권력이 약해졌다 싶으면 다들 어떻게 여길 떠나나, 그 연구들 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전부 국지전, 단기전에만 승부를 겁니다. 과거에는 없는, 전통을 계승하는 정당 모델 하나 만들어보려 합니다.”

    ▼ 전윤철 감사원장을 전남 해남·진도 보궐선거 후보로 영입하려 시도한 것을 두고 말이 많더군요.

    “감사원장에게 야당이 입후보를 권했다고 해서 ‘야당이 왜 현 정권 사람을 데려오려 하냐’고 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감사원장을 노 대통령이 임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리가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지 현 정권을 위해 봉사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자꾸 이러면 현 정부에서 오히려 공무원 중립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 되는 것 아니겠어요? 전 원장을 데려오려는 것은 많은 유권자가 ‘해남에선 전윤철이다’라고들 하기 때문에 표심(票心)을 충족해주려는 것일 뿐입니다. 해남군민이 즐겁게 표 줄 사람을 공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노 대통령에 대한 민주당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역대 대통령이 16명인데, 여론조사를 해보면 순위가 적나라하게 나오지 않습니까. 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퇴임 후에 하는 것이 원칙이라 지금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노 대통령이 기여한 것이 있다면 ‘다시는 이런 정권을 택해선 안 된다’는 것을 국민으로 하여금 체험을 통해 터득하게 한 것이라고 봅니다. 노 대통령을 경험한 것이 궁극적으로 역사발전에 보탬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시점 따지지 말고 개헌작업 나서야

    ▼ 지난해부터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하셨는데.

    “저의 가장 큰 관심사가 바로 개헌입니다. 정·부통령 중심제건, 내각책임제건, 대통령중임제건, 국민이 선호하는 제도를 택하자는 겁니다. 지난해 국회에 개헌을 위한 연구기관을 두자고 주장했는데, 이제야 임채정 의장이 비슷한 기구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한나라당 모임에서도 그랬습니다. ‘다음 정권은 한나라당이 먹는다는 생각에 빠져 개헌론을 배제하고 있는데, 그러다가는 영원히 정치개편을 못하게 된다’고요.

    내각책임제를 하면 지금보다 확실한 책임정치 구현이 가능할 것이라고 봐요. 대통령제도 계속 5년 단임제로 하면 5년 안에 거시적 업적을 세울 수 없으니까, 업적 없는 대통령이 양산될 겁니다. 여러 견제장치가 있어 장기 집권 우려도 작으니까 중임제가 되면 더 좋을 거라고 봅니다. 또 정·부통령제가 되면 지금보다 지역연합, 이념연합 구도가 훨씬 수월해져 국민이 좀더 편하게 정치를 대할 수 있을 겁니다.”

    ▼ 개헌론을 제기하기에는 너무 촉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아요. 1987년에 민정당이 6·29선언을 했을 때는 곧바로 여야가 머리를 맞댔고, 이어 8, 9월에 합의문 다듬어서 12월에 바뀐 헌법으로 대통령선거를 치르지 않았습니까. 다음 대선까지 아직 15개월이나 남았는데 안 될 이유가 없죠.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속전속결에 강합니까. 의지가 문제지요.”

    ▼ 노 대통령에게 충고하실 의견이 있다면.

    “제가 노 대통령 취임 전후에 그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5년 전에 ‘5년 후 우리 모습이 어떻게 될까’ 생각하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고요. 정치권력은 현실정치에서 권력이지, 지나가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혼자 꼭대기에 남는 것 아니겠습니까. 역대 대통령 주변 실세들 보세요. 대통령 임기 끝나면 다 감옥 가고 그러지 않습니까. 대통령 주변 실세가 영원히 실세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뼈저린 후회를 할 것입니다. 집권 중에는 모르고, 결국 권력이 끝나고 나야 그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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