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호

디자이너 이광희 - 요가·명상

“아름다운 생각, 한순간도 놓쳐선 안 되죠”

  • 글·구미화 기자 mhkoo@donga.com / 사진·지재만 기자 jikija@donga.com

    입력2006-12-06 10: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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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사를 하려면 사람이 빈번하게 오가는 길에 터를 잡아야 하는데, 마냥 자연이 좋아 남산 중턱에 눌러앉았다. 그로부터 꼬박 20년이 흘렀지만 남산은 지금껏 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고, 하루에도 수차례 표정을 바꾼다.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오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 마음먹는다.
    디자이너 이광희 - 요가·명상
    디자이너 이광희 - 요가·명상

    이광희씨는 생각할 여지를 주는 책 읽기를 좋아한다. 요즘 그가 손에 잡은 책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광희(李光熙·54)씨는 한국의 최상류층이 선호하는 의상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이화여대 비서학과를 졸업한 뒤 우연하게 디자이너가 됐다고 하지만, 다른 형제들이 일찍이 음악과 미술 등 예술 분야로 진로를 정한 걸 보면 그도 ‘너무 늦지 않게’ 제 길로 들어선 셈이다.

    그가 남산 허리에 둥지를 튼 지 올해로 꼭 20년째. 지금의 필립스 전시장과 하얏트호텔 맞은편의 남산전시관이 그가 사용하던 건물들이다. 그 사이 이광희 부티크는 남산 자락의 고급 소비문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아이콘이 됐다. 그러나 그가 처음 남산에 터를 잡을 땐 지금의 상황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저 자연이 좋아 결정한 일이었다.

    “자연환경이 좋아서 남산을 택했는데,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다 정말 예뻐요. 나무며 풀이며, 해질 녘 황혼은 또 얼마나 멋지다고요.”

    그는 오후 8시 반에서 9시 사이에 잠들어 다음날 새벽 2, 3시면 일어나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다. 저녁 약속이라는 게 있을 리 없고, 남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해 집중적으로 일한다. 그럼에도 하루는 짧기만 하고,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도 숨이 차다. 휘몰아치듯 일하다보면 한 끼쯤 거르는 건 다반사. 하지만 “배고픈 것도 즐겨야 먹을 자격이 있다”며 웃는다.

    디자이너 이광희 - 요가·명상

    명상과 요가는 시간만 있으면 언제든 할 수 있다. 명상은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을 정리해주고 요가는 몸 구석구석을 열어준다.

    “오래전, 위와 장에 탈이 나서 며칠 단식한 적이 있어요. 그때 문득 나라는 존재는 육체와 정신으로 이뤄졌는데도 배고픈 줄만 알고, 마음의 양식이 갈급한 줄은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친정어머니 말씀이 많이 먹어서 탈나는 일은 있어도, 적게 먹어서 탈나는 일은 없다고 하고요(웃음).”



    그에겐 ‘웰빙’의 개념도 마찬가지다. 먹고 자고 입는 것보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좋은 생각을 하는 것, 그에겐 그게 바로 웰빙이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일하다 잠깐 짬을 내 사진 촬영을 하면서 금세 노래를 흥얼거리고,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를 까르르 웃으며 받을 수 있는 여유. 대단한 내공이다.

    “옷을 디자인하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모두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일이죠. 생각을 순화하고, 다듬는 게 저에게 계속되는 과제죠.”

    그래서 그는 수시로 숍에서 나와 남산 산책로를 걷는다. 아무런 준비 없이 틈나는 대로 할 수 있으며, 자연이 내뿜는 청량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흙을 밟고, 생각에 잠길 수 있어 즐긴다. 덕분에 남산 산책로 사정을 훤히 꿰고 있다.

    디자이너 이광희 - 요가·명상

    이광희씨는 거리감을 주는 쇼를 위한 쇼보다 고객과 함께할 수 있는 작은 파티 같은 쇼를 자주 연다.



    디자이너 이광희 - 요가·명상

    옷도 옷이지만 절정을 이룬 남산의 단풍을 함께 즐기고 싶어 사람들을 초대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그들도 아름다워지리라 믿으며.

    최근엔 요가를 배우기 시작했다. 아직 초보 수준이지만 정적인 자신의 성향에 잘 맞으면서 몸 구석구석을 열어주고, 생각을 많이 하게 해 꾸준히 배워보고 싶다고 한다.

    그가 만든 옷들은 고급스럽고 우아하면서도 귀엽고 낭만적인 디테일이 돋보인다. 중년 여성에게서 귀엽다는 느낌을 불러오는 옷. 여자는, 아니 사람은 죽을 때까지 아름다워야 할 의무가 있다는 그의 생각에서 비롯된다. 어느 광고 카피에서 ‘여자가 살아 있는 한 로맨스는 영원하다’고 했던가.

    “남녀노소 불문하고 사람은 아름다워야지요. 자연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반면, 사람에겐 그 아름다움을 볼 줄 알고, 스스로 아름답게 가꿀 줄 아는 지혜가 있어요. 자신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 가꾸는 게 신이 사람에게 준 숙제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이목구비는 예쁜데 전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사람. 예쁘게 생긴 얼굴은 아닌데, 호감을 주는 인상. 차림새는 누추한데, 그 행동이 아름다운 사람…. 싱그러운 젊음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아주 잠깐이다. 대부분의 아름다움은 노력의 산물이라 더 값지다.

    “얼굴에 그 사람의 삶이 다 담겨요. 흔히 내면의 미(美)라고 하는데, 그건 숨어 있지 않아요. 얼굴에 다 드러나죠.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 그래서 나온 거죠. 결국 아름다워지려면 외모뿐 아니라 삶을 아름답게 가꿔야 해요. 어떻게 하면 삶을 아름답게 가꾸느냐는 사람이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할 숙제죠. 어느 순간 놓쳐도 되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늘 생각하고, 또 생각하죠. 좋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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