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호

미국의 대북 금융압박‘스모킹 드래건 작전’1년

CIA, “우리는 마침내 북한의 목줄을 쥐었다”

  • 이교관 한반도 문제 평론가 leekyokwan@hanmail.net

    입력2006-10-09 09: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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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 생일 때마다 돌리던 양주도 수입 못해
    • 탈북자들 도움으로 달러 위조·유통 수사 급진전
    • BDA 계좌는 대량살상무기, 마약, 테러조직 연계 밝혀줄 보고(寶庫)
    • 한국 정부의 또 다른 비밀 대북송금 내역 드러날 수도
    • 후진타오, 중국은행 계좌 풀어달라는 김정일 요구 거절
    • 北의 ‘조건 없는 6자회담 복귀’ 카드도 무용지물
    미국의 대북 금융압박‘스모킹 드래건 작전’1년
    미국 재무부가 대북(對北) 금융압박에 착수한 시점은 지난해 9월15일이다. 북한이 오랫동안 대외결제 루트로 활용해온 마카오 은행 방코델타아시아(BDA)를 북한의 돈세탁 채널로 지목한 것이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온라인상의 대외결제 마비사태를 겪고 있다는 게 한미 정보 당국의 공통된 분석이다.

    북한의 달러 위조 문제로 시작된 미국의 대북 금융압박 1년을 맞은 현 시점에서 제기되는 의문은 대체로 다음 세 가지로 모아진다. 하나는 북한이 대외 금융거래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이 어느 정도냐는 것이다. 또 하나는 미 재무부의 대북 금융압박은 어떤 과정을 거쳐 시작된 것이냐는 의문이다. 마지막으로는 그 끝이 북한의 붕괴인지, 아니면 북한의 굴복에 따른 6자회담 재개인지, 그것도 아니면 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한반도에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가 발발하느냐는 것이다.

    우리 정보 당국 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북한은 매년 2월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 때 노동당, 내각, 인민군 핵심간부들에게 돌리던 양주를 올해에는 수입하지 못했다고 한다. 달러 등 경화가 없어서가 아니라 결제할 계좌가 없었기 때문이다. 즉 BDA에 있던 노동당 대외결제 계좌들이 모두 동결되고 이후 다른 나라 은행들도 북한 기관 명의의 계좌 개설을 거부하면서 외국 양주 회사에 수입 대금을 온라인으로 결제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북한은 지난 3월부터 동남아 등지에서 현지인 명의를 빌려 계좌를 개설하는 식으로 대외결제 마비사태를 수습하려는 움직임이 우리 정보 당국에 포착됐다는 게 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일본 ‘산케이신문’도 8월19일 북한이 동남아와 몽골, 러시아 등 10개국 23개 은행에서 현지인 명의로 계좌를 개설했다고 보도했다.

    현지인 명의를 이용한 계좌 개설은 1990년대부터 북한이 미국에 의한 자산동결 위협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종종 시도했던 방안이다. 그러나 북한은 현지인 명의 계좌도 불안하게 여겨 큰 규모의 자금 결제에는 이용하지 않았다는 게 김태산 전 북한 조선체코신발기술합영회사 대표의 지적이다. 더구나 미국은 이들 현지인 명의 계좌도 포착해 해당 국가에 폐쇄를 요청한 실정이다. 스튜어트 레비 미 재무부 금융범죄담당 차관은 8월28일 베트남, 싱가포르, 몽골 등이 이에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북 금융압박이 이처럼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자 미 중앙정보국(CIA)의 한 관계자는 올해 봄 우리 정보 당국과 업무 협의 때 “우리는 마침내 북한의 목줄을 쥐었다”고 표현했다는 게 앞서의 정보 당국 관계자의 전언이다. 국무부의 한 관계자도 우리 외교 당국 관계자에게 “북핵 사태가 최악으로 치달아 불가피하게 대북 경제봉쇄를 해야 할 때 굳이 그 문제를 유엔 안보리로 가져가지 않아도 미국 독자적으로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최근 대북 금융압박을 통해 알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조화폐 4500만달러 이상 유통

    북한도 자신들의 위기감을 공개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8월26일 북한 외무성은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확대·강화에 대해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모든 대응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6자회담에 나가고 싶으나 미국이 대북 금융제재를 풀지 않으면 그럴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대북 금융압박을 확대·강화하는 방안을 공개하고 나섰다. 이틀 뒤인 8월28일 대북 금융압박을 지휘하고 있는 레비 차관이 AP통신과의 회견에서 “북한은 금융거래에서 완전히 고립됐으며 미국 관리들이 아시아지역 국가와 은행들에 북한과의 거래 행위가 금융 관련 신뢰도에 크게 위협이 될 것이라는 점을 설득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미 재무부가 북한의 위조달러 문제를 추적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부터다. 북한은 1990년대 이후 2003년까지 4500만∼6000만의 위조달러를 유통시켜온 혐의를 받아왔다.

    그런데 미 재무부가 지난해 9월15일 BDA를 북한의 돈 세탁 채널로 지목했다는 것은 미국이 북한의 달러 위조 수사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한 시기가 2005년 전후임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 우리 정보 당국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8000여 명에 달하는 탈북자라는 귀중한 인간정보(humint) 자원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해온 틈을 타 미국이 이들을 적극 활용해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국이 북한의 달러 위조 관련 수사에 급진전을 볼 수 있었던 데는 탈북자들이 내놓은 정보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것이다.

    미국의 북한 달러 위조 수사에 도움을 준 탈북자 중 하나로 북한 무역회사 간부 출신인 40대 후반의 남씨가 꼽힌다. 그가 미국의 수사에 협력하게 된 것은 2004년초 미 사법당국 관계자들에게서 면담 요청을 받으면서부터였다고 한다. 당시 만난 미국 관리들은 평양시 북쪽 평성시에 있는 조선중앙은행 화폐제조창에서 생산된 미화 100달러짜리 위조지폐, 이른바 ‘슈퍼 노트(super note)’를 입수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남씨는 말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남씨는 북한 내 중개인을 통해 평성시 위조달러 제조창에서 생산된 슈퍼노트를 한 장에 미화 50달러씩 주고 여러 장 구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위폐의 유통 네트워크에 관한 핵심정보도 입수했다. 북한 노동당 중앙당 39호실(공식적으로는 미수교국과의 교역을 담당하는 당 경제 부서이나 실제로는 김정일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부서로 알려졌다) 소속인 조광무역회사의 마카오 사무소를 통해 외부 세계로 유통되고 있다는 것.

    북한 BDA 계좌는 50개

    남씨에 따르면 미 사법 당국은 자신을 통해 확보한, 평성시에서 생산된 100달러 위조지폐와 위폐 유통 네트워크 정보를 백악관에 보고했다고 한다. 그는 미 사법 당국 관계자들로부터 “백악관의 지시에 따라 이들 북한의 달러 위조 관련 자료를 미 재무부와 공유했으며, 이는 북한의 달러 위조 및 유통 수사에 큰 도움이 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마카오의 주권이 포르투갈에서 중국으로 반환되던 1999년 말부터 미국이 마카오에서 벌이기 시작한 북한의 달러 위조 및 유통 수사 작전인 ‘스모킹 드래건 작전(Operation Smoking Dragon)’을 이전보다 확고한 물증과 정보를 바탕으로 재정비해 추진한 것은 2004년 하반기였다. 수사 대상에는 조광무역회사 마카오 사무소 이외에 이 사무소로부터 위폐를 받아 외부로 유통시켜온 마카오 BDA은행은 물론 중국의 국영 상업은행인 중국은행(Bank of China)의 마카오 지점까지 포함됐다.

    스모킹 드래건 작전의 지휘는 미 재무부 소속 테러·금융정보실(Office of Terrorism and Financial Intelligence, 이하 TFI)이 맡았다. 레비 차관이 이끄는 TFI의 목표는 국제 테러리스트, 대량살상무기 확산국, 마약 밀매업자 및 국가, 그리고 기타 범죄자들의 금융 지원 채널을 단절하는 데 있다. 2004년에 출범한 TFI가 이 작전에 발 벗고 나선 데는 북한이 대량살상무기 확산국이라는 사실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는 스모킹 드래건 작전이 단순히 북한의 달러 위조 행위를 척결하자는 게 아니라 북한의 금융 숨통을 끊어놓음으로써 대량살상무기의 개발과 수출을 더는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목표에 따른 것임을 보여준다.

    스모킹 드래건 작전을 마카오에서 전개한 기관은 재무부 소속의 화폐조사국(Secret Service)인 것으로 알려졌다. 화폐조사국은 1901년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 암살 사건 이후 미 의회의 결정에 따라 대통령 경호 업무를 맡고 있어 ‘비밀경호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화폐조사국이 1865년 창설된 이후 맡아온 주 임무는 달러 위조 수사를 통한 미 통화 시스템의 보호다. 북한산 위조달러를 슈퍼 노트라고 명명한 곳도 바로 이곳이다. 우리 정보 당국 관계자에 의하면 스모킹 드래건 작전은 첨단 장비가 총동원된 군사 작전을 방불케 했다고 한다.

    이 작전의 핵심 조사 대상인 BDA의 경우 미국 조사요원들이 직접 은행을 방문해 조사할 수 있었다. 당시 조사요원들은 은행 건물 내부의 한 벽면에 천장까지 맞닿은 수백개의 칸에 빼곡히 꽂혀 있는, 손으로 일일이 기록한 북한의 금융거래 내역서들을 확보하는 성과를 올렸다. 조사요원들은 현장에서 이들 내역서의 사본을 일일이 만든 뒤 정확한 분석을 위해 본국으로 보냈다.

    이들 내역서 사본에 대한 분석은 TFI의 협력기관인 미 국세청(IRS·Internal Revenue Service)의 범죄수사국(Criminal Investigation Division)이 담당해왔다고 레비 차관이 4월6일 미 상원에서 증언했다. 분석 작업은 현재 거의 완료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북 금융압박‘스모킹 드래건 작전’1년

    지난 4월 도쿄에서 열린 동북아협력대화 회의에 참석한 김계관 북측 단장은 ‘무조건 6자회담 복귀’를 제의해 미국과 유화국면을 조성하려 했지만 힐 미 국무부 차관보로부터 눈길 한번 받지 못했다.

    레비 차관은 7월26일 미국의 소리방송(VOA)과 한 인터뷰에서 “BDA 조사 과정에서 북한 정부가 다른 불법 행위에도 개입한 혐의를 포착했다”며 “지난해 9월 BDA를 ‘돈 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했을 당시 드러난 사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언급은 미국이 확보한 북한의 50개 BDA 계좌거래 내역서 사본이 지난 20여 년간 북한이 BDA 계좌들을 통해 관여한 수많은 대량살상무기, 위폐, 그리고 마약의 확산 행위는 물론 중동지역 테러 조직들과의 연계여부도 조만간 낱낱이 밝혀줄 가능성이 높은 ‘보고(寶庫)’임을 시사한다.

    스모킹 드래건 작전을 통해 북한의 BDA 계좌 수도 확인됐다. 지난 7월 중순 국내 일부 언론은 40여 개라고 보도했으나 정확하게 50개라는 게 앞서의 우리 정보 당국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들 계좌 모두 노동당 중앙당 39호실이 관리해온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미국이 BDA에서 확보한 관련 거래내역서 분석을 통해 확인됐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이들 50개 계좌 중 일부는 2000년 6월13∼15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국가정보원이 2억달러를 송금할 때 이용됐다. 이 때문에 미국이 이들 계좌의 내역서 분석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또 다른 비밀송금 내역을 파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우리 외교 관계자의 지적이다.

    북한 노동당 중앙당 부서들과 산하 금융 및 무역 기관들이 BDA로 대외결제 루트를 통합한 시점은 1990년대 중반이다. 당시 북한은 싱가포르, 홍콩 그리고 유럽 등지의 은행에 개설된 계좌들이 미국에 의해 언제 어떻게 동결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재일 조총련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BDA가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 1995년경부터 대외결제 루트를 이 은행으로 단일화했다는 것이 김태산씨의 증언이다.

    중국은행도 북한 계좌 폐쇄

    스모킹 드래건 작전의 성과와 관련, 레비 차관은 4월6일 미 상원에서 BDA는 위조화폐인 줄 알면서도(knowingly) 북한 회사들로부터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증언했다. 또한 북한 요원들이 수억달러의 위조지폐를 예치하고 인출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20년이 넘도록 외화 위조, 마약 밀매, 위조 외산 담배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이들 아이템의 세탁에 개입한 북한 기관과 무역회사들에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왔다고 밝혔다. 대륙간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의 자금을 지원해온 북한 단천은행을 비롯해 대량살상무기 확산에 관여해온 북한의 여러 기관이 BDA에 계좌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

    이에 따라 미 재무부는 미국 애국법(PATRIOT Act) 311조에 의거, BDA를 ‘주요 자금 세탁 우려 대상(primary money laundering concern)’으로 지목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지난해 9월15일 발표됐다. 그러나 미 재무부는 조사요원들에 의해 북한의 불법자금 세탁에 관여했다는 평가를 받은 중국은행은 주요 자금 세탁 우려 대상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이 같은 방침은 조사요원들을 좌절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당시 미 재무부 대변인은 중국은행이 북한의 달러 위조 수사와 관련한 조사 대상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일절 언급을 피했다.

    부시 행정부가 중국은행을 지목하지 않기로 한 데는 외교적인 이유가 고려된 것으로 전해졌다. 9·11테러 이후 대(對) 테러 및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방지를 최우선적인 국정 목표로 삼아온 부시 행정부가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외교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부시 행정부는 이미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핵무기 프로그램 보유 시인에 따라 2차 북핵 위기가 발발한 직후부터 중국의 지원을 받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는 중국은행까지 우려 대상으로 지목하면 중국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효과 강력했던 미 애국법 311조

    대신 부시 행정부는 중국은행을 지목하지 않는 조건으로 중국 정부에 중국은행으로 하여금 북한 계좌를 개설해주지 말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 앞서의 정보 관계자 전언이다. 이는 미 재무부가 BDA를 지목한 직후 중국은행이 마카오 지점의 북한 계좌를 폐쇄한 데서 확인된다. 2000년에 중국으로 주권이 반환된 마카오 당국이 BDA의 북한 계좌 정보 일체를 미국 수사팀에 넘겨준 데는 미중 간의 이 같은 합의가 큰 영향을 미쳤다.

    외국 관할지역, 외국 금융기관 또는 어떤 특정 거래 형태를 ‘주요 자금 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목할 수 있는 권한을 미 재무부에 부여하는 애국법 311조는 미국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 행위 근절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단 이 대상으로 지목되면 재무부는 미국 금융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 금융기관들로 하여금 지목된 금융기관과 거래를 단절하도록 요구하는 등 일련의 규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 같은 조치는 지목된 외국 금융기관을 미국 금융시스템으로부터 격리한다.

    실제로 311조의 효과는 강력했다. 미 재무부가 BDA를 주요 자금 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 은행에 예금을 갖고 있는 수많은 마카오 시민이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몰려드는 이른바 ‘뱅크런(bank run)’이 빚어졌다. 이는 마카오 시민들이 ‘BDA가 미 재무부에 의해 북한의 불법 돈 세탁 창구로 지목된 것은 미국 금융기관들과의 거래를 중단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렇게 되면 도산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는 의미다. BDA는 2000만달러(북한은 2400만달러로 주장)가 예치된 50개 북한 계좌를 동결하면서 가까스로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

    중국 정부가 비공개로 중국은행에 마카오 지점의 북한 계좌를 폐쇄하라고 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중국은행이 BDA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 정부로서는 최대 국영 상업은행인 중국은행이 미 재무부에 의해 주요 자금 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돼 미국 금융기관들과의 거래가 중단될 경우 경제 발전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는 것. 현재 중국 정부가 최대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2년 상하이 엑스포다. 이를 통해 중국 국민이 그런대로 먹고사는 사회, 이른바 ‘샤오캉(小康)’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경제 발전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 극비 訪中 진짜 이유

    북한은 BDA에 의한 계좌 동결에 이어 중국 국영은행들까지 이에 가세하자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BDA가 미 재무부로부터 주요 자금 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목된 직후 북한은 BDA 근처 빌딩의 5층에 있던 조광무역회사의 마카오 사무소를 인근 중국 주하이(珠海) 특구로 이전하면서 자산을 그곳의 중국 국영은행들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중국은행 등이 계좌동결 조치를 취하자 북한으로선 적지 않은 자산을 압류당하는 피해를 봤다는 전언이다.

    북한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해 첫 공식 의견을 표명한 시점은 BDA와 중국은행의 계좌들이 모두 동결된 직후인 지난해 11월초였다. 그달 9일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 5차 6자회담에 참가한 북한 대표단(단장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미 재무부가 북한이 달러를 위조해왔다며 금융제재를 가하면서 급기야 그해 10월21일 북한의 8개 회사가 미국에 갖고 있거나 가질 예정인 자산의 동결 조치를 취한 데 대해 강하게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BDA 문제와 6자회담은 전혀 연관성이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그러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나섰다. 1월10일 열차를 이용해 비공개로 중국을 방문한 것이다. 우리 정보 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김정일은 BDA의 여러 계좌에 예치된 자신의 비자금 2400만달러가 동결되고 노동당 산하 기관들의 대외 결제계좌들이 줄줄이 폐쇄되면서 자신의 생일에 간부들에게 돌릴 양주조차 수입하지 못하게 되자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직접 만나 중국은행에 의한 계좌 폐쇄를 풀어보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했던 듯하다.

    당시 거의 모든 국내외 언론은 그의 선전(深) 특구 방문을 근거로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목적이 북한의 경제 개혁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우리 정보 당국은 언론과 달리 봤다. 그 이유는 중국 정부가 김 위원장이 예전에 방문했을 때와 달리 우리 정보 당국이 정보 협조를 요청했을 때 사실과 다른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우리 정보 당국은 중국 정부의 이 같은 ‘이상한’ 태도로 미루어 김 위원장의 방중이 갑작스럽게 이뤄졌으며 그 목적은 중국은행의 북한 계좌 폐쇄 사태를 해결하려는 데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후진타오 주석은 중국은행을 비롯한 중국의 상업은행들로 하여금 북한 기관들에 계좌를 개설해주도록 요청해달라는 김정일 위원장의 요청을 거절했다. 김 위원장과 후진타오 주석의 담판이 무위로 끝난 뒤 사태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지난 2월 일본 은행들에 이어 신한은행과 수협중앙회 등 한국의 금융기관들까지 BDA와 금융 거래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BDA와 거래를 유지했다가 자칫 미국의 금융기관과 거래하는 데 타격을 입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BDA 사태는 국제 금융계에 북한과 금융거래를 했다가는 패가망신한다는 교훈이 급속히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 전세계 20~30개의 금융기관이 북한과 금융거래를 축소하거나 단절했다.

    다급해진 북한의 선택

    북한은 3월 들어 그동안 거부해오던 BDA 계좌 동결에 관한 미국의 브리핑을 받겠다고 제안했다. 미 국무부는 혹시나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에 북한과의 뉴욕 회담에 기대를 걸었다.

    미국의 대북 금융압박‘스모킹 드래건 작전’1년

    지난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극비 방문한 것은 북한 경제 개방 문제 때문이 아니라 후진타오 주석에게 중국 은행 계좌 개설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3월7일 뉴욕에서 개최된 미·북 양자회담에서 양국은 기존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당시 미 대표단은 위조달러에 대한 수사 문제가 6자회담과는 무관한 만큼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을 북한 대표단에 촉구했다. 그러나 북한 대표단은 북한은 달러 위조에 관여한 적이 없다면서 전반적인 금융제재 해제는 아니더라도 BDA에 대한 제재만이라도 풀어야 6자회담에 나갈 수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 회담은 북한의 대외결제 마비사태를 공식적으로 드러낸 계기로 받아들여진다. 북한 수석대표인 이근 미국국 국장이 미 대표단에 북한이 미국 은행에 계좌 하나를 개설해 대외 금융거래를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거부했다. 거부 사유는 미국 은행들의 북한에 대한 계좌 개설 여부는 은행의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행정부가 간섭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3·7 뉴욕회담 이후 북한은 전략을 바꾼다. 미국측에 ‘조건 없는 6자회담 복귀’ 카드를 제시해서라도 미국의 금융압박에 따른 체제 위기를 극복해보기로 판단했다는 것이 우리 정보 당국 관계자의 전언이다. 북한이 이 같은 카드를 타진할 계기로 삼은 것은 4월10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동북아협력대화(NEACD) 회의였다.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힐 국무부 차관보도 참석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고려한 것이다. 북한은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을 회의 사흘 전에 파견, 힐 미 국무부 차관보와 접촉하는 데 만전을 기했다.

    그러나 정작 동북아협력대화 회의가 개막되자 힐 차관보는 김계관 부상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연설 차례가 되자 서류 가방에서 준비해 온 문안을 꺼내서 “중요한 것은 북한이 6자회담으로 단순히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고 성실하게 9·19 공동선언 이행 계획을 마련해 복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초 김계관 북한 수석대표는 힐 차관보가 인사를 건네오면 자연스럽게 조건 없이 6자회담에 복귀할 의사를 밝힐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힐 차관보가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복귀하더라도 구체적인 9·19 선언 이행 계획이 수반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는 등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자 김계관 대표는 이 같은 계획을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북한 대표단은 2400만달러가 예치된 BDA 계좌 동결을 해제해야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이라는 기존의 주장만 되풀이하고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북한은 6자회담에 조건 없이 복귀한다는 카드도 이미 자신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미국에 전혀 먹히지 않음을 깨달았을 것이라는 게 우리 외교 당국 관계자의 분석이다.

    금융압박 풀기 위해 핵 이용

    북한이 7월5일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한 것은 이처럼 협상을 통해 미국의 금융압박을 완화해볼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미사일 시험발사 강행이라는 비대칭 대미 압박카드를 선택한 데는 1998년 8월31일 대포동 1호 미사일 시험발사로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완화라는 성과를 올린 전례가 고려됐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우리 정보 당국 관계자의 지적이다. 그러나 대포동 2호 시험발사가 실패로 돌아감으로써 김 위원장의 계산은 빗나갔다. 그 결과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과 일본이 제출한 대북 제재 결의안을 기초로 한 제재 결의안이 통과되는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

    2002년 10월 2차 북핵 위기 발발 이후 북한이 구사해온 벼랑끝 전술 특징 중 하나는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편다는 것이다. 첫 번째 전술이 먹히지 않으면 그로부터 한 달도 안 돼 두 번째와 세 번째 전술을 연속적으로 구사하는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시험발사한 지 달포 만인 지난 8월 중순부터 지하 핵실험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이 지하 핵실험을 강행하지 않은 채 그럴 것 같은 움직임만 보인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북한의 대미 목표가 여전히 금융압박의 해제나 완화를 이끌어낸 뒤 북핵 문제를 북미 양자 협상을 통해 다룸으로써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이라는 한미 간 군사·정치 동맹의 와해를 실현하는 데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지하 핵실험이 강행될 경우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북핵 문제를 고리로 미국과 협상을 벌여 한미 간 군사·정치 동맹을 와해시키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핵보유국임을 물리적으로 입증함으로써 핵무기를 지렛대 삼아 금융압박으로 인한 체제 위협을 차단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것이 북한의 의도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대북 금융압박‘스모킹 드래건 작전’1년
    이교관

    1965년 강원도 양양 출생

    한국외대 독어과 졸업,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북한통일정책학과 석사, 서강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

    ‘시사저널’ ‘조선일보’ 기자

    저서 ‘레드라인, 북핵위기의 진실과 미국의 한반도 시나리오’ 등


    이런 맥락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면 6자회담이 자연스럽게 용도 폐기되면서 동북아 안보질서에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변화의 핵심은 북한이 핵보유국가로서 인정받는 것과 함께 일본의 핵무장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와 관련, 우리 정보 당국 관계자는 “한미의 정보 당국 모두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하면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으로 대접받게 된다. 문제는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일본이 핵무장을 서두르는 상황이 현실화할 경우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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