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호

치명적 간세포암의 주범, B형 간염

  • 이헌주 교수 영남대 의대 내과학교실 소화기분과

    입력2006-10-16 16: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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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명적 간세포암의 주범, B형 간염

    B형 간염 예방접종은 항체 형성을 위해 3회 실시해야 한다.

    B형간염은 B형 간염 바이러스(HBV)에 의해 발생하는 질환으로 전세계적으로 대단히 흔한 감염성 질환 중 하나다. 국내의 경우 만성 간 질환 및 간세포 암 환자의 70% 이상에서 원인 질환이 될 정도로 무서운 질병이다. 국가적으로 예방접종을 장려해 감염률이 크게 낮아졌음에도 백신 접종 이전에 감염된 환자의 수가 워낙 많아 아직까지 20세 이상 인구의 5∼7%가 B형 간염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B형 간염 바이러스의 실체

    간염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만성적으로 간염을 일으키는 종류는 B형과 C형이며 그중 B형 간염 바이러스는 한국인 간 질환의 주요 원인이다. B형 간염 바이러스는 음식이나 공기를 통해 전염되지 않고 감염된 혈액이나 기타 체액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염될 수 있다. 감염된 환자와의 성관계, 비위생적인 치과기구, 오염된 주삿바늘, 침, 면도기, 칫솔을 통해서도 전염될 수 있다.

    특히 B형 간염의 가장 큰 감염 요인은 ‘수직 감염’이다.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산모가 출산 때 혹은 출산 직후 바이러스가 신생아에게 전염되는 ‘주산기 감염’이 가장 중요한 감염경로로 알려져 있으며,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의 가족 및 급성 B형 간염 환자의 배우자 또한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그러나 성인의 급성 감염은 만성화하는 예가 거의 없는 편이다. 따라서 산모가 바이러스 보유자라면 아기는 출생 때 반드시 예방접종을 받아야 한다.

    B형 간염 바이러스는 무증상 감염(간염 보유자)부터 간경변, 간세포암을 포함, 더욱 심각한 만성 간 질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질환을 초래한다. B형 간염 바이러스는 간세포를 바이러스의 생산 공장으로 삼아 수많은 새로운 바이러스를 재생산해 방출하고, 이를 이상 신호로 받아들인 인체의 방어기전(면역체계)은 바이러스를 생성하는 간세포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간에 염증이 생기면서 간세포에 진행성 손상을 주게 되는데 이런 상태를 간염이라고 한다.



    성인이 급성 B형 간염에 걸리면 대부분의 경우 인체의 면역체계가 바이러스를 완전히 제거해 손상된 세포가 복원되고 완전히 회복되지만 가끔 바이러스를 6개월 이내에 제거하지 못한 경우 만성 B형 간염 보유자가 된다. 만약 수개월, 수년 동안 바이러스를 전혀 제거할 수 없을 만큼 감염에 대한 면역 반응이 충분치 않을 경우 바이러스가 계속 퍼져 감염된 간세포를 점점 더 파괴하게 된다. 간은 스스로 재생을 시도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손상된 간세포가 건강한 세포가 아닌 섬유성 혹은 반흔성 이상 조직으로 대치되는데, 이를 간세포의 섬유화라고 한다. 이렇듯 지속적으로 간세포가 손상되고 반흔성 이상조직(흉터)으로 대체되는 악화와 회복이 반복되면서 결국 간경변, 간 기능 악화, 간암 같은 생명을 위협하는 간 질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B형 간염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은 신체 쇠약감과 피로감이며 무력증, 식욕부진, 의욕상실, 두통 등을 호소하기도 하고 소화불량, 상복부의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만성 간염 환자 중에는 위와 같은 자각증상을 전혀 호소하지 않는 경우도 많으며 실제로 수년 동안 아무 증상이 없어 보유자는 자신에게 질병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가족이나 친구에게 간염을 전염시킬 수 있다.

    B형 간염 억제제 ‘제픽스’ ‘헵세라’

    이렇듯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6개월이 지나도록 치유되지 않고 간수치의 상승과 함께 B형 간염 바이러스 표지자가 검출되는 경우를 만성 간염으로 정의한다. 또한 바이러스를 오랫동안 몸속에 가지고 있으나 증상이나 간 손상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을 무증상 보유자라고 한다. 특히 산모에서 태아로 수직 감염된 경우 소아 때는 90% 이상이 증상 없이 바이러스만 보유하고 있다가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서 만성 간염의 증상이나 징후가 나타난다.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니나 만성 간염이 호전되지 않고 염증이 장기간 활발하게 지속되는 경우 간경변증으로 진행할 수 있다.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국내 한 조사에 의하면 만성 B형 간염을 앓고 치료를 받지 않은 경우 20년이 지난 후 약 절반의 환자에서 간경변이 관찰되었다고 하며, 만성 간염이나 간경변증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간세포암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치명적 간세포암의 주범, B형 간염

    GSK의 B형 간염 치료제 ‘제픽스’와 ‘헵세라’.

    만성 B형 간염 치료의 궁극적인 목표는 B형 간염 바이러스 복제를 억제해 질환의 진행을 막는 것이다. 따라서 만성 B형 간염의 치료에는 항바이러스제가 적극적으로 추천되고 있다. 현재 시판 중인 항바이러스 제제로는 글락소 스미스클라인(GSK)의 ‘제픽스’와 ‘헵세라’ 두 가지가 있다. 만성 B형 간염 환자는 대부분 ‘제픽스’로 치료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 약은 바이러스의 DNA 합성을 차단해 바이러스의 복제를 신속하게 억제한다. ‘헵세라’는 내성 발현율이 매우 낮으며 ‘제픽스’ 내성 변종에 대해서도 효능을 보이는 최신 치료제이다.

    ▼ 라미부딘(상품명 ‘제픽스’)

    세계 최초의 경구용 만성 B형 간염 치료제 제픽스는 B형 간염 바이러스에 대해 강력한 항바이러스 작용을 하는 ‘뉴클레오사이드 유사체’로 B형 간염 바이러스의 DNA 중합효소를 억제함으로써 바이러스의 복제를 신속하고 강력하게 억제한다. 경구용 치료제로 1일 1회만 복용하면 된다. 제픽스는 남녀 구별 없이, 상태의 경중(輕重)에 관계없이 누구나 효과를 볼 수 있으며 특히 어릴 때 감염된 환자 및 인터페론 치료에 실패한 환자에게도 적용이 가능하다.

    1998년 출시된 제픽스는 새로 출시될 예정의 여타 B형 간염 치료제와는 달리 최대 7년에 달하는 장기 임상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어 장기간 효능 및 안전성이 확보된 유일한 B형 간염 표준 치료제다. 장기간 복용할 경우 간부전 및 간암과 같은 심각한 질환으로 진행되는 것을 지연시키는 효과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아데포비어(상품명 ‘헵세라’)

    2004년 6월 국내에 발매된 헵세라(성분명 아데포비어)는 B형 간염 바이러스 유전자가 복제되는 데 중요한 작용을 하는 효소를 억제하는 뉴클레오타이드 유사체로, 만성 B형 간염의 원인을 직접 공격해 질병의 진행을 억제한다. 특히 장기간 사용에도 자체 내성률이 낮으며, 라미부딘에 내성을 나타내는 환자들에서도 치료효과를 보여 이들에게 치료제 선택의 폭을 넓혀주었다.

    인류의 난치병 구제약 ‘라미부딘’

    아시아에서의 B형 간염 발병 빈도는 매우 놓은 편이나 이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법 또한 널리 알려져 있다. 문제는 고혈압, 당뇨, 결핵 등 다른 만성 질환들과는 달리 장기적이고 꾸준하게 평생 관리해야 하는 질병이라는 인식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2003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 환자의 69%가 만성 B형 간염에 항바이러스 치료를 전혀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받았다 하더라도 대다수의 의사 (약 40%)가 1년의 단기 치료 처방을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일부 의사들은 치료 초기에 항바이러스 약물보다는 간장약 등을 추천함으로써 오히려 질환의 치료를 지연시키고 있다. 따라서 만성 B형 간염 환자들은 혈액 검사와 복부 초음파 검사 등 주기적인 간 검사를 통해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일단 간염으로 확진되면 검증되지 않은 치료나 식품보조제 등 대증치료에 의존하지 말고 근본적이고 적극적인 항바이러스 치료를 시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국내에선 1980년대 이전까지 B형 간염, 특히 그 절반을 차지하는 모계 수직 감염성 B형 간염은 예방이 전혀 불가능했으며, 1997년 이전에는 만성 B형 간염이 간경변으로 진행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간 질환의 시한폭탄인 간세포암에 대해선 조기진단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예방 백신의 개발로 B형 간염의 예방이 가능해졌고 경구용 항바이러스 제제인 라미부딘(제픽스)의 출현으로 간염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간세포의 괴사를 중지시킴으로써 간경변으로의 진행을 막고, 한편으로는 간경변 조직에서 생겨나는 간세포 암의 발생 가능성을 줄일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

    B형 간염 고위험군

    ▼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 산모가 낳은 신생아

    ▼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의 가족

    ▼ 급성 B형 간염 환자의 배우자

    ▼ 혈액제제를 반복 투여하는 환자(혈우병, 투석 환자)

    ▼ 정박아 수용소 또는 형무소에 수용된 자나 근무자

    ▼ 타인의 혈액 또는 분비물과 자주 접촉하는 의료관계자

    ▼ 성관계가 문란한 자, 동성연애자

    ▼ 마약중독자


    치명적 간세포암의 주범, B형 간염

    전자현미경으로 본 B형 간염 바이러스 세포.

    이런 의미에서 최초의 경구용 항바이러스 제제인 라미부딘은 만성 B형 간 질환 치료 역사에 한 장을 장식했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인류의 난치병 구제약으로 영원히 기억될 만하다. 장기간 투약해야 하는 불편함과 내성 바이러스 출현이라는 일부 문제점에도 불구, 현재로선 유일무이한 구제 약제임이 분명하다. 최근에는 이러한 결점을 보완한 약제들이 속속 개발됨으로써 병용치료가 가능하게 되었으며, 이런 보완 치료제는 계속 나올 예정이다. 하지만 이런 치료제는 B형 간염 바이러스를 억제해 질환의 진행을 막는 것일 뿐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약품은 아니다. 향후 바이러스를 사멸해 완치할 수 있는 더 나은 차원의 치료제가 개발되기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B형 간염은 완전한 예방이 가능한 전염병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철저한 예방접종과 오염된 혈액이 전파되지 않는 공중 위생관리 체계만 유지된다면 B형 간염은 이 세기가 지나가기 전에 완전 퇴치되는 운명을 맞을 수도 있다.

    B형 간염에 대한 잘못된 상식

    ▼ B형 간염 환자와 술잔만 돌려도 전염된다?

    일상적인 생활을 같이하는 것만으로는 전염되지 않으며 접촉하거나 포옹하는 정도도 안전하다. 혈액, 체액을 통해서만 전염되므로 감염 환자와의 성관계, 치과기구, 한방 침, 수지침, 오염된 주삿바늘, 면도기, 칫솔 공동 사용은 주의해야 한다.

    ▼ 간장약으로 B형 간염을 치료할 수 있다?

    대부분의 간장약은 간의 염증 정도를 완화시키거나 간의 재생을 도와주는 것들로 약물에 의한 독성 간염, 알코올성 간염 등에는 일부 효과가 있지만 B형 간염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효과는 의학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 B형 간염 보유자는 모유 수유를 할 수 없다?

    B형 간염 바이러스가 모유를 통해 전염된다는 증거는 없으며, 현재 B형간염 보유자에서 분만된 신생아의 경우 예방적 처치를 한다는 전제하에 모유 수유를 권장하고 있다.

    ▼ 한번 간염백신을 맞으면 간염을 완전히 예방할 수 있다?

    B형 간염백신은 비활성화 백신으로 충분한 항체 형성을 위해서는 많은 양이 필요하다. 세 번 접종하고 난 3개월 후 항체가 생겼는지 검사를 해봐야 한다. 항체가 생기지 않았으면 새로 3번을 접종하는 게 좋다.

    ▼ B형 간염 환자는 늘 아프고, 꼼짝 않고 푹 쉬는 게 무조건 좋다?

    실제로 환자가 증상을 느끼는 정도는 감염된 시기와 기간에 따라 다르다. 무조건 안정보다는 적당한 활동이 바람직하며 자신의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이헌주 교수

    치명적 간세포암의 주범, B형 간염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1996년부터 영남대 의대 내과학교실 소화기분과 정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영남대 의료원 소화기내과에서 진료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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