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호

‘화양연화’의 홍콩·앙코르와트

쇠잔한 거리에 흩날리는 한 줄기 戀風

  • 사진·글 이형준

    입력2006-12-06 1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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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양연화’의 홍콩·앙코르와트

    홍콩 센트럴 지역의 평범한 오후. 명물로 자리잡은 이층버스가 비좁은 거리를 달린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뜻한다는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2000년작 ‘화양연화(花樣連華)’는 홍콩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배경으로 한다. 홍콩의 어두운 골목, 좁은 아파트에서 펼쳐지는 전반부와 웅장한 유적지가 등장하는 후반부로 나뉘는 독특한 구성은 흡사 전혀 다른 두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화양연화’의 홍콩·앙코르와트

    빌딩숲이 장관을 이룬 홍콩 도심의 스카이라인.



    ‘화양연화’의 홍콩·앙코르와트

    옛 기차역 자리의 시계탑. 홍콩의 주요 건축물로 지정돼 있다.(좌) 늘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홍콩의 재래상가.(우)

    ‘In The Mood For Love’라는 영어제목은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정확하게 묘사한다. 누구나 가슴속에 갖고 있을 아련한 사랑의 추억이 그것이다. 자그마한 지역신문사에서 근무하는 차우(량자오웨이)와 무역회사 비서로 일하는 리첸(장만위)이 보여준 우수 어린 눈빛과 섬세한 표정연기, 중국 전통의상 치파오의 세련미는 많은 관객에게 묘한 여운을 남겼다.

    영화의 앞부분인 비좁은 아파트 장면은 대부분 세트에서 촬영됐고, 홍콩의 어느 거리인지 명확히 지목되지 않는다. 다만 코즈웨이, 란콰이펑, 카오룽, 완차이의 골목 풍경이 배경처럼 스쳐 지나간다. 전세계를 통틀어 오로지 홍콩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 독특한 뒷골목 풍경은 지금도 수천개의 거리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저녁 늦은 시간까지 포장마차를 찾는 손님들로 가득한 골목 안 풍경은 영락없이 영화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화양연화’의 홍콩·앙코르와트

    앙코르와트의 중앙사당.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화양연화’의 홍콩·앙코르와트

    앙코르와트 바이욘 사원을 찾은 방문객들이 안내자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좌) 캄보디아의 역사와 신화가 새겨진 바이욘 사원 벽면.(우)

    영화에서 거리 이름을 특정하지 않은 것은 그만큼 이 풍경이 홍콩의 ‘일반적인 이미지’이기 때문이리라. 흔히 ‘천개의 얼굴을 가진 도시’로 불리는 홍콩은 전체가 영화세트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빌딩숲이 장관을 이루는 센트럴 지역에서 촬영된 영화는 족히 수백편을 넘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거리에서는 영화가 촬영되고 있을 것이다.

    연못에 비친 앙코르와트의 새벽

    또 다른 무대인 앙코르와트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유적지다. 잠시 서로에게 연민을 느낀 차우와 리첸은 각자 주어진 길을 가기로 하고 헤어진다. 4년 후 앙코르와트를 찾은 차우가 유적지 벽에 무엇인가를 끼워놓고 주변을 둘러보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촬영이 이뤄진 유적지는 서너 곳에 불과하지만, 장면 하나하나가 강한 인상을 남겨 ‘화양연화’를 이야기할 때면 홍콩보다 앙코르와트가 먼저 떠오를 정도다.

    마지막 장면이 촬영된 곳은 앙코르와트 최고의 명소인 중앙사당의 서쪽 벽이다. 수많은 조각으로 장식된 제1회랑이 끝나는 지점에서 암벽을 연상시키는 가파른 계단을 20여 m쯤 오르면 어린 승려가 차우의 행동을 지켜보던 중앙사당이 나온다. 아담한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이 회랑으로 둘러싸인 사당에는 각 방향에 불상이 세워져 있고, 중심에는 12세기 캄보디아의 왕 수르야바르만 2세의 유골이 안치돼 있다. 주변은 언제나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화양연화’의 홍콩·앙코르와트

    건물을 휘감은 나무뿌리가 인상적인 타프롬 사원. (좌) 유적지에 안에 자리잡은 마을. 주민은 관광객에게 음식과 토산품을 판매해 생계를 유지한다.(오른쪽 위) 캄보디아의 전형적인 농촌풍광을 간직한 유적지 주변의 풍경.(오른쪽 아래)



    앙코르 예술의 극치라고 할 만한 제1회랑은 760m에 이르는 벽 전체가 조각품이다. 힌두교 신화와 전쟁, 역사에 관한 내용이 새겨졌다. 처음 사원이 건립될 당시에는 모든 조각이 금으로 덮여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지금은 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벽면에 장식된 조각만 봐도 그 규모와 섬세함에 말문이 막힌다.

    카메라는 앙코르와트 회랑을 둘러본 차우가 ‘참배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따라가며 영화의 끝을 맺는다. ‘참배의 길’은, 앙코르와트 유적지 입구에 해당하는 해자 위에 만들어놓은 돌다리 200m와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나신 조각이 세워진 서탑문에서 제1회랑까지 340m에 이르는 거리를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역시 힌두 미술의 찬란함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앙코르와트를 찾는 방문객이라면 누구나 먼저 달려가는 곳은 따로 있다. 바로 유적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연못이다. 시간에 따라, 태양의 각도에 따라 연출되는 앙코르와트의 다양한 풍경을 접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른 새벽과 해가 서쪽으로 사라질 무렵에 바라보는 풍광이 일품이다. 어떤 말이나 영상으로도 담아낼 수 없는 황홀함 그 자체다.

    벗어남, 그 극단의 유혹

    여행은 ‘벗어남’이다. 삶은 지저분한 뒷골목에서 계속되고, 일상에 지친 남자와 여자의 영혼을 뒤흔드는 한 줄기 사랑의 느낌도 그 거리를 타고 온다. 앙코르와트와 홍콩의 그 극단적인 차이는, 지루하게 이어지는 삶과 그 위로 부는 연정의 미풍이 갖는 대비를 상징하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였을 것이다. 여행이 그러하듯, 연정도 ‘벗어남’인 것이다. 차우에게, 그리고 왕자웨이 감독에게 그랬듯, 홍콩 뒷골목의 쇠잔함과 앙코르와트의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움은 그 극단적인 대비로 방문자의 영혼에 작은 생채기를 남길 것이다.

    여행정보

    인천공항에는 홍콩(3시간)과 캄보디아(5시간40분) 직항이 있다. 홍콩 공항에서 지하철로 30분이면 센트럴 지역에 갈 수 있다. 캄보디아 시엠립 공항에서 앙코르와트까지는 30분이 걸린다. 유적지 1일 입장권은 20US달러, 2~3일권 40달러, 4~7일권은 60달러다. 1일권 외에는 입장권에 사진이 부착된다. 홍콩은 무비자로 3개월간 체류할 수 있고, 캄보디아는 공항에서 1개월 비자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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