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만들기 올인 ’ 손익계산서

안보리 진출 연기, 國際線 기금 부과, 막대한 외교자원 투입…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6-10-13 13: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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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월 유엔 사무총장 출마를 선언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최고의 외교관’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각국의 지지를 받으며 10월초로 예상되는 최종결정을 향해 순항 중인 그에게 정부는 광범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몇 가지 결정사안에 대해 국민적 동의 확보나 전략적 고려가 부족했다는 비판도 제기되는데…. 과연 유엔 사무총장은 어떤 자리이며,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국익’의 실체는 무엇인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만들기 올인 ’  손익계산서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 유엔 사무총장은 사무국 7000여 직원과 전문기구 5만여 직원을 지휘·감독하는 막강한 자리다.

    9월4일 새벽, 청와대와 외교통상부를 발칵 뒤집는 기사가 뉴스를 장식했다. 교도통신, 산케이신문, 도쿄신문 등 일본의 주요 언론이 ‘매우 민감한’ 내용을 보도한 까닭이었다.

    “지난 8월초 일본을 방문한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일본의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을 만나 한일 정상회담 재개에 응할 용의가 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전달했다.”

    지난해부터 독도와 역사왜곡 문제로 대일외교에서 ‘외교전쟁’에 가까운 강경노선을 유지해온 정부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었다. 외교부는 이날 오전 긴급하게 해명자료를 냈다. 일본 언론의 보도내용을 부인하는 내용이었다. 그 요지는 이러했다.

    “반 장관이 8월9일 하시모토 총리 장례식 조문사절로 방일한 계기에 아베 장관을 만나 한일 관계의 어려움과 갈등요인이 빠른 시일 내에 해소돼 한일 정부간 정상적인 교류가 재개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한 것은 맞다. 그러나 한일 정상회담 개최나 일본 차기 총리의 방한 등에 관해 언급한 바는 없다.”

    상황을 확인하기 위한 청와대의 움직임도 분주했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 본인의 진노가 컸다는 후문. 청와대 관계자들 역시 ‘정상회담’이라는 말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정상적인 교류 재개’ 의사만 해도 문제가 있다는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그간의 강경 분위기를 주도해온 한국 정부가 먼저 화해의 제스처를 내보인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뿐더러, 무엇보다 청와대의 최종 재가를 거치지 않은 의사 전달이었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분노가 전해지자,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반 장관이 굳이 ‘앞서 나간’ 메시지를 전달한 이유가 무엇인지 다양한 해석이 쏟아져 나왔다. 우선은 본질적으로 대립보다 협조관계를 선호하는 직업외교관 특유의 마인드가 반영된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다소 음모론적인 시각으로는, 일본이 다가오는 유엔 사무총장 선거에서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 투표권을 갖고 있음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흘러나온다. 일본은 사무총장이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 10월에 순번에 따라 안보리 의장국을 맡는다.

    주한 일본대사관 관계자 등 일본 외교관들이 사석에서 “한일 간의 긴장이 이렇듯 고조된 상황에 일본이 기꺼운 마음으로 한국 외교의 수장(首長)인 반 장관을 사무총장으로 지지할 수 있겠냐”고 언급해온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난 7월 실시된 사무총장 1차 예비투표(Straw Poll)에서 반 장관이 얻은 단 하나의 반대표가 일본에서 나온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었다. 일본측은 이에 대해 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았다.

    이틀 후인 9월6일에는 상황이 더욱 엉켰다. ‘오마이뉴스’가 여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반 장관이 사의를 표명했다”고 보도한 까닭이었다. 청와대와 외교부는 즉각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대통령 해외순방을 수행 중인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과 박남춘 인사수석, 추규호 외교부 대변인이 모두 나선 ‘총력 부인’이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러한 보도가 나간 것에는 최근의 기류가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평했다. 장관직을 유지한 채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나선 것에 대한 일각의 비판적인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Ultimate Diplomat’

    ‘Ultimate Diplomat.’ 한국 사정에 밝은 미국 국무부의 한 관계자가 반기문 장관을 평한 말이다. 한마디로 ‘이보다 나은 외교관은 있을 수 없다’는 최고의 찬사이다. 1944년생인 반 장관은 1970년 외무고시에 합격한 이래 주로 미국과 유엔 관련 핵심직책을 거치며 ‘한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생각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봉합하고 이견을 조정해 구체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탁월하다는 것이 전현직 외교관들의 중평.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 등 정치적 색채가 확연히 다른 정부들을 거치면서도 청와대와 외교부의 차관급 이상 고위직을 꾸준히 역임한 것 또한 이러한 그의 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엔 사무총장은 대외적으로 유엔을 대표하고 대내적으로 유엔의 모든 사무를 지휘·감독하는 자리다. 유엔 사무국 직원 7000여 명과 전문기구 산하 5만명이 그의 휘하에 있다. 국제적으로는 정부수반에 준하는 의전상의 대우를 받는다. 특히 최근에는 단순히 행정업무의 장이 아니라 분쟁개입이나 해결도모 같은 ‘국제 정치가’로서의 역할이 더 강화되고 있는 추세. 한마디로 반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될 경우 개인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큰 자랑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엔 헌장에 따르면 사무총장은 안보리 이사회의 추천을 거쳐 총회에서 임명한다. 그러나 사실상 미·중·영·프·러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정치적 합의에 따라 선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상임이사국으로부터도 반대표(Veto)를 받지 않고 10개 비상임이사국까지 포함한 총 15개의 안보리 이사국 전체의 9표 이상을 얻어야 한다. 상임이사국 가운데 한 나라가 거부권을 행사하면 14개 표를 얻어도 불가능하다. 총회는 박수로 이를 승인하는 형식적 절차일 뿐이다.

    7월24일과 9월14일 실시된 예비투표는 사실 비공식 모의투표다. 안보리 이사국들의 ‘의중을 떠보는 절차’인 것이다. 예비투표에서 표가 적게 나온 후보는 사퇴하는 식으로 진행해 오직 한 명의 후보로 뜻이 모일 때까지 반복해서 투표를 계속한다. 현재는 9월말에서 10월초에는 선출이 완료될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일정이 한없이 지연될 수도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사국 간의 정치적 절충을 거듭하는 것이다.

    전폭적인 지원

    반 장관이 사무총장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은 지난 2월. 이후 청와대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고, 현재는 광범위한 지원체계가 가동되고 있다. 우선 반 장관 본인은 출마를 선언한 2월 이후 말 그대로 ‘전세계를 누비며’ 15개 이사국 외교수장을 포함한 많은 관련 인사를 만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외교부의 경우 공식적으로는 국제기구국 직원들이 중심이 되어 관련 작업을 담당하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부서와 공관이 힘을 보태고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공약’에 해당하는 유엔 개혁안이나 비전 등의 부분은 주로 국제연합과에서 담당하고(국제연합과 직원들에게는 공식적으로 ‘사무총장 진출 지원’이라는 업무분장이 돼 있는 상태다), 장관보좌관실을 중심으로 각국 외교 당국자들과의 면담일정과 사무총장 진출 관련 현안을 챙기며, 각 부서와 공관은 현지 국가들의 의중과 정보를 수집해 보고하는 형태다. 관련 정보 수집이나 투표권을 가진 이사국 분위기 파악에는 국가정보원도 참여하고 있다는 후문. 이렇게 모인 정보는 거의 일 단위로 정리되어 반 장관에게 보고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지난 3월 아프리카를 순방한 노무현 대통령은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반 장관의 사무총장 출마에 대한 공개 지지를 이끌어낸 바 있다. 이집트는 투표권을 가진 국가는 아니지만 지역내에서 차지하는 정치적 위상으로 볼 때 의미 있는 결과였다는 분석이다. 노 대통령의 9월 해외순방 기간 중 열린 10회의 정상회담 가운데 다섯 나라(그리스, 덴마크, 슬로바키아, 프랑스, 중국)가 총장 투표권을 가진 안보리 이사국이다. 부총리를 접견한 영국도 마찬가지다.

    “전혀 관련 없다”지만…

    내년 상반기부터 국제선(國際線)을 이용하는 내외국인들은 항공료와는 별도로 1000원의 빈곤퇴치기금을 내야 한다. 9월5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한국국제협력단법’ 개정안에 따르면 이렇게 모인 연간 150억원 상당의 자금은 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국가들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기금으로 활용된다.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에 들어가게 된다.

    정부는 외교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11인의 운용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대외 무상원조사업 전담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으로 하여금 외교부 장관의 위탁을 받아 기여금을 관리·운용하게 된다고 밝혔다. 당초 기여금 징수에 대해 “자발적으로 걷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징수에 드는 비용과 난점을 감안해 강제 부과하는 방안을 최종적으로 채택했다”는 것이 외교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이러한 기금 부과는 지난 3월 노무현 대통령이 아프리카 3개국 순방 중에 발표한 ‘코리아 이니셔티브’에 따른 것이다. 아프리카 개발원조를 오는 2008년까지 현재의 3배 규모인 연간 1억달러 규모로 확대하기로 한다는 것이 그 골자다. 국제선 이용객에 대한 기금 부과는 바로 이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취지로 도입되는 것이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개발원조의 확대 이유는 세계 11위의 경제규모에 비해 국제사회에 대한 한국의 기여가 매우 적다는 ‘당위론’이다. 지난해 한국의 정부개발원조(ODA)는 국민총소득(GNI) 대비 0.08% 수준에 불과해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것. 그간 국내외에서는 대외원조를 늘려 국가적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비전 2030’에는 2030년까지 ODA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0.3%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 이외에도 아프리카에 대한 지원 확대에는 산유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을 도모한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그러나 계속 미뤄져왔던 대외원조 확대가 올해 들어 ‘국제선 강제 기금부과’라는 논란의 소지가 있는 정책으로 구체화된 데에는 반기문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진출시도가 하나의 계기가 됐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를 통해 아프리카 국가들의 ‘한국 이미지’를 개선하면 사무총장 진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전체 10개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가운데 아프리카 국가는 탄자니아와 콩고, 가나 3개국. 쉽게 말해 ‘지원 공약’의 의미가 있는 셈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지원확대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사무총장 선출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프랑스를 의식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세기까지 아프리카에 식민지가 많았던 프랑스에는 현재도 아프리카의 안정 문제가 국내정치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주요한 이슈다. 한국이 아프리카 안정에 적극적인 역할을 자임한다면 프랑스로서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물론 외교부는 공식적으로는 이 같은 ‘고려’를 부인한다. 국제선 기금부과를 통해 대외원조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은 이미 수년 전부터 준비해온 것이며, 대외적으로 ODA 확대와 사무총장 진출 건이 관련이 있는 것처럼 비쳤다면 투표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보인 것뿐’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이 이미 갖고 있는 계획을 검토해 사무총장 진출이라는 외교적 목표를 위해 지렛대로 활용할 따름이라는 것. ODA 확대를 주장해온 대외원조 관련기관에서는 사무총장 진출 추진이라는 계기를 통해 ODA 확대라는 ‘당위’를 국민적 동의 아래 추진할 수 있다면 반가운 일이라는 속내도 숨기지 않는다.

    ‘제3세계 빈곤퇴치’라는 대의나 국가 위신을 생각할 때 ODA의 확대가 지극히 바람직한 정책방향이라는 데에는 전문가들 사이에도 이견이 없다. 실제로 대통령과 국무회의에도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국제선 기금부과 문제가 보고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계획돼 있던 국제선 기금부과가 ‘2006년 9월’이라는 시점에 확정된 것이 사무총장 진출 지원과 관련이 깊다는 점은 청와대 관계자들도 쉽게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확대해 대외원조를 늘리는 방식이나 국민의 자발적인 기여 대신 ‘국제선 강제부과’라는 방식으로 최종 결정이 된 것에 대해서는 정부 안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에게 추가부담을 강제로 지울 법적 논리가 완벽하지 않아 헌법소원 등이 제기될 경우 논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반 장관 본인도 지난 3월 MBC라디오와 한 인터뷰에서는 “국민이 자발적으로 기여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지만, 최종결정은 달랐다.

    비상임이사국 추진 연기한 속내

    안보분야 전문가들이 더욱 주목하고 있는 것은, 사무총장 선거전이 본격화한 8월말 외교부가 2007~08년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 추진을 포기한다고 발표한 부분이다. 공식발표문에 따르면 ‘제반 외교여건에 따른 결정’이지만, 외교부 당국자들도 이번 결정이 사무총장 진출 건과 관련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비상임이사국 결정과 사무총장 선출 일정이 10월로 대략 일치하다보니 한꺼번에 두 마리 토끼를 좇는 모양새가 됐고, 이 때문에 명분도 서지 않고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해 정부는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부터 적잖은 공력을 들여왔다. 비상임이사국은 상임이사국과 달리 거부권은 없지만, 안보리에 회부되는 주요 안건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한 표를 행사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자리다. 한국은 1996∼97년에 비상임이사국을 지낸 바 있으며 아시아그룹에 배당된 2007∼08년 임기의 1개국 쿼터를 놓고 그간 인도네시아, 네팔과 경합해왔다.

    특히 현재는 핵과 미사일 등 북한 관련 이슈가 안보리에서 논의되고 있고, 이러한 긴장은 2007~08년에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의 비상임이사국 자리는 한국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7월 진행된 북한 미사일 발사 관련 제재 결의 과정에서도 한국은 이사국이 아니므로 비공개회의에서 진행되는 논의 사항은 회람과 개인적인 친분 등을 통해 확인해야 했다. 관련 자료는 대부분 공유할 수 있다 해도 발언권과 의결권이 없으므로 영향력이 작을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 적극적인 논의 주도 대신 각국의 ‘배려’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비상임이사국 진출 연기를 두고 관련 부처에서는 간단치 않은 논란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2006년 한국의 처지에서 사무총장과 비상임이사국 진출 가운데 무엇이 더 ‘전략적으로 가치가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 것. 비상임이사국 진출 연기 방침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정부 당국자는 “치열한 토론 끝에 결정이 내려졌고, 모두 ‘외교부의 단일 의견’으로 받아들이기로 의견을 조율했다”고 설명했다. 비상임이사국의 경우 2009년에 다시 추진할 수 있지만 ‘아시아권 사무총장’의 기회는 40년 만에 돌아온 것이라는 논리가 주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일련의 결정과 관련해, 일부 전문가와 관계자들은 ‘과연 그 무게와 득실이 제대로 가늠된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우선 따져볼 것은 사무총장 진출이 가져올 ‘보이지 않는 국익’의 실체에 대한 것이다. 국정브리핑 등 정부 공식문서가 들고 있는 첫째 이유는 ‘국가적 위상’이 높아진다는 점. 국제무대에서 한국외교의 성과를 과시하고 평화국가로의 도약을 공식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다. 또한 유엔 등 국제기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커져 빈곤과 분쟁 같은 세계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게 되는 등 ‘한국의 국제화’가 촉진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그 같은 기대에도 “거품이 있다”고 말한다. 유엔 사무총장은 출신국가와는 전혀 별개인 ‘개인 자격’으로 선출된다.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전 사무총장이나 코피 아난 현 총장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출신 국가인 이집트와 가나의 국가적 위상이나 대외 이미지가 크게 상승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으냐는 주장이다.

    외교무대, 특히 유엔 관련 국제기구에서 한국인 혹은 한국 출신 관계자들의 활동공간이 넓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보이지 않는 이익’의 한 축으로 거론된다. 아무래도 조직의 리더가 한국인이면 일정부분 한국 출신을 ‘배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리라는 것. 그러나 오히려 일정수준 이상의 고위직에 진출할 때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견해도 만만찮다. 외교관이나 국제기구 관계자들의 어깨는 올라가겠지만, 구체적으로 한국인 정책결정자의 숫자가 늘어나는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공식적인 견해이긴 하지만, 향후 유엔에서 북한 등 한반도 관련 문제가 논의될 때도 보이지 않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각국이 아무래도 사무총장의 입장을 배려할 수 있고, 관련일정 등 기술적인 문제가 다소나마 유리하게 처리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물론 원칙적으로 보면 유엔헌장에 사무총장은 ‘어떤 기구나 국가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으므로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간의 실례를 봐도 유엔에서 사무총장의 처지를 고려해 첨예한 이슈에 대한 논의가 영향 받은 일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제기구 전문가들 사이에는 그 같은 기대를 ‘암묵적으로라도’ 품고 있는 것은 국제기구 유엔의 대의와 기능을 고려할 때 전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원론적인 비판이 있다. 가뜩이나 국제무대에서는 유엔과 관련해 첨예한 외교적 이해를 지닌 한국이 사무총장 후보를 낸다는 데 대해 비판적인 의견이 있는데, ‘외교적 효과’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극도로 위험한 일이라는 것이다. 한 전직 외교관은 “물론 유엔도 사람이 움직이는 동네이니 만큼 원칙과 다른 현실이 있을 수 있지만, 한국이 이를 국익으로 환산할 만한 크기일 리도 없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5%에 대한 고려

    외교무대에서 자국에 유리한 결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결정권을 가진 국가들과 ‘거래(deal)’하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물론 이 같은 거래는 외부적으로 공개되는 법이 없고, 정황상 명확한 경우라도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경우는 없다. 한국만 해도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국제행사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온 것이 사실이다.

    최근의 사례로는 1998년부터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추진됐다가 2002년말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 투표에서 패배한 ‘2010년 여수 세계박람회’ 건이 있다(정부는 2004년부터 2012년 여수 박람회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당시 사정에 정통한 전직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접촉한 투표권 국가마다 다양한 요구를 해왔고, 되도록 이를 맞춰 표를 확보하는 것이 득표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요구’를 챙긴 국가가 실제로 총회에서 여수에 투표했는지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전직 외교관이나 국제기구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보편적이긴 해도, 우리는 좀 유별난 데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평했다. 아난 현 총장이나 갈리 전 총장이 선출될 당시에도 출신국 정부가 물심양면으로 돕긴 했지만, 한국의 경우 분명 일반적인 수준은 넘는다는 것. 여기에는 현직 외교수장 신분을 유지한 채 선거운동에 나섰다는 사실도 일정부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연 반 장관이 현직장관이 아니었다 해도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연기했겠느냐는 것이다. 한 관련 전문가의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은 국제무대에서 경쟁이 붙으면 엄청난 노력을 투입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다른 나라들 사이에서 ‘한국과 붙으면 박살이 난다’는 말이 떠돌 정도다. 반 장관의 사무총장 진출이 큰 자랑거리가 되긴 하겠지만, 이를 스포츠 경기에서 금메달 따듯 ‘국가적인 승부’로 보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멀리서 마음으로 응원하면 족한 일이다. 국가조직이 동원되는 식이라면 오히려 각국의 반감을 사기 쉽다. 더욱이 한국처럼 외교자원이 한정돼 있는 나라가 지금처럼 첨예한 이슈가 쏟아져 나오는 시점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이 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효율성의 잣대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모두가 찬성하는 일, 특히 ‘국위선양’이라는 명분이 걸려 있는 일에 다른 의견을 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공연한 딴죽 걸기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일도 95%가 긍정적이라면 5%는 반성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유엔 사무총장 진출 건과 관련해서는 그 5%에 대한 고려가 완전히 배제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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