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호

아줌마, ‘부동산 전쟁’ 불패신화의 주역

“강남 집값을 잡겠다고요? ‘아줌마 심리’부터 공부하세요”

  •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입력2006-10-04 09: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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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동산 전권’ 쥔 아줌마, 돈 된다고 판단하면 무조건 ‘GO’
    • “6년 동안 3배 오른 대치동 신화, 아직도 유효”
    • “분양가 밑으로는 안 떨어지는데 분양가는 왜 올려요?”
    • ‘악성 미분양 때문에 ‘지방 아줌마’ 쪽박 찬 사연
    • “집값 상승 일등공신은 정부”
    • 명문 중학교 배정 프리미엄이 수억원?
    아줌마, ‘부동산 전쟁’ 불패신화의 주역

    한국 가정에서 부동산 거래의 주도권은 남편보다 아내에게 있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8월말 판교 청약에 나선 주부들.

    지하철에 빈자리가 생기면 번개처럼 나타나 자리를 잡는 사람 중엔 유난히 아줌마가 많다. 빈자리가 나는 순간 아줌마는 재빨리 주변을 훑어본 후 칼 루이스 못지않은 스피드로 민첩하게 몸을 날린다. 몸 던지기가 여의치 않으면 가방이라도 던져 자리를 확보한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총이 따갑다는 것쯤은 아줌마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줌마들이 용감무쌍하게 몸을 날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야 목적지까지 편안히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으로 불리는 아줌마들. 이들은 지하철의 빈자리를 잡는 데만 선수가 아니다. 부동산 투자 또한 가히 국가대표급에 속한다. 아줌마들이 지하철에서 빈자리를 차지하는 방법과 부동산 투자는 닮은꼴이다. 아줌마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빈자리를 잘 잡는 것은 어떤 승객이 빨리 내릴 것인지를 알아보는 눈치가 빠른데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공격적으로 행동한 결과물이다.

    부동산 투자도 마찬가지다. 아줌마들은 돈이 되나 안 되나 살펴본 후 ‘돈이 된다’고 판단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공격적으로 투자한다. 예컨대 6억원짜리 집을 사려는데 손에 쥔 현금이 3억5000만원밖에 안될 경우 대출금 2억5000만원에 대한 이자를 감당할 수 있다면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게 아줌마다. 하지만 ‘아저씨’는 다르다. 원금에 대한 기회비용을 생각하고 대출금의 이율을 꼼꼼히 따진다.

    아줌마에겐 계산기가 필요없다. ‘향후 집값이 이자를 낸 금액보다 오를 것인가’를 투자의 잣대로 삼는다. ‘오른다’는 확신이 서면 과감히 행동에 옮긴다. 하지만 남자들은 제2의 외환위기가 터져 금리가 폭등할 것을 염려하고 집값이 폭락할 경우를 염두에 둔다. 그래서 아줌마와는 달리 과감히 베팅하지 못한다.



    정부가 어떻게든 잡아보려고 애쓰는 강남, 송파 등 버블세븐 지역을 비롯한 신도시의 집값이 뛰는 이유는 아줌마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7월24일 건설교통부가 발표한 강남구 대치동 동부센트레빌 60평형의 4월 실거래가는 29억2500만원. 4월 이후 거래가 끊긴 이 아파트는 평당 가격이 5000만원에 이른다. 부모로부터 거액의 상속을 받아야 살 수 있다는 농담이 나돌 정도로 강남의 집값은 서민이 쳐다보기조차 ‘미안한’ 가격이 돼버렸다.

    요즘에는 로또복권 1등 당첨금이 아파트 한 채 값도 안 된다는 강남의 집값을 잡는 방법이 없을까. 정부가 고민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강남 집값 잡기’다. 강남의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정부가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쉽게 ‘잡히지’ 않고 있다.

    아줌마들은 베팅에 강하다

    “집 두 채를 팔고 강남으로 이사를 가겠다고? 그것도 3억원씩이나 대출을 받아서? 아서라. 정부가 집값이 떨어질 거라고 하잖아. 대출금리도 오르는 추세라 부담되고. 그냥 이 집(49평형)에서 편히 살자. 강남에서 그 돈으로 몇 평짜리 아파트를 살 수 있겠어?”(남편)

    “언제 정부가 집값 오른다고 한 적 있어? ‘앞으로 집값이 오를 예정이니 빨리 내 집 마련을 하라’고 한 적 있냐고?”(아내)

    “쩝. 하긴….”(남편)

    아줌마, ‘부동산 전쟁’ 불패신화의 주역

    서울 양천구 목동 아파트 단지 전경. 명문 초·중학교에 배정될 수 있느냐 여부에 따라 같은 평형 아파트라도 수억원씩 시세 차이가 난다.

    인천시 부평구에 사는 최모(40·여)씨 부부가 나눈 대화다. 최씨는 집을 사고 파는 문제에 관한 한 자신이 전권을 휘두른다. 결혼 14년차에 접어든 최씨는 최근 아파트 두 채(49평형과 38평형)를 팔고 대출금과 세금 등을 제한 후 5억5000만원을 손에 쥐었다. 최씨는 집을 팔려고 부동산에 내놓기 직전 남편과 ‘예의상’ 상의를 했다. 만일 남편이 반대한다고 해도 최씨는 자신의 계획대로 집을 팔고 살 계획이었다. 최씨의 머릿속에는 ‘강남 입성 프로젝트’가 이미 가동 중이었다.

    부동산 투자와는 거리가 먼 최씨의 남편은 아내의 행동이 못마땅했지만 꾹 참았다. 잔소리를 해봤자 소용이 없는데다, 아내가 전세보증금 500만원으로 시작해 결혼생활 14년 만에 부동산 투자를 통해 지금의 재산을 일궈낸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최씨는 강남구 도곡동에서 단지규모가 작아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S아파트 28평형을 점찍어뒀고 현재 매도자와 가격을 절충하고 있다.

    최씨가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서 편히 사는 것을 포기하고 3억원을 대출받아 강남행을 결심한 이유는 교육여건이 좋고 교통이 편리한데다 주거환경이 다른 지역에 비해 뛰어나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향후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확신이 최씨의 발걸음을 강남으로 향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다.

    강남의 집값이 오르는 이유는 최씨와 같은 아줌마들의 수요가 많아서다. 집을 사고팔거나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의 결정권은 대부분 ‘아내’가 쥐고 있다. 과거 아내가 부동산에 투자한다고 할 때 반대한 남편들 중에 요즘 와서 후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특히 강남에 집을 사겠다는 아내를 말린 남편일수록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정부는 지금 집값이 ‘꼭지점’이니 ‘상투’니 하고 주장하지만 부동산시장의 주도세력인 아줌마들은 정부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고 벼르고 있지만 아줌마에게 매번 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줌마들이 경제의 흐름을 꿰뚫고 있거나 미래 예측이 탁월해서가 아니다. 앞으로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기 때문이다. 강남에 집을 사려는 아줌마가 많은 것은 살기에도 편하고 사두면 집값이 올라 ‘꿩 먹고 알 먹기에’ 딱 좋은 투자처이기 때문이다.

    아줌마들의 부동산 투자기법은 비교적 단순하다. 하지만 몇 가지 기준이 정해져 있다. 무엇보다 ‘교통, 교육, 환경’의 3박자가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래야 집값이 떨어질 가능성이 낮은데다 오를 가능성 또한 높기 때문이다. 그런 곳이 강남이다. 강남 집값이 오르는 것은 아줌마들의 구미에 맞는 조건을 골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高분양가=집값 상승’

    정부가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을 안정시키려면 아줌마의 마음을 파악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서울 강남 집중 현상을 막을 방법을 찾는 것이 집값 안정의 지름길이다. 강남의 집값은 신도시와 수도권 주택가격에 큰 영향을 미쳤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우리나라의 집값 상승은 강남구 대치동이 주도했다. 2000년 3월 유모(68·여)씨는 대치동 개포우성1차 45평형(조망권이 뛰어난 동의 중간층)을 7억2000만원에 구입했다. 건교부가 발표한 실거래가에 따르면 올해 3월1일 계약된 이 아파트의 동일 평형 실거래가는 19억8000만원(호가는 25억원). 6년 동안 무려 12억6000만원이나 올랐다.

    외환위기 이후 대치동의 집값 상승에는 미국의 트럼프 타워와 같은 초고층 주상복합 타워팰리스의 분양가가 큰 영향을 미쳤다. 1999년 말 삼성이 분양한 타워팰리스는 63빌딩보다 3개층이 더 높은 66층. 상류층을 겨냥한 타워팰리스의 분양면적은 50~120평형대로 큰 평수 위주였다. 총 분양가격도 5억~6억원(평당 1000만∼1200만원)에 달해 중산층 이하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평당 분양가가 1000만원이 넘자 타워팰리스 건너편 쪽에 위치한 대치동 아파트 값이 고공비행을 시작했다. “쟤네들(타워팰리스)이 비싸게 분양하는데, 비록 헌 아파트지만 교육과 입지 면에서 우리가 뒤처질 게 없다”는 심리가 아파트 가격에 반영됐고, 예상대로 교육여건이 뛰어난 점이 집값 상승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에다 포스코개발이 타워팰리스 대각선 맞은편에 분양한 빌라형 고급아파트 ‘포스코트’의 분양가가 집값 상승에 기름을 끼얹었다. 70평형 64가구로 구성된 ‘소규모’ 빌라의 분양가는 타워팰리스보다 조금 더 높은 평당 1095만~1218만원.

    앞서 언급한 유씨는 대치동 인근 지역의 분양가가 뛰자 평당 1600만원을 주고 45평 아파트를 과감히 구입했다. 타워팰리스의 입주시기가 되면 집값이 오를 것이고 인근 지역의 분양가가 상승하면 자연스럽게 대치동 아파트의 가격이 뛸 것이라는 그의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대치동 집값은 인근의 도곡동, 역삼동, 삼성동, 압구정동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치동과 교육 인프라나 주거여건이 비슷한 양천구 목동도 꿈틀댔다. 곧이어 신도시들이 ‘열’ 받기 시작했다. 신도시 중에서도 강남과 가장 가까운 분당의 집값이 오름세로 이어졌다. 여기에 개발계획이 구체화된 판교의 분양가가 높게 책정 될 것이라는 예측이 집값상승에 휘발유를 들이부었다.

    아줌마들은 그동안의 ‘학습’을 통해 인근 지역의 분양가가 집값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간파했고 이는 분당과 용인 등 판교 수혜단지 아파트의 매수세로 이어졌다. 제2의 강남이라 불리는 판교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는 살기 좋고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판교의 건설 목적은 주택가격의 안정이 우선이다. 그러나 되레 판교 때문에 분당과 용인 및 동탄신도시 분양권까지 들썩거렸다. 왜 그랬을까. 아줌마들은 판교의 분양가가 높게 책정될 것이라고 예측했고, 인근 지역 아파트 값이 최소한 판교 분양가만큼은 오를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매수세가 ‘따라’ 붙었다. 결과적으로 판교는 오히려 집값을 올리는 주범이 됐다.

    판교의 중대형 분양가는 평당 1800만원대를 돌파했다. 판교의 고분양가에 힘입어 용인 성복 동천지구에서 민간업체들이 평당 1200만원쯤에 분양하려던 것을 1500만∼1700만원으로 올릴 계획이라고 한다. 집값의 오름세는 분양가의 상승과 궤를 같이해왔다. 분양가가 오르면 그만큼 주변 아파트 가격은 상승하게 돼 있다. 정부가 분양가를 잡지 않고 집값이 안정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줌마들의 투자심리를 ‘무시’하는 행위다.

    고가에 분양받은 아줌마들은 주머니 사정이 어지간히 급하지 않은 한 분양가 이하로는 집을 팔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고분양가=집값 상승’이라는 공식을 굳게 믿기 때문에 단순히 공급을 늘려서는 집값을 잡을 수 없다. 분양가를 떨어뜨려야 한다. 앞으로 분양되는 아파트의 분양가가 높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아줌마들에게 심어줘야만 부동산시장이 안정될 것이다.

    대치동과 판교의 ‘집값 방정식’

    분양가가 집값에 영향을 미친 것은 비단 강남과 판교 등에 국한된 지엽적인 현상이 아니다. 공급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고분양가가 집값에 미친 영향과 과정이 대동소이하다. 경기도 파주신도시 운정지구에서 올 하반기에 분양예정인 H건설의 분양가를 1200만~1400만원으로 책정한다는 소문이 얼마 전부터 나돌자 교하와 금촌지역 집값이 들썩였다. 주변의 아파트 가격은 빠르게 상승했다.

    국민은행이 파악한 부동산 시세에 따르면 교하읍 운정2차 동문아파트 35평형의 가격은 지난 7월초 2억1000만원(일반거래가)이던 것이 고분양가 소식이 알려진 지 2~3개월 만인 9월초 2억3750만원으로 상승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집값이 10% 이상 오른 것이다.

    이에 대해 건설교통부가 처음으로 ‘간접적인’ 분양가 규제 방침을 밝혔다. 고분양가 집값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정부가 뒤늦게 ‘칼’을 빼든 것이다. 건교부는 분양가가 과도하다고 판단, H건설이 자발적으로 분양가를 낮추지 않을 경우 분양승인권자인 파주시청과 협조해 공공택지 내 분양 등에서 불이익을 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줌마들은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가 되레 집값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분양가 정책을 두고 한 말이다. 판교에 이어 공공기관이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떠오른 것이다. 집값 상승은 공급이 부족한데다 고분양가 정책이 맞물려 낳은 산물이다. 고분양가는 고스란히 집값 상승으로 이어진다. 아줌마들 사이에는 부동산시장 안정에 앞장서야 할 공공기관이 오히려 분양가를 높여 주변 아파트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9월11일 업계에 따르면 SH공사(옛 서울시도시개발공사)는 판교 당첨자 발표일(10월12일) 직후 청약에 나설 은평뉴타운의 분양가를 평당 평균 1400만원대로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은평뉴타운 공급 물량 가운데 최대 평수(69평형) 분양가를 주변 최고 시세보다 10~20% 이상 비싼 평당 1500만원대로 책정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SH공사가 지금까지 공급한 아파트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높은 분양가 책정은 주변 시세를 끌어올리는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서민의 주거안정과 부동산 가격 안정을 도모해야 할 공공기관이 오히려 시장 불안을 조장하는 셈이다.

    아줌마, ‘부동산 전쟁’ 불패신화의 주역

    부산 광주 등 지방 대도시들은 미분양 아파트가 넘치고, 투자에 잘못 나선 주부들의 실패담도 널리 회자된다. 파격적인 계약조건을 내건 목포의 한 아파트 모델하우스.

    만약 오래된 아파트보다 좋은 아파트를 싼 값에 분양받을 기회가 많다면 아줌마들은 굳이 헌 아파트를 비싸게 사지 않았을 것이다. 부산이나 광주 등 지방의 아줌마들처럼 말이다. 지방에는 아파트를 통한 부동산 투자의 개념이 자리잡지 않았다. 여유자금이 있으면 투자용으로 집을 사놓는 대신 은행에 넣어둔다. 집값 오름세가 미미해 차라리 은행 이자를 받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지방은 ‘악성 미분양’으로 고전

    부산에 사는 주부 김모(39)씨는 요즘 불면증에 시달린다. 부동산 투자를 잘못했다가 쪽박을 차기 직전에 처했기 때문이다. 서울과 수도권, 신도시 등의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자 부산의 집값이 크게 오를 것이라 판단한 김씨는 2002년말부터 이듬해에 걸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30평형대 아파트 분양권 10개를 사들였다. 김씨의 투자금은 2억5000여만원. 계약금이 분양가의 10%이기 때문에 30평형대 아파트 한 채 값으로 분양권 10개를 사들였다.

    서울의 ‘큰손’ 아줌마들이 이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는 소문을 듣고 이들을 흉내냈다는 김씨. 그러나 부산의 주택공급이 늘고 경기침체로 수요가 줄면서 분양권에 웃돈을 얹어 팔려고 했던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오히려 “500만원을 얹어 줄 테니 분양권을 사가라”고 사정을 해도 입질하는 사람조차 없다.

    “딱 죽고 싶은 심정이다. 서울이나 부산이나 부동산시장이 같이 움직일 줄 알았다. (분양권이) 이렇게 안 팔릴 줄은 몰랐다. 지금까지 1억원을 손해봤다. 일부는 계약금을 포기한 채 건설회사에 반납했고 6채는 아직도 갖고 있다. 중도금이 무이자인 아파트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곳의 아파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다.”

    부산의 집값은 정부가 나서서 올리려고 애를 써도 오르지 않는다. 광주 등 다른 지방도 마찬가지다. 대도시를 비롯한 지방의 집값은 몇 년째 정지된 상태다. 지방의 집값 안정의 일등공신은 정부의 정책도, 강도 높은 규제도, 대출 제한도 아니다. 공급이 수요에 비해 부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돈만 있으면 가고 싶은 아파트를 맘대로 골라서 살 수 있어 굳이 헌 아파트를 비싸게 사는 사람이 없다. 지방에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넘쳐 주인을 손꼽아 기다리는 빈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다.

    9월9일, 목포시 상동 아파트 건설현장에는 ‘집값의 반은 2년 후에 내십시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아파트 가격이 오르기는커녕 지어도 팔리지 않은 미분양 물량이 많아 지역 건설업체의 줄 도산이 이어지는 상황을 실감케 했다. 고교 교사인 김모(41·목포시 상동)씨는 “목포는 주택이 투자가 아닌 주거의 개념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며 1가구 2주택자가 많지 않다고 했다. 그는 “집값이 오를 기미가 전혀 없는데 누가 투자하겠냐”고 되물었다,

    “동료교사 중에 자녀 교육을 위해 목포에서 전·월세를 살면서 서울에 집을 산 사람이 몇 명 된다. 지방에 사는 아줌마들은 투자 방법을 몰라서 안하는 게 아니라 돈이 안 되니까 하지 않는다. 적어도 투자용으로 사놓은 집값이 은행이자보다는 올라야 투자할 욕심이 생기지 않겠나.”

    서울과 수도권 중에서도 특히 강남의 집값이 뻥튀기처럼 부풀어오르는 이유는 공급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서 빚어진 현상이다. 시장경제의 원리는 단순하다. 수요보다 공급이 적으면 가격이 오르게 돼 있다. 그 반대의 경우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집값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명료하다. 공급을 늘리면 된다. 그러나 무작정 공급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공급을 늘리되 분양가가 낮아야 한다. 강남 집값을 잡으려면 이 지역에 버금가는 ‘대체지’의 아파트를 싸게 분양받을 수 있는 기회가 널려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줌마들은 추격매수를 자제할 것이다.

    ‘잘난 자식’ 하나만 남기자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알려진 대로 세계적 수준이다. 평당 4000만원이 넘는 아파트가 지난 1년 새 14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울지역 아파트 중 절반가량이 평당 1000만원을 넘은 것으로 조사됐다. 9월11일 부동산정보업체 스피드뱅크에 따르면 서울시내 아파트 2152개 단지 91만6135가구를 대상(재건축 추진단지와 1년간 새로 입주한 아파트를 제외한 일반아파트 기준)으로 평당 매매가를 분석한 결과 평당 4000만원 이상인 아파트는 지난해 9월 총 440가구에서 지금은 6166가구로 14배가량 늘었다.

    평당 3000만원대 아파트는 3만248가구로 지난해의 6785가구에 비해 4배 이상 늘었고 평당 2000만원대 아파트는 35.6%(7만2088가구→9만7769가구) 증가했다. 평당 1000만원대 아파트는 3.1% 많아졌다. 평당 1000만원 이상 아파트는 전체의 47.7%인 43만7312가구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37만3298가구)보다 17%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서울에서 평당 1000만원이 넘는 아파트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서초구로 전체 3만5247가구 중 20가구를 제외한 99.9%가 평당 1000만원이 넘었다. 강남구도 전체 5만5568가구 중 99.2%인 5만5128가구가 평당 1000만원 이상이다. 이에 비해 강북구는 평당 1000만원이 넘는 아파트가 단 한 곳도 없었으며 금천구는 1곳, 중랑구는 2곳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500만~1000만원 미만 아파트는 지난해에 비해 11.9% 줄었으며 500만원 미만 아파트도 10.5% 감소했다.

    이처럼 평당 1000만원 미만 아파트가 줄고 고가 아파트가 늘어난 것은 값이 그만큼 상승했다는 뜻이다. 특히 보유세와 양도세 부담으로 ‘똑똑한 집’ 한 채만 가지려는 ‘중대형 쏠림 현상’이 심화한 것도 평당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 중 하나다.

    요즘 집을 여러 채 소유한 아줌마들 사이에는 ‘잘난 자식(아파트) 하나만 남겨두고 다 팔자’는 말이 나온다. 강남구 대치동에서 전세를 사는 김모(41)씨는 수도권 소재 아파트 2채를 팔고 9월초 한강 조망이 가능한 한남뉴타운 지역의 구옥을 계약했다. 40평형대 분양이 확실시되는 이 주택의 매매가는 7억원. 강남의 아파트를 사려고 기회를 엿보던 김씨는 지난 1년간 집값이 너무 올라 강남을 대체할 만한 곳을 찾아 나섰다.

    김씨가 용산 지역의 한남뉴타운 지역을 선택한 이유는 향후 강남 인근에 중대형 평형의 아파트 공급이 원활치 않고 고분양가 정책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서다. 김씨는 투자에 앞서 용산 일대의 기존 아파트 가격과 분양가를 살펴봤다. 현재 인근 지역의 아파트 시세는 평당 2500만~3500만원선. 입주(2012년)때가 되면 인근 지역의 현 시세보다 비쌀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은 김씨는 망설임 없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2년 전 강남에 이사 와서 살아보니 여러 가지 면에서 생활이 편리해 강남에 집을 마련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고 싶은 곳은 너무 비싸서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강남과 비슷한 주거여건을 갖춘 지역을 찾아 나섰다. 강남에 살아보니 이곳의 중대형 평형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수요는 미어터지는데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정부는 서민주택 안정화를 위해 임대주택을 짓는 데만 신경을 곤두세우지 말고 강남의 수요를 분산시키는 대책을 내놓아야 강남 집값이 안정될 것이다.”

    명문 중학교가 아파트값 좌우

    명문 중학교 배정 여부가 집값을 좌우한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신목중학교와 월촌중학교. 목동의 아파트 가격은 이 두 중학교 배정 여부가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중학교에 입학이 가능한 목동 1~4단지의 35평형 4~6월 실거래가 평균은 10억8200만원. 인근 단지의 33평형(35평형이 없어 33평형과 비교) 가격은 7억원대를 밑돈다. 물론 단지의 규모나 조망권, 교통 등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집값이 형성되긴 했지만 명문 중학교에 배정되는 아파트 단지가 그렇지 않은 곳에 비해 4억여 원이나 비싼 셈이다.

    대치동도 비슷한 평형 아파트라도 수억원씩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곳 역시 명문중학교 배정 여부가 가격의 주요 변수로 작용한다. 널리 알려진 대로 지은 지 20년 된 우성·선경·미도아파트는 대치동의 일명 ‘빅3’다. 이들 아파트 단지의 공통점은 대청중학교에 배정될 수 있다는 점(미도아파트 2차는 배정되지 않는다)이다. 길 건너편에 우뚝 선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 타워팰리스 주민들 가운데 초·중학생을 둔 학부모가 오래되고 낡은 ‘빅3’ 아파트를 부러워하는 까닭 중 하나는 이 동네 최고의 명문인 대치초등학교, 대청중학교에 안전하게 배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포우성아파트 단지에는 한때 특목고 진학률 전국 1위를 자랑하던 대청중학교가 있다. 강남 개발 이후인 1987년에 개교한 대청중학교는 강남 내 최고 명문 중학교로 손꼽히며, 대치동의 명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선경과 우성아파트 맞은편에 위치해 있으나 대청중학교 배정과 무관한 아파트 단지의 가격은 ‘빅3’ 아파트에 비해 크게 낮다. 대치동 삼성아파트 33평형의 4~6월 실거래가 평균은 10억1700만원. 같은 기간 청실아파트 31평형의 실거래가 평균은 10억4600만원인 반면 대청중학교 배정이 확실한 개포우성아파트 31평형은 15억1000만원(4월에 거래된 실거래가 평균. 4월 이후 거래 없음)이다. 물론 개포우성아파트에서는 길을 건너지 않고 양재천에 바로 갈 수 있다든지, 대형평형이 많다든지 하는 주거 환경이 우수하다는 요인이 있다. 복도식이 아니고 계단식이라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은 평형에서 집값이 5억원이나 차이가 나는 것은 인상적이다. 대청중학교 배정 여부가 집값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마치고 있다는 게 이 동네 주부들의 말이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신도시도 명문 중학교가 집값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고양시에서 집값이 비싼 곳 중 하나는 신흥 명문중학교로 소문난 정발중학교(일산 동구 마두동)와 오마중학교(일산 서구 주엽동)에 배정될 수 있는 아파트 단지들이다. 정발중학교 배정이 가능한 마두동 삼성아파트 37평형의 4~6월 실거래가 평균은 6억7100만원. 같은 동네지만 정발중학교를 배정받을 수 없는 H아파트의 37평형의 5~6월 실거래가 평균(4월은 거래가 없었음)은 6억50만원으로 7000여만원의 차이가 난다. 돈을 좀더 주고서라도 자녀가 좋은 교육여건에서 공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집값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정부는 줄곧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면서 8·31대책 이전으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통계청 승인을 받은 국민은행의 ‘전국주택가격 동향 조사’에 따르면 8월말 현재 아파트와 단독주택을 합친 전국 주택 매매가격은 지난해말보다 4.3%, 서울은 7.2% 상승했다. 아파트는 더 많이 올랐다. 특히 서울 양천구는 24%가량 폭등했다. 서울 한강 이남지역 11개구 아파트도 평균 13.4%나 뛰었다. 서울에서 아파트 매매가격이 내린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집값이 상투인가 아닌가. 이 또한 아줌마들이 잘 알고 있다. 건교부의 실거래가 공개에 따르면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 강남 3구의 거래 건수가 2월 1661건에서 3월 2491건으로 늘었다가 3·30대책 발표 직후인 4월에 1500건으로 급감한 뒤 이후 5월 971건, 6월 503건으로 꾸준히 줄고 있다.

    정부가 집값을 안정시키는 방법은 간단하다. 아줌마의 입맛에 알맞은 아파트 공급을 늘리고 분양가는 낮추면 된다. 집값을 잡으려면 아줌마의 마음부터 잡아야 한다. 집값을 잡는 데는 이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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