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호

인류는 침팬지와 1.2% 다른, ‘털 없는 유인원’일 뿐

  • 이한음 과학평론가 lmgx@naver.com

    입력2006-10-13 15: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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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아’가 과학칼럼을 연재합니다. 지구의 미래는 지금도 후미진 실험실에서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시도’의 결과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세계 수많은 연구자가 실험으로 밝혀낸 인간의 본성과 지구촌 생물체들의 숨겨진 행태를 읽는 동안, 미래에 대한 번쩍이는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인류는 침팬지와 1.2% 다른, ‘털 없는 유인원’일 뿐

    영장류의 일종인 보노보 ‘칸지’가 여러 기호가 나열된 패드를 눌러 문장을 만들고 있다.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사소한 것을 관찰해 원대한 착상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어느 날 그는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 대해 생각하다가 거울을 들고 동물원으로 갔다. 그는 오랑우탄 우리 앞에 거울을 놓고 그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지켜봤다. 오랑우탄들은 거울 앞뒤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이윽고 거울을 향해 이런저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자신인 줄 알고 그랬을까. 그랬다면 그들이 자신을 인식한다는, 즉 자의식을 지녔다는 의미가 된다. 사람들은 자의식을 인간만이 지닌 특성이라고 생각해왔다. 사람은 외출하기 전에 거울을 보고 머리에 붙은 보푸라기를 떼어내겠지만, 강아지가 거울 앞에서 몸단장을 할 것 같지는 않다.

    인간은 생후 2년쯤 되면 이른바 ‘거울상’ 단계를 지난다. 거울에 비친 영상이 자기 자신임을 인식하는 단계이다. 그 무렵부터 타인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남을 도울 줄도 알게 된다.

    미국의 심리학자 고든 갤럽은 자의식이 남을 독립적인 존재로 보고 남의 의도와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의 토대가 된다고 믿었다. 그는 다윈의 실험이 있은 지 약 100년 뒤인 1960년대 말부터 침팬지를 대상으로 거울 실험을 했다. 침팬지는 오랑우탄과 같은 유인원이며, 오랑우탄에 비해 진화적으로 우리와 더 가깝다.

    갤럽은 침팬지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침팬지들을 마취시킨 뒤 한쪽 눈썹과 반대쪽 귀에 붉은 물감을 칠했다. 깨어난 침팬지들에게 거울을 보여주자 그들은 자기 얼굴에 생긴 붉은 점을 만져보고, 자세히 살펴보고 손가락을 대어 냄새를 맡기도 했다.



    그 뒤 많은 과학자가 여러 동물을 대상으로 비슷한 실험을 했다. 반복된 시험을 다 통과한 동물은 대형 유인원인 침팬지, 오랑우탄, 인간뿐이었다. 원숭이를 비롯한 여타 종들은 거울상이 자신임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했다. 따라서 적어도 유인원은 자아 개념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동물도 남을 의식할까. 동료가 무엇을 느끼는지, 무엇을 보고 듣는지 알까. 감정이입이 가능할까. 감정이입은 지극히 인간적인 속성이라고 여겨왔다. 남의 감정을 이해하고 동감하는 능력은 인간관계의 바탕이 되며, 인간만이 남의 처지를 이해하고 돕는다고 간주했다.

    하버드대 인지심리학자인 마크 하우저의 붉은털원숭이 실험은 상당히 재미있다. 실험은 이렇게 진행됐다. 레버를 당기면 먹이가 나온다는 것을 알게끔 붉은털원숭이를 학습시킨 뒤, 그 옆에 다른 붉은털원숭이를 넣었다. 이제 레버를 조작하여 원숭이가 레버를 당기면 옆 원숭이에게는 전기충격이 가해지도록 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 모습을 본 첫 번째 원숭이는 5∼12일 동안 레버를 당기지 않았다. 배가 고파도 레버를 당기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원숭이는 자신이 굶으면서까지 상대를 배려한 것일까. 원숭이들은 낯선 원숭이나 토끼 같은 다른 동물이 있을 때보다, 알고 지내던 원숭이가 있을 때 레버를 덜 당겼다. 또 전기충격을 경험한 원숭이들은 그렇지 않은 원숭이들보다 더 오랫동안 레버를 당기지 않았다.

    600만년 전의 이별, 그 후

    사회심리학자인 스탠리 밀그램은 마크 하우저가 한 것과 비슷한 실험을 인간을 대상으로 했다. 권위적인 인물이 나서서 실험 대상자에게 레버를 당겨 다른 사람에게 충격을 가하라고 명령하자, 그 대상자는 다른 사람이 그 ‘충격’에 격렬한 반응을 보여도(사실은 배우가 연기한 것이었다) 계속해서 레버를 당겼다. 만약 우주인이 지구에 왔을 때, 붉은털원숭이와 인간 중 누구와 더 대화하고 싶을까. 내가 우주인이라면 동료를 위해 레버를 당기지 않은 원숭이쪽에 걸겠다.

    이런 실험은 우리가 유인원, 더 나아가 영장류 사촌들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시사한다. 인간이 자신만의 속성이라고 여겨온 것은 매우 많다. 언어, 이성, 자의식, 자기희생, 배려, 복잡한 사회, 권모술수, 사기, 놀이, 웃음, 도구 사용, 자위행위 등. 하지만 우리의 가까운 친척인 원숭이와 유인원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인간만이 지녔다고 하는 속성 중 많은 것을 실상 그들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인간이 유인원인 침팬지 및 보노보 계통과 갈라진 것은 약 600만년 전이다. 예전의 견해에 따른다면, 인간의 속성은 인간이 그들과 갈라진 뒤 진화하면서 획득한 셈이다. 하지만 유인원 실험 결과는 인간과 그들의 공통 조상이 이미 그런 속성을 많이 지니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최근에 발표된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체 염기 서열은 그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전체는 한 생물이 지닌 염색체 전체를 말한다. 염색체는 DNA 염기 서열로 이루어져 있고, 염기 서열은 생물의 진화 양상을 알려준다. 인간과 침팬지의 염기는 약 30억개이며, 조사 결과 약 4%가 달랐다. 염기 서열 중에서 유전자 같은 유전정보를 지닌 부분만 따지면 겨우 1.2%만 달랐다. 이 얼마 안 되는 차이가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를 낳은 것이다.

    이 유전체 분석 결과는 인간과 침팬지의 지적 능력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연구진은 침팬지와 인간의 뇌에서 발현되는 유전자들을 비교했다. 15∼18%가 달랐으며, 원인은 주로 최근 25만년 동안 인간의 계통에서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과 침팬지의 뇌 기능 차이와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연구진은 인간의 뇌가 유달리 크고 복잡한 것은 새로운 인간 유전자가 진화한 결과라기보다는, 뇌가 발달하는 태아 때와 유아 때 기존 유전자들이 단백질을 만드는 양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그것이 인간의 뇌가 침팬지의 뇌보다 3배쯤 큰 이유를 설명해줄까.

    DNA는 언어의 기원에 대한 단서도 제공한다. 많은 동물 연구자가 유인원뿐 아니라 새도 그림이나 기호를 조합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오랜 학습을 거친 유인원들은 그림이나 문자를 조합해 일종의 문장을 만들어서 연구자와 의사소통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구강 구조상 인간처럼 분절된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인간처럼 조리 있게 말을 구사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인간만이 말다운 말을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언어는 인간과 유인원을 가르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일까.

    문법 유전자 ‘FOXP2’

    1990년, 한 가족이 과학자들의 눈에 띄었다. 그들의 사생활을 고려해 ‘KE’라고 이름붙인 이 가족은 3대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식구의 절반 정도가 갖가지 장애를 안고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장애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기호를 이용해 의사소통을 했다. 그들은 말하는 데 쓰이는 입과 얼굴 근육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고, 지능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에서 근육 운동을 조율하고 언어를 담당하는 영역도 작거나 비정상적인 양상이 엿보였다.

    연구자들은 그들의 염색체를 조사했다. 그 결과 7번 염색체에 있는 유전자 하나에 돌연변이가 일어난 것을 발견했다. 염기 하나가 바뀌어 있었다. 그 유전자에는 ‘FOXP2’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즉 유전자 하나가 인간의 언어 능력을 좌우하는 셈이었다. 한 유전자가 어떻게 근육과 지능을 비롯한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그 유전자는 다른 여러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다양한 유전자에 영향이 미친다.

    이 유전자는 다른 동물들도 지니고 있다. 침팬지, 고릴라, 붉은털원숭이의 유전자와 비교해보니 인간과 이들의 유전자는 고작 두 군데가 달랐다. 또 그 영장류와 생쥐의 유전자는 한 군데만 달랐다. 생쥐와 침팬지가 갈라진 것은 약 7500만년 전이므로, 그 긴 세월 동안 양쪽의 유전자는 겨우 한 군데만 달라진 셈이다.

    반면에 인간의 유전자는 600만년 전에 침팬지와 갈라진 뒤로 두 군데나 변화가 일어났다. 게다가 침팬지와 생쥐에게 생긴 변화는 유전자의 기능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위에서 일어난 반면, 인간 계통에 생긴 변화는 기능적으로 중요한 부위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FOXP2 유전자가 언어 구사 능력을 결정하는 것일까. 일부에서는 이 를 ‘문법 유전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언어 능력이 타고난 것이라는 노엄 촘스키의 주장을 분자생물학이 입증한 것일까.

    인류는 침팬지와 1.2% 다른, ‘털 없는 유인원’일 뿐

    침팬지 연구의 대가, 제인 구달이 침팬지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인간의 오만과 착각

    어쨌든 지난 20만년 사이에 이 유전자가 인간에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한 것은 분명하다. 그 시기에 인류가 그런 쪽으로 진화하도록 선택 압력이 가해진 것이 분명하다. 침팬지를 비롯한 유인원에게는 그런 선택 압력이 없었다. 유인원에게도 그런 선택 압력이 가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도 인간이 자랑하는 언어를 습득하게 될까. 이미 기호를 이용해 의사소통할 정도의 능력을 갖췄으니, 유전자 두 군데만 바뀌면 그 이상의 발전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면 왠지 언어 문제에서도 인간과 유인원 사이에 놓인 장벽이 그다지 튼튼하지 않게 여겨진다.

    야생 유인원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1960년대부터였다. 그전까지는 주로 포획되어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침팬지 등을 대상으로 단편적인 연구가 있었을 뿐이다. 야생 상태의 유인원들과 직접 접촉하면서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연구한 사람이 드물었다.

    초기 인류 연구의 대가인 루이스 리키는 1960∼70년대에 세 여성을 유인원 연구에 끌어들였다. 리키는 아프리카의 올두바이 계곡을 수십년 동안 아무 성과 없이 돌아다닌 끝에 마침내 초기 인류의 화석을 발견함으로써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는 증거를 제시한 인물이다.

    리키는 인류의 진화를 파악하려면 야생 유인원을 연구해야 함을 알았다. 1960년 그는 제인 구달을 끌어들여 곰베강 보호구역의 침팬지를 연구하게 했다. 이어서 다이앤 포시를 끌어들여 고릴라 연구를 맡겼고, 비루테 갈디카스에게는 오랑우탄 연구를 맡겼다.

    그들은 인간만이 지닌 특징들이 사실은 인간의 오만이 빚어낸 착각에 불과함을 하나하나 밝혀냈다. 가장 먼저 연구를 시작한 제인 구달은 침팬지들이 도구를 사용할 뿐 아니라 필요한 도구를 제작도 한다는 것, 집단 사냥을 하고 먹이를 나눠 먹는다는 것, 동지를 규합해 집단적으로 싸움을 벌인다는 것, 다양한 소리와 몸짓과 표정으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폭력, 위협, 강탈, 위로, 굴종, 기만, 거래, 웃음, 놀이, 유아 살해 등 인간에 못지않은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도 발견했다.

    침팬지는 잡식성이며 무리를 지어 영양이나 원숭이 등을 사냥하기도 하지만, 흰개미 같은 곤충도 즐겨 먹는다. 침팬지는 풀줄기를 골라서 흰개미집 구멍에 넣어 살살 구슬려서 흰개미들이 풀줄기를 타고 올라오면 훑어 먹는다. 그리고 적절한 나무줄기를 골라 중간에 있는 잎은 떼어내고 끝의 잎들은 잘 씹어서 스펀지처럼 만들어 물을 흡수시킨 뒤 빨아먹는다. 침팬지가 단순한 것이긴 해도 도구를 만들고 사용한다는 사실은 인간만이 도구를 만드는 동물이라는 정의가 불충분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다이앤 포시는 인간이 고릴라에 대해 갖고 있던 왜곡된 이미지를 깨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33년 영화 ‘킹콩’이 나온 이래로, 아니 이전부터 고릴라는 난폭하고 사나운 동물로 인식되어왔다. 유인원 중에 가장 몸집이 크고, 검은 털로 뒤덮여 있는 데다가, 흥분하면 일어서서 가슴을 쾅쾅 두드리는 행동을 보면 그런 인상을 갖게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예전에는 고릴라가 인간과 가장 가깝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고릴라는 인류와 침팬지가 갈라진 시기보다 더 앞선 약 700만년 전에 갈라져 나갔다. 사실 고릴라는 채식동물이며 지극히 온순하다. 그렇다고 유아 살해나 암컷을 둘러싼 수컷들의 격렬한 싸움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비루테 갈디카스가 연구한 오랑우탄은 아프리카가 아니라 보르네오와 수마트라에 산다. 오랑우탄 계통은 약 1600만년 전에 갈라졌다. 주로 나무 위에 살면서 채식을 하며, 대개 무리를 짓지 않고 홀로 지내는 때가 많다. 따라서 다른 유인원에 비해 집단 사냥을 하거나 집단 싸움을 벌이거나 먹이를 나누거나 하는 일이 드물다. 도구도 거의 쓰지 않는다.

    다른 유인원과 마찬가지로 오랑우탄도 모방의 천재이다. 포획되거나 길들여진 개체들은 인간의 갖가지 행동을 흉내낸다. 갈디카스는 오랑우탄이 빨래도 하고 불도 지르려 했다고 말한다.

    모방이 새로운 상황에서 응용하는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지능과 상황 판단력과 연관성을 파악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유인원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그런 적용 능력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유인원보다 지능이 떨어진다고 여겨지는 일본의 마카쿠원숭이들에서도 모방 행동이 퍼지고 후손에게 전달되는 사례를 볼 수 있다.

    ‘털 없는 유인원’

    1953년 이모라는 이름을 지닌 마카쿠원숭이는 연구자들이 준 흙 묻은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는 행동을 했다. 곧 동료들과 친척들도 이모의 행동을 흉내냈다. 세월이 흐르자 그 무리에 있는 새끼들도 어미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한 뒤 고구마를 씻어 먹었다. 새로 도입된 행동이 집단 전체로 퍼지고 후손에게 대물림되는 이 현상을 문화라고 일컬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문화를 어떻게 정의하든 간에, 이것이 모방과 학습을 통한 문화적 전달 사례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인간만이 문화적 존재라는 정의도 불충분한 셈이다.

    유인원 연구는 인간만이 애지중지하던 속성들을 하나씩 인간의 품안에서 빼냈다. 연구가 진행될수록 인간과 유인원은 점점 더 정도의 차이만 있는 듯이 보인다. 인간과 유인원을 구분하는 확연한 특징은 무엇일까.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는 한마디로 말한다. “인간은 털 없는 유인원”이라고 말이다.

    털 없는 유인원은 두 발로 똑바로 섬으로써 자유로워진 팔로 도구를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되고, 이어서 뇌가 커지면서 독자적인 길로 들어섰다. 인류의 조상이라고 할 호모 에렉투스는 약 170만년 전에 등장했다. 그보다 앞서 아프리카에는 여러 인류 종이 살았다. 서서 돌아다니고 도구를 썼던 이 원인(猿人)들에 관한 이론과 가설은 인류가 자신에게 갖고 있는 편견의 일면을 보여준다.

    1925년 레이먼드 다트는 아프리카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라는 원인의 화석을 발견했다. 그는 함께 발견된 증거들을 토대로 이 원인이 잔인한 사냥꾼이었다고 추정했다. 데즈먼드 모리스와 노벨상을 받은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도 그 생각에 동의했다. 인류는 채식을 하는 유인원에서 육식동물로 돌변한 존재이며, 집단 사냥이 협력과 의사소통에 필요한 언어와 식량 분배 관습을 낳았다. 또 고기를 가져오는 남성을 붙들어놓기 위해 여성은 배란기를 숨겼다는 것이다. 즉 사냥이 없었다면 인류도 없었다는 얘기다.

    이 개념은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그대로 차용된다. 영화는 첫 장면에서 원인이 뼈를 휘둘러 살인을 저지르고 환호하는 장면이 인류 진화의 출발점임을 알린다.

    이 이론의 옹호자들은 침팬지를 이런 잔인한 사냥꾼의 역할 모델로 삼았다. 동료를 끌어모으고 동맹 관계를 맺어 패싸움을 벌인 뒤 이기면 같은 편에게 먹이와 암컷을 공유함으로써 보답한다. 서열이 높은 수컷은 으르렁대면서 과시 행동을 보이고, 그렇지 않은 수컷은 낑낑대고 납작 엎드려 복종하는 태도를 보이는 등 인간 사이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관계를 보여준다. 게다가 으뜸 수컷 모르게 불륜까지 저지르지 않는가.

    살인은 인간의 본성?

    하지만 초기 인류가 사냥에 능숙했고, 사냥에 주로 의지했다는 것은 추측에 불과하다. 인류는 사냥꾼이 아니라 도망 다니는 먹이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이런 인식이 확산되면서 1929년 새로운 종으로 밝혀진 보노보가 침팬지의 대안 모델로 급부상했다. 보노보는 피그미침팬지라고도 한다. 보노보와 침팬지는 인류 계통이 갈라지고 약 300만년 뒤에 갈라졌다.

    보노보의 서식지는 아프리카에서 침팬지가 사는 곳과 강을 경계로 갈라진 콩고민주공화국 내에 있다. 부족간 전쟁이 극심했던 곳이라 그동안 거의 연구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영장류 연구자인 프란스 드 발은 보노보가 조금만 더 일찍 알려졌더라면 인간의 본성에 대한 기존 개념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전쟁, 사냥, 도구 제작 같은 측면 대신에 성적인 관계, 남녀의 평등, 가족의 기원 같은 측면이 더 강조됐을 것이라고 말이다.

    보노보는 침팬지와 모습은 비슷하지만 행동과 습성은 전혀 딴판이다. 보노보는 감정이 풍부하고 잘 싸우지 않으며 갈등을 성적으로 풀려고 한다. 흔히 말하듯 침팬지는 성 문제를 권력으로 해결하는 반면, 보노보는 권력 문제를 성으로 해결한다. 인간이 볼 때 보노보는 성적으로 탐닉하는 동물이다. 보노보의 생식기는 암수 모두 눈에 확 띈다.

    인류는 침팬지와 1.2% 다른, ‘털 없는 유인원’일 뿐
    이한음

    1966년 서울 출생

    서울대 식물학과 졸업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과학평론가, 전문번역가

    저서 및 역서 : ‘신이 되고 싶은 컴퓨터’ ‘인간 본성에 대하여’ ‘조상 이야기’ ‘복제양 돌리’ ‘미리 보는 2050년 신세계’ ‘굿바이 프로이트’ ‘해변의 과학자들’ 등


    보노보는 마주보고 성행위를 하며, 동성애와 자위행위를 비롯한 온갖 형태의 성적 행동을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인간만이 지닌 특징이라고 여겨졌던 성행위와 애정 표현들을 고루 보여준다. 익살스러운 표정도 짓고 남을 곤경에 빠뜨리는 장난도 치고 도와주기도 한다. 또 암컷들이 결속해서 수컷을 통제한다. 페미니스트들이 좋아할 만한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는 역할 모델이 된다.

    이렇게 말하니 인간만이 지닌 속성을 빼앗는 것이 유인원 연구인 양 들린다. 하지만 유인원이 적어도 우리와 600만년 전에 갈라져서 독자적으로 진화한 동물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인간은 그들이 따라오지 못할 지능과 창의력을 지녔으며, 경이로운 문명을 발전시켰다. 이 연구 결과들이 말해주는 것은 그저 인간이 유인원과 다른 차원에 사는 존재가 아니며, 똑같은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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