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호

급증하는 국제결혼, 학대받는 외국인 아내들

“비싼 ×이 돈값도 못해”…막가는 인신매매형 짝짓기

  •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입력2006-10-04 09: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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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한 해 한국 남성과 결혼한 외국 여성은 3만여 명.10쌍 중 한 쌍이 한국 남성-외국 여성 부부다. 이혼 역시2003년 583건, 2004년 1611건, 2005년 2444건으로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남편의 폭행과 감금, 학대에 시달리는여성들은 가정을 떠나고, 이들의 자녀는 붕괴되는 가정환경에고스란히 노출된다. 여성을 ‘상품’으로 인식하게 만드는국제결혼 중개업체들의 행태와 이로 인해 야기된아시아 전역의 ‘반한(反韓)감정’ 실체.
    급증하는 국제결혼, 학대받는 외국인 아내들
    국제결혼을 해서 한국에 온 지 2년이 지난 베트남 여성 A씨. 그러나 결혼생활은 그녀가 그리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남편의 거듭되는 술주정과 폭력, 고된 시집살이. 견디다 못한 A씨는 결국 돌도 채 안 된 아들을 두고 집을 나와 이주여성인권센터가 운영하는 쉼터를 찾았다. 시어머니와 홀로 된 시누이, 조카까지 한 집에 사는 것도 간단치 않은 생활이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퇴근 후 술을 마시고 밤늦게 들어와 술주정을 하며 가재도구를 부수고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이었다. 그럴 때면 시어머니는 가방을 챙겨 어디론가 사라졌다. 말릴 사람도 없었다.

    쉼터에 와 있던 A씨는 아들의 돌잔치가 있던 날 집에 잠시 들렀다. 그러나 잔치가 끝나고 다시 집을 나서자 남편은 “왜 쉼터에 가느냐”며 행패를 부렸다. 갑자기 길 한복판에서 A씨의 머리채를 잡고 구둣발로 차며 폭력을 휘두른 것. 그녀가 비명을 지르자 동네 사람들이 놀라 뛰어나와 “얼른 도망가라”고 소리쳤다. 이날 사건으로 병원에 입원해 2주간 치료를 받고 퇴원한 그녀는 남편과 헤어지기로 마음을 굳혔다. 일자리를 얻어 방 한 칸을 마련하면 혼자 힘으로 아들을 잘 키우고 싶은 게 그녀의 유일한 소망이다.

    최근 한국 남성과 외국 여성의 국제결혼이 급증하고 있다. 2005년 한 해에만 한국 남성과 결혼한 외국 여성이 3만1180명으로, 이는 2004년에 비해 21.8%나 증가한 숫자다. 국내 결혼커플 10쌍 중 1쌍이 외국 여성과의 결혼인 셈이다. 지난 15년간 한국 남성과 결혼한 외국 여성은 16만명에 육박하고, 이 가운데 현재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여성 수는 6만6000명에 달한다.

    한국에 시집오는 외국인 여성의 수는 가파르게 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인식과 차별, 인권 침해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센터에는 다음과 같은 하소연이 끊이지 않는다.

    “임신 3, 4개월 후부터 남편이 때리기 시작했다. 베트남 남성 중에도 때리는 사람이 있지만 정도가 다르다. 남편은 밤늦게 들어와 ‘말을 안 들을 거면 베트남으로 돌아가라’고 하면서 때리기 시작하더니 6, 7개월부터는 아주 심하게 때렸다.”



    “병원에 갔더니 임신 1개월이 조금 지났다고 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좋아했지만 남편은 싫은 표정이었다. 남편은 ‘내 아이가 아니다’라며 유산시키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나를 자신이 아는 사람에게 시집보내겠다고도 했다. 임신 전부터 늘 때렸지만, 임신한 후에는 머리를 잡고 목을 조르기도 했다. 아기를 가지면 더 잘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지난해 11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한 지 5년 된 필리핀 여성이 의처증 증세를 보이던 남편으로부터 둔기로 폭행당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고, 함께 폭행당한 두 자녀는 사망한 것. 2003년 3월에는 결혼생활 8년 동안 구타에 시달린 한국 귀화 필리핀 여성이 남편의 폭력을 피해 달아나다 아파트 10층 베란다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는 사고도 있었다. 남편의 구타 이유는 그녀가 한국 풍습에 익숙하지 않고 필리핀으로 돈을 부친다는 것이었다. 숨진 그녀의 턱 밑에서 칼에 베어 생긴 5㎝ 길이의 상처가 발견되기도 했다.

    필리핀 외교부의 ‘경고문’

    지난해 주한 필리핀대사관은 자국 여성을 대상으로, 결혼중개업체 소개로 한국 남성과 결혼한 뒤 한국에 가거나 연예 관련 비자를 받아 입국할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며 “한국인과의 국제결혼은 추천할 만하지 않다”는 충고를 공지했다. 또한 필리핀 외교부는 ‘경고문’을 배포해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인과의 결혼을 피할 수 없다면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지난 5월 국제인신매매방지전문가회의 참석차 한국에 온 국제이주기구(IOM) 베트남 호치민 사무소의 수석의무관 네넷 모투스 박사는 “베트남에서는 국제결혼 알선단체가 빈곤층 가정에 1인당 500~1000달러를 주고 어린 여성을 데려다 대만, 일본, 한국 등으로 결혼시키려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으로 많이 가는데, 문제는 그들 중 대부분이 학대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제결혼한 한국 남성은 외국인 아내가 다른 문화에 익숙해지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하고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인권을 지켜달라는 호소였다.

    2003년부터 급증한 국제결혼이 야기하는 갖가지 사회 문제는 국내 통계수치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제결혼 가정 실태조사’에 따르면 언어폭력과 신체적 폭력 등 가정폭력을 경험한 외국인 이주여성은 10명에 3명꼴이었고, 성적 학대에 시달리는 이도 23.1%를 차지했다. 최근 한국인권재단이 주최한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한국살이’ 세미나에서 이주여성인권연대 김민정 정책국장이 소개한 이주여성의 성 학대 사례는 충격적이다.

    “남편이 요구하는 성관계를 거부하면 머리채를 잡아 끌고 강제로 베란다로 내쫓았고, 추운 겨울에도 이불 한 장 없이 그곳에서 자라고 한다. 옷을 다 벗게 하고 입으로 해달라고 요구하거나 성기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등 이것저것 요구했다. 음란 비디오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똑같이 해달라고 요구한다. 싫다고 거부하면 때리고 옷을 다 찢어버린다. 너무 무서워서 무릎 꿇고 빌기도 여러 번 했다. 남편이 동물 같다.”

    “입국한 지 사흘 만에 남편이 때렸다. 술 마시고 성관계를 요구했는데 싫다고 하자 주먹으로 얼굴을 마구 때리고 침을 뱉었다. 생리 중에도 성관계를 요구해서 거부하자 생리대를 얼굴에 집어던졌다. 계속 때려서 어쩔 수 없이 응한 적도 있다. 남편과 함께 사는 것이 너무 싫고 무섭다.”

    이주여성들은 가정폭력을 당해도 경찰에 신고하기를 꺼리기 때문에 주변의 도움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결혼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면 자기 나라로 쫓겨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신고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 경찰에 신고해봐야 말이 통하지 않아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도 한 요인이다. 김민정 국장은 “한국 여성들도 가정폭력을 당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주여성들은 거기에 더해 편견으로 인한 또 다른 종류의 폭력까지 당한다. 의사소통이 원만하지 못하고 친구나 친정식구 등 지지자가 가까이 없으므로 가족 내 역학관계에서 힘의 균형이 깨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당한다”고 지적했다.

    인신매매 혐의로 체포된 결혼중개자

    최근 위장결혼 사례가 늘면서 무작정 자신의 아내를 의심하는 남편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항상 아내를 감시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결혼중개업자들은 결혼 전 남편에게 “신분증을 남편이 보관해라” “같은 나라 여성들과 전화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귀띔하기도 한다. 심지어 밖에 외출도 못하게 하고 친정에 전화 연락도 못하게 하는 등 여성을 감금하다시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한 이주여성은 “시어머니는 내 친구들이 전화하면 내가 옆에 있는데도 화장실에 있다면서 바꿔주지 않았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지도 못하게 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러한 문제들은 이혼으로 연결되어 심각한 가정해체를 불러온다. 국제결혼 커플이 증가하는 것 못지않게 이혼율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 2003년 583건이던 이혼은 2004년 1611건으로 세 배가량 급증했고, 지난해에는 2444건으로 다시 한번 크게 증가했다.

    국제결혼 커플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겪는 어려움도 ‘불행한 가정’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들은 또래 집단에서 무시를 당하고 따돌림을 받거나,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놀림감이 되기 일쑤다. 9월4일 부산에서는 한 대안초등학교가 문을 열었다. ‘아시아공동체학교’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이곳에는 한국인 부부가 낳은 아이들은 없고, 대신 한국인 아버지와 아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12명의 ‘코시안’만이 수업을 받고 있다. 한국 아이들과 함께 섞이지 못하고 ‘그들만의 학교’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현재 우리 사회가 이들을 대하는 인식이 어느 수준인지를 가늠케 한다.

    국제결혼 이주여성에 대한 인권 유린은 단순한 국내 문제가 아니다. 그로 인해 외국 여성의 출신국가와 마찰을 빚거나 국제적 망신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석했던 국제이주기구 한국사무소 고현웅 소장은 “상업화한 국제결혼 중개 시스템이 이들 커플들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을 낳는 근본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 초 민간에서 시작된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이 지자체 주도로 변하면서 국제결혼이 크게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이후 국제결혼이 수익성 있는 사업으로 인식되면서 2000여 개에 이르는 국제결혼 중개업체가 난립했고, 이들에 의한 인신매매성 결혼 중개가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다.

    급증하는 국제결혼, 학대받는 외국인 아내들
    지난해 1월 필리핀 여성과 국제결혼할 목적으로 필리핀에 입국한 한국인 세 명과 결혼중개업체 직원 두 명이 필리핀 범죄수사국에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필리핀은 ‘우편주문신부금지법’에 의해 국제결혼 중개행위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편법을 동원한 국제결혼이 그치지 않아 필리핀 국내적으로 사회 문제가 되자 이들 다섯 남성을 우편주문신부금지법 위반 및 인신매매 혐의를 적용해 체포한 것이다.

    베트남과 필리핀 등 동남아 지역 결혼 중개업체는 현지 농촌지역을 돌며 여성을 모집해 한꺼번에 수십명씩 합숙시키면서 일본과 대만, 한국에서 온 남성들에게 맞선을 주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맞선 상대자에 대한 어떤 정보도 들을 수 없고 남성에 의해 선택돼야만 비로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정보라는 것도 나이와 경제력, 직업, 가족관계 등으로 매우 빈약할 뿐만 아니라 그나마 허위 정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 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은 “선을 볼 때 통역자는 남편이 기계 만드는 회사에 다니고 약혼한 적이 있으며 한 달 수입이 200만원이라고 했다. 근데 한국에 와서 보니 시골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공사장 일용노동자였다. 또 나와 결혼하기 전에 몽골 여성과 결혼했었는데 그 여성이 자해소동을 벌여 이혼했다고 하더라”고 털어놓았다.

    “너 데려오느라 돈 많이 들었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연구용역 의뢰로 지난해 베트남과 필리핀 현지 실태조사를 다녀온 고현웅 소장에 따르면, 한꺼번에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수백명에 이르는 여성과 맞선이 이뤄지는 현장에서 여성은 자신이 만나는 남성의 국적도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본과 대만, 한국에서 날아온 남성들을 상대로 하루에도 수차례씩 맞선 자리에 불려 나가기 때문이다. 결혼중개업체에 의해 합숙을 강요당하는 여성들은 임의로 합숙소를 벗어날 수도 없고 자신을 점 찍은 남성과의 결혼을 기피하면 합숙에 들어간 비용을 물어내야 한다. 자유의사로 결혼 상대를 고르기 쉽지 않은 실정이라는 것이다.

    고 소장이 베트남에서 만난 어떤 여성의 고백이다.

    “합숙소에서 4개월씩 기다리기도 하는데, 선보는 중간에 포기하면 한 달에 3만원가량 되는 밥값을 물어내야 한다. 합숙할 때 신분증을 맡기기 때문에 몰래 도망가지도 못한다. 나도 계속 선을 봤는데 (결혼 상대자로) 합격하지 못하니깐 마음이 불안했다.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너무 오래 기다려 밥값 내기도 힘들고 해서 눈 딱 감고 결혼했다.”

    이처럼 중개업체의 조직적인 연결망에 의한 여성 모집과 관리, 통제는 국제법에서 정한 인신매매적 속성을 띠고 있다. 결혼 상대로 선택되면 현지에서 남성과 합방하게 되는데, 한국으로 돌아온 남성이 국내에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결혼을 파기해 처녀막 재생수술을 받은 여성들도 있다. 고 소장은 “1000만원이 넘는 돈이 오가는 중개업자에 의한 국제결혼은 여성의 몸과 인격이 구매 가능한 ‘상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에, 결혼 후에도 남성이 여성을 삶의 동반자로 보지 않고 관리와 통제가 가능한 소유물로 여기게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외국인 며느리의 임신이 늦어지자 “비싼 이 ×이 돈값도 못한다”고 폭언을 퍼붓거나 부부싸움에서 남편이 “너 데려오느라 돈 많이 들었다”며 윽박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외국인 여성과 결혼한 한 남성은 자신의 고등학생 아들이 아침에 학교에 가는데 일찍 일어나 밥을 챙겨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19세 아내를 중개업자 집으로 보내고 자신이 낸 중개비용을 돌려달라고 소비자보호원에 진정서를 냈다.

    급증하는 국제결혼, 학대받는 외국인 아내들
    고현웅 소장은 “인신매매성 국제결혼은 필리핀과 베트남 두 나라 모두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국제결혼을 하는 양 당사자 모두 국제결혼 관련법과 상대자 출신국에 대한 이해, 문제 발생시 해결방안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은 후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중개업체가 국제결혼 시스템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국제결혼비자 신청 횟수를 제한하는 방안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가는’ 우즈벡 여성들

    1990년대 초 미국에서는 외국인 아내를 살해한 사건이 큰 사회 문제로 불거졌다. 사건 후 이 남성은 첫 번째 아내도 국제결혼을 통해 만났으며 구타로 인해 이혼당한 전력이 있음이 밝혀졌다. 철저한 관리가 있었다면 끔찍한 살인사건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큰 충격이었다. 이후 미국은 국제결혼 관련법을 만들어 자국 남성의 신원과 직업 안정 여부, 범죄 전력 유무 등을 검증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국제결혼 이주여성을 상대로 지난해 600여 건을 상담한 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염 대표는 최근 하루 상담 건수가 두 배로 증가했다고 말한다. ‘결혼 후 국내거주 2년’이 지나야 이주여성에게 발급되는 영주권이 없더라도 가정파탄의 귀책사유가 남편에게 있으면 국내에 계속 체류하면서 취업도 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뀐 법을 악용해 아내를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남성이 늘고 있다. 한 대표는 “자신은 집에서 놀고 먹으면서 외국인 아내에게 돈을 벌어오라고 시키는 남편들이 있다. 돈을 벌어오지 않으면 다른 남자한테 팔아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말을 잘 못하는 이주여성이 취업하기도 쉽지 않지만 국내법은 결혼하면 생계를 부부 공동책임으로 지우기 때문에 악덕 남편을 제지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한 이주여성은 “남편이 도박을 했는데 도박 빚이 수백만원에 달했다. 이 돈을 갚아달라고 해서 거부하자 계속 때렸다. 경찰에 신고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중에는 집 자물쇠를 바꿔 못 들어오게 했다. 어쩔 수 없이 돈을 갚아줬지만 얼마 안 가서 또 돈을 달라고 했다. 더 이상 줄 돈이 없다고 하자 출입국관리소에 도망갔다고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자식을 빌미로 외국인 며느리에게 돈을 뜯어낸 시어머니도 있다. 아들이 사망하자 “돈을 벌어 오라”며 며느리를 집에서 쫓아낸 시어머니는 매달 손자 양육비로 일정금액을 받아 썼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손자를 보육원으로 보낸 후에도 며느리에게 그 사실을 숨긴 채 계속해서 돈을 타냈다.

    ‘우즈베키스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운영자이자 중앙아시아 여행 전문가인 이한신씨는 최근 몇 개월에 걸쳐 중앙아시아를 비롯해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그는 “한국 남성과의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간 많은 여성이 한국 남성이라면 이를 간다”며 이렇게 우려했다.

    “우즈베키스탄이나 러시아 출신으로 한국 남자와 결혼한 여성 10명 중 6, 7명이 결혼 1~3년 안에 이혼한다고 보면 된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으로 시집올 때 경제적 부와 함께 신분상승을 기대하지만, 국제결혼을 하는 한국 남성들 중 많은 수가 국내에서 신붓감을 구하지 못한 경우다. 다시 말해 직업이나 학벌, 경제력이 뒤떨어져 한국 여성이 결혼 상대자로 원치 않으니 외국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처음부터 남녀의 목적과 기대가 다르니까 결국 파탄에 이를 수밖에 없다. 또 러시아나 우즈베키스탄은 가족이 여자 중심인 데 비해 한국은 남자 중심이다. 집안의 모든일을 결정할 때 남편의 의견을 따라야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양영미 (재)한국인권재단 상임이사

    “아시아에서 한국이 ‘제2의 일본’ 될 수도 있다”


    8월31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한국인권재단 월례 인권대화가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한국살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주여성인권연대 김민정 정책국장, 오기철·베벌리 엠마퀼링 부부, 국제이주기구 한국사무소 고현웅 소장, 아름다운재단 소라미 공익변호사 등 네 명의 발제자 외에 여성가족부, 법무부 등 4개 정부부처 관계자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날 사회를 맡은 인권재단 양영미 이사를 만나 인터뷰했다.

    ▼ 지금 시점에서 국제결혼 이주여성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이 무엇이라고 보나.

    “세계 빈국을 지원하는 국제빈곤퇴치기금 현황을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기준으로 국민총생산 대비 정부개발원조(ODA) 비율이 평균 0.33%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0.1%도 채 안된다.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임에도 지원금을 더 늘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10명에 3명꼴이다. 국제결혼 이주여성 가정의 절반 이상이 빈곤층에 속하지만 이들에 대한 지원 역시 곱지 않게 본다. 전세계에 빈곤층이 존재하지만 나라와 인종을 떠나 그 사람들 또한 나와 똑같은 지위와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선진국 국민이나 백인에 대해서는 너그럽고, 가난한 나라 사람은 무시하고 차별하는 이중성과 배타적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그래야 국내에 정착한 이주여성들이 정당한 권리와 행복을 누리며 우리와 더불어 살 수 있다. 이주여성과 그들 자녀에 대해 차별적 시각을 버리지 못하면 아시아권에서 우리나라는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아시아권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가 올 것이다. 동북아 허브는커녕 오히려 배척받는 한국인이 될 수도 있다.”

    ▼ 사회 제도와 법은 문제를 인식하고 바꿀 수 있지만 사람들의 의식은 하루아침에 바꾸기 힘들지 않겠나.

    “이주노동자든 국제결혼으로 인한 이주여성이든 갈수록 국내로 유입되는 외국인이 많아질 것이고 국제결혼 부부 사이에 태어나는 2세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국가 내 소수민족을 차별하고 억압해서 제대로 된 나라가 없다. 그들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사회통합 정책이 필요하다. 나아가 언어나 생활양식 등 상대방 문화를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 국경만 벗어나면 언제든 나도 외국인이 된다. 피부색과 언어를 떠나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한다.”

    ▼ 지난해부터 정부 여러 부처에서 다양한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다민족·다문화 사회를 위한 사회통합 문제에 대해 정부도 인식을 하고는 있는 것 같은데.

    “국내 저출산 문제와 노동력 확보 문제 등과 연관지어 생각할 뿐, 깊이 있는 고민과 인식은 부족하다. 외국인 이주여성을 관리와 동화(同化)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을 바꾸고 복지를 시혜인 것처럼 여기는 인식도 깨야 한다.

    예를 들어 외국인 이주여성에 대한 한국어 교육과 한국문화 교육에 열을 올리는 일방적 교육 방식은 외국에서 나무를 뽑아다 우리나라에 옮겨 심어 그 나무를 토종나무로 만들겠다는 발상과 마찬가지다. 나무가 이곳 환경에 잘 적응해서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법과 따로 노는 현실

    8월31일 한국인권재단 주최 세미나에 필리핀 출신 아내와 함께 발제자로 참석한 오기철씨는 “현실을 도외시하고 따로 겉도는 법규도 문제다. 이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한다”며 최근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에 따르면 결혼생활 7년째인 아내 베벌리 엠마퀼링씨는 필리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오씨는 아내에게 전공도 살리고 이국 땅의 외로움을 달랠 겸 원어민 강사로 취직할 것을 권유했다. 자격에 대해 문의하기 위해 아내 대신 광주시교육청으로 전화를 건 오씨는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6개 나라 출신자에게만 강사 자격이 있다. 필리핀은 6개 나라에 해당되지 않는다. 법무부나 교육부 규정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오씨의 말은 광주시교육청과 교육부 지정 원어민강사교육프로그램(EPICK)을 시행하는 한국교원대, 법무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담당자를 통해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법무부 체류정책과 관계자는 “원어민 강사 자격에 대해 법무부가 특정 국가를 제한하는 규정은 없고, 소관업무도 아니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담당자가 부적절한 답변을 했다. 이게 법무부 공식답변”이라고 강조했다.

    “실질적 조치 서둘러야”

    지난 4월 청와대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는 ‘여성 결혼이민자 가족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정부 관련부처와 협력기관을 정해 탈법적 국제결혼 방지 및 국제결혼 당사자 보호, 가정폭력 피해자 등에 대한 안정적 체류 지원, 한국사회 조기적응 및 정착 지원, 아동의 학교생활 지원, 여성 결혼이민자 가족의 안정적 생활환경 조성, 여성 결혼이민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및 업무책임자 교육 등 6개 영역에 걸친 지원정책을 실시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오기철씨 사례에서 보듯 법과 정부의 지원정책이 현실과 괴리를 보이고 있어 이주여성 관련단체들의 비판이 적지 않다.

    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염 대표는 “지원정책 가운데 실질적 조치가 따르지 않아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동안 이주여성이 가정파탄의 귀책사유를 입증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시민단체나 여성단체의 상담을 통한 확인서를 대신 제출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지만, ‘어떤 단체가 어떤 방식으로’ 등과 같은 세부규칙이 없어 확인서를 써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 부처마다 지원방안을 쏟아내면서 중복사업에 따른 예산낭비도 염려되는 상황이다.

    국제결혼을 한 한국 남성과 외국인 여성 사이에 태어난 자녀 수는 현재 7400여 명이고 이들 대부분은 초등학생 이하의 연령이다. 앞으로 이들은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될 것이고 그 사이 새로 태어나는 아이의 수는 빠르게 증가할 것이다. 이들 가정의 문제는 장차 한국사회의 구성원이 될 성장기 아이들의 인격 형성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국내로 유입되는 이주노동자와 함께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급격한 증가는 ‘다인종·다문화 사회를 위한 인식 전환’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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