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호

군 인사 ‘별들의 전쟁’ 내막

파격 ‘코드 인사’로 임기말 軍心 장악, 국방개혁 마무리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6-12-06 15: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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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상 최초로 육군참모총장이 국방장관 직행
    • 인사 특기 참모차장의 참모총장 승진도 처음
    • ‘소신·독주형’ 남재준, ‘온건·화합형’ 김장수, ‘강직·단합형’ 박흥렬
    • “청와대, 일찌감치 ‘김장수 장관, 박흥렬 총장’ 구도 짜고 검증 마쳐”
    • 군내 신망 두터운 전략통 김병관·김관진 대장의 희비
    • 윤광웅 장관의 권영기 대장 지원說
    군 인사 ‘별들의 전쟁’ 내막

    11월7일,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김장수 육군참모총장이 계룡대 이임 및 전역식에서 사열하고 있다.

    김장수 육군참모총장이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되자 국방부와 청와대 사정에 밝은 군 관계자는 이런 분석을 내놓았다.

    “김장수 국방부 장관 내정자는 윤광웅 장관과 잘 맞는 편이었고, 청와대와도 관계가 좋았다. 소신을 내세워 국방부, 청와대와 마찰을 빚은 전임 남재준 총장과는 정반대 스타일이다.”

    육군 대장급 인사안의 윤곽이 드러나기 전 육본의 한 장교는 이렇게 예상했다.

    “대장급 인사는 어차피 (인사권자에 의한) 발탁의 의미가 크다. 자질이나 능력은 그 다음 문제다. 육군 내에서 1·3군사령관은 둘 다 훌륭한 분으로 평가받고 있다. 누가 (참모)총장이 되더라도 불만이 없을 것이다.”

    이 장교의 ‘희망 섞인’ 전망은 빗나갔다. 참모총장에 오른 사람이 1군사령관도 3군사령관도 아닌 참모차장이었기 때문이다.



    11월에 단행된 군 고위급 인사는 두 가지 면에서 파격적이었다. 첫째는 현역 대장이 국방부 장관으로 영전한 것. 둘째는 육참차장이 육참총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모두 군 역사에 남을 특기할 만한 사건들이다.

    먼저, 현역 대장이 장관에 오른 것은 전례가 없다. 비슷한 사례로 1961년 5·16 직후 장도영 육참총장이 국방부 장관에 준하는 군사혁명위원장에 취임한 것을 꼽을 수 있으나, 대장이 아니라 중장이었고 계엄상황의 한시적 직책이었다는 점에서 경우가 다르다.

    육참차장이 육참총장으로 영전한 것도 드문 일이긴 하나, 언론보도와 달리 전례가 없지는 않다. 노재현(육사 3기)씨가 그랬다. 1969년 육참차장에 임명된 노씨는 1972년 육참총장으로 수직상승했다. 노씨는 이후 합참의장과 국방부 장관까지 역임했다. 1979~1981년에 육참총장을 지낸 이희성(육사 8기)씨도 차장에서 총장으로 승진한 경우. 이씨는 육참총장에 임명될 당시 중앙정보부장서리를 겸임하고 있었다.

    하지만 노재현씨는 10월유신, 이희성씨의 경우 12·12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이뤄진 인사였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육참차장이 육참총장에 임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

    박흥렬(육사 28기) 육참차장의 육참총장 승진이 갖는 특별한 의미는 두 가지 더 있다.

    첫째는 인사(510) 특기에서 처음으로 총장이 배출됐다는 점. 역대 참모총장은 하나같이 작전(530) 특기였다. 장교는 누구나 병과와 특기를 갖고 있다. 육군의 주력 병과는 보병이다. 보병 병과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작전 특기다. 그간 참모총장은 작전 특기가 도맡아왔다.

    둘째는 야전군사령관이나 한미연합사부사령관을 거치지 않은 참모총장이 탄생한 점이다. 장성의 직책은 1차 보직과 2차 보직으로 나뉜다. 대장의 경우 1·2·3군사령관과 연합사부사령관이 1차 보직이고, 참모총장과 합참의장이 2차 보직이다. 박흥렬씨는 별 하나를 더 달면서 총장에 오름으로써 대장 1차 보직은 건너뛰고 2차 보직으로 직행한 셈이다.

    “국방개혁의 연속성 유지”

    군 인사 ‘별들의 전쟁’ 내막

    박흥렬 육참총장. 김병관 한미연합사부사령관. 김관진 합참의장. 권영기 전 2군사령관.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처럼 김장수 육참총장의 국방부 장관 영전과 박흥렬 육참차장의 육참총장 승진은 일반적인 예상을 뒤엎은 인사다. 앞서의 영관장교는 군 인사구조를 잘 아는 편인데도 “솔직히 일부 언론에 보도되기 전까지, 김 총장이 장관으로 갈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파격적인 인사의 배경은 무엇인가. 여기엔 몇 가지 해석이 있다. 먼저 역할론. 윤광웅 국방부 장관 체제에서 진행된 국방개혁의 연속성 유지를 위해 김 내정자 발탁이 불가피했다는 분석이다.

    김 내정자가 윤 장관과 호흡이 잘 맞았다는 것은 군 안팎에서 누구나 하는 얘기다. 국방부 관계자는 “김장수 총장과 윤 장관 사이에는 국방개혁 방향을 두고 별 이견이 없었다”면서 “현재 법안이 국회 계류 중인 국방개혁을 완결하기 위해서는 추진과정에 적극 참여한 김 총장 같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겠냐”고 인사 배경을 추측했다. 그는 또 “임기 말인 만큼 새로 부임하는 장관의 임무는 새로운 정책을 펴는 것보다는 기존 정책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라며 “그 점에서도 김 내정자가 적임자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김 내정자는 육참총장 시절 군 구조 개편, 육군 병력 감축, 3군 균형발전 등 육군으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개혁안을 과감하게 추진함으로써 국방개혁에 이바지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현역이 장관이 된 게 언뜻 군의 문민화에 역행하는 인사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고 노 대통령의 국방개혁 의지가 실린 인사라고 주장했다.

    그가 총장 시절 청와대에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여 신뢰를 얻었다는 점도 파격 발탁의 요인으로 지적된다. 강직한 원칙주의자 남재준 전임 총장의 ‘소신’에 골머리를 앓았던 청와대는 김 내정자의 온건하고 합리주의적인 면모에 안도했다는 후문이다. 비서실장으로 그를 보좌한 황인무 준장의 역할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황 준장은 노무현 정권 초기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파견근무를 했다.

    의혹 수준이기는 하지만 물갈이 차원의 인사라는 해석도 있다. 코드에 맞지 않은 일부 군 고위직 인사를 자연스럽게 퇴진시키기 위해 김 내정자를 장관으로 끌어올렸다는 것. 윤광웅 장관 체제의 군 수뇌부는 지난해 4월 임명됐기에 임기가 6개월가량 남은 상태였다. 이상희 합참의장은 김 내정자의 육사 한 기(期) 선배이고, 이희원 연합사부사령관은 동기다. 두 사람이 물러난 자리는 김 내정자의 한 기 후배들로 채워졌다.

    ‘음모론’은 주로 이상희 전 합참의장과 관련된 것이다. 군과 정치권 주변에는 이 전 의장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응전략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 참여정부의 주요 군 정책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왔고 그것이 이번 군 수뇌부 인사의 중요한 배경이 됐다는 얘기가 퍼져 있다.

    이에 대해 윤광웅 국방부 장관의 측근은 “근거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이상희 의장의 ‘말실수’를 과도하게 해석한 면이 있다. 청와대 일부 인사들이 그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비공식적인 얘기다. 윤 장관과도 아무런 갈등이 없었다. 오히려 일부 군 원로들은 이 의장이 자신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윤 장관은 재임 중 군 지휘부의 임기보장 원칙을 존중하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윤 장관이 물러나지 않았다면 군 지휘부 교체도 없었을 것이다.”

    “이상희는 남재준과 김장수의 중간”

    윤 장관은 국방개혁안이 공식 발표된 9월 이후 주변에 사퇴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공식적으로 사의를 밝힌 것은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SCM(한미연례안보협의회) 참석을 마치고 귀국한 다음날인 10월23일 청와대 만찬자리에서였다. 윤 장관의 재임기간은 2년4개월. 역대 국방부 장관 중 9번째로 장수한 기록이다. 1980년 이후만 따지면 윤성민 장관에 이어 두 번째다.

    김 내정자는 군 안팎에서 대체로 좋은 평판을 듣고 있다. 특히 총장 재임 중 지역구도를 깨는 ‘탕평책’ 인사로 신망을 얻었다고 한다. 11월1일 그가 국방부 장관에 내정된 사실이 알려지자 성우회와 재향군인회 등 예비역 단체 주변에서도 “대체로 무난한 인물이 됐다”는 평이 흘러나왔다. 김 내정자는 1군사령부 작전처장, 합참 작전부장, 합참 작전본부장을 지낸 작전통이다.

    그가 호남(광주)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지역 안배 인사라는 시각도 있다. 같은 호남 출신의 김승규 국가정보원장 사퇴를 고려한 인사라는 분석이다.

    군 주변에서는 김 내정자와 그의 전임 총장이던 남재준씨를 비교하는 얘기도 화제다. 국방부 관계자는 “두 사람의 리더십은 대조적”이라며 “남재준 전 총장이 부하들에게 자신의 소신과 원칙대로 따를 것을 요구한 반면 김 내정자는 총장 시절 부하들의 얘기를 잘 듣고 존중해주는 편이었다”고 평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모두 연합사부사령관을 거쳐 육참총장에 올랐다.

    남 총장 시절 육본에 근무했던 한 장교는 남 전 총장에 대해 “참 존경스러운 분이지만, 오로지 군인정신과 군의 고유 의미만 강조하다보니 주변과 충돌이 잦고 군의 화합을 저해한 면이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반면 김 내정자에 대해서는 “어려운 시기에 총장을 맡아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슬기롭게 처신해 신망을 얻었다”고 호평했다. 이 장교는 또 “현역이 장관이 된 데 대해 기대와 우려의 시각이 엇갈리지만,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인사적체 해소는 물론 국방개혁 등으로 육군이 수세에 몰리는 상황에서 육군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려의 목소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현역 시절 대(對)국회업무를 담당했던 예비역장교는 “김장수는 성격이 유(柔)해서, 능수능란했던 윤 장관과 달리 국방위 의원들에게 끌려 다닐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국방개혁안에 대해 비판적인 예비역 장성은 “남재준은 자기 색깔이 뚜렷한 반면 김장수는 무색무취”라며 “장관 취임 후에도 자기 색깔 없이 계속 간다면 윤광웅의 닮은꼴이 될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는 또 “과거엔 정치권이나 윗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행동하는 장성이 더러 있었으나 지금은 보기 힘들다”며 “그런 군 지휘관으로는 남재준이 거의 마지막 인물이 될 듯싶다”고 남 전 총장을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했다.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남재준(육사 25기), 이상희(육사 26기), 김장수(육사 27기) 세 사람에 대해 흥미로운 비유를 들었다. 남 전 총장이 ‘국민윤리 선생’, 이상희 전 의장이 ‘교련 선생+정치 선생’이라면 김장수 장관 내정자는 ‘선비’라는 것. 앞서의 예비역 장성은 “이상희의 스타일은 남재준과 김장수의 중간에 해당하는데, 굳이 따지자면 남재준 쪽에 더 가깝다”고 평했다.

    김장수 내정자와 더불어 장관 후보로 거론된 사람들 중 몇몇은 정치권과 청와대, 언론을 상대로 상당한 공을 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자가발전’을 한 흔적도 발견된다. 386 실세 L의원 인맥으로 분류되던 모 예비역 육군 장성은 전작권 환수에 반대하는 전·현직 장성들의 성명에 동참했으면서도 장관 후보로 거론된 뒤에는 “(서명)한 적 없다”고 발뺌했다고 한다. 몇몇 정치인 후보는 주변에 자신이 장관이 될 것처럼 얘기하고 다녔고, 이들의 국회 사무실로 장관 보좌관(2급) 지망생이 몰려들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김병관-총장, 김관진-의장’ 예상

    김장수 내정자는 11월7일 전역식을 치렀다. 그 직후 대장급 인사안이 군 주변에서 흘러나왔다. 군 정보기관에 따르면 대장급 인사안은 11월10일 청와대에 올라갔다. 물론 사전에 조율했겠지만,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이 올린 인사안 그대로 재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군의 대장은 장관급보다는 낮고 차관급보다는 높다. 현재 대장 자리는 모두 9개. 그중 육군이 참모총장을 비롯해 1·2·3군사령관, 한미연합사부사령관 등 5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합참의장도 관례적으로 육군 대장이 맡아온 점을 감안하면 6자리가 육군 몫인 셈이다. 나머지 3자리는 해·공군참모총장 및 해·공군이 번갈아 맡는 합참차장이다.

    11월15일 국무회의에서 공식 발표된 대장급 인사는 대부분 육군과 관련된 것이고, 그중에서도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박흥렬 육참차장의 육참총장 승진이다. 박 총장은 지난해 4월 대장 승진 대열에서 탈락한 인물이기에 더욱 관심을 끌었다. 당시 그의 육사 28기 동기인 김병관, 김관진 중장은 대장으로 승진하면서 각각 1군사령관과 3군사령관에 진출했다. 야전군 사령관은 연합사부사령관과 더불어 육참총장이나 합참의장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필수보직으로 통한다.

    서열로 치면 군령권(軍令權)을 가진 합참의장이 군정권(軍政權)을 가진 육참총장보다 높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참모총장이 으뜸이다. 과거 상징적인 역할에 머물던 합참의장의 위상이 크게 높아지긴 했지만, 대다수 육군 장교는 인사·행정권을 쥐고 있는 참모총장을 육군의 지존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합참의장은 참모총장 경쟁에서 밀린 사람이 가는 자리로 인식돼왔다.

    중장에 머물고 있는 박 총장의 동기생으로는 김선홍 육군사관학교장, 류우식 군수사령관 등이 있다. 먼저 별 4개를 단 김병관, 김관진 대장은 이번에 각각 한미연합사부사령관, 합참의장에 임명됐다. 박흥렬 차장이 총장이 된 것은, 비유하자면 경기에서 패자부활전을 거쳐 올라간 선수가 결승에서 챔피언 벨트를 거머쥔 격이다.

    사실 11월초 언론에 박흥렬 장군이 후보로 거론되기 전까지 가장 유력한 전망은 김병관, 김관진 두 사람이 참모총장과 합참의장을 양분하는 구도였다. 전통적으로 작전 특기에서 총장이 배출된 데다, 차장이 총장으로 승진한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지금까지의 인사방식대로, 마치 관습의 틀을 깨기라도 하듯 비주류인 인사 특기의 중장 박흥렬 차장을 총장에 임명했다. 이에 대해 육군 안팎에서는 놀라움과 기대감이 엇갈려 표출되고 있다. 김관진 대장의 합참의장 영전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많지만, 김병관 대장의 연합사부사령관 전보에는 아쉬움을 나타내는 목소리가 많다. 그렇다고 박흥렬 총장을 반대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강직하고 호방한 성품의 박 총장을 존경하고 따르는 후배 장교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병관이 박흥렬에 밀릴 것”

    육사 28기의 대표주자로 꼽혀온 김병관, 김관진 두 장군은 요즘 군내에서 보기 드물게 실력과 덕망을 겸비한 명장(名將)이라는 평판이 따른다. 둘 다 일찌감치 총장감으로 후배들의 기대를 받아왔다. 육본의 한 장교는 인사가 나기 전 “1군사령관이 총장이 되길 간절히 바라지만, 3군사령관이 되는 것도 괜찮다”며 두 사람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군 관련 정보가 많은 예비역 장교는 “육참총장-김병관, 합참의장-김관진이 가장 이상적인 구도”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박흥렬 총장 카드가 급부상하기 전까지, 군내 역학관계를 감안하면 ‘김병관-육참총장, 김관진-합참의장’ 카드가 유력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두 사람의 능력이나 인품에 대한 평가가 엇비슷하다고 치면 출신지역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데, 김병관 대장은 영남(경남 김해), 김관진 대장은 호남(전북 전주) 출신이기 때문이다. 역대 고위장교 인사에서 지역 안배가 능력이나 자질 못지않게 중요한 잣대로 작용했다는 것은 상식이다. 따라서 김장수 장관 내정자가 호남 출신이므로 총장에 같은 호남 출신을 앉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물론 이것은 영남(부산) 출신인 박흥렬 총장을 후보로 고려하지 않았을 때의 관측이었다. “대장은 한 기에 많아야 2명 나온다”는 육본 장교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육사 28기의 경우 이미 두 사람이 대장을 달았기 때문에 중장인 박흥렬 차장의 총장 승진을 점친 장교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군 인사 업무를 담당했던 모 예비역 장성은 언론에 박흥렬 총장이 거론된 직후 “김병관이 박흥렬에 밀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역 분류 기준으로 따질 때 “박흥렬은 부산고 출신의 ‘성골’이고, 경기고를 나온 김병관은 경남 출신이긴 해도 ‘서울파’로 분류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쨌거나 그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김병관 신임 연합사부사령관은 김해에서 초등학교만 나온 후 서울로 올라왔다. 경기고를 졸업한 후 서울대에 진학했으나 1학기만 다니고 이듬해 육사에 입학했다. 수석입학, 수석졸업으로 수재 소리를 들었다. 이상희 전 합참의장과 황규식 국방부 차관이 그의 경기고 선배다.

    육군대학 교수부장과 합참 전력기획부장을 거친 김 대장은 작전·전략에 밝은 학구파 지휘관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전사(戰史)에 해박하고 ‘손자병법’의 대가로도 불린다. 덕장(德將)이지만 교육훈련만큼은 철저하게 시킨다는 평이 따라다녔다. 그가 포병 여단장을 지낼 때 수립한 통합화력계획은 당시엔 사단장에게 인정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군내에 널리 보급돼 있다.

    사정당국 소식통에 따르면, 인사를 앞두고 김 대장이 사이비 종교를 신봉하고 있다는 음해성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그가 ‘붓다필드’라는 단체에 가입한 사실을 누군가 고의로 유포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실제로 인사에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는 이에 대해 “‘붓다필드’는 종교가 아니라 전통 선도(仙道) 계열의 마음수련단체”라며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보도 통해 호남 출신인 줄 알아”

    김관진 신임 합참의장을 두고 지역구도에 상관없이 합참의장 적임자라는 평이 나온 데는 육본 전략기획처장과 합참 작전본부장 경력이 영향을 끼쳤다. 군 관계자는 “김관진 장군은 합참 작전본부장 시절 안광찬(현 비상기획위원장) 국방부 정책실장과 호흡을 맞춰 이라크 파병 등 미국과 보조를 맞춰야 하는 업무를 매끄럽게 수행했다”며 “전작권 환수와 북핵 사태 등으로 미국과의 공조가 절실한 시기에 합참의장에 그만한 적임자가 없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실력 못지않게 인품도 훌륭하다는 평이다. 전형적인 군인상으로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성격이라는 게 그를 겪어본 사람들의 거의 공통된 평가다. 아끼던 부하가 진급이 안 되자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섬세한 면이 있다. 반면 3군사령관 재임 중 평택 미군기지 시위 당시 ‘되도록 시위대와 충돌하지 말고 경찰에 넘기라’는 국방부 지침에 맞서 실탄 지급 등 강경진압을 주장하는 강퍅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김관진 의장도 김장수 장관 내정자와 마찬가지로 호남 출신이지만 지역색을 드러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한 예비역 장성은 “이번에 언론에 보도된 것을 보고야 그가 호남 출신임을 알았다”고 했다. 전북 전주 출신인 김 의장은 전주중, 서울고를 나왔다. 육사 입학 1년 만에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3년제인 독일 육사를 졸업한 후 귀국해 동기생들과 함께 임관했다.

    김관진 의장은 전두환 정권 때 경호실 교육담당 장교로 근무한 적이 있다. 당시 그의 인척이 경호실 고위간부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두고 김 의장이 인맥과 호남 배려 케이스로 군 요직을 두루 거쳤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하지만 긍정적인 평가가 대세다.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김관진 장군이 이번 인사에서 김장수 장관 내정자와 같은 호남 출신이라 역차별을 당할까 우려했다”며 “업무 전문성과 해박한 군사지식, 유연한 사고 등 최고 지휘관으로서 갖출 건 다 갖춘 사람”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그는 또 “합참의장은 더 이상 장식용 자리가 아니다”라면서 “김 장군이 합참의장에 오른 것은 아주 잘된 인사”라고 덧붙였다.

    이렇듯 쟁쟁한 두 동기생을 제치고 ‘육군의 꽃’인 참모총장에 오른 박흥렬 장군도 평판이 좋은 편이다. 육본 관계자는 박 총장에 대해 “군인의 길을 꼿꼿이 걸어온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는 “육군은 현재 그 어느 때보다 단합과 화합이 필요하다”며 “그 점에서 적절한 인사”라고 신임 총장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이회창 같은 면이 있다”

    인사통인 군 관계자는 박 총장에 대해 “똑부러지는 성격으로 호불호(好不好)가 뚜렷하다”고 평했다. 과거 1군사령부에서 박 총장을 보좌했던 예비역 대령의 평은 더욱 구체적이다.

    “박 장군은 적과 아군 개념이 뚜렷해 그를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이 극명하게 갈린다. 옳은 일 한다고 생각되는 부하한테는 잔뜩 힘을 실어준다. 반면 진급이나 보직관리에만 신경 쓰는 부하는 확실히 밟아준다. 분명 덕장은 아니다.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

    박 총장의 칼 같은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일화. 국방부 직할단체 중에 한국군사문제연구원이라는 단체가 있다. 예비역 장성이 원장을 맡고 있는데, 각군 참모차장이 이사로 관여하고 있다. 몇 달 전 연구원 자금 운용 문제로 이사들 간에 시비가 붙었다고 한다. 그런데 9명의 이사 중 박 총장 혼자만 다른 의견을 내고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려준 군 관계자는 “박흥렬 총장은 법관 시절의 이회창씨 같은 면이 있다”는 촌평을 덧붙였다.

    인사가 나기 전 군 주변에서는 김장수 장관 내정자가 박흥렬 장군을 총장으로 강력히 밀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지난 1년여 동안 총장과 차장으로 호흡을 맞춰 함께 일하기 편한 데다 지역안배 구도에도 들어맞기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거물급’인 김병관, 김관진 대장을 총장으로 두는 게 불편하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덧붙여졌다.

    하지만 인사통인 육군 관계자는 이러한 시각에 고개를 내저었다.

    “인사 특기에 중장인 차장을 대장으로 승진시켜 총장으로 올린다는 발상은 적어도 군내에서는 누구도 하기 힘들다. 밑에서는 감히 꺼낼 수도 없는 얘기다. 인사권자의 결정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언론에 후보들이 거론되기 전 윗선에서 이미 박흥렬 카드를 준비하고 인사검증까지 다 마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관계자는 박 총장 임명 배경에 대해 “참모차장으로서 김 내정자를 도와 육군개혁 임무를 잘 수행했기 때문에 업무 연속성 차원에서 임명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 총장은 육본 인사참모부장, 육군발전위원장 등을 거쳤다.

    실체 없는 청와대 유착설

    한때 권영기 2군사령관이 총장 후보로 거론된 데 대해서는 윤광웅 장관의 작품이라는 소문이 있다. 윤 장관이 인사 업무를 맡고 있는 국방부 고위관계자에게 “권 장군이 총장 하면 안 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등 권 장군을 밀고 있는 듯한 언행을 보였다는 구체적인 증언도 있다. 윤 장관이 총장 1순위로 김병관 대장, 2순위로 권영기 대장을 밀었는데, 청와대가 김 내정자의 뜻을 존중해 박흥렬 장군을 세웠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에 대해 국방부 고위인사는 “근거 없는 얘기”라고 부인했다. 물러나는 처지에서 후임 총장 인선에 관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윤 장관이 권 장군을 밀지 않았다는 근거로 윤 장관의 측근이 지난해 국정감사 때 2군사령부를 둘러보고 나서 윤 장관에게 “별 4개가 무거워 보였다”고 부정적으로 보고한 사실을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윤 장관과 청와대측이 군 인사개혁의 일환으로 비육사(갑종 222기) 출신의 권 장군을 한때 총장감으로 검토했다는 후문은 여전히 의문을 남기고 있다. 군 관계자는 “이 정부의 인사원칙이 기득권에 대한 부정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인사개혁을 한다며 비(非)육사 출신인 권 장군을 총장에 임명할지 모른다는 관측이 제기됐던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경남 합천 출신인 권 장군은 진주고, 경북산업대를 나왔다. 인터넷 등을 통해 권양숙 여사와 친척이라는 소문이 돌아 기무사에서 내사를 하기도 했다.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 소문을 계기로 실체 없는 ‘청와대 유착설’이 끈질기게 그를 물고 늘어졌다.

    한편 대장 1차 보직인 1·2·3군사령관에는 김태영(육사 29기·서울·경기고) 합참 작전본부장과 박영하(3사 1기·경북 청도·문화고) 교육사령관, 백군기(육사 29기·전남 장성·광주고) 인사사령관이 임명됐다. 하나같이 유력한 대장 승진 후보로 꼽히던 사람들이기에 “대체로 무난한 인사”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김 사령관은 김관진 합참의장처럼 독일 육사 출신이다. 국방부 정책기획국 차장, 육본 기획관리참모부장, 수방사령관 등 요직을 거쳤다. 국민의 정부 시절 천용택 장관의 보좌관(군사보좌역)을 지냈는데, 곧이곧대로 하는 성격 탓에 출입기자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3사 출신의 첫 대장인 박 사령관은 모나지 않은 성품의 덕장으로 “될 만한 사람이 됐다”는 평이 들린다. 교육사 교육훈련부장, 육본 감찰감을 지냈다.

    백 사령관은 특전사 작전처장, 1공수여단장, 특전사령관을 거친 ‘특전맨’으로 육본 감찰감(인권개선위원장 겸임), 인사사령관 등 요직을 두루 맡으며 ‘대장 승진 0순위’로 꼽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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