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호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담아낸 남아메리카

아마존의 황홀한 일몰, 그 너머로 깔리는 가난의 무게

  • 사진 / 글·이형준

    입력2006-10-02 14: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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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담아낸 남아메리카

    영화 속에서 젊은 체 게바라에게 커다란 영감을 안겨준 페루의 유적 마추픽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담아낸 남아메리카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심인 국회의사당.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젊은 의학도 푸세(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 애칭)와 열정이 넘치는 생화학도 알베르토가 낡은 모터사이클에 의지해 남아메리카 전역을 가로지르는 내용의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The Motorcycle Diaries·2004년작)’. 전설이 된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을 영상화한 이 작품의 무대는, 두 주인공이 태어나고 성장한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부터 칠레, 페루 아마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서두에서 두 주인공이 가족의 뜨거운 환송을 받은 뒤 낡은 구형 모터사이클 ‘포데로사 500’을 타고 질주하는 거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도심 골목이다. 대통령궁과 국회의사당, 대성당이 모여 있는 몬세라트 지역은 주인공들이 질주하던 영화 속 풍경과 똑같다. 반면 독특한 분위기의 건물이 많은 산니콜라스의 플로리다 거리 골목은, 두 젊은이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던 스크린 속 장면에서는 고즈넉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영화에 등장하는 곳 외에도 이 도시에는 명소가 많다. 대표적인 곳이 아름다운 묘지와 성당, 공원으로 유명한 레콜레타다. 독특한 조각상과 묘비가 즐비한 이곳 묘지에는 에비타 페론이 잠들어 있어 헌화하려는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한편 옛 항구 근처의 보카는 탱고의 발상지이자 이민자의 애환 어린 사연이 가득한 곳이다. 화려한 색상의 건물을 배경으로 탱고를 추는 거리의 무용수와 직접 그림을 그려 파는 거리의 화가들을 만날 수 있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담아낸 남아메리카

    낭만적인 분위기가 넘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해변 풍광.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담아낸 남아메리카

    우루밤바 지역의 잉카 후예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팔고 있다.

    한센병 환자촌에 세워진 리조트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벗어난 주인공 푸세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밀라바 마을에서 첫사랑 치치나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칠레로 향한다. 눈 덮인 안데스산을 넘고 로스앙헬레스를 경유해 도착한 곳이 수도 산티아고 인근의 발파라이소다. 예부터 페루를 대표하는 항구이자 휴양지로 잘 알려진 도시. 영화가 촬영된 곳은 아름다운 해변을 따라 이어진 길과 10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케이블카 ‘아센소르’가 지금도 운행되고 있는 알레그레 언덕이다. 언덕의 분위기는 영화만큼이나 소박하지만, 발파라이소를 찾는 방문객은 물론 시민들도 자주 이 언덕에 올라 바다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그 다음으로 이들이 닿은 곳은 잉카 최후의 왕국 쿠스코다. 쿠스코에 도착한 두 주인공은 네스토라는 이름의 어린 잉카족 후예의 도움으로 옛 유적지를 돌아보고 잉카인들을 만난다. 푸세와 알베르토가 찾은 쿠스코의 골목과 유적지는 수백년 동안 그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해온 곳이다. 주변을 둘러보다 보면 마치 과거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고 느껴질 정도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담아낸 남아메리카

    집을 지을 흙벽돌을 옮기는 우루밤바 주민.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담아낸 남아메리카

    페루 아마존 강변의 일출 광경. 환상적인 색감이 인상적이다.

    마추픽추로 향하는 길목에서 두 주인공은 경작하던 땅을 졸지에 잃고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이동하는 잉카 후예들을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이 심각한 빈부격차와 가난이라는 남미 고질의 문제점을 서서히 인식하는 장면이다. 마추픽추에서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을 찾기는 쉽다. 유적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오두막, 돌담을 따라 이어지는 계단, 푸세가 기념사진을 촬영하던 태양의 문, 두 사람이 둘러본 해시계, 유적지에 앉아 메모를 하면서 혁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장소 등 모든 공간이 영화 그대로다.

    푸세와 알베르토가 다음으로 찾은 곳은 페루의 수도 리마. 이들이 돌아다니던 골목과 거리는 아르마스 광장 주변의 구시가지로, 멋진 테라스가 있는 건물들이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이후 두 주인공은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는 페스체 박사를 만나 아마존 강에 있는 산파블로를 찾는다. 한센병 환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기 위해 만든 산파블로의 옛 환자촌은 리마에서 항공기와 선박을 이용해야 갈 수 있는데, 페루 아마존의 열대우림 속에 있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병동이 있던 곳에는 강을 따라 20여 곳에 이르는 리조트가 자리를 잡아 어디가 예전에 한센병 환자들이 생활하던 곳인지 가늠할 길이 없다. 강을 따라 보트를 타거나 정글 투어에 참가해 영화 속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이 고작이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담아낸 남아메리카

    레콜레타 묘지에 있는 에비타 페론의 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담아낸 남아메리카

    쿠스코의 산토도밍고 교회 앞에서 잉카 여인들이 토산품을 팔고 있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담아낸 남아메리카

    영화 속에서 두 주인공과 잉카의 후예들이 이야기를 나누던 쿠스코 대성당 주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담아낸 남아메리카

    푸세와 알베르토가 포데로사를 타고 달리던 칠레의 해안절벽.

    달라지지 않은 아름다움과 현실

    두 젊은이가 낡은 모터사이클을 타고 남미를 여행하는 동안, 눈앞에 펼쳐진 낭만적인 풍경과 그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민초들의 신산한 삶은 스물셋의 한 예비의사를 ‘시대의 의사’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이들이 느꼈을 목가적인 풍광의 감동과 처참한 현실에 대한 깨달음은 1952년 당시의 모습과 거의 달라지지 않은 영화의 무대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멀리 타국에서 남아메리카를 찾아온 방문자들에게 똑같은 무게의 감동과 깨달음을 전하면서 말이다.

    여행 정보

    영화의 무대가 된 나라들은 한국에서 직항 편이 없으므로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경유하는 게 빠르다. 항공기로 여행할 경우, 인천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는 25시간, 다시 칠레 산티아고까지는 4시간, 산티아고에서 리마까지는 5시간, 리마에서 쿠스코까지는 1시간15분이 걸린다.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는 비자 없이 나라별로 3개월 동안 여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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