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호

쇼핑의 기술

  • 김민경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6-12-05 16: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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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핑의 기술
    ‘사랑의 기술’을 쓴 사회학자에겐 좀 미안한 소리이지만, 쇼핑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돈 있으면 다 되지 않느냐고? 오홋. 그러면 돈이 좀 없는 경우 쇼핑에 기술이 필요하다고 바꾸겠다.

    쇼퍼홀릭에게 세일은 정보력과 인맥, 자기 노력을 평가받는 ‘학기말 고사’같은 것이다. 우선, 숍마스터들과 긴밀한 관계를 통해 세일 정보를 빨리 입수해야 남보다 먼저 ‘찜’을 해둘 수 있다. 때론 ‘편법’이 동원되기도 하는데, 이건 비밀이다(미안요~). 20∼30% 할인 세일 광고를 보고 오랜만에 새 옷 하나 살까 하고 나온 사람들과 함께 복잡한 현장에서 경쟁을 한대서야 무림 도장 쇼퍼홀릭의 예가 아니다.

    쇼퍼홀릭이 가장 기다리는 건, 판매회사 본사 사무실에서 열리는 샘플 세일이다. 샘플 세일이란 패션쇼나 화보 촬영 등에 나갔던 상품을 50∼90%까지 할인하는 세일이다. 구두는 바닥이 닳아 있고, 옷에는 모델이 황급히 옷을 갈아입느라 묻힌 화장품 자국이 있기도 하지만 ‘머스트 해브’ 아이템을 파격적인 가격으로 팔기 때문에 쇼퍼홀릭들은 가위로 잘라버린 신용카드를 재발급 받아서라도 간다. 패션업 종사자, 모델, 연예인과 그 매니저, 기자, VIP, 그들을 친구로 둔 트렌드세터들이 주고객이다. 샘플 세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빨라야 한다는 점. 1인당 판매 개수를 5개 내외로 제한하기도 하므로 휴가를 내 아침 일찍 가는 사람들도 있다.

    다음으로 인기 있는 세일은 판매사가 호텔 그랜드볼룸 같은 넓은 공간에 여러 브랜드를 모아 여는 ‘클리어런스 행사’다. 할인율은 50∼70%. 일반 소비자도 정보를 얻기가 쉬워 업체에 따르면 하루에 3억∼4억원의 매출을 올릴 만큼 사람이 많이 몰린다.

    상품도 많고, 사람(경쟁자)도 많고, 크게 ‘사고칠’ 위험도 커질 때 가장 좋은 쇼핑의 기술은 일단 마음에 드는 물건을 모두 모아 팔에 건 뒤, 한꺼번에 입어보고 신어보는 것이다. 체력도 아끼고, 판단하기도 쉽다. 환불이 되지 않으므로 너무 트렌디한 것부터 하나씩 제외해간다. 물건을 포기할 때마다, 누군가 다가와 사지 않을 거면 달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찍어놓은 물건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끝까지 지켜볼 일이다. 같은 물건을 고르다 만난 사람들끼리는 유용한 조언도 주고받는다. 피팅룸은 늘 만원이다. 북새통 속에 연예인들이 체면 불고하고 물건을 한아름 안고 빙빙 돌거나, 피팅룸 밖에서 옷을 갈아입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스타들이나 사모님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쇼핑백을 네댓 개씩 들고 밖으로 나와 외제 차 앞에서 서늘하게 “김기사, 운전해” 하는 장면은 개그 프로와 정말 똑같다.



    계절이 바뀔 때 쇼퍼홀릭의 얼굴에 어쩐지 깊은 회한과 피곤함이 감돈다면 세일 매장에 다녀왔기 때문일 것이다. 아, 물론 돈이 좀 없는 쇼퍼홀릭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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